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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의 기적 (마14:14-21)

본문

오병이어의 사건은 우리가 잘아는 예수님의 이적역사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또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원한 떡이 되심을 보여주십니다. 이 놀라운 이적의 역사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 5,000명이라고 하니 그 무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만 근 10000명을 먹이셨다는 말씀을 믿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전능자십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믿는다면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먹이실 때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 하나님이심을 믿을 때에 이를 왜 못믿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 말씀은 믿는다고하면서도 실제 우리현실에서는 이 하나님을 이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으로 믿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이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까 확실히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무한의 능력과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를 잡고 일하려하시지만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우리 믿음이 거짓되고, 작고, 우리 믿음의 그릇을 엎어놓아서 부어주실 수 없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일으켰는데, 하늘에서 바로 만나를 주시듯이 하시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이는 (요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요6: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를 표적으로 보여주시면서 당신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자에게 역사하시는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배고픔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모르시는 주님이 아니십니다. 무리들이 목자잃은 양 같음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막 6장에서도 (막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어떤 것 보다도 주님께서 무리를 불쌍히 여기심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제자들이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그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지 않으셨다면, 주님께서 무리들이 굶주린 것을 모른 채하셨다면 이 모든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노아 때 하나님의 진노로 내리신 홍수에서 노아가정이 구원을 얻은 것은 노아의 온전함 노아의 믿음, 노아의 순종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의 종노릇하는 데서 구원을 받은 것은 그들에게 무슨 의로움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들의 우고를 돌아보신 것입니다. 그들의 (출3:7) 여호와계써 까라싸떄 냬까 얘꾸ㅃ예 잇는 냬 뺶썽의 꼬통을 쩡녕히 뽀꼬 끄뜰이 끄 깐엮짜로 인하여 뿌르찌ㅉ음을 뜨ㄸ꼬 끄 우꼬를 알꼬 (출3:8) 냬까 냬려와써 끄뜰을 얘꾸ㅃ인의 쏜예써 껀쪄냬꼬 끄뜰을 끄 당예써 인또하여 아름따ㅃ꼬 꽝떄한 당 쩌ㅉ꽈 굴이 흐르는 당 꼬ㄸ 까나안쪾쏚,혰 쪾쏚,아모리 쪾쏚,쁘리쓰 쪾쏚,히위 쪾쏚,여뿌쓰 쪾쏚의 찌빵예 이르려 하노라 우리가 영원한 죄에서 구원함을 받은 것도 그러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느냐 못입느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아보시느냐, 않느냐 여기에 우리의 모든 것이 달려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노력하고, 힘을 쓴다고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이를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살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시는가, 내가 이 은혜를 받을 만한 그릇이 준비되어 있는가, 이 은혜가 아니면 살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복 주셔야한다. 내 노력도 해야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야한다 이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한 갈급함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믿음지키고, 하나님의 일을 충성하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함이요, 하나님께 잘보이기 위함입니다. 사람에게 잘보이려고 사람 앞에서 의를 행하는 것은 외식이요, 하나님께 책망받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잘보이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위입니다. 우리들이 아이들에게도 이것을 가르쳐야합니다. 이것이 아이들을 믿음으로 지도하는 것입니다. 네가 열심히 공부하고 네 미래를 위해 노력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면 네 눈에 보이는 성공, 형통이 다 바람을 잡는 헛일이요, 기독자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하는 것을 가르쳐야합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의 역사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때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때는 환경은 더 안좋아 보이고, 가망이 없다고 생각되는 때에 더 크게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이 환경을 보시는 관점과 제자들이 보는 관점은 전혀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마14:15) 쩌녂이 뙤먜 쪠짜뜰이 나아와 까로뙤 이꽀은 삔뜰이요 댸또 이미 쩌물엇으니 무리를 뽀냬어 마을예 뜰어까 먺을 껐을 싸먺꼐 하쏘써 이 무리들을 이제 보내어서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만난 현실을 합리적인 시각으로 너무나도 인간적인 생각으로 주님께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갈 것 없다,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보는 현실은 이 말씀은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주님께 여려움을 말합니다. 지금은 날이 저물었습니다.
