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마16:13-20)
본문
이 땅에 오신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어느날 제자들에게 질 문을 하셨다. 아마도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으며 제자들 의 대답도 역사상 가장 중요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행위에 관심이 있기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기에 관심 이 있으시다. 과연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누구라 하는가
1.가이사랴 빌립보-실패한 이스라엘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 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16:13) 예수님께서 이 중요한 질문을 하신 지역은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지역이었다. 가이사는 로마 황제이름이고 로마가 이스라엘을 식민지화 하면서 군사요충지로 이 지역을 개발하고 마을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가이사랴 빌립 보" 그래서 이 말은 언약의 백성, 아브라함의 백성, 홍해를 가르고 요 단을 건너고 여리고를 무너뜨렸던 하나님과 함께 한 민족인 이스라엘 이 이방인에게 점령당하고 고통당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도 시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에게 짓밟힘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는 비참한 현실의 이름"가이사랴 빌립보". 천하만민중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셔서 그들을 축복 하시고 그들을 율법으로 정결케 하시면서 그들에게 언약을 주셨다. 바로 그들에게서 세상을 살릴 구세주 메시야가 나오게 될 것을 그래서 애굽에서 빠져나올 때 그 증거로 애굽의 장자를 치시고 홍해를 맨 땅처럼 지나가게 하시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40년을 사 막에서 보호하시며 요단을 가르고 가나안 7족속을 멸하시고 그들에게 약속하신 여호와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실 유일하 신 하나님이심을,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언약을 이뤄 나가시고 계심을 증명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때로 가다가 하나님 이 자기를 선택하심이 자기들이 율법적으로 잘 나서 뛰어나서 그렇게 하심인줄 착각하기도 하고, 우상을 섬기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렸다.
그럴 때 마다 하나님은 이 백성이 깨닫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징게하셨다. 사사시대 거듭되는 식민지 생활의 고통, 블레셋으 로, 모압으로, 미디안으로 돌아가면서 당하는 전쟁과 실패의 역사, 그런데도 정신 차리지 못했을 때 앗수르로, 바벨론으로, 페르시아로 포 로로 잡혀가고 전 세계로 흩어짐을 당하기도 하고완전히 실패의 연 속을 쳇바퀴를 돌고 있었다. 드디어 이 당시에는 로마에게 식민지가 되면서 온갖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이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왜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것일까 "가이사랴 빌립보"-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방신을 섬기고 우상에게 절하는, 형상에게 입맞추는 그런 이방인에게 짓밟힘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는 것일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가 되었다는 말이다. 세상을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밖 에 없는 이름인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언약의 백성이다.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천하만민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의 축복을 누렸던 것처럼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과는 다른 "하나님과 함께"하는 존귀한 자들이다.
그런데 왜 세상을 승리 하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하고 오히려 불신자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 야 하고 왜 고통가운데 있어야 하고 이방종교와 같이 마리아 상을 만 들어야 하고 우상숭배를 해야 하고 거기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랑 이네, 화합이네, 겸손이네"하면서 사탕발린 소리를 하면서 사단에게 완전장악되어야 하는가 왜 신자가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기는커녕 불교신자, 남묘호랭게 신자 비슷하게, 그들이 하는 것 뒤따라 하고 전 국에는 100만명의 무당,역술인들이 현장을 다 장악하고 모든 경제,정 치를 좌지 우지 해도 세상에 대해 아무런 답도 해주지 못하고 자기 신앙 하나도 근근히 유지하기도 바쁜, "가이사랴 빌립보"가 될 수밖 에 없는가 대학은 이제 JMS,증산도,대순진리회, 통일교, 모든 이단 사이비가 다 장악해 버렸는데도, 중고등학생들은 세상타락문화에 병 들어가고 지금 이순간에도 사단의 역사는 모든 현장마다 장악해 들어 가고 있는데도 그들을 복음화시켜야 된다는 생각도 들지도 않은체 그 냥 현실에 묶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이사랴 빌립보"가 되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예수님에 질문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답을 들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신 메시야 이신 예수를 잘못 알고 있었는데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왜 신자가 실패하는가 예수를 올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왜 천주교에는 예수 이름도 부르고 하나님 이름도 부르는 것 같으면서도 온갖 형 상과 제도와 종교와 우상이 판을 치고 이를 합리화 시키면서 "생명" 과 "복음"과는 멀리 멀리 떠나간체 사단에게 장악될 수밖에 없는가 그것도 같은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예수"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2.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예수를 잘 못 앎가로되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 지자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16:14)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각각 느끼는데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따라 다녔다. 창세기부터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수많은 제사장과 왕들 을 통해서 그렇게 누누히 약속하시고 약속하셨던 분이 실제로 오셔서 그 증거들을 또한 그렇게 많이 보여주셨건만 양을 잡으면서도, 성경 을 읽고 있으면서도 그 모든 것의 실체되신 그 분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이들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왜 포로 로, 노예로, 식민지로 고통을 당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왜 "가이 사랴 빌립보"라는 치욕의 이름을 달 수밖에 없는가 바로 이토록 예수를 몰라보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봤지만 그들은 전혀 틀리게 보 고 있는것이고, 그 말은 하나님의 언약을 희미하게 붙잡고 있었던 것 이고
그러므로 실패의 쳇바퀴를 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례요한-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이 성전을 채찍질로 하시며 정 화시키시는 모습과, 부정과 부패를 일삼으면서 형식과 제도에 빠졌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독사의 새끼들아'하며 책망하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약대털옷을 입고 광야에서 외치면서 헤롯같은 권력자의 비리 를 꾸짖으면서 시대와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던 세례요한을 떠올렸던 것이다. 물론 예수님께는 그러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를 개혁하 려고 오신게 아니다. 비슷하게 생각을 했지만 전혀 예수님을 잘못 본 것이다. 지금도 예수님을 이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님은 썩어 빠진 제도와 권력을 향해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드셨던 민중의 지도자 로 여기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것 때문에 오신 분이 아니다.
