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염소의 비유 (마25:31-46)
본문
우리는 1998년 한 해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우리의 삶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왔으며, 완전한 나라에 들어가기에 준비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해당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25장에서 천국에 관한 설교를 하시면서 24장에서 마지막 날에 인자가 구름타고 오셔서 모든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자가 임하는 날에 대하여서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날이 역사 가운데 분명히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세 가지의 비유, 열 처녀의 비유와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어떻게 그 나라를 준비할 수 있는지를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설명해 주셨습니다. 열 처녀 비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준비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는 신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초청을 받고 기다린다고 해서 잔치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신자의 형식을 취한다고 하여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은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준비된 사람인지에 대하여서는 달란트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달란트 비유를 연구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주신 달란트, 그것이 시간이든지, 물질, 재능, 때로는 학문적인 은사, 봉사의 은사, 건강 등을 주인의 의도에 따라 잘 사용하는 자가 이 세상에서도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되고, 또한 완전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달란트 비유에서 우리는 참된 믿음은 결국 행함으로 증명된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할 비유는 종말을 대비하는 마지막 비유인데, 양과 염소의 비유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 비유의 주제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작은 자를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중심으로 첫 번째로는 재림 때의 상황, 두 번째로는 재림을 준비하는 방법, 세 번째로는 진정한 봉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재림 때의 상황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시작하지 않으시고, 먼저 인자가 모든 천군 천사들과 함께 영광 중에 재림하시는 상황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마25:31) 이 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여기에 "보좌"(헬. thronos)라는 말은 왕이 앉는 자리를 말하는 것인데, 인자가 보좌에 앉는다는 의미는 왕이신 주님이 왕권을 행사하시기 위하여 왕의 자리에 앉으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실 때에 그 대상에 있어서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날에 그 행한 일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본문은 심판의 대상에 대하여서 "모든 민족"(마25:32)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을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기록을 정직하게 읽을 때 예수님께서 만유의 왕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하시며 그 행한 일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장면은 세계 역사의 종말에 있을 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은 우리 인생이나 역사의 마지막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영광 중에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날에 완전한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런데 이 날에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영광 중에 재림하신 주님은 모든 민족들을 모으고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비유가 아니고 심판에 관한 말씀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요소가 이 말씀이 비유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유라고 할 때 어떤 신학적인 진리를 전달하기 위하여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거나 알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전하는 방법입니다. 인자되신 예수님이 마지막 심판 날에 영광 중에 재림하셔서 보좌에 앉아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당시 농경과 목축을 주업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목자가 그의 가축 때를 우리에 넣을 때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과 같이 심판날에도 천국에 들어갈 자와 지옥에 들어갈 자를 구분하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당시의 농경과 목축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였지만 구약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역시 쉽게 이 의미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에스겔 34:17-19의 말씀을 보면 동일한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의 사이와 수양과 수염소 사이에 심판하노라. 너희가 좋은 꼴 먹은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 마신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양떼 가운데 주님의 양떼와 다른 양떼를 구분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양과 염소의 비유도 스스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섬기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를 구분하여 심판하신다는 점에서 내용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를 볼 때 주님은 역사의 어느 한 날에 재림하셔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우리에 넣듯이 천국에 들어갈 자와 지옥에 들어갈 자를 구분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재림하실 때 있게 될 상황입니다.
2. 재림을 준비하는 방법 그러면 재림 때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천국에 들어갈 자와 지옥에 들어갈 자를 구분하시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안다면 이 날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이 점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어떤 기준에 따라 세상을 심판하시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날에 심판하시는 기준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존 칼빈(John Calvin)이 그의 책 기독교강요 에서 성경적인 결론을 내린 것이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위에 따라 갚으신다.