이곳은 빈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게서는 너희들이 주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주님께는 전능의 능력이 있음을 제자들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전능의 능력 가지신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려고하면 어떤 일도 가능하다는 이 믿음이 제자들에게 없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보는 관점이 믿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날이 저물었다. 이미 때가 늦지 않았느냐 이곳이 어디냐 빈들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는 도움을 구할 데도 없는 빈들아니냐 우리에게 돈이 없다. 우리의 여건이 어려울 뿐 아니라, 우리들의 능력이 실력이 없다. 어쩔 수 없다 하면서 낙망했습니다.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만난 현실에서 우리들이 절망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능의 주님께서 계시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면 모든 것이 이제 다 가능한데도 우리가 이 주님이 계신 것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절망하고, 낙담하지 않습니가 현실을 불평하고, 안된다 안된다 하지 않습니가 주님게서 명하시는 말씀을 순종하면 되는데 이것이 바로 어려움을 이기는 승리하는 방법이지만, 우리의 지식에서는 이는 안되는 것이라, 때가 맞지 않다. 지금이 날이 저물었다. 사람들이 도움도 없는 빈들이다.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 이 현실관을 가지고 있고, 믿음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아무런 하나님의 일도 못하고,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과 꼭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를 떠나지 않고, 붙드시고, 도우시고, 은혜주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명령이 있습니가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셔서 예수님게서 물으셨을 때에 어떻게 대답했으면 합격했겠습니까 예, 이곳은 빈들이요, 이미 날은 저물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들을 다 먹일만한 돈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하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줄 믿습니다. 주님의 능력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먹였는데, 모세가 먹인 것이겠습니까 주님의 능력이십니다. 모세보다 무한히 더 크신 분, 창조주 하나님되신 주여, 우리를 먹여주시옵소서 했다면 합격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해야합니까 우리들도 만나는 현실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합니까 기적은 주님의 명령의 말씀과 우리의 순종이 있으면됩니다. 지금도 홍해를 가를 수 있습니까 지금도 여리고 성이 하루 한 바퀴씩 도는 것으로 무너집니까 가능합니까
그렇다면 왜 안됩니까 하나님의 명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명령만 있다면 하나님의 약 속의 말씀만 있다면 됩니다. 이제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하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이 없는 것을 우리가 욕심 품는 이것 때문에 안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명령은 있으나 순종이 없기 땜에 안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우리와 함께하시며 지켜주신다는 약속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그렇다면 이 약속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그 나라와 그의를 구하라는 명령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를 순종해야합니다.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약 속의 말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우리가정에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우리가정에 철옹성같이, 여리고 성 같이 강한 자라도 이 복음 앞에 무너집니다. 이 기적을 볼 것입니다. 그나라와 그의를 위해 살 대에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책임지신다는 명령, 약속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믿어야합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2 970514 마14:13-21 지난 삼일예배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는 오늘도 있는데, 이 역사는 하나님의 명령과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먼저 주님께서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신 데서 이 오병이어의 역사는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의 기진함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먹이시기로 작정했습니다. 너희들이 먹여주어라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무엇이 남았습니까 제자들의 순종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몇 가지 핑계를 댑니다. 이곳은 빈들입니다. 지금은 저녁이라 날도 저물었습니다. 우리들이 가진 돈이 없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명령 앞에 이런 저런 핑계, 변명을 하지 않습니까 이곳은 빈들입니다. 