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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실패원인 두가지1 (마25:1-13)

본문

이 말씀은 비유입니다. 비유라는 것은 알기 어려운 어떤 실상을 그 실상과 비슷한 것을 가지고 비유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유보다는 실 상이 더 정확하고 세밀하고 구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엇이든지 비유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쳤을 때에는 이 비유보다 실상은 더 확고하고 구비하 고 온전한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대개 성경에 비유로 한 그 실상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세상 이런 것 저런 것을 비유로 이용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기에, 비유를 배울 때마다 그 비유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 곧 우리들과의 관계는 그 비유보다 더 정확하고 실상이고 구비하고 온전한 이 사 실을 인식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잘못하면 비유는 그러하지만 주님과 우리 교회인 성도와의 그 관계가 비유처럼 그렇츰 그럴까 해서 실상을 이 비유보 다 더 성근 것으로 불완전한 것으로 불구비한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정반 대로 삐뚤어져 나가는 생각이 되겠습니다. 여기 13절에, '그런즉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말은, 우리가 영감과 진리로 살아난 자인데 영감과 진리로 행동하면 깨어 있는 자요 영감과 진리로 중생된 자이지만 세상 사람들과 꼭 같이 그렇게 살고 있으면 자고 있는 것 입니다.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날과 그 시라는 말은 주님 만날 날과 시간을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주님을 신랑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주님과 우리 교회와의 사 이를 이 세상 사람들의 부부로 부부의 비유를 가지고서 말씀했습니다. 사람 들의 그 부부 제도 이것은 하나님과 교회 사이의 그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 하나의 비유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부부의 유별한 관계 그것 보다도 하나님과 우리 교회와의 관계는 그런 것으로서 비유만 했지 그런 것 으로 그저 그 실상을 나타낼 수는 절대 없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와의 관계는 무한하고 영원하고 인간의 방언으로 표시할 수 없는 그런 영영하고 견고 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과 그시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주님을, 하나님을 자존자 창조주 주권 자 주재자 홀로 한 분이신 이 하나님, 모든 존재는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 아 생겨졌고 또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다스림도 유지도 또 성장도 멸망 도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서만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극히 무한하시고 크시고, 우리에게 필요하고 요긴하고 우리의 생 명보다 더 귀중하신 이 하나님을 마치 처녀가 그 신랑과 결혼하면 신랑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되어서 두 사람이지만 성경에 정상적인 부부는 부부일 심(夫婦一心)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정상적인 부부는 그 어떤 허물과 죄가 있어도 나뉘지는 못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로서 책임도 하나요 욕도 하나요 영광도 하나요 실패도 하나요 성공도 하나요 모든 것도 다 하 나되는 것입니다. 마치 처녀에게 그 총각으로 더불어 결혼해서 자기 남편된 것처럼 이렇게 대 주재이신 이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맺어지는 참 자기의 구주가 되어지는 그날과 그시간이 언제인지 모른다 그말입니다. 다른 비유로 말하면 이 대주재이신 이 하나님이 자기의 머리가 되고 자기는 그의 몸이 되는, 머리와 몸은 한몸되는 한몸인 것과 같은 이런 밀접한 관계 의 달성이 어느 날 어느 시에 될런지 모른다 하는 그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의 그 공심판인 그 심판에서는 이것이 다 이루어져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가 되었고 우리는 그의 몸이 되었 고 그는 우리의 남편이 영원한남편이 되었고 우리는 그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일남 일녀로 부부가 되어지는 것인데 성도는 수가 많고 예수님은 한 분 뿐이시라면 그 해석이 일부 다처주의의 해석이 아닌가 그런 오해를 가지게 되기도 쉽겠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는 첫 교인 아담 하와로부터 오늘까지의 역사 에 있는 모든 택한 자들과 온 세계에 택한 모든 사람들은 어느 교파와 어느 진영에 속했든지, 어느 지역 어느 민족에 속했든지 다 한 몸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한 몸입니다. 