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과 팔화 (마23:13-39)
본문
예수님께서는 1-12절까지의 말씀에서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나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너희들은 저희의 말은 들을지라도 그 행위는 본받지 말라 했습니다. 그리고는 13절에서 부터는 아주 강한 어조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심판이 있으며 멸망이 있을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항상 화를 내고 떠드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 사람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아주 조용하고 부드럽고 신사적인 사람이 어느 때에 감자기 울분을 터뜨린다면 모두가 어찌된 일인가하고 놀라고 당황할 것입니다. 그것도 자비하시고 온유하신 예수님께서 내신 분노라면 우리는 더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놀라와 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생에때에 예수님께 나아왔던 거의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온유하셨기 때문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도 예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시고, 위로하셨습니다. 요한4장에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복음을 전하시면서 온유한 태도로서 말씀을 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그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신 분이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결코 물리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하여는 대단히 분노하시고 그들에 대한 멸망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이 책망의 저주의 말씀을 하신 것은 실은 저주의 말씀이 아닌 것으로 알아야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한 주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벌써 5장의 산상보훈의 말씀에서 8가지의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우리가 이 저주를 피하면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주를 피하고 복 받는 여러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본문의 말씀 가운데 14절이 빠져있습니다만 어떤 사본에는 있습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과부의 재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 중하리라”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마가복음 12:40, 누가복음 20:47에는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하고 일곱 번의 화를 말씀했다고 하지만 실은 여덟 번입니다. 산상보훈의 복이 팔복입니다. 여기에 화가 여덟가지 화입니다. 예수님 생애 처음에 하신 설교가 팔복이면, 생애 마지막으로 하시는 설교에서는 팔화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전하신 그 복음을 가난하고 애통한 마응으로 온유함으로 받으면 복이 될 것이지만, 이 복음을 받지 않고 저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지옥에 들어가게 하는 자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멸망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인데 이것이 믿지 않는 세상에는 저주요, 멸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일부러 심판하시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 심판을 받아 저주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3: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팔복에서 첫째 복은,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그러나 팔화는 처음것이 (마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천국은 어떤 자가 어떻게 들어갑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께 겸손히 나아와서 주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 천국가는 구원을 얻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화가 있는 자는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 하는 자들에게도 그 문을 막았으니, 이는 성령님훼방죕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이런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다. 그들은 행위로 구원 얻는 것으로 가르칩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그 율법을 다 못지킵니다. 그래서 외식과 위선의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들도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 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종교 다원주의, 선행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이 저주를 받을 가르침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큰 이단입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주님의 십바가 앞에 나아오는 심령에게 천국이 열려 있습니다. 두 번째 복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을 것임이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애통하는 사람이 위로의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화는 오히려 애통하는 과부 같은 원한이 있는 자를 괴롭게 하는 자, 또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외식적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하여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위로를 복으로 주십니다. 죄 사함을 주시고, 의롭다하십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외식으로 하는 자, 복이 없을 뿐 아니라, 저주가 있답니다. 기도를 길게해야할 때에 길게해야합니다. 금식 해야할 때에 금식해야합니다. 그것을 외식적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 하는 위선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십니다. 세 번째 복은 5:5에 온유한 자는 복있다고 했는데,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화는 15절에서 (Mat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이들이 온유함으로 세계를 점령하리라, 겸손함으로 평화의 복음, 사랑의 복음으로 땅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복음으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웁니다. 그러나 이 외식하는 자들은 교인을 얻기 위해 온 땅으로 다니지만, 얻은 교인들을 자신들 보다 더 배나 지옥 자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자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단들이 그러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열심입니까 이단들의 열심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그들은 그 얻은 교인들을 배나 지옥자식으로 마귀의 자식으로 만듭니다. 이단들의 받을 진노가 클 것입니다.
