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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처녀 비유 (마25:1-13)

본문

우리 신자에게 있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소망은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서, 그 나라에서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누리는데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믿음의 창을 통하여 그 나라를 부분적으로 알고 경험하고 있지만, 그 날에는 우리 눈으로 완전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 신자의 삶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주님이 재림하심으로 들어가게 될 이 영광의 나라를 사모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부분적으로는 영적인 나라이긴 하지만 분명한 역사적인 실재가 될 것입니다.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라는 사람이 쓴 조직신학 (Systematic Theology)이라는 책의 종말론 부분에서 우리가 장래에 들어가게 될 완전한 하나님 나라는 한 장소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구체적인 실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나라에 들어가는 문제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냐의 문제로 결정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 가운데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 지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오늘 우리는 1998년 한 해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우리의 삶이 이 나라에 들어가기에 잘 준비가 되어있는 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하는 지의 문제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특히 이 문제는 예수님께서 열 처녀의 비유와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어떤 성경학자는 이 비유를 비유의 요소를 가지고는 있으나 비유가 아니라고 보기도 함)를 통하여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연구함으로 우리의 삶의 방식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이 세 가지의 비유 가운데 첫 번째인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하여 이 문제를 다시 짚어 보기를 원합니다. 이 비유의 주제는 깨어있는 자가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는 이 비유의 배경, 두 번째로는 비유의 내용과 그 의미, 세 번째로는 비유의 결론인 깨어있으라는 말의 실제적인 의미와 우리 신앙생활의 관련성 문제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비유의 배경 모든 성경의 기록이 다 그러하지만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 역시 조직적으로 사건의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다섯 개의 설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다섯 개의 설교는 첫 번째로는 산상수훈(마5:1-7:27), 두 번째로는 제자 파송에 관한 설교(마10:5-42), 세 번째로는 천국에 관한 비유설교(마13:1-52), 네 번째로는 교회 질서와 권징에 관한 설교(마18:1-35), 다섯 번째로는 종말에 있을 심판에 관한 설교(마23:1-25:46)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설교들 사이에 병을 고치신 사건이나 여러 사건들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설교를 하신 후에 일정한 관용구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설교 후에 "예수께서 …을 마치시매"(헬. Kai egeneto hote etelesen ho Isous …, When Jesus finished …)라는 말씀인데, 마태복음 11:1; 13:53; 19:1; 26:1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우리가 스스로 체크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마태복음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잘 정리가 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열 처녀 비유는 종말장이라고 부르는 마태복음 24-25장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종말에 관한 비유라고 하는 것을 구조적으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은 이 날뿐만 아니라 주님이 임하시는 날과 세상 끝날에 어떤 징조가 일어나게 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마24:3)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종말이 오기까지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적인 말씀으로 마태복음 24:44에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생각지 아니한 때에 임하여 모든 일을 심판하시기 때문에 준비하라는 말씀으로 결론을 맺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점을 염두에 두시고 연이어서 세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비유가 열 처녀 비유이며(마25:1-13), 두 번째 비유가 달란트 비유(마25:14-30)이며, 세 번째 비유가 양과 염소의 비유로 알려진 심판에 관한 비유(마25:31-46)입니다. 이 세 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주님이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오시는데 이 날에 완전한 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어떤 사람이며, 지옥 어두운데서 고통 가운데 있을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열 처녀 비유는 어떤 사람이 주님이 심판주로 재림하시는 날에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비유를 하시게 된 배경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마25:1)라고 하시면서 "그 때에"(헬. tote, at that time NIV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영광 중에 심판주로 재림하실 때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본문에서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라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서 미래시제로 되어 있는데 "…열 처녀와 같게 될 것이다"(will be like ten virgins)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영광 가운데 재림하시는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미리 보여줌으로 세상에서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야 할 것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하여 이 비유의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2. 비유의 내용과 그 의미 열 처녀 비유는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비유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 열 명의 처녀가 있는데 그 중에 다섯 처녀는 지혜롭고 다섯 처녀는 미련합니다. 미련한 처녀는 등을 가지고 있지만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등도 가지고 있고 그 등에 불을 켤 수 있는 기름까지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랑은 너무 늦게 왔습니다. 그러다 어느 한 밤중에 "신랑이 왔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처녀들은 일어나서 등불에 불을 켜려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다섯 처녀는 지혜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지혜로운 처녀들은 준비한 기름을 가지고는 함께 쓰기에 부족할 것같기 때문에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사서 쓰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왔습니다. 이 때 기름을 예비하였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혀 버렸습니다. 이미 문이 닫힌 후에 기름을 구하러 간 처녀들이 돌아와서 문을 열어 달라고 하였는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 비유의 내용이 의미하고 있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이 비유에 나오는 사소한 설명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면 '열 명'이라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처녀'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기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잠을 자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 등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잠시 비유(parable)와 우화(fable)나 풍유(allegory)와의 차이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과 구원이나 신자의 삶에 관한 여러 신학적인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많은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비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화나 풍유와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비유(parabol)라는 말의 헬라어 의미는 문자적으로 "옆에"(para)라는 말과 "놓는다,던진다"(ball)말이 합성된 것입니다. 이 비유는 한 가지 의미 외에 다른 뜻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와 반대로 우화나 풍유는 독자가 보는 관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유는 한 이야기에 나오는 사건들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여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실 때에도 비유에 대하여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거나 문맥에서 알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유를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관점입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열 명의 처녀나, 등이나 기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 비유에서 '기름'에 대하여 '성령님'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성령님으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성령님을 가지고 있다가 성령님이 떨어지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이 성령님이 떨어지면 사야된다는 뜻도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기름이 있다가 없어지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것입니까 삼위 하나님 가운데 한 분이신 성령님은 한 번 우리 안에 오시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분도 아니십니다. 