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바라시는 믿음 (마14:30-33)
본문
I.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기독교의 꽃입니다. 그럼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기독교의 본질은 믿음입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죤 번연이 쓴 철로역정을 보면 기독자와 소망이 "환란산"에 도착했을 때, 그 환란산에서 4명의 목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목자들은 기독자와 소망을 데리고 환란산의 최고봉인 "분명"(clear)이라는 봉우리로 데리고 올 라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목자들 중의 하나인 "지식"이 그들에게 "천국문"을 보여주 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천국문을 볼 수 있는 망원경 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망원경의 이름이 바로 "믿음의 눈"이였습니다. 이 세상을 가는 순례자가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믿음 그뿐만 아니라, 우리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죄로 죽을 수 밖 에 없는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의 행 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되시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기독교가 능력을 행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우리의 능력은 우리의 지식 이나, 우리의 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믿음에 있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것도 믿음 위에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학문이 나, 돈이나 권세 위에 세우시지 않고, 믿음 위에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믿음이 적은 자와 믿음이 큰자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을 보면 믿음이 적은 자에 관한 말씀이 4번 나옵니다. (마6:30)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 엇을 입을까를 염려하는 자들을 보시면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 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하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시 고 나무래셨습니다. (마8:26)에 나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시는데, 바다에 큰 놀(성난 풍랑:furious storm)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 들이 예수님을 깨우면서 "주여, 구원 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하고 소 리질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 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바 다가 아주 잔잔해 졌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배에 오르시지 않고, 제자들만 배 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가는데,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서 제자들이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 4 경에 새벽 3시서 6시경에 예수님께서 바다위를 걸어 오셨읍니다. 제자들은 이 예수님을 보고 유렁인줄 알고 두려워 하며 소리 질렀 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바다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나도 신기해 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 소서"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바다위를 걸어 갔습니다.
그런데 함 참 가다가 풍랑을 바라보고는 무서워서 바다에 빠져가게 되었습니다. 그 러자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하고 소리쳤습니다. 그 러자 예수님이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았습니다. 그러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시고 나무래셨습니다. (마16:8)에 나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행을 떠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그만 음식을 가지고 가는 것을 잊고는 그냥 떠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예수님이 갑자가기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빵을 만들 때 들어가는 누룩이라는 말을 듣자, 제자들은 그제서야 떡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서로 떡을 가지고 오지 않 은 것으로 인하여 걱정을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걱정하는 것을 아시고는 예수님께서 "믿음이 적은 자들 아, 어찌하여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였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고 주은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 곱개로 사천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 고 나무래셨습니다. 예수님이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한 것은 다른 사람들을 두고 한 것이 아니라, 다 제자들을 두고 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들을 다 보셨기 때문에, 큰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 으로 생각하지만, 제자들도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작 은 믿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네 믿음이 크도다"하고 예수님이 큰 믿음을 칭찬한 것이 두번 나옵니다. (마8:10)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가겼을 때,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서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고쳐 주옵소서"하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가서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하면 오고, 종더러 이것을 하면 하나이다"하고 말씀을 드렸읍니다. 이 말을 들으시고는 예수님이 기이히 여기시면서 좇는 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하시면서 백부장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 보다도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마15:28)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 가 셨을 때,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님께 나와서 자기의 흉악한 귀신들린 딸 을 고쳐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계 속해서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소리질렀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니, 저 여자를 쫓아 보내라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 내심을 받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그녀를 고쳐줄 뜻이 전혀 없다고 말씀하셨 습니다.
그런데도 이 여자는 예수님께 달려와서 제 딸을 고쳐 달라고 소리쳤읍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매몰차게도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하고 말씀하시면서, 그 여인과 그의 민족을 개취급을 했 습니다.
그런데도 이 가나안 여자는 "주여,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 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고 자기들은 개인데 개라도 불쌍히 여 겨서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하 시면 그녀의 큰 믿음을 칭찬하며 딸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작은 믿음과 큰 믿음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면 은혜 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작은 믿음은 무엇인가 우리는 큰 것과 작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고 믿음이 작다고 나무라셨는데, 작은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1) 작은 믿음은 상황의 지배를 받는 믿음입니다. 작은 믿음과 믿음이 없는 것과는 다릅니다. 작은 믿음도 믿음입니다.
