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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함께 가자 ! (마26:36-46)

본문

이제 앞으로 주일을 3번만 더 보내면 98년도 주일 예배도 마치게 된다. 한해의 마지막 달 12월이 되면 학생들은 방학을 생각하고 신세대는 크리스마스를 생각하고 쉰 세대는 세월의 무상함을 생각하는 달이다. 여러분의 이 마지막 달에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을 눈앞에 두고 밤이 맞도록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누가는 이때 기록을 더 자세히 기록하였는데 주님의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고 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주님은 그렇게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계셨것만 제자들은 잠을쿨쿨 자고 있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 제자들은 깨우고 다시 주님은 기도하시고 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까 또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주님은 제자들을 깨어서 "일어나라 함께 가자 " 주님은 일년동안 잠도 안주무시고 기도하시는데 우리는 잠만 자는 그런 나약한 신앙생활을 하지는 안했습니까 그런 나약한 신앙생활을 한 우리에게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 " 고 하신다.
한해를 뒤돌아 볼 때 부족하고 나약한 신앙생활을 했다 할지라도 지금 주님의 손을 잡고 일어서기를 바란다. 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갈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세 가지로 살펴보자. 첫 번째:십자가를 지라 ! 37-39절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주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을 올라가셨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신 주님은 마음이 심히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그냥 지나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십자가에서 죽음이 두려워서 주님이 그랬나요 십자가에서 보이실 창피함 때문이었나요 왜 이렇게 주님은 고통스러워 했나요 창세 이래로 떨어져 본적이 없는 아버지와의 관계였는데 십자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다는 것은 예수님에게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주님은 지셔야만 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예수님은 마음은 너무 괴롭고 슬퍼서 기도하신 것이다 인류의 죄로 인해 아버지로 부터 저주를 받고 아버지부터 멀어질 것을 생각하신 주님은 너무 괴로웠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잔이 무엇입니까 십자가 죽음의 잔을 가리킨다. 이 잔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진노의 십자가였지만 예수님은 그 저주의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은 그 동안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자주 말씀하고 가르치셨다. '마20:18-19'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 마가 다락방에서 최후 만찬을 하면서도 주님은 떡을 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포도주 잔을 드시면서 "이것은 내 피니 받아 마시라" 자신이 왜 이 땅에 왔는지 제자들에게 누누이 가르치셨다.
그런데 이제 그 십자가를 져야 할 시간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알고 주님은 너무 괴로워하신 것이다 왜 이렇게 괴로워 하셨을까요 (신21:23)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죄로 인해 십자가에 죽은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자다. 주님은 인류의 죄로 인해 이 땅에 죽으러 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인류를 위해 죽는 것은 두렵지 아니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저주를 받아 하나님과 떨어져야 할 것을 생각하신 주님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주님은 저주를 받으셨다. 그 저주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주님은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해석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림을 당하신 주님이셨다. 무엇 때문에 인류의 죄 때문이었다.-나의 죄 때문에 주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림을 당하셨다. 믿으십니까 나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았던 그 십자가를 주님은 나에게 지라는 것이다. 왜 입니까 그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내 죄가 사함 받을 길이 없고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이 지신 십자가 속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주님이 저주 받으셨던 그 십자가 없이는 주님과 동행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십자가를 질 수 있는지 보이기 위해서 제자들을 겟세마네 동산에 데리고 가서 자지 말고 깨어서 기도하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이 붙잡히자 제자들이 주님과 같이 십자가를 졌습니까 잠만 자던 제자들은 하나도 십자가를 질 수 없었다.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면 주님과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자. '마16:2