그러면 택한 자로 믿는 자는 다 한 몸이 되고 그 한 몸의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한 몸이되는가 한 몸이 되는 것은 생명이 하나요 또 지능 이 하나요 또 거기에 모든 역사하는 온갖 기관과 연락과 움직임이 하나요 소망도 하나요 희로애락도 하나요 그의 행 불행도 다 하나요. 그러기에, 하나님도 하나시요 구속주도 하나시요 성령님도 하나시요 소망도 하나요. 그러 기 때문에 희로애락의 모든 것도 하나라. 이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된 그것만이 예수님의 몸이 되지 그 외의 것은 예수님의 몸이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택한 중생자라도 그 중생과 또 기본구원 열 가지에 말한 그것만 그 사람이 어떻게 했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객관 역사로 말미암아서만 된 것이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그의 심신의 구원인 심신의 기능 구원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하나님의 그 형상 대로의 그 마음의 기능이 된 것 몸의 기능이 된 것 이것만이 다 하나가 되 지 거기에 이질적으로 되어 있는 마음 이질적으로 되어 있는 그 모든 몸의 기능 그런 것들은 다 제거되어서 불사뤄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이렇게 세상 신랑 신부 의 이것을 비유로 써 가지고서 그 실상인 주님과 교회와의 그 관계를 가르 치신 그것을 예수님은 머리시요 교회는 몸이라는 이것을 함께 연결시키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천하에 있는 모든 교회와 역사에 있는 모든 교회가 한 몸이라, 한 교회라, 단일 교회라 하는 것을 깨달으면 이 모든 것 이 충분히 해석이 될 것입니다. 마귀라는 놈은 모르는 그 무지자를 미혹시켜 가지고서 멸망시킵니다. 아는 자는 미혹을 시키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은혜 받는 것은
첫째가 아는 것입니다. 기분 좋은 것이 은혜가 아니고 기쁜 것이은혜가 아니고, 기쁜 것 기분 좋은 것 도 은혜도 될 수도 있고 그것이 멸망도 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생기고 마음은 어떻 고 성품은 어떻고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신구약 성경에 똑똑히 그려 놨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대략 알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그 은밀한 것까지를 다 아는 사람 은 영감을 받으면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영감이 표시된 신구약 66권은 윤곽적으로 외부적인 대략을 우리 에게 소개해 놓은것이 66권의 도리요 그 안에 은밀한 것은 성신의 감동으 로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 말씀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깨달으면 신구약 성경 의 그 중심은 예수님이십니다. 전부 예수님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이 면은 이러하고 저 면은 저러하다 하는 것을 가르쳐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의 행위와 그 말씀대로의 사상과 그 말씀대로의 마음 움직임, 몸 움직임, 모든 행동, 사람이 되어지면 되어지는 그것이 차차차차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고 배워가게 되는 것이고 예수님화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성화구원(聖化救援)이라 건설구원(建設救援)이라 행위구원(行爲救援)이라 이렇게 여러 가지로 사람들이 그때 그때 알아 들을 수 있는 가장 쉬운 표현으로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이 신랑을 맞이하는 그날과 그시는 알지 못한다 하는 이 말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준비를 잘 했든지 못 했든지 자기 행한 대로 예수님을 맞이하여 영원 무궁한 나라에 옮겨져 가서 작은 자는 작은 자, 큰 자는 큰 자. 무능 한 자는 무능한 자, 유능한 자는 유능한 자, 영광이 없는 자는 없는 자, 있는 자는 있는 자 수치스러운 자는 수치스러운 자, 부끄러운 자는 부끄러운 자 벗은 자는 벗은 자 그대로 영원히 고정적으로 다시 변동없는 결정이 되 어지는 그 시간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때요 또 개인으로 말하면 세상을 떠나는 죽는 그때입니다. 그러면 그날과 그시를 알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죽음도 알지 못한다 또 예수님의 재림도 알지 못한다 하는 이것은 종말을 가리켜서 말하고, 이것만 이 아니고 시기시기에 주님과 자기와의 머리와 몸과 같은 이 결합되는 이 결합의 그 시기가 밤에도 그런 시기가 있을 수 있고 낮에도 그런 시기가 있 을 수 있고 젊을 때도 그런 시기가 있고 늙어서도 그런 시기가 있고. 또 봄 에도 여름에도 언제 그런 시기가 있을런지 모릅니다. 자기 혼자 있을 때에 도 그런 시기 오고 여럿 있을 때에도 오고. 이러니까, 그런 시기는 주님과 우리와의 부부같은 이런 밀접한 한 몸이 되는 희로애락이 하나되고 모든 영광과 존귀와 그 평강이 처소가 하나되는 이 관계가 맺어지는 것도 언제 맺어질런지 모르고 주님은 머리시요 우리는 몸 인 이런 관계도 언제 맺어질런지 모릅니다.
