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십자가의 죽음1 (마16:21-28)
본문
예수 십자가는 신구약 전 성경의 대지(大旨)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경륜이 십자가를 통하여 만천하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하지 박사(A.A Hodge)는 ‘구약의 제사 제도는 보증 수표요, 신약의 십자가는 순금 현찰 지불과 같은 만족이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하지 박사의 말은 구약의 제사 제도는 임시적이요, 현세적이요, 인간적이요, 제한적이요, 모형적인데 반해, 신약의 십자가는 영원적이요, 성취적이라는 내용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사우어(E. Sauer)는 골고다 위에서의 구원의 행동은 그렇게 놀랍도록 독특하고, 그렇게도 경이적이고, 그렇게도 완전하게 불가해(不可解)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수천년간의 오랜 예비학교와 예언서와 산 제시(提示)를 주셨고, 또 성막과 성전 뜰에서 수백만의 희생제물을 통하여 단번의 희생제물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었다(히10:10, 14)고 하였습니다. 일본의 신학자 가가와(三可川)는 그의 ‘십자가 묵상에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질 때까지는 자신의 메시야 사역이 끝나지 아니함을 알았기 때문에 한번도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라 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계속하여 말하기를 ‘.예수의 생애는 하늘 보좌를 떠나 세상에 내려오신 때부터 골고다에서 못 박힐 때까지 십자가의 행로였다’고 하였습니다. 제네바의 개혁자 칼빈(Calvin)은 ‘예수님의 33년간의 전 생애가 십자가를 지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3년간의 죄 없으신 삶에서도 죄인의 십자가를 짊어지신 능동적 순종을 하였고, 최후에는 친히 십자가를 짊어지심으로 수동적 순종의 생애를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사우어(E.Sauer)씨는 다시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골고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함께 모든 때(時間)의 전환점이요, 하나님의 모든 사랑 중 최고의 지점이요, 구원의 시발점이요, 모든 경배의 중심이요, 하나님 공의가 나타난 최고 지점이요, 인류가 받은 축복의 경점이다. 십자가의 밑은 땅에 남아 있으나, 십자가의 머리는 전 우주사(宇宙史)와 함께 성계(星界)의 멀리까지 닿아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예수께서 친히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은 후’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비로소 제자들에게 공개한 사실을 봅니다. 우리 함께 주님의 수난을 앞에 두고 ‘예수 십자가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두 주일간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 십자가의 죽음!
I.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입니다. 우리 본문 21절에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임을 당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야만 한다고, 예루살렘 상경의 필연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옛부터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이요, ‘큰 임금의 성’으로 알려졌습니다. 예루살렘은 본래 가나안 땅에 있었던 ‘밀로(Millo)라는 작은 성읍이었습니다(삼하5:6-10). 그 후 다윗이 즉위하여 헤브론에서 그의 도읍지를 이 곳으로 옮긴 이후부터 ‘평화의 성’으로 역사상에 이름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그 성에 성벽을 쌓고, 다윗의 망대(탑)까지 쌓았고, 그의 거소도 그 성 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후 예루살렘은 솔로몬 대왕의 정치 중심지를 이루었고, 그의 성전으로 말미암아 선민 예배의 중심지를 이루어 명실공히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 후 히스기야 왕 때 새롭게 확장이 되었고, 바벨론 70년 포로 어간에 예루살렘은 선민의 마음에 영혼의 고향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예루살렘 성전은 느헤미야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사의 변천과 함께 예루살렘은 열강들, 곧 페르샤, 헬라 로마제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보존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죽인 선민의 죄값으로 주후 70년 로마의 장군 디도에 의해 멸망되었다가 136년 다시 히드리얀에 의해 재건되었고, 637년 다시 회교도의 손에 들어 갔으며, 1099년 십자군 원정으로 다시 찾게 되었고, 1517년에는 터어키 사람들의 손에 넘어 갔으며, 1917년에 연합군의 점령하에 있다가 1948년에 독립하여 이스라엘 나라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역사상에 나타난 예루살렘은 온갖 역사의 정글 속에서 정치와 종교, 문화와 역사를 가지면서 숨가쁜 피의 역사 3000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하겠다고 하시던 그 때로부터 약 800년 전에 정복의 대왕 알렉산더는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칼로 예루살렘을 정복한 일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몇가지 대조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33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젊은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을 향했는가 하면, 젊은 나사렛 청년 예수도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두 청년의 예루살렘을 향한 역사의 향방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습니다. 럿셀 딜롱(R.Delong)의 말은 재미있습니다. ‘알렉산더는 왕관의 화려함 속에 났지만 예수는 말 구유에서 났다. 알렉산더는 왕의 아들로 왔으나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 왔다. 