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27:45-49)
본문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신 예수님의 고통은 이제 극도로 찾아왔다. 아침 9시에 십자가에 예수님이 매달렸는데 3시간이 지난 낮 12시가 되자 온 땅이 어두어졌다. 이 어두움은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까지 계속 되었다. 4번째 말씀을 하실 때는 십자가에 매달리신지 6시간이 지난 오후3시 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4언서 부터 7언 까지는 연속적으로 계속하시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온 땅이 어두웠다는 것은 . 어두움은 죄의 세계이다. 6시간 동안 온 세상이 어두웠다는 것은 철저히 인류의 죄를 대속 하시고 죽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외면이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마틴 루터는 이 말씀을 가지고 오랫동안 먹지도 쉬지도 않고 명상에 잠겼다고 한다. 참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이 무슨 힘이 남았겠는가 ! 말을 한다해도 모기소리만큼 할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온 몸의 힘을 모아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귀에 들리도록 해야 한다는 주님의 뜻이 있었다. 주님의 뜻대로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리를 들었다. "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 사람들은 듣기는 들었지만 예수님의 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예수님이 왜 일부러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 받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했을까 가상 4언은 죄에 대한 무지한 자들에게 죄에 대해 깨달으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소리이다. 첫 번째:나의 하나님 ! 나의 하나님 ! = 46절 이제껏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관계가 깨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관계인가 하나님과 죄인의 관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엘리 = 히브리어로서 나의 하나님 뜻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이시며 심판자이시다. 하나님 자녀에게는 사랑의 아버지이지만 죄에 대해서는 무서운 심판자이시다. 왜 "엘리엘리" 즉 "나의 하나님" 만 히브리어를 사용 했을까 "라마 사박다니"는 아람어이다. "엘리 엘리" 만 히브리어를 사용하신 것은 잊어버린 하나님의 존재를 히브리어 민족에게 깨닫게 하시기 위한 주님의 의도였을 것이다. 이것은 또 이 시대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만 깨닫도록 외치는 주님의 음성이다 . 또 다른 주님의 뜻은 죄에 대한 무서운 하나님을 모습을 인류에게 똑똑히 보라는 주님의 의도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은 창세 이래로 하나님과 떨어진 적이 없으셨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아버지이셨다.
그런데 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사라지고 죄인과 심판자의 관계가 되신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지금 예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 하시고 죄인으로서 하나님을부르시고 계시는 것이다. 50%만 인류의 죄를 대속 하실 수 없다. 철저히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 하여야만 했다. 그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가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 두 강도는 자신들의 개인의 죄의 댓가로 심판을 당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창세 이래로 모든 인류의 죄를 지금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몸소 당하고 계신 것이다. 이 길이 아니고서는 인류가 구원받을 길이 없는 것이다. 지금 예수는 그 구원의 길을 열어놓고 계신 것이다. 무지한 자들은 이런 예수를 알지 못하고 비웃고 있었다. (마27:42)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 저 비웃는 무리들이 이 다음에라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지금 부르짖고 계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렇게 죄를 짊어지고 죽어가고 있다 너희는 이 후에라도 깨달아라 하나님이 얼마나 죄를 싫어하시고 무섭게 심판 하신지 너희는 깨달아라 " 예수님은 이런 의도로 지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 부르짖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사랑의 아버지이시지만 아버지가 빠진 하나님 존재는 무서운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저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자신들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살아왔다. 자신들만 도와주는 하나님으로만 알고 살아왔다. 자신들의 하나님에게 한 행동은 생각지 않고 하나님을 자신들의 육을 위해 살아가는데 도와주는 신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존재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지금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 " 외치신 것은 저 유대인들에게 잊어버린 하나님 존재를 알려주고자 하신 것이다. 그래서 "엘리 엘리 " 히브리어만 사용하셨을 것이다. 그렇게도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동안 하나님의 존재를 보여주시고 수없이 말씀으로 증거 하셨건만 저 미련한 유대인들은 믿지 아니했고 결국 지금 그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산다면 누가 하나님을 믿겠는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죄를 밥 먹듯이 짖고 살면 누가 죄 짖는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부모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데 자식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겠는가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자들에게 "엘리 엘리" 부르짖으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하여주고 계신다.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의 존재가 여러분 속에 얼마나 자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죄를 두려워하고 죄만 짖으면 가슴을 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지금 깨닫도록 외치고 계신 것이다 이 시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더러운 죄악 속에서 온갖 짖을 저지르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지금 주님은 외치고 있는 것이다. "엘리 엘리 ."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처럼 무지하고 미련한자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가 여러분의 삶 속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어찌하여 . = 46절 "어찌하여" 죄인의 처절한 심판의 소리를 지금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큰소리로 외치고 계신다. "어찌하여" 은 아람어로 주님은 외치고 있다. 이것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 듣도록 소리치신 것이다. 왜 내가 십자가에서 이렇게 죽은지 너희를 알아야 한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짖음이다.
