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더럽게하는 것 (마15:10-20)
본문
우리 사람들은 사람을 겉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나 중심은 모르고, 행동의 어떠한 것을 보고 판단합니다. 또 그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그 사람의 행동보다는 그 사람이 말을 듣고 그 사람이 어떠하다 판단을 해 버립니다. 감언이설의 말에 속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그 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옷 입은 것 보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 보고, 그 사람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은 지식이 별수 없이 어리석어서 어떤 사람의 겉 행동이 깨끗하면 모든 것이 다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까지 다 살피시는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지한 인간들 같이 외모로 취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의롭다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나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어떻게 평가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나,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세상에서 상을 받아도 하늘 나라에서 아무 것도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헛 일을 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 판단 받고, 영원한 판단이 있는 것을 알고 세상에서 행해야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본질은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한 중에 갚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를 모아 놓고 놀라운 말씀을 가르칩니다. 10절에는 “너희가 듣고 깨달으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16절에도 “너희가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합니다. 열심과 정성을 다하는 충성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깨달음을 가지고 이 모든 열심과 충성을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헛일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도 지성이면 감천입니까 아닙니다. 이는 미신적인 신앙입니다. 정성을 다해서 부모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부모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가 그 부모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섬길 때에 그것이 바로 섬기는 것이 됩니다. 부모님은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냄새도 맡기를 싫어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보신탕을 참 좋아합니다. 보신탕이 먹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며느리가 지성을 다해서 제가 좋아하는 소고기 국을 끓여왔습니다. 그 며느리는 보신탕은 야만인이 먹는 것이라고 해서 끓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내 정성을 다 했으니, 이 국을 잡수시라고 할 때에 억지로 몇 숟갈을 들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섬기는 것이 되지 못합니다.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면 내 방식대로 할 것이 아니라, 내게 좋은 것을 좋아하시도록 할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대접해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정성을 다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찾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신앙은 제 마음대로, 제 주관대로 믿는 것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깨닫고, 그 다음에 그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듣지 않고, 또 깨달음이 없이는 도무지 바로 행할 수 없고,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이는 다 주관신앙이 되든지, 다른사람들의 말을 따라서 믿는 여론신앙이 됩니다. 이는 다 겉만 꾸미는 회칠한 무덤같은 외식주의요, 형식주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말씀 듣고, 깨닫기를 힘을 씁시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듣게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기도로 간구합시다.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깨달음이 정 반대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율법을 지키는 정성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 의가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안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정도입니다. 그러나 비뚤어진 깨달음으로 하나님께 한 모든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맺었는지 모릅니다.
(마15:1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실로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또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다”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무엇을 먹든지 그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니다”고 합니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다”고 하십니다. 이 쉽고, 당연한 진리가 바리새인들에게는 걸림이 되고, 엄청난 충격으로 들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유전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은 악마가 그 더러운 손에 묻어 입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정죄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 전통과 유전을 무시하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마15: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마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마15: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17절에 제자들이 물으실 때에 다시 설명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깨끗한 것이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킨다고 생명을 걸고서 구약의 율법을 지켰습니다. 부정한 음식은 먹을 수 없고, 음식을 먹기 전에는 꼭 손을 씻어서 먹으라고 하는 규례를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더러운 것이 아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 까지 저희들이 생명 걸고 지켰고, 그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다른 백성들이 그렇게 못사는 것을 정죄하면서 저희들을 높여왔는데, 이제까지 한 일들이 다 헛일을 했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은 어떤 음식을 먹느냐, 안 먹느냐 하는 것 보다, 손을 씻느냐, 안 씻느냐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떠한가에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 악한 생각 즉,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묻겠습니다. 맞으면 예 하십시요 본문의 말씀은 모든 깨끗한 것, 곧 손이나, 몸이 깨끗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맞습니까 아닙니다.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는 것도 중요합니다. 상추 쌈을 싸 먹는데, 이제 이 말씀 오해해서 예수님께서 음식을 먹을 때에는 손을 씻지말라고 했어. 그러면 병들 것입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깨끗한 것이 중요치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겉만 강조하고 중심은 없는 외식주의를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또, 죄는 마음과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니, 음식과는 상관없으니, 아무 것이라도 먹을 수 있다. 그런 뜻입니까 예 아닙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나,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술이나, 담배를 먹든지 피우는 것은 경건하지 못한 행위입니다. 제사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또 주일에 돈 주고 산 음식도 먹지 않습니다. 그 음식 자체가 더러운 것은 아닙니다. 벌써 이런 음식을 먹는다는 그 자체가 죄의 생각을 한 것으로 먹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음식을 가지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되는 음식입니다. 이러니 못먹는 것입니다. 오늘에 믿는 사람이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된다, 부정한 동물이라 안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극단적으로 깨닫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 말씀을 어떤 이유에서 하셨는가를 살피고 해석을 해야 치우침이 없습니다. 참으로 인간을 더럽게 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마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15:19)마음에서 나오는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마15: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 인간 속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진정으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인간의 속에서 나오는 인간의 타락한 부패성에서 나오는 썩은 생각, 더러운 생각, 악한 생각입니다. 그 악한 생각은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6째부터 9째까지입니다. 이것이 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멀었습니다. 우리 속에 흉측한 옛 사람의 생각이 있습니다. 도덕이나, 윤리나, 교양이나, 체면으로 가리고 우리 피부로 가려서 그렇지 우리 속을 드려다 보면 모순 투성입니다.
