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교회 (마10:5-15)
본문
누구든지 일단 하나님께 속하면 해당되는 능력이 주어진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출발점이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어 그의 백성이 되었다고 믿는다면 동시에 믿어야 할 것이 있다. 자기 속에 어떤 형태이건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많은 신자들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불신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신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 대단히 갈등하고 있다. 성경에 나타나는 과거 신자들의 위대한 삶은 전혀 경험이 되지 않고 있는 실정 아닌가. 오늘 이 점을 분명히 짚고 나가자.
1. 신자는 권능을 가졌다. 성경에서 늘 보는 이야기다. 제자들은 권능이 있었다. 그들은 병든자를 고치고 죽은 사람을 일으켰다.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했다. 앉은뱅이가 일어난 적도 있고 경비가 삼엄한 감옥을 그냥 걸어서 나오기도 했다. 그렇 다면 그들 제자들과 오늘날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단 말인가 어떤 신 학자들의 말처럼 초대교회에만 주어진 능력이었단 말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주께서는 분명히 선언하신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주셨다.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병든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나 같이 엄청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주께서 그냥 해본 말씀이 아니다. 어떤 조건을 붙여 말한 것도 아니다. 조건 없이 주어진 말씀이다. 그리고 그의 모든 말씀은 시간의 제약을 받는 게 아니다. 그 약속이 어느 시기에만 해당된다는 말이 없다. 죄사함과 구원 의 약속과 마찬가지로 모든 시간 모든 장소에 분명하고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구원의 약속을 믿으면 능력의 약속도 믿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갈등할 수 밖에 없다. 믿으려면 다 믿어야지 성경의 내용을 골라서 믿을 수는 없다. 그리고 주께서 그렇게 심각하게 심지어는 "진실로" 즉 "아멘"이란 단어를 첨가하며 하신 말씀을 어찌 가볍게 볼 것 인가. 그러나 실제로 아무런 능력의 징조는 내게 없다. 누군 능력을 사용하 고 싶지 않겠는가! 잘 안되니 문제이지. 이것이 신자들의 고민이다. 아마 당시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도 같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 까 주께 말씀하시지 않는가!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들의 모습은 전혀 확신에 찬 것도 당당한 것도 아니었 음이 분명하다. 가라고 하니까 갈뿐이지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않되었던 것이다. 어깨가 축늘어져서 준비 않된 표정으로 할 수 없이 나갔을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자. 여기 마태복음에는 열 두 제자이다. 하지만 누가복음 10장에는 70명의 제자이다. 이 모든 일은 예수님 선교활 동 초기의 일이다. 먼저 열 둘을 보내고 다시 70명을 보낸 것이다. 사실상 그들이 제자들을 다 합친 숫자였을 것이다. 그들은 둘 씩 짝지워졌다. 그리고는 명령이 떨어졌다. 권능을 주었으니 나가서 말하라는 것이다. 난감한 일이다. 그들은 머뭇거리다가 말했을 것이다. "주님, 아직 준비 가 안되었습니다. 온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아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도 저히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여기 왔겠습니 까 좀 더 배우고 능력을 받은 뒤에 나가겠습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 들은 변명했을 것이다. 가능하면 나가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는 명령했다. "가라, 가면서 '천국이 가까왔다' 하라. 병든자 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 엄청난 일이 아닌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누구나 다 집어치우고 나설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의심했을 것이다. 후에 제자들이 말할 수 없이 감격했던 사실로 알 수 있다.
