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다섯 처녀 (마25:1-13)
본문
유대인의 결혼은 삼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정혼단계로 신랑, 신부의 아버지가 서로 결혼을 합의하는 것입니다.
둘째, 약혼단계로 약혼 당사자들이 신부 측 집에 모여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서로 서약을 하고 신 랑이 신부에게 약혼 예물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약혼 1년 후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단계인 결혼식 하루 전날 신랑이 잔치를 베풀고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결혼식 날이 되면 신랑은 자기 친구들과 함께 열을 지어 신부집으로 행진해 갑니다. 그러면 신부집에서는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의 각별한 친구 10명을 들러리로 초청해줍니다. 이들 초청받은 10명의 처녀들이 잔치를 준비하고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이 결혼식은 밤중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기다릴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등잔과 충분한 기름(감람유)이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바로 이와같은 유대인 의 결혼 풍습을 배경으로 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10처녀가 기다리는 '신랑'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10처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 성도들'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10처녀가 준비해야 했던 '기름'은 슬기로운 5처녀와 미련한 5처녀를 분별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성령님(불)'을 의미합니다. 첫 번 크리스마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처음으로 세상에 오셨을 때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가 아니라 죄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실 것입니다. 여기 등잔과 '충분 한 기름'을 준비하여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게 된 슬 기로운 다섯 처녀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준비가 되어있 지 않은 미련한 다섯 처녀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누가복음 12장 35절에,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 "켜진 등불"은 준비의 상징입니다. 계속해서 꺼지지 않고 불을 밝힐 수 있는 충분한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를 두고 슬기롭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랑되시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는 슬 기로운 처녀는 성령님충만한 성도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고 부어 주시는 성령님이 충만하시어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는 슬기로운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의 지혜, 슬기는 두뇌의 명석함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믿고 성령님이 충만한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제아무리 지능과 재능이 뛰어나고 학식이 높으며, 부귀영화를 누려본들 결국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지 못하고 예수께서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하신다면 그 인생은 미 련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며, 가진 것 없고 누리는 것 하나 변변치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 믿고 성령님충만하 여 신앙생활하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여 천국 백성이 된다 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 영원히 슬기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은 모든 것을 통달하시기 때문에, 성령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충만이야말로 사람을 가장 슬기롭게 하는 것입니다. 불의 사용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확연히 구분지은 획기적 사건입니다. 처음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불을 몹시 무서워했습니다. 화산 이 폭발하거나 번개로 인해 삼림에 불이 붙는 자연현상을 보고 인간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렇지만 타죽은 짐승 고기가 훌륭한 식량이 된다는 것을 깨닫자, 불붙은 나뭇가지를 동굴로 가져와 불씨로 사용하는 지혜 를 보였던 것입니다. 불은 음식을 익혀먹는 데 유용할 뿐 아니라 추위로 부터 몸을 지켜주어서 좋았습니다. 사나운 맹수들이 근접하지 못하게 막 아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인간은 천연의 불을 이용하는 데서 한발 나아가 인공적으로 불을 피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석기가 마주 칠 때 불꽃이 이는 것을 보고, 마찰에 의해 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불을 마음대로 사용하기 시작한 인간은 휠씬 나은 생활을 하게끔 되었습니다. 익힌 음식은 소화가 잘 되었으므로 전보다 풍 부한 영양섭취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때문에 근력뿐 아니라 두뇌발달이 촉진되어 두뇌용적이 비약적으로 커졌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6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월등히 진화된 인간이 나타났습니다. 인도 네시아의 자바 섬과 중국 북경 부근에서 발견된 화석에 의하면, 이들의 두뇌용적은 약 1천cc 정도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2배입니다. 자바에서 발견된 것은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 북경에서 발견된 것은 시난트로푸 스 페키넨시스라고 불리며, 직립해서 살았다 하여 호모 에렉투스라고 통 칭합니다. 그후, 자바 인이나 북경인보다 더 진화된 인간이 유럽 일대에 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독일의 네안데르탈 지방에서 화석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네안데르탈인이라고 통칭되는 이 인간은 약 20만 년 전 유럽 일대에 널리 퍼져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두뇌용적 은 약
