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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마14:22-33)

본문

이 아침에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제목으로 본문을 깊이 상고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난 사건이 4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두번이나 기록되어 있는데 제자들이 갈리릴 바다를 항해하던 중 두번이나 풍랑을 만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던 제자들은 거친 바람을 만난 것입니다. 물결은 거세어지고 배는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풍랑으로 제자들은 심한 고난을 겪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고된 인생살이의 한 단면을 보여 준 것입니다. 인생들은 고난 풍파가 없는 에덴동산과 같은 파라다이스(Paradise)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쉴 새 없이 밀려오는 환난을 헤쳐나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흔히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기를 “주여 오늘도 평탄한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아무런 고난이나 고통을 경험하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합니다만 예기치 않았던 풍랑을 만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이 다가오는 것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고난이 다가오는 것은 그들이 불신자들이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믿는 성도들에게 까지 고난이 다가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23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바다를 건너갔는데도 불구하고 풍랑을 만났음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제자들만 배를 타고 항해를 했다면 풍랑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나 예수님을 모시고 갔는데도 왜 풍랑을 만났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만물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도록 하셨을까 의문을 갖게 됩니다. 제자들은 시원치 않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집을 버리고, 하던 일을 제쳐놓고, 부모 형제의 곁을 떠나 주님을 따르고 섬겼던 헌신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토록 헌신한 제자들이었는데 풍랑을 만났고, 또한 예수님을 모시고 갔는데도 풍랑을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시원치 않게 믿는 사람들이 풍랑을 만난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을 믿고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풍랑이 다가온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봉독해 드린 본문 말씀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건너편으로 건너가라” 예수님의 이 명령에 순종해서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다가 풍랑을 만났다고 하면 아마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덯게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행위로 풍랑을 만났다면 당연하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제자들의 경우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건너가라고 명령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가다가 풍랑을 만났으니 무슨 연고이겠습니까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났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만 제자들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이기적이고, 세속적이고, 정욕적인 세상 사람들을 떠나 고요한 곳에 가서 기도하기 위하여 건너편으로 건너가다가 풍랑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일들을 아시고 계시기 때문에 제자들이 풍랑을 만날 것을 다 아시고 계셨을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를 타고 건너가라고 명령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재촉하사”라는 말을 헬라어로 에낭카센(ηναγκασεν)이라 하며, 그 의미는 “억지로 시키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급히 서둘러 바다를 건너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억지로 가게끔 강요하신 것입니다. 그 명령을 내리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상고해보겠습니다.
첫째로, 정욕적이고 세속적인 무리를 떠나라는 뜻이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 15절에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제자들을 재촉하여 바다를 건너가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결코 사람들을 육신에 속하게 하여 마치 그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세상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마귀의 일을 멸하고, 정욕적이고,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되어지도록,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육신적이고, 정욕적이고, 세속적인 무리들로부터 떨어져서 한적한 곳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둘째로, 제자들을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신 후에 예수님께서 혼자서 기도하시기 위하여 그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23절에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12절에 보면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기 위하여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세속적이고, 정욕적인 무리들을 떠나 한적한 곳에 나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적한 곳이란 어떤 곳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여 은혜받고 변화되어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몸된 교회에 충성하는 분들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훈련시킬 목적으로 바다를 건너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마치 온실의 화초처럼 유약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풍랑, 환난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강하고, 견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바라시는 대로 온전한 신앙, 견고한 신앙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장성한 분량은 하루 아침에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진 풍파를 경험하고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여 승리할 때에 비로소 온전한 신앙의 사람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순도높은 순금을 만들려면 고온의 풀무불 속에 넣어 녹여야 합니다. 이렇듯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과 연단을 통해서 견고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서울의 일류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밤잠을 안자고 열심히 공부하고, 여러번의 시험을 통해서 진학하게 됨을 보게 됩니다. 박성주 전도사가 카나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지만, 과제물만 B학점을 받았다고 합니다. 과제물이 다른 것이 아니라 영어작문이라고 하는데 밤잠 안자가며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지만 영어권(英語卷)의 학생들보다 어려운 환경가운데서 공부하고 있으므로 4당5락(四當五落)의 정신으로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4당5락의 의미는 다름이 아니라 일류대에 진학하기 위해 학생들이 정해놓은 최저수면의 양을 말하는데, 네시간 자면 붙고, 다섯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편하게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고난 풍파가 닥쳐오면 헤쳐나갈 힘을 미쳐 갖추지 못하여 쓰러지고 맙니다.