네 번째 복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있으니, 저희가 배 부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의를 이루는 삶의 복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복을 말씀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들을 희생하면서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하는 관심으로 사는 자는 복이 있으니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는 만족합니다. 성도의 만족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열심의 목적도 이것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자신이 여기에 쓰임 받았음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네번 째 화는 (마23:16)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23:17)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마23: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23:19)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마23: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마23: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마23: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의식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영광과는 상관없는 삶을 삽니다. 성전의 금이 성전 보다 더 크고 중요합니다. 제사보다 젯밥에 마음이 있다고 함같이 그들의 목적은 진정으로 물질주의입니다. 제단보다는 그 예물입니다. 구걸행위가 이것 아닙니까 오늘 교회가 이것을 목적한다면 예배당을 어떻게하면 크게 짓고 헌금을 많이 거둘 것인가 구걸하는 신앙행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목적은 아닌지 진정으로 의를 이루지 못해서 고민도 하고 노력도 하고 하나님께 기도도 드리고 자기 것을 바쳐 희생하다가 이루어지면 그것으로 기뻐하고 그것으로 삶의 재미를 누리는 이 사람이 정상적인 성도입니다. 다섯 번째의 복은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입니다. 모든 일에 대하여 긍훌을 가지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긍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섯 번째의 화를 받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23: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이들은 율법은 철저하게 지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율법의 근본정신인 위와 인과 신은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하여는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하루살이는 걸러내지만, 약대는 삼키는 일을 했습니다. 포도주를 마실 때에 하루살이가 들어갈까해서 걸러 내었지만 하루살이와 비교도 안되는 약대는 마구 삼킵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조그마한 것,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 이런 것에는 아주 철저하지만, 그들은 더 중요한 것, 본질적인 것들에 대하여는 예사로 생각합니다.
가장 큰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 긍휼입니다. 이것이 가장 크고 본질적인 것입니다. 사랑, 은혜, 구원, 생명이 중요한 것이지만, 이런 것들은 생각지 않고 아주 사소한 것을 가지고 다투고 따지고 해서 긍휼 없는 심판하는 자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이런 자에게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신앙, 우리가 보수해야할 진리,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은 너무나 크고 중요한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잊고서 세상적인 것, 그 어떤 것이라도 여기에 비하면 사소한 것입니다. 여섯 번째의 복은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우리가 왜 거룩한 삶을 살아야합니까 우리가 양심 생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기 위함입니다. (요일3: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요일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그 마음의 눈이 밝아야 하나님을 봅니다. 이보다 귀한 복이 있습니까
그런데 여섯 번째의 화는 (Mat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Mat23: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외식적으로 잔과 겉은 깨끗하게 합니다. 손을 깨끗하게 씻고,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그 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안을 먼저 깨끗하게 하라 그러면 겉도 깨끗하리라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어덟번째의 복은 (마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어디서나 화평을 말하고 화평을 도모하는 자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세상에서도 일컫겠다는 것입니다. 또 의를 인하여 핍박받는 자가 복있다고 여덟 번째 복을 말씀했습니다. (마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이 이같이 핍박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일곱 번째, 여덟번째의 화는 (마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23: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23: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마23: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마23: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마23: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이들이 화평을 말하는 것 같고, 의를 말하는 것 같으나, 회칠한 무덤 같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겉 모습이요 그 안에는 온갖 살인과 악독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화평케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지만, 이들은 선지자들을 죽인 자의 자손됨을 증거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뱀들이요, 독사의 새끼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했습니다. (마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23: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마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마23: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마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23: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마23: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이렇게 저주를 말씀하시지만, 세상을 사랑하시어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것이 몇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보고 탄식하시며 울부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구원의 역사가 이방에게로 넘어간다는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너희가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은 예루살렘,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이방에 복음이 전파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들어온 복을 발로 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시 이스라엘이 그 집들이 다 황폐하겠지만, 주님을 찬송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따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복음을 받지 않으므로 이방인 우리에게 까지 이 귀한 복음이 온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이 복음을 믿지 않으면 별 수 없이 버린 바 될 것입니다. 이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책망들었던 제일 큰 죄목은 무엇입니까 외식입니다. (마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마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23: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마23: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마23:7)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우리가 구원을 받은 자라도 외식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화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저주의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5장에서 말씀하신 복을 받을 자입니다. 하나님께 외식으로 나아갈 것이 아니라, 가난한 심령이 됩시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온유한 마음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되어서, 하나님의 긍휼로 긍휼히 여기는 자되고, 그 마음이 청결하며, 모든 사람으로 화평케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도 받는 자가 되어서 약속하신 복 받는 자 됩시다.