알렉산더는 왕좌에서 경배를 받는 자로 죽었으나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조롱 받는 왕으로 죽었다. 알렉산더의 생은 성공이었으나 예수의 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더와 예수, 이 두 사람은 모두 예루살렘을 향한 입성의 걸음이 같았는데, 예루살렘을 향한 두 사람의 걸음은 예루살렘을 다른 운명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예수,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알렉산더는 자기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수십만 명의 생명의 피를 흘렸지만, 예수는 수 많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피를 흘렸습니다. 여기서 ‘사랑’의 정복과 칼(검)의 정복의 차이를 봅니다. 알렉산더는 칼로 세계의 왕좌를 모조리 정복했으나 예수는 사랑으로 모든 세계의 무덤을 정복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의 노예로 삼았으나 예수는 모든 사람을 온갖류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자유와 평화의 왕자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정복자의 화려한 역사를 기록하였으나 예수는 사랑과 평화 그리고 영생을 주는 구원의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요란한 말굽소리로 예루살렘으로 진격했으나 예수는 조용히 한 마리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였습니다. 예수, 예루살렘 입성은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히스기야, 느브갓네살과 알렉산더가 심어 놓은 정치적인 장소에,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사랑과 평화를 심으려고 올라가신 길이었습니다. 결국 역사상에 나타난 예루살렘의 상경 길도 두 가지 길이었습니다. 그것은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칼을 들고 피를 보려고 올라가는 알렉산더의 길인가 하면, 작은 나귀 새끼의 발자국 소리에 입성하는 예수의 길이었습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희생의 십자가를 짊어지러 올라가는 예수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3장 33절에는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에서 죽는 법이 없느니라 고 예수께서 예루살렘 상경의 필연성을 역설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0절로 11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후, 그 성을 보시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그 이름 예루살렘을 부르면서 슬퍼하며 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마23:37-39, 눅19:41-44). 평화의 이름을 가진 예루살렘이 평화에 관한 일을 모르고 있다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받을 예루살렘 멸망의 비극을 보시고 울었습니다. 중대한 뜻은 ‘예수 십자가의 죽음’은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다고 자신이 미리 공개하였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죽음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은 예수 십자가의 고장입니다.
II. 많은 고난을 받는 죽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본문 중에 다시 말하기를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본문에 .많은 고난.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고난은 유대주의자들로 말미암는 고난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본문에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는다 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당시 유대주의를 대표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이 무리들이 형성한 집단이 바로 ‘산헤드린 공의회’였습니다. 이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의 최고 법정입니다. 로마 정부의 권한인 사형 판결권 외에 나라의 모든 문제들을 다루는 최고 법정입니다. 저들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를 사형에 해당되는 죄수로 고발하는 합법적인 절차를 성립시켰습니다. 저들이 빌라도 총독에게 고소한 정죄건은 예수가
1 백성을 미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민심 선동 소란죄에 해당되는 죄목이었습니다.
2 가이사 황제에게 세금바치는 것을 금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3 자칭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눅23:1-3). 그러나 예수는 정치적인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고 하였습니다(눅23:1-2). 이 세가지 죄목은 모두 다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반 로마적이고, 반 로마 황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산헤드린 공회의 목적은 예수를 사형에 해당되는 정치범으로 몰아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로마의 빌라도 총독은 실제로 예수가 무죄하고, 이 문제가 유대인의 종교적 문제로 야기된 사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치가의 양심을 저버리고, 유대주의와 흥정하여 예수를 십자가의 사형수로 정죄하고, 사형을 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의 군중들은 예수를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3년동안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모두 주님 곁을 떠났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그의 첫번째 수난 예고 중에서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이라고 한 사실을 언급하였습니다. 그 많은 고난 을 정리하면,
첫째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버림을 당하는 고난이었습니다.
