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마12:35-37)
본문
상담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은 그 말 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 하고 있다. 슬픈자는 슬픔을 실패한 이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자는 두려움을 병자는 병을 말한다. 그리고 행복한자는 행복을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말한다. 그래서 쉬지 않고 입으로 자기 속을 펼쳐낸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을 정의한다. "요즘 재미 좋으십니까" 하고 한 마디 인사로 던져보라. 대부분 "그저 그렇죠"한다. 그 말한 사람은 그 말대로 그저 그런 삶을 산다. 어떤 이는 "그저 죽지 못해 삽니다"한다. 그 러면 그는 틀림없이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의 말하는 습관을 항상 잘 살펴보아야 한다. 말은 마음 상태를 정의해 준다. 일단 무엇을 말하고 나면 그것을 지키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화를 내고 나서 즉시 그것을 취소하는 사람 은 없다. 계속 화를 낼 것이다. 비참하다고 말해보라. 그리고 지겹다고 말해 보라. 더욱 비참하고 더욱 지겨울 것이다. 그러면서 더욱더 비참을 말하고 더 욱더 지겨움을 말할 것이다. 병을 말하라. 그러면 더욱 병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말은 나를 그 말한 내용과 일치시켜 버린다. 우리의 신앙과 불신앙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말 에 있다. 그 말이 우리 마음과 마귀에게 주는 영향을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입으로 실패와 병과 가난의 고백을 하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이 고백은 다시 우리 잠재 의식 속에 깊이 박히면서 우리는 스스 로 그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다. 아무도 고백한 것 이상으로 될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고백은 경험을 더욱 확실하게 만든다. 몸이 아프다. 점점 늙어간다. 세상은 어려워진다. 자신이 없다. 그래서 고백하는 말에 의해서 이끌린다. 우리의 신앙도 고백도 모두가 경험에서 나온다. 마음에 확신이 오고 기쁨이 오면 하나님은 살아있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고백을 한다. 변하는 경험처럼 신앙도 애매하기만 하다.
1. 經驗 대신 말씀을 告白하라. 경험을 고백하지 않고 말씀을 고백해야 한다. 불변의 진리는 경험 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을 의심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그대신 다른 것을 믿 기 때문이다. 과학을 믿고 돈을 믿는 이는 그것들의 경험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그것이 신앙을 파괴하고 기도를 제한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縮小시킨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다. 말씀으로 그것을 지배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눅 1:37)음을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만 고백한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않는다"하 신다. 말씀은 폭탄이나 탱크나 군함보다도 군대보다도 강하다. 이 말씀으로 고백하는 것을 연습하라. 그래서 말씀이 내 힘이 되고 도구가 되게 하라. 말씀에 대한 고백은 상황을 흔들고 사탄을 떨게한다. "네 입으로 고백하면"이란 말씀대로 말씀의 고백은 우리 마음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불 안과 의심의 말이 우리 마음에 더욱 큰 불안과 의심을 주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권능을 말하고 그 권능이 나의 것이 되었음을 고백하라. 쑥스러운가 혼 자 잘믿는 것같고 교만한가
그렇다면 불신앙의 말로 하나님을 대항하고 마귀 의 대변인이 되란 말인가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인 수준에 떨어지려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처럼 말한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처럼 생각한다. 하나님처럼 기뻐하고 사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내 입술을 지배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것을 고백할 때만 실체가 된다.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뜻 이면 무엇이건 가능합니다." 이 고백은 불신자의 것보다 낳은 것이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말씀하셨다. 그 뜻이 내 입을 통해 말해져야 한다.