"어찌하여" = 라마 (아람어) 직역하면 "어떤 목적을 두시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자신을 버리신 목적에 대해서 묻고 계신 것처럼느껴지지만 사실은 예수께서 하나님께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밑에 모인 무리들에게 . 후에 복음을 들은 자들에게 묻고 있는 말씀이다. "어떤 목적으로 내가 이렇게 버림을 당하는지 아느냐 " 주님은 지금 큰 소리로 우리의 귀에 묻고 계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지금 주님은 온 힘을 모아서 마지막으로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여기에는 분명한 주님의 숨은 뜻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 소리친 주님의외침이 아니었다. 혹자는 예수님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을 원망하여 부르짖는 소리였다고 하는데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해석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 아신 분이셨다. 33년 동안 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서 살으셨고 이 날을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증거 하시면서 살아 오셨다. 그런 분이 십자가에 고통에 못 이겨 하나님을 원망하겠는가 인간이시라면 또 모르겠지만 예수님은 인간이시면서 하나님 아들이셨다. 십자가에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죽인 무리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셨고 강도의 구원을 약속하시고 십자가 아래에서 연약하게 울고만 있는 자들에게 십자가 사랑으로 강하게 연결시켜 주고 있는 주님이 고통이 심하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 하겠는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면서도 인류에게 복음의 메세지를 계속해서 들려주고 계신다. 성도 여러분 "어찌하여" 예수가 이렇게 버림받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죄를 지어져 이렇게 고통 당하고 계십니까 어찌하여 이렇게 고통 당하고 계십니까 3 가지 이유때문이다.
1. 성경을 이루려 하시기 위해서
2. 인류의 죄를 사함 받게 하기 위해서 .
3.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1. 성경을 이루려 하시기 위함을 살펴 볼까요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 (시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 (시22:1)"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 (사53:4-7)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성경을 이루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지금 똑똑히 보라고 예수님은 "어찌하여" 부르짖고 계신 것이다.
2. 인류의 죄를 사함 받게 하기 위하여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마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갈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 (골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 인류를 위해 죄사함 받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똑똑히 보라고 예수님은 "어지하여" 부르짖고 계신 것이다.
3.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다.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 (요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신 예수는 이 땅에 오실 때 영광의 주로. 심판자로 오실 것이다. 아담이 사단에게 빼앗긴 이 땅의 다스리는 권세를 예수님은 다시 되찾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실 것이다. 잃어버린 에덴 동산 실락원을 복락원 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깨달으라고 예수님은 지금 "어찌하여" 부르짖고 계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십자가 위에서 "어찌하여" 부르짖는 예수님의 목소리는 원망이나 한탄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십자가 밑에 모인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큰 소리로 깨닫도록 부르짖었다. 성도 여러분 ! "어찌하여." 이 부르짖는 예수님의 음성이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드려져야 할 것이다. 어찌하여 예수가 지금 십자가에서 이렇게 죽어가고 계십니까 십자가 밑에서 무지한 백성들처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주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엘리야를 부르는 줄로 아는 무지한 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남은 구원하고 자신은 버림을 받는다고 놀리는 무지한 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찌하여 " 의 부르짖음은 오히려 우리들을 깨닫도록 부르짖는 주님의 사랑의 음성이었다는 것을 깊이 깨닫기를 바란다 세 번째:나를 버리셨나이까 = 46절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신을 지금 예수님은 큰소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이렇게 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한 뜻을 저 무지한자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온 몸의 힘을 다 내어 소리치신 것이다. 단순히 예수님 자신의 고통이 너무 참기 힘들어서 하나님께 따지듯 소리치시고 계신 것이 아니다
나를 버리셨나이까 = 하나님께 예수 자신이 완전히 버림 받았다 창세 이래로 하나님 아버지와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예수님 이셨다.