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성도 여러분 ! 십자가 목에 걸고 다닌다고 내가 십자가 진 것 아니다. 십자가만 바라본다고 내가 십자가 진 것 아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1. 주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 우리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롬8:17)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 십자가의 길은 낭만적인 길이 아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고 고통의 길이고 아픔의 길이다. 성도가 예수를 믿고 복을 받었는데 . 자신과 자기 가정만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를 진자가 아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복을 받아 자신의 삶을 누리는데 살아간다면 십자가를 진자가 아니다. 교회가 축복을 받아 교회만 키우고 교회 치장에만 치중한다면 주님의 십자가를 진 교회가 아이다. 성도나 교회나 십자가를 짊어졌다면 복음을 위해서 선교와 구제에 아낌없이 사용할 때 비로소 주님의 십자가를 지게 된 것이다. 이러할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올 겨울에 고아원과 양로원에 도움의 손길들이 끓겼다고 한다. 주님은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고난을 함께 하셨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교회만 열심히 다니고 나만 예수를 뜨겁게 믿고 나만 복 받고 사는 게 아니다. 주위에 고난받은 자와 함께 할 때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교회가 당하는 고난을 성도가 함께 당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이 시대 십자가를 믿는 자는 많으나 십자가를 짊어지려는 자는 보기 힘든 시대이다. 십자가에서 내 죄가 사함 받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는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거절할 수 없다. 복만 받기를 원하고 고난은 싫어하는 자는 십자가의 사랑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진다는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이다
2.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나를 부인하는 것이다" '마16:2
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십자가를 지기 전에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고 했다. 나를 부인하며 사는 것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는 것이다. 나를 부인한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는 이제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만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제자들이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 다녔지만 자신들을 부인하지 아니하고 따라 다녔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도 자신들을 위해서 따라 다녔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나는 오른쪽 너는 왼쪽 하면서 육을 위해 예수님을 따라 다닌 것이다. 자신을 부인하지 아니한 제자들은 주님이 붙잡힐 때 나 살겠다고 다 도망쳐 버렸다. 그러나나중에 주님이 부활하시고 성령님을 받고 자신들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를 위해 살다가 예수를 위해 죽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짊어지려면 자신을 먼저 부인해야 할 것이다. 나를 부인하지 않고서는 십자가를 짊어 질 수 없다. 십자가를 짊어질 수 없으니까 주님을 위해서 일하지 못한다. 십가가는 곧 능력이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를 짊어지면 고난도 고난 같지 않고 오히려 고난 속에서 주님을 찬양하게 되고 나보다 더 고난 당한 자를 찾게 되고 나는 온데 간데 없고 예수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 종교는 내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내가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고 했다.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고서는 주님과 함께 갈 수 없다. 십자가 없는 구원이 있을 수 없듯이 예수가 함께 하지 아니한 신앙생활 무슨 능력이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고전2:2) 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했다 우리가 왜 세상 것에 욕심이 생기고 탐욕이 생기는가 나를 부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예수를 믿으면서도 나를 위해 살려고만 하는가 나를 부인하지 않고 십자가를 짊어지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령에 우리의 어깨에 주님의 십자가가 진실로 있다면 저 세상 것들 부러워하지 않은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기도하자 ! 40-45절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 " 주님은 기도하는데 잠만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두 번이나 오셔서 책망을 하셨다. 그리고 세 번째 와서는 잠을 자던지 쉬던지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다. "나는 이제 때가 다 되었으므로 죄인들의 손에 잡혀간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무 실망을 안고 떠나고 있는 것이다.