그런데 작은 믿음은 주의 환경에 지배를 받는 믿음입니다. 상황이 좋을 때는 믿음이 커 보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나쁠 때는 믿음 이 작아보입니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변하는 믿음이 작은 믿음입니다. 헌 구두나, 새 구두나, 날씨가 좋을 때에는 잘 닦아서 신고 다니면 차이 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가 와서 땅이 질어지면 헌 구두는 물이 새서 발이 졌습니다. 그러나 새 구두는 비가와도 발이 젖지 않습니다. 큰 믿음은 전혀 상황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자 작은 믿음은 상황에 지배를 받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은 상황이 좋을 때는 믿음이 커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 황이 나빠질 때에는 믿음이 작아 보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믿음이 오늘 본문의 사건에서 갑자기 작아 진 것이 아 닙니다. 베드로의 믿음은 원래 그랬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의 상황이 나빠지자, 그의 작은 믿음이 드러난 것 뿐입니다. 이렇게 작은 믿음은 상황에 빠라 믿음이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상 황이 좋을 때는 믿음이 커 보이고, 상황이 나쁠 때는 믿음이 작아 보입니다.
2) 작은 믿음은 표적을 구합니다. 작은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표적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고, 믿을 때에도 표적을 구합니다. 표적이 있으면 믿고, 표적이 없으면 못 믿습니다. 그러나 큰 믿음은 표적이 없어도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댓가를 주어야 부모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성숙 한 어른은 댓가를 주지 않아도 부모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성숙한 믿음 큰 믿음, 큰 믿음은 아무 표적이 없어도 주님을 믿습니다.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으면 불안해 하 고, 두려워합니다.
3) 작은 믿음은 위험을 과장합니다. 작은 믿음은 언제자 작은 위험도 크게 생각을 합니다. 작은 문제도 크 게 생각을 합니다. 작은 믿음은 언제나 최악의 시나리오를 구성합니다. 베드로는 바다위를 걷지 못하게 되자, 곧 바로 바닷 속으로 빠져 들어갔 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작은 믿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바닷 사람이라 분명히 수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에는 손을 내 밀면 닿을 정도로 가까 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여나를 구원하소서"하고 소리치자 예수님이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베드로 가 가까이 있었다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얼마든지 수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의 믿음은 작은 믿음이였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의 능력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작은 믿음은 위험이나 문제들을 실제 보다 훨씬 더 크게 과장하 여 보고 있습니다. 그러자 큰 믿음은 위험한 일이 다가와도, 그 위험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얼마든지 하게 됩니다. 이것이 작은 믿음입니다.
2. 작은 믿음이 살길 예수님이 작은 믿음을 대하실 때, 그들의 작은 믿음을 보시고,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부드럽게, 친절하게 그들을 나무래셨습니다. 그 말씀의 표현이 과격한 표현이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나무래듯이 나무 래셨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작은 믿음이지만, 작은 믿음도 여전히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무래기는 하셨지만, 그 작은 믿음을 부정하거나, 무 시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비록 자녀의 생각이 어려서, 어리석어도, 내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작은 자녀를 야단은 치나, 그것은 미워서 치는 야단이 아니라, 사랑의 야단입니다. 예수님이 작은 믿음을 야단 친것은 다 이와 같이 야단을 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작은 믿음도 믿음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믿음이 약해서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 역시 생명 력이 있는 믿음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이였읍니다. 그래서 믿음이 적은 것을 부드럽게 자녀를 나무라듯이 나무랬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의 믿음이 작은 것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화도 났지만, 그 래도 그들에게 믿음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버리시지는 않았읍니다. 오히려 애증을 가지고 그들을 대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가 어떻게 사느 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믿음을 가진 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1) 믿음이 작은 자는 예수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약한 어린 아이는 약하기 때문에 부모에게로 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이 작은 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베드로는 믿음이 작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아갔습니다. 그때 살 길이 열렸습니다. (마8)에서도 바다에 놀이 일어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자, 제자들은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작았습니다. 그러나 믿음 자체이신 예수님께로 가시 자, 믿음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살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큰 자들은 자기들의 믿음으로 큰 일을 할 수 있지만, 믿음이 작은 자는 예수님께 나아감으로, 믿음 자체이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더 큰 일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2) 믿음이 작은 자는 어려울 때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물에 빠져갈 때, 수영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힘으 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도움을 간구했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하 고 소리질렀습니다. (마8)장에서도 큰 놀이 일어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자, 제자들은 예수님 께 나아와서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하고 도움을 간구했 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작은 자는 주님께 도움을 간구해야 합니다. 믿음이 크 면 그 큰 믿음으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면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작 은 자는 믿음의 주요, 능력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 작은 자의 살 길입니다. 작은 믿음은 그 작은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나아 갈 때, 주님의 권능의 손이 우리를 구원 합니다. 이것이 작은 믿음의 소유자가 할 것입니다.