그런데 지금 그 아버지에게 예수님은 철저히 버림을 당하셨다. 왜 무엇 때문에 . 그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주님은 아람어로 크게 부르짖은 것이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왜 예수가 버림 받은지 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지 무지한 무리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 무지한 자들을 예수님은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지금은 저들이 예수를 비웃고 놀려대고 있지만 언제인가는 깨달을날이 올 것을 주님을 기대하신 것이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다시 말한다면 "어찌해서 내가 이렇게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지 아느냐 " 외치고 계신 것이다. 왜 이렇게 버림을 당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고 은혜를 받은다 할지라도 감사할 줄 모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 때문에 지금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한다. 예수가 하나님께 버림받을 이유가 없다. 하나님과 예수와 성령님의 삼위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런데 그 관계가 지금 떨어진 것이다. 누구 때문에 바로 나의 죄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확실하게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시고 죽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음 속 깊이 깨달아야 한다.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이 하나님께 버림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 아시죠 예수님이 무슨 죄를 지어서 지금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있지 않다는 것 아시죠 그러나 지금 십자가 밑에 있는 많은 무리들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성경은 그 사람들의 마음을 증거하고 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예수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있다고 아는 무지한자 들에게 예수님은 지금 "내가 왜 이렇게 버림을 당하는지 아느냐 " 외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아니 믿는 자들조차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성도 여러분 ! 너의 죄 때문에 예수가 지금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예수가 버림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죄가 없으신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무지한 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하는지 깨달을 때 비로소 인간은 죄에 대한 무지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인간이 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삽니까 죄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죄가 얼마나 무섭고 더러운 것인지 모르고 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을 때 인간은 죄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죄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날때 우리는 죄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죄에 대해서 더럽고 추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무리들도 이 무지함 때문에 엄청난 죄를 짖고 만 것이다. (시94:8) 백성 중 우준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꼬 이 무지한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죄에 대한 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 깨닫도록 십자가에서 외치고 계신 것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짖음 속에서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시대 죄에 대한 경각심이 무너져 가고 있다. 이 시대 죄에 대한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슴없이 죄를 저지르고 있다. 보험료를 타기 위해서 자식의 손가락을 자르고 자신의 다리까지도 서슴없이 자르고 있다.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고 형제를 죽이고 남편을 죽이고 아내를 죽이고 그야말로 죄악이 온통 인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10대 들의 범죄가 전체 범죄 중 54%을 차지하고 있다. 얼마나 이 나라에 죄악이 가득 찼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러니 더욱 큰 일은 이러한 죄에 대한 무지가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에게도 동일시 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예언하기를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이 죄에 사로잡힐 것을 말씀하고 있다. (딤후3:1-5)"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십자가에서 들리는 주님의 부르짖음 속에서 우리는 죄에 대한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인류에 죄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하나님은 모르고 죄로 인해 하나님께 외면 당하는 인간들의 고통을 지금 예수님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예 화 ' 위대한 복음전도자요, 신학자요, 찬송가의 작시자로 알려진 존 뉴턴은 영국 태생으로 7살때 어머니를 잃고 비뚤게 자라다 3년후에는 학교 공부마저 그만두고 지중해를 항해하던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기 시작 했다. 그는 배를 타고 다니면서 뱃사람들의 좋지 않은 습성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비정한 사람이 되어 온갖 나쁜 짓을 일삼았다. 그러다가 그는 아프리카 선단에 가입하여 그 배의 선장이 되었고 그가 하는 일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다 노예 상인들에게 팔아 넘기는 일을 했다. 그는 인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아주 흉악한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노예들을 상어에게 먹이로 주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신앙을 위해 끊임없이 눈물로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는 헛된 기도가 아니었다. 어느날 뉴턴이 대서양을 항해하는 데 큰 폭풍우가 몰아 닥쳤다. 순식간에 배는 파선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배 안은 온통 수라장이 되었다. 그때 뉴턴은 어릴 적 어머니의 기도를 떠올리게 되었고 항상 호주머니 속에 만 넣어 두었던 성경을 꺼내들고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 어머니의 하나님이시여,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저에게 단 한번만 기회를 주시옵소서. 저를 이 죽음에서 구해주시면 내 일생을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 이런 기도를 드리는 순간 죤 뉴턴은 변화되었다. 그 무섭던 바다가 잠잠해졌을 때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죤 뉴턴은 죄에 대한 무지에서 깨어났다. 십자가에서 예수가 나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변화 된 것이다 그는 위대한 복음전도자, 신학자가 되었고 찬송가 작시자로 새롭게 거듭난 사람이 된 것이다.