주님은 왕이시요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이 관계도 언제 맺어질런지 모릅니다. 또 주님은 우리의 제사 장이요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이것도 언제 맺어질런지 모릅니다. 맺어지는 것과 맺어지는 이 일을 준비하는 시기가 따로 있다 하는 것을 여기에 비 유해서 기름 준비 할 때도 있고 마지막에 신랑 맞이 할 때도 있다 하는 것 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수많은 그 시간과 날이 있다 할지라도 그 모든 시간과 날 은 둘을 위한 날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날을 쪼개면 시간이 되고 시간을 쪼개면 자기의 현실이 됩니다. 그러면, 현실마다, 수 많은 현 실이 있지만 현실 현실마다 시간 시간마다, 날마다 그날이라는 모든 것은 다 2가지를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 이렇게 생각하면 바른 생각을 가진 것이겠습니다. 그러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몇 해가 남았든지, 젊든지 늙든지 어린아이 든지 어쨌든지 세상에서 난 이후부터 자기가 자의식이 발달이 되어서 생겨 진 때나 생기지 안한 때나 어쨌든 세상에 있는 재세의 기간은 다 이 2가지 를 하기 위해서 있는 시간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좋습니다. 그러면, 2가지는 뭐인가 하나는 준비하는 때입니다, 준비하는 때입니다, 기름 준비로비유한 것처럼 준비하는 때입니다. 또 하나는 준비한 그것이 이제는 완전히 결실이 되어지는 것과 같이 준비한 그것이 완성되는 때입니다. 그러면 그날과 그시를 알지 못한다고 하신 것은 완성의 때가 언제인지 모르 니 네가 준비의 때에 게을하지 말고 준비를 잘 해서 완성하는 그때에 당황 하고 네가 실패하지 말고 완성을 하도록 그렇게 노력을 해라 하는 것을 가 르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도 완성의 때가 올런지 모르겠습니다. 개적으로는 오는 것도 있고 단체적으로 오는 일도 있습니다. 과거에 625같은 것은 우리 남 한에 있는 모든 기독자들에게는 전체적으로 온 때입니다. 625전쟁이 났을 때에 그때에 기독자들의 그 마음은 완전히 뒤바껴졌습니다.
