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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의 준비 (막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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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전도자, 혹은 전도인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마음에 어떤 그림 혹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아마도 어떤 분은 서울역 광장이나 혹은 전철안에서 아주 큰 소리로 예수천당 이라고 소리치는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용기있는 그리스도인 또 어떻게 생각하면 사이코한 비정상적으로 열심있는 그리스도 프로전도자를 마음속에 연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분은 왕년의 영화 엘마칸트리에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약간은 사기성을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집회를 인도하는 떠돌이 부흥사를 연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전도자. 그러면 전세계 유수한 도시에 도시의 대표적인 스테디움. 광장에 사람을 가득가득 채워놓고 고고한 복음의 메시지를 사자굴을 토하는 빌레그레함같은 세계적 전도자를 마음 속에 연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전도자와 동일어라는 것을 알고계십니까 전도자는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은 전도자입니다. 예수님 영접하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전도자가 아닌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은 자기가 전도자인줄 알고 사명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전도하는 일에 쓰임을 받고자 노력하는 전도자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전도자로 부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망각하고 전도와는 상관없이 살고있는 전도자와는 아무상관 없는 전도자.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두가지 종류의 전도자만이 존재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크리스챤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특히 수제자 베드로를 부르실 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나를 따라 오너라" 그 다음에 어떤 약속을 하셨습니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러니까 한사람이 정상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라가면 신실하게 그리스도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어야 마땅합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 즉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접근해서 하나님을 소개하고 그래서 그가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일 살아가는 것이 정상적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우리교회 같은 곳에서도 지난 한주간동안 전도폭발 임상훈련이 있었어요. 우리교회에 많은 성경공부 프로그램이 있지만 전도폭발.그러면 교인들 사이에 악명이 높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건 특별한 사람만 받는 훈련. 이런 개념이 좀 있지요 특공대에게 필요한 훈련. 여러분 특공대가 뭔지 아시죠 특별히 공격적이고 대담한 사람. 여러분 예상하고 빗나갔죠 아주 특별한 사람만이 받는 훈련이다. 이런 생각이 우리마음에 있습니다. 사실 이 훈련은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할 훈련입니다. 전도폭발 훈련이 저는 유일한 전도훈련의 방법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다른 여러가지 전도훈련 방법도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러나 제가 아는 한 또 세계 교회가 경험한 최선의 훈련이기 때문에 이 훈련 방법을 통해 우리는 전도자로 훈련을 받습니다. 모두가 훈련을 받고 모두가 전도하는 삶의 자리에 머물러 서 있어야 마땅합니다. 자. 그러나 정말 내가 전도자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이라면 어떻게 나자신을 전도자로 준비하고 주님앞에 설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 예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과 함께 하시고 이제 그들을 내보내시면서 어떤 준비를 시키셨는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도자의 준비.뭐가 필요할까요
첫째로 전도자의 준비로서 필요한 첫번째 스탭은 교회 공동체의 비전과 전략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비전과 전략을 수용하는 것이 저는 전도자의 첫번째 스탭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오늘 본문이 이런구절로 시작됩니다. 7절.우리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마가복음 6장 7절. 우리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열두 제자들을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네.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개인적으로 한사람 한사람씩 만나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만은 그들을 부르신 다음에 열두제자들로 하여금 하나의 공동체로 되게 하셨다. 이것을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열두제자들을 바로 이 신약교회 공동체의 모체가 됩니다. 나중에 계시록 20장을 보시면 천국을 설명할 때 새하늘 새땅을 설명할 때 그것은 열두 기초석보석위에 천국이 세워진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열두 보석은12사도 12제자들을 가르킵니다. 12제자는 그냥 무리가 모인 단순한 무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교횝니다. 신약교회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은 12제잗드을 부르시사 교회가 되게 한것입니다. 공동체가 되게 한것입니다. 