3. 우리 주님은 우리가 큰 믿음을 갖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큰 믿음을 칭찬했습니다. 이것은 큰 믿음을 갖는 것이 작은 믿음을 갖는 것 보다 좋은 것이니, 우리로 큰 믿음을 갖기를 원한다는 말씀 입니다. 우리 주님의 목회는 우리로 큰 믿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큰 믿음을 갖게 하시려고 3년 동안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칭찬하고 추천하는 큰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 끈질기게 주님을 찾는 믿음입니다. 큰 믿음은 응답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자기의 딸이 흉악한 귀신 들렸으니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자기의 딸좀 고쳐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와 그여인과는 아 무런 상관이 없어서 고쳐 줄 수 없다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런 예수님의 말씀에도서운해 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흉악한 귀신 들린 딸 좀 고쳐 달라 고 예수님께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 여인과 그 여인의 민족을 개 취급을 하면서, 개와 같은 그들은 고쳐줄 가치 조차 없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우리 보고 개라고 해도 좋 고, 우리는 실제로 개만도 못합니다. 그러나 개만도 못하지만 불쌍히 여 기고 고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렇게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찾는 믿음이 큰 믿음입니다.
2) 상황에 지배를 받지 않는 믿음입니다. 무슨 징조나 증거가 있어서 하나님을 믿은 믿음이 아닙니다. 아무 증 거 없어도 하나님을 믿은 믿음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기도했는데도, 아무런 증거 가 없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4번까지 기도하는 동안 예수님으 로 부터 아무런 응답의 징조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데 아무런 징조가 보이지 않아도 이 여인은 예수님이 흉 악한 귀신들린 자기 딸을 고칠 수 있다고 믿고 기도했습니다. 내게 아무런 응답이 없어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믿음이 큰 믿음 입니다. 하나님이 죠지 뮬러의 마음에 영국 부리스톨에 고아원을 세우라는 영감 을 주실 때, 죠지 뮬러의 수중에는 겨우 2 실링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죠지 뮬러는 고아원을 세우는데 필요한 것들을 어떤 사람에게 알 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서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죠지 뮬러는 오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아뢰고 구했습니다. 죠지 뮬러는 눈에 보이는 환경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비록 눈에 보 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고아원 건물을 짓고, 고아원을 운영하는데 고 남는 700만 달러 (약 70억)의 돈을 사람들이 보내왔습니다. 죠지 뮬러와 같이 주의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가 큰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관광객들이 높은 알프스산을 올라 가다가 보면, 여러가지 식물지대를 지 나가게 됩니다. 제일 처음에는 포도나무 지대를 지나게 됩니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가서 기온이 낮은 지역이 되면 두번째로 과실수 지대 를 지나게 됩니다. 조금 더 올라가서 기온이 더 낮아지면 이번에는 세번째로 거대한 삼림 수 지대를 지나게 됩니다. 조금 더 올라가서 기온이 더 낮아지면 이번에는 네번째로 발육이 멎은 왜소한 소나무 지대를 지나게 됩니다. 조금 더 올라가서 기온이 더 낮아지면 다섯번째로 난장이와 같은 작은 나무들과 이끼들의 지대를 지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조금만 더 올라가면 여섯번째로 영원히 녹지 않는 만년설 지대 를 지나게 됩니다.
그런데 조금 더 높이 올라가면 산의 거의 정상 부근에 작고 향기로운 꽃 이 애처럽게 눈속을 헤집고 나와 피어 있는 것이 갈라진 눈 사이로 보인다. 만년설 속에서 그 차가운 눈을 뚫고 애처럼게 피어 있는 작고 가날픈 꽃 은 종종 가장 남자다워 보이는 사람들까지도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그 꽃은 항상 거기에 싱싱하고 향기롭게 피어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사람들도 여러가지 지대를 지나게 된다.