아무리 제도를 바꾼다 해도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와 사단에게 빠져 있는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절대로 사회를, 세상을 개혁시킬 수 없는 것이다. 예수를 잘못 본다면 고생,고생 하고도 헛된 생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엘리야-5병2어로 오천명을 먹이고, 물위를 걸으시고, 소경을 고치 시고 하는 엄청난 신비한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늘에서 불을 떨어뜨리고,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구약시대 최고의 신비한 능력을 소유했던 엘리야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신비한 능력을 보여주러 오신 엘리야로 여겼던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시기 위해 인간 의 상상을 뛰어넘는 신비한 능력을 보이시기도 하셨지만 그 능력자체 를 보이시기 위함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 들은 예수믿는 것을 신비한 능력을 체험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수 련회를 하면 무엇인가 불을 받아야 하고, 방언을 하지 못하면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가 계속 무언가 신비한 것을 체험하기 위 해서 생을 보낸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쓰러지고.예수님은 우리에게 신비한 어떤 체험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다. 정말 잘못 본 것이다. 예레미야-민족과 국가의 아픔과 고난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눈물 의 선지 예레미야.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위해 눈물 흘 리셨던 예수님을 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예레미야 로 여기는 자들이 있었다. 실로 그렇다. 예수님은 창녀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으며 가난한 자들과 함께 식사하셨으며 불쌍한 고아인 베다니 의 나사로의 집에 유하시기를 기뻐하셨던 분이셨다. 그러나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그것을 사람들이 본받아라고 오신 게 아니시다. 예수를 믿어서 하는 가장 고귀한 일이 마더 테레 사와 같이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돕는 자선사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일을 하 러 오신 분이 아니다. 가난해 질 수밖에 없고 비참해 질 수밖에 없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시다. 마더 테레사는 사실, 전 세계 부자들과 권력가들에게 칭찬 받았던 "부자들의 성녀"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가난을 창출해 낼 수밖에 없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나 엄청난 남녀 차별 정책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소리도 안냈다고 한다.
오히려 가난은 아름다운 것이니 가난을 받아들여라는 식의 부자 들이 듣기에 너무나 은혜스러운 이야기를 많이 하신 분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근본적인 치유보다 자선 자체를 중요시 여긴 것이다. 인생 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은체 자선만이, 박애주의만이 최고의 선인 것처럼 여겨진다면, 그 가난을 조장하고 빈곤을 가져다 주는 근본적 인 존재한테 이용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예수님은 박애주의를 보 여주러 오신 분이 아니시다. "예레미야"로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 단히 착각한 것이다. 선지자중의 하나-산상보훈을 비롯해서 성경을 풀어서 권세있게 말씀을 전해 주실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훌륭하게 전달 해주는 훌륭한 선지자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훌륭한 가르침과 삶의 지표를 제시하시는 인생의 선생님이 라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시는 선생님 이요 선지자적인 요소가 있으신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단히 착각한 것이고 잘 못 본 것이다. 지금도 예수님이 단순히 우리가 따라야 되 고 실천해야될 삶의 규범을 제시하시고 가신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예수님의 행위자체와 말씀자체를 지키 고 실천하는게 기독교라면 기독교도 이슬람교나 불교나 똑같은 종교 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도 마호멧을 석가모니를 존경하고 그 들이 제 시한 삶의 규범과 원리와 실천강요를 따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것 을 종교라고 한다. 앞서간 훌륭한 선지자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애를 쓰고 실천하려고 애를 쓰는것그것은 구원과는 상관없는 종교생활인 것이다. 예수님은 마호멧처럼, 석가처럼 우리에게 규범을 던져주시고 하늘나라에 가신 분이 아니시다. 종교를 창설하시고 교리를 실천하고 율법과 규범을 실천하라고 우리를 부르신게 아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선생으로, 선지자주의 하나로 여기기 시작할 때 기독교는 종교에 빠 지고 제도에 빠지고 교리에 묶이게 되고, 생명과는 전혀 상관없는 형 식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율법에 빠지고 윤리에 빠지게 된다. 그런게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실천할 무언가를 가르치고 떠나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생명으로 살아계신 분이시다. 예수님을 선지자중의 하나로 본 이스라엘의 시각이 바로 그들을 망하 게 했던 이유인 것이다. "가이사랴 빌립보"하나님의 백성이면서 이방신에게 사단에게 장악 된체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비참한 현실그 이유는 수천년동안 언약하 시고 약속하신 그 분이 오셨건만 그들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 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을 세상을 바꿔줄 개혁가로, 신비한 능력을 보 여줄 엘리야로, 박애주의자로, 선생으로여기고 있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관심과는 전혀 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들을 천하만민중에서 선택한 하나님의 계획과 관심과는 전혀 다른 곳에 그 들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철저히 망할 수밖 에 없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신자가 이 와 같이 우리를 부르시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관심과 계획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데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시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로보고 있을 때 "가이사랴 빌립보"가 된다. 사단 에게 자신이 아무리 부인해도 장악되어 있고, 성공한 것 같으나 실패 의 길에 서있는 것이고, 노력하고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으나 헛된 몸부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누구신가
