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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현모의 모습 (마19:13-15)

본문

I. 나라가 어려우면 현신(賢臣)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나라의 어려 움을 풀 현신을 생각할때 우리는 그 현신을 길러낸 현모를 생각하게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나라를 어려움에서 건져냅니다.
그런데 그 지혜로운 사람 뒤에는 그 지혜로운 사람을 만들어 낸 어머니가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는 매우 어려운 가운데 처해있습니다. 나라만 어려 운 가운데 처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도 어려운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는 자들은 이 어려움 뒤에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자들은 이 어려움과 함께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리게 됩니다. 지금 이 어려움으로 인하여 수 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있으며,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어려움으로 인하여 어쩌면 이 나라도 건국 이래 최악의 불행으 로 치닫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을 바짝차리고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 려울때 가장 중요한 역활을 하는 자는 바로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들이 어떤 정식과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냐에 자녀의 운명과 그 가정의 운명 이 달려 있으며,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어머니들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어머니들에게는 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가정과 식구들을 잘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능력을 아버지들에게 주시지 않고 어머니들에 게 주셨습니다. 1847년 2월 11일 미국 오하이오 주 밀란에 사는 사무엘의 집에 3번째 아 이가 태어났습니다. 그가 바로 에디슨입니다. 그는 1855년 8살에 포 오트 휴우런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는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 국민학교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학교생활이 힘들 수 밖에 없 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담임선생님은 대단히 권위적인 선생님이라 가르치는 것 외 에 질문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에디슨은 그의 선생님 클리포오드와는 정반대의 성격의 소유자 였습니다. 무엇이든지 묻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였습니다. 엘은 무엇이건 간에 덮어놓고 "왜"냐고 질문하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였습니다. 엘이 동네 대장간에 자주 놀러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대장간 아저 씨에게 "불은 왜 타죠"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대장장이는 "불은 불이니 까 타지"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엘은 다시 "글쎄 불은 왜 타느냐고요 "고 다시 물었습니다. 아직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장장이는 "불은 불이니까 타고, 물을 끼얹으면 꺼지는 거야. 그 뿐이야."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엘은 "그럼 물을 끼얹으면 불은 왜 꺼져요 "하고 다시 물었읍니다. 대장장이는 더 이상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 화를 냈습니다. 속시 원한 대답을 듣지 못한 엘은 집에 돌아와서 헛간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 리고 물을 갔다가 부었습니다. 그러나 불은 순식간에 헛간을 다 태워 버 렸습니다. 엘은 이렇게 묻기를 좋아하는 어린이였고, 담임선생님은 묻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선생님이였습니다. 그래서 엘은 학교에 입학한지 석달만에 학교에서 퇴학을 맞았습니다. 위대한 발명가가 될 어린이의 운명이 완전히 저능아로 전락해 버릴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렇게 에디슨이 어려움에 처했을때 그를 그 위기에서 구해서 훌륭한 발 명가로 만든 자는 바로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학교 선생 님이 포기한 자기의 아들 엘을 직접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후에 에디슨은 자기의 어머니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토 마스 에디슨이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찬사를 그의 어머니에게 돌렸다. "우리 어머니는 오래 사시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내게 끼친 영 향은 지금까지 내 일생에 계속되어 왔다. 나는 어머니가 내가 어렸을때 나를 훈련시킨 그 영향을 결코 잃어 버릴 수없다. 만약 내 일생의 어려운 위기의 때에 어머니의 나에 대한 믿음과 나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었다면 나는 발명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항상 부주의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어머니는 나와 다른 정신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와 잘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나는 어머니 곁을 떠나 잘못된 길로 빠져야만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확고부동 한 신념과 선하심에는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잠재적인 능력이 있었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만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항상 나에겐 축복이다." 이렇게 어려움을 만났을 때 어머니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 어머니가 죽을 자식을 살릴 수도 있으며, 살 자식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망할 가정을 살릴 수도 있고, 살릴 수 있는 가정을 망칠 수도 있읍니다. 