왜냐하면 예수님 생에때에 예수님께 나아왔던 거의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온유하셨기 때문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도 예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시고, 위로하셨습니다. 요한4장에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복음을 전하시면서 온유한 태도로서 말씀을 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그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신 분이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결코 물리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하여는 대단히 분노하시고 그들에 대한 멸망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이 책망의 저주의 말씀을 하신 것은 실은 저주의 말씀이 아닌 것으로 알아야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한 주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벌써 5장의 산상보훈의 말씀에서 8가지의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우리가 이 저주를 피하면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주를 피하고 복 받는 여러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본문의 말씀 가운데 14절이 빠져있습니다만 어떤 사본에는 있습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과부의 재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 중하리라”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마가복음 12:40, 누가복음 20:47에는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하고 일곱 번의 화를 말씀했다고 하지만 실은 여덟 번입니다. 산상보훈의 복이 팔복입니다. 여기에 화가 여덟가지 화입니다. 예수님 생애 처음에 하신 설교가 팔복이면, 생애 마지막으로 하시는 설교에서는 팔화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전하신 그 복음을 가난하고 애통한 마응으로 온유함으로 받으면 복이 될 것이지만, 이 복음을 받지 않고 저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지옥에 들어가게 하는 자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멸망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인데 이것이 믿지 않는 세상에는 저주요, 멸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일부러 심판하시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 심판을 받아 저주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3: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팔복에서 첫째 복은,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그러나 팔화는 처음것이 (마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천국은 어떤 자가 어떻게 들어갑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께 겸손히 나아와서 주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 천국가는 구원을 얻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화가 있는 자는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 하는 자들에게도 그 문을 막았으니, 이는 성령님훼방죕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이런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다. 그들은 행위로 구원 얻는 것으로 가르칩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그 율법을 다 못지킵니다. 그래서 외식과 위선의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들도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 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종교 다원주의, 선행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이 저주를 받을 가르침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큰 이단입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주님의 십바가 앞에 나아오는 심령에게 천국이 열려 있습니다. 두 번째 복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을 것임이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애통하는 사람이 위로의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화는 오히려 애통하는 과부 같은 원한이 있는 자를 괴롭게 하는 자, 또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외식적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하여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위로를 복으로 주십니다. 죄 사함을 주시고, 의롭다하십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외식으로 하는 자, 복이 없을 뿐 아니라, 저주가 있답니다. 기도를 길게해야할 때에 길게해야합니다. 금식 해야할 때에 금식해야합니다. 그것을 외식적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 하는 위선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십니다. 세 번째 복은 5:5에 온유한 자는 복있다고 했는데,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화는 15절에서 (Mat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이들이 온유함으로 세계를 점령하리라, 겸손함으로 평화의 복음, 사랑의 복음으로 땅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복음으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웁니다. 그러나 이 외식하는 자들은 교인을 얻기 위해 온 땅으로 다니지만, 얻은 교인들을 자신들 보다 더 배나 지옥 자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자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단들이 그러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열심입니까 이단들의 열심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그들은 그 얻은 교인들을 배나 지옥자식으로 마귀의 자식으로 만듭니다. 이단들의 받을 진노가 클 것입니다.