예비군 훈련 가면 남자들이 다 꼭 같은 옷을 입혀놓으면 그 때는 목사도, 교수도, 사장도, 없습니다. 길가에서 그냥 오줌 누고, 빨리 안 마친다고 야유보내고. 아무도 안 본다면. 아무도 야단치지 않는다면 다 죄짓고 싶고, 제 마음대로 한다면 어떻게 더러운 것이 인간인지 모릅니다. 남의 똥은 구리고 냄새난다고 하면서 우리들의 뱃속에는 그것 한 자루씩 넣고 다닙니다. 좋은 옷으로 가리고, 화장하고, 향수 뿌리고 그렇지만, 우리가 다 속에는 더러운 똥같은 마음을 먹고 사는 그렇고 그런 인생입니다. 우리 인간의 깊은 속에는 다음란한 생각이 있습니다. 이음란한 생각을 음행이라고 정죄하십니다. 도적질하려는 탐욕과 이웃을 살해하려는 미움과 속이고, 속는 이런 거짓말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들킨 죄인과 안 들킨 죄인의 차이입니다. 손을 씻고, 안 씻는 것으로, 어떤 음식을 먹느냐, 안 먹느냐하는 것으로, 어떤 전통이나, 유전을 지키고 안지킨 것으로 사람을 더럽다, 깨끗하다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목회자가 예배시 가운을 입느냐, 안 입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심없는 의식, 예배를 하나님이 받지 않습니다. 아무리 곡조가 맞고, 음정이 좋아도 그 마음에 없는 찬양을 하나님 받지 않습니다. 청산유수의 말로 기도해서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려도 중심이 없는 기도는 가인의 예배입니다. 그 전통보다는 행위요, 행위보다는 그 마음의 중심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악한 생각을 하면서도 감추고 있습니다. 노출이 안되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다 누구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기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학교문제도, 직장문제도, 노사문제도, 정치문제도, 교회문제도, 다 내 책임이요, 내 잘못된 생각이 원인이다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부 나 아닌 다른 어떤 이유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갈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5: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갈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인간이 어렇게 더럽습니다. 환경문제도, 나라를 이렇게 만든 것도 다 인간입니다.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라, 행위이고, 행위보다 그 인간의 마음의 생각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죄악된 마음과 악한 행위를 치유하지 않는 한, 문제는 끝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 우리 가정을 더럽히는 것, 우리 교회를 더럽히는 것, 우리 나라를 더럽히는 것은 어떤 다른 데에 이유가 있는 것 아닙니다. 환경에 있는 것, 지식의 부족에 있는 것 아닙니다. 제도가 없고, 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다 인간의 더러운 행위 때문임을 인정해야합니다.