왜냐하면 각 사람은 그의 행위에 의하여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증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심판 주로 오실 때에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재림 때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는 기준, 또는 잣대는 무엇일까요 재림하신 주님께서 보좌에 앉아서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셨는지 마태복음 25:35-36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 말씀에 대하여 오늘 편에 앉은 양들은 "우리가 언제 그러한 일을 하였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25:40)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 자신에게 행한 일과 동일시하면서 연관시키는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여기에서 문맥적으로 볼 때 그들은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된 자, 벗은 자, 병든 자 그리고 옥에 갇힌 자들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초대교회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터툴리안(Tertullian)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er)는 "너희가 도움이 필요한 형제들을 볼 때 그것은 주님을 보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본문에서 예수님과 동일시되고 있는 "지극히 작은 자"는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모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두고 말한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른 편에 서 있던 사람들은 바로 이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마지막 날 심판 때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왼편에 있는 염소들에게는 주님께서 심판을 선고하시면서 "마귀들과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그 곳에 들어가야 할 합당한 이유를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 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입히지 아니 하였고 병들었을 때에 지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마25:42-43)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지옥에 들어가기로 판정을 받았던 자들이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25:44)라고 항변하였습니다. 여기서 "공양하다"는 말의 헬라어는 디아코네오(헬. diakone)라는 말인데 "봉사한다,섬긴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지옥에 들어간 이유는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 시에 주님이 각 사람을 심판하시는 잣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가,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한 벌을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문제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심판 주로 오시는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심판하시는 판단 기준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행위로 결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행위의 내용에 관하여서는 이미 앞에서 생각한 바가 있습니다만 지극히 작은 자에게 봉사하는 행위, 즉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는 행위입니다.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소외된 자들을 위해 봉사해야 할 중요성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봉사생활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느냐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한 벌을 받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주님께서 세상에서의 봉사생활로 심판의 기준을 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의롭게 사는 봉사행위가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봉사생활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제시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선행자체가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만 에베소서 2:8-9을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 자체가 천국에 들어가는 방편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제시된 봉사생활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라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의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은 그 행함으로 그 존재특성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그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속에 관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이식되어 있는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이 기록된 마태복음 7:15-21에서도 이 점을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참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열매로 그 존재특성을 나타내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야고보서에서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14-17)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고려할 때 여기에서 천국에서 영생하는 축복을 누리는 조건으로 제시된 세상에서의 봉사생활은 신자로서 당연히 나타나야 할 삶의 열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되는 문제는 믿음뿐만 아니라, 그 믿음에 합당한 행실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심판 주로 강림하셔서 보좌에 앉으시는 날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자들, 즉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능력에 따라 맡겨주신 달란트를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입니다.
3. 진정한 봉사의 의미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라면 모든 종류의 봉사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해서 다 같은 봉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본문에서 진정한 봉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왼편에 있는 염소들에 하신 말씀과 이들의 변명을 들을 때 알 수가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주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마25:41-43) 이 주님의 판결에 대하여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마25:44) 이 말씀을 볼 때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이들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봉사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25:4
5).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의 봉사생활은 주님이 원하시는 봉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소외된 자들을 위한 봉사행위 자체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보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다른 것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봉사태도입니다. 결국 마지막 날에 주님이 판단하시는 것은 봉사행위 자체가 아니라 봉사의 태도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봉사생활은 자신의 이익과 보상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듯이 행하는 사랑의 봉사여야 합니다. 진정한 봉사는 주님을 섬기듯이 하는 봉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적용하시는 것을 볼 때 염소도 분명 신자의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 연구한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하여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똑같이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고, 신랑을 기다리는 형식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모든 잔치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시 이 마지막 비유에서도 형식적으로 주의 이름으로 봉사하며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할지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7:23에 보면 외형적으로 그리스도인들처럼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을 내어쫓고, 능력을 행하기도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들을 향하여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외형적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능력을 행하는 자들을 향하여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한 이 비유의 결론은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곧 작은 자에게 봉사하는 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섬기듯이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언제 재림하실는지 알지 못합니다. 