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성탄준비 (마1:18-25)
본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쓰임을 받는다는 것처럼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소명속에 사명이 있고,사명속에 엄청난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알고 사명을 감당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는 큰 기쁨과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할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깊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할일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 입니다. 내가 살아 있고 여건이 허락되니 이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 내가 준비되고 있고,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도 연극 무대로 말하면 주연적인 사람으로 쓰임받는 사람이 있고,조연적으로 쓰임받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을 나눈 마리아와 오늘 말씀을 나눌 요셉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정말로 은혜와 복이 있는 여인으로서 구세주 예수의 출 산을 위해 귀하게 쓰임을 받는 여인이 됩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적인 역활이죠.
그런데 요셉은 직접 쓰임을 받지는 않지만,마리아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이 엄청난 성업을 돕는 조연으로 아주 잘 쓰임을 받고 있는 모 습을 보게 됩니다. 마리아 못지 않은 믿음과 신앙으로 요셉이 마리아를 도왔기에 마리 아가 자신의 역활을 감당할 수가 있었음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비록 조연적인 역할을 감당해 나간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 예수의 첫 성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그 감격과 기쁨을 동일하게 누리는 영광을 가졌다는 면에서는 마리아와 동일했습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어떤 역활을 담당하든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 이 되어지는 것이요,그 영광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예)바울-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에게 편지하면서 고전3장에서 분열하 고 파가 나누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이 곳 열대의 지방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꿈꿀 수 없지만,복 되고 귀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또한 이 세상에 재림하시는 주님 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이 시점에서, 귀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으로 자신의 역활을 감당하며 첫 성탄 일을 기다렸던 요셉의 신앙을 생각하며 본 받기 원합니다.
1.요셉의 신앙은 의로움과 사랑이 조화를 이룬 삶이었습니다. 마1:18-19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님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롭다고 하는 뜻은 하나님앞에서 늘 정당하게 살려 고하는 모습,즉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 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런 의를 추구하고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정혼한 여인 마리아가 동거도 하기 전에 임신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설명) 정혼-약혼의 의미가 아니다. 우리로 말하면 결혼식이나 마찬가지인 데 결혼지참금을 신부집에 주어야 하는데 마련되지 못하면 일단 정 혼을 하고서 나중에 지참금을 주고 데려오게 되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이미 신랑,신부이다. 여기서도 '남편''아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듣고나서 자신의 몸에 태 기를 느꼈을 때, 정혼자인 요셉에게 사건의 전모을 이야기 하지 않 았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문제는 마리아를 통해서 들었건 주변사람들로 부터 소문으로 들었 건 요셉이 마리아를 믿어 주고,그 일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처리 하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이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에게 잉태된 분이 구제주 메시야라고 하는 사실을 알 고 자신이 조용히 이혼을 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업에 자신이 끼어든다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두려웠 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말하기를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고 한 것입니다. 요셉은 의로움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이라도 의롭지 못하게 생각되는 문제가 있으면 날 카롭게 반응할 수가 있습니다. 정혼한 남편의 입장에서 동거도 하지 아니한 처녀아내에게 임신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선 먼저는 의심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한 성령님으로 임신된 것이라 고 설명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 납득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의 말을 믿어 주었고,오히려 그녀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성업을 돕기 위해서는 본인이 이혼해 주어야 하겠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아주 조용하고 은밀한 가운데 진행하려고 하였습니다. 요셉의 모습가운데 우리는 의로움이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사랑으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내 아내가 메시야를 임신하게 되었다고 떠들어 대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믿지 못하고 부정하게 남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폭로하 지도 않았습니다.왜냐면,그렇게 되면 어찌 됐든지 마리아에게 큰 피해가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성령님 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을 믿지도 않을 뿐 아니라,잘못되어서 마리아 가 죽음의 심판대에 내 보내 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드러내지 아니하는 사랑으로 마리아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꾸 드러내고 떠들고 요란한 곳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조용히 덮어 주는 곳에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되 역사속에는 언제나 이 의로움과 사랑의 속성이 같 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공의는 어쩐지 창백하기만 하고,가까이 할 수 없는 차 가운 분위기만을 느끼게 합니다. 반면에 의가 빠지 사랑은 감상적이고,맹목적인 것이 되기 쉽습니다. 십자가의 역사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사랑의 속성이 교차하는 곳 입니다. 의로움이 있기에 죄에 대한 진노와 그 댓가인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기에 용서가 있고,속죄와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늘 삶 가운데서 의로움을 추구하며 사십시오.그러나 모든 것을 덮고 내가 감당하려고 하며 상대를 감싸주는 사랑을 잊지 마십 시오.
2.신중한 기도와 말씀의 응답이 있었던 삶이었습니다. 저는 20절의 말씀속에 중요한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그는 바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반사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 습니다. 그는 우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마 이것은 기도를 포함하는 생각이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리아로 부터 분명히 설명을 들었을 것입니다. 마리 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들은 내용을 말하였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는 감히 자신이 메시야 잉태하는 사건에 끼어 들 수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그래서 조용히 율법에 나온대로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바로 실천에 옳기기 보다는 생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기도를 거쳐서 나오지 않은 행동은 늘 실수하기가 쉽습니다. 기도를 거쳐서 나오지 않는 말은 늘 큰 문제를 일으키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급합니다. 생각도 않해보고,기도도 않해보고 하나님의 응답도 떨어지기 전에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 번에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한 해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그리고 주어지는 다음 한해를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살아야 되겠는지 응답을 받고서 맞이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들 나오시기 바랍니다. 자칫 년말의 분위기에 들떠서 다니면 않됩니다. 더욱 조용한 가운데 기도하는 시간들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도 연극 무대로 말하면 주연적인 사람으로 쓰임받는 사람이 있고,조연적으로 쓰임받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을 나눈 마리아와 오늘 말씀을 나눌 요셉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정말로 은혜와 복이 있는 여인으로서 구세주 예수의 출 산을 위해 귀하게 쓰임을 받는 여인이 됩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적인 역활이죠.