또 이 악한행위는 어디서 나옵니까 인간의 더러운 생각, 죄악의 생각과 욕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뿌리 부터 고쳐야합니다. 그러면 이를 어떻게 해결합니까 마음을 지켜야합니다. 지킬 것이 많습니다. 나라도 지키고, 가정도 지키고, 돈도 지키고, 건강도 지켜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킬 만한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성을 파수하는것 보다 자기 마음을 생각을 잡고 엉뚱한 데로 가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마음이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무엇 방심 방심에서 방탕이 나옵니다. 욕심에 끌려 미혹되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해서 사망을 낳습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는 어떠합니까 마음으로 믿고, 마음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사랑하고, 마음으로 찬송해야합니다. 이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악한 것들이 들어와서 중생한 자의 마음이 이전보다 7배나 더악해집니다. 이 마음을 다스릴 자가 있습니까 인생으로서 자기 마음을 다스릴 자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님께서 거하시도록 해야합니다. 성령님을 모신 성전이 되면 이 마음은 안정되고, 평온하고, 의롭고, 온유하게 됩니다. 성령님의 거하실 전은 당연히 거룩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우리가 성령님충만하여 집니다. 깨끗해집니다. 엉뚱한 상상, 연속극, 소설, 잡지, 남의 이야기,,,, 이런 것 보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어디다가 매어놓겠습니까 하나님이신 성령님에게 꼭 붙들어 매어 놓아야합니다. 우리들에게 있는 유전이나, 전통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이를 성경적인 것인가를 따져보아야합니다. 그럴지라도 그것은 성경의 권위는 없습니다. 우리가 겉모습만을 가지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생각을 다 주님의 보혈의 능력 앞에 씻어 깨끗함을 입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마음을 잡아야합니다. 방심은 방종, 방탕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음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시작이요, 끝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본질은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한 중에 갚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를 모아 놓고 놀라운 말씀을 가르칩니다. 10절에는 “너희가 듣고 깨달으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16절에도 “너희가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합니다. 열심과 정성을 다하는 충성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깨달음을 가지고 이 모든 열심과 충성을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헛일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도 지성이면 감천입니까 아닙니다. 이는 미신적인 신앙입니다. 정성을 다해서 부모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부모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가 그 부모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섬길 때에 그것이 바로 섬기는 것이 됩니다. 부모님은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냄새도 맡기를 싫어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보신탕을 참 좋아합니다. 보신탕이 먹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며느리가 지성을 다해서 제가 좋아하는 소고기 국을 끓여왔습니다. 그 며느리는 보신탕은 야만인이 먹는 것이라고 해서 끓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내 정성을 다 했으니, 이 국을 잡수시라고 할 때에 억지로 몇 숟갈을 들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섬기는 것이 되지 못합니다.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면 내 방식대로 할 것이 아니라, 내게 좋은 것을 좋아하시도록 할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대접해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정성을 다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찾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신앙은 제 마음대로, 제 주관대로 믿는 것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깨닫고, 그 다음에 그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듣지 않고, 또 깨달음이 없이는 도무지 바로 행할 수 없고,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이는 다 주관신앙이 되든지, 다른사람들의 말을 따라서 믿는 여론신앙이 됩니다. 이는 다 겉만 꾸미는 회칠한 무덤같은 외식주의요, 형식주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말씀 듣고, 깨닫기를 힘을 씁시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듣게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기도로 간구합시다.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깨달음이 정 반대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율법을 지키는 정성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 의가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안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정도입니다. 그러나 비뚤어진 깨달음으로 하나님께 한 모든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맺었는지 모릅니다.
(마15:1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실로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또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다”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무엇을 먹든지 그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니다”고 합니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다”고 하십니다. 이 쉽고, 당연한 진리가 바리새인들에게는 걸림이 되고, 엄청난 충격으로 들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유전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은 악마가 그 더러운 손에 묻어 입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정죄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 전통과 유전을 무시하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마15: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마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마15: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17절에 제자들이 물으실 때에 다시 설명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깨끗한 것이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킨다고 생명을 걸고서 구약의 율법을 지켰습니다. 부정한 음식은 먹을 수 없고, 음식을 먹기 전에는 꼭 손을 씻어서 먹으라고 하는 규례를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더러운 것이 아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 까지 저희들이 생명 걸고 지켰고, 그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다른 백성들이 그렇게 못사는 것을 정죄하면서 저희들을 높여왔는데, 이제까지 한 일들이 다 헛일을 했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은 어떤 음식을 먹느냐, 안 먹느냐 하는 것 보다, 손을 씻느냐, 안 씻느냐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떠한가에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 악한 생각 즉,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묻겠습니다. 맞으면 예 하십시요 본문의 말씀은 모든 깨끗한 것, 곧 손이나, 몸이 깨끗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맞습니까 아닙니다.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는 것도 중요합니다. 상추 쌈을 싸 먹는데, 이제 이 말씀 오해해서 예수님께서 음식을 먹을 때에는 손을 씻지말라고 했어. 그러면 병들 것입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깨끗한 것이 중요치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겉만 강조하고 중심은 없는 외식주의를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또, 죄는 마음과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니, 음식과는 상관없으니, 아무 것이라도 먹을 수 있다. 그런 뜻입니까 예 아닙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나,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술이나, 담배를 먹든지 피우는 것은 경건하지 못한 행위입니다. 제사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또 주일에 돈 주고 산 음식도 먹지 않습니다. 그 음식 자체가 더러운 것은 아닙니다. 벌써 이런 음식을 먹는다는 그 자체가 죄의 생각을 한 것으로 먹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음식을 가지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되는 음식입니다. 이러니 못먹는 것입니다. 오늘에 믿는 사람이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된다, 부정한 동물이라 안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극단적으로 깨닫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 말씀을 어떤 이유에서 하셨는가를 살피고 해석을 해야 치우침이 없습니다. 참으로 인간을 더럽게 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마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15:19)마음에서 나오는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마15: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 인간 속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진정으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인간의 속에서 나오는 인간의 타락한 부패성에서 나오는 썩은 생각, 더러운 생각, 악한 생각입니다. 그 악한 생각은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6째부터 9째까지입니다. 이것이 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멀었습니다. 우리 속에 흉측한 옛 사람의 생각이 있습니다. 도덕이나, 윤리나, 교양이나, 체면으로 가리고 우리 피부로 가려서 그렇지 우리 속을 드려다 보면 모순 투성입니다.