2. 능력의 방법 주의 명령 속에 어떻게 그 능력이 나오는지 설명도 포함되어 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것이 바로 능력이다. 주의 능력은 언제나 거저 받는 것이다. 또한 거저 주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원리이다. 주를 믿고 따르는 자는 권세를 받는다. 이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 믿고 따른다함은 그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따른다는 뜻이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신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자녀의 권세"이다. 이것은 정신적이거나 도덕적인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 이 실제로 낳아주셔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주어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자는 나의 하는 일 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주의 말씀이다. 앞에 "진실로"를 두 번이나 하셨다. 여기서 계속 발견하는 것이 "믿는다"는 단어이다. 믿는자란 "예수를 믿어서 그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의 말씀은 엄청난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게 믿을 내용이다. 주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열심히 새벽기도하고 열심히 철야기도 하는 것인가 열심내는 사람은 자기의 열심을 믿을 가능성이 더 많다. 하 지만 아무리 열심히 행동해도 그의 말씀을 안믿으면 주를 믿는게 아니다. 믿을 것은 자기 열심이 아니라 주의 말씀이다. 말씀을 받은 사람은 신이라 고 할 정도이다.(요10:35) 이 원리만 안다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다. 그의 말씀이 곧 능력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다."(요 6:63) 그의 말씀은 살았다.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자신을 말씀으로 계시해 주셨다. 그리고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인간의 말도 강한 힘이 있다. 특히 왕의 말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사실이요 능치 못함이 없다.(눅 1:37)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고 한다. 물론 그 뒤에 주의 일을 하면 당연히 먹을 것과 살 것과 그에 해 당되는 댓가가 넘치게 나온다는 말씀으로 이어진다. 이것도 신자의 축복이다. 하지만 이 말씀에 숨겨져 있는 있는 의미는 더욱 깊은 것이다. 그것들 을 많이 가지면 주의 말씀보다도 그 재산을 의지한다는 뜻이다. 자금이 부족하다고 걱정말라. 그것이 주보다 자금을 믿는 것이다. 기도 가 부족하고 선행이 부족하다고 걱정한다면 기도와 선행을 의지하는 것이다. 오직 주만을 의지해야 한다. 주를 의지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의지한 다는 것이다. 우리에 대해 하신 말씀대로 믿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의식까지 말씀대로 되도록 노력하라. 주의 마음이 된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평안을 빌라는 것이다. 주의 마음은 모두를 사랑 한다. 원수라도 축복한다. 우리의 마음은 절대로 그렇게 못한다. 하지만 예수께서 나를 통해 사심을 믿는다면 자연스럽게 그 일이 될 것이다. 느낌을 믿지 않고 말씀을 믿는다. 그래서 주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의 욕심대 로 살지 않는다. 거저 받은 것을 알기에 언제나 거저주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능력자나 은혜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능력자도 은혜자는 없다. 단지 말씀대로 믿는자가 있을뿐이다. 그렇게 되면 말씀 받은자 모 두가 능력자요 은혜자이다. 그런이들은 절대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자 랑하거나 교만할 수 없다. 거저 받았기 때문이다. 돈많은 사람이나 권세자 를 더 사랑하지도 않는다. 오직 받은 것을 감사하며 나누어줄 것이다.
3. 능력자의 삶 이제 제자들처럼 나아가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돕고 병을 고치라. 멀리 선교사 갈 필요가 없다.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있는 곳에서 빛을 발하라. 어디나 있는 장소가 선교지이다. 제대로 못하다가 선교지에 가고 목사 전도사가 되어야 힘을 쓰는게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 가 되었고 그래서 권능을 받았음을 안다면 있는 곳에서 예수임을 알라. 자신이 이러한 사람이 되었음을 확인해 보라. 아무런 감각적 느낌은 없다. 눈에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달라진게 없다. 단지 마음의 눈이 열 렸을뿐이다. 그래서 말씀을 보고 신뢰하는 것이다. 감각의 눈으로 말씀을 보면 바른 깨달음이 나올 수 없다. 기껏해야 도덕의 수준만 보일뿐이다. 이 런 것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고전2:14) 전에는 감각적인 느낌을 가지고 생각해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자가 되었다. 말씀이 심기워져 마음은 생명을 얻었다. 거기서 새로운 생각이 올라온다. 사업가 한 사람은 매순간 닥쳐오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하는지 말했다. "전지전능의 하나님 이 문제에 대해 좋은 해답을 주십시 오." 