십자가의 현장 (마27:32-54)
본문
지구촌에 인류의 역사가 계속될 동안, 영원히 없어질래야 없어질 수 없는 불멸의 고장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곳을 가리켜 ‘예수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곳은 예수 십자가 죽음의 현장입니다.
I. 십자가의 현장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죽음의 형장(刑場)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38절에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속죄 제물이 된 마지막 제단이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라고 하는 고통으로 드려진 희생의 제물이었습니다. 그 죽음의 고통은,
1. 육체적 고난의 극치였습니다. 예수의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예수의 양손 양발에 못이 박히고, 나무 위에 높이 달려 피와 물을 뽑고, 진액이 다하여 죽는 고통입니다. 그의 육체적 고통은 모든 신체적 감각 기능에 미치는 절정의 것이었습니다.
1 그 몸은 옷 벗김을 당하고 홍포가 입혀졌습니다(요 19:1-5, 23-2
4). 이는 신분과 인격에 대한 수치였습니다.
2 강도들 한가운데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눅 23:33, 요 19:18). 극악한 죄인 중의 죄인으로 대접받은 것입니다.
3 눈으로 그를 모욕하는 원수들과 통곡하는 어머니를 보는 고통이었습니다.
4 귀로는,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마 27:42)라고 하는 조롱의 소리를 듣는 고통이었습니다. 5 그의 얼굴에는, 사람들이 뱉은 침이 묻는 치욕의 고난이었습니다. 6 그의 입은, 쓸개 탄 포도주의 쓴맛을 보아야 하는 고통이었습니다. 7 머리는 가시로 만든 면류관에 찔리는 고통이었습니다. 8 양손과 양발목엔 못이 박혀 구멍이 나고, 동맥과 정맥이 파열이 되고, 피를 쏟는 고통입니다. ⑨ 그의 등은 때리는 자들의 채찍에 맞았습니다. 10 여섯 시간 동안 계속된 고통과 수분이 끊어지므로 목마른 고통을 입었습니다. 11 그리고 이미 죽은 다음에도 그 옆구리는 창을 받아 물과 피를 쏟았습니다.
2. 영적인 고난의 극치였습니다. 그는 이미 겟세마네로 가면서 그 영혼이 심히 놀라시며 슬퍼 했다고 하였습니다(막14:33). 마태복음 26장 38절에도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고 했습니다. 그 고통은 아버지께 버림을 당하는 고통이라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를 발했습니다(마 27:46).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는 겟세마네에서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고, 갈보리산에서 육신까지 드려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영육이 산 자의 땅에서 끊어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사람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고 하였습니다.
3. 그는 전인격에 고난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의 이름이 모욕을 당했습니다. 선지자로서, 왕으로서, 제사장으로서의 신분에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비꼬임을 받았습니다. ‘네가 그리스도라 하는 선지자인가’ 하는 야유를 받았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내려오라,’고 하는 모욕을 당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인격적인 모욕이었습니다.
II. 십자가의 현장은 전 우주가 동원되었습니다.
1. 종교적 교권주의자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유대인,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성 종교의 대표자들이었습니다. 선민의 종교적 우월감, 시기, 질투, 외식, 교만, 탐심 등이 가득 찬 독사들이었습니다. 저들은 가룟 유다와 짜고 당시 노예의 값인 은 30으로 예수를 샀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돈을 가지고 거래하는 최악의 행동을 하였습니다.
2. 빌라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가의 대표였습니다. 이른바 당대 세계 권위의 상징인 로마 황제와, 신성하다는 로마 제국의 법령을 대표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치가의 양심마저 팔아 버리고, 공의와 진리를 권력과 명예로 바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유대 군중들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를 십자가 사형에 해당되는 죄수로 정죄한 자입니다. 그래서 2000년 기독교 역사 안에 예수 이름을 부르는 모든 크리스천들의 입이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그의 죄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3.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예수의 사형을 집행한 자들이었습니다. 형장으로 가기까지 예수에게 온갖 희롱과 채찍질을 가했습니다. 형장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속옷까지도 벗기고, 그것을 누가 얻나 제비를 뽑은 자들이었습니다. 실로 대담한 무례한들이요, 권력의 시녀들이었습니다.