첫째로 지식의 지대를 지나게 된다. 지식으로 사는 자들이 있다.
둘째로 감정의 지대를 지나게 된다. 감정으로 사는 자들이 있다.
셋째로 의지의 지대를 지나게 된다. 의지로 사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정상에는 도덕적 타락과 계속되는 소외의 차가운 상황에 서도 불구하고, 믿음의 꽃이, 참된 믿음의 꽃이 항상 즐겁게 피어 있다.
3) 큰 믿음은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을 보시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찾고 있는 자가 바로 이런 큰 믿음의 소유자였고, 예수님 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이유가 바로 이런 큰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였읍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의 소유자를 만나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원하는 100점 만점의 여인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보고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신 것은 "네 뜻대로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예수님이 얼마나 기쁘셨으면,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원래 기도는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를 마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무 기뻐서, 내 뜻대로가 아니라, 이번에는 "네 소원 대로", "뜻대로" 되라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큰 믿음이 주님을 얼마나 크게 기쁘게 하시는가를 보여주는 말씀 입니다.
4) 큰 믿음은 다른 사람에게 큰 유익을 줍니다. (마8)에 나오는 백부장의 큰 믿음은 자기의 중풍병 걸린 자기 하인의 병 을 고쳐 주었습니다. 중풍병은 고치지 어려운 병입니다. 그리고 이 중풍병환자는 누어서 몹 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주인 백부장의 믿음이 크기 때문에 그 중풍병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은혜를 입게 되었 습니까 주인의 큰 믿음 때문에 종의 중풍병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마15)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은 흉악한 귀신들린 자기의 딸을 고쳤 주었습니다. 귀신에 걸리면 불쌍합니다.
그런데 흉악한 귀신에 들 렸으니, 그 딸이 얼마나 불쌍했겠습니까
그런데 자기 어머니의 큰 믿음 때문에, 그 흉악한 귀신을 몰아 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큰 믿음은 남에게 유익을 줍니다. 작음 믿음의 소유자는 겨우 자기 자신이 유익을 얻습니다. 그러나 큰 믿음의 소유자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줍니다.
III. 결론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이 큰 믿음입니까 아니면 작은 믿음입니까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 큰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 망원경의 이름이 바로 "믿음의 눈"이였습니다. 이 세상을 가는 순례자가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믿음 그뿐만 아니라, 우리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죄로 죽을 수 밖 에 없는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의 행 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되시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기독교가 능력을 행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우리의 능력은 우리의 지식 이나, 우리의 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믿음에 있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것도 믿음 위에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학문이 나, 돈이나 권세 위에 세우시지 않고, 믿음 위에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믿음이 적은 자와 믿음이 큰자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을 보면 믿음이 적은 자에 관한 말씀이 4번 나옵니다. (마6:30)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 엇을 입을까를 염려하는 자들을 보시면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 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하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시 고 나무래셨습니다. (마8:26)에 나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시는데, 바다에 큰 놀(성난 풍랑:furious storm)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 들이 예수님을 깨우면서 "주여, 구원 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하고 소 리질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 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바 다가 아주 잔잔해 졌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배에 오르시지 않고, 제자들만 배 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가는데,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서 제자들이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 4 경에 새벽 3시서 6시경에 예수님께서 바다위를 걸어 오셨읍니다. 제자들은 이 예수님을 보고 유렁인줄 알고 두려워 하며 소리 질렀 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바다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나도 신기해 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 소서"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바다위를 걸어 갔습니다.