'결론' 성도 여러분 ! 우리는 고난 주간을 기다리면서 지금 가상 칠언의 말씀 중 제 4언의 말씀을 들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외침은 죄에 대한 무지한 자들에게 죄가 무엇인지 죄에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죄의 무지함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죄를 두려워하지 않은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주님의 고통을 보고도 하나님이 죄에 대해 얼마나 단호하고 무섭게 심판하는지 모른다면 짐승보다도 못한 자들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고"(롬6:23)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죄의 결과는 하나님께 당하는 심판 뿐이다. 그 심판을 지금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두 다 당하고 계신다. 죄에 대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주님이 지금 몸소 보여주고 계신다. 죄를 얼마나 하나님이 싫어하는지 주님은 지금 마지막 순간까지 인류에게 알리고자 하신 것이다. 죄에 대한 징계를 얼마나 하나님이 무섭게 하는지 주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십자가에서 부르짖는 예수님의 7마디 중 오늘 우리가 들은 4번째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부르짖으며 우리의 귀와 마음을 열어놓고 계신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할 때 짖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부터 많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부터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간 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생각 해보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메세지 였다면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믿는 자와 불신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메세지다. 죄에 대한 무지 때문에 지금도 죄악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주님은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 때문에 아니 너의 죄 때문에 지금 내가 이렇게 버림을 당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주님은 외치고 계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죽으시러 오셨다. 고통이 심해서 부르짖는 소리가 아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징벌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고 외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느냐 " 주님은 외치고 계신 것이다. 우리의 더러운 죄를 사해 주기 위해서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너희를 알아야 한다고 주님은 지금 외치고 계신 것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소리가 여러분의 심령 속에 매일 들려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4언서 부터 7언 까지는 연속적으로 계속하시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온 땅이 어두웠다는 것은 . 어두움은 죄의 세계이다. 6시간 동안 온 세상이 어두웠다는 것은 철저히 인류의 죄를 대속 하시고 죽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외면이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마틴 루터는 이 말씀을 가지고 오랫동안 먹지도 쉬지도 않고 명상에 잠겼다고 한다. 참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이 무슨 힘이 남았겠는가 ! 말을 한다해도 모기소리만큼 할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온 몸의 힘을 모아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귀에 들리도록 해야 한다는 주님의 뜻이 있었다. 주님의 뜻대로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리를 들었다. "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 사람들은 듣기는 들었지만 예수님의 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예수님이 왜 일부러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 받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했을까 가상 4언은 죄에 대한 무지한 자들에게 죄에 대해 깨달으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소리이다. 첫 번째:나의 하나님 ! 나의 하나님 ! = 46절 이제껏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관계가 깨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관계인가 하나님과 죄인의 관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엘리 = 히브리어로서 나의 하나님 뜻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이시며 심판자이시다. 하나님 자녀에게는 사랑의 아버지이지만 죄에 대해서는 무서운 심판자이시다. 왜 "엘리엘리" 즉 "나의 하나님" 만 히브리어를 사용 했을까 "라마 사박다니"는 아람어이다. "엘리 엘리" 만 히브리어를 사용하신 것은 잊어버린 하나님의 존재를 히브리어 민족에게 깨닫게 하시기 위한 주님의 의도였을 것이다. 이것은 또 이 시대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만 깨닫도록 외치는 주님의 음성이다 . 또 다른 주님의 뜻은 죄에 대한 무서운 하나님을 모습을 인류에게 똑똑히 보라는 주님의 의도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은 창세 이래로 하나님과 떨어진 적이 없으셨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아버지이셨다.