4. 관원들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처음부터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종교적 모의에 동참한 자들이었습니다. 진리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고, 주어진 현실적 자기 실리(實利)에 급급한 노예적 근성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5. 배반한 제자의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직접 제자들 뿐아니라, 평상시에 예수를 따르면서 환호성을 발하던 일반 군중들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물론이고, 그 언제인가는 예수를 억지로 왕 삼으려고 흥분하던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들은 빌라도의 관정에서 크게 소리 지르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예수가 저들의 욕구를 채워 주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예수에게 기만을 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저들은 예수를 로마제국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줄 정치적인 메시야인 줄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6. 비록 소수였지만 믿음의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저 갈릴리로부터 예수를 좇아와 그를 섬기고 따르는 부녀자들과 또 제자들도 있었습니다(눅 23:43). 그리고 예루살렘의 부녀들도 있었습니다(마 27:55, 막 15:40-41, 눅 23:27-28). 7.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이 잠깐 동안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졌습니다(마 27:32). 그것은 주를 위함이 아니고, 예수의 사형을 집행하던 군인들이 저들 사형 집행의 편리를 위해 그를 억지로 붙잡아 예수의 십자가를 지게 한 것입니다. 이유는 이미 예수가 길바닥에 쓰러져 기진맥진한 상태라 형장까지 갈 수 없다고 군인들은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신자가 되었고, 그의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 전도하였고, 그들 밑에 믿음의 자녀가 나타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막 15:21, 롬 16:13). 8. 예루살렘 여자들의 통곡도 보게 됩니다. 저들은 골고다를 향하는 주님의 처절한 최후의 모습을 보고 참다 못하여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저들은 예수에게 넘치는 동정의 눈물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오히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저들의 장래를 염려해 주었습니다(눅 23:38). 이유는 예수께서는 이미 예수 죽인 유대인들의 죄를 인하여 예루살렘이 어떻게 망할 것을 내다보았기 때문입니다. 9.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사형을 집행하던 책임 장교였습니다. 그는 로마 정부의 언도를 받은 수많은 죄수들의 십자가형을 집행한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날 예수의 사형을 집행하다가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증거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마 27:5
4). 10. 하늘의 태양이 빛을 잃고, 땅이 흔들려 지진이 일어나는 자연계의 변동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9시에서 12시까지 세 시간을 지난 후였습니다. 12시에서 3시까지 세 시간 동안 태양은 그만 빛을 잃어버리고 온 천하가 캄캄해지는 흑암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지음 받은 태양이 창조주의 죽음 앞에 그 기능을 정지하고 말았습니다. 11.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도 있었습니다. 저들은 숨은 예수의 제자였습니다. 저들은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비밀로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던 그날 그 장면을 목도하고, 예수가 죽었을 때, 담대히 빌라도 총독에게 나아가 예수 시체 장사권을 허락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당일에 즉시 장사지내므로 시체를 집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자기의 새 무덤을 예수께 제공하고,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100근이나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고, 저들 두 사람이 예수의 시체를 안장하였습니다. 저들은 환난 날에 담대한 신앙가들이었습니다. 진리가 피를 쏟고, 배척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을 때, 저들은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를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 전 우주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십자가 현장에 관계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의 죽음이 만국 만민을 위한 우주적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III. 십자가의 현장은 실로 축복의 강수가 쏟아졌던 장소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 죽음의 자리에서 예수께서 하신 최후의 일곱 마디 말씀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우리의 구세주였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입증해 주는 축복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죄의 기도였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사죄의 옥수가 쏟아진 장소였습니다. 