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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지도자 (마23:1-12)

본문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가르치면서 행위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야고보서 말씀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중심에 없는 행위, 진정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 앞에서 하는 행위가 아닌 즉 외식된 행위, 위선의 행위는 도리어 아주 악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행위의 그 중심을 살펴보아야합니다. 또 신앙생활의 연륜이나, 경험은 그것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부러울 만큼 아주 중요한 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처음에는 순수하게 신앙생활을 하다가도 차츰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연륜이 쌓아져 가면서 신앙이 변질되어가고, 세상적인 가치 기준으로 교회 안에서 높아지려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오염된 신앙을 돌이킬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 나아와서 계속적으로 까다로운 질문으로 주님을 시험하려 했던 종교지도자들,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하여 주님께서 평가를 해 주십니다. 우리들은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신앙생활 잘 하다가 미혹 받아 넘어지는 것은 잘못된 사람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주님의 이 시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람들을 조심해야합니다. (마23: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마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마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주님께서는 이 23장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지적, 말씀하시는데, 그러면서도 먼저 지도를 받는 자들이 지도자들에게 가질 자세를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이 말씀을 먼저 하지 않으셨다면 오늘 모든 지도를 받는 우리 교회 안의 교인들은 가르치는 자들에게 대하여 그 권위에 대하여 순종하는 일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면 교회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먼저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들을 세운 분은 하나님이시니 그들이 말씀은 바로 전하면서도 혹 외식된 행위, 즉 말과 행위가 다른 그런 모습을 보여도 교인들은 그 가르치는 말씀에 권위가 하나님이시니 그 말씀에는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러니 그 교역자가 바른 지식과 바른 행위를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 말씀은 어디까지나 그가 사람이니 그를 따라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권위는 그의 개인적인 신앙이나, 성경지식이나, 인간적인 권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세우신 하나님께 권위가 있는 것이고, 또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일 때에 그 말씀에 권위를 두고 따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가르치는 지도자를 존중히 여길 것이지만, 그래도 저들의 행위를 보고 시험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고 믿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시험들게 되어있습니다. 그렇다고 지도자들은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그 책임이 면해집니까 아닙니다. 지도자들은 얼마나 그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에 일치, 곧 언행일치를 해야하는지를 그 다음에 계속해서 많이 말씀합니다.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주님께서 큰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거짓된 신앙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첫 번째로, 그들은 (마23:3)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말과 행동이 일치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점점 말과 행위가 일치하는 신실한 사람이 되어져 가는 사람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까 말은 적게해도 그 행위가 따르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잘 못믿는 사람입니까 말은 많이 하는데, 행동은 없습니다. 행동하기 전에 시끄럽기는한데, 그 열매는 별 것없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나는 성경을 읽는다고 소리를 내어서 다른 사람들이 다 아는데 실제로 성경을 읽는 시간은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기도한다고 떠들석한데, 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 적은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말과 행위가 이중적인 것을 주님은 지적했습니다. 조리있게 말 잘하는 사람 중에 행위가 없는 사람을 조심해야합니다. 큰 소리 치는 사람, 장담하는 사람을 조심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 했습니다.
둘째로, 거짓된 신앙은 다른 사람은 가르치나 자신은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마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자기는 손 하나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오직 입으로만 사는 사람입니다. 희생이 없고, 실행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강요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잘못을 제일 많이 범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목사입니다. 율법학자들은 아주까다로운 율법을 613가지나 정했습니다. 그리고도 모자라서 한 율법에 울타리 율법이라고 해서 또 수십 가지 씩을 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지키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백성들이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들은 그 율법을 다 합리적으로 빠져 나가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들은 이 율법을 지키는 일에는 손가락 하나도 꼼작하지 않았습니다.
