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얻을 자 (마19:23-30)
본문
지난 삼일예배 때는 예수님께 영생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찾아왔던 부자 청년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청년은 부자였고, 청년의 나이로 희망이 있었고, 또 그는 관원으로서 명예와 권세까지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는 어려서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삶으로 흠 없이 살았음은 자랑할만 하였습니다. 그가 영생에 관하여 알고자 해서 예수님을 찾아왔고,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었지만, “네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는 말씀에 그는 부자였기 때문에 근심하고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에 대한 영적인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23-24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혹, 예수님께서 실수하신 말씀이겠습니까 이 말씀은 두 번이나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관용구는 진리의 말씀을 사람들이 잘 깨닫지 못하고 의심할 때에 강조하는 의미로 쓰시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어느 정도로 어려운가 하면 이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큰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어려운 일입니까 아닙니다. 이는 불가능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성경에서 살펴보면서 때때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참으로 우리의 선입적인 고정관념을 깨게 하시고, 또 우리의 인간의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기까지의 온전한 깨달음을 가지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대로라면
그렇다면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부자는 모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 누가 들어가겠습니까 이 말씀이 우리에게 상관이 없는 말씀입니까 우리 중에 부자가 없어서 다행입니까 이 말씀은 우리에게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아직 부자가 아닐지라도 부자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되기를 싫어하는 분은 저는 아직 찾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면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니, 아니 도무지 불가능하다고 하시니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갈등을 제자들도 가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묻고 싶은 질문을 그들이 주님께 드립니다. (마19:25)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심히 놀랐다는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강하게 강조하신 주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야합니다. 이 말씀에 여러분은 아무 의문도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걸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말씀하셨어도 상관 없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에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잘 묵상해야합니다. 부자는 아무도 천국에 못들어가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구원을 얻을 자가 있습니까” 라는 제자들의 질문에-주님께서는 (마19: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본문의 ‘부자’에 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부터 우리는 바로 내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여기 부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과연 돈 많은 사람은 천국에 못들어갑니까 성경 다른 곳에 누구든지 믿기만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고, 또 성경에 구원얻은 믿음의 사람 가운데 부자들도 많은데,
그렇다면 부자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또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자는 돈이 얼마나 있어야 부자입니까 재벌이라고 해도 자기 자본으로 기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가짜 부자들이 너무 많은데 여러분은 부자입니까 아닙니까 여러분들도 여기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자에 들어갈 수도 안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들어가는 것이 복 됩니까 안 들어가는 것이 복될 것 같습니까 부자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면 좋은 것이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이 부자에는 안 들어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이 부자는 돈의 위력을 믿는 사람, 돈의 가치를 알고서 돈으로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또 돈을 많이 가지고 있든지 가난하든지간에 여기 부자는 세상의 것들로 부하려하는 사람을 말씀합니다. 꼭 돈 만이 아닙니다. 세상의 것들로 부하려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돈이나 세상을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돈이 많으면서도, 세상에 가진 것이 많으면서도 이 본문의 주님이 말씀하시는 부자가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돈도 없이 지극히 가난하면서도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이런 부자일 수가 있습니다. 