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필요성 (마26:36-46)
본문
20세기의 종교 분포도를 보게 되면 카톨릭을 포함한 기독교인구가 전세계 적으로 31.8%인 17억3천4백만명에 이르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들이 32%가 넘는다는 것은 회교의 19/6%,힌두교의 13/5%,불교를 위시 한 동양종교의 11.6% 보다는 훨씬 많은 편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구원 을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많은 것이 아닙니다. 이를 볼때 우리는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사람보다 믿음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철학자들은 '신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이며 신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 개념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 할 때에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하며 또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이 유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신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 문이 아니라 신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왜 내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하나님은 과연 계시는지' 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에 이상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 신앙을 통해서 우리의 심령에 새 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축복을 하나님이 주신다면 과연 이 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앙은 논리적인 영역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의 행위적인 수단으로, 행 동을 통해서 우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신앙의 정의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36절 말씀을 보면 "이에 예수게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는 곳에 이르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신앙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 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속에 일어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들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엄청난 고통을 앞에 두고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37절 말씀에 "베드로와 세배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 사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희노애락의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인 성을 지니고 계셨지만, 그러한 속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태도는 오늘날 인간 이 처할 수 있는 수많은 환경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신앙의 방법을 취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등장하는 인물이 예수님과 베드로, 세베대의 두 아들, 그리고 여덞명의 제자 모두 열두명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통 해 중요한 교훈, 세가지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1. 신자는 많으나 깨어있는 신자는 적다. 본문 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있으라"라 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잠을 잤습니다. 이에 예수님 게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자는 것을 보시고 책망하는 것이 본문에 나타납니다. 이 본문의 내용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자는 오늘날 많으나 깨어있는 신자는 매우 적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복음전파를 위해서 예수께서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많은 말씀을 배웠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저고가 기사와 능력 을 체험했던 자들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이었는데 그들은 깨어 있어야 할 그 기도의 자리에서 깨어 있지를 못하고 잠을 잤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말하는 신자는 많으나 예수님을 따라가는 신자는 적으며,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한 신자는 많으나 깨어 있는 신자는 매우 적습니다. 마태복음 25장5절을 보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처녀가 나옵니다. 여기서 미련한 다섯처녀는 불신자의 모형인 동시에 믿음이 약한 신자의 모형입니다. 반면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아주 믿음이 좋은 신자의 모형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랑이 더디오므로 인해 다 졸며 잤다는 것 이 문제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말세의 현상을 단면적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즉 믿음 이 좋아 보이는 사람이나 믿음이 약해 보이는 사람이나 다 잠자므로 진작 깨어 있는 성도는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제자들이 가진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첫번째, 제자들은 주님을 모신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그들은 자서는 안될 장소에서 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잠자지 말고 깨어서 기도하라고 예수님의 권면 속에서도 잠이 들 었다는 것입니다. 네번째, 계속 잠을 잤다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한두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잤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계속 말씀을 들으면서 잠을 잤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신앙에 잠자는 사람들에게는 불행이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깨어서 잠자지 말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삼손은 잠잘 때에 힘을 잃어버렸고, 요나는 잠잘 때에 풍랑 가운데 있었으며, 유두고는 자다가 떨어져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의 잠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깨어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임무인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깨어서 기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들 은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43절에 보면 예수께서 "다시와서 보신즉 저 희가 자니 이는 저의 눈이 피곤함이러라"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제는 십자가의 고통과 괴로움을 받으시며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므로 슬퍼하다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상태에서 피곤하여 잠이 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도 보면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고, 항상 교회생활과 말씀공부에 열심이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만 피곤하여 자고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신앙이란 깨어있는 신앙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 앞에 경서하므 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신앙적 양심과 믿음으로 하나의 푯대가 되는 삶 을 사는 사람, 즉 깨어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사람이 바로 참신자인 것입니다.