단지 이것뿐이다. 가능하면 아침 일찍 조용한 가운데 기도한다. 그러다보면 바쁘게 일하는 가운데 최상의 아이디어와 문제 해결책이 떠오른다고 한다. 고민하지 않는다. "최선의 해결책은 고민하고 씨름해서 얻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항는 마음 속에 번개처럼 예고 없 이 떠오릅니다." 스스로도 그 해답에 놀란다는 말이다. 말씀을 믿기에 자신 이 능력자가 되었음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 감각을 통해서 보는 자신은 도저히 이 일을 할 수 없다. 내가 보아도 남이 보아도 부족하기 짝이 없다. 감각은 세상의 떡을 먹는다. 권세와 명예 와 부를 먹는다. 그러면 자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속 영의 마음은 말씀을 먹고 산다. 거기서 말해진 그대로 자신을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향해서 선언하신 그대로 자신을 생각하고 믿는다. 어느 여자분의 간증이다. 일년전 남편은 다른 여자에게 가버렸다. 그 뒤에 그는 급성 관절염에 걸렸다. 충격, 배신, 증오의 감정으로 병이 된 것이다.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자기의 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궁전인 까닭에 자기 속에 계신 하나님을 매일 찬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계속 아 픔 속에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몇 달간 매일 아침 저녁 15정도 기도했다. 하나님의 사랑이 몸 전체에 미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자기 몸 전 체를 어루만지신다고 확신했다. 전 남편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부종과 견딜 수 없던 통증이 사라졌다. 관절은 다시 부드러워졌다. 의사도 놀랐다. 자기 속에 주신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자기 자신을 치료한 결과이다. 남편과 다 른 여자에 대한 증오가 사라졌고 완전한 건강과 질서를 찾았다.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 우리는 움직이는 교회이다. 이 일은 우리 가 할 일이요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권세가 믿는 자녀에게 거저 주어졌음 을 아는 사람은 할 수 있다. 눈에 보이고 경험되는 자신을 믿지 말라. 차라 리 믿음으로 명령해서 감각적인 자신이 그대로 따라서 경험하게 만들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어 그의 백성이 되었다고 믿는다면 동시에 믿어야 할 것이 있다. 자기 속에 어떤 형태이건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많은 신자들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불신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신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 대단히 갈등하고 있다. 성경에 나타나는 과거 신자들의 위대한 삶은 전혀 경험이 되지 않고 있는 실정 아닌가. 오늘 이 점을 분명히 짚고 나가자.
1. 신자는 권능을 가졌다. 성경에서 늘 보는 이야기다. 제자들은 권능이 있었다. 그들은 병든자를 고치고 죽은 사람을 일으켰다.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했다. 앉은뱅이가 일어난 적도 있고 경비가 삼엄한 감옥을 그냥 걸어서 나오기도 했다. 그렇 다면 그들 제자들과 오늘날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단 말인가 어떤 신 학자들의 말처럼 초대교회에만 주어진 능력이었단 말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주께서는 분명히 선언하신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주셨다.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병든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나 같이 엄청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주께서 그냥 해본 말씀이 아니다. 어떤 조건을 붙여 말한 것도 아니다. 조건 없이 주어진 말씀이다. 그리고 그의 모든 말씀은 시간의 제약을 받는 게 아니다. 그 약속이 어느 시기에만 해당된다는 말이 없다. 죄사함과 구원 의 약속과 마찬가지로 모든 시간 모든 장소에 분명하고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구원의 약속을 믿으면 능력의 약속도 믿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갈등할 수 밖에 없다. 믿으려면 다 믿어야지 성경의 내용을 골라서 믿을 수는 없다. 그리고 주께서 그렇게 심각하게 심지어는 "진실로" 즉 "아멘"이란 단어를 첨가하며 하신 말씀을 어찌 가볍게 볼 것 인가. 그러나 실제로 아무런 능력의 징조는 내게 없다. 누군 능력을 사용하 고 싶지 않겠는가! 잘 안되니 문제이지. 이것이 신자들의 고민이다. 아마 당시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도 같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 까 주께 말씀하시지 않는가!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들의 모습은 전혀 확신에 찬 것도 당당한 것도 아니었 음이 분명하다. 가라고 하니까 갈뿐이지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않되었던 것이다. 어깨가 축늘어져서 준비 않된 표정으로 할 수 없이 나갔을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자. 여기 마태복음에는 열 두 제자이다. 