그런데 요셉은 직접 쓰임을 받지는 않지만,마리아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이 엄청난 성업을 돕는 조연으로 아주 잘 쓰임을 받고 있는 모 습을 보게 됩니다. 마리아 못지 않은 믿음과 신앙으로 요셉이 마리아를 도왔기에 마리 아가 자신의 역활을 감당할 수가 있었음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비록 조연적인 역할을 감당해 나간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 예수의 첫 성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그 감격과 기쁨을 동일하게 누리는 영광을 가졌다는 면에서는 마리아와 동일했습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어떤 역활을 담당하든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 이 되어지는 것이요,그 영광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예)바울-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에게 편지하면서 고전3장에서 분열하 고 파가 나누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이 곳 열대의 지방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꿈꿀 수 없지만,복 되고 귀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또한 이 세상에 재림하시는 주님 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이 시점에서, 귀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으로 자신의 역활을 감당하며 첫 성탄 일을 기다렸던 요셉의 신앙을 생각하며 본 받기 원합니다.
1.요셉의 신앙은 의로움과 사랑이 조화를 이룬 삶이었습니다. 마1:18-19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님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롭다고 하는 뜻은 하나님앞에서 늘 정당하게 살려 고하는 모습,즉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 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런 의를 추구하고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정혼한 여인 마리아가 동거도 하기 전에 임신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설명) 정혼-약혼의 의미가 아니다. 우리로 말하면 결혼식이나 마찬가지인 데 결혼지참금을 신부집에 주어야 하는데 마련되지 못하면 일단 정 혼을 하고서 나중에 지참금을 주고 데려오게 되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이미 신랑,신부이다. 여기서도 '남편''아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듣고나서 자신의 몸에 태 기를 느꼈을 때, 정혼자인 요셉에게 사건의 전모을 이야기 하지 않 았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문제는 마리아를 통해서 들었건 주변사람들로 부터 소문으로 들었 건 요셉이 마리아를 믿어 주고,그 일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처리 하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이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에게 잉태된 분이 구제주 메시야라고 하는 사실을 알 고 자신이 조용히 이혼을 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업에 자신이 끼어든다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두려웠 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말하기를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고 한 것입니다. 요셉은 의로움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이라도 의롭지 못하게 생각되는 문제가 있으면 날 카롭게 반응할 수가 있습니다. 정혼한 남편의 입장에서 동거도 하지 아니한 처녀아내에게 임신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선 먼저는 의심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한 성령님으로 임신된 것이라 고 설명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 납득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의 말을 믿어 주었고,오히려 그녀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성업을 돕기 위해서는 본인이 이혼해 주어야 하겠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아주 조용하고 은밀한 가운데 진행하려고 하였습니다. 요셉의 모습가운데 우리는 의로움이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사랑으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내 아내가 메시야를 임신하게 되었다고 떠들어 대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믿지 못하고 부정하게 남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폭로하 지도 않았습니다.왜냐면,그렇게 되면 어찌 됐든지 마리아에게 큰 피해가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성령님 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을 믿지도 않을 뿐 아니라,잘못되어서 마리아 가 죽음의 심판대에 내 보내 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드러내지 아니하는 사랑으로 마리아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꾸 드러내고 떠들고 요란한 곳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조용히 덮어 주는 곳에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되 역사속에는 언제나 이 의로움과 사랑의 속성이 같 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공의는 어쩐지 창백하기만 하고,가까이 할 수 없는 차 가운 분위기만을 느끼게 합니다. 반면에 의가 빠지 사랑은 감상적이고,맹목적인 것이 되기 쉽습니다. 십자가의 역사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사랑의 속성이 교차하는 곳 입니다. 의로움이 있기에 죄에 대한 진노와 그 댓가인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기에 용서가 있고,속죄와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늘 삶 가운데서 의로움을 추구하며 사십시오.그러나 모든 것을 덮고 내가 감당하려고 하며 상대를 감싸주는 사랑을 잊지 마십 시오.
2.신중한 기도와 말씀의 응답이 있었던 삶이었습니다. 저는 20절의 말씀속에 중요한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그는 바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반사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 습니다. 그는 우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마 이것은 기도를 포함하는 생각이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리아로 부터 분명히 설명을 들었을 것입니다. 마리 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들은 내용을 말하였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는 감히 자신이 메시야 잉태하는 사건에 끼어 들 수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그래서 조용히 율법에 나온대로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바로 실천에 옳기기 보다는 생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기도를 거쳐서 나오지 않은 행동은 늘 실수하기가 쉽습니다. 기도를 거쳐서 나오지 않는 말은 늘 큰 문제를 일으키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급합니다. 생각도 않해보고,기도도 않해보고 하나님의 응답도 떨어지기 전에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 번에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한 해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그리고 주어지는 다음 한해를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살아야 되겠는지 응답을 받고서 맞이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들 나오시기 바랍니다. 자칫 년말의 분위기에 들떠서 다니면 않됩니다. 더욱 조용한 가운데 기도하는 시간들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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