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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고백 (마16:13-24)

본문

예수께서는 아직 제자들에게 어떤 고난을 받고 어떤 일을 이루실 것인가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본문의 사건까지는 천국에 대하여 교훈하시고, 병자들을 낫게하시고, 이적과 능력을 보이셨지만,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받으실 것을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21절에 보면,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3절에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를 물으신 것은 중요합니다. 제자들과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지만, 잘못된 인식으로 신앙하는 것은 헛일이요, 오히려 멸망의 길을 자초하게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따르십니까 자신 신앙고백이 중요합니다. 과연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시며, 그가 이루어 놓으신 일은 어떤 것인가, 왜 예수를 믿고, 좇으려고 하는가 이 질문에 여러분은 확실한 답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이 질문을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서 자주 물어 보아야합니다. 이 신앙고백이 너무 중요합니다. 이 신앙고백 위에 교회도 세워지고, 우리 신앙생활도 되는 것입니다. 그의 신앙고백에 따라 그의 신앙형태는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믿고, 따르느냐에 따라 그 교회의 성질을 알수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이 시작됩니다. 참된 신앙은 참된 고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하셨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더러는 엘리야,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그 때의 예수님에 대한 여론입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그들로서는 이런 갈등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어떤 한 청년이 나타나서 말씀을 전하는데, 저들 선생들에게서 듣지 못한 권위의 말씀을 하십니다. 또 그분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앉은뱅이를 일어서라고 하면 섭니다.
눈 먼 장님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까지 베풉니다. 사람들은 갈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이 분은 누구인가 역사에 나타나는 영웅 중 한 사람인가 아니면, 선지자인가 그의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인가 제자들은 이 예수님에 대한 여론의 평가를 세 가지 종류로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세례요한이라고 합니다. 헤롯 왕이 그 중에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하신 말씀이 세례요한 같이 세대에 대하여 비판하시고, 회개를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는 이미 죽은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부류는 엘리야라고 했습니다. 그 옛날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를 대결하면서 하늘에 불을 내렸던 종, 삼년 반동안 비오지 않기를 기도해서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하여 하늘에서 비가 오도록 했던 그 능력같은 것을 예수님께서 행하신다고 생각했지 때문에 예수님을 엘리야가 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에 한사람이 아닌가 생각한 부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에서 그 시대를 보면서 눈물로 탄식하였던 예레미야나 어떤 한 선지자 같이 평가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악평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기도 했고, 종교지도자들은 온 백성 앞에서 공공연히 일어났던 예수님의 기적을 부인, 무시하지는 못하고, 예수님은 귀신의 왕 바알세붑을 힘입어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악한 평가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르십니까 과연 예수님에 대한 평가를 바로하고 따릅니까 그저 여론을 따르던 그 사람들 같이 예수님을 좋으신 분으로, 선생으로 따르던지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 번째 질문을 하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관심은 세상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는가에 있는 것 아닙니다. 실은 예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인정하고 따르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신앙생활에서 남들이 어떻게 알고, 남들이 어떻게 믿느냐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여론은 참고 사항이지 절대적인 것이 못됩니다. 내가 어떻게 알고, 믿느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은 개인적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역경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을 얻게되고, 은혜입은 것을 간증하는 것을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느냐 못 만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암만 설교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도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설교자 자신이 주님을 어떻게 만났느냐, 못만났느냐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직도 신앙생활을 사람 누구 때문에, 어떤 사람을 따라서 믿습니까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결국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어떤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아닙니다. 아무리 사람에게 인정 받고, 교회에서 믿음이 있다고 칭찬, 대우해 줘도, 과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판단될 것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나보다 믿음이 앞선 사람을 따라서 믿음 생활 한다고 해도,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말하는대로 끌려가는 신앙생활로 마치기 쉽습니다.
이 신앙생활은 껍데기는 믿는 것 같으나, 결국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 여론신앙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알고, 평가하고, 따릅니까 그저 세상에서 말하는대로 사대성인 가운데 한 분, 위대한 삶을 살다간 선생, 선지자 중에 한 사람입니까 능력을 행하여 많은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위해서 살다간 분, 이렇습니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의 대답을 주님은 칭찬하셨습니다. (마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 깨달음이 복되다. 그러나 이 바른 깨달음은 네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가르침, 인간의 지식, 여론의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네게 알게하셔서 내가 안 것이니, 네가 복이 있다 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를 이런 정확한 대답을 하게 하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을 하십니다. 이 고백이 복되고, 이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는 고백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육신의 깨달음, 인간 지식이 아니요, 영감신앙입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아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했습니까 주시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주십니다. 이 주라고 하는 말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만이 나의 주님이십니다.라는 말 한 마디 때문에 초대교회 교인들은 감옥에 갇히고, 화형도 당했습니다. 가이사가 나의 주가 아니요, 나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고백이 얼마나 중요하며, 거룩한 고백인지 모릅니다. 예수는 우리의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으로 부릅니다. 