아무도 도울 자 없는 광야와 같은 현실인 것을 변명합니다. 지금은 때가 맞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어려운 때입니다. 우리에게 가진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무엇인가 실력이 있어야한는데, 내게 아무런 실력이나, 능력이 없습니다. 무슨 일이나 성공하려고 하면 이 세가지 조건이 맞아야합니다. 때라고하는 기회가 맞아야합니다. 채소농사하는 사람들이 이런 얘기 많이 합니다. 배추가 풍년이라고 돈 버는 것이 아니다. 때를 맞추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실컨 농사지어서 채소는 풍년인데, 값이 없을 때, 내어 팔면 망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 기회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들의 실력도 성공에 있어서 필요조건입니다. 무엇인가 가져야하고, 무엇인가 재능이나, 지혜나, 돈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사람들의 도움이라도 입어야합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이 처한 입장은 주님께 순종할 수 없다고 핑계하고, 변명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아닙니까 그러나 실은 하나님의 능력은 기적의 역사는 빈들에서 나타납니다. 빈들과 같이 아무도 도울 자 없다는 현실에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사람이 부요하고, 여유가 있을 때에, 사람의 도움이라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을 잘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으려고 하는 때는 저녁입니다. 날이 저물 때에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제 시기적으로도 도무지 맞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때, 이 어두운 때에 그래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자기에게 아무 것도 없다는 고백이 중요합니다. 이 무리를 먹이려고하면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있어야하는데, 떡도 지금 구하지 못하지만, 그 돈은 어디 있습니까 이때가 하나님께 구하는 때입니다. 이 기적의 역사는 빈들에서, 날이 저물어갈 때에 일어났음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할 때가 기도할 때요, 이때가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와서 기적을 체험하는 때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예, 먹을 것들을 좀 준비하는 것이 지혜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 무엇을 먹을 것을 챙기고 할 시간이 있습니까 저 극악한 북쪽에서 어떤 식으로 도발할 지 모릅니다. 이 전쟁의 두려움을 우리 교인들이 안 가지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전쟁의 두려움이라도 느끼고, 라면이라도 사는 일이라도 하면, 아, 이 전쟁이 무섭구나, 전쟁이 일어나면 언제 이 라며이나 챙기겠느냐 하면서 전쟁보다 더 무서운 하나님,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면서 회개하자. 회개하여 전쟁을 막는 길밖에 없다. 하겠는데, 아무리 말해도 몽둥이가 몸에 닿을 때 까지 미련하고, 둔하여 설마, 설마하면서 패역합니다.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지금이 은이나, 금이나, 옷을 취할 때입니까 이 나라가 지금 빈들에 서 있습니다. 이 민족이 저물어 가는 저녁에 서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힘이나, 지혜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 때가 오히려 기도하기 좋은 때요, 이 때가 하나님께 돌아올 때입니다. 기적과 능력으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막아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북 쪽의 모든 계획이라도 무효, 무력화 될 것이고, 아니면 그 무기를 한 번은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초토화 됩니다. 이 믿음 없는 제자들을 데리고 주님께서 어덯게 사역하셨겠습니까 얼마나 주님이 답답하셨겠습니까 그러나 그 중에서도 작은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어떤 믿음이 있었습니까
첫째로, 무리가운데 이름도 없는 계수에도 들지 않았던 아이 하나, 그의 손에 들려진 작은 도시락 하나 이것을 주님께 바친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먹어도 배를 채울 수 없는 그 작은 도시락이지만, 이 것이라도 주님께 드려야겠다는 마음, 그 희생이 이 오병이어의 역사를 가능케한 종자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이 아이를 주님께로 인도한 안드레의 작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의심하고, 불신하고 있을 때에 이 안드레는 자기에게 나아온 아이의 도시락을 들고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남자만 오천명이니, 만명이 넘는 무리를 볼 때에 이 도시락 하나를 들고온 아이를 보고, 다른 제자 빌립같으면, 계수가 빨라서 이 아이의 희생을 물리쳤을 것입니다. 아이야, 네 정성은 고맙지만, 이것 가지고 무엇하겠니 너나 먹고 주림을 면해야되겠구나, 했을 것입니다. 안드레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그래도 주님께 가져 옵니다. 그래서 작은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이 아이의 도시락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온전한 믿음은 아닙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그래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 보려고 있는 힘을 다한 것이었습니다.