둘째는 이방 법관들 앞에서 심문을 당하고 정죄를 받아 십자가의 사형수로 선고를 받은 일입니다.
셋째는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 배은과 배신을 당하는 고난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 삼십개에 주님을 팔았습니다. 베드로는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주님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제자들은 두려워하여 뿔뿔이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네번째는 주님 자신이 당하는 육신의 고통과 영의 고통이었습니다. 겟세마네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불법적인 윤회 재판에 끌려다니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가야바, 다음에는 산헤드린 공회, 그 다음은 빌라도의 관정, 그 다음은 헤롯 왕 앞에 서는 일, 그후 다시 빌라도 법정에서 정죄와 사형 언도를 받는 일 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형틀을 짊어지고 사형장까지 걸어가신 고통입니다. 로마의 군병들로부터 채찍을 맞았습니다. 얼굴에 침 밷음을 받았습니다. 그 옷 벗김을 당하고, 홍포를 입고,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썼습니다. 희롱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십자가 형틀 위에 달리시기 전 그가 입었던 속옷까지 벗김을 당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높이 달려 목이 말랐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그를 보고 저주하고, 악담하면서 저가 과연 선지자냐 하나님의 아들이냐 저가 엘리야인가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였구나!. 실로 많은 고난이었습니다. 전 우주와 인간계로부터 버림을 당하시는 고난이었습니다. 전 인류의 비극이 함께 그에게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그 많은 고난이란 인류가 범한 죄의 삯으로 총체적인 고난이었습니다. 실로 많은 고난을 받은 죽음이었습니다. 4복음서를 다 합치면 모두 89장이 됩니다. 그 중 1/4인 25장이 모두 예수의 수난 기록입니다. 예컨대 마태복음은 7장이(1/4), 마가복음은 5장(1/
3), 누가복음 4장(1/5), 요한복음은 9장(1/2)이나 되는 분량이 예수님의 수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분량의 내용들은 모두 예루살렘을 중심하고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생애 중 중요 사건을 274건으로 보면, 그중 91건(1/3)이 고난 기사요, 그것도 마지막 수난 주간에 더 집중되어 있습니다. 수난 주간에 무려 64건이나 일어났습니다. 이런 성경 연구의 결과로 보아도 그의 많은 고난 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십자가의 죽음! 그것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는 죽음입니다. 그의 많은 고난은 인류의 많은 죄를 기억나게 합니다. 그의 많은 고난은 인류가 받을 많은 고통을 기억나게 합니다. 그의 많은 고난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많은 사랑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의 많은 고난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많은 용서와 사죄를 기억나게 합니다. 딘스모아(C. A. Dinsmore)는 ‘화산의 불꽃이 얼마 동안 지구 중심에 있는 불을 토해내는 것처럼 갈보리야말로 죄인을 향한 하나님 사랑의 화산이 터진 곳이다. 하나님의 심중에는 예루살렘 밖의 푸른 언덕에 십자가가 세워지기 오래 전부터 이미 십자가가 있었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예수 십자가가 끝이 난 이후에도 그를 필요로하는 죄인이 있을 동안, 이 십자가는 계속 서 있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 죄인이 존재할 동안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은 예수 십자가의 죽음은 영원히 살아있어야 합니다 바로 죄인 된 우리들의 마음속에 말입니다.