그런데 함 참 가다가 풍랑을 바라보고는 무서워서 바다에 빠져가게 되었습니다. 그 러자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하고 소리쳤습니다. 그 러자 예수님이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았습니다. 그러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시고 나무래셨습니다. (마16:8)에 나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행을 떠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그만 음식을 가지고 가는 것을 잊고는 그냥 떠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예수님이 갑자가기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빵을 만들 때 들어가는 누룩이라는 말을 듣자, 제자들은 그제서야 떡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서로 떡을 가지고 오지 않 은 것으로 인하여 걱정을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걱정하는 것을 아시고는 예수님께서 "믿음이 적은 자들 아, 어찌하여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였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고 주은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 곱개로 사천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 고 나무래셨습니다. 예수님이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한 것은 다른 사람들을 두고 한 것이 아니라, 다 제자들을 두고 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들을 다 보셨기 때문에, 큰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 으로 생각하지만, 제자들도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작 은 믿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네 믿음이 크도다"하고 예수님이 큰 믿음을 칭찬한 것이 두번 나옵니다. (마8:10)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가겼을 때,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서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고쳐 주옵소서"하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가서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하면 오고, 종더러 이것을 하면 하나이다"하고 말씀을 드렸읍니다. 이 말을 들으시고는 예수님이 기이히 여기시면서 좇는 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하시면서 백부장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 보다도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마15:28)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 가 셨을 때,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님께 나와서 자기의 흉악한 귀신들린 딸 을 고쳐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계 속해서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소리질렀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니, 저 여자를 쫓아 보내라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 내심을 받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그녀를 고쳐줄 뜻이 전혀 없다고 말씀하셨 습니다.
그런데도 이 여자는 예수님께 달려와서 제 딸을 고쳐 달라고 소리쳤읍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매몰차게도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하고 말씀하시면서, 그 여인과 그의 민족을 개취급을 했 습니다.
그런데도 이 가나안 여자는 "주여,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 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고 자기들은 개인데 개라도 불쌍히 여 겨서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하 시면 그녀의 큰 믿음을 칭찬하며 딸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작은 믿음과 큰 믿음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면 은혜 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작은 믿음은 무엇인가 우리는 큰 것과 작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고 믿음이 작다고 나무라셨는데, 작은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1) 작은 믿음은 상황의 지배를 받는 믿음입니다. 작은 믿음과 믿음이 없는 것과는 다릅니다. 작은 믿음도 믿음입니다.
그런데 작은 믿음은 주의 환경에 지배를 받는 믿음입니다. 상황이 좋을 때는 믿음이 커 보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나쁠 때는 믿음 이 작아보입니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변하는 믿음이 작은 믿음입니다. 헌 구두나, 새 구두나, 날씨가 좋을 때에는 잘 닦아서 신고 다니면 차이 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가 와서 땅이 질어지면 헌 구두는 물이 새서 발이 졌습니다. 그러나 새 구두는 비가와도 발이 젖지 않습니다. 큰 믿음은 전혀 상황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자 작은 믿음은 상황에 지배를 받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은 상황이 좋을 때는 믿음이 커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 황이 나빠질 때에는 믿음이 작아 보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믿음이 오늘 본문의 사건에서 갑자기 작아 진 것이 아 닙니다. 베드로의 믿음은 원래 그랬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의 상황이 나빠지자, 그의 작은 믿음이 드러난 것 뿐입니다. 이렇게 작은 믿음은 상황에 빠라 믿음이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상 황이 좋을 때는 믿음이 커 보이고, 상황이 나쁠 때는 믿음이 작아 보입니다.
2) 작은 믿음은 표적을 구합니다. 작은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표적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고, 믿을 때에도 표적을 구합니다. 표적이 있으면 믿고, 표적이 없으면 못 믿습니다. 그러나 큰 믿음은 표적이 없어도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댓가를 주어야 부모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성숙 한 어른은 댓가를 주지 않아도 부모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성숙한 믿음 큰 믿음, 큰 믿음은 아무 표적이 없어도 주님을 믿습니다.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으면 불안해 하 고, 두려워합니다.
3) 작은 믿음은 위험을 과장합니다. 작은 믿음은 언제자 작은 위험도 크게 생각을 합니다. 작은 문제도 크 게 생각을 합니다. 작은 믿음은 언제나 최악의 시나리오를 구성합니다. 베드로는 바다위를 걷지 못하게 되자, 곧 바로 바닷 속으로 빠져 들어갔 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작은 믿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바닷 사람이라 분명히 수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에는 손을 내 밀면 닿을 정도로 가까 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여나를 구원하소서"하고 소리치자 예수님이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베드로 가 가까이 있었다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얼마든지 수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의 믿음은 작은 믿음이였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의 능력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작은 믿음은 위험이나 문제들을 실제 보다 훨씬 더 크게 과장하 여 보고 있습니다. 그러자 큰 믿음은 위험한 일이 다가와도, 그 위험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얼마든지 하게 됩니다. 이것이 작은 믿음입니다.