2. 믿음의 讚揚과 祈禱는 創造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고백이다. 그리스도는 自意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한다고 하였다. 말씀이 내 입에서 나오면 하나님이 나를 통 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믿는 사람 속에 계시고 말씀으로 능력이 되어 나타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라. 내가 말씀을 믿으면 이루 어지고 안믿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말씀은 스스로 이루어진다. 내 입을 통해서 고백될 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신다. 기도는 고백이다. 내 안의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 자기 이름으로 하나님께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기도를 들으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꼭같이 응답하신다. 기도는 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불가능하기 에 요구한다. 기도는 이성과 논리를 초월한 것을 요구한다. 기도는 하나님만 큼 큰 꿈을 요구한다. 우리 속에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와 함께 일하는 이는 하나님 자신이다. 기도로 이 사실을 확인한다. 찬양도 고백이다.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가 나를 위해서 위대한 일을 행하셨음을 노래한다. 그리고 그가 나를 새롭게 만들었고 더욱 새롭게 하심을 고백한다. 무엇보다도 마음과 입에서 찬양이 떠나지 않는 이는 찬양의 내용대로 산다. 그러나 불평과 한숨을 말하는 이는 언제나 그 내 용대로 머물리라. 내 입으로 하여금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게 하라. 사실상 기도가 다 기도가 아니고 찬양이 다 찬양이 아니다. 믿음이 없는 한탄이나 오래하고 열심으로 하여서 기도를 이루려고 한다면 이것은 기도가 아니다. 찬양도 슬픈 노래로 자기 탄식만 한다면 찬양이 아니다. 기도이 건 찬양이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신앙의 기도요 찬양이다. 그것은 말씀에서 나온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내게 해주신 일을 가지고 기도하고 찬양한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은 바뀌고 만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않는다. 감각과 느낌은 보 고 경험하는 것만 고백한다. 체험만을 추구하는 이는 감각에 의해서 이끌린다. 감각처럼 불확실한 것은 없다. 항상 감각은 변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태이건 어떠한 조건이건 상관없이, 아무리 불가능하게 보여도 기도와 찬양을 포기하면 않된다. 그것을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것은 불신앙의 마음이요 불신 앙의 행위다. 말씀은 불가능 속에서도 창조의 일을 명하고 만들어낸다.
3. 믿음의 말은 하나님처럼 統治한다. 요나는 물고기 뱃 속에서 고백하였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 으셨다. 이 음부의 구덩이에서 나를 구하셨다." 여호수아는 명령하였다. "태 양아 너는 거기 머물라. 달아 너는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하라." 예수는 자의 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한다고 고백하였다. 그는 죽은지 나흘된 자 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였다. "아버지여 나의 기도를 항상 들으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외쳤다. "나사로야 일어나라!"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말하기를 원하신다. "잠잠하라. 머물어라. 하나님이 나를 구하셨다. 우리는 그의 자녀요 그의 가족이다. 그는 나를 자신 의 의로 삼아 주셨다. 나는 능력이고 지혜다. 나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부요하 고 그리스도로 인해서 강하다. 나는 기쁘다. 참으로 기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소망이 넘치고 사랑이 넘친다. 참으로 하나님은 내 안에 충만하시다." 할 수 없다고 말하라. 그 순간에 나는 내 자신을 때리고 구덩이에 던진다. 믿음이 없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고 말하라. 그리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고 스스로 자신의 말로 자신을 감옥에 쳐넣어라. 두려운 것을 말하라. 욥처럼. 그리하면 그것이 임할 것이다. 우리의 말로 우리가 얽매이 고 우리의 말로 우리가 풀리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참으로 우리의 말은 우리를 지배한다. 참으로 말은 창조하는 능력을 가졌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자신을 새롭게 정의했다. 너무나 부정적인 학생이 있었다. 가정은 불우했고 몸은 약했고 실력이 없 었다. 그는 항상 자신에게 말했다. "너는 아무 것도 아니다. 실력도 없다. 너 같은게 어떻게 대학을 들어왔냐 하긴 3류 대학이니 그렇지." 나는 말했다. "변하는 경험 속의 너를 보지 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너를 보라. 너는 귀중하다. 너는 지혜롭고 아름답고 능력이 있다. 