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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임재 (마24:14-20)

본문

I.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됨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A. 제자들의 사명 제자들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온 천하에 다니며 모든 민족에게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길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일군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물론 모든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를 거쳐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모든 민족에게 증거될 때까지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혼자서는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성령님께서 임해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가 있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주님은 성령님을 약속하셨고 제자들은 약속된 성령님을 받음으로서 이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B.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는 것은 아님 성도들 중에는 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 되면 복음이 사회를 변화시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된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기독교를 주축으로 하는 나라나 그렇지 않는 나라나 한결같이 악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거의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고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데도 불구하고 사회는 점점 더 악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복음을 증거해야만 합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례미야처럼 악해져 가는 현실 속에서도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C. 박해를 각오해야 하는 복음 전파 복음 전파는 박해로 인한 순교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보혈과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세워졌습니다. 강퍅했던 도시 로마는 순교자들의 피로 인해 무너졌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박해가 병존했으며 핍박이 심할수록 복음 전파도 활발했습니다. 반대로 핍박이 없는 곳에는 복음 전도의 열정도 식었습니다. 오순절 성령님 강림의 사건을 경험한 제자들은 모여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만을 기다렸습니다. 그 대 핍박이 몰아쳤고 그로 인해 그들은 흩어져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II.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날 마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A. 멸망의 가증한 것 멸망의 가증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다니엘서에서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단 12:11)라는 표현으로 인해 희미하게나마 그 내용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다니엘의 언급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BC 170년경 시리아 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 뜰에다 제우스 신의 신당을 세우고 거기서 유대인들이 불결하게 여기는 돼지를 잡아 제사를 드렸으며 제사장의 방과 다른 방들은 창녀의 방으로 사용함으로서 성전을 모독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과거의 사건이 비슷한 방법으로 예루살렘에 임할 것을 예고하셨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종말의 때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B. 거룩한 곳에 서는 날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 때의 시와 때를 모르는 것처럼 그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또 그것이 언제 어떤 형태로 서게 되는지를 아는 것도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일이 다니엘이 쓴 것처럼 예수께서 예언하신 것처럼 확실히 있을 것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평화를 가장한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 이제까지 자유스럽던 예배를 폐하고 교회 안에 우상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 경배하지 않는 자를 치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지금 당장 그러한 일이 닥쳐도 능히 이길 수 있는 신앙을 길러야 합니다.
C. 읽는 자는 깨달을 진저 세상에는 성서를 교양 서적으로 읽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성경 지식을 위해서만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자는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음 없이 성경을 읽는 것은 무익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만드셨음을, 인간을 사랑하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심과 그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을 깨닫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본문의 예언을 믿고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III. 깨어 있는 자들의 자세 마24: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마24: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마24: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마24: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마24: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A. 산으로 도망하라 마지막 때의 환난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무서운 것입니다. 유일한 수단은 도망치는 것입니다. 정면으로 맞서다가는 오히려 당합니다. 예례미야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포위되었을 때 저항하지 말고 차라리 항복하라고 했습니다. 저항하는 것은 무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후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본문에서도 저항하지 말고 도망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항복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적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안전을 도모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실 때 마땅히 피해야 합니다. 피하지 않고 맞서는 것은 만용을 부리는 것이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처사가 될 수 있습니다. 도망했던 자는 다시 싸울 수가 있습니다.
B.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 멸망의 위기에 직면한 롯과 그의 아내에게 주어진 명령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의 아내를 뒤를 돌아보았고 그 결과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지나친 소유욕의 결과로 이해합니다. 그 때는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옷이나 물건들을 가질러 돌이켜서는 안됩니다. 미련 없이 떠나야 합니다. 평소에 일용할 양식만을 소유한 자는 이 때에 가장 안전하게 도망할 수가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 귀한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욕 때문에 지체함으로 비참한 최후를 당할 수도 영원한 멸망의 당할 수도 있음을 성도는 유의해야 합니다.
C. 도망하는 일이 안식일이나 겨울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웨슬레는 바쁘면 바쁠수록 기도를 더 많이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듯이 그러면 좋은 길이 열립니다. 노아의 기도가 홍수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예례미야의 기도도 유다의 멸망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처럼 한 번 결정된 뜻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행됩니다. 다만 우리는 최선의 길을 찾을 수 있을 뿐입니다. 고통의 때에 기도는 힘과 위안을 줍니다. 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최선의 방법을 지시하시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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