어려울 때 어머니는 이렇게 중요합니다. 역사를 움직인 자들은 남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남자들을 키우고 움 지이는 자들은 바로 현모들이였습니다. 역사상에는 세계의 역사를 이끌 었던 훌륭한 자들을 길렀던 훌륭한 어머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였던 조오지 와싱턴의 어머니는 그의 아들 와싱턴 에게 그가 미국 국가 앞에서 일생동안 지켰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도덕에 대한 성서적인 개념을 가르쳤다. 와싱톤의 가정은 하루 두번 정규적로 가정 예배를 드렸으며, 예배 시간에는 성경을 읽었다. 2차 세계 대전 때 유명한 대장이였던 퍼니넌드 포크(Ferdinand Foch)의 어머니는 포크에게 하나님을 믿고, 기도할 것을 가르쳤다. 그래서 포크는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를 섬겼던 사람들은 "포크 대 장은 기도의 사람이였으며,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예언자였다"고 말을 한다. 그는 평생동안 그의 어머니에게서 배운 습관에 따라 계속해서 기도하는 사람이였다. 미국의 20 대 대통령을 지낸 제임스 가필드(James A. Garfield)의 어머 니는 "여호와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녀 의 자녀들에게 가르쳤던 성실한 기독교인였다. 4명의 자식을 든 과부였 던 가필드 대통령의 어머니는 농장에서 농사를 질 뿐 아니라, 자기 손으로 통나무 집을 지었습니다. 그 집은 교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통나무 집에서 자기 자식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집 자녀들도 가르 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어머니가 참으로 훌륭한 어머니며, 자녀들을 훌륭한 자녀들로 키울 수 있는 가를 몇시간에 걸처 살펴 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오는 어머니이다. 현명한 어머니는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오는 어머니입니다. 자식이 어렸을때, 그 자식을 어디로 데려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자녀 들이 어렸을때는 어머니 말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어렸을때 그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와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자라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다시 부모의 말 을 듣기 위해서는 그 자녀들이 철이 들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철이 들면 부모님의 말씀에 다시 순종을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살아 있을 동안에 철들지 않는 자식들이 많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 자식이 자라서 철들면 그 때 그들을 예수님께로 데려가야 지 하고 생각을 하면, 살아 있는 동안 철이 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를 영원히 예수님 앞으로 데려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렸을때 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 와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년 예루살렘의 어머니들도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이렇게 자식이 어렸을때에 그를 어디로 데려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운명은 그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사를 가거나 이동을 할때 신중을 기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사가 자녀들의 운명을 바꿀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좋은 길을 선택하여 걸어 갈 것 같아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좋은 길을 찾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나쁜 길을 찾아가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또한 마귀 사단이 그들을 잡아서 나쁜 곳으로 데려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하여 이사를 3번씩이나 했습니다. 하이람(Hiram)이란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자식에 대해 무관 심했고, 아버지는 아들을 꾸짖기만 했으며, 그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 하이람의 부모는 가진 것이 없어서 하이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 고, 사랑도 주지 못했지만 그러나 한 가지 잘 한 것이 있다. 그것은 강 제로 그 아들에게 한 것이다. 그들은 결국 아들을 집에 두지 않고 17세 때 강제로 육군사관학교에 넣었다. 그러나 하이람은 부모님을 조금도 원 망하지 않고 자기앞에 오는 운명을 최선을 다해 가꾸었다고 한다. 그는 키가 5피트 1인치(약 152c m)이고, 체중이 겨우 120 파운드로 미국 남자 치 고는 몹시 작은 체격이었다. 학교에서도 놀림감이 되었고 성격상 사관학 교가 싫었으나 그는 자신 앞에 닥친 일은 기어이 해낸다는 투지로 간신히 아슬아슬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였다. 그가 사관학교에 입학했을때 학교측 실수로 다른 이름과 혼돈하여 유리 세스(Ulysses)란 엉뚱한 이름으로 등록되었는데, 소심한 그는 고치기도 귀 찮아 그후 평생 자기 이름을 유리세스로 사용하였다. 그는 체격이 작았으 나 무척 대범하여 남의 일이나 자기의 일이나 지나간 일에는 집착하지 않고 깨끗이 잊어버렸다. 남북 전쟁 때 그는 혁혁한 공과 인내심과 투지, 깨끗 한 성격 때문에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워싱턴 이후 최초로 육군 대장이 되었고, 제대후 미국 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이름이 유리세스 그랜트(Ulysses Grant)이다. 하이람의 부모는 자식에게 잘해 준 것이 하나도 없지만 한가지 그의 운 명을 바꿔 주는 좋은 일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 부모는 태어날 때 부터 신체적으로 하나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잘 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를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보낸 것입니다. 이렇게 자식을 어디로 데려가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자식들을 어디로 데려가야 그것이 후에 그 자식들 에게 큰 도움이 될지 모릅니다.