새로운 너를 따라 살아 라." 설득을 계속하면 얼마간 밝은 얼굴을 유지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이 고백과 거리가 있었다. 얼마 뒤에 다시 보면 얼굴이 전처럼 어둡고 자신이 없었다. 그는 어느새 자신을 향해서 반복 해서 고백하고 있었다. "너는 쓰레기다. 너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 나는 말했다. "네 말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을 하라. 네 경험은 쓰레기라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삽시간에 또는 시간이 좀 걸리면 사라진다. 되풀이 말하 라. 나는 새 사람이다. 하나님이 능력있게 하셨다. 놀라운 지혜자다!" 그의 시도는 놀라왔다. 그의 얼굴은 심각하였다. 그는 죽기 살기로 신앙을 고백하였다. 문제 앞에서 여학생들 앞에서 외롭고 자신 없음이 느껴질 때 자신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일 년쯤 지나서 그는 조그만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저는 쓰레기가 아닙니다. 새로난 사람입니다. 영원히 하나님 의 자녀로 싸우겠습니다." 그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캠퍼스가 아름답다는 워 싱톤 주립대학에 있다. 거기서 그리스도와 더 나은 자신을 만드느라 바쁘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의 말하는 습관을 항상 잘 살펴보아야 한다. 말은 마음 상태를 정의해 준다. 일단 무엇을 말하고 나면 그것을 지키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화를 내고 나서 즉시 그것을 취소하는 사람 은 없다. 계속 화를 낼 것이다. 비참하다고 말해보라. 그리고 지겹다고 말해 보라. 더욱 비참하고 더욱 지겨울 것이다. 그러면서 더욱더 비참을 말하고 더 욱더 지겨움을 말할 것이다. 병을 말하라. 그러면 더욱 병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말은 나를 그 말한 내용과 일치시켜 버린다. 우리의 신앙과 불신앙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말 에 있다. 그 말이 우리 마음과 마귀에게 주는 영향을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입으로 실패와 병과 가난의 고백을 하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이 고백은 다시 우리 잠재 의식 속에 깊이 박히면서 우리는 스스 로 그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다. 아무도 고백한 것 이상으로 될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고백은 경험을 더욱 확실하게 만든다. 몸이 아프다. 점점 늙어간다. 세상은 어려워진다. 자신이 없다. 그래서 고백하는 말에 의해서 이끌린다. 우리의 신앙도 고백도 모두가 경험에서 나온다. 마음에 확신이 오고 기쁨이 오면 하나님은 살아있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고백을 한다. 변하는 경험처럼 신앙도 애매하기만 하다.
1. 經驗 대신 말씀을 告白하라. 경험을 고백하지 않고 말씀을 고백해야 한다. 불변의 진리는 경험 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을 의심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그대신 다른 것을 믿 기 때문이다. 과학을 믿고 돈을 믿는 이는 그것들의 경험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그것이 신앙을 파괴하고 기도를 제한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縮小시킨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다. 말씀으로 그것을 지배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눅 1:37)음을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만 고백한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않는다"하 신다. 말씀은 폭탄이나 탱크나 군함보다도 군대보다도 강하다. 이 말씀으로 고백하는 것을 연습하라. 그래서 말씀이 내 힘이 되고 도구가 되게 하라. 말씀에 대한 고백은 상황을 흔들고 사탄을 떨게한다. "네 입으로 고백하면"이란 말씀대로 말씀의 고백은 우리 마음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불 안과 의심의 말이 우리 마음에 더욱 큰 불안과 의심을 주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권능을 말하고 그 권능이 나의 것이 되었음을 고백하라. 쑥스러운가 혼 자 잘믿는 것같고 교만한가
그렇다면 불신앙의 말로 하나님을 대항하고 마귀 의 대변인이 되란 말인가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인 수준에 떨어지려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처럼 말한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처럼 생각한다. 하나님처럼 기뻐하고 사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내 입술을 지배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것을 고백할 때만 실체가 된다.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뜻 이면 무엇이건 가능합니다." 이 고백은 불신자의 것보다 낳은 것이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말씀하셨다. 그 뜻이 내 입을 통해 말해져야 한다.