 40절 = 첫 번째 책망이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 한 시 동안은 잠시를 뜻한다. 41절 = 왜 기도해야 하는가 시험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 왜 기도하지 못하는가 육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즉 영적인 자가 아니기 때문에 육이 약한 것이다. 43절 = 두 번째 와서 주님이 보니까 제자들이 눈이 피곤했다고 했다. "눈이 피곤함일러라" 이제 영적인 눈까지도 흐려져 버린 상태가 된 것이다. 45절 = 세 번째 주님은 오셔서 제자들에게 "이제는 자고 쉬라" 이 말의 의미는 이제는 너희 마음대로 하라는 주님의 책망이다 (호크마 주석 해석) 기도할 때 기도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기도하지 아니하고는 주님과 함께 갈 수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한해 동안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지 안한 것 같습니까 왜 함께 하지 안했을까요 오늘 본문은 정확히 우리에게 그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제자들이 왜 주님과 함께 하지 못했는가요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님이 계속 와서 깨워주었지만 제자들은 잠만 자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제자들은 주와 같지 죽을지언정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다. '마26:3
5'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 제자들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갈 수 있는 것은 마음만 가지고 아니된다. 마음만 가지고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한다면 누가 천국을 못 가겠는가 마음은 원이어도 육신이 약해 버리면 안된다. 인간은 육을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왜 기도하지 못하는가 육이 나약하기 때문이다. 육신이 약하다는 것은 육에 너무 쉽게 굴복한다는 것이다. 육에 쉽게 굴복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영적인 자가 되어야 되는데 영적인 자가 되려면 기도뿐이 없다. 주님이 기도하라고 할 때 기도해야만 한다. 기도할 수 있는 기회는 주님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기도를 하도록 주님은 계속 재촉했지만 저들은 잠에 취해 버렸다. 여기에서의 잠도 일반적인 잠이 아니다.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제자들의 영안까지 흐려져 버린 것이다 그 후 제자들의 모습을 보자. 모두다 도망쳐 버렸고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다. 성도 여러분 ! 기도하지 아니하면 깊은 영적인 잠을 잘 수밖에 없고 결국 영안 까지 흐려지고 나중에는 주님을 떠나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란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주님과 동행할 수 없을뿐더러 시험에 들게 된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할 것이다. 주님은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하나님께 밤이 맞도록 기도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다.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주님을 기도하셨다. 왜 우리가 기도를 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주님의 기도 소리를 들어보라 "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우리가 기도할 때 보면 우리는 내 뜻만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게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게 기도다. 내 뜻이 주님의 뜻과는 전혀 다르다면 백날 기도해보아야 소용없다. 기도는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얼마 있지 아니하면 대학교 시험이 있는데 내 자식이 공부를 너무 못해서 대학을 들어가기도 힘드는데 그 어머니가 믿음으로 40일 철야 기도하면서 "주여 내 아들을 서울 대학에 합격 시켜 주옵소서" 했다고 주님이 합격 시켜 줍니까 그런 기도는 서울 대학을 100번 보아도 떨어 질 것이다. 또 어떤 성도가 믿음 생활은 형편없이 하면서 "주여 저에게 복을 주옵소서" 기도만 한다고 주님이 복을 줄까요 이런 자들에게 주님은 분명히 말할 것이다. "너희 믿음을 먼저 나에게 보여라" 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주님과 똑같은 생각을 가져야만 한다. 그 주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도다.
2. 왜 기도해야 하는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이다 본문 41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왜 우리가 시험에 듭니까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는 주님의 뜻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기도하면 주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내 뜻은 뒤로하기 때문에 절대로 시험에 들지 아니한다. 주님은 마지막 때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질 것이라고 하셨다 '마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 시험에 빠지면 상대방을 미워하게 된다.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진다는 것은 기도가 없기 때문에 시험에 빠진다. 시험에 빠져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시험이 아니다 이것은 마귀가 준 시험이다.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아니하려면 기도해야만 한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던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지만 기도가 없던 제자들은 전부 시험에 빠져 예수를 버리고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우리도 마귀의 시험에 빠져 교회를 떠나고 주님을 배반하고 말 것이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가 우리를 시험에 빠뜨리려고 배고파서 우는 사자처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깨어서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마귀에 시험에 빠져 있는데 어떻게 주님과 함께 갈 수가 있겠습니까 기도할 때 마귀의 어떤 미혹도 시험도 이길 것이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기도하는 자가 되십시오. 