하지만 누가복음 10장에는 70명의 제자이다. 이 모든 일은 예수님 선교활 동 초기의 일이다. 먼저 열 둘을 보내고 다시 70명을 보낸 것이다. 사실상 그들이 제자들을 다 합친 숫자였을 것이다. 그들은 둘 씩 짝지워졌다. 그리고는 명령이 떨어졌다. 권능을 주었으니 나가서 말하라는 것이다. 난감한 일이다. 그들은 머뭇거리다가 말했을 것이다. "주님, 아직 준비 가 안되었습니다. 온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아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도 저히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여기 왔겠습니 까 좀 더 배우고 능력을 받은 뒤에 나가겠습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 들은 변명했을 것이다. 가능하면 나가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는 명령했다. "가라, 가면서 '천국이 가까왔다' 하라. 병든자 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 엄청난 일이 아닌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누구나 다 집어치우고 나설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의심했을 것이다. 후에 제자들이 말할 수 없이 감격했던 사실로 알 수 있다.
2. 능력의 방법 주의 명령 속에 어떻게 그 능력이 나오는지 설명도 포함되어 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것이 바로 능력이다. 주의 능력은 언제나 거저 받는 것이다. 또한 거저 주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원리이다. 주를 믿고 따르는 자는 권세를 받는다. 이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 믿고 따른다함은 그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따른다는 뜻이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신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자녀의 권세"이다. 이것은 정신적이거나 도덕적인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 이 실제로 낳아주셔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주어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자는 나의 하는 일 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주의 말씀이다. 앞에 "진실로"를 두 번이나 하셨다. 여기서 계속 발견하는 것이 "믿는다"는 단어이다. 믿는자란 "예수를 믿어서 그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의 말씀은 엄청난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게 믿을 내용이다. 주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열심히 새벽기도하고 열심히 철야기도 하는 것인가 열심내는 사람은 자기의 열심을 믿을 가능성이 더 많다. 하 지만 아무리 열심히 행동해도 그의 말씀을 안믿으면 주를 믿는게 아니다. 믿을 것은 자기 열심이 아니라 주의 말씀이다. 말씀을 받은 사람은 신이라 고 할 정도이다.(요10:35) 이 원리만 안다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다. 그의 말씀이 곧 능력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다."(요 6:63) 그의 말씀은 살았다.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자신을 말씀으로 계시해 주셨다. 그리고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인간의 말도 강한 힘이 있다. 특히 왕의 말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사실이요 능치 못함이 없다.(눅 1:37)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고 한다. 물론 그 뒤에 주의 일을 하면 당연히 먹을 것과 살 것과 그에 해 당되는 댓가가 넘치게 나온다는 말씀으로 이어진다. 이것도 신자의 축복이다. 하지만 이 말씀에 숨겨져 있는 있는 의미는 더욱 깊은 것이다. 그것들 을 많이 가지면 주의 말씀보다도 그 재산을 의지한다는 뜻이다. 자금이 부족하다고 걱정말라. 그것이 주보다 자금을 믿는 것이다. 기도 가 부족하고 선행이 부족하다고 걱정한다면 기도와 선행을 의지하는 것이다. 오직 주만을 의지해야 한다. 주를 의지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의지한 다는 것이다. 우리에 대해 하신 말씀대로 믿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의식까지 말씀대로 되도록 노력하라. 주의 마음이 된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평안을 빌라는 것이다. 주의 마음은 모두를 사랑 한다. 원수라도 축복한다. 우리의 마음은 절대로 그렇게 못한다. 하지만 예수께서 나를 통해 사심을 믿는다면 자연스럽게 그 일이 될 것이다. 느낌을 믿지 않고 말씀을 믿는다. 그래서 주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의 욕심대 로 살지 않는다. 거저 받은 것을 알기에 언제나 거저주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능력자나 은혜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능력자도 은혜자는 없다. 단지 말씀대로 믿는자가 있을뿐이다. 그렇게 되면 말씀 받은자 모 두가 능력자요 은혜자이다. 그런이들은 절대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자 랑하거나 교만할 수 없다. 거저 받았기 때문이다. 돈많은 사람이나 권세자 를 더 사랑하지도 않는다. 오직 받은 것을 감사하며 나누어줄 것이다.