당신은 우리의 지으신 창조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주님되십니다. 우리는 당신의 것이요, 당신께서 지으신 피조된 자로서 종입니다. 또한 예수는 우리를 구원하실 구주로서 주님이십니다. 이 창조주께서 영원히 죽을 자를 위해 죽으셨으니, 우리를 값으로 사셨으니, 우리는 또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로 모셔야하는 우리는 그의 종입니다. 우리는 당신 앞에 우리의 것을 말할 수 없고,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살 수 없는 당신만을 존귀히 여겨야 마땅한 빚진 자요, 종입니다. 주라고 하는 말에는 창조주, 구원의 주님이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에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그 때에 이스라엘에는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세울 때에 그 머리에 기름을 부어서 세웠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신다는 뜻은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께서 우리의 왕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의 제사장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우리의 선지자로 볼 수 없으신 하나님을 우리와 세상에게 보이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왕권과 제사장, 선지자의 직분을 가지고 오신 것은 오늘 우리를 그리스도인을 만들어서 우리로 왕위를 계승하고, 우리로 제사장 직을 감당하고, 우리로 선지자 직을 하도록하시는 구원역사를 베푸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보냄을 받은 자의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인자라 합니다. 그러나 인자라는 말은 예수님 혼자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독생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이심을 믿어야합니다. 바로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으니, 이 분을 예수라 합니다. 예수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또 이 분을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왕이이요, 대제사장이요, 선지자이신 주님입니다. 이 대답은 베드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요, 성령님께서 주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신앙고백위에 교회를 세웁니다. 천주교에서는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하셨고,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슴을 주님게서 하셨으니, 베드로가 일대교황이요, 지금 천주교 교황은 이 베드로를 이어서 계대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천주교회 외에는 구원이 없고, 교황은 무오하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 깨달은 것입니다. 너는 베드로라 하신 때에 베드로는 반석이 아닙니다. 헬라어로는 페트로스입니다. 이 페트로스는 작은 바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뒤에 말하신 이 반석의 ‘반석’은 ‘페트라’입니다. 이 페트라는 베드로가 아니라 베드로가 성령님에 충만함으로 고백한 신앙고백위에 교회가 선다고 한 것입니다. 만일 천주교에서 말하는 대로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라면 흔들림이 없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대로도 베드로는 자주 변하는 사람이요, 흔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칭찬 듣고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이때로부터 십자가에 고난을 받고 죽어야할 것을 말슴하시니, (마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금방 칭찬 받은 베드로가 사단이라고 하는 무섭고, 두려운 주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관신앙입니다. 주관신앙은 주님 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신앙이요, 주님의 소원, 기쁨 보다는 자신의 소원과 기쁨을 먼저 생각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신앙입니다. 이는 사단의 일을 하게 됩니다. 마귀의 사람 되기가 이렇게 쉽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주님을 알고 믿고 따르십니까 주님을 선생으로 선지자로 그렇게 따르십니까 예수님을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예수님의 가족들 같이 미친 사람으로 보든지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주라고, 그리스도라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며 나의 모든 삶을 다 맡기고, 그분의 인도하심만을 따라서 살든지 둘 중에 하나이지, 예수님을 그저 좋은 선생으로는 따를 수 없습니다. 진실한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면 예수님을 욕하고 떠나는 것이 옳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본문에서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주, 그리스도라,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이 깨달음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여 책망했습니까 복되다 했습니까 이 깨달음을 복되다고 하시고, 이 깨달음에 교회도 세우고, 이 깨달음을 가진 자가 천국을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과연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시인하시렵니까 아니면, 아마도 예수라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야하고 떠나겠습니까 예수님의 가족들도 예수님을 귀신에 들렸다고 했습니다. 언제까지 여론 따라서 그저 예수님이 좋은 분이니.할 것입니까 왕으로 인정한다면, 그 왕에게 어떻게 순종해야하며, 바쳐야 하는 것도 알아야합니다. 입술의 거짓된 고백을 버립시다. 진정.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나의 하나님으로 믿습니까 나의 그리스도로 인정합니까 그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인정하고 따른다면 여러분이나 나의 삶은 왜 이리 모순됩니까 우리가 바로 평가를 해야합니다. 여론에 밀려 영원한 구원을 놓칠 것입니까 또 다른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구주라고 하니까,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니까, 내가 믿음 없다면 창피하니까 나도 믿는다고 해 놓자 그렇습니까 자신이 만나야합니다. 내가 만난 주님, 어떻게 고백합니까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한다는 말 듣기를 좋아하는 부인들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사랑 고백하듯이 주님께도 마음에 없는 사랑고백하는 것은 아닙니까 진정 사랑하며, 믿는다면 어떻게 믿어야합니까 주님이십니다. 나의 모든 것은 다 주의 것입니다. 맞습니까 나의 창조자시오, 나의 구원자되십니다. 나의 그리스도십니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왕에게 복종하고, 헌신하는 것 만큼이라도 합니까 세상에 어둠의 세력들이라도 그 부하들이 그 위에 어떻게 굴복합니까 자신의 전부를 다 걸고, 맹세하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충성합니다. 군대에서 그 부하들이 장군들에게 어떻게 합니까 신하가 왕에게는 어떻게 순종합니까 주인에게 노예들이 어떻게 순종합니까 이들은 다 사람이요, 이들이 우리들에게 해 준 것이 얼마 없고, 바로 한 것도 없거늘, 두려움으로도 이렇게 순종하고, 헌신한다면, 오히려 날 위해 죽으시고, 날 위해 희생당하신 주님의 은혜, 그 인도하심은 빛이요, 진리인데, 우리들은 왜 이 주님께 다 드리지 못하고, 주님의 은혜를 모르고 배신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잘못되었거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부터 바로 알아야합니다. 사도신경을 우리가 매주 암송하지만, 그 믿는다고하는 고백대로 그대로 인정하고, 순종하며, 삽니까 여론을 따라 가지 맙시다. 주관을 따라서 신앙생활하는 것은 사단의 일만 합니다. 우리는 영감의 인도를 따라서 바른 신앙고백을 가지고, 우리의 신앙의 대상을 바로 알고 믿어야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인정하고, 따릅니까 한 도시의 시장 만큼이라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합니까 권력자들 앞에서 떨면서,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신다고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관념 속의 하나님, 죽은 하나님, 목석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어제나 오늘도 영원토록 한결 같으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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