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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고백2 (마16:13-20)

본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신 주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고백을 들으신 후, 이 고백에 대한 반응으로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1. (마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2. 또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3.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셨습니다.
첫째로, 베드로의 고백을 주님께서는 ‘네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고백한 그 고백은 베드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각에서 옳고, 바른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를 깨달은 것은 성령님의 감동하심입니다.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실 때에 바로 깨닫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이 영적인 깨달음입니다. 구원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땅의 것만 바라보고, 땅의 지식으로 평가하고, 땅의 것을 아는 것으로 영원하고, 신령한 것을 알 수도 없고, 깨달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이 칭찬을 받은 후 얼마 안되어 예수님께 사단이라고 책망을 들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땅의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알겠습니까 좀 전에 ‘주는 그리스도’라고 했으면, 이 십자가의 구속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들을 때에 ‘아멘, 감사합니다’ 해야 하는데, 그가 인본의 지식으로 돌아가서 주님의 일을 훼방하고 주님까지도 책망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신앙생활하는 우리들은 먼저 영안이 밝아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육신의 눈으로 이 신앙의 걸음을 평가하면, 바보 같기도하고, 공연히 하는 것 같고, 다 뺏기는 것 같고,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영적인 면에 눈이 띄인 사람은 영적인 면에 갈급하여, 이 여름 휴가 철에 집회를 간다고하니 좋아합니다. 자신의 신앙이 흐려지고, 힘이 떨어진 것을 이 때에 은혜 받아서 회복해야하겠다고 생각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휴가를 기다리고, 이 휴가에 고생스럽지만, 이 집회를 사모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어두워 있는 사람은 이 은혜 받는 일이 무슨 가치있는 일인가를 전혀 모릅니다. 그저 육신적인 일에는 밝아져 있고, 십자가의 길을 알 리가 없습니다. 왜 은혜를 받아야하는지, 왜 이런 집회가 필요한지 모릅니다.
영안이 밝아지지 않고는 이 신앙의 걸음을 걸어가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전혀 불가능합니다. 우리도 베드로같이 복된 깨달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영감신앙만이 바른 것입니다. 이 깨달음을 가지면 십자가의 길도 즐거워보이고, 이 길만은 걸어가야하는 것으로 인정되고, 순교의 길이라도 ‘아멘’하고 달게 따라갑니다. 왜 하나님의 일에, 교회 일에 불만 불평이 일어납니까 육신을 가지고만 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지식으로 보면 주님 십자가도 지신 것 조차도 괜한 것 같고, 자신에게 십자가 지는 것 같은 고난이 있을 때에 ‘주여 내게 그리 마옵소서’ 합니다. 성령님 충만했다가 곧 사단의 생각, 지식으로 돌아가서 사단의 하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충만할 때는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 떠나면 축복도 떠나고, 실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두 번째로,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처음 시몬을 만났을 때에 주님께서는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말씀이 결정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이 신앙고백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너는 베드로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시몬에게 희망을 거셨는데, 어떤 것입니까 베드로 자신이 아니라, 베드로가 가진 이 신앙고백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웁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가를 알게됩니다.
1) 교회는 반석 위에 세워집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는 고백이 교회의 터가 됩니다. 교회가 교회 되는 것은 어떤 선한 사업에 있는 것 아닙니다. 단지 세상의 양심, 눈의 역할만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몸으로 이 땅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교회는 이 신앙고백위에 세워집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 후대들이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어떻게 신앙을 고백했는가 하는 것을 기록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과연 사도신경을 암송할 뿐 아니라, 이 고백 위에 세워졌고, 오늘 우리 교회가 이 터 위에서 역사하고 있는가를 살펴야합니다. 교회는 어떤 인간을 위해서나, 어떤 다른 운동을 위해서나, 어떤 감정 문제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참 교회는 아닙니다.
2) 교회는 예수님께서 세운 것입니다. 사람이 세운 교회는 가짜입니다. 교인들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 살펴보면 압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주님의 교회여야합니다. 교회는 인간적인 조직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이 들어오면 안됩니다. 어떤 인간적인 것이 들어오면 안됩니다. 주님이 교회를 세웠다는 것은 이 교회를 어떤 세상의 세력이 무너지게 못한다는 말입니다. 교회의 건물은 없앨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은 옥에 가두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없앨 수 없습니다. 오히려 피를 흘림으로, 박해를 받음으로 교회는 더 흥왕합니다.
3)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내가’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주님께서 세우십니다. 그래서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의 교회에서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먼저 들어온 형제나, 나중에 등록한 형제나 다 같은 지체입니다. 어느 누구도 교회에서 주장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증거되고, 주장하시고, 그리스도의 뜻만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영광만 돌리는 곳이 교회입니다.