이렇게 볼 때 비유에 나타나는 작은 설명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작은 설명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비유를 우화나 풍유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비유의 작은 설명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는 점에 대하여 칼빈(John Calvin)은 이 본문을 주석하면서 아주 흥미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의도하신 것 외에 자세한 부분을 설명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등이나 그릇이나 기름에 과도하게 독창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평범하고 자연적인 의미는 짧은 기간의 열정으로 충분하지 않고 장기간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비유의 의미는 주님이 영광 중에 재림하시는 날에 완전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준비된 자들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사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달란트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하여 영국의 찰스 스펄전(C. Spurgeon) 목사님의 설교에 부분적이긴 하지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와의 혼인 관계를 맺기에 앞서 여러분 안에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 변화는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성취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무엇보다 본성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준비가 덜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하며 그의 혼인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야 하며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입니다." 주님이 영광 가운데 재림하실 때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누구입니까 그는 준비된 사람입니다. 그 준비는 연이어 나타나는 달란트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타나 있지만 무엇보다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복음의 원리에 따라 끊임없이 인내하면서 삶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비유에서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들을 보면서 어떤 유사점이 있고,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셨습니까 유사점은 이 열 명의 처녀들이 모두 신랑의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 함께 신랑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이 점은 정말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1-14에 어떤 임금의 혼인잔치의 비유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들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해도 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열 처녀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신랑의 혼인잔치에 참여해 달라는 초청을 받고 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처녀나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나 동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점은 신랑이 오는 것과 동시에 끝났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였기 때문에 혼인잔치에 들어갔고, 미련한 처녀 다섯은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였느냐 못하느냐가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차이점입니다. 그러면 기름을 준비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 구체적인 의미는 연이어 나오는 달란트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열 처녀 비유에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형식을 갖춘다고 하여서 준비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신랑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형식적인 면에서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든지,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든지 간에 똑같이 스스로는 주님의 재림으로 인하여 들어가게 될 천국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필요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면에서 같다고 할 수도 있고,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으려고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하등의 차이점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신랑을 기다리는 사람은 성경을 읽고 교회에 출석하며, 심지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비유는 형식적으로 신랑되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을 기다리며 성경을 읽고, 교회에 속해 있으며, 찬송을 부르고,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심지어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르친다고 하여도 모두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형식이 있다고 하여서 준비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참으로 준비된 자만이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비유의
결론:깨어 있어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신랑되신 주님과 교제하는 복을 누릴 수가 있을까요 주님은 이 비유의 결론으로 마태복음 25:13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주님이 이 비유의 결론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셨을 때 이 말은 열 처녀가 신랑이 더디 오는 것을 보고 잠든 것과 대비하여 하는 말이 아닙니다(마25:5). 여기에 졸며 자는 것은 미련한 다섯 처녀만이 아니라 슬기로운 다섯 처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다리다가 피곤하면 졸리기도 하고 자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에서 주님께서 "깨어 있으라"고 하시는 말씀은 신랑이 왔을 때 미련한 다섯 처녀가 준비하지 못한 행동과 반대로 사용하는 의미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까 주님은 그 이유를 말씀하시기를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언제 오실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언제 오실거라고 생각하고 산술적으로 날짜를 계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에 우리 나라에 있었던 다미 선교회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도적같이 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24:43). 도적은 예고하고 찾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갑자기 닥친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재림하셔서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날은 아무도 예기치 못하는 날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서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특히 여기서 "깨어 있으라"(헬. grgoreite)는 말씀은 헬라어 성경에 현재 시제 명령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헬라어 문법 규칙에 계속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의미는 한 순간 믿는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믿음의 내용들이 꾸준히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언제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서 믿음의 본분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완전한 나라에 신랑되신 주님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방법입니다. 오늘 우리는 열 처녀의 비유를 연구하면서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신랑되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날은 예고없이 도적같이 임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날에 신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 사람은 기름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형식적으로 교회에 출석하거나,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거나, 교회의 직분을 받았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비유에서처럼 신랑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고 기다린다고 해서 잔치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주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며 신자의 형식을 취한다고 하여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은 준비된 사람입니다. 항상 깨어서 끊임없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며 살아가는 사람, 이 사람이 신랑을 맞을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 전부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를 준비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주님이 오시는 날에 신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결정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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