1,200cc 정도입니다. 이들은 불을 쓸 줄 알았던 인간들이었습니다. 불의 사용, 그것은 산업혁명을 일으킨 증기기관처럼 인류사를 한 걸음 앞 으로 성큼 내딛게 한 중대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은 불과 같이 인간의 영적 두뇌발달을 촉진시켜 슬기 로운 삶으로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신령한 문화와 문명을 이루게 합니다. 성령님은 불과 같아서 성령님충만한 사람은 밤중 같은 이 세상에서 빛으로 살게 합니다. 전능의 영으로써 성령님은 불과 같아서 삶에 강력한 힘(에너 지)을 불어넣게 됩니다. 성령님은 인간의 죄를 태워 소멸시키는 거룩한 불 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죄를 불에 태워 의인이 되게 합니다. 때문에 죄인 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시고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 기 위해서는 예수 믿고 성령님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인생을 궁극적으로 슬기롭게 하는 성령님은 사람의 노력이나,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은 예수믿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님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죄사함을 받기 위해 번제단 위에 제물을 불 태워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때 제물을 불태우는 불은 사람의 힘으로 만든 불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께서 붙이신 불이었습니다. "(레9:23)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레9: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 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불을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하라고 제사장에게 명령 했습니다.(레위기 6장 8-13절) 이 불씨를 잘 담아 보관해 두었다가 하나님 께 드리는 각종 제사(예배)때마다 반드시 이 불,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진 불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다른 불을 사용하게 되면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은 다른 불을 가져다 가 하나님께 제사드리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로 인해 그 자리에서 즉 사하기도 했습니다(레10:1-2). "(레10: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레10:2) 불 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여기 "다른 불"은 인위적(人爲的)인 불, 마귀적인 불을 의미합니다. 인 위적인 불은 인간의 죄를 태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죄를 더할 뿐 입니다.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불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님없이 인간적인 힘이나 노력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없는 생활, 성령님이 없는 교회 봉사는 열매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시끄러운 인간의 소 리만 들릴 뿐 거룩한 봉사, 지혜롭고 슬기로운 봉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성령님, 에너지, 불)을 가지고 각자에게 주어 진 직분과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분에게 이렇 게 말씀하십니다. "(벧전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 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 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 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여러분의 신앙생활, 봉사생활이 슬기롭고 영광 스럽게 되기 원한다면 성령님의 불을 받아 행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불 (힘)을 받아야 주어진 사명을 바르게 감당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한 번 하나님께서 붙이신 불은 절대로 꺼쳐서는 않되며 두 번 다시 붙이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레6:12)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 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놓고 화목제의 기름 을 그 위에 사를지며 (레6:13)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 게 할지니라." 그러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그 불을 어떻게 이 시대에 받 아서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순절 성령님강림을 통해 이 시대 예수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령님의 불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령님을 통해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행2: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 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2: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행2:4) 저희가 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제 교회야말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불(성령님)을 끄지않고 불씨를 보존하며 그 불을 지펴 인류의 죄를 태우는 성령님의 불을 던지는 사명을 지닌 거룩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충만함이야말로 참된 교회의 시금석이며, 슬기로운 성도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불이 꺼진 교회는 미련한 다섯 처녀요, 성령님이 충만하여 항상 불을 피워 불을 밝히는 교회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인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교회는 이 시대 여러 교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계 2:1-3:22). 에 베소 교회는 처음에는 성령님의 불로 뜨거운 교회였으나 "처음 사랑"을 버 리므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는 성령님의 불, 곧 사랑의 불이 꺼졌다는 증 거입니다. 불이 꺼진 교회는 불을 붙이는 그 촛대마저 옮겨버리시겠다는 엄중한 경고의 말씀이십니다. "(계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 라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성령님은 사랑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습니까 이웃 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습니까 성령님의 불이 소멸된 것입니다. 성도와 교회가 미련하게 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회개하시고 하나님께 대한 첫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두철미하게 지키지 못하여,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만을 사랑 으로 섬기지 못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이단을 용납하므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사수의 불꽃이 꺼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권위를 상실하고 지켜지지 아니하는 교회는 성령님의 불이 소 멸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섬기지 않는 교회는 미련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도 불이 다 꺼져가는 미적 지근한 교회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계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3:16) 네가 이같이 미 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 치리라." 