예비군 훈련 가면 남자들이 다 꼭 같은 옷을 입혀놓으면 그 때는 목사도, 교수도, 사장도, 없습니다. 길가에서 그냥 오줌 누고, 빨리 안 마친다고 야유보내고. 아무도 안 본다면. 아무도 야단치지 않는다면 다 죄짓고 싶고, 제 마음대로 한다면 어떻게 더러운 것이 인간인지 모릅니다. 남의 똥은 구리고 냄새난다고 하면서 우리들의 뱃속에는 그것 한 자루씩 넣고 다닙니다. 좋은 옷으로 가리고, 화장하고, 향수 뿌리고 그렇지만, 우리가 다 속에는 더러운 똥같은 마음을 먹고 사는 그렇고 그런 인생입니다. 우리 인간의 깊은 속에는 다음란한 생각이 있습니다. 이음란한 생각을 음행이라고 정죄하십니다. 도적질하려는 탐욕과 이웃을 살해하려는 미움과 속이고, 속는 이런 거짓말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들킨 죄인과 안 들킨 죄인의 차이입니다. 손을 씻고, 안 씻는 것으로, 어떤 음식을 먹느냐, 안 먹느냐하는 것으로, 어떤 전통이나, 유전을 지키고 안지킨 것으로 사람을 더럽다, 깨끗하다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목회자가 예배시 가운을 입느냐, 안 입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심없는 의식, 예배를 하나님이 받지 않습니다. 아무리 곡조가 맞고, 음정이 좋아도 그 마음에 없는 찬양을 하나님 받지 않습니다. 청산유수의 말로 기도해서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려도 중심이 없는 기도는 가인의 예배입니다. 그 전통보다는 행위요, 행위보다는 그 마음의 중심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악한 생각을 하면서도 감추고 있습니다. 노출이 안되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다 누구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기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학교문제도, 직장문제도, 노사문제도, 정치문제도, 교회문제도, 다 내 책임이요, 내 잘못된 생각이 원인이다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부 나 아닌 다른 어떤 이유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갈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5: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갈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인간이 어렇게 더럽습니다. 환경문제도, 나라를 이렇게 만든 것도 다 인간입니다.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라, 행위이고, 행위보다 그 인간의 마음의 생각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죄악된 마음과 악한 행위를 치유하지 않는 한, 문제는 끝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 우리 가정을 더럽히는 것, 우리 교회를 더럽히는 것, 우리 나라를 더럽히는 것은 어떤 다른 데에 이유가 있는 것 아닙니다. 환경에 있는 것, 지식의 부족에 있는 것 아닙니다. 제도가 없고, 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다 인간의 더러운 행위 때문임을 인정해야합니다.
또 이 악한행위는 어디서 나옵니까 인간의 더러운 생각, 죄악의 생각과 욕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뿌리 부터 고쳐야합니다. 그러면 이를 어떻게 해결합니까 마음을 지켜야합니다. 지킬 것이 많습니다. 나라도 지키고, 가정도 지키고, 돈도 지키고, 건강도 지켜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킬 만한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성을 파수하는것 보다 자기 마음을 생각을 잡고 엉뚱한 데로 가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마음이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무엇 방심 방심에서 방탕이 나옵니다. 욕심에 끌려 미혹되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해서 사망을 낳습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는 어떠합니까 마음으로 믿고, 마음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사랑하고, 마음으로 찬송해야합니다. 이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악한 것들이 들어와서 중생한 자의 마음이 이전보다 7배나 더악해집니다. 이 마음을 다스릴 자가 있습니까 인생으로서 자기 마음을 다스릴 자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님께서 거하시도록 해야합니다. 성령님을 모신 성전이 되면 이 마음은 안정되고, 평온하고, 의롭고, 온유하게 됩니다. 성령님의 거하실 전은 당연히 거룩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우리가 성령님충만하여 집니다. 깨끗해집니다. 엉뚱한 상상, 연속극, 소설, 잡지, 남의 이야기,,,, 이런 것 보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어디다가 매어놓겠습니까 하나님이신 성령님에게 꼭 붙들어 매어 놓아야합니다. 우리들에게 있는 유전이나, 전통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이를 성경적인 것인가를 따져보아야합니다. 그럴지라도 그것은 성경의 권위는 없습니다. 우리가 겉모습만을 가지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생각을 다 주님의 보혈의 능력 앞에 씻어 깨끗함을 입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마음을 잡아야합니다. 방심은 방종, 방탕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음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시작이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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