3.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 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5-16)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예수님과 함께 동거동락하였던 제자들 바로 너희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가 더욱 관심이 있으셨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 다른 종교,다른 종파, 다른 교단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잘못생각하고, 교리적으로 어떻고 맞네 틀리네여기보다 주님은 지금 "그러는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고 물으신다. 과연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여기느냐 박애주의 예레미야 개혁가 세례요한 신비주의 엘리야 삶을 가르친 선지자 중의 하나 나는 과연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몇 천번을 외치고 싶은 유일한 대답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이다. 모든 문제앞에서 오늘도 외치고 싶은 나의 고백은 "주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시오 지금도 이시간 이순간 나와 함께 살아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절망과 고통속에서라도 자신있 게 외칠 수 있는 고백은 "주는 십자가에서 내 모든 고통과 문제를 가 져가 버리신 그리스도시오, 지금 이시간 내 심장보다 가까이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개혁가도 박애주의자도,신비운동가도,선생도 아니신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수천년동 안 하나님의 가슴속에 감취었던 비밀이 터지는 순간이요. 수천년 동 안 그의 조상과 선진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이요. 모든 고통받 고 저주가운데 있던 인류가 기다리던 소리였다. "예수님! 당신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마 내 상상으로 베드로의 그 고백이 터지는 순 간 지상의 사단의 세력들이 경기를 일으켰을 것이고 사망과 죽음의 권세들이 부들 부들 떨리는 청천 벽력과 같은, 온 인류와 지구가 기 다렸던 소리였을 것이다. 천주교인들은 베드로가 이 고백으로 수장권 을 이어 받았다는 엉뚱한 것에 관심이 집중돼 있으면서 정작 베드로 가 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시요."할 때 그 그리스도가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정말 주객이 전도된 관심이다. 여 기서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수장권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무엇인가 이다.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여기에 모든 관 심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이 단어 하나에 성경66권의 모든 비밀이 다 들어 있다. "그리스도" 이 단어 하나에 모든 지식과 지혜의 보화가 다 들어있다. (골2:3), "그리스도"안에 하늘과 땅이 통일된다. (엡1:10) "그리스도"이 단어 하나에 창1장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계시록 마지 막에 나타나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모든 권세가 다 포함된 이름 이다. "그리스도"! "그리스도"이 단어 하나를 가지고 최후의 심판의 날 주께서 하늘과 땅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이 이름앞에 온 우주의 모든 무릎들이 꿇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이 이름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 후에 세상은 종말을 고할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바울이 발견하고 미친 듯이 전세계로 들고 뛸 수밖에 없었던 그 이름 "그리스도". 원형경기장에 죽어가면서 십자가에 못박 히면서 칼과 창앞에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면서도 찬송하게 만들 었던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할 때 그 그리스도의 의미를 진정 아는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깨닫는 것이 구원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아는 것이 수천년동안 성경을 기록하여 우리 손에 오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아는 것이다. 예수는 이름이며, 그리스도는 직책이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직책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를 설명한 모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무슨 직책 인가 단어적 의미는 "기름부음을 받은자"란 뜻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세가지 직책에게만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임명한다. 바로 선지자, 제사 장, 왕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라고 고백할 때는 예수님은 이 땅에 참 선지자로써, 참 제사장으로써, 참 왕으로써 오신 분이시라 고 고백하는 것이다.
참 선지자로 오셨다는 말은 무엇인가 요14:6에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 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께로 가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로서 오신 분이시다.
왜냐하면 아담이후의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창3장에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 죄를 짓게 된 인간은 모든 은혜와 축복을 공급받아야 할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 버 린 고아가 된 것이다. 아무리 훌륭해도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죽은"존재이다. 아무리 훌륭한 전구라 할 찌라도 발전소와 연결된 전기선이 끊어졌다면 결코 빛을 낼 수 없는 죽은 존재이듯이, 아무리 선한일을 하고 훌륭한 일을 한다 해도 "하나님을 떠난"인간은 죽은 존재요 지옥백성이다. 인간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밥을 먹는 것 도 아니고 제도를 바꾸는 것도 아니고 선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종교적 행위도 철학도 선행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 이 되신다. 그것이 바로 참 선지자시라는 뜻이다. 참 제사장이란 무엇인가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직책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것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죄 를 지은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모든 인류의 원죄이다. 죄는 원죄와 자범죄가 있는데 원죄는 원인이고 자범죄는 결과이다. 원죄아 래 있는 모든 인간이 하는 행동, 선한일, 계획 모든 것이 자범죄이다. 아무리 선하게 산다해도 원죄아래 있는 죄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롬3:23)고 하 셨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류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원죄아래 있는 죄인이고 죄의 값은 죽음이요 심판이요 지옥이다. 아무도 여기 에 예외가 없다. 흔히 마리아는 무원죄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정 말 원죄에 대해서 모르는 소리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자체가 원죄아 래 놓인 죄인인 것이다. 윤리, 도덕적으로 아무리 바르다 해도 원죄아 래서 행하는 모든 것은 "죄"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참 제사장 이라함은 인간의 이 죄를 위해 죽으신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 분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보고 우리도 십자가 지는 고행을 해라고 하는게 아니다. 그 죽음은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와 죽음의 권세를 못박으시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 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죄와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저주의 문제! 바로 예수님이 해결하신 그리스도이시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 면 원죄의 문제가 해결된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자범죄가 해결된다. 그 분의 십자가의 능력이다. 예수님이 참된 왕이시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인간의 근본문제는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져 저주 가운데 빠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을 조장하고 장악해 버린 영적인 존재가 사단의 세력이다. 하나님을 대적한 타락한 천사인 사단은 창3장에 인간의 맘속에 불신앙을 심어 서 죄악가운데 빠지게 만들고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그래서 결국 지 가 가기로 준비된 지옥에 인간을 같이 데리고 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죄악가운데 있는 인간은 또한 이 마귀의 자녀인다. 요8:44에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보고 "너희 아비는 마귀다."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으시다.