혹시 우리 교회에 불이 꺼져가고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지금은 불이 켜져 있다해도 계속해서 불이 꺼지지 않을 만큼 충분한 기름, 성령님충만함 을 받았습니까 성령님의 불을 받아 뜨거워지는 교회,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불을 받고자하면 먼저 성령님을 부어주시는 예수를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 7:3739)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렘 23: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눅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예수 그리스도 믿으시고 불같이 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 심으로 성령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는 성령님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얼어붙은 세상을 녹이는 사랑의 불을 지속 적으로 피울 수 있도록 성령님의 기름을 충만히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죄를 태우는 성령님의 뜨거운 회개의 불이 충만하여 거룩한 교회, 거룩한 성도, 순결한 신부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의 불을 꺼지지 않도록 성령님충만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전도 의 불을 계속적으로 지펴나갈 수 있도록 성령님충만한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안에 삶의 힘과 기쁨을 주는 찬송의 불을 항상 피울 수 있는 찬양대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안에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감사의 불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불은 에너지(힘)입니다. 에너지 (자연의 불)를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는 나라가 강하고 문화, 문명이 발전 하는 나라입니다. 삶의 진정한 수준높은 문화와 문명은 성령님의 불을 통해 서 이루어집니다. 참된 기독교의 문화 문명은 성령님의 불로써 이루어집니다. 성령님의 불이 바르게 역사(役事)하는 교회가 능력있는 교회입니다. 성령의 불이 바르게 역사하는 교회가 슬기로운 교회요, 슬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 할 준비는 오직 성령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라도 맞이할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있는 슬기로운 처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실 수 있도록 성령님충만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충만한 준비된 사람의 삶의 모습은 먼저,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에, "너희 가운데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교회 봉사를 위해 택함받은 집사는 성령님이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성령님받았으나 칭찬받지 못하는 사람은 준비된 슬기로운 성도라 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 안팎에서, 이웃들에게 칭찬받는 성도들은 성령님 충만한 슬기로운 처녀들과 같이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라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도행전 16장 19-34절에 보면 사도 바울 과 실라는 감옥에 갇혀서도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했습니다. 다 시 말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당해도, 환난과 핍박을 당해도 좌 절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원망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며 찬송하며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성령님충만한 성도입니다. 사도행 전 13장 50-52절에서도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전하다 핍박을 받 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성령님이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 도, 환난을 당해도 믿음이 후퇴하여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며 찬송하며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성령님충만한 사람입니다. 이러 한 사람을 두고 슬기로운 사람, 영적으로 깨어있어 언제라도 주님을 맞이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슬기로운 처녀라고 합니다. 세 번째로, 스데반 처럼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증거할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처럼 축복의 기도하는 사람이 성령님충만한 성도입니다. 성령님충만한 성도는 자기를 해롭게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축복하고 그가 잘 되기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 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남의 유익을 구 하며 그 이웃이 비록 원수일지라도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성령님충만한 사람입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성령충만 그 자체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충만한 성도는 오직 예수를 위해 사는 사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 오직 예수 중심으로 사는 사람, 오직 십자가 중심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자기 중심 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중심으로 살도록 역사합니다. 마지막으 로, 성령님충만한 사람은 남을 섬기며 사는 성도입니다. 남을 섬기기 위해 서는 자기 자신을 몽땅 비우고 그 자리에 성령님이 채워지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죽이고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결코 남 을 섬길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교만한 사람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성령님 은 충만할수록 사람을 더욱 더 온유 겸손하게 만들어 다른 사람을 섬기 게 합니다. 성령님은 권세나 부리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들을 섬기도록 주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슬기로운 처녀는 성령충만하여 남을 섬기며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는 슬기로운 처녀와 같은 교회입니다. 사랑으 로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며,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며, 사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생활이야말로 성령님충만 생활이며, 이 시대에 깨어있는 슬기로운 처녀같은 성도요 언제라도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교회입니다. 성령님의 기름을 충만하게 준비한 깨어있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므로 언제라도 다시 오실 주님을 신 랑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정혼단계로 신랑, 신부의 아버지가 서로 결혼을 합의하는 것입니다.
