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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실패, 위대한 성공 (마14:23-33)

본문

인간은 저마다 다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꿈의 성취를 위해서 우리는 자나 깨나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지 가운데 가장 강한 의지는 성공의 의지입니다.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성취욕이 있습니다. 자기의 꿈과 욕구가 달성되면 성공이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말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실패도 성공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와 경륜속에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실패도 하나님의 뜻이요, 성공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실패도 성공도 없는 것입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행복하거나 실패했다고 해서 불행한 이유가 없는데 우리는 거기에 매여 살고 있습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순풍에 돛단배처럼 순탄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또한 실패를 계속하면서 힘있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한 성공도 실패도 모른채 무사안일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이 세상 사람과는 달라야 합니다. 성공에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목적으로서의 성공이 있습니다. 시작부터 목적이 선하고 분명하면 결과야 어떻든 목적은 성공입니다. 또 과정으로서의 성공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은 그 과정에 있어서 성공입니다. 또 결과에 있어서의 성공이 있습니다.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고 가치있는 일은 성공입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배우역을 맡아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각본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 세계 역사의 무대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쓰신 그 각본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제각기 배우역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우역에서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왕을 맡거나 높은 역을 맡은 사람을 성공했다 생각학 아랫 사람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각본을 쓰실 때에는 왕의 배역을 등장시키든지 하인의 배역을 등장시키든지 그 역할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할을 잘했느냐를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성공과 실패가 가려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살면 자기 위치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대해서 자기 역할을 분명하게 잘하고 있다면 그것이 성공입니다. 우리가 연극을 볼 때 무조건 왕으로 등장했다고 해서 그 왕을 위대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눈으로 그 연극이나 드라마를 볼 때 자기 역할을 잘 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그 사람을 참으로 훌륭한 연기자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서 쓰셨고 지금도 쓰고 계시는 각본에 따라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잘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실패도 성공도 위대해야 합니다.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주안에서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생애를 보면 성공과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베드로라는 개인적인 독특한 성격상, 그의 생애는 더욱 다양하게 전개됩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잔뼈가 굵도록 고기잡이를 하던 베드로가 위대한 믿음의 반석으로 수제자가 되기까지는 베드로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성공과 실패를 통하여 그 인격이 깊고 넓게 성숙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예수께서 이말을 듣고는 “(마16:17)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이 말씀을 통해서 베드로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며칠 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마16:22)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마16:23)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책망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칭찬도, 책망도 받았지만 모두 예수님을 나타나게 했음으로 위대한 것입니다. 철저히 자기 이기심이 없고 사심이 없어 주님을 향하는 그의 자세 때문에 모든 것이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새벽에 주님은 시몬에게 가까이 오사 그 배위에 앉으시어 많은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신 후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하셨을 때 순종함으로 베드로는 많은 물고기를 잡았으나 오히려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고, 다 버리고 주님의 뒤를 따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고기 잡는 어부가 되지 말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베드로는 고기를 못잡아서 실패한 것이 아니었고 고기를 많이 잡아서 성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하게 그의 삶 자체가 예수님을 나타내었기에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취후의 만찬을 나누시고 찬미하면서 감람산으로 가실 때에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 목자가 양을 치리니 흩어지리란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장담하여 하는 말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연약한 소녀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하고 넘어졌습니다. 네가 닭 울기 전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베드로는 밖에 나가서 통곡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넘어져도 위대했습니다. 그는 넘어져도 여전히 예수님을 나타내는 수제자였습니다. 위대한 생애를 그는 넘어져도 위대해던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베드로의 실패의 경험이면서 또한 그의 생애를 찬란하게 성공시키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실패도, 성공도 위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실패와 성공은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하는 일은 성공이요, 말씀없이 하는 일은 실패입니다. “”(마14:28)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 베드로는 자기의 재주나 능력으로 물 위를 가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걷게 해 달라고 한 것이니다. 그리스도인의 성공과 실패는 언제나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신념과 다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은 곧 우리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정신력이나 자기 자신의 의지에 근거하는 것을 신념이라고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신념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말씀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념을 신앙과 혼돈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신념에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신념을 포기하여야 합니다. 신앙이란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한 청년이 충청도 어느 기도원에서 집회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여름철 폭우에 강물이 넘쳐서 건널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믿음이 충만하여 베드로처럼 나도 물위로 걸으리라 생각하고 주여 믿습니다. 하고 강물위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런데 강물속에 빠져서 죽게 된 것을 청년들이 겨우 건져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베드로가 물위로 걸어가던 믿음이 왜 나에게는 없을까 하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없는 것을 탄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믿음을 얻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죽을 일만 골라 하다가 망하게 됩니다.