2. 작은 믿음이 살길 예수님이 작은 믿음을 대하실 때, 그들의 작은 믿음을 보시고,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부드럽게, 친절하게 그들을 나무래셨습니다. 그 말씀의 표현이 과격한 표현이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나무래듯이 나무 래셨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작은 믿음이지만, 작은 믿음도 여전히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무래기는 하셨지만, 그 작은 믿음을 부정하거나, 무 시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비록 자녀의 생각이 어려서, 어리석어도, 내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작은 자녀를 야단은 치나, 그것은 미워서 치는 야단이 아니라, 사랑의 야단입니다. 예수님이 작은 믿음을 야단 친것은 다 이와 같이 야단을 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작은 믿음도 믿음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믿음이 약해서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 역시 생명 력이 있는 믿음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이였읍니다. 그래서 믿음이 적은 것을 부드럽게 자녀를 나무라듯이 나무랬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의 믿음이 작은 것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화도 났지만, 그 래도 그들에게 믿음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버리시지는 않았읍니다. 오히려 애증을 가지고 그들을 대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가 어떻게 사느 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믿음을 가진 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1) 믿음이 작은 자는 예수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약한 어린 아이는 약하기 때문에 부모에게로 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이 작은 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베드로는 믿음이 작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아갔습니다. 그때 살 길이 열렸습니다. (마8)에서도 바다에 놀이 일어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자, 제자들은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작았습니다. 그러나 믿음 자체이신 예수님께로 가시 자, 믿음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살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큰 자들은 자기들의 믿음으로 큰 일을 할 수 있지만, 믿음이 작은 자는 예수님께 나아감으로, 믿음 자체이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더 큰 일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2) 믿음이 작은 자는 어려울 때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물에 빠져갈 때, 수영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힘으 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도움을 간구했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하 고 소리질렀습니다. (마8)장에서도 큰 놀이 일어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자, 제자들은 예수님 께 나아와서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하고 도움을 간구했 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작은 자는 주님께 도움을 간구해야 합니다. 믿음이 크 면 그 큰 믿음으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면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작 은 자는 믿음의 주요, 능력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 작은 자의 살 길입니다. 작은 믿음은 그 작은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나아 갈 때, 주님의 권능의 손이 우리를 구원 합니다. 이것이 작은 믿음의 소유자가 할 것입니다.
3. 우리 주님은 우리가 큰 믿음을 갖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큰 믿음을 칭찬했습니다. 이것은 큰 믿음을 갖는 것이 작은 믿음을 갖는 것 보다 좋은 것이니, 우리로 큰 믿음을 갖기를 원한다는 말씀 입니다. 우리 주님의 목회는 우리로 큰 믿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큰 믿음을 갖게 하시려고 3년 동안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칭찬하고 추천하는 큰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 끈질기게 주님을 찾는 믿음입니다. 큰 믿음은 응답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자기의 딸이 흉악한 귀신 들렸으니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자기의 딸좀 고쳐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와 그여인과는 아 무런 상관이 없어서 고쳐 줄 수 없다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런 예수님의 말씀에도서운해 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흉악한 귀신 들린 딸 좀 고쳐 달라 고 예수님께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 여인과 그 여인의 민족을 개 취급을 하면서, 개와 같은 그들은 고쳐줄 가치 조차 없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우리 보고 개라고 해도 좋 고, 우리는 실제로 개만도 못합니다. 그러나 개만도 못하지만 불쌍히 여 기고 고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렇게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찾는 믿음이 큰 믿음입니다.