4) 이 교회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권세, 죽음의 권세, 사망의 권세가 이 세력들이 교회를 삼키지 못합니다. 교회는 전투적입니다. 싸워서 이기고 쟁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누구입니까 음부의 세력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죄와 불의와 싸웁니다. 비진리와 싸웁니다. 마귀와 어둠의 세력들과 싸우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구체적인 전투가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싸울 대상을 바로 알아야합니다. 싸울 대상, 대적은 음부의 세력입니다. 어둠의 세력들이 우리의 대적입니다. 이웃 교회가 우리의 경쟁상대가 아니라, 협력하여 이 대적을 싸우는 동지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그렇지 못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우끼리 싸우는 것은 잘못입니다. 싸울 대상은 죄악과 마귀와 비진리와 세상의 어두운 것들입니다. 교회가 교회끼리 싸우고 나뉘는 것은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서로 일치되어야합니다. 온 교회가 하나되어서 주님의 뜻이루는 이 일을 해야합니다. 하나되지 못하면 이 전투를 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진리와 성도가 있는 곳입니다. 이 교회를 마귀가 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교회를 세상이 어떻게 못합니다. 이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승리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교회에 있습니다. 또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러니 천주교에서 베드로를 우상시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네게 준다고 한 것은 그 베드로의 깨달은 그리스도에 관한 신앙고백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고, 또 이 고백을 하는 모든 자들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샸습니다. 천국의 열쇠는 어떤 것입니까 교회에 이 천국열쇠를 주신다는 뜻은
1)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선포하는 특권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마13: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천국의 복음을 위탁받은 곳이 교회입니다.
2) 또 천국의 열쇠는 용서와 기도입니다.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6:12에는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라했습니다. 성도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기도의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죄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지하여 용서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구속을 입은 자로서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웃의 죄를 용서하는 일입니다. 이웃의 죄를 위해 중보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죄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세 천주교가 타락한 것이 이것입니다. 그들이 마치 교회가 사죄권이 있는 양, 베드로 성전을 지을 때에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죄 용서함을 받으려면 면죄부라는 티켓을 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죄를 위해 주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께서 우리의 이웃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회개하도록 하여서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사죄권을 갖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신 공로를 믿는 것으로 사죄가 있습니다. 이 사죄를 위해 기도할 책임과 특권이 교회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우리 가정의 죄를 우리 각자가 지고 땅에서 풀어야합니다. 또 우리 교회의 죄, 우리 민족의 죄, 또 나아가서 인류의 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중보기도하면서 그 죄 사해주시기를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께 은혜입기를 기도해야합니다. 이를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를 들으셔서 역사하심으로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우리 나라가 죄를 회개하게 되고, 사죄의 은혜역사가 있게됩니다.
3) 또 천국의 열쇠가 우리 교회에 있다는 것은 복음 전도를 할 수 있는 특권을 말씀합니다. 교회는 전도의 사명과 전도할 때에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할 때에 이 복음을 들은 그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전하지 않으면, 누가 듣겠습니까 듣지 못하면 누가 믿으며, 믿지 못하면 구원은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구원에 이르도록 작정된 자는 내가 전하는 전도를 기다립니다. 우리가 전하면 천국 문이 열립니다. 혹 내가 지금 무엇인가 매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속히 풀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맡았습니다. 교회는 진리를 바로 증거해야합니다. 안으로 선포와 밖으로 전도입니다. 우리가 더 말씀에 깊이 헌신해야합니다. 우리가 용서해야할 사람은 우리가 용서해야합니다. 죄 사해주시는 공로가, 은혜가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용서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도 용서하십니다. 우리들이 전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풀지 않으면 안되는 심령들은 우리가 풀어야합니다. 우리가 전도해야합니다. 이 천국의 열쇠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는 특권이지만, 교회의 의무입니다. 해야할 일입니다. 이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땅에서 푸는 대로 하늘에서도 풀어서 이루십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이 교회의 존재는 바른 신앙고백 위에 세워짐을 인식해야합니다. 이 세상에 우리는 이렇게 복된 존재입니다. 우리가 땅에서 매는 대로 하늘에서도 매이고, 우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이는 우리에게 영혼구원의 책임을 주신 것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잘 못 이용해서 월권하면 안됩니다. 으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구원얻는 것인데, 어떤 교회에 구원이 있다면, 이는 이단입니다. 교회의 설립이 어떤 인간적인 이유로 세워졌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의무와 책임 면에서 천국열쇠를 사용해야합니다. 이를 이용해서 교회가 성도를 협박하고, 세상 것들을 요구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에 대하여 말씀을 선포하고, 용서와 기도할 책임이 있고, 전도해서 그 영혼을 구원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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