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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탄생2 (마2:1-3)

본문

2.예수를 경배하려 온 동방의 박사들
1주님께는 누구나 나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태어 나셨을 때에 예수께 온 최초로 방문자는 양치는 목자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눅2: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 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하고 (눅2: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눅2: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수님께 왔다고 말합니다. 이 두 기록을 종합해 보면 우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낮고 천한 곳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낮은 그룹을 대표하는 양치는 목자들에게서부터, 가장 존경받는 엘리트 그룹의 대표인 동방의 박사들에게까지 그들의 경배를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무엇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까 만왕의 왕이시요, 만 주의 주가 되시는 주님께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죄인이든 의인이든, 가난하든 부하든, 잘났던 못났던, 배웠던 못 배웠던, 가졌던 못 가졌던 어느 누구나 나갈 수 있고, 경배를 드릴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에게는 신분이, 환경이, 자격이, 조건이, 상태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어느 누구든 주님께 나아가 주님께 아뢸 수 있고,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주님과 대면할 수 있는 그런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누가 나가든, 어떤 모습으로 나가든 외면치 않으시고 다 받아 주시며, 쉼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조건에 따라서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무론 하고 받아 주시며 은혜 주시는 분이십니다. 혹시 이 중에 나같이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무슨 하나님을 믿고, 무슨 낯이 뚝겁다고 하나님께 기도하겠나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은 죄 지었다고 외면하지 않습니다. 죄인이라고 갈새하지 않습니다. 죄인이라고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그 죄인을 죄에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혹시 이 중에 믿음의 모습이 변변치 않다고 여겨 주님 앞에 담대히 나가지 못하고 계신 분 계십니까 주님은 믿음이 적다고 뭐라지 않습니다. 혹시 이 중에 믿음과 생활에 이중적인 모습 때문에 나 같은 것이 무엇을 하겠나, 나 같은 것이 교회에 무엇이 필요하겠나 하고 고민하고 갈등하며, 마음 아파하며 주저주저 하는 사람 있습니까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주님은 내 모습 어떠하든 나아가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혹시 나는 교회에 헌금도 많이 못내고, 십일조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내가 뭐 잘났다고 앞에서 일하고, 말하겠는가 하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께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목자든, 박사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에 주님을 경배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됩니다. 주님은 그런 마음들을 받으시며 기뻐하시며 만나 주시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바로 주님의 몸된 교회가 이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을 따지지 않고 주안에서 하나 되어 오직 한가지 목적, 주님을 경배하는 이곳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2주님께 나가는 자는 간절한 열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들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다가 구원의 주, 메시야가 나타날 것을 발견하고 먼 길이지만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이 동방에서 별을 보고 예루살렘까지 오는데는 먼 거리이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멀고, 길이 험하여도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별을 보고 메시야를 찾아나가는 그 열정을 누그러뜨릴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열정이 있었기에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경배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동방 박사들의 열정이 바로 나에게도 동일하게 있기를 원합니다.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갈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게 하신 일들을 나도 잘 감당해야 하겠다는 열정이 있어야 사명을 감당해 나갈수 있습니다. 전도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전도하다가 당하는 어려움, 핍박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고난의 일들이 내게 닥친다 해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리라는 열정이 있어야 고난을 이겨 나갈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주를 위해 살고자하는 열정이 있으니까 그의 앞길을 막을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3열정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니라 적극적인 찾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메시야에 대한 구원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열정을 가지고 이들은 별을 따라 메시야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주를 향한 열정, 복음의 열정, 영혼 구령의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열정을 가지고 그 열정이 이루어지도록 찾아 나서야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주님은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시기를 원합니다. (시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중요한 것은 동방박사들이 열정을 가지고 찾아나서니까 하나님께서 별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찾아나서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열정을 갖고 찾아나서는 자들을 찾도록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도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열정을 가지고 찾아나서면 찾게하실줄 믿습니다.
4환경과 조건에 너무 치우치지 말자는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찾아온 길은 멀고도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정말 조건을 따지자면 형편이 없는 조건이었고, 환경이었습니다. 이들이 조건이나, 환경을 보고 찾아나섰다면 이들은 도중에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별만 보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넜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여러분들이 해야 할 조건을 따지지 말고 오직 한가지만 바라보고 하십시오. 오직 주님, 오직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환경을 보고, 조건을 보니까 별을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오직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 바라보고 나가야 할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그를 잡아 죽이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그는 그 환경, 조건 때문에 올라가고 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행 20:23) 오직 성령님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는 오직 그가 복음을 증거해서 예수를 믿게하는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의 도우심만 바라보고 나아간 것입니다. 다니엘이 환경을 보자면 기도하면 안됩니다. 사자굴속에 집어 넣어짐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는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조건을 따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만 바라보고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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