셋째로, 떡을 떼어 나누라는 말씀에 순종한 제자들의 순종, 곧 나눔이 있었습니다. 이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누었습니다. 이제 12제자들의 손에 까지 이 것이 나누어졌는데 이를 만일 이 제자들이 왠 떡이냐하고, 제 입에 넣었다면 이 기적의 역사는 끝이 났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것을 무리들에게 잘 나누었습니다. 만일에 아이의 희생이 없었다면, 안드레의 믿음이 없었다면, 제자들의 나눔이 없었다면 이 기적의 역사를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주님의 손에 이 도시락이 들려졌고, 주님께서 축사하심으로 이 기적은 일어났던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지극히 작은 도시락하나를 내어놓은 작은 희생, 이 아이를 주님께 인도한 안드레의 작은 믿음. 제자들의 나눔, 이 희생과 이 믿음과 나눔이 있을 때에 오병이어의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주님의 손에 들렸을 때에, 주님의 은혜의 장중에, 능력의 장중에 들렸을 때에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무엇이 얼마나 있습니까 천지의 대 주인되신, 금도 내것이요, 은도 내것이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거지되셔서 우리에게 우리 것을 좀 내 놓으라고 구걸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 능력을 체험시키시려고,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보이시고 믿도록 하시려고, 우리 가진 것을 드려라고 하십니다. 이 아이의 희생 같은 지극히 작은 희생이나, 정성을 다해서 있는 전부를 다한 희생이 있습니까 빈들이라고, 날이 저물었다고, 가진 것이 없다고, 변명, 핑계 하지 말고, 우리 가진 것이 무엇인가 돌아봐야합니다. 적은 능력이라도, 적은 물질이라도 주께 드리는 아이의 희생이 기적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대단할 것을 요구하십니까 아닙니다. 안드레 같이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겨자씨 같은 적은 믿음이라도 순종하고자하는 믿음이 능력을 끌어 옵니다. 안드레는 숨은 사람입니다. 그는 들레지 않고 일했습니다. 비록 큰 일을 한 사람은 아니나, 하나님을 일하게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누가 큰 일을 합니까 믿음을 가진 사람이 큰 일합니다. 계산적인 사람, 합리적인 사람, 드러난 사람이 일하는 것 압니다. 안드레 같이 주님의 심정으로 주님의 뜻에 어떻게 하든지 순종해 보려고하는 사람이 일합니다. 이 사람이 능력을 봅니다. 제자들이 이제 나눕니다.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을 가지고 제 입에 넣지 않고, 무리들에게 나눈 것이 기적을 낳게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 가진 것이 있어서 평강의 집에 봉사활동을 갑니까참 우리도 부족한 것 뿐이지만, 그래서 성한 육신을 주신 것 감사하면서 그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또 귀중히 여기시는 주님의 심정으로 이 일도 하는 것 아닙니까 주님께는 이들의 영혼도 똑 같이 귀중합니다. 우리가 이런 봉사활동을 하면서 주의 해야하는 것은 우리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지, 이들의 이픔을 보면서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는 이런 악한 마음은 버려야합니다.
또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전에 이들의 영혼을 귀중히 여겨야합니다. 사람들은 버렸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버리시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는지 모릅니다. 이들이 들어갈 영원한 내세는 부자유한 몸이나, 정신이 아닌 온전하고, 자유하는 세계입니다. 어떤 것이나, 주님의 손에 들려지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는 선한 일, 희생이나, 수고나, 충성이나, 순종의 모든 삶이 과연 주님의 손에 들려져서 주님의 축사를 받는 것이 되는가
그렇다면 이는 오병이어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아무리 충성, 봉사, 수고, 희생을 해도 자기 명예를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이런 선한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오병이어의 기적의 역사는 없습니다. 여러분 오병이어의 역사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먹게 되었습니까 남자만 오천명이니 약 만명이 먹었습니까 아닙니다. 이 오병이어의 떡과 고기는 지금도 우리들도 먹고 있지 않습니까 이 아이의 작은 희생이 안드레의 작은 믿음이 제자들의 섬김이 오늘까지 우리들에게 영혼의 양식되어 우리를 먹이우고,우리에게 영원한 양식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 떡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작은 떡 한덩이지만, 만인을 먹이는 신령한 양식이요, 음료입니다. 할 수 있다 하신이는 나의 능력 주 하나님 믿음만이, 희생만이, 사랑만이 능력이라하셨다는 복음송이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를 잡고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려고 하십니다. 이 능력의 장중에 잡혀서 쓰임을 받는 자가 어떤 자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하나님의 영령으로 됩니다. 명령에 순종하는 것으로 기적은 일어납니다. 우리의 희생, 믿음, 섬김이라는 순종을 잡고서 주님께서 축사하실 때에 역사는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먹이시고, 남은 조각이 우리의 것 보다 더 많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잊으면 안됩니다. 받은 은혜의 그 경험과 체험을 잊으면 신앙에 손해를 많이 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계심을 체험하였음에도, 이 은혜의 현장을 떠나면 그만 잊어버립니다. 은혜를 쏟아버리면 안됩니다. 은혜의 부스러기도 다 모아야합니다. 이래서 우리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리시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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