2. 믿음의 讚揚과 祈禱는 創造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고백이다. 그리스도는 自意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한다고 하였다. 말씀이 내 입에서 나오면 하나님이 나를 통 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믿는 사람 속에 계시고 말씀으로 능력이 되어 나타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라. 내가 말씀을 믿으면 이루 어지고 안믿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말씀은 스스로 이루어진다. 내 입을 통해서 고백될 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신다. 기도는 고백이다. 내 안의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 자기 이름으로 하나님께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기도를 들으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꼭같이 응답하신다. 기도는 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불가능하기 에 요구한다. 기도는 이성과 논리를 초월한 것을 요구한다. 기도는 하나님만 큼 큰 꿈을 요구한다. 우리 속에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와 함께 일하는 이는 하나님 자신이다. 기도로 이 사실을 확인한다. 찬양도 고백이다.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가 나를 위해서 위대한 일을 행하셨음을 노래한다. 그리고 그가 나를 새롭게 만들었고 더욱 새롭게 하심을 고백한다. 무엇보다도 마음과 입에서 찬양이 떠나지 않는 이는 찬양의 내용대로 산다. 그러나 불평과 한숨을 말하는 이는 언제나 그 내 용대로 머물리라. 내 입으로 하여금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게 하라. 사실상 기도가 다 기도가 아니고 찬양이 다 찬양이 아니다. 믿음이 없는 한탄이나 오래하고 열심으로 하여서 기도를 이루려고 한다면 이것은 기도가 아니다. 찬양도 슬픈 노래로 자기 탄식만 한다면 찬양이 아니다. 기도이 건 찬양이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신앙의 기도요 찬양이다. 그것은 말씀에서 나온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내게 해주신 일을 가지고 기도하고 찬양한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은 바뀌고 만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않는다. 감각과 느낌은 보 고 경험하는 것만 고백한다. 체험만을 추구하는 이는 감각에 의해서 이끌린다. 감각처럼 불확실한 것은 없다. 항상 감각은 변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태이건 어떠한 조건이건 상관없이, 아무리 불가능하게 보여도 기도와 찬양을 포기하면 않된다. 그것을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것은 불신앙의 마음이요 불신 앙의 행위다. 말씀은 불가능 속에서도 창조의 일을 명하고 만들어낸다.
3. 믿음의 말은 하나님처럼 統治한다. 요나는 물고기 뱃 속에서 고백하였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 으셨다. 이 음부의 구덩이에서 나를 구하셨다." 여호수아는 명령하였다. "태 양아 너는 거기 머물라. 달아 너는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하라." 예수는 자의 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한다고 고백하였다. 그는 죽은지 나흘된 자 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였다. "아버지여 나의 기도를 항상 들으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외쳤다. "나사로야 일어나라!"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말하기를 원하신다. "잠잠하라. 머물어라. 하나님이 나를 구하셨다. 우리는 그의 자녀요 그의 가족이다. 그는 나를 자신 의 의로 삼아 주셨다. 나는 능력이고 지혜다. 나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부요하 고 그리스도로 인해서 강하다. 나는 기쁘다. 참으로 기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소망이 넘치고 사랑이 넘친다. 참으로 하나님은 내 안에 충만하시다." 할 수 없다고 말하라. 그 순간에 나는 내 자신을 때리고 구덩이에 던진다. 믿음이 없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고 말하라. 그리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고 스스로 자신의 말로 자신을 감옥에 쳐넣어라. 두려운 것을 말하라. 욥처럼. 그리하면 그것이 임할 것이다. 우리의 말로 우리가 얽매이 고 우리의 말로 우리가 풀리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참으로 우리의 말은 우리를 지배한다. 참으로 말은 창조하는 능력을 가졌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자신을 새롭게 정의했다. 너무나 부정적인 학생이 있었다. 가정은 불우했고 몸은 약했고 실력이 없 었다. 그는 항상 자신에게 말했다. "너는 아무 것도 아니다. 실력도 없다. 너 같은게 어떻게 대학을 들어왔냐 하긴 3류 대학이니 그렇지." 나는 말했다. "변하는 경험 속의 너를 보지 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너를 보라. 너는 귀중하다. 너는 지혜롭고 아름답고 능력이 있다. 새로운 너를 따라 살아 라." 설득을 계속하면 얼마간 밝은 얼굴을 유지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이 고백과 거리가 있었다. 얼마 뒤에 다시 보면 얼굴이 전처럼 어둡고 자신이 없었다. 그는 어느새 자신을 향해서 반복 해서 고백하고 있었다. "너는 쓰레기다. 너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 나는 말했다. "네 말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을 하라. 네 경험은 쓰레기라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삽시간에 또는 시간이 좀 걸리면 사라진다. 되풀이 말하 라. 나는 새 사람이다. 하나님이 능력있게 하셨다. 놀라운 지혜자다!" 그의 시도는 놀라왔다. 그의 얼굴은 심각하였다. 그는 죽기 살기로 신앙을 고백하였다. 문제 앞에서 여학생들 앞에서 외롭고 자신 없음이 느껴질 때 자신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일 년쯤 지나서 그는 조그만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저는 쓰레기가 아닙니다. 새로난 사람입니다. 영원히 하나님 의 자녀로 싸우겠습니다." 그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캠퍼스가 아름답다는 워 싱톤 주립대학에 있다. 거기서 그리스도와 더 나은 자신을 만드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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