그때에 어떤 사람은 참 주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사람도 있고, 아주 주님을 버리고 성경 조차도 다 버리고 도망친 사람들도 있었고. 그만 그들이 말하는 대로 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그들이 왔을 때에 예배당도 비워 돌라 하니까 다 비워 줬고, 또 그들이 예수 믿지 말라 하니까 다 예수 안 믿겠다고 다 말했고, 또 이제는 우리의 행정에 가담해서 우리를 따라서 같이 역사하겠느냐 할 때에 다 그렇 게 각오도 했고, 이래서 사흘 만에 한번씩 모든 지방 인심 조사를 해 가지 고 우리에게 보고하라 했을 때에 사흘마다 한 번씩 가서 보고를 다 했었습니다. 보고 하다가 마지막에 보고하러 갔는데 사람들이 안 돌아와서 무엇 때문에 안 돌아오는고 하고 보니까 벌써 인민군들은 후퇴를 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데리고 갔는가 아니, 학교면 학교에 구덩이 파고 다 죽였고 또 어떤 사람은 산에다 구덩이 파고 죽여서 그때 예수님을 배반하고 판 사람들 은 수없이 죽었습니다. 많이 죽었습니다. 그것이 숫자로 얼마나 되는지 모 르지만 많이 죽었습니다. 죽은 그런 사람들을 또 마귀란 놈은 또 과장을 해 서 순교자라 빨갱이 인민군에게 죽었으니 순교자라 그렇게 과장을 해 가지 고 사람을 속였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는 그들에게 주님을 배반하고 죽은 것이 순교자가 아니고 주 님을 증거하고 주님을 내놓지 안하고 진리를 내놓지 안할려고 함으로써 그 들에게 죽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속해서 그들은 다 순교자이 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뒤에 영광이 있지만 주님 팔고 그들에게 꼬임받아 가지고 죽은 그런 것은 기본구원(基本救援)은 택한 자면 얻지만 영광이라 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남한으로 말하면 전체적으로 주님과의 이 부부의 결혼식이 되어 지는 때라고 볼 수 있고 또 머리와 몸의 이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이루어진 것 이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라 그렇게도 볼 수 있겠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도 가정의 구원에도 그런 일이 있고, 자기의 직장에서도 그 직장에서 지키려 하니까 그 직장에 어려움이 있으니까 이제 어느것을 하겠 느냐 기름 준비를 할래 주님과 너와의 이 결합을 이루는 이 일을 할래, 주 님을 배반할래, 진리를 배반할래 둘 중에 하나 해라 할 때에 그때 배반함 으로써 신랑에게 배척 당하는, 배반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 등불이 없는 것 입니다. 빛을 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영접해서 결합되는 것은 등불을 들 었다는 것으로 비유를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가진 모든 시간은 준비하는 시간이요 또 준비한 그것 대로의 이제 결실 성공을 하는 때라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완성되는 성 공의 때가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으라' 그 말은 항상 준비 해라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젊든지 늙든지 자기는 학생 이든지 무엇이든지 모든 시간 은 다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완성되는 시간입니다. 완성되는 시간이 언제 올런지 모른다. 준비하는 시간은 언제나 있는 것인데 준비하는 시간이 오늘 로 끝날런지 모른다. 준비가 오늘로서, 준비할 수 있는 그 기회가 오늘로서 끝날런지 모른다.