I.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입니다. 우리 본문 21절에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임을 당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야만 한다고, 예루살렘 상경의 필연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옛부터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이요, ‘큰 임금의 성’으로 알려졌습니다. 예루살렘은 본래 가나안 땅에 있었던 ‘밀로(Millo)라는 작은 성읍이었습니다(삼하5:6-10). 그 후 다윗이 즉위하여 헤브론에서 그의 도읍지를 이 곳으로 옮긴 이후부터 ‘평화의 성’으로 역사상에 이름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그 성에 성벽을 쌓고, 다윗의 망대(탑)까지 쌓았고, 그의 거소도 그 성 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후 예루살렘은 솔로몬 대왕의 정치 중심지를 이루었고, 그의 성전으로 말미암아 선민 예배의 중심지를 이루어 명실공히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 후 히스기야 왕 때 새롭게 확장이 되었고, 바벨론 70년 포로 어간에 예루살렘은 선민의 마음에 영혼의 고향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예루살렘 성전은 느헤미야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사의 변천과 함께 예루살렘은 열강들, 곧 페르샤, 헬라 로마제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보존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죽인 선민의 죄값으로 주후 70년 로마의 장군 디도에 의해 멸망되었다가 136년 다시 히드리얀에 의해 재건되었고, 637년 다시 회교도의 손에 들어 갔으며, 1099년 십자군 원정으로 다시 찾게 되었고, 1517년에는 터어키 사람들의 손에 넘어 갔으며, 1917년에 연합군의 점령하에 있다가 1948년에 독립하여 이스라엘 나라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역사상에 나타난 예루살렘은 온갖 역사의 정글 속에서 정치와 종교, 문화와 역사를 가지면서 숨가쁜 피의 역사 3000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하겠다고 하시던 그 때로부터 약 800년 전에 정복의 대왕 알렉산더는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칼로 예루살렘을 정복한 일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몇가지 대조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33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젊은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을 향했는가 하면, 젊은 나사렛 청년 예수도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두 청년의 예루살렘을 향한 역사의 향방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습니다. 럿셀 딜롱(R.Delong)의 말은 재미있습니다. ‘알렉산더는 왕관의 화려함 속에 났지만 예수는 말 구유에서 났다. 알렉산더는 왕의 아들로 왔으나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 왔다. 알렉산더는 왕좌에서 경배를 받는 자로 죽었으나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조롱 받는 왕으로 죽었다. 알렉산더의 생은 성공이었으나 예수의 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더와 예수, 이 두 사람은 모두 예루살렘을 향한 입성의 걸음이 같았는데, 예루살렘을 향한 두 사람의 걸음은 예루살렘을 다른 운명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예수,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알렉산더는 자기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수십만 명의 생명의 피를 흘렸지만, 예수는 수 많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피를 흘렸습니다. 여기서 ‘사랑’의 정복과 칼(검)의 정복의 차이를 봅니다. 알렉산더는 칼로 세계의 왕좌를 모조리 정복했으나 예수는 사랑으로 모든 세계의 무덤을 정복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의 노예로 삼았으나 예수는 모든 사람을 온갖류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자유와 평화의 왕자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정복자의 화려한 역사를 기록하였으나 예수는 사랑과 평화 그리고 영생을 주는 구원의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요란한 말굽소리로 예루살렘으로 진격했으나 예수는 조용히 한 마리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였습니다. 예수, 예루살렘 입성은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히스기야, 느브갓네살과 알렉산더가 심어 놓은 정치적인 장소에,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사랑과 평화를 심으려고 올라가신 길이었습니다. 결국 역사상에 나타난 예루살렘의 상경 길도 두 가지 길이었습니다. 그것은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칼을 들고 피를 보려고 올라가는 알렉산더의 길인가 하면, 작은 나귀 새끼의 발자국 소리에 입성하는 예수의 길이었습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희생의 십자가를 짊어지러 올라가는 예수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3장 33절에는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에서 죽는 법이 없느니라 고 예수께서 예루살렘 상경의 필연성을 역설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0절로 11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후, 그 성을 보시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그 이름 예루살렘을 부르면서 슬퍼하며 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마23:37-39, 눅19:41-44). 평화의 이름을 가진 예루살렘이 평화에 관한 일을 모르고 있다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받을 예루살렘 멸망의 비극을 보시고 울었습니다. 중대한 뜻은 ‘예수 십자가의 죽음’은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다고 자신이 미리 공개하였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죽음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은 예수 십자가의 고장입니다.
II. 많은 고난을 받는 죽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본문 중에 다시 말하기를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본문에 .많은 고난.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고난은 유대주의자들로 말미암는 고난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본문에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는다 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당시 유대주의를 대표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이 무리들이 형성한 집단이 바로 ‘산헤드린 공의회’였습니다. 이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의 최고 법정입니다. 로마 정부의 권한인 사형 판결권 외에 나라의 모든 문제들을 다루는 최고 법정입니다. 저들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를 사형에 해당되는 죄수로 고발하는 합법적인 절차를 성립시켰습니다. 저들이 빌라도 총독에게 고소한 정죄건은 예수가
1 백성을 미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민심 선동 소란죄에 해당되는 죄목이었습니다.