둘째, 약혼단계로 약혼 당사자들이 신부 측 집에 모여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서로 서약을 하고 신 랑이 신부에게 약혼 예물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약혼 1년 후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단계인 결혼식 하루 전날 신랑이 잔치를 베풀고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결혼식 날이 되면 신랑은 자기 친구들과 함께 열을 지어 신부집으로 행진해 갑니다. 그러면 신부집에서는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의 각별한 친구 10명을 들러리로 초청해줍니다. 이들 초청받은 10명의 처녀들이 잔치를 준비하고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이 결혼식은 밤중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기다릴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등잔과 충분한 기름(감람유)이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바로 이와같은 유대인 의 결혼 풍습을 배경으로 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10처녀가 기다리는 '신랑'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10처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 성도들'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10처녀가 준비해야 했던 '기름'은 슬기로운 5처녀와 미련한 5처녀를 분별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성령님(불)'을 의미합니다. 첫 번 크리스마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처음으로 세상에 오셨을 때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가 아니라 죄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실 것입니다. 여기 등잔과 '충분 한 기름'을 준비하여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게 된 슬 기로운 다섯 처녀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준비가 되어있 지 않은 미련한 다섯 처녀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누가복음 12장 35절에,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 "켜진 등불"은 준비의 상징입니다. 계속해서 꺼지지 않고 불을 밝힐 수 있는 충분한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를 두고 슬기롭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랑되시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는 슬 기로운 처녀는 성령님충만한 성도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고 부어 주시는 성령님이 충만하시어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는 슬기로운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의 지혜, 슬기는 두뇌의 명석함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믿고 성령님이 충만한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제아무리 지능과 재능이 뛰어나고 학식이 높으며, 부귀영화를 누려본들 결국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지 못하고 예수께서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하신다면 그 인생은 미 련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며, 가진 것 없고 누리는 것 하나 변변치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 믿고 성령님충만하 여 신앙생활하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여 천국 백성이 된다 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 영원히 슬기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은 모든 것을 통달하시기 때문에, 성령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충만이야말로 사람을 가장 슬기롭게 하는 것입니다. 불의 사용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확연히 구분지은 획기적 사건입니다. 처음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불을 몹시 무서워했습니다. 화산 이 폭발하거나 번개로 인해 삼림에 불이 붙는 자연현상을 보고 인간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렇지만 타죽은 짐승 고기가 훌륭한 식량이 된다는 것을 깨닫자, 불붙은 나뭇가지를 동굴로 가져와 불씨로 사용하는 지혜 를 보였던 것입니다. 불은 음식을 익혀먹는 데 유용할 뿐 아니라 추위로 부터 몸을 지켜주어서 좋았습니다. 사나운 맹수들이 근접하지 못하게 막 아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인간은 천연의 불을 이용하는 데서 한발 나아가 인공적으로 불을 피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석기가 마주 칠 때 불꽃이 이는 것을 보고, 마찰에 의해 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불을 마음대로 사용하기 시작한 인간은 휠씬 나은 생활을 하게끔 되었습니다. 익힌 음식은 소화가 잘 되었으므로 전보다 풍 부한 영양섭취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때문에 근력뿐 아니라 두뇌발달이 촉진되어 두뇌용적이 비약적으로 커졌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6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월등히 진화된 인간이 나타났습니다. 인도 네시아의 자바 섬과 중국 북경 부근에서 발견된 화석에 의하면, 이들의 두뇌용적은 약 1천cc 정도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2배입니다. 자바에서 발견된 것은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 북경에서 발견된 것은 시난트로푸 스 페키넨시스라고 불리며, 직립해서 살았다 하여 호모 에렉투스라고 통 칭합니다. 그후, 자바 인이나 북경인보다 더 진화된 인간이 유럽 일대에 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독일의 네안데르탈 지방에서 화석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네안데르탈인이라고 통칭되는 이 인간은 약 20만 년 전 유럽 일대에 널리 퍼져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두뇌용적 은 약