그리고 엡2:2에 보면 구원받지 못한 모든 자들이 공중권세 자 마귀에게 잡혀 노예생활하고 있다고 정체를 밝히고 있다. 세상의 어떤 영웅도 이 마귀를 이기고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 마 귀는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지은 인간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떠나 죄악가운데 있는 사람이 아무리 선하고 착하고 노력하고 열심히 하고 공부를 많이 해도 결국은 영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 생활문제, 가정문제 육신문제로 시달리다가 결국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즉 만왕의 왕 이시다는 것은 바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지심으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셔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다"(요일 3:8)는 말이다. 이미 창3:15에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깰것이다." 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신 것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마귀 대가 리를 완전 박살 내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여인의 후손이란 말을 마 리아의 아들이라는 말로 해석하면서 은근 슬쩍 마리아를 올리려고 하는 시도를 한다. 정말로 모르는 소리이다. 여인의 후손이란 말은 아담 의 후손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자는 원죄아래 있는 자이며 하나님 떠나 죄와 저주와 사단의 손아귀 에 잡힌 자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도 물론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으 니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아담의 후손이요, 원죄아래있는 죄인인 것이다. 예수님만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님으로 잉태된 "여 인의 후손"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선지자, 죄와 저주를 해 결하신 제사장, 죄를 잡고 인간을 멸망시키는 마귀의 일을 멸하신 왕 이 되시는 그리스도시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하 고 그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어떤 조건도 어떤 부 차적인 문제도 필요없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나니"(요1:12) 예수그리스도! 그 분 은 구약 모든 선지자들이 바라보고 모든 제사장들이 바라보고, 모든 왕들이 바라보던 실체되신 바로 그 분 메시야이신 것이다. 더욱 중요한 말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이다. 예수님 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지금도 말씀으로 온 우주를 운행하고 계시는 만군의 하나님. 모든 세상 군왕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 바로 그 분이 예수님이신 것이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할 때 "예수님 당신은 모든 인류가 그토록 하나님의 약속 을 기다리던 바로 그 그리스도시오, 지금도 천하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정말 제대로 예수님을 본 것이다. 아니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4.올바른 고백자에게 주는 엄청난 축복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 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라."(마16:17)예수님은 "베드로야 너 참 신학공부 열심히 했구나. 그것 을 알다니 웨슬레도 공부하고 칼빈도 공부하고 조직신학도 공부열심 했구나."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베드로야 어쩜 그렇게 똑똑하 니."하지도 않으셨다. 베드로 개인이 잘나서도 아니고 베드로 개인이 수장권을 받을 만큼 훌륭해서가 아니라고 하셨다. 오히려 하나님이 복을 줘서 알게 하셨다고 하신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는 사실적 인 믿음은 신학책을 열심히 탐독해서 아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구원얻기로 작정된 자들에게 친히 알게 하시는 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복된 자들이 누구인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자들이다. 예수님을 개혁가 로 알면서 큰소리 뻥뻥치고, 예수님을 박애주의자로 알면서 자기 이름 내세우고, 예수님을 선생으로 알고, 예수님을 신비운동가로 아는 왜곡된 엄청난 시각속에서 참으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그리스도"로 깨닫게 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복된 자들인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그리스도로 깨닫는 자에게 세가지 중대한 축복을 약 속하신다.
1전도가 되어지는 축복-"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오 살아게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올라고 고백 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 속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반석이 베드로이기 때문에 베드로가 교회의 수장권을 가진자이고 그 교회가 정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신게 아닙니다. 베드로 가 반석이고 그 베드로위에 교회를 세운다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어 찌합니까 이 고백이 있은뒤에 바로 베드로는 예수님께 "사단아"하는 책망을 듣습니다. 베드로 그 인간 자체가 반석이 아니란 증거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반석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정말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아는 자들을 통해서 주의 나라 교회를 확장해 나가시겠 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행1장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며 그 분이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임할 때 권능을 주셔 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으로 삼으 시다가 재림오실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붙잡고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성령님이 임했으며 초청하지도 않았는 데 모여든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예수님이 바로 당신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시다."라고 증거할 때 그 자리에서 삼천명의 제자가 일어나 고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스데반의 일로 흩어졌던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도 "예수가 그리스도라" 증거할 때 그곳에서 도 믿는 자들이 일어나며 교회가 세워지고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그에게도 에수가 그리스도라고 증거할 때 그 에디오피아 지역에도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고 흩어졌던 제자들이 안디옥에 가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거할 때 이방선교의 큰 문을 연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나간 바울팀들은 가는 곳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다녔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교회를 '그리스도'반석위에 친히 세우셨습니다. 데살로니가 에 빌립보에 베뢰아에, 고린도에 에베소에, 전 아시아에 전 아가야에 전 마케도냐야에, 전 로마에에수가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 이시다는 진정한 고백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져 나간 사실적인 증거가 "사도행전"입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며 지금도 이 자리에 살아게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정말 올바로 그 분이 인생모든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시오 지금도 이 자 리에 성령님으로 살아게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때 당연히 복음의 문들 이 열려질 수밖에 없고 전도가 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2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예수가 그리스도시오 나와 함께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올바로 고백하는 자들에게 엄청난 축복을 주 셨는데 그것은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다. 세상을 멸망시키는 존재, 인간과 하나님을 분리시키고 영원한 저주가운데 빠뜨려던 더러운 존재, 신자도 할 수 있으면 넘어뜨려 복음전하 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자녀의 엄청난 축복을 못누리게 만들려고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고 다니는 그놈의 새끼. 바로 음부 의 권세를 가진 사단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권세를 "그리스도"를 바 르게 아는 자들에게 주신 것이다. 눅10:19절에도 제자들에게 분명히 주님이 이 권세를 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 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 으리라."고 약속하셨다. 막16:17에 보면 똑 같은 말씀을 하셨다."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 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 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 자들에게는하지 않으셨다. 40일금식을 하는 자들 에게는.하지 않으셨다. 믿는 자들에게는이라고 하셨다.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자들에게는 누구에게는 이 축복을 주셨는데 예전에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에 빠져 있을때는 눌려살고 벌벌떨던 그 존재 마귀를 이제 권세 많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결박하고 쫓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통령이라고 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게 아니고 학자라고 돈있다고 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게 아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사단의 존재를 이길 수 없고 눌리고 조정받고 질 수밖에 없는데예수가 그리스도시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자에게는 세상의 어떤 흑암의 세력도 나를 이 길 수 없는 권세가 주어진 것이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3천국열쇠를 내게 주리니무식한 말로 쇠떼유식한 말로 key!!바 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응답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성경에는 구원의 약속 다음으로 기도응답의 약속이 많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 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 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너희 아버지께 아 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지금까지는 너희 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 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아무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녀의 기도를 들으신다. 지나가는 아저씨한테 사정한다고 돈을 주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유일한 이유는 "자녀이기 때문이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살아게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믿는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사실적으로 영접한 자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는 천국열쇠를 소 유한 자들이다. 천국 곳간에 풍성한 모든 것을 열수 있는 열쇠, 즉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시는 기도응답의 열쇠를 가진 자들 이다. 기도할 때 모든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아들까지 내어주신 이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무엇인들 주시지 않겠느냐고 바울은 힘주어 말하고 있다. 전도가 되어지는 축복, 음부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놀라운 축복, 천국열쇠를 갖게 되는 놀라운 축복이 모든 축복이 한 문장에 달려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가이사랴 빌립보-실패한 이스라엘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 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16:13) 예수님께서 이 중요한 질문을 하신 지역은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지역이었다. 가이사는 로마 황제이름이고 로마가 이스라엘을 식민지화 하면서 군사요충지로 이 지역을 개발하고 마을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가이사랴 빌립 보" 그래서 이 말은 언약의 백성, 아브라함의 백성, 홍해를 가르고 요 단을 건너고 여리고를 무너뜨렸던 하나님과 함께 한 민족인 이스라엘 이 이방인에게 점령당하고 고통당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도 시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에게 짓밟힘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는 비참한 현실의 이름"가이사랴 빌립보". 천하만민중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셔서 그들을 축복 하시고 그들을 율법으로 정결케 하시면서 그들에게 언약을 주셨다. 바로 그들에게서 세상을 살릴 구세주 메시야가 나오게 될 것을 그래서 애굽에서 빠져나올 때 그 증거로 애굽의 장자를 치시고 홍해를 맨 땅처럼 지나가게 하시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40년을 사 막에서 보호하시며 요단을 가르고 가나안 7족속을 멸하시고 그들에게 약속하신 여호와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실 유일하 신 하나님이심을,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언약을 이뤄 나가시고 계심을 증명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때로 가다가 하나님 이 자기를 선택하심이 자기들이 율법적으로 잘 나서 뛰어나서 그렇게 하심인줄 착각하기도 하고, 우상을 섬기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렸다.