두 번째는 한편 강도에게 낙원을 허락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 43절에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죽음의 형장에 천국(낙원)이 공개되었습니다. 세 번째가 효성의 발로였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6절에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이 쏟아졌습니다. 네 번째가 하나님을 향한 최후의 절규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하였습니다(막15:34). 거룩한 하나님의 공의가 공개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어둠이 오기 전이었습니다. 그 다음, 12시부터 3시까지의 어두움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이어졌습니다. 다섯 번째가, 내가 목이 마르다 (요 19:28)였습니다. 이는 인성의 발로였습니다. 예수의 무죄하신 인성이 나타났습니다. 여섯 번째가 최후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내가 다 이루었다 고 하였습니다. 일곱 번째가 아버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아버지로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소유주가 아버지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십자가 현장은 실로 처참한 죽음의 장소였습니다. 그것은 나무에 달려 형을 받는 저주의 장소였습니다. 죄인이 맛보는 고난 극치의 장소였습니다. 예수 십자가 현장은 온갖 류의 인류가 동원하여 예수를 죽였던 죄악의 총집결지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의 십자가의 현장은 죄인에게 사죄의 복음이 쏟아진 장소입니다. 죄인에게 천국(낙원)이 소개된 장소입니다. 부모 공경의 축복이 쏟아진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준엄하신 공의가 나타난 곳입니다. 죄없으신 예수의 인성이 나타난 곳입니다. 아니 예수 최후의 승리의 개가가 들려 온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였음을 공개한 장소입니다. 예수님의 최후 말씀에 그 어디 하나 세상적인 것이 있는가 정치적인 것, 경제적인 것, 사상적인 것, 사회적인 것, 문화적인 것이 있는가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가 영적입니다. 본질적인 인생의 구원 문제입니다. 그 십자가의 현장은 십자가의 형장(刑場)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까지 지구의 공간에 자리잡고 있는 저 팔레스틴 땅의 예루살렘과 골고다는 형장(刑場)이 아니고 전세계인에게 성지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의 고장이 되고 있습니다. 땅에서 높은 지성소가 되고 있습니다. 십자가 저주의 형장이 어떻게 거룩한 땅, 성지가 되어 세기마다 인파의 물결을 이루고 있는가 바로 그것은 죄인 구원을 위하여 예수 자신이 속죄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생명의 지성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지구 공간 안에는 지금도 도처에서 십자가의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아니 오늘밤에 저와 여러분이 그 십자가의 현장에 앉아 있습니다. 바로 주 예수께서 피흘려 값주고 사신 주의 몸된 교회는 현재 역사 속에 재연되는 오늘의 갈보리입니다. 오늘의 십자가의 현장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십자가의 원수들 가운데, 지금 나는 어떤 존재로 그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 있는가 그 분과 나는 관계없는 사람인가 아니 그 분과 나는 관계가 있는 사람인가 있다면, 왜 관계가 있는가 십자가는 죄인에게 필요합니다. 죄인의 구원에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예수 정사의 밤에 그 사랑에 빚진 무리들이 그 앞에 앉아 그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의 구원에 감사하고, 그를 위한 헌신을 서원하는 것입니다.
I. 십자가의 현장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죽음의 형장(刑場)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38절에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속죄 제물이 된 마지막 제단이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라고 하는 고통으로 드려진 희생의 제물이었습니다. 그 죽음의 고통은,
1. 육체적 고난의 극치였습니다. 예수의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예수의 양손 양발에 못이 박히고, 나무 위에 높이 달려 피와 물을 뽑고, 진액이 다하여 죽는 고통입니다. 그의 육체적 고통은 모든 신체적 감각 기능에 미치는 절정의 것이었습니다.
1 그 몸은 옷 벗김을 당하고 홍포가 입혀졌습니다(요 19:1-5, 23-2
4). 이는 신분과 인격에 대한 수치였습니다.
2 강도들 한가운데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눅 23:33, 요 19:18). 극악한 죄인 중의 죄인으로 대접받은 것입니다.
3 눈으로 그를 모욕하는 원수들과 통곡하는 어머니를 보는 고통이었습니다.
4 귀로는,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마 27:42)라고 하는 조롱의 소리를 듣는 고통이었습니다. 5 그의 얼굴에는, 사람들이 뱉은 침이 묻는 치욕의 고난이었습니다. 6 그의 입은, 쓸개 탄 포도주의 쓴맛을 보아야 하는 고통이었습니다. 7 머리는 가시로 만든 면류관에 찔리는 고통이었습니다. 8 양손과 양발목엔 못이 박혀 구멍이 나고, 동맥과 정맥이 파열이 되고, 피를 쏟는 고통입니다. ⑨ 그의 등은 때리는 자들의 채찍에 맞았습니다. 10 여섯 시간 동안 계속된 고통과 수분이 끊어지므로 목마른 고통을 입었습니다. 11 그리고 이미 죽은 다음에도 그 옆구리는 창을 받아 물과 피를 쏟았습니다.
