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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인생 (막5:25-34)

본문

오늘 말씀 속에서 12년간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병든 자, 죄 많은 자, 쇠약된 자들이 4복음에서는 하나같이 예수님 주위에 항상 맴돌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귀한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름도 없고 볼품없는 불쌍한 한 여인이 나타납니다. 이 여인은 12년간이나 부인병을 앓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앓고 있는 병이 위장병이며 그 다음이 부인병인데 제1위가 한국 국민이라고 합니다. 본문의 여인도 부인병을 앓았는데 12년 간이었고 하혈을 계속하는 부끄러운 병이었습니다. 어떻게 어떤 이유에서 이 병이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고 다만 지나온 문란했던 과거의 삶의 결과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결혼했다가 남편으로부터 부정한 여인이라고 쫓겨 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냐하면 레위기 16:9 이하의 말씀에 보면 여인이 하혈을 하게 되면 부정한 여인으로 인정되어 그 여인이 앉았던 자리나 누웠던 자리나 입었던 옷까지도 부정했고 그 여인을 만지기만해도 부정하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12년간이나 계속해서 하혈을 하는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겉 모양은 이상이 없고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속으로 병이들고 괴로워했고 남이 알지 못하는 그런 고민을 가지고 지나오게 되었고 모든 사람은 이 여인을 부정하다고 틀림없이 멀리했을 것입니다. 결혼할 조건이 없고 오히려 이혼당할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뿐아니라 이 여인은 그 병을 고쳐보려고 가진 수단을 다 써 보았지만 이리저리 시달리기만 하고 이용만 당했던 것입니다.
본문은 마가라는 입장에서 이 여인에 대하여 기술했지만 누가복음 8장에도 똑같은 입장을 누가는 자기가 의사라는 입장에서 글을 썼습니다. 마가는 누가가 의사라는 입장을 상당히 비판하는 면에서 글을 쓴것 같습니다. 이 여인은 많은 의사들에게 상당히 괴로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의사에게 위로받고 병이 낫고 증세가 호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의사들에게 시달린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어쩌면 실험용 개구리나 토끼처럼 이 의사도 와서 들려다 보고 저 의사도 와서 기웃거려 보고 이 의사도 고칠 자신이 있다고 해서 치료를 받아 보았으나 아무도 이 여인의 병을 고쳐주지 못하고 오히려 병은 더 악화되고 심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들이 노린 것은 이 여인의 귀한 생명이 아니라 이 여인의 재물이었고 돈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여인은 가지고 있던 돈과 재물을 다 허비했고 빈털털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몸은 망칠대로 망쳐져 버렸습니다. "상록수"가 무엇입니까 1년 사시절 늘 푸른 나무가 상록수입니다. 상록수는 봄이 왔다고 야단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여름철이 됐다고 극성을 부리지 않습니다. 가을이라고 그렇게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나무가 가을이 되면 낙엽을 떨어뜨리면서 슬퍼하지만 상록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겨울이라고 얼어붙지를 않습니다. 일년 사시절 환경이 변하고 기후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어도 상록수는 그 푸르름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상록수와 같고 그 여인은 하나님의 상록수 인생인 것입니다. 12년간 혈루증으로 고생했으나 그 12년 동안 변함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는 무던하게도 긴 세월이었습니다. 또한 이 여인의 병은 부끄러운 병이었고 현모양처가 될 수 있는 모든 권리조차도 잃어 버렸습니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우을 당했습니다. 돈마져 다 날려버렸고 이쯤되면 보통사람은 그 병에 굴복하고 두 손을 들어 항복의 표시를 할 만도 했습니다. 이제는 자기 연민에 빠져서 오히려 망처진 건강을 즐기면서 살 수도 있을 수 있는 시기입니다. 아니면 이제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 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자기를 죽이지 아니하는 한 절대 죽지 않으려고 결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인생에 대하여 끝없는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병든 자기를 있는 모습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이해하고 용납하고 사랑했습니다. 자신의 질병이 쉽사리 굴복하지 않았고 자기의 병을 한탄하면서 자포자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망처진 자신의 건강에 대하여 연민에 빠지지도 즐기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짐이 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병과 싸우려는 정신만은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브라엔 버터라는 사람이 쓴 "환자와의 대화"란 책 속에 이러한 이야기 한 토막이 있습니다. 10년동안 위궤양을 앓은 환자가 위 절제수술을 받고 깨끗하게 낳았습니다. 병에서 해방되고난 다음에 이 사람이 오히려 우울증에 빠져있다가 마침내 자살을 했으나 겨우 살려놓았습니다. 