그럴 때 마다 하나님은 이 백성이 깨닫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징게하셨다. 사사시대 거듭되는 식민지 생활의 고통, 블레셋으 로, 모압으로, 미디안으로 돌아가면서 당하는 전쟁과 실패의 역사, 그런데도 정신 차리지 못했을 때 앗수르로, 바벨론으로, 페르시아로 포 로로 잡혀가고 전 세계로 흩어짐을 당하기도 하고완전히 실패의 연 속을 쳇바퀴를 돌고 있었다. 드디어 이 당시에는 로마에게 식민지가 되면서 온갖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이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왜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것일까 "가이사랴 빌립보"-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방신을 섬기고 우상에게 절하는, 형상에게 입맞추는 그런 이방인에게 짓밟힘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는 것일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가 되었다는 말이다. 세상을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밖 에 없는 이름인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언약의 백성이다.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천하만민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의 축복을 누렸던 것처럼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과는 다른 "하나님과 함께"하는 존귀한 자들이다.
그런데 왜 세상을 승리 하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하고 오히려 불신자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 야 하고 왜 고통가운데 있어야 하고 이방종교와 같이 마리아 상을 만 들어야 하고 우상숭배를 해야 하고 거기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랑 이네, 화합이네, 겸손이네"하면서 사탕발린 소리를 하면서 사단에게 완전장악되어야 하는가 왜 신자가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기는커녕 불교신자, 남묘호랭게 신자 비슷하게, 그들이 하는 것 뒤따라 하고 전 국에는 100만명의 무당,역술인들이 현장을 다 장악하고 모든 경제,정 치를 좌지 우지 해도 세상에 대해 아무런 답도 해주지 못하고 자기 신앙 하나도 근근히 유지하기도 바쁜, "가이사랴 빌립보"가 될 수밖 에 없는가 대학은 이제 JMS,증산도,대순진리회, 통일교, 모든 이단 사이비가 다 장악해 버렸는데도, 중고등학생들은 세상타락문화에 병 들어가고 지금 이순간에도 사단의 역사는 모든 현장마다 장악해 들어 가고 있는데도 그들을 복음화시켜야 된다는 생각도 들지도 않은체 그 냥 현실에 묶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이사랴 빌립보"가 되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예수님에 질문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답을 들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신 메시야 이신 예수를 잘못 알고 있었는데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왜 신자가 실패하는가 예수를 올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왜 천주교에는 예수 이름도 부르고 하나님 이름도 부르는 것 같으면서도 온갖 형 상과 제도와 종교와 우상이 판을 치고 이를 합리화 시키면서 "생명" 과 "복음"과는 멀리 멀리 떠나간체 사단에게 장악될 수밖에 없는가 그것도 같은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예수"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2.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예수를 잘 못 앎가로되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 지자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16:14)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각각 느끼는데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따라 다녔다. 창세기부터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수많은 제사장과 왕들 을 통해서 그렇게 누누히 약속하시고 약속하셨던 분이 실제로 오셔서 그 증거들을 또한 그렇게 많이 보여주셨건만 양을 잡으면서도, 성경 을 읽고 있으면서도 그 모든 것의 실체되신 그 분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이들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왜 포로 로, 노예로, 식민지로 고통을 당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왜 "가이 사랴 빌립보"라는 치욕의 이름을 달 수밖에 없는가 바로 이토록 예수를 몰라보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봤지만 그들은 전혀 틀리게 보 고 있는것이고, 그 말은 하나님의 언약을 희미하게 붙잡고 있었던 것 이고
그러므로 실패의 쳇바퀴를 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례요한-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이 성전을 채찍질로 하시며 정 화시키시는 모습과, 부정과 부패를 일삼으면서 형식과 제도에 빠졌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독사의 새끼들아'하며 책망하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약대털옷을 입고 광야에서 외치면서 헤롯같은 권력자의 비리 를 꾸짖으면서 시대와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던 세례요한을 떠올렸던 것이다. 물론 예수님께는 그러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를 개혁하 려고 오신게 아니다. 비슷하게 생각을 했지만 전혀 예수님을 잘못 본 것이다. 지금도 예수님을 이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님은 썩어 빠진 제도와 권력을 향해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드셨던 민중의 지도자 로 여기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것 때문에 오신 분이 아니다.