또한 알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는데 주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는 날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상에서 작은 자 하나에게 주님을 섬기듯이 봉사하며 살아간다면 천국에서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것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세상에 대한 자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심판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심판 주로 오시는 날에 신자와 불신자 모두가 부활하여 그리스도 앞에 서서 이 세상에서 행한 일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과 성령님을 통하여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사이에는 분명한 어떤 간격이 있습니다. 지금은 믿음의 창으로 통하여 부분적으로 이 나라를 경험합니다. 하지만 주님이 재림하시면 우리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처음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는 겸손함으로 낮고 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지만, 재림 시에는 위엄과 영광 중에 심판 주로 오실 것입니다. 이 심판 주 앞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설 수 있겠습니까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봉사하는 생활을 산다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 생각대로 산다면 영원한 지옥 형벌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마25:46).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 날이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이 날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처럼 이 날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는 상황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날에 양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25:34)고 하셨습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것인데 구약에서부터 계속 약속해 온 그 나라를 상속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 본문에서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되었다"고 하시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가운데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하게 실현되는 것은 주님이 심판 주로 재림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역사 이후에 갑자기 나타난 어떤 개념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한 것이기에 이 역사세계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종말에 대한 주제는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 사람들의 성향이 종말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항상 현 세상일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고 미래에 있게될 심판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흥미를 끄는 관심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세상의 종말은 있고 그때에 우리의 행한 일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과 역사의 종말과 심판을 부인해도 그것은 분명히 역사적인 현실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 예를 들면 그것이 재능, 돈, 학문, 사회적인 위치, 시간 등이 될 수도 있는데, 이것을 주님의 뜻대로 주님을 섬기듯이 소외된 자들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천국을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주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로 심판하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그런데 주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세 가지의 비유, 열 처녀의 비유와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어떻게 그 나라를 준비할 수 있는지를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설명해 주셨습니다. 열 처녀 비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준비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는 신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초청을 받고 기다린다고 해서 잔치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신자의 형식을 취한다고 하여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은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준비된 사람인지에 대하여서는 달란트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달란트 비유를 연구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주신 달란트, 그것이 시간이든지, 물질, 재능, 때로는 학문적인 은사, 봉사의 은사, 건강 등을 주인의 의도에 따라 잘 사용하는 자가 이 세상에서도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되고, 또한 완전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달란트 비유에서 우리는 참된 믿음은 결국 행함으로 증명된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할 비유는 종말을 대비하는 마지막 비유인데, 양과 염소의 비유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 비유의 주제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작은 자를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중심으로 첫 번째로는 재림 때의 상황, 두 번째로는 재림을 준비하는 방법, 세 번째로는 진정한 봉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재림 때의 상황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시작하지 않으시고, 먼저 인자가 모든 천군 천사들과 함께 영광 중에 재림하시는 상황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마25:31) 이 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여기에 "보좌"(헬. thronos)라는 말은 왕이 앉는 자리를 말하는 것인데, 인자가 보좌에 앉는다는 의미는 왕이신 주님이 왕권을 행사하시기 위하여 왕의 자리에 앉으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실 때에 그 대상에 있어서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날에 그 행한 일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본문은 심판의 대상에 대하여서 "모든 민족"(마25:32)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을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기록을 정직하게 읽을 때 예수님께서 만유의 왕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하시며 그 행한 일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장면은 세계 역사의 종말에 있을 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은 우리 인생이나 역사의 마지막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영광 중에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날에 완전한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런데 이 날에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영광 중에 재림하신 주님은 모든 민족들을 모으고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비유가 아니고 심판에 관한 말씀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요소가 이 말씀이 비유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유라고 할 때 어떤 신학적인 진리를 전달하기 위하여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거나 알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전하는 방법입니다. 인자되신 예수님이 마지막 심판 날에 영광 중에 재림하셔서 보좌에 앉아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당시 농경과 목축을 주업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목자가 그의 가축 때를 우리에 넣을 때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과 같이 심판날에도 천국에 들어갈 자와 지옥에 들어갈 자를 구분하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당시의 농경과 목축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였지만 구약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역시 쉽게 이 의미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에스겔 34:17-19의 말씀을 보면 동일한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의 사이와 수양과 수염소 사이에 심판하노라. 너희가 좋은 꼴 먹은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 마신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양떼 가운데 주님의 양떼와 다른 양떼를 구분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양과 염소의 비유도 스스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섬기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를 구분하여 심판하신다는 점에서 내용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를 볼 때 주님은 역사의 어느 한 날에 재림하셔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우리에 넣듯이 천국에 들어갈 자와 지옥에 들어갈 자를 구분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재림하실 때 있게 될 상황입니다.
2. 재림을 준비하는 방법 그러면 재림 때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천국에 들어갈 자와 지옥에 들어갈 자를 구분하시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안다면 이 날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이 점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어떤 기준에 따라 세상을 심판하시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날에 심판하시는 기준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존 칼빈(John Calvin)이 그의 책 기독교강요 에서 성경적인 결론을 내린 것이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위에 따라 갚으신다.