그 사람에 대하여 의사 팀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10년 동안 고생하던 병상 생활에서 벗어났다면 새롭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왜 우울증에 빠졌다가 목숨을 스스로 끊는 자살을 시도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위궤양을 고쳐보려고 시도했으나 쉽게 낫지 않으니까 나중에 스스로 그 병을 즐기면서 살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디서든지 위장병을 핑계하면서 자기 인생을 살았던 것이며 모든 것을 위장병핑계로 돌려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10년 동안이나 위장병은 그에게 좋은 지팡이가 되어 주고 친구가 되어 주었던 것입니다. 조금 잘못이 있어도 내가 위장병이 있어서 그랬노라고, 무슨 부탁이 있어도 위장병 때문에.라고 그는 핑계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깨끗하게 낫게 되니 무방비 상태가 되었고 핑계거리가 없어졌고 친구가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핑계거리 할 것이 없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직장동료들도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해왔으나 응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교회에 가자고 권해도 위장병 때문이라고 하던 핑계가 이해 되어졌습니다. 아내가 처가에 좀 가자고 해도 음식이 맞지 않아서 못가게 된다고 핑계대면 이해가 되었으나 이제는 그 핑계가 없어졌고 그 친구가 없어졌고 그 지팡이가 없어지자 우울증에 걸려서 목숨을 스스로 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이며 여러분과 나의 이야기입니다. 자기 인생의 질병이나 자신의 약점이나 문제점을 친구로 삼는 자들이 많이 있음을 봅니다. 그것을 핑계대고 그것을 지팡이로 삼고 그것을 구실로 삼고 그것으로 보호받고 살아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절대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12년간 부인병을 앓던 이 여인은 이제는 그 병을 핑계삼아, 그 병을 지팡이로 의지해서 살아갈 만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주님을 향하여 옷자락이라도 만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면 내 인생은 변화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손을 내밀었고 여인의 손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닿는 순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인생의 혁명이 일어 났으며 혈루병의 근원이 말라 버렸습니다. 스스로 병이 나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깜짝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어느 때 이러한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이 여인이 예수님과 단 둘이만의 자리에서 일어난 것도 아니며 조용한 장소에서 이 여인에게 기적을 안겨준 것도 더욱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보면 수 많은 사람속에 쌓여서, 수 많은 군중속에 섞여서 이 여인은 놀라운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마치 여기 이 자리와 같이, 수백명이 모인 이곳과 같이,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 혼자만이 변화를 느꼈던 그러한 성도들과 같이, 수 많은 성도 중에서 이 여인은 개인적인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몰려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였습니다. 예수님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둘러 쌓였었고 이 사람과도 부딪히고 저 사람과도 부딪히셨습니다. 바로 이때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한 순간,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순간 변화가 생겼고 병의 근원이 말라 버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사람을 찾으시기 위하여 둘러 볼 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속에 둘러 쌓이셨는데 옷에 손을 대다니요. "내가 손을 댄 자가 있느니라,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갔기 때문이라"고 하시자 한 여인이 떨며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저 입니다. 저가 주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평안히 가라.네 병에서 건강할지어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5-6백 명이 예배드리는 오늘 여기 이 자리에도 믿음으로 영의 손을 내밀어 영의 눈을 들어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는 성도에게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놀라운 변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주변에 몰려들었던 군중은 수 백명 아니 수 천명이었습니다. 이 사람들 역시 예수님에게 손을 내밀어 옷자락을 만질 필요가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도 예수님께 손을 내밀어 옷자락을 만지실 필요가 있으신 분들이 아니십니까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던 그들은 손을 내밀고 옷자락을 만질 필요가 있었지만 유일하게 이 여인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몸이 예수님과 부딪히고 스쳐 지나갔으나 믿음의 손으로 예수님께 손 댄 사람은 이 여인 뿐이었습니다. 