그런데 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사라지고 죄인과 심판자의 관계가 되신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지금 예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 하시고 죄인으로서 하나님을부르시고 계시는 것이다. 50%만 인류의 죄를 대속 하실 수 없다. 철저히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 하여야만 했다. 그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가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 두 강도는 자신들의 개인의 죄의 댓가로 심판을 당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창세 이래로 모든 인류의 죄를 지금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몸소 당하고 계신 것이다. 이 길이 아니고서는 인류가 구원받을 길이 없는 것이다. 지금 예수는 그 구원의 길을 열어놓고 계신 것이다. 무지한 자들은 이런 예수를 알지 못하고 비웃고 있었다. (마27:42)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 저 비웃는 무리들이 이 다음에라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지금 부르짖고 계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렇게 죄를 짊어지고 죽어가고 있다 너희는 이 후에라도 깨달아라 하나님이 얼마나 죄를 싫어하시고 무섭게 심판 하신지 너희는 깨달아라 " 예수님은 이런 의도로 지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 부르짖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사랑의 아버지이시지만 아버지가 빠진 하나님 존재는 무서운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저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자신들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살아왔다. 자신들만 도와주는 하나님으로만 알고 살아왔다. 자신들의 하나님에게 한 행동은 생각지 않고 하나님을 자신들의 육을 위해 살아가는데 도와주는 신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존재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지금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 " 외치신 것은 저 유대인들에게 잊어버린 하나님 존재를 알려주고자 하신 것이다. 그래서 "엘리 엘리 " 히브리어만 사용하셨을 것이다. 그렇게도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동안 하나님의 존재를 보여주시고 수없이 말씀으로 증거 하셨건만 저 미련한 유대인들은 믿지 아니했고 결국 지금 그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산다면 누가 하나님을 믿겠는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죄를 밥 먹듯이 짖고 살면 누가 죄 짖는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부모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데 자식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겠는가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자들에게 "엘리 엘리" 부르짖으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하여주고 계신다.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의 존재가 여러분 속에 얼마나 자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죄를 두려워하고 죄만 짖으면 가슴을 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지금 깨닫도록 외치고 계신 것이다 이 시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더러운 죄악 속에서 온갖 짖을 저지르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지금 주님은 외치고 있는 것이다. "엘리 엘리 ."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처럼 무지하고 미련한자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가 여러분의 삶 속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어찌하여 . = 46절 "어찌하여" 죄인의 처절한 심판의 소리를 지금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큰소리로 외치고 계신다. "어찌하여" 은 아람어로 주님은 외치고 있다. 이것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 듣도록 소리치신 것이다. 왜 내가 십자가에서 이렇게 죽은지 너희를 알아야 한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짖음이다.
"어찌하여" = 라마 (아람어) 직역하면 "어떤 목적을 두시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자신을 버리신 목적에 대해서 묻고 계신 것처럼느껴지지만 사실은 예수께서 하나님께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밑에 모인 무리들에게 . 후에 복음을 들은 자들에게 묻고 있는 말씀이다. "어떤 목적으로 내가 이렇게 버림을 당하는지 아느냐 " 주님은 지금 큰 소리로 우리의 귀에 묻고 계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지금 주님은 온 힘을 모아서 마지막으로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여기에는 분명한 주님의 숨은 뜻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 소리친 주님의외침이 아니었다. 혹자는 예수님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을 원망하여 부르짖는 소리였다고 하는데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해석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 아신 분이셨다. 33년 동안 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서 살으셨고 이 날을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증거 하시면서 살아 오셨다. 그런 분이 십자가에 고통에 못 이겨 하나님을 원망하겠는가 인간이시라면 또 모르겠지만 예수님은 인간이시면서 하나님 아들이셨다. 십자가에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죽인 무리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셨고 강도의 구원을 약속하시고 십자가 아래에서 연약하게 울고만 있는 자들에게 십자가 사랑으로 강하게 연결시켜 주고 있는 주님이 고통이 심하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 하겠는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면서도 인류에게 복음의 메세지를 계속해서 들려주고 계신다. 성도 여러분 "어찌하여" 예수가 이렇게 버림받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죄를 지어져 이렇게 고통 당하고 계십니까 어찌하여 이렇게 고통 당하고 계십니까 3 가지 이유때문이다.