네 번째 복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있으니, 저희가 배 부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의를 이루는 삶의 복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복을 말씀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들을 희생하면서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하는 관심으로 사는 자는 복이 있으니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는 만족합니다. 성도의 만족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열심의 목적도 이것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자신이 여기에 쓰임 받았음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네번 째 화는 (마23:16)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23:17)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마23: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23:19)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마23: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마23: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마23: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의식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영광과는 상관없는 삶을 삽니다. 성전의 금이 성전 보다 더 크고 중요합니다. 제사보다 젯밥에 마음이 있다고 함같이 그들의 목적은 진정으로 물질주의입니다. 제단보다는 그 예물입니다. 구걸행위가 이것 아닙니까 오늘 교회가 이것을 목적한다면 예배당을 어떻게하면 크게 짓고 헌금을 많이 거둘 것인가 구걸하는 신앙행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목적은 아닌지 진정으로 의를 이루지 못해서 고민도 하고 노력도 하고 하나님께 기도도 드리고 자기 것을 바쳐 희생하다가 이루어지면 그것으로 기뻐하고 그것으로 삶의 재미를 누리는 이 사람이 정상적인 성도입니다. 다섯 번째의 복은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입니다. 모든 일에 대하여 긍훌을 가지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긍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섯 번째의 화를 받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23: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이들은 율법은 철저하게 지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율법의 근본정신인 위와 인과 신은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하여는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하루살이는 걸러내지만, 약대는 삼키는 일을 했습니다. 포도주를 마실 때에 하루살이가 들어갈까해서 걸러 내었지만 하루살이와 비교도 안되는 약대는 마구 삼킵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조그마한 것,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 이런 것에는 아주 철저하지만, 그들은 더 중요한 것, 본질적인 것들에 대하여는 예사로 생각합니다.
가장 큰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 긍휼입니다. 이것이 가장 크고 본질적인 것입니다. 사랑, 은혜, 구원, 생명이 중요한 것이지만, 이런 것들은 생각지 않고 아주 사소한 것을 가지고 다투고 따지고 해서 긍휼 없는 심판하는 자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이런 자에게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신앙, 우리가 보수해야할 진리,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은 너무나 크고 중요한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잊고서 세상적인 것, 그 어떤 것이라도 여기에 비하면 사소한 것입니다. 여섯 번째의 복은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우리가 왜 거룩한 삶을 살아야합니까 우리가 양심 생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기 위함입니다. (요일3: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요일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그 마음의 눈이 밝아야 하나님을 봅니다. 이보다 귀한 복이 있습니까
그런데 여섯 번째의 화는 (Mat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Mat23: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외식적으로 잔과 겉은 깨끗하게 합니다. 손을 깨끗하게 씻고,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그 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안을 먼저 깨끗하게 하라 그러면 겉도 깨끗하리라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어덟번째의 복은 (마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어디서나 화평을 말하고 화평을 도모하는 자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세상에서도 일컫겠다는 것입니다. 또 의를 인하여 핍박받는 자가 복있다고 여덟 번째 복을 말씀했습니다. (마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이 이같이 핍박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일곱 번째, 여덟번째의 화는 (마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23: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23: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마23: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마23: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마23: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이들이 화평을 말하는 것 같고, 의를 말하는 것 같으나, 회칠한 무덤 같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겉 모습이요 그 안에는 온갖 살인과 악독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화평케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지만, 이들은 선지자들을 죽인 자의 자손됨을 증거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뱀들이요, 독사의 새끼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했습니다. (마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23: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마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마23: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마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23: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마23: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이렇게 저주를 말씀하시지만, 세상을 사랑하시어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것이 몇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보고 탄식하시며 울부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구원의 역사가 이방에게로 넘어간다는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너희가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은 예루살렘,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이방에 복음이 전파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들어온 복을 발로 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시 이스라엘이 그 집들이 다 황폐하겠지만, 주님을 찬송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따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복음을 받지 않으므로 이방인 우리에게 까지 이 귀한 복음이 온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이 복음을 믿지 않으면 별 수 없이 버린 바 될 것입니다. 이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책망들었던 제일 큰 죄목은 무엇입니까 외식입니다. (마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마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23: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마23: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마23:7)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우리가 구원을 받은 자라도 외식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화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저주의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5장에서 말씀하신 복을 받을 자입니다. 하나님께 외식으로 나아갈 것이 아니라, 가난한 심령이 됩시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온유한 마음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되어서, 하나님의 긍휼로 긍휼히 여기는 자되고, 그 마음이 청결하며, 모든 사람으로 화평케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도 받는 자가 되어서 약속하신 복 받는 자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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