은혜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꼐서 오라 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간 것이지 자기 생각으로 건너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청년은 주님이 오라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지 않은 일을 하면 결국은 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에 근거하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이 없는 성공이나 실패는 불행합니다. 말씀에 근거한 일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모두 위대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이 과연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도 먼저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40일 금식기도 하였을 때 몹시 주리셨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하였습니다. 그때 할 수 있다 없다 말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대답합니다. “(마4:4)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이 돌들로 떢을 만들고 못만들고가 문제가 아니라 나는 말씀을 따라서 먹기도 하고 굶기도 하고 자기도 하며 일어나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또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유혹할 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했습니다. 주의 사자를 보내서 내 발을 땅에 부딪히지 않도록 붙들리라고 저들이 하나님 말씀을 인용합니다. 또한 높은 산에 올라가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 부며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천하만민과 영광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문제이므로 나는 오직 말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경배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옳고 그른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는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제쳐놓고 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말씀이 물 위로 오라 했을 때 갔습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따라 물 위를 걸었으나 말씀을 잃는 순간 그는 실패에 빠지고만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생활이 분명한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면 실패도 성공도 위대하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실패와 성공 모두에 주님의 손을 붙잡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물 위로 걷다가 풍랑을 보고 넘어졌습니다. 물속에 빠져 가는지라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소리쳤습니다. 주님은 즉시 베드로의 손을 붙잡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시간 주님의 손을 잡고 있느냐, 인간의 손을 잡고 있느냐, 아니면 마귀의 손을 잡고 있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할 때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느냐와 그 과정이 신앙적인가를 살펴야 합니다. 어떤 궁지에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손을 붙잡는 사람은 실패든 성공이든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성공하면 교만해서 주님의 손을 놓아버리고 어려울 때는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주님의 손을 놓아버립니다. 인간의 모든 비극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주의 손을 붙잡고 있는지요 그 전능하신 손을 의지하고 있는지요 물속에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의 손을 잡으시던 예수님의 손길은 20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절실한 것입니다. 우리가 좀더 낮아져서 자기 무능함을 알고 주의 손을 붙잡는 것이 곧 능력이요 축복입니다. 오늘 이 음성을 들읍시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강하고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드십니다. 이 약속을 믿는 것이 신앙이요 이 신앙은 자신을 성공으로 인도합니다. 강하고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드시는 그 순간만이 최대의 성공이며, 그 손을 놓아버릴 때 가장 큰 실패가 됩니다. 여러분, 내가 약할 때 주님의 손을 붙드시는 것이 최대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문제가 어디 있습니까 2천년 교회사에서 목사나 교인들이 타락할 때가 언제였습니까 물질로 부요한 때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타락입니다. 2천년 교회사에서 초대교회는 핍박과 환란과 가난속에서도 주님의 손을 강하게 붙잡았을 때 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에 물질의 부요가 쌓여 주님의 손을 놓아 버리고 물질과 인간의 손을 붙잡고자 할 때 교회는 나약해졌습니다. 여러분이나 저에게 일생을 통해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손을 붙잡지 않고 살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가난하게 살 때에 타락한 사람은 적습니다. 가난하게 살 때에는 주님의 손을 붙잡고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부요하게 될 때 주님의 손을 놓습니다. 여러분, 지금 주님의 손을 붙들고 있는지요 십자가를 튼튼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갑시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실패와 성공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한배에 올랐을 때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수제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하는 일이 잘되었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 오 주님이시여! 하는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는지요 내가 건강하든지, 약하든지,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모든 결과를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진실로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이는 위대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생애는 목적이 주님의 말씀을 좇아갔고 과정이 주님의 손을 붙들었고 결과에 있어서도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모든 사람이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위대한 성공이요, 위대한 실패요, 모두가 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제자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성공할 때 많은 사람이 내 앞에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실패해도 내 실패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더욱 나타나고 있다면 그 실패는 실로 위대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도 예수님을 나타냈고 물속에 빠져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나타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증거되는 결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이 성공적으로 형통해야만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소원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이나 실패 모두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롬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 베드로의 생애는 책망과 칭찬, 실패와 성공이 연속적으로 반복되지만 그 사건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계시하기 때문에 베드로는 실수해도 수제자요, 넘어져도 수제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의 생애를 본받아 과감하게 주님앞으로 나가야겠습니다. 말씀을 따라 무슨 일이든지 하려고 하면 그것 자체가 곧 주님의 일이 됩니다. 넘어져도 주님을 증거하며 주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합니다. 서양격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대의 실패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도의 선교사였던 윌리암 케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계획하라.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것을 기대하라”고 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이 우리를 향해 걸어 오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성공이든 실패이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위대한 신앙의 성공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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