아무리 제도를 바꾼다 해도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와 사단에게 빠져 있는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절대로 사회를, 세상을 개혁시킬 수 없는 것이다. 예수를 잘못 본다면 고생,고생 하고도 헛된 생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엘리야-5병2어로 오천명을 먹이고, 물위를 걸으시고, 소경을 고치 시고 하는 엄청난 신비한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늘에서 불을 떨어뜨리고,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구약시대 최고의 신비한 능력을 소유했던 엘리야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신비한 능력을 보여주러 오신 엘리야로 여겼던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시기 위해 인간 의 상상을 뛰어넘는 신비한 능력을 보이시기도 하셨지만 그 능력자체 를 보이시기 위함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 들은 예수믿는 것을 신비한 능력을 체험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수 련회를 하면 무엇인가 불을 받아야 하고, 방언을 하지 못하면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가 계속 무언가 신비한 것을 체험하기 위 해서 생을 보낸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쓰러지고.예수님은 우리에게 신비한 어떤 체험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다. 정말 잘못 본 것이다. 예레미야-민족과 국가의 아픔과 고난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눈물 의 선지 예레미야.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위해 눈물 흘 리셨던 예수님을 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예레미야 로 여기는 자들이 있었다. 실로 그렇다. 예수님은 창녀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으며 가난한 자들과 함께 식사하셨으며 불쌍한 고아인 베다니 의 나사로의 집에 유하시기를 기뻐하셨던 분이셨다. 그러나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그것을 사람들이 본받아라고 오신 게 아니시다. 예수를 믿어서 하는 가장 고귀한 일이 마더 테레 사와 같이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돕는 자선사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일을 하 러 오신 분이 아니다. 가난해 질 수밖에 없고 비참해 질 수밖에 없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시다. 마더 테레사는 사실, 전 세계 부자들과 권력가들에게 칭찬 받았던 "부자들의 성녀"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가난을 창출해 낼 수밖에 없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나 엄청난 남녀 차별 정책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소리도 안냈다고 한다.
오히려 가난은 아름다운 것이니 가난을 받아들여라는 식의 부자 들이 듣기에 너무나 은혜스러운 이야기를 많이 하신 분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근본적인 치유보다 자선 자체를 중요시 여긴 것이다. 인생 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은체 자선만이, 박애주의만이 최고의 선인 것처럼 여겨진다면, 그 가난을 조장하고 빈곤을 가져다 주는 근본적 인 존재한테 이용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예수님은 박애주의를 보 여주러 오신 분이 아니시다. "예레미야"로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 단히 착각한 것이다. 선지자중의 하나-산상보훈을 비롯해서 성경을 풀어서 권세있게 말씀을 전해 주실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훌륭하게 전달 해주는 훌륭한 선지자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훌륭한 가르침과 삶의 지표를 제시하시는 인생의 선생님이 라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시는 선생님 이요 선지자적인 요소가 있으신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단히 착각한 것이고 잘 못 본 것이다. 지금도 예수님이 단순히 우리가 따라야 되 고 실천해야될 삶의 규범을 제시하시고 가신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예수님의 행위자체와 말씀자체를 지키 고 실천하는게 기독교라면 기독교도 이슬람교나 불교나 똑같은 종교 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도 마호멧을 석가모니를 존경하고 그 들이 제 시한 삶의 규범과 원리와 실천강요를 따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것 을 종교라고 한다. 앞서간 훌륭한 선지자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애를 쓰고 실천하려고 애를 쓰는것그것은 구원과는 상관없는 종교생활인 것이다. 예수님은 마호멧처럼, 석가처럼 우리에게 규범을 던져주시고 하늘나라에 가신 분이 아니시다. 종교를 창설하시고 교리를 실천하고 율법과 규범을 실천하라고 우리를 부르신게 아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선생으로, 선지자주의 하나로 여기기 시작할 때 기독교는 종교에 빠 지고 제도에 빠지고 교리에 묶이게 되고, 생명과는 전혀 상관없는 형 식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율법에 빠지고 윤리에 빠지게 된다. 그런게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실천할 무언가를 가르치고 떠나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생명으로 살아계신 분이시다. 예수님을 선지자중의 하나로 본 이스라엘의 시각이 바로 그들을 망하 게 했던 이유인 것이다. "가이사랴 빌립보"하나님의 백성이면서 이방신에게 사단에게 장악 된체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비참한 현실그 이유는 수천년동안 언약하 시고 약속하신 그 분이 오셨건만 그들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 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을 세상을 바꿔줄 개혁가로, 신비한 능력을 보 여줄 엘리야로, 박애주의자로, 선생으로여기고 있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관심과는 전혀 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들을 천하만민중에서 선택한 하나님의 계획과 관심과는 전혀 다른 곳에 그 들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철저히 망할 수밖 에 없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신자가 이 와 같이 우리를 부르시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관심과 계획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데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시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로보고 있을 때 "가이사랴 빌립보"가 된다. 사단 에게 자신이 아무리 부인해도 장악되어 있고, 성공한 것 같으나 실패 의 길에 서있는 것이고, 노력하고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으나 헛된 몸부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누구신가