2. 영적인 고난의 극치였습니다. 그는 이미 겟세마네로 가면서 그 영혼이 심히 놀라시며 슬퍼 했다고 하였습니다(막14:33). 마태복음 26장 38절에도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고 했습니다. 그 고통은 아버지께 버림을 당하는 고통이라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를 발했습니다(마 27:46).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는 겟세마네에서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고, 갈보리산에서 육신까지 드려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영육이 산 자의 땅에서 끊어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사람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고 하였습니다.
3. 그는 전인격에 고난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의 이름이 모욕을 당했습니다. 선지자로서, 왕으로서, 제사장으로서의 신분에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비꼬임을 받았습니다. ‘네가 그리스도라 하는 선지자인가’ 하는 야유를 받았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내려오라,’고 하는 모욕을 당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인격적인 모욕이었습니다.
II. 십자가의 현장은 전 우주가 동원되었습니다.
1. 종교적 교권주의자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유대인,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성 종교의 대표자들이었습니다. 선민의 종교적 우월감, 시기, 질투, 외식, 교만, 탐심 등이 가득 찬 독사들이었습니다. 저들은 가룟 유다와 짜고 당시 노예의 값인 은 30으로 예수를 샀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돈을 가지고 거래하는 최악의 행동을 하였습니다.
2. 빌라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가의 대표였습니다. 이른바 당대 세계 권위의 상징인 로마 황제와, 신성하다는 로마 제국의 법령을 대표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치가의 양심마저 팔아 버리고, 공의와 진리를 권력과 명예로 바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유대 군중들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를 십자가 사형에 해당되는 죄수로 정죄한 자입니다. 그래서 2000년 기독교 역사 안에 예수 이름을 부르는 모든 크리스천들의 입이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그의 죄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3.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예수의 사형을 집행한 자들이었습니다. 형장으로 가기까지 예수에게 온갖 희롱과 채찍질을 가했습니다. 형장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속옷까지도 벗기고, 그것을 누가 얻나 제비를 뽑은 자들이었습니다. 실로 대담한 무례한들이요, 권력의 시녀들이었습니다.
4. 관원들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처음부터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종교적 모의에 동참한 자들이었습니다. 진리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고, 주어진 현실적 자기 실리(實利)에 급급한 노예적 근성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5. 배반한 제자의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직접 제자들 뿐아니라, 평상시에 예수를 따르면서 환호성을 발하던 일반 군중들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물론이고, 그 언제인가는 예수를 억지로 왕 삼으려고 흥분하던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들은 빌라도의 관정에서 크게 소리 지르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예수가 저들의 욕구를 채워 주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예수에게 기만을 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저들은 예수를 로마제국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줄 정치적인 메시야인 줄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6. 비록 소수였지만 믿음의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저 갈릴리로부터 예수를 좇아와 그를 섬기고 따르는 부녀자들과 또 제자들도 있었습니다(눅 23:43). 그리고 예루살렘의 부녀들도 있었습니다(마 27:55, 막 15:40-41, 눅 23:27-28). 7.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이 잠깐 동안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졌습니다(마 27:32). 그것은 주를 위함이 아니고, 예수의 사형을 집행하던 군인들이 저들 사형 집행의 편리를 위해 그를 억지로 붙잡아 예수의 십자가를 지게 한 것입니다. 이유는 이미 예수가 길바닥에 쓰러져 기진맥진한 상태라 형장까지 갈 수 없다고 군인들은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신자가 되었고, 그의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 전도하였고, 그들 밑에 믿음의 자녀가 나타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막 15:21, 롬 16:13). 8. 예루살렘 여자들의 통곡도 보게 됩니다. 저들은 골고다를 향하는 주님의 처절한 최후의 모습을 보고 참다 못하여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저들은 예수에게 넘치는 동정의 눈물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오히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저들의 장래를 염려해 주었습니다(눅 23:38). 이유는 예수께서는 이미 예수 죽인 유대인들의 죄를 인하여 예루살렘이 어떻게 망할 것을 내다보았기 때문입니다. 9.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사형을 집행하던 책임 장교였습니다. 그는 로마 정부의 언도를 받은 수많은 죄수들의 십자가형을 집행한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날 예수의 사형을 집행하다가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증거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마 27:5