1,200cc 정도입니다. 이들은 불을 쓸 줄 알았던 인간들이었습니다. 불의 사용, 그것은 산업혁명을 일으킨 증기기관처럼 인류사를 한 걸음 앞 으로 성큼 내딛게 한 중대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은 불과 같이 인간의 영적 두뇌발달을 촉진시켜 슬기 로운 삶으로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신령한 문화와 문명을 이루게 합니다. 성령님은 불과 같아서 성령님충만한 사람은 밤중 같은 이 세상에서 빛으로 살게 합니다. 전능의 영으로써 성령님은 불과 같아서 삶에 강력한 힘(에너 지)을 불어넣게 됩니다. 성령님은 인간의 죄를 태워 소멸시키는 거룩한 불 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죄를 불에 태워 의인이 되게 합니다. 때문에 죄인 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시고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 기 위해서는 예수 믿고 성령님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인생을 궁극적으로 슬기롭게 하는 성령님은 사람의 노력이나,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은 예수믿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님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죄사함을 받기 위해 번제단 위에 제물을 불 태워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때 제물을 불태우는 불은 사람의 힘으로 만든 불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께서 붙이신 불이었습니다. "(레9:23)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레9: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 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불을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하라고 제사장에게 명령 했습니다.(레위기 6장 8-13절) 이 불씨를 잘 담아 보관해 두었다가 하나님 께 드리는 각종 제사(예배)때마다 반드시 이 불,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진 불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다른 불을 사용하게 되면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은 다른 불을 가져다 가 하나님께 제사드리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로 인해 그 자리에서 즉 사하기도 했습니다(레10:1-2). "(레10: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레10:2) 불 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여기 "다른 불"은 인위적(人爲的)인 불, 마귀적인 불을 의미합니다. 인 위적인 불은 인간의 죄를 태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죄를 더할 뿐 입니다.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불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님없이 인간적인 힘이나 노력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없는 생활, 성령님이 없는 교회 봉사는 열매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시끄러운 인간의 소 리만 들릴 뿐 거룩한 봉사, 지혜롭고 슬기로운 봉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성령님, 에너지, 불)을 가지고 각자에게 주어 진 직분과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분에게 이렇 게 말씀하십니다. "(벧전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 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 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 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여러분의 신앙생활, 봉사생활이 슬기롭고 영광 스럽게 되기 원한다면 성령님의 불을 받아 행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불 (힘)을 받아야 주어진 사명을 바르게 감당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한 번 하나님께서 붙이신 불은 절대로 꺼쳐서는 않되며 두 번 다시 붙이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레6:12)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 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놓고 화목제의 기름 을 그 위에 사를지며 (레6:13)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 게 할지니라." 그러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그 불을 어떻게 이 시대에 받 아서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순절 성령님강림을 통해 이 시대 예수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령님의 불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령님을 통해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행2: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 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2: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행2:4) 저희가 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제 교회야말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불(성령님)을 끄지않고 불씨를 보존하며 그 불을 지펴 인류의 죄를 태우는 성령님의 불을 던지는 사명을 지닌 거룩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충만함이야말로 참된 교회의 시금석이며, 슬기로운 성도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불이 꺼진 교회는 미련한 다섯 처녀요, 성령님이 충만하여 항상 불을 피워 불을 밝히는 교회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인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교회는 이 시대 여러 교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계 2:1-3:22). 에 베소 교회는 처음에는 성령님의 불로 뜨거운 교회였으나 "처음 사랑"을 버 리므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는 성령님의 불, 곧 사랑의 불이 꺼졌다는 증 거입니다. 불이 꺼진 교회는 불을 붙이는 그 촛대마저 옮겨버리시겠다는 엄중한 경고의 말씀이십니다. "(계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 라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성령님은 사랑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습니까 이웃 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습니까 성령님의 불이 소멸된 것입니다. 성도와 교회가 미련하게 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회개하시고 하나님께 대한 첫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두철미하게 지키지 못하여,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만을 사랑 으로 섬기지 못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이단을 용납하므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사수의 불꽃이 꺼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권위를 상실하고 지켜지지 아니하는 교회는 성령님의 불이 소 멸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섬기지 않는 교회는 미련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도 불이 다 꺼져가는 미적 지근한 교회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계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3:16) 네가 이같이 미 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 치리라." 