3.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 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5-16)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예수님과 함께 동거동락하였던 제자들 바로 너희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가 더욱 관심이 있으셨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 다른 종교,다른 종파, 다른 교단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잘못생각하고, 교리적으로 어떻고 맞네 틀리네여기보다 주님은 지금 "그러는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고 물으신다. 과연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여기느냐 박애주의 예레미야 개혁가 세례요한 신비주의 엘리야 삶을 가르친 선지자 중의 하나 나는 과연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몇 천번을 외치고 싶은 유일한 대답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이다. 모든 문제앞에서 오늘도 외치고 싶은 나의 고백은 "주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시오 지금도 이시간 이순간 나와 함께 살아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절망과 고통속에서라도 자신있 게 외칠 수 있는 고백은 "주는 십자가에서 내 모든 고통과 문제를 가 져가 버리신 그리스도시오, 지금 이시간 내 심장보다 가까이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개혁가도 박애주의자도,신비운동가도,선생도 아니신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수천년동 안 하나님의 가슴속에 감취었던 비밀이 터지는 순간이요. 수천년 동 안 그의 조상과 선진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이요. 모든 고통받 고 저주가운데 있던 인류가 기다리던 소리였다. "예수님! 당신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마 내 상상으로 베드로의 그 고백이 터지는 순 간 지상의 사단의 세력들이 경기를 일으켰을 것이고 사망과 죽음의 권세들이 부들 부들 떨리는 청천 벽력과 같은, 온 인류와 지구가 기 다렸던 소리였을 것이다. 천주교인들은 베드로가 이 고백으로 수장권 을 이어 받았다는 엉뚱한 것에 관심이 집중돼 있으면서 정작 베드로 가 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시요."할 때 그 그리스도가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정말 주객이 전도된 관심이다. 여 기서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수장권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무엇인가 이다.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여기에 모든 관 심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이 단어 하나에 성경66권의 모든 비밀이 다 들어 있다. "그리스도" 이 단어 하나에 모든 지식과 지혜의 보화가 다 들어있다. (골2:3), "그리스도"안에 하늘과 땅이 통일된다. (엡1:10) "그리스도"이 단어 하나에 창1장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계시록 마지 막에 나타나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모든 권세가 다 포함된 이름 이다. "그리스도"! "그리스도"이 단어 하나를 가지고 최후의 심판의 날 주께서 하늘과 땅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이 이름앞에 온 우주의 모든 무릎들이 꿇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이 이름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 후에 세상은 종말을 고할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바울이 발견하고 미친 듯이 전세계로 들고 뛸 수밖에 없었던 그 이름 "그리스도". 원형경기장에 죽어가면서 십자가에 못박 히면서 칼과 창앞에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면서도 찬송하게 만들 었던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할 때 그 그리스도의 의미를 진정 아는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깨닫는 것이 구원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아는 것이 수천년동안 성경을 기록하여 우리 손에 오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아는 것이다. 예수는 이름이며, 그리스도는 직책이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직책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를 설명한 모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무슨 직책 인가 단어적 의미는 "기름부음을 받은자"란 뜻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세가지 직책에게만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임명한다. 바로 선지자, 제사 장, 왕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라고 고백할 때는 예수님은 이 땅에 참 선지자로써, 참 제사장으로써, 참 왕으로써 오신 분이시라 고 고백하는 것이다.
참 선지자로 오셨다는 말은 무엇인가 요14:6에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 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께로 가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로서 오신 분이시다.
왜냐하면 아담이후의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창3장에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 죄를 짓게 된 인간은 모든 은혜와 축복을 공급받아야 할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 버 린 고아가 된 것이다. 아무리 훌륭해도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죽은"존재이다. 아무리 훌륭한 전구라 할 찌라도 발전소와 연결된 전기선이 끊어졌다면 결코 빛을 낼 수 없는 죽은 존재이듯이, 아무리 선한일을 하고 훌륭한 일을 한다 해도 "하나님을 떠난"인간은 죽은 존재요 지옥백성이다. 인간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밥을 먹는 것 도 아니고 제도를 바꾸는 것도 아니고 선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종교적 행위도 철학도 선행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 이 되신다. 그것이 바로 참 선지자시라는 뜻이다. 참 제사장이란 무엇인가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직책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것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죄 를 지은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모든 인류의 원죄이다. 죄는 원죄와 자범죄가 있는데 원죄는 원인이고 자범죄는 결과이다. 원죄아 래 있는 모든 인간이 하는 행동, 선한일, 계획 모든 것이 자범죄이다. 아무리 선하게 산다해도 원죄아래 있는 죄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롬3:23)고 하 셨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류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원죄아래 있는 죄인이고 죄의 값은 죽음이요 심판이요 지옥이다. 아무도 여기 에 예외가 없다. 흔히 마리아는 무원죄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정 말 원죄에 대해서 모르는 소리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자체가 원죄아 래 놓인 죄인인 것이다. 윤리, 도덕적으로 아무리 바르다 해도 원죄아 래서 행하는 모든 것은 "죄"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참 제사장 이라함은 인간의 이 죄를 위해 죽으신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 분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보고 우리도 십자가 지는 고행을 해라고 하는게 아니다. 그 죽음은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와 죽음의 권세를 못박으시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 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죄와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저주의 문제! 바로 예수님이 해결하신 그리스도이시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 면 원죄의 문제가 해결된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자범죄가 해결된다. 그 분의 십자가의 능력이다. 예수님이 참된 왕이시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인간의 근본문제는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져 저주 가운데 빠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을 조장하고 장악해 버린 영적인 존재가 사단의 세력이다. 하나님을 대적한 타락한 천사인 사단은 창3장에 인간의 맘속에 불신앙을 심어 서 죄악가운데 빠지게 만들고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그래서 결국 지 가 가기로 준비된 지옥에 인간을 같이 데리고 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죄악가운데 있는 인간은 또한 이 마귀의 자녀인다. 요8:44에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보고 "너희 아비는 마귀다."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으시다.