왜냐하면 각 사람은 그의 행위에 의하여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증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심판 주로 오실 때에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재림 때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는 기준, 또는 잣대는 무엇일까요 재림하신 주님께서 보좌에 앉아서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셨는지 마태복음 25:35-36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 말씀에 대하여 오늘 편에 앉은 양들은 "우리가 언제 그러한 일을 하였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25:40)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 자신에게 행한 일과 동일시하면서 연관시키는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여기에서 문맥적으로 볼 때 그들은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된 자, 벗은 자, 병든 자 그리고 옥에 갇힌 자들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초대교회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터툴리안(Tertullian)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er)는 "너희가 도움이 필요한 형제들을 볼 때 그것은 주님을 보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본문에서 예수님과 동일시되고 있는 "지극히 작은 자"는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모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두고 말한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른 편에 서 있던 사람들은 바로 이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마지막 날 심판 때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왼편에 있는 염소들에게는 주님께서 심판을 선고하시면서 "마귀들과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그 곳에 들어가야 할 합당한 이유를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 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입히지 아니 하였고 병들었을 때에 지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마25:42-43)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지옥에 들어가기로 판정을 받았던 자들이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25:44)라고 항변하였습니다. 여기서 "공양하다"는 말의 헬라어는 디아코네오(헬. diakone)라는 말인데 "봉사한다,섬긴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지옥에 들어간 이유는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 시에 주님이 각 사람을 심판하시는 잣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가,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한 벌을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문제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심판 주로 오시는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심판하시는 판단 기준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행위로 결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행위의 내용에 관하여서는 이미 앞에서 생각한 바가 있습니다만 지극히 작은 자에게 봉사하는 행위, 즉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는 행위입니다.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소외된 자들을 위해 봉사해야 할 중요성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봉사생활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느냐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한 벌을 받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주님께서 세상에서의 봉사생활로 심판의 기준을 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의롭게 사는 봉사행위가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봉사생활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제시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선행자체가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만 에베소서 2:8-9을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 자체가 천국에 들어가는 방편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제시된 봉사생활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라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의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은 그 행함으로 그 존재특성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그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속에 관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이식되어 있는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이 기록된 마태복음 7:15-21에서도 이 점을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참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열매로 그 존재특성을 나타내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야고보서에서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14-17)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고려할 때 여기에서 천국에서 영생하는 축복을 누리는 조건으로 제시된 세상에서의 봉사생활은 신자로서 당연히 나타나야 할 삶의 열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되는 문제는 믿음뿐만 아니라, 그 믿음에 합당한 행실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심판 주로 강림하셔서 보좌에 앉으시는 날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자들, 즉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능력에 따라 맡겨주신 달란트를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입니다.
3. 진정한 봉사의 의미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라면 모든 종류의 봉사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해서 다 같은 봉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본문에서 진정한 봉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왼편에 있는 염소들에 하신 말씀과 이들의 변명을 들을 때 알 수가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주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마25:41-43) 이 주님의 판결에 대하여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마25:44) 이 말씀을 볼 때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이들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봉사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25:4
5).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의 봉사생활은 주님이 원하시는 봉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소외된 자들을 위한 봉사행위 자체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보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다른 것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봉사태도입니다. 결국 마지막 날에 주님이 판단하시는 것은 봉사행위 자체가 아니라 봉사의 태도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봉사생활은 자신의 이익과 보상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듯이 행하는 사랑의 봉사여야 합니다. 진정한 봉사는 주님을 섬기듯이 하는 봉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적용하시는 것을 볼 때 염소도 분명 신자의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 연구한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하여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똑같이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고, 신랑을 기다리는 형식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모든 잔치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시 이 마지막 비유에서도 형식적으로 주의 이름으로 봉사하며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할지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7:23에 보면 외형적으로 그리스도인들처럼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을 내어쫓고, 능력을 행하기도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들을 향하여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외형적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능력을 행하는 자들을 향하여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한 이 비유의 결론은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곧 작은 자에게 봉사하는 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섬기듯이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언제 재림하실는지 알지 못합니다. 또한 알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는데 주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는 날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상에서 작은 자 하나에게 주님을 섬기듯이 봉사하며 살아간다면 천국에서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것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세상에 대한 자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심판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심판 주로 오시는 날에 신자와 불신자 모두가 부활하여 그리스도 앞에 서서 이 세상에서 행한 일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과 성령님을 통하여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사이에는 분명한 어떤 간격이 있습니다. 지금은 믿음의 창으로 통하여 부분적으로 이 나라를 경험합니다. 하지만 주님이 재림하시면 우리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처음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는 겸손함으로 낮고 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지만, 재림 시에는 위엄과 영광 중에 심판 주로 오실 것입니다. 이 심판 주 앞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설 수 있겠습니까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봉사하는 생활을 산다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 생각대로 산다면 영원한 지옥 형벌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마25:46).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 날이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이 날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처럼 이 날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는 상황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날에 양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25:34)고 하셨습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것인데 구약에서부터 계속 약속해 온 그 나라를 상속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 본문에서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되었다"고 하시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가운데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하게 실현되는 것은 주님이 심판 주로 재림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역사 이후에 갑자기 나타난 어떤 개념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한 것이기에 이 역사세계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종말에 대한 주제는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 사람들의 성향이 종말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항상 현 세상일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고 미래에 있게될 심판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흥미를 끄는 관심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세상의 종말은 있고 그때에 우리의 행한 일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과 역사의 종말과 심판을 부인해도 그것은 분명히 역사적인 현실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 예를 들면 그것이 재능, 돈, 학문, 사회적인 위치, 시간 등이 될 수도 있는데, 이것을 주님의 뜻대로 주님을 섬기듯이 소외된 자들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천국을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주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로 심판하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