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슬기 있는 사람인가 슬기 있는 사람은 자기의 가진 모든 시간은 다 준비하고 완성을 얻는 그 시간이라 보는 사람은 슬기가 있는 사람이고, 미련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미련한 사람인가 처녀와 총각이 신랑 교회와 자기와 주님과의 부부의 결합이 되어지는, 자기와 주님과의 머 리와 몸과 같은 이런 결합이 되어지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지금은 젊 으니까 공부할 시기다 공부만 자기 전업을 삼고, 지금은 젊을 때이니까 돈 벌 때다 해서 돈 버는 데만 전공을 삼고, 자기는 또 이런저런 직장이 있으 니까 이렇게 지금 자꾸 한 층 두 층 올라가는 것이 자기 할일이라 이렇게만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나는 지금 남편을 지금 호려 가지고서 남편 하나 만 내 사람 만들면 된다 또 그것으로 삼고, 나는 저 미인을 내 사람 만들면 되겠다 그것만 생각하고 뭐 별별 할 일들을 하느라고 준비와 완성을 하지못 하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이 2가지, 준비와 준비의 결실을 맺을 때라는 이 2가지의 시간으 로만 생각지 안하고 그 외에 딴 것으로서 이용하는 사람은 다 속는 사람이 요 미련한 성도입니다. 미련한 성도. 지금은 사람들이 업신 여기지만 다 우리가 이 길을 가야 되고 앞으로 가서 준비한 대로 그 결과를 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제 다음으로는, 그러면, 우리가 준비를 어떤 준비를 해야 될 것인가 기 름 준비를 하라 이랬습니다. 기름 준비를 하면 기름은 무엇인가 기름은 밤 중에 등불 들 수 있는, 등불을 켤 수 있는 그것이 기름이다. 밤 중에 등불 을 켤 수 있는 것이 기름이요 기름이 없으면 아무리 등불을 켜야 될 줄 알 지만 불이 켜지지를 안한다. 그러면, 이 기름은 무엇이며 밤중은 무엇인가 기름은 하나님의 말씀과 영 감대로 사는 것인데 그렇게 말하면 너무 복잡하고 알기가 어려워서 사람들 이 말씀대로 산다고 이리 저리 날뛰다가 보면 그만 마치 모래 구멍에 물 새 듯이, 바다에다 구덩이를 파놓고 암만물을 퍼다 부어도 구멍은 없는데 다 새어 내려가 버립니다. 이것 모양으로 자기가 어정어정 거리다가 보면 다 성경 말씀 다 어겨 버리고 준비를 못 하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기름은 무엇인가 네, 기름은 2가지를 가리켜서 기름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기름은 2가지로 분류 해 가지고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2가지 분류를 하면 이것은 바로 아는 것과 바로 행 하는 것 요 2가지가 기름입니다. 그러면, 기름을 준비했다 그 말은 바로 아는 실력을 길러 마련하고 바로 행하는 실력을 길러서 마련해서 실력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실력 있는 자가 되어지면 어떤 때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지는가 그 것은 밤중에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밤중에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지면 밤중은 어떤 것이 밤중인가 밤중은 잘못 알게 바로 알 지 못하고 삐뚤어지게 아는 것이 밤이요, 삐뚤어지게 행하는 것이 밤중인데 전부가, 세계가 다, 학자고, 유능한 사람이고 말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삐뚤 어지게 알고 또 삐뚤어지게 행하고,
그런데 이 밤중에 세력은 어떻게 해서 깜깜해서 등불도 그만 다 그만 꺼져버리고 마는가 그것은 기름 없으면 꺼집니다. 삐뚤어지게 알리는 삐뚤어지게 알도록, 잘못된 지식과 지혜를 가지도록 그 렇게 악령이 유혹을 시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요렇게 알고 요렇게 해야 된다 그렇게 가르쳐 줍니다. 삐뚤어지게 가르쳐 주는, 현재도 삐뚤어지게 가르쳐 주고 이래야 네가 미래적으로 잘된다 미래도 삐뚤어지게 가르치고 현재와 미래를 삐뚤어지게 가르치는 그 악령의 역사, 세상 역사가 있습니다. 삐뚤어지게 현재와 미래를 가르치는 것, 미래를 삐뚤어지게 가르치는 것을 가리켜서 삐뚤어진 지혜라 그렇게 말하고, 현재를 삐뚤어지게 가르치는 걸 가리켜서 삐뚤어진 지식이라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러면, 삐뚤어진 지혜 지식을 가지도록 악령이 우리 속에 와서 감동을 시 킬 때에는 우리 속에서 그 마음이 나오고 또 사람을 붙들어 말할 때에는 사랑하는 친구를, 사랑하는 가족을, 사랑하는 부부를 사랑하는 또 가족을, 사랑하는 자기의 상관을, 사랑하는 자기의 부하를 어쨌든지 이래 가지고서 그 삐뚤어지게 알도록 그렇게 자꾸 유혹을 시킵니다. 다리오왕이 다니엘에게 '네가 기도하면 안 되니까 기도 안 한다고 해라. 