우리의 자식들이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가 장래에 목사가 될지, 사업가가 될지, 운동선수가 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을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우리는 그 자식의 장래에 큰 도움이 되라고 그 자녀를 미국으로 데려 갔는데, 그것이 그 자식으로 인생을 망치는 기회가 되는 경 우도 있습니다. 장래에 돈을 벌 사업가가 될 사람을 우리는 하지도 못하고, 하기도 싫 어하는 공부를 억지로 시키느라고, 학원에 보내고 학교에 보느라고 그의 운 명을 파멸로 이끄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실 우리의 자녀들을 어디로 데려가야 좋을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으로만 데리고 오면 장차 그가 어떠한 사람이 되 든지 상관없이 그에게 가장 좋은 기회가 되는 줄 믿습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 앞으로 우리 자녀들을 데리고 와야 할까요
1) 예수님 앞에 나오면 모든 무거운 짐이 다 벗어 집니다. (마 11:28-30)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오 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 세상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던 우리에게 쉼이 찾아 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 우리의 영혼이 쉼을 얻습니다.우리 의 마음이 쉼을 얻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쉼을 얻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겠 습니까 아니면 그 무거운 짐을 다 벗어 놓고 쉼을 얻으며 살아가는 것 이 좋겠습니까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만 쉼을 얻는 생활을 할 수가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을 강제라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오자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 자녀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가기가쉽지 않읍니다. 그러나 강제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녀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 리고 가야 합니다.
2) 예수님 앞에 나오면 절대로 버림을 받지 않습니다. (요6:37) 말씀을 보며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 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예수님 앞에 데리고 가면 영원히 버림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백발이 되어 쓸모 없어져도 버 림을 받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사용하다가도 쓸모 없어지면 버립니다. 병들면 버립니다. 귀찮으면 버립니다. 돈 들어가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싫어 버리시지 않습니다. 버림받은 자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이 땅에 가장 불쌍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버림받은 자들입니다. 세상은 쓸모 없어지면 버립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이 버림받지 않은 자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로 데리고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오는 어머니가 바로 현명한 어머니입니다.
3) 예수님 앞에 나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인생의 길에는 수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다가 보 면 수 많은 문제들을 만납니다. 아무런 문제 없이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살아 있는 자들은 다 문제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식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이 살기를 원하면 그 자식을 죽이면 됩니다. 죽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문제가 없이 살아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자는 낙오자가 됩니다. 실패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하는 자는 그 문제로 인하여 더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성공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내 자식의 앞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를 바라지 말고, 그 문제들을 넉넉히 해결해 나갈 능력과 지혜가 있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인생의 문제의 해답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 앞에 나가면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영혼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육신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가정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사업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는 밤새도록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났을때 그물을 들 수 없을 정 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의 문제의 해답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께 자 녀들을 데리고 가는 어머니가 지혜로운 어머니입니다.