가난하면서도 세상에 돈의 위력을 믿고서 돈에 큰 가치를 두고 세상 것으로 부하려하는 자, 이 사람은 진정으로 세상의 부요함이 자기에게 소망이요, 그것이 자기의 구원인 줄 알고, 돈을 주로 섬기고 믿고, 바라보지, 주님이 도무지 필요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겠습니까 어떻게 이 세상의 것을 바라보고 세상의 물질에 믿음을 가지는 사람, 곧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겠습니까 구원은 세상의 것은 있으나, 없으나 세상으로는 소망이 없는 것으로 알고서 소망과 믿음을 주님께만 두고서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와서 무릎 꿇고 지은 죄를 자복하고, 구원의 은혜 베푸시기를 간구하는 자에게 이 구원이 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천하가 다 달려들어도 이 세상의 것들로 부하려하는 부자를 천국에는 들어가게 못합니다. 약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정말로 쉬우면 쉽지, 세상을 믿고, 바라보고 주를 믿지 않는 사람을 천국에 들어가게 못한다는 말슴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할 수 없으되,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에 많이 가진 부자 가운데도 그 가진 것이 영원과 비교할 때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고, 또 그것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심을 알고서 이 세상 것 보다도 더 크고 영원한 구원을 요청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서 그렇지 세상에 많이 가진 자, 많이 배운 자들 가운데 이런 사람이 드물게 있습니다. 그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실 때에 이 모든 것의 가치를 환히 보게 되고, 이 모든 것 보다 천국을 더 크게 여기는 자로 눈이 열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상태로는 지금 보이는 것에 대한 소망을 끊을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많이 가진 자입니까 아니면 적게 가진 자입니까 여러분은 많이 가진 자 되기를 원합니까
적게 가진 자 되기를 원합니까 부자되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성경을 오해하면 부자는 다 악하고, 세상에 정권자나, 상전은 다 착취자라고 하는 해방신학을 하는 사람 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부자도 하나님께서 되게 하시면 복됩니다. 가난이 복입니까 하나님께서 복 되게 하시면 가난도 복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으신 것을 믿으십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어떻게 여러분에게 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부자가 천국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하셨는데 그러나 하나님께서 되게 하시는 자는 되게 하셔서 여러분이 이 기적으로 천국구원을 얻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긍훌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막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막8: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여기에 온 천하는 물질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얻고도 이 구원을 얻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가치 있다 말입니까 영생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 확실합니까 온 천하 보다 내가 주님을 믿음으로 받은 영생의 구원이 더 크다는 것을 믿으시는 분은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이 때 수제자인 베드로가 또 나섭니다. (마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습니다. 이런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베드로와 제자들은 자신들은 그 부자 청년과 같이 물질 때문에 근심하며 주님을 떠나지는 않은 것을 깨닫고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른 우리들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물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질문에는 아직도 기복주의 같은 요구가 있습니다. 무엇인가 세상의 것들을 버렸으니, 우리에게 주님께서 주실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사실 베드로가 버린 것은 얼마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말대로 아직 모든 것을 다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이 베드로의 유치한 질문에 주님께서 무안을 주거나 책망하지 않으시고 다음과 같은 놀라운 보상의 약속을 하십니다. 이 약속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하신 것인데, 이 놀라운 복이 주님의 제자되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주님을 제자된 자들에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이 주님이 하신 말씀의 진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이 아니면 우리가 낙심할 일 많고, 피곤할 일 많은 십자가 짐같은 이길을 걸어갈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자에게 열두 보좌에 앉게 하시고, 이스라엘 열 두지파를 심판하는 영광된 권세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아멘하는 자가 이 약속된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실 때에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육체 이스라엘나라를 회복하신 이후가 아니라, 영원한 나라가 세워질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그 때에 모든 것이 새롭게 될 때에 그 때에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시며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를 아는 자가 이를 소망하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무엇 때문에 주님을 따릅니까 눈에 보이는 어떤 것 보다도 이 영원하고 영광스런 구원을 생각하면서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세상의 것을 버리고 자기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고난도 달게 받는 것입니다. 이 투자는 얼마나 부가가치가 높습니까 오늘 세상에 주식투자해서 이익을 보려하는 사람들, 이 영원한 것을 그들이 알았다면 얼마나 환장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끼일 틈이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나라가 아직은 다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비밀한 곳이기 때문에 다 오늘에 잘난 자들이 이를 무시합니다.