혹시 우리 교회에 불이 꺼져가고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지금은 불이 켜져 있다해도 계속해서 불이 꺼지지 않을 만큼 충분한 기름, 성령님충만함 을 받았습니까 성령님의 불을 받아 뜨거워지는 교회,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불을 받고자하면 먼저 성령님을 부어주시는 예수를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 7:3739)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렘 23: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눅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예수 그리스도 믿으시고 불같이 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 심으로 성령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는 성령님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얼어붙은 세상을 녹이는 사랑의 불을 지속 적으로 피울 수 있도록 성령님의 기름을 충만히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죄를 태우는 성령님의 뜨거운 회개의 불이 충만하여 거룩한 교회, 거룩한 성도, 순결한 신부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의 불을 꺼지지 않도록 성령님충만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전도 의 불을 계속적으로 지펴나갈 수 있도록 성령님충만한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안에 삶의 힘과 기쁨을 주는 찬송의 불을 항상 피울 수 있는 찬양대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안에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감사의 불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불은 에너지(힘)입니다. 에너지 (자연의 불)를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는 나라가 강하고 문화, 문명이 발전 하는 나라입니다. 삶의 진정한 수준높은 문화와 문명은 성령님의 불을 통해 서 이루어집니다. 참된 기독교의 문화 문명은 성령님의 불로써 이루어집니다. 성령님의 불이 바르게 역사(役事)하는 교회가 능력있는 교회입니다. 성령의 불이 바르게 역사하는 교회가 슬기로운 교회요, 슬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 할 준비는 오직 성령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라도 맞이할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있는 슬기로운 처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실 수 있도록 성령님충만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충만한 준비된 사람의 삶의 모습은 먼저,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에, "너희 가운데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교회 봉사를 위해 택함받은 집사는 성령님이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성령님받았으나 칭찬받지 못하는 사람은 준비된 슬기로운 성도라 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 안팎에서, 이웃들에게 칭찬받는 성도들은 성령님 충만한 슬기로운 처녀들과 같이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라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도행전 16장 19-34절에 보면 사도 바울 과 실라는 감옥에 갇혀서도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했습니다. 다 시 말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당해도, 환난과 핍박을 당해도 좌 절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원망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며 찬송하며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성령님충만한 성도입니다. 사도행 전 13장 50-52절에서도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전하다 핍박을 받 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성령님이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 도, 환난을 당해도 믿음이 후퇴하여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며 찬송하며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성령님충만한 사람입니다. 이러 한 사람을 두고 슬기로운 사람, 영적으로 깨어있어 언제라도 주님을 맞이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슬기로운 처녀라고 합니다. 세 번째로, 스데반 처럼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증거할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처럼 축복의 기도하는 사람이 성령님충만한 성도입니다. 성령님충만한 성도는 자기를 해롭게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축복하고 그가 잘 되기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 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남의 유익을 구 하며 그 이웃이 비록 원수일지라도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성령님충만한 사람입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성령충만 그 자체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충만한 성도는 오직 예수를 위해 사는 사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 오직 예수 중심으로 사는 사람, 오직 십자가 중심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자기 중심 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중심으로 살도록 역사합니다. 마지막으 로, 성령님충만한 사람은 남을 섬기며 사는 성도입니다. 남을 섬기기 위해 서는 자기 자신을 몽땅 비우고 그 자리에 성령님이 채워지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죽이고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결코 남 을 섬길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교만한 사람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성령님 은 충만할수록 사람을 더욱 더 온유 겸손하게 만들어 다른 사람을 섬기 게 합니다. 성령님은 권세나 부리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들을 섬기도록 주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슬기로운 처녀는 성령충만하여 남을 섬기며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는 슬기로운 처녀와 같은 교회입니다. 사랑으 로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며,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며, 사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생활이야말로 성령님충만 생활이며, 이 시대에 깨어있는 슬기로운 처녀같은 성도요 언제라도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교회입니다. 성령님의 기름을 충만하게 준비한 깨어있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므로 언제라도 다시 오실 주님을 신 랑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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