4) 예수님 앞에 나가면 결코 주리거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요6:35)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 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불쌍한 자는 배고픈 자들입니다. 자식이 먹을 것 이 없어서 굶주리는 것을 보면 부모의 마음은 몹씨 아픕니다. 우리는 매 스컴을 통하여 이 땅에 굶주린 자들에 대한 모습을 보아서 굶주린 자들의 비극이 어떠한 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면 결코 주리지 아니합니다. 결코 목 마르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이 있는 곳에는 언제자 부요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빈들에 서 말씀을 전할때,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설교를 오래 오래 하셨습니다. 먹을 때가 훨씬 지났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빈들이라 먹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군중은 장정만 5,00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이라고는 어린 아이가 준비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뿐이였습니다. 이제 그들은 꼼짝없이 굶주려야만 했습니다. 허기진 배를 하고 돌아가 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 마리를 가지고, 거기 모인 모든 사람으로 다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12 광주리에 남게 하셨읍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다 배불리 먹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12 광주리를 남게 하셨습니다. 모자라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앞에 나아가면 결코 주리거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식들이 평생 먹을 것을 남겨 두고 죽을 수 있겠읍 니까 설령 평생 먹고 남을 것을 남겨 두고 죽는다손 치더라도, 그 자 식이 그것을 잘 관리 할 자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자녀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면 영원히 결코 주리지 않으며, 목 마르지 않을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가는 어머니가 현명한 어머니입니다. 5) 예수님 앞에 나오면 팔자와 운명이바뀝니다. 이 땅에 태어날 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태어난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운명에 따라 살아가면 나름대로 행복하 게 살 수가 있습니다. 지혜가 부족한 자들은 지혜가 부족한데로 하나님이 주신 정을 따라 행복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돈을 버는 능력이 없는 자는 돈을 벌지 못하는 대로 가난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짐승들과 같이 그렇게 모든 것에 순응하면서 살아갈 수만 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는 자기의 운명에 역행해서 더 좋은 행복 을 추구하며 살아 가려는 욕망을 주셨습니다. 이 욕망이 인간을 다른 피조물들과 구별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이 욕망이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은 오직 하나님이 정해진 운명에 따라서만 살아갑니다. 그래서 새의 집은 새가 이 땅에 창조된 이후로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 았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바닷가 갯벌에 집을 짓고 사는 계의집은 그 갯별이 창조되고, 그 계가 창조된 이후로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밀물과 썰물이 그렇 게 그 갯벌을 새롭게 만들어 주어도 그들의 집은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것을 먹으며 삽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행복하게 삽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언제나 자기의 운명을 창조적으로 개발하려고 합니다. 자기의 팔자를 바꾸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합니다. 이 인간의 나쁜 운명과 팔자가 좋은 운명으로 바뀌는 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앞입니다. 예수 앞에만 나오면 팔자가 바뀝니다. 제일 좋은 팔 자로 바뀝니다. 제일 좋은 운명으로 바뀝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나의 운명과 팔자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우리의 운명과 팔자가 제일 좋은 운명과 팔자고 바뀝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요9:1-12)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길을 가시는데 날 때부터 소경인 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 부터 소경이라,
(1) 소경으로 살아야 했읍니다. 소경이 그의 운명이였습니다.
(2) 죄의 굴례를 쓰고 살아야 했읍니다. 사람들은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필시 그의 부모나 아니면 전 생에 그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그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 들이 그를 보면 불쌍하게 여기기 보다는 저주를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저 주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였습니다. 그러 니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겠습니까
(3) 그는 걸인이 였습니다. 그는 걸인으로 사는 것이 그의 운명이였습니다. 그는 소경 이였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있었던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아 흙을 이기고 그 흙을 그의 눈에 발랐습니다. 그 리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가의 눈이 곧 열러 서 만물을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팔자가 바뀌었습니다. 자유한 자가 되 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행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앞에 나올때 이런 놀라운 운명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자들이 현명한 어머니입니다.
6) 위기의 순간에도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 보면 수 많은 위기의 순간을 만납니다. 그 위기의 순간에 죽고 망하고, 놀라운 비극에 빠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면 그 위기의 순간을 넘길 수 있습니다. (요8:1-11)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실때, 서기 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잡아왔습니다. 유대 법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히면 돌로쳐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예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책잡아 고소하려 고 잡아온 여자입니다. 걸려도 아주 나쁜게 걸렸습니다.
그러므로 꼭 돌에 맞아 죽어야만 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다행히도 예수님께 잡혀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의 그 모든 소리를 듣고는 몸을 굽히고는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셨읍니다. 그리고는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떨어지자 그녀는 이제 돌에 맞아 죽어야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녀를 죽이는 말씀이 아니였습니다. 그녀를 살리는 말씀이였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모든 사람들이 양심에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다 돌아갔습니다. 이 여인은 죄악 중에라도 예수님께 끌려왔기 때문에 죽을 위기를 넘겼읍니다. 그 뿐만 아니라, 모든 죄를 다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구원 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 데리고 나아오면 위기의 순간에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나오는 어머니가 현명한 어머니입니다. 예수님이 바쁜데도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오자 제자들은 그 어머니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다 받아 주셨읍니다. 그리고는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막10:13-16)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 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하시면서 그들을 칭찬해 주 셨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는 자들은 어려서 부처 칭찬을 받습니다. 인정을 받 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안수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막10:16) 말씀 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안수해 주시고 그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들이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예수님 께로 데리고 어는 어머니들이 현명한 어머니들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오는 현명한 어머니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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