약한 자, 못난 자, 어리석은 자 우리를 세워서 이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마19: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을 전토를 버리라는 말씀은 이런 것들 때문에 주님 따르는데에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소중하지만, 우리의 전토가 소중한 것이지만, 주님을 따르는 것은 이것 보다도 더 귀하고 중한 것임을 말씀합니다. 이것들을 핑계해서 주님 따르는 일에 지체하거나 지장되지 않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이런 것들을 다 포기하라시면 포기할 수 있겠는지 자신을 시험해 보아야합니다. 내 삶의 중요한 대상들, 어쩌면 나는 이것들을 위해서 신앙생활,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고있는 것은 아닌지. 교회에 출석 잘하고, 봉사 잘하고, 직장생활과 가정 생활이 원만합니다. 이웃을 잘 섬깁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일도 잘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완성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온전한 헌신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내 가진 재능, 시간, 물질을 드리니까 하나님께서 만죽하시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이전에는 내가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을 드린다고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 이 시간을 써도 됩니까 이 돈을 써도 됩니까 하고 달라집니다. 이것이 온전한 헌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는 자에게 버린 것을 여러 배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말씀에는 (막10: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또 영생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되 백배를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 가운데 백배를 받은 가정이 있는지. 그러나 이것들은 여전히 불완전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것들은 다 여전히 핍박을 겸하여 받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시험꺼리가 여전히 있습니다. 영원한 영생이 있습니다. 하늘의 영원한 것.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포기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것으로 갚아주신다고 했습니다. 세상 것으로 부하려 하는 자가 되지 맙시다. 하나님으로 부하려하여 갈급하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합시다.
주를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또 자기 가진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결단이 제자의 걸음입니다. 이 걸음을 걷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영원한 것으로 또 세상의 것들도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오늘 주를 위해 사는 형제들의 삶을 보면 이 바보 같기도하고 불쌍하게도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를 위한 삶을 산다고 해도 한계를 정해놓고 믿지는 않습니까 오늘 뿐이면, 우리에게 영원한 내세가 없다면 당신이 지혜로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은 오히려 이 세상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을 떠나 우리가 갈 곳이 영원한 곳입니다. 이를 알고 오늘에 이왕에 두고 갈 것, 썩어 문들어질 육신, 쇠하여질 물질, 이를 영원 것으로 옮기고 심는 삶을 사는 사람이 그 때에 지혜자였다고 할 것입니다만 그 때에 당신이 후회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될 일이있다고 했습니다. 이 하늘나라는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이 앞서는 것도 아닙니다. 나중된 우리들도 앞 설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앞서가던 사람도 나중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볼 때에 하늘나라에 가면 저런 사람은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던 사람들이 오히려 뒷전이 되고, 세상에서 멸시받고 알아 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영광을 얻을 공평의 나라인 것을 말씀합니다. 뒤 섰다고 생각합니까 어서 힘을 씁시다. 앞서 있다고 생각합니까 나중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어느 정도로 어려운가 하면 이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큰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어려운 일입니까 아닙니다. 이는 불가능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성경에서 살펴보면서 때때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참으로 우리의 선입적인 고정관념을 깨게 하시고, 또 우리의 인간의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기까지의 온전한 깨달음을 가지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대로라면
그렇다면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부자는 모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 누가 들어가겠습니까 이 말씀이 우리에게 상관이 없는 말씀입니까 우리 중에 부자가 없어서 다행입니까 이 말씀은 우리에게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아직 부자가 아닐지라도 부자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되기를 싫어하는 분은 저는 아직 찾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면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니, 아니 도무지 불가능하다고 하시니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갈등을 제자들도 가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묻고 싶은 질문을 그들이 주님께 드립니다. (마19:25)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심히 놀랐다는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강하게 강조하신 주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야합니다. 이 말씀에 여러분은 아무 의문도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걸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말씀하셨어도 상관 없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에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잘 묵상해야합니다. 부자는 아무도 천국에 못들어가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구원을 얻을 자가 있습니까” 라는 제자들의 질문에-주님께서는 (마19: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본문의 ‘부자’에 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부터 우리는 바로 내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여기 부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과연 돈 많은 사람은 천국에 못들어갑니까 성경 다른 곳에 누구든지 믿기만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고, 또 성경에 구원얻은 믿음의 사람 가운데 부자들도 많은데,