부요하고 건강하고 풍부하게 살 수 있는 문은 지금도 모든 사람들 앞에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만이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은 예수님의 주변에 몰려드는 것으로, 가돌며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이 성전에 몰려들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까지 합치면 3천명의 사람들이 주님 주변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예수님은 믿음의 손을 내민 개인에게만 놀라운 변화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중에 혹 몇 사람이라도 믿음의 손을 내밀기를 소원하고 계심을 기억하십시다. 주님은 지금도 죄의 근원이 말라 버리고 용서 받는 기쁨을 체험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시간 믿음의 손을 내미는 성도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염려의 근원, 근심의 근원, 질병의 근원, 우울증의 근원, 각종 고질적인 우리의 인생의 흉악하고 더러운 것의 근원이 말라버리는 그러한 기적을 우리 주님께서는 군중 속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역사를 이루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물으신 것은 그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신 질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주변을 몰려드는 것으로 만족하시는 수 많은 군중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물으신 것은 오늘날 수 많은 이 군중들 속에 참으로 예수님 주변에 몰려드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성도들에게 연민의 정으로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이십니다. 그러면 이 여인이 어떻게 예수님과 접촉하게 되었습니까
첫째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하여 무엇인가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이 여인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려 주었습니다. 이미 예수님과 만나 어떠한 기적을 체험한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습니다. "예수님은 돈도 없이 값도 없이 당신을 변화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그 분이 내일 이 마을로 지나가시는데 내가 당신 같으면 당장 그분에게 달려가서 내 인생의 변화를 가져 오겠어"라고 예수님을 소개했었고 이 여인은 그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둘째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하여 들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들었던 말을 그대로 믿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이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내 인생을 고쳐주실 분으로 믿어, 내가 그분과 접촉을 이루면 변화가 일어날거야. 마치 전구가 전기에 연결되는 순간 빛을 내듯이 내가 옷만 만져도 변화가 일어날거야." 이 여인은 믿었습니다. 세째로 이 여인은 자기가 믿는바를 행동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이 여인이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장애물이 많았습니다. 수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과거가 드러나야 하는 그런 위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몸이 쇠약해서 인간 장벽을 뚫기가 어려웠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변화를 받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사람의 장애물입니다. 오늘 우리가 변화받기 원하지만 시어머니 때문에, 며느리 때문에,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주위의 친구들과 사람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는 분들이 오늘 교회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삭개오가 참으로 자신의 인생이 변화 받기를 원했지만 그에게는 사람의 장벽이 예수님을 가 리워 버렸습니다. 키가 작았습니다. 도저히 예수님께 나아갈 수가 없어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을 의식하는 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장벽이 예수 그리스도와 여러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한, 체면을 생각하고 있는 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과거에 머물러 있어도 변화는 없습니다. 이 여인에게 이러한 엄청난 장벽이 있었지만 그 여인의 마음 속에 그러한 장애물보다도 더 강력한 욕구가 일어났습니다. 그 여인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병은 나을거야"하는 믿음이 사람의 장벽, 수치스러웠던 모든 과거의 장벽을 넘어서고 이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도 남이 자기에게 하는 말보다 자기가 자기에게 하는 말이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여러분 자신이 자신에게 습관적으로 하는 말을 말씀해 주신다면 여러분이 현재 어떠한 인생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여러분에게 말씀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한 부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밖에서 보면 아무도 그를 어리석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돈많은 부자라고 존경했고 부러워했습니다. 밖에서 보면 그 부자도 매우 지혜롭고 영리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자가 중얼거리며 하는 말을 예수님이 들으시고 그를 "어리석은 부자"라고 하셨습니다.