셋째로, 거짓된 신앙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 앞에서 선을 행합니다. 주님께서는 산상보훈의 말씀에서 기도나 구제나 금식의 선한 일을 하면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하는 외식을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거짓된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그러나 사람들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형태로 변질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위기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 기도를 하기 쉽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도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므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줄 알고 해야하는데 하나님은 눈에 안보이니 사람들에게 구제하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른 손이 하는 선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마음 먹었으면 선한 일의 실천을 왼손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빨리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왼손은 우리의 욕심, 주관, 이기적인 생각, 인색한 마음들입니다. 또 은밀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겠습니까 이토록 선한 일은 은밀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고는 잊으라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런 실수가 많습니다. 거짓된 신앙을 가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1.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차는 경문을 넓게 하고 옷술을 넓게 했습니다. 이는 경문이나 옷술에 하나님 말씀을 넣고 써 다니라는 말씀은 신명기에 있는 말씀인데 자나깨나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항상 지참해야하는 것은 아주 좋은 모범입니다. 이런데 이 외식신자들은 그 상자들을 크게 만들어서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일에 힘을 써야하지만, 우리들이 암만 알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는 것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은 것을 자랑하는 우리 교단 100독을 말하지만, 그것도 외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그들은 존경대우 받는 일을 좋아 했습니다. (마23: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마23:7)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잔치의 상석은 세속적인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또 회당의 상좌는 세상의 지위같이 교회 안의 지위도 그런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하는 저들입니다. 저들은 그냥 걸음으로 걷지 않습니다. 걸음 걸이도 거룩하게 걸으려고 애를 쓰고, 말을 해도 강단에 서면 목소리가 거룩하게 변합니다. 보통으로 말을 하다가도 기도만 하면 목소리가 변합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그것은 무엇인가 열등감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목회자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인정, 시선을 받아야하겠다는 생각이 그 사람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중심이 있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서는 곤란하니까 새련되게 교양있게 포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 그 행위가 위선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행위에 그 중심을 바로 가져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고 선한 행위를 하여야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 앞에서 선한 행위를 하는 사람은 거북합니다.
넷째로, 외식하는 거짓된 신앙은 사람들에게 큰 자라는 인정을 받으려하고, 자신을 높이는 교만함을 가집니다. 8-9절에서 (마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마23: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이 말씀을 오해해서 우리 모두는 형제지 누가 선생이며, 지도자냐 하면서 교회의 질서와 제도를 무시하는 이단이 있습니다. 얼마나 그럴 듯 합니까 그러나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다 참된 선생이신 성령님께, 참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참된 지도자이신 그리스도께만 지도와 양육을 받아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 선생, 지도자가 없어야한다는 말씀입니까 집안에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여기에 해석하는 말씀이 (마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스스로 자신을 높여서 사람들에게 선생대우를 받으려하고, 지도자 대우를 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선생이요, 지도자지만, 어떻게 우리를 가르쳤습니까 당신은 우리 아래 까지 낮아져서 우리를 섬김으로서 우리의 선생과 주가 되셨습니다. 낮은 자세에서 섬김으로 가르치고, 지도하고,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는 위치에서 대우를 받으려고 인정과 환영을 목적으로 선생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북의 김일성, 김정일은 이런 면에서 볼 때에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닙니다. 김일성을 어떻게 부릅니까 위대하신 아버지 수령, 지도자 김정일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바로 이 말씀대로 고르기도 어려운데 그 말을 딱 골라서 썼을까 신기합니다. 그것은 천주교황중심제에서 이 공산주의 이론이 세워져있기 때문입니다. 카톨릭은 교황을 아버지로, 유일한 지도자로 성경보다 더 큰 권위를 주었습니다. 신부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어떤 자가 큰 자라고 했습니까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자가 큰 자입니다. 그사람에게 많은 사람이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려면 자신을 낮추어야합니다. 낮은 데로 임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칠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들도 이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선거철에 인사하고 운동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낮은데서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힌 사람은 인정을 받는 큰 사람입니다. 우리가 높아지면 사람들을 섬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크신 분입니다. 왜 당신은 근본 부요하신 분으로서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서 우리를 만나시려고 이 세상에 낮은 자리, 그것도 인생 가운데 제일 낮고 천한 종의 자리에 까지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해서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로 당신의 몸을 희생하시기 까지 우리를 섬겼습니다. 이 은혜를 많은 사람들에게 베푸시기 위해서 당신이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여서 (빌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것이 겸손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겸손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것입니다. 겸손한 척하는 사람, 거짓으로 겸손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위선하는사람은 참 겸손아닙니다. 계속 손을 비비면서 웃고 한다고 머리 숙이고 한다고 겸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낮추므로 교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속으로는 부글 부글 끓어 오르면서도 겉으로는 흠 잡히지 않기 위해 참고 웃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했습니다. 가르치는 자들의 행위를 보지 말고 그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두고 신앙의 걸음을 걸어야합니다. 사람은 거짓되고, 변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행위를 하면서 우리의 자신의 신앙생활이 외식, 위선이 되지 않도록 항상 살펴야합니다.
1. 말만하고 행하지는 않는 외식신앙,
2. 가르치나 자신은 손도 까닥하지 않는 위선,
3.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위선의 행위
4. 어떻게 하든지 다른사람들 보다는 나은 위치에서 섬김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교만함을 찾아 회개해야합니다. (마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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