그렇다면 부자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또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자는 돈이 얼마나 있어야 부자입니까 재벌이라고 해도 자기 자본으로 기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가짜 부자들이 너무 많은데 여러분은 부자입니까 아닙니까 여러분들도 여기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자에 들어갈 수도 안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들어가는 것이 복 됩니까 안 들어가는 것이 복될 것 같습니까 부자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면 좋은 것이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이 부자에는 안 들어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이 부자는 돈의 위력을 믿는 사람, 돈의 가치를 알고서 돈으로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또 돈을 많이 가지고 있든지 가난하든지간에 여기 부자는 세상의 것들로 부하려하는 사람을 말씀합니다. 꼭 돈 만이 아닙니다. 세상의 것들로 부하려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돈이나 세상을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돈이 많으면서도, 세상에 가진 것이 많으면서도 이 본문의 주님이 말씀하시는 부자가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돈도 없이 지극히 가난하면서도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이런 부자일 수가 있습니다. 가난하면서도 세상에 돈의 위력을 믿고서 돈에 큰 가치를 두고 세상 것으로 부하려하는 자, 이 사람은 진정으로 세상의 부요함이 자기에게 소망이요, 그것이 자기의 구원인 줄 알고, 돈을 주로 섬기고 믿고, 바라보지, 주님이 도무지 필요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겠습니까 어떻게 이 세상의 것을 바라보고 세상의 물질에 믿음을 가지는 사람, 곧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겠습니까 구원은 세상의 것은 있으나, 없으나 세상으로는 소망이 없는 것으로 알고서 소망과 믿음을 주님께만 두고서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와서 무릎 꿇고 지은 죄를 자복하고, 구원의 은혜 베푸시기를 간구하는 자에게 이 구원이 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천하가 다 달려들어도 이 세상의 것들로 부하려하는 부자를 천국에는 들어가게 못합니다. 약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정말로 쉬우면 쉽지, 세상을 믿고, 바라보고 주를 믿지 않는 사람을 천국에 들어가게 못한다는 말슴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할 수 없으되,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에 많이 가진 부자 가운데도 그 가진 것이 영원과 비교할 때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고, 또 그것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심을 알고서 이 세상 것 보다도 더 크고 영원한 구원을 요청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서 그렇지 세상에 많이 가진 자, 많이 배운 자들 가운데 이런 사람이 드물게 있습니다. 그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실 때에 이 모든 것의 가치를 환히 보게 되고, 이 모든 것 보다 천국을 더 크게 여기는 자로 눈이 열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상태로는 지금 보이는 것에 대한 소망을 끊을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많이 가진 자입니까 아니면 적게 가진 자입니까 여러분은 많이 가진 자 되기를 원합니까
적게 가진 자 되기를 원합니까 부자되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성경을 오해하면 부자는 다 악하고, 세상에 정권자나, 상전은 다 착취자라고 하는 해방신학을 하는 사람 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부자도 하나님께서 되게 하시면 복됩니다. 가난이 복입니까 하나님께서 복 되게 하시면 가난도 복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으신 것을 믿으십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어떻게 여러분에게 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부자가 천국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하셨는데 그러나 하나님께서 되게 하시는 자는 되게 하셔서 여러분이 이 기적으로 천국구원을 얻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긍훌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막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막8: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여기에 온 천하는 물질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얻고도 이 구원을 얻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가치 있다 말입니까 영생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 확실합니까 온 천하 보다 내가 주님을 믿음으로 받은 영생의 구원이 더 크다는 것을 믿으시는 분은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이 때 수제자인 베드로가 또 나섭니다. (마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습니다. 이런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베드로와 제자들은 자신들은 그 부자 청년과 같이 물질 때문에 근심하며 주님을 떠나지는 않은 것을 깨닫고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른 우리들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물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질문에는 아직도 기복주의 같은 요구가 있습니다. 무엇인가 세상의 것들을 버렸으니, 우리에게 주님께서 주실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사실 베드로가 버린 것은 얼마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말대로 아직 모든 것을 다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이 베드로의 유치한 질문에 주님께서 무안을 주거나 책망하지 않으시고 다음과 같은 놀라운 보상의 약속을 하십니다. 이 약속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하신 것인데, 이 놀라운 복이 주님의 제자되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주님을 제자된 자들에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이 주님이 하신 말씀의 진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이 아니면 우리가 낙심할 일 많고, 피곤할 일 많은 십자가 짐같은 이길을 걸어갈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자에게 열두 보좌에 앉게 하시고, 이스라엘 열 두지파를 심판하는 영광된 권세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아멘하는 자가 이 약속된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실 때에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육체 이스라엘나라를 회복하신 이후가 아니라, 영원한 나라가 세워질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그 때에 모든 것이 새롭게 될 때에 그 때에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시며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를 아는 자가 이를 소망하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무엇 때문에 주님을 따릅니까 눈에 보이는 어떤 것 보다도 이 영원하고 영광스런 구원을 생각하면서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세상의 것을 버리고 자기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고난도 달게 받는 것입니다. 이 투자는 얼마나 부가가치가 높습니까 오늘 세상에 주식투자해서 이익을 보려하는 사람들, 이 영원한 것을 그들이 알았다면 얼마나 환장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끼일 틈이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나라가 아직은 다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비밀한 곳이기 때문에 다 오늘에 잘난 자들이 이를 무시합니다.