2 가이사 황제에게 세금바치는 것을 금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3 자칭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눅23:1-3). 그러나 예수는 정치적인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고 하였습니다(눅23:1-2). 이 세가지 죄목은 모두 다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반 로마적이고, 반 로마 황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산헤드린 공회의 목적은 예수를 사형에 해당되는 정치범으로 몰아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로마의 빌라도 총독은 실제로 예수가 무죄하고, 이 문제가 유대인의 종교적 문제로 야기된 사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치가의 양심을 저버리고, 유대주의와 흥정하여 예수를 십자가의 사형수로 정죄하고, 사형을 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의 군중들은 예수를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3년동안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모두 주님 곁을 떠났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그의 첫번째 수난 예고 중에서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이라고 한 사실을 언급하였습니다. 그 많은 고난 을 정리하면,
첫째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버림을 당하는 고난이었습니다.
둘째는 이방 법관들 앞에서 심문을 당하고 정죄를 받아 십자가의 사형수로 선고를 받은 일입니다.
셋째는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 배은과 배신을 당하는 고난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 삼십개에 주님을 팔았습니다. 베드로는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주님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제자들은 두려워하여 뿔뿔이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네번째는 주님 자신이 당하는 육신의 고통과 영의 고통이었습니다. 겟세마네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불법적인 윤회 재판에 끌려다니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가야바, 다음에는 산헤드린 공회, 그 다음은 빌라도의 관정, 그 다음은 헤롯 왕 앞에 서는 일, 그후 다시 빌라도 법정에서 정죄와 사형 언도를 받는 일 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형틀을 짊어지고 사형장까지 걸어가신 고통입니다. 로마의 군병들로부터 채찍을 맞았습니다. 얼굴에 침 밷음을 받았습니다. 그 옷 벗김을 당하고, 홍포를 입고,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썼습니다. 희롱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십자가 형틀 위에 달리시기 전 그가 입었던 속옷까지 벗김을 당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높이 달려 목이 말랐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그를 보고 저주하고, 악담하면서 저가 과연 선지자냐 하나님의 아들이냐 저가 엘리야인가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였구나!. 실로 많은 고난이었습니다. 전 우주와 인간계로부터 버림을 당하시는 고난이었습니다. 전 인류의 비극이 함께 그에게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그 많은 고난이란 인류가 범한 죄의 삯으로 총체적인 고난이었습니다. 실로 많은 고난을 받은 죽음이었습니다. 4복음서를 다 합치면 모두 89장이 됩니다. 그 중 1/4인 25장이 모두 예수의 수난 기록입니다. 예컨대 마태복음은 7장이(1/4), 마가복음은 5장(1/
3), 누가복음 4장(1/5), 요한복음은 9장(1/2)이나 되는 분량이 예수님의 수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분량의 내용들은 모두 예루살렘을 중심하고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생애 중 중요 사건을 274건으로 보면, 그중 91건(1/3)이 고난 기사요, 그것도 마지막 수난 주간에 더 집중되어 있습니다. 수난 주간에 무려 64건이나 일어났습니다. 이런 성경 연구의 결과로 보아도 그의 많은 고난 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십자가의 죽음! 그것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는 죽음입니다. 그의 많은 고난은 인류의 많은 죄를 기억나게 합니다. 그의 많은 고난은 인류가 받을 많은 고통을 기억나게 합니다. 그의 많은 고난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많은 사랑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의 많은 고난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많은 용서와 사죄를 기억나게 합니다. 딘스모아(C. A. Dinsmore)는 ‘화산의 불꽃이 얼마 동안 지구 중심에 있는 불을 토해내는 것처럼 갈보리야말로 죄인을 향한 하나님 사랑의 화산이 터진 곳이다. 하나님의 심중에는 예루살렘 밖의 푸른 언덕에 십자가가 세워지기 오래 전부터 이미 십자가가 있었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예수 십자가가 끝이 난 이후에도 그를 필요로하는 죄인이 있을 동안, 이 십자가는 계속 서 있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 죄인이 존재할 동안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은 예수 십자가의 죽음은 영원히 살아있어야 합니다 바로 죄인 된 우리들의 마음속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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