2. 참신자에게도 고난이 있다.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참신자에게도 고민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닙니다. 또한 고민이 있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바로 이 고민으로 인해 참신자라고 할지라도 곤고케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고민의 모습을 봅니다. 본문 37절에 예수께서 "고 민하고 슬퍼하사"라는 말씀합니다. 그런 후 38절에서는 예수께서 "심히 고 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첫번째 고민은 '루페오'라는 단어로써 고민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38절의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는 것은 극도의 고민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37절과 38절을 연결시켜 해석해 보면 예수님의 고민이 점점 많아 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성품을 가지신 예수님으로서는 그 고민을 참고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삼손을 보면 드릴라에게 시달리면서 많은 고민을 했고, 삼손의 마음이 번 뇌하여 죽을 지경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얼마나 다양한 고민을 합니까 이는 꼭 신앙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삶을 살면서 부딪치는 다양한 문제와 사건들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이 고민이란 불신자만이 전유물이 아닌 것입니다. 또 신앙이 없 어서 생기는 고민도 아닙니다. 또 신앙이 없어서 생기는 고민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민은 연약한 인간으로서 예수님으로 주어진 십자가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3. 기도만이 고민의 해결책이다. 그러나 고민이란 해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기도만이 그 해결책임을 말씀하고 있스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잠자는 가운데서도 땀이 땅 에 떨어지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 대로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늘에서 주의 천사가 내려와서 힘을 돕더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즉 응답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겟세마네의 기도를 해야 하는데, 겟세마네 기도의 특징이 란 바로 시기적절한 기도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아주 적시의 기도,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하나님앞에 기도해야 됩니다. 누가복음 22장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습관적으로 기도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마음이 변하고 환경의 변화가 옵니다. 기도에 응답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생활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신 앙을 기도로 승화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6절 말씀을 보면 "이에 예수게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는 곳에 이르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신앙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 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속에 일어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들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엄청난 고통을 앞에 두고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37절 말씀에 "베드로와 세배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 사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희노애락의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인 성을 지니고 계셨지만, 그러한 속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태도는 오늘날 인간 이 처할 수 있는 수많은 환경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신앙의 방법을 취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등장하는 인물이 예수님과 베드로, 세베대의 두 아들, 그리고 여덞명의 제자 모두 열두명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통 해 중요한 교훈, 세가지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1. 신자는 많으나 깨어있는 신자는 적다. 본문 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있으라"라 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잠을 잤습니다. 이에 예수님 게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자는 것을 보시고 책망하는 것이 본문에 나타납니다. 이 본문의 내용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자는 오늘날 많으나 깨어있는 신자는 매우 적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복음전파를 위해서 예수께서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많은 말씀을 배웠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저고가 기사와 능력 을 체험했던 자들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이었는데 그들은 깨어 있어야 할 그 기도의 자리에서 깨어 있지를 못하고 잠을 잤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말하는 신자는 많으나 예수님을 따라가는 신자는 적으며,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한 신자는 많으나 깨어 있는 신자는 매우 적습니다. 마태복음 25장5절을 보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처녀가 나옵니다. 여기서 미련한 다섯처녀는 불신자의 모형인 동시에 믿음이 약한 신자의 모형입니다. 반면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아주 믿음이 좋은 신자의 모형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랑이 더디오므로 인해 다 졸며 잤다는 것 이 문제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말세의 현상을 단면적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즉 믿음 이 좋아 보이는 사람이나 믿음이 약해 보이는 사람이나 다 잠자므로 진작 깨어 있는 성도는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제자들이 가진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첫번째, 제자들은 주님을 모신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그들은 자서는 안될 장소에서 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잠자지 말고 깨어서 기도하라고 예수님의 권면 속에서도 잠이 들 었다는 것입니다. 네번째, 계속 잠을 잤다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한두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잤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계속 말씀을 들으면서 잠을 잤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신앙에 잠자는 사람들에게는 불행이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깨어서 잠자지 말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삼손은 잠잘 때에 힘을 잃어버렸고, 요나는 잠잘 때에 풍랑 가운데 있었으며, 유두고는 자다가 떨어져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의 잠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깨어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임무인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깨어서 기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들 은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43절에 보면 예수께서 "다시와서 보신즉 저 희가 자니 이는 저의 눈이 피곤함이러라"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제는 십자가의 고통과 괴로움을 받으시며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므로 슬퍼하다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상태에서 피곤하여 잠이 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도 보면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고, 항상 교회생활과 말씀공부에 열심이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만 피곤하여 자고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신앙이란 깨어있는 신앙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 앞에 경서하므 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신앙적 양심과 믿음으로 하나의 푯대가 되는 삶 을 사는 사람, 즉 깨어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사람이 바로 참신자인 것입니다.
2. 참신자에게도 고난이 있다.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참신자에게도 고민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닙니다. 또한 고민이 있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바로 이 고민으로 인해 참신자라고 할지라도 곤고케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고민의 모습을 봅니다. 본문 37절에 예수께서 "고 민하고 슬퍼하사"라는 말씀합니다. 그런 후 38절에서는 예수께서 "심히 고 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첫번째 고민은 '루페오'라는 단어로써 고민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38절의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는 것은 극도의 고민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37절과 38절을 연결시켜 해석해 보면 예수님의 고민이 점점 많아 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성품을 가지신 예수님으로서는 그 고민을 참고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삼손을 보면 드릴라에게 시달리면서 많은 고민을 했고, 삼손의 마음이 번 뇌하여 죽을 지경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얼마나 다양한 고민을 합니까 이는 꼭 신앙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삶을 살면서 부딪치는 다양한 문제와 사건들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이 고민이란 불신자만이 전유물이 아닌 것입니다. 또 신앙이 없 어서 생기는 고민도 아닙니다. 또 신앙이 없어서 생기는 고민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민은 연약한 인간으로서 예수님으로 주어진 십자가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3. 기도만이 고민의 해결책이다. 그러나 고민이란 해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기도만이 그 해결책임을 말씀하고 있스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잠자는 가운데서도 땀이 땅 에 떨어지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 대로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늘에서 주의 천사가 내려와서 힘을 돕더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즉 응답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겟세마네의 기도를 해야 하는데, 겟세마네 기도의 특징이 란 바로 시기적절한 기도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아주 적시의 기도,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하나님앞에 기도해야 됩니다. 누가복음 22장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습관적으로 기도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마음이 변하고 환경의 변화가 옵니다. 기도에 응답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생활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신 앙을 기도로 승화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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