약한 자, 못난 자, 어리석은 자 우리를 세워서 이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마19: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을 전토를 버리라는 말씀은 이런 것들 때문에 주님 따르는데에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소중하지만, 우리의 전토가 소중한 것이지만, 주님을 따르는 것은 이것 보다도 더 귀하고 중한 것임을 말씀합니다. 이것들을 핑계해서 주님 따르는 일에 지체하거나 지장되지 않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이런 것들을 다 포기하라시면 포기할 수 있겠는지 자신을 시험해 보아야합니다. 내 삶의 중요한 대상들, 어쩌면 나는 이것들을 위해서 신앙생활,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고있는 것은 아닌지. 교회에 출석 잘하고, 봉사 잘하고, 직장생활과 가정 생활이 원만합니다. 이웃을 잘 섬깁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일도 잘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완성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온전한 헌신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내 가진 재능, 시간, 물질을 드리니까 하나님께서 만죽하시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이전에는 내가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을 드린다고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 이 시간을 써도 됩니까 이 돈을 써도 됩니까 하고 달라집니다. 이것이 온전한 헌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는 자에게 버린 것을 여러 배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말씀에는 (막10: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또 영생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되 백배를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 가운데 백배를 받은 가정이 있는지. 그러나 이것들은 여전히 불완전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것들은 다 여전히 핍박을 겸하여 받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시험꺼리가 여전히 있습니다. 영원한 영생이 있습니다. 하늘의 영원한 것.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포기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것으로 갚아주신다고 했습니다. 세상 것으로 부하려 하는 자가 되지 맙시다. 하나님으로 부하려하여 갈급하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합시다.
주를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또 자기 가진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결단이 제자의 걸음입니다. 이 걸음을 걷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영원한 것으로 또 세상의 것들도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오늘 주를 위해 사는 형제들의 삶을 보면 이 바보 같기도하고 불쌍하게도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를 위한 삶을 산다고 해도 한계를 정해놓고 믿지는 않습니까 오늘 뿐이면, 우리에게 영원한 내세가 없다면 당신이 지혜로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은 오히려 이 세상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을 떠나 우리가 갈 곳이 영원한 곳입니다. 이를 알고 오늘에 이왕에 두고 갈 것, 썩어 문들어질 육신, 쇠하여질 물질, 이를 영원 것으로 옮기고 심는 삶을 사는 사람이 그 때에 지혜자였다고 할 것입니다만 그 때에 당신이 후회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될 일이있다고 했습니다. 이 하늘나라는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이 앞서는 것도 아닙니다. 나중된 우리들도 앞 설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앞서가던 사람도 나중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볼 때에 하늘나라에 가면 저런 사람은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던 사람들이 오히려 뒷전이 되고, 세상에서 멸시받고 알아 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영광을 얻을 공평의 나라인 것을 말씀합니다. 뒤 섰다고 생각합니까 어서 힘을 씁시다. 앞서 있다고 생각합니까 나중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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