1. 성경을 이루려 하시기 위해서
2. 인류의 죄를 사함 받게 하기 위해서 .
3.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1. 성경을 이루려 하시기 위함을 살펴 볼까요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 (시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 (시22:1)"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 (사53:4-7)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성경을 이루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지금 똑똑히 보라고 예수님은 "어찌하여" 부르짖고 계신 것이다.
2. 인류의 죄를 사함 받게 하기 위하여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마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갈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 (골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 인류를 위해 죄사함 받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똑똑히 보라고 예수님은 "어지하여" 부르짖고 계신 것이다.
3.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다.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 (요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신 예수는 이 땅에 오실 때 영광의 주로. 심판자로 오실 것이다. 아담이 사단에게 빼앗긴 이 땅의 다스리는 권세를 예수님은 다시 되찾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실 것이다. 잃어버린 에덴 동산 실락원을 복락원 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깨달으라고 예수님은 지금 "어찌하여" 부르짖고 계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십자가 위에서 "어찌하여" 부르짖는 예수님의 목소리는 원망이나 한탄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십자가 밑에 모인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큰 소리로 깨닫도록 부르짖었다. 성도 여러분 ! "어찌하여." 이 부르짖는 예수님의 음성이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드려져야 할 것이다. 어찌하여 예수가 지금 십자가에서 이렇게 죽어가고 계십니까 십자가 밑에서 무지한 백성들처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주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엘리야를 부르는 줄로 아는 무지한 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남은 구원하고 자신은 버림을 받는다고 놀리는 무지한 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찌하여 " 의 부르짖음은 오히려 우리들을 깨닫도록 부르짖는 주님의 사랑의 음성이었다는 것을 깊이 깨닫기를 바란다 세 번째:나를 버리셨나이까 = 46절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신을 지금 예수님은 큰소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이렇게 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한 뜻을 저 무지한자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온 몸의 힘을 다 내어 소리치신 것이다. 단순히 예수님 자신의 고통이 너무 참기 힘들어서 하나님께 따지듯 소리치시고 계신 것이 아니다
나를 버리셨나이까 = 하나님께 예수 자신이 완전히 버림 받았다 창세 이래로 하나님 아버지와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예수님 이셨다.
그런데 지금 그 아버지에게 예수님은 철저히 버림을 당하셨다. 왜 무엇 때문에 . 그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주님은 아람어로 크게 부르짖은 것이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왜 예수가 버림 받은지 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지 무지한 무리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 무지한 자들을 예수님은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지금은 저들이 예수를 비웃고 놀려대고 있지만 언제인가는 깨달을날이 올 것을 주님을 기대하신 것이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다시 말한다면 "어찌해서 내가 이렇게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지 아느냐 " 외치고 계신 것이다. 왜 이렇게 버림을 당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고 은혜를 받은다 할지라도 감사할 줄 모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 때문에 지금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한다. 예수가 하나님께 버림받을 이유가 없다. 하나님과 예수와 성령님의 삼위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런데 그 관계가 지금 떨어진 것이다. 누구 때문에 바로 나의 죄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확실하게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시고 죽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음 속 깊이 깨달아야 한다.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이 하나님께 버림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 아시죠 예수님이 무슨 죄를 지어서 지금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있지 않다는 것 아시죠 그러나 지금 십자가 밑에 있는 많은 무리들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성경은 그 사람들의 마음을 증거하고 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예수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있다고 아는 무지한자 들에게 예수님은 지금 "내가 왜 이렇게 버림을 당하는지 아느냐 " 외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아니 믿는 자들조차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성도 여러분 ! 너의 죄 때문에 예수가 지금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예수가 버림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죄가 없으신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무지한 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하는지 깨달을 때 비로소 인간은 죄에 대한 무지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인간이 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삽니까 죄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죄가 얼마나 무섭고 더러운 것인지 모르고 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을 때 인간은 죄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죄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날때 우리는 죄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죄에 대해서 더럽고 추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무리들도 이 무지함 때문에 엄청난 죄를 짖고 만 것이다. (시94:8) 백성 중 우준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꼬 이 무지한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죄에 대한 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 깨닫도록 십자가에서 외치고 계신 것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짖음 속에서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시대 죄에 대한 경각심이 무너져 가고 있다. 