2) 상황에 지배를 받지 않는 믿음입니다. 무슨 징조나 증거가 있어서 하나님을 믿은 믿음이 아닙니다. 아무 증 거 없어도 하나님을 믿은 믿음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기도했는데도, 아무런 증거 가 없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4번까지 기도하는 동안 예수님으 로 부터 아무런 응답의 징조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데 아무런 징조가 보이지 않아도 이 여인은 예수님이 흉 악한 귀신들린 자기 딸을 고칠 수 있다고 믿고 기도했습니다. 내게 아무런 응답이 없어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믿음이 큰 믿음 입니다. 하나님이 죠지 뮬러의 마음에 영국 부리스톨에 고아원을 세우라는 영감 을 주실 때, 죠지 뮬러의 수중에는 겨우 2 실링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죠지 뮬러는 고아원을 세우는데 필요한 것들을 어떤 사람에게 알 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서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죠지 뮬러는 오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아뢰고 구했습니다. 죠지 뮬러는 눈에 보이는 환경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비록 눈에 보 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고아원 건물을 짓고, 고아원을 운영하는데 고 남는 700만 달러 (약 70억)의 돈을 사람들이 보내왔습니다. 죠지 뮬러와 같이 주의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가 큰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관광객들이 높은 알프스산을 올라 가다가 보면, 여러가지 식물지대를 지 나가게 됩니다. 제일 처음에는 포도나무 지대를 지나게 됩니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가서 기온이 낮은 지역이 되면 두번째로 과실수 지대 를 지나게 됩니다. 조금 더 올라가서 기온이 더 낮아지면 이번에는 세번째로 거대한 삼림 수 지대를 지나게 됩니다. 조금 더 올라가서 기온이 더 낮아지면 이번에는 네번째로 발육이 멎은 왜소한 소나무 지대를 지나게 됩니다. 조금 더 올라가서 기온이 더 낮아지면 다섯번째로 난장이와 같은 작은 나무들과 이끼들의 지대를 지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조금만 더 올라가면 여섯번째로 영원히 녹지 않는 만년설 지대 를 지나게 됩니다.
그런데 조금 더 높이 올라가면 산의 거의 정상 부근에 작고 향기로운 꽃 이 애처럽게 눈속을 헤집고 나와 피어 있는 것이 갈라진 눈 사이로 보인다. 만년설 속에서 그 차가운 눈을 뚫고 애처럼게 피어 있는 작고 가날픈 꽃 은 종종 가장 남자다워 보이는 사람들까지도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그 꽃은 항상 거기에 싱싱하고 향기롭게 피어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사람들도 여러가지 지대를 지나게 된다.
첫째로 지식의 지대를 지나게 된다. 지식으로 사는 자들이 있다.
둘째로 감정의 지대를 지나게 된다. 감정으로 사는 자들이 있다.
셋째로 의지의 지대를 지나게 된다. 의지로 사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정상에는 도덕적 타락과 계속되는 소외의 차가운 상황에 서도 불구하고, 믿음의 꽃이, 참된 믿음의 꽃이 항상 즐겁게 피어 있다.
3) 큰 믿음은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을 보시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찾고 있는 자가 바로 이런 큰 믿음의 소유자였고, 예수님 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이유가 바로 이런 큰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였읍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의 소유자를 만나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원하는 100점 만점의 여인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보고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신 것은 "네 뜻대로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예수님이 얼마나 기쁘셨으면,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원래 기도는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를 마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무 기뻐서, 내 뜻대로가 아니라, 이번에는 "네 소원 대로", "뜻대로" 되라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큰 믿음이 주님을 얼마나 크게 기쁘게 하시는가를 보여주는 말씀 입니다.
4) 큰 믿음은 다른 사람에게 큰 유익을 줍니다. (마8)에 나오는 백부장의 큰 믿음은 자기의 중풍병 걸린 자기 하인의 병 을 고쳐 주었습니다. 중풍병은 고치지 어려운 병입니다. 그리고 이 중풍병환자는 누어서 몹 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주인 백부장의 믿음이 크기 때문에 그 중풍병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은혜를 입게 되었 습니까 주인의 큰 믿음 때문에 종의 중풍병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마15)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은 흉악한 귀신들린 자기의 딸을 고쳤 주었습니다. 귀신에 걸리면 불쌍합니다.
그런데 흉악한 귀신에 들 렸으니, 그 딸이 얼마나 불쌍했겠습니까
그런데 자기 어머니의 큰 믿음 때문에, 그 흉악한 귀신을 몰아 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큰 믿음은 남에게 유익을 줍니다. 작음 믿음의 소유자는 겨우 자기 자신이 유익을 얻습니다. 그러나 큰 믿음의 소유자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줍니다.
III. 결론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이 큰 믿음입니까 아니면 작은 믿음입니까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 큰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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