우리는 고난과 환난을 통해서 연단받아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져야 하며, 정금과 같이 빛나는 신앙의 사람들이 되어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신앙을 연단하여 온전한 신앙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풍랑 만날 것을 미리 아시고 바다를 건너가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악인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그 자체가 형벌이요, 저주라고 하겠지만, 성도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풍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으로써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자비임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2장 6절에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징계하시고 채찍질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다가오는 고난, 풍파는 저주가 아닙니다. 형벌이 아닙니다. 사랑이요, 자비인 것입니다. 20세기의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가 시카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신문기자가 그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저서는 너무 방대하여 다 읽어 볼 수는 없지만 그 방대한 서적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시기 바랍니다”. 칼 바르트가 대답하기를 “저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으면서 잠을 잤고, 또 다른 하나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랐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노래였습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감싸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의 저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고난도 주시고, 시련도 허락하십니다. 승리도, 영광도 안겨주십니다. 건강도 허락하시지만, 때로는 연약함도 허락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심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주님을 섬기며 주님을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노를 저어 육지에서 수리나 떠났을 때에 풍랑을 만났다고 본문 2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바람이 거슬리므로 그들이 괴로이 노를 저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사납던지 제자들은 자기들의 힘으로는 풍랑을 잠잠케 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칠흑과 같이 어두운 밤에 제자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형편에 놓여있을 때에, 주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을 때에 주님의 사랑을 받을 기회로 생각하시고, 주님께서 우리 곁에 찾아오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풍랑 중에도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셔주십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풍랑을 만난 제자들에게 주님은 찾아와 주셨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혼자서 고통당하게 하시지 아니하시고 성도 곁에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소망 가운데 신앙생활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25절에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당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환경을 도와주신 것입니다.
넷째로, 기억할 것은 가장 적절한 때에 주님께서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밤 사경, 즉 새벽 3시에 찾아오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풍랑을 헤쳐가느라고 몸부림 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제자들이 그들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에 제자들에게 다가가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주님을 절실히 필요로 할 때에 찾아와 주십니다.
그러므로 절실하게 필요로 할 때 까지 주님은 참고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새벽 3시란 가장 어두운 시간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그때 까지 예수님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인간의 노력과 한계를 깨달은 것입니다. 전지 전능하신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주님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절실함을 느끼는 순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 곁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성도들이 절실히 주님의 힘을 필요하다고 느낄 때 찾아와 주셔서 역사해 주시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할 것은 풍랑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물결을 바라보았을 때에 물결 속에 빠져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고 걸었을 때에는 물 위를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30절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만일 바람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바라보았더라면 풍랑을 헤치고 무난히 바다 위를 걸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 등반가가 여의도에 있는 63빌딩을 로프를 타고 올라가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 높은 곳을 올라갈 때 밑을 내려다 보면 아찔할 터인데, 현기증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그가 대답하기를 “저는 정상을 향해 올라갈 때에는 아래를 내려다 본 적이 없습니다. 위만 쳐다보고 올라갑니다.”라고 했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도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나갈 때에 세상과 환경 바라보지 아니하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간다면 무난히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때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환경바라보지 말고 우리에게 힘주시고, 능력주시고, 도와주시는 예수님만 바라보아 승리할 수 있게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물결을 바라보다가 물결 속에 빠져들어 가면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부르짖었을 때 주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건져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 빠져들어갈 때나, 환난 속에서 헤매일 때, 혹은 시험 속에 빠져 들어갈 때에 우리는 주님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든지 여러분이 주님만 찾고 구하기만 하면 도와주십니다. 어려운 환난과 고통을 만나거든 주님께 의뢰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주님 바라보고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부르짖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고, 또 하나님의 도우심에 힘입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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