3. 능력자의 삶 이제 제자들처럼 나아가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돕고 병을 고치라. 멀리 선교사 갈 필요가 없다.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있는 곳에서 빛을 발하라. 어디나 있는 장소가 선교지이다. 제대로 못하다가 선교지에 가고 목사 전도사가 되어야 힘을 쓰는게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 가 되었고 그래서 권능을 받았음을 안다면 있는 곳에서 예수임을 알라. 자신이 이러한 사람이 되었음을 확인해 보라. 아무런 감각적 느낌은 없다. 눈에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달라진게 없다. 단지 마음의 눈이 열 렸을뿐이다. 그래서 말씀을 보고 신뢰하는 것이다. 감각의 눈으로 말씀을 보면 바른 깨달음이 나올 수 없다. 기껏해야 도덕의 수준만 보일뿐이다. 이 런 것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고전2:14) 전에는 감각적인 느낌을 가지고 생각해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자가 되었다. 말씀이 심기워져 마음은 생명을 얻었다. 거기서 새로운 생각이 올라온다. 사업가 한 사람은 매순간 닥쳐오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하는지 말했다. "전지전능의 하나님 이 문제에 대해 좋은 해답을 주십시 오." 단지 이것뿐이다. 가능하면 아침 일찍 조용한 가운데 기도한다. 그러다보면 바쁘게 일하는 가운데 최상의 아이디어와 문제 해결책이 떠오른다고 한다. 고민하지 않는다. "최선의 해결책은 고민하고 씨름해서 얻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항는 마음 속에 번개처럼 예고 없 이 떠오릅니다." 스스로도 그 해답에 놀란다는 말이다. 말씀을 믿기에 자신 이 능력자가 되었음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 감각을 통해서 보는 자신은 도저히 이 일을 할 수 없다. 내가 보아도 남이 보아도 부족하기 짝이 없다. 감각은 세상의 떡을 먹는다. 권세와 명예 와 부를 먹는다. 그러면 자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속 영의 마음은 말씀을 먹고 산다. 거기서 말해진 그대로 자신을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향해서 선언하신 그대로 자신을 생각하고 믿는다. 어느 여자분의 간증이다. 일년전 남편은 다른 여자에게 가버렸다. 그 뒤에 그는 급성 관절염에 걸렸다. 충격, 배신, 증오의 감정으로 병이 된 것이다.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자기의 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궁전인 까닭에 자기 속에 계신 하나님을 매일 찬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계속 아 픔 속에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몇 달간 매일 아침 저녁 15정도 기도했다. 하나님의 사랑이 몸 전체에 미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자기 몸 전 체를 어루만지신다고 확신했다. 전 남편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부종과 견딜 수 없던 통증이 사라졌다. 관절은 다시 부드러워졌다. 의사도 놀랐다. 자기 속에 주신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자기 자신을 치료한 결과이다. 남편과 다 른 여자에 대한 증오가 사라졌고 완전한 건강과 질서를 찾았다.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 우리는 움직이는 교회이다. 이 일은 우리 가 할 일이요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권세가 믿는 자녀에게 거저 주어졌음 을 아는 사람은 할 수 있다. 눈에 보이고 경험되는 자신을 믿지 말라. 차라 리 믿음으로 명령해서 감각적인 자신이 그대로 따라서 경험하게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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