이 시대 죄에 대한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슴없이 죄를 저지르고 있다. 보험료를 타기 위해서 자식의 손가락을 자르고 자신의 다리까지도 서슴없이 자르고 있다.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고 형제를 죽이고 남편을 죽이고 아내를 죽이고 그야말로 죄악이 온통 인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10대 들의 범죄가 전체 범죄 중 54%을 차지하고 있다. 얼마나 이 나라에 죄악이 가득 찼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러니 더욱 큰 일은 이러한 죄에 대한 무지가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에게도 동일시 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예언하기를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이 죄에 사로잡힐 것을 말씀하고 있다. (딤후3:1-5)"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십자가에서 들리는 주님의 부르짖음 속에서 우리는 죄에 대한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인류에 죄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하나님은 모르고 죄로 인해 하나님께 외면 당하는 인간들의 고통을 지금 예수님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예 화 ' 위대한 복음전도자요, 신학자요, 찬송가의 작시자로 알려진 존 뉴턴은 영국 태생으로 7살때 어머니를 잃고 비뚤게 자라다 3년후에는 학교 공부마저 그만두고 지중해를 항해하던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기 시작 했다. 그는 배를 타고 다니면서 뱃사람들의 좋지 않은 습성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비정한 사람이 되어 온갖 나쁜 짓을 일삼았다. 그러다가 그는 아프리카 선단에 가입하여 그 배의 선장이 되었고 그가 하는 일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다 노예 상인들에게 팔아 넘기는 일을 했다. 그는 인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아주 흉악한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노예들을 상어에게 먹이로 주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신앙을 위해 끊임없이 눈물로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는 헛된 기도가 아니었다. 어느날 뉴턴이 대서양을 항해하는 데 큰 폭풍우가 몰아 닥쳤다. 순식간에 배는 파선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배 안은 온통 수라장이 되었다. 그때 뉴턴은 어릴 적 어머니의 기도를 떠올리게 되었고 항상 호주머니 속에 만 넣어 두었던 성경을 꺼내들고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 어머니의 하나님이시여,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저에게 단 한번만 기회를 주시옵소서. 저를 이 죽음에서 구해주시면 내 일생을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 이런 기도를 드리는 순간 죤 뉴턴은 변화되었다. 그 무섭던 바다가 잠잠해졌을 때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죤 뉴턴은 죄에 대한 무지에서 깨어났다. 십자가에서 예수가 나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변화 된 것이다 그는 위대한 복음전도자, 신학자가 되었고 찬송가 작시자로 새롭게 거듭난 사람이 된 것이다.
'결론' 성도 여러분 ! 우리는 고난 주간을 기다리면서 지금 가상 칠언의 말씀 중 제 4언의 말씀을 들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외침은 죄에 대한 무지한 자들에게 죄가 무엇인지 죄에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죄의 무지함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죄를 두려워하지 않은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주님의 고통을 보고도 하나님이 죄에 대해 얼마나 단호하고 무섭게 심판하는지 모른다면 짐승보다도 못한 자들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고"(롬6:23)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죄의 결과는 하나님께 당하는 심판 뿐이다. 그 심판을 지금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두 다 당하고 계신다. 죄에 대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주님이 지금 몸소 보여주고 계신다. 죄를 얼마나 하나님이 싫어하는지 주님은 지금 마지막 순간까지 인류에게 알리고자 하신 것이다. 죄에 대한 징계를 얼마나 하나님이 무섭게 하는지 주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십자가에서 부르짖는 예수님의 7마디 중 오늘 우리가 들은 4번째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부르짖으며 우리의 귀와 마음을 열어놓고 계신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할 때 짖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부터 많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부터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간 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생각 해보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메세지 였다면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믿는 자와 불신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메세지다. 죄에 대한 무지 때문에 지금도 죄악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주님은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 때문에 아니 너의 죄 때문에 지금 내가 이렇게 버림을 당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주님은 외치고 계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죽으시러 오셨다. 고통이 심해서 부르짖는 소리가 아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징벌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고 외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느냐 " 주님은 외치고 계신 것이다. 우리의 더러운 죄를 사해 주기 위해서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너희를 알아야 한다고 주님은 지금 외치고 계신 것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소리가 여러분의 심령 속에 매일 들려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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