이 부자는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내 영혼아, 여러 해 쓰기에 풍족한 물건을 쌓아놓았으니 마음껏 즐기고 편히 쉬자"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영혼이 오늘밤에 죽을 것을 미리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부자야 내가 오늘밤 네 영혼을 데려 가리니 네 가진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집을 나간 탕자는 자기 자신에게 한 말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만약 탕자가 이렇게 말했다면 그에게 구원이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간이야. 내 아버지는 호인이셨어. 내게 돌아올 재산을 달라고 할 때 거절하시고 나에게 주시지 않았어야 했어 내형도 나에게 너무나 잘못했어 언제나 냉정했고, 내 친구들도 나뻐. 돈 있을 때는 몰려왔다가 돈이 없으면 다 나를 버렸어.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내 탓이 아니야. 사람을 잘못 만났고 세상이 악하고 내 주위가 그렇게 만들었어"라고. 이렇게 탕자가 중얼거렸더라면 그는 평생 돼지우리 옆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자기의 인생의 줄을 자신이 스스로 끊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탕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돼지우리 옆에서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나는 큰 실수를 저질렀어. 나는 한번 멋지게 내 욕망을 채워보려고 집을 떠나보았으나 결국 돼지같은 인생을 살고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고 굶어죽게 되었구나. 내 자신외에 그 누구에게 책임도 없어. 나는 아버지에게 상처를 입히고 집을 떠나왔던거야. 이제 집으로 돌아가 내가 저질렀던 실수를 아버지께 고해야지. 나는 대낮에 아버지 집을 떠났어. 부끄럽지만 대낮에 아버지께로 돌아가야지. 남몰래 숨어서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을거야. 내가 저지른 추한 사실들을 그대로 내어놓고 새로운 기회를 달라고 아버지께 사정해 볼꺼야. 내 아버지 집에는 없는 것이 없어." 이 탕자는 자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한 그대로 그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고,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지는 기적을 그는 맛보았습니다. 본문 속의 여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은 나을거야."그 말대로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신앙이며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말대로 되어집니다. 믿음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건강이, 평안과 기쁨과 용서와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담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 주위를 맴도는 이는 수 없이 많으며 변화를 채험한 사람은 소수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교회마다 가득가득 찹니다. 그러나 인생의 병, 마음의 병, 육체의 병을 고침받는 자는 소수입니다. 이 시간에도 수 많은 사람이 예수님 주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감격과 환희를 맛보는 사람은 적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주님은 변화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건강과 기쁨과 평안을 주시려고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끝없이 주시려고만 하시는데 우리가 주님 주위에 서성대기만 하면서도무지 받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주님은 지금도 안타까워하십니다. 믿음의 손을 내밀어 변화받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주님은 지금도 답답해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순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성령님의 감동함을 받아 믿음의 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밀어 "그분의 손에 내 손이 닿기만 한 내 인생은 변화하게 될거야"라는 믿음의 충동이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5:40에서 예수님은 탄식하시기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거절하였도다.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려 아니하는도다"오늘도 영원한 생명, 은혜, 건강을 가지시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놀라운 구원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오늘날 수 많은 사람들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주님께 가기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어떻게 하여야 변화가 일어납니까 접촉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믿음의 손을 내밀어 접촉하여야 합니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접촉할 때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의 세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 믿음으로 접촉할 때 불꽃이 튑니다. 내 인생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무도 모르는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분이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이러한 기적이 소수의 사람만 경험하는 일이 되 어야 합니까 성도 여러분! 자신에게 더 이상 중얼거리지 맙시다. 자기 스스로에게 "내 인생은 할 수 없어. 그럭저럭 살지 뭐. 그렇게 태어났잖아. 불가능한 일이야. 내 성격인데 내 팔자야"우리가 비 본래적인 삶을 즐기면서 사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것도 하실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변화될거야"라고 믿음의 손을 내민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임을 받아 건강하게 살지어다"라고 하시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성경의 여인처럼 "12년 동안 부인병에서 낫기를 사모하며 손만대도 변화가 오리라는 여인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의 접촉을 하면서 여러분의 인생이 사시사철 항상 푸른 인생,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마다 주시는 변화를 체험하시는 상록수 같은 인생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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