그리고 엡2:2에 보면 구원받지 못한 모든 자들이 공중권세 자 마귀에게 잡혀 노예생활하고 있다고 정체를 밝히고 있다. 세상의 어떤 영웅도 이 마귀를 이기고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 마 귀는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지은 인간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떠나 죄악가운데 있는 사람이 아무리 선하고 착하고 노력하고 열심히 하고 공부를 많이 해도 결국은 영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 생활문제, 가정문제 육신문제로 시달리다가 결국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즉 만왕의 왕 이시다는 것은 바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지심으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셔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다"(요일 3:8)는 말이다. 이미 창3:15에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깰것이다." 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신 것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마귀 대가 리를 완전 박살 내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여인의 후손이란 말을 마 리아의 아들이라는 말로 해석하면서 은근 슬쩍 마리아를 올리려고 하는 시도를 한다. 정말로 모르는 소리이다. 여인의 후손이란 말은 아담 의 후손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자는 원죄아래 있는 자이며 하나님 떠나 죄와 저주와 사단의 손아귀 에 잡힌 자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도 물론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으 니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아담의 후손이요, 원죄아래있는 죄인인 것이다. 예수님만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님으로 잉태된 "여 인의 후손"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선지자, 죄와 저주를 해 결하신 제사장, 죄를 잡고 인간을 멸망시키는 마귀의 일을 멸하신 왕 이 되시는 그리스도시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하 고 그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어떤 조건도 어떤 부 차적인 문제도 필요없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나니"(요1:12) 예수그리스도! 그 분 은 구약 모든 선지자들이 바라보고 모든 제사장들이 바라보고, 모든 왕들이 바라보던 실체되신 바로 그 분 메시야이신 것이다. 더욱 중요한 말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이다. 예수님 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지금도 말씀으로 온 우주를 운행하고 계시는 만군의 하나님. 모든 세상 군왕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 바로 그 분이 예수님이신 것이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할 때 "예수님 당신은 모든 인류가 그토록 하나님의 약속 을 기다리던 바로 그 그리스도시오, 지금도 천하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정말 제대로 예수님을 본 것이다. 아니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4.올바른 고백자에게 주는 엄청난 축복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 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라."(마16:17)예수님은 "베드로야 너 참 신학공부 열심히 했구나. 그것 을 알다니 웨슬레도 공부하고 칼빈도 공부하고 조직신학도 공부열심 했구나."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베드로야 어쩜 그렇게 똑똑하 니."하지도 않으셨다. 베드로 개인이 잘나서도 아니고 베드로 개인이 수장권을 받을 만큼 훌륭해서가 아니라고 하셨다. 오히려 하나님이 복을 줘서 알게 하셨다고 하신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는 사실적 인 믿음은 신학책을 열심히 탐독해서 아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구원얻기로 작정된 자들에게 친히 알게 하시는 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복된 자들이 누구인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자들이다. 예수님을 개혁가 로 알면서 큰소리 뻥뻥치고, 예수님을 박애주의자로 알면서 자기 이름 내세우고, 예수님을 선생으로 알고, 예수님을 신비운동가로 아는 왜곡된 엄청난 시각속에서 참으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그리스도"로 깨닫게 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복된 자들인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그리스도로 깨닫는 자에게 세가지 중대한 축복을 약 속하신다.
1전도가 되어지는 축복-"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오 살아게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올라고 고백 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 속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반석이 베드로이기 때문에 베드로가 교회의 수장권을 가진자이고 그 교회가 정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신게 아닙니다. 베드로 가 반석이고 그 베드로위에 교회를 세운다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어 찌합니까 이 고백이 있은뒤에 바로 베드로는 예수님께 "사단아"하는 책망을 듣습니다. 베드로 그 인간 자체가 반석이 아니란 증거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반석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정말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아는 자들을 통해서 주의 나라 교회를 확장해 나가시겠 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행1장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며 그 분이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임할 때 권능을 주셔 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으로 삼으 시다가 재림오실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붙잡고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성령님이 임했으며 초청하지도 않았는 데 모여든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예수님이 바로 당신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시다."라고 증거할 때 그 자리에서 삼천명의 제자가 일어나 고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스데반의 일로 흩어졌던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도 "예수가 그리스도라" 증거할 때 그곳에서 도 믿는 자들이 일어나며 교회가 세워지고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그에게도 에수가 그리스도라고 증거할 때 그 에디오피아 지역에도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고 흩어졌던 제자들이 안디옥에 가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거할 때 이방선교의 큰 문을 연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나간 바울팀들은 가는 곳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다녔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교회를 '그리스도'반석위에 친히 세우셨습니다. 데살로니가 에 빌립보에 베뢰아에, 고린도에 에베소에, 전 아시아에 전 아가야에 전 마케도냐야에, 전 로마에에수가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 이시다는 진정한 고백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져 나간 사실적인 증거가 "사도행전"입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며 지금도 이 자리에 살아게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정말 올바로 그 분이 인생모든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시오 지금도 이 자 리에 성령님으로 살아게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때 당연히 복음의 문들 이 열려질 수밖에 없고 전도가 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2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예수가 그리스도시오 나와 함께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올바로 고백하는 자들에게 엄청난 축복을 주 셨는데 그것은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다. 세상을 멸망시키는 존재, 인간과 하나님을 분리시키고 영원한 저주가운데 빠뜨려던 더러운 존재, 신자도 할 수 있으면 넘어뜨려 복음전하 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자녀의 엄청난 축복을 못누리게 만들려고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고 다니는 그놈의 새끼. 바로 음부 의 권세를 가진 사단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권세를 "그리스도"를 바 르게 아는 자들에게 주신 것이다. 눅10:19절에도 제자들에게 분명히 주님이 이 권세를 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 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 으리라."고 약속하셨다. 막16:17에 보면 똑 같은 말씀을 하셨다."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 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 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 자들에게는하지 않으셨다. 40일금식을 하는 자들 에게는.하지 않으셨다. 믿는 자들에게는이라고 하셨다.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자들에게는 누구에게는 이 축복을 주셨는데 예전에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에 빠져 있을때는 눌려살고 벌벌떨던 그 존재 마귀를 이제 권세 많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결박하고 쫓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통령이라고 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게 아니고 학자라고 돈있다고 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게 아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사단의 존재를 이길 수 없고 눌리고 조정받고 질 수밖에 없는데예수가 그리스도시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자에게는 세상의 어떤 흑암의 세력도 나를 이 길 수 없는 권세가 주어진 것이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3천국열쇠를 내게 주리니무식한 말로 쇠떼유식한 말로 key!!바 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응답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성경에는 구원의 약속 다음으로 기도응답의 약속이 많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 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 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너희 아버지께 아 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지금까지는 너희 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 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아무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녀의 기도를 들으신다. 지나가는 아저씨한테 사정한다고 돈을 주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유일한 이유는 "자녀이기 때문이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살아게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믿는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사실적으로 영접한 자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는 천국열쇠를 소 유한 자들이다. 천국 곳간에 풍성한 모든 것을 열수 있는 열쇠, 즉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시는 기도응답의 열쇠를 가진 자들 이다. 기도할 때 모든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아들까지 내어주신 이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무엇인들 주시지 않겠느냐고 바울은 힘주어 말하고 있다. 전도가 되어지는 축복, 음부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놀라운 축복, 천국열쇠를 갖게 되는 놀라운 축복이 모든 축복이 한 문장에 달려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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