그 렇게 그 삐뚤어지게 알도록 할려고 하루 종일 한 것은 그것은 다리오왕이 껍데기는 왕이지만 속에는 마귀의 침노를 받아 가지고서 다니엘을 삐뚤어지 게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안 들으니까 마지막에는 할 수 없 다 사자 구덩이에 역사를 데려다가 묶어서 사자 구덩이 던지라 하는 그것은 이제 삐뚤어지게 아는, 삐뚤어지게 가르친 그것을 승락하라고, 수락하라고 강제를 가지고서 서둘렀던 것입니다. 욕을 할때도 욕을 다니엘은 이겼고 강 제로 해도 강제를 이겼습니다. 그것이, 그때는 기름 준비보다도 신랑 맞이 하는 등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바로 아는 것이 기름이요 또 삐뚤어지게 아는 것이 어두움이요, 또 바로 행하는 것이 기름이요 또 삐뚤어지게 행하는 것이 어 두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항상 어두움과 광명이 둘이 같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있는, 낮에는 등불이 없어도 됐는데 낮에는 어떤 때가 낮인 때인고 하니 그게 아무라도 다 바로 알 수 있고 바로 행할 수 있는 그런 때가 낮입니다. 그러다가 차차 차차 해가 기울고 어두워지는 것은 이제 바로 알기가 차차 어려워지고 바로 행하기가 차차 어려워지는 그것이 어두움이 짙어져가는 것 입니다. 밤중은 최고로 바로 알기가 어려운 시기요 바로 행하기가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것을 비유해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 면, 우리가 준비는 바로 아는 준비, 바로 행하는 준비 요 둘이 요기에 비유 로 기름 준비하는 그 기름 준비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있고 세상 마귀에게서 나온 인간 지식이 가르치는 것이 있고, 또 영감이 가르치는 것이 있고 악령이 가르치는 것이 있고 가르침이 둘이 있습니다. 이 둘은 언제든지우리 현실에는 있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이둘이 없을 때는 없습니다. 그럴 때에 어두움의 이 세력은 우리가 바로 알라고 이렇게, 성경대로 바로 알고 영감 대로 바로 알아서 자기 현실을 바른 판단을 딱 가질려고 이렇게 할 때에는 삐뚤어진 지식을 줘 가지고 삐뚤어지게 판단하도록 할려고 할 때에 그것이 '마귀의 유혹이라' 그렇게 성경에 표시 했습니다. 또, 이러다가 삐뚤어지게 아는 것을 거부하고 바로 아는 요 지식을 자기가 수락해서 자기의 지식으로 삼고 그대로 단정을 지우니까 강제를 가지고 협 박을 합니다. 강제를 하고 협박을 할 때에 이것을 가리켜서 악령의 강압입니다, 악령의 압력이라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것을 총칭해서 우리가 말하면 학마(學魔)라 그렇게 이름을 붙 일 수 있습니다. 학마(學魔)라. 배우는데 배우지 못하게 하는 마귀라 그렇 게 우리가 이름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또, 바로 행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바로 행하지 못하도록, 삐뚤어지게 행 하게 할려고 마귀가 유혹을 주고, 마귀가 유혹을 주고 롯에게는 롯의 처가 유혹을 줬고 롯의 딸들이 유혹을 줬고 롯의 그 모든 종들이 유혹을 주고 그 랬습니다. 그러나, 롯이 그것을 유혹을 받지 안하고 바로 행동했으면 좋을 것인데 그만 바로 행동하지 못하고 거기 떨어졌습니다. 이러니까 뻐뚤어지게 행하도록 이렇게 유혹을 주다가 그 삐뚤어지게 행하게 하는 것을 듣지 안하면 이제는 강제를 가지고, 삐뚤어지게 허하지 않으면 너 죽인다 이혼한다 너 당장 면직 당한다 너 사형 당한다 너 감옥에 들어간 다 별별 협박을 다 합니다. 그래 그런 협박을 당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행마 (行魔)라, 행하는 데에 방해 하는 마귀라. 학마 행마 요거는 언제든지 따라 다닙니다. 그럴 때에 그 현실에서 하나님 이 가르쳐 주시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이요 영감이 알려 주시는 것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인데, 현실에 하나님 가르쳐 주심을 내가 받아 들이느냐 악령이 가르쳐 줌을 받아 들이느냐 그 결정 지워지는 것입니다. 평소에 자기가 성경을 읽고 알고 하는 것은 그것은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요 하나님에게 배우는 것은 아니요, 그 지식은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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