세 번째:주님과 함께 가시길 원하신다면 이제 일어나야만 한다. 46절 "일어나라 함께 가자 .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 예수님은 잠자던 제자들을 깨우셔서 함께 가자고 했다. 조금 전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고민하던 주님의 모습은 이제 찾아 볼 수 없다. 이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신 것이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것은 주님의 사랑이다. 기도할 때 잠만 자고 있고 책망 하셨지만 제자들을 버리고 주님만 혼자 가실 수 없었다. 자신이 붙잡히면 제자들은 주님을 버리고 도망갈 것을 아셨지만 제자들을 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가 일년동안 주님에게 게으르고 나태한 신앙을 보였지만 주님은 다시 우리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 고 하신다. 이 주님의 사랑이 느껴지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이 붙잡혀서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제자들을 다 뿔뿔이 도망 가버렸지만 주님은 제자들을 떠나지 아니했다. 3일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하시고 오순절날 성령님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 우리가 이 한해 동안에 주님과 멀어진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주님은 우리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기 원한다. 한해 동안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귀찮다고 했던 우리. 영적인 잠에 취해서 주님의 책망 소리도 듣지 못했던 우리 . 기도를 게으르게 하고 나태한 신앙을 가졌던 우리. 마귀의 시험에서 고통스러웠던 우리 . 나만 위해서 신앙 생활 했던 우리에게 주님은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함께 가기 위해서 일어나야만 한다. 앉아있는 신앙 상태에서 이제 일어나야만 한다 앉아있는 신앙으로는 주님과 함께 할 수 없다. 영적인 잠에 취해서 있습니까 이제 일어나야 할 때이다. 지금은 잠잘 때가 아니다 '롬13:1
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성도 여러분 ! 일년 한해동안 영적인 일에 게을렀다면 영적인 잠을 잔 자이다. 주님이 지금 일어나라고 하신다. 더 이상 잠을 자면 안된다. 이제 일어나서 십자가 언덕에 가서 주님이 지신 십자가 우리도 지고 마가 다락방까지 가셔 성령님 충만 받아서 주의 일을 하기를 바란다. 시험에 빠져서 사람들만 미워하다가 시간 다 보내지 말고 이제 일어나서 주님의 손을 잡고 시험을 이기고 나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저들이 다예수 앞에 무릎 끓고 나오게 될 것이다. 저들에게 내가 주님과 함께 한자라는 것을 보여주시길 축원합니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그 상태에서 일어나서 주님의 손을 잡으시기 바란다. 어린아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 갈 때는 두려울 것이 없다. 동네 꼬마 깡패도 무섭지 않다. 멍멍 짖어대는 강아지도 무섭지 않다. 도로에 무섭게 달리는 자동차도 무섭지 않다. 왜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하고 시험에 빠집니까 주님의 손을 잡지 않고 내 방법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한다면 무엇이 두려울게 있습니까 '복음 찬양'
1. 주님여 이 손을 꼭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2.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소리 귀기울 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사43:1-
2' 너는 두려워 말라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고 불꽃이 너를 태우지도 못하리라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주님의 손을 잡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세상 속에서 앉아 있지 말고. 내 생각 속에서 앉아 있지 말고. 편안하다고 편안함 속에서 앉아있지 말고 고통 속에서 낙심하고 좌절만 하고 앉아있지 말고 이제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를 바란다. 주님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계신다. 그 손을 뿌리치지 말고 잡으시기 바란다. 주님의 손만 잡으면 우리에게 새 힘이 생길 것이다. 새 힘 받아서 주님의 일 하시길 축원합니다.
 '결론' 우리의 인생이 속고 사는 게 인생이라지 만 영적 인생은 더 이상 속고 살아서는 안된다. 일년동안 우리가 내 방법대로 살아 본 결과가 어떻습니까 더 이상은 이제 속지 말자. 한해 동안의 실수. 한해 동안의 나태함 . 주님은 용서해 주신다. 이제 다시는 이런 영적 실수 범하지 말고 주님 한분 만을 의지하고 주님 손을 놓치지 말고 살아보자. 주님의 거듭된 용서가 언제인가는 끝날 날이 올 거라는 것을 깨달은 자가 되기를 바란다. 아무리 용서를 빌어도 용서함 받지 못할 날이 온다.  주님의 손을 붙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는 날이 온다. 이제 한 해가 다 가고 있다. 이 한해 주님의 손을 잡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 왔다면 철저히 회개를 하시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 있는 자의 모습을 소유하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십자가가 있을 때 주님과 동행할 수 있다. 기도가 있을 때 주님과 동행할 수 있다. 일어나야만 주님과 동행할 수 있다.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서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면 어느 쪽에서 움직였는지를 생각 해보라 하나님께서 내게서 멀리 떠나신 것 같으면 하나님이 떠나신 것이 아니다. 주님이 떠나신 것이 아니라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 주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 한 평생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영원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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