4). 10. 하늘의 태양이 빛을 잃고, 땅이 흔들려 지진이 일어나는 자연계의 변동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9시에서 12시까지 세 시간을 지난 후였습니다. 12시에서 3시까지 세 시간 동안 태양은 그만 빛을 잃어버리고 온 천하가 캄캄해지는 흑암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지음 받은 태양이 창조주의 죽음 앞에 그 기능을 정지하고 말았습니다. 11.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도 있었습니다. 저들은 숨은 예수의 제자였습니다. 저들은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비밀로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던 그날 그 장면을 목도하고, 예수가 죽었을 때, 담대히 빌라도 총독에게 나아가 예수 시체 장사권을 허락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당일에 즉시 장사지내므로 시체를 집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자기의 새 무덤을 예수께 제공하고,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100근이나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고, 저들 두 사람이 예수의 시체를 안장하였습니다. 저들은 환난 날에 담대한 신앙가들이었습니다. 진리가 피를 쏟고, 배척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을 때, 저들은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를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 전 우주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십자가 현장에 관계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의 죽음이 만국 만민을 위한 우주적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III. 십자가의 현장은 실로 축복의 강수가 쏟아졌던 장소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 죽음의 자리에서 예수께서 하신 최후의 일곱 마디 말씀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우리의 구세주였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입증해 주는 축복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죄의 기도였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사죄의 옥수가 쏟아진 장소였습니다. 두 번째는 한편 강도에게 낙원을 허락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 43절에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죽음의 형장에 천국(낙원)이 공개되었습니다. 세 번째가 효성의 발로였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6절에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이 쏟아졌습니다. 네 번째가 하나님을 향한 최후의 절규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하였습니다(막15:34). 거룩한 하나님의 공의가 공개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어둠이 오기 전이었습니다. 그 다음, 12시부터 3시까지의 어두움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이어졌습니다. 다섯 번째가, 내가 목이 마르다 (요 19:28)였습니다. 이는 인성의 발로였습니다. 예수의 무죄하신 인성이 나타났습니다. 여섯 번째가 최후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내가 다 이루었다 고 하였습니다. 일곱 번째가 아버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아버지로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소유주가 아버지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십자가 현장은 실로 처참한 죽음의 장소였습니다. 그것은 나무에 달려 형을 받는 저주의 장소였습니다. 죄인이 맛보는 고난 극치의 장소였습니다. 예수 십자가 현장은 온갖 류의 인류가 동원하여 예수를 죽였던 죄악의 총집결지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의 십자가의 현장은 죄인에게 사죄의 복음이 쏟아진 장소입니다. 죄인에게 천국(낙원)이 소개된 장소입니다. 부모 공경의 축복이 쏟아진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준엄하신 공의가 나타난 곳입니다. 죄없으신 예수의 인성이 나타난 곳입니다. 아니 예수 최후의 승리의 개가가 들려 온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였음을 공개한 장소입니다. 예수님의 최후 말씀에 그 어디 하나 세상적인 것이 있는가 정치적인 것, 경제적인 것, 사상적인 것, 사회적인 것, 문화적인 것이 있는가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가 영적입니다. 본질적인 인생의 구원 문제입니다. 그 십자가의 현장은 십자가의 형장(刑場)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까지 지구의 공간에 자리잡고 있는 저 팔레스틴 땅의 예루살렘과 골고다는 형장(刑場)이 아니고 전세계인에게 성지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의 고장이 되고 있습니다. 땅에서 높은 지성소가 되고 있습니다. 십자가 저주의 형장이 어떻게 거룩한 땅, 성지가 되어 세기마다 인파의 물결을 이루고 있는가 바로 그것은 죄인 구원을 위하여 예수 자신이 속죄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생명의 지성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지구 공간 안에는 지금도 도처에서 십자가의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아니 오늘밤에 저와 여러분이 그 십자가의 현장에 앉아 있습니다. 바로 주 예수께서 피흘려 값주고 사신 주의 몸된 교회는 현재 역사 속에 재연되는 오늘의 갈보리입니다. 오늘의 십자가의 현장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십자가의 원수들 가운데, 지금 나는 어떤 존재로 그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 있는가 그 분과 나는 관계없는 사람인가 아니 그 분과 나는 관계가 있는 사람인가 있다면, 왜 관계가 있는가 십자가는 죄인에게 필요합니다. 죄인의 구원에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예수 정사의 밤에 그 사랑에 빚진 무리들이 그 앞에 앉아 그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의 구원에 감사하고, 그를 위한 헌신을 서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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