그리고 전도하러 둘씩 보내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한사람씩 뿔뿔이 보내시는 상황하고 둘씩 짝지어 보낸신 것과 차이가 있을까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여러분이 혼자 나가서 전도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전도가 쉽지 않죠. 하다보면 어려움을 느낍니다.혼자 하다가 지치면 뭐 혼자 집에 오면 그만이예요. 언제든지 땡땡이 칠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나 두사람이 함께 묶여서 하다보면 상당히 상대방을 의식할 것입니다. 긴장도 하고.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해.' 인간에게는 공동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둘씩 둘씩 짝지어 전도하러 보낸 데는 그밖에도 여러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이 둘이라는 숫자는 신약이나 구약성경의 전체를 통해서 법정 증거의 효율적인 숫자입니다. 우리가 구약성경 신명기 19장 19절에 보시면 사람이 죄인으로서 증명을 받기 위해선 증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사람으론 증인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객관적 그사람이 죄인됨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증인이 필요하다. 구약성경의 전통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어요. 심판날에 하나님 저는 전도받은 일이 없습니다. "증인이 있느니라" 한 사람이 아니고 증인을 몇사람 부르실까요 두사람씩. 두사람 이상씩 "그들이 전도하지 않았느냐" 법정 증거의 효율성을 성립하기 위해서 두사람 이상을 짝지워 보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의미가 있을거예요. 두사람은 공동체의 최소단위. 전도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죠 두사람이 한사람보다 나음은 한사람이 넘어질 때 또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요 붙들어 일으켜 세워준다. 격려하면서 살 수가 있어요. 교회를 격려의 공동체가 될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 둘씩 짝지어 보낸 데는 또다른 의미도 있다고 봅니다. 제자들의 인격적 영적 성숙을 겨냥한 주님의 전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마가복음에는 어떻게 짝을 지었는지 나오지 않지만 사건을 취급하고 있는 마태복음을 읽어보시면 두사람씩 짝이 될 때 그 짝을 공부해 보면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안드레와 베드로가 짝이 됩니다. 환상의 짝이었을 것입니다. 두사람은 뭐예요 형제였습니다. 자라나면서 함께 보조를 맞춘것이죠. 그러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짝도 있어요. 시몬과 유다. 시몬은 아주 격렬한 열심당원 출신입니다. 아주 열심히 많은 사람이예요. 예수님의 제자가 된 다음에도 아주 특별한 열심을 보였던 제자입니다. 그러나 가롯유다는 배신자입니다. 유다와 시몬의 짝 아주 희한한 짝이었을 거예요. 시몬이 고민 많이 했을 거예요. 이 유다를 생각하면서 유다를 어떻게 가슴에 품어야 할까 비판적인 유다.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를 다독거리면서 아마 시몬에게 굉장한 성숙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만 성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안 맞는 사람과 짝을 이루어서 공동체에서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를 용서하는 것을 배우고 이것이 공동체의 성숙의 하나님의 전략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신앙속에서 정말 그리스도인 다운 신앙생활을 저해하는 장애물의 하나가 이 시대의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이 시대의 정신가운데 하나가 개인주의입니다. 철저한 개인주의 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도 예외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식을 상실하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교회라는 공동체가 필요해서 교회를 세우셨을까요 전도하기 위한 공동체. 여러분 전도한다는 것이 보통사건이 아닙니다. 전도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킨다. 여러분 이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세상을 변화시킨다. 내가 나같은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켜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부족한 대로 우리가 그 연약한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가 될 때 그 공동체의 저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교회라는 공동체에게 지상명령의 과제와 숙제를 위임한 것입니다. 마지막 11제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세상을 바꿔라. 모든 족속으로 네 제자를 삼으라. 이것은 교회 공동체의 원형을 향해서 이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해요. 근데 이 공동체 의식이 어렵습니다. 시대의 영향을 받아서 우리 모두가 뿔뿔이 개인으로 살아갑니다. 저는 우리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는가 그것을 젤 잘 아는 방법중의 하나는 두가지라고 생각해요. 그 시대의 유행가. 그리고 그 시대의 유머. 제가 아무리 바빠도 유행가를 들춰봅니다.
배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가. 또 그시대의 유머는 그시대를 풍자하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 가운데 유행하고 있는 것이 사오정시리즈라고 해요. 사오정시리즈.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아예 알지도 못할 지도 모르죠. 제가 이 사오정 시리즈를 연구해봤어요. 연구해보니까 참 썰렁하더라구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웃음이 안나와요. 근데 그것을 유머시리즈라고 해놓았단 말이죠.
그런데 이 사오정시리즈를 검토해 보면서 한가지 공통성을 발견했어요. 이 사오정이 기가막히게 현대인을 대표합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모습이예요. 예를 들어 사오정집에 강도가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강도가 손오공은 어디있느냐 집에 있어요. 강도가 깜짝놀래요. 그러면서 "삼장법사는 어디에 있느냐" 그러니까 더 놀래면서 그러면서 "저팔개는 어디있느냐" 그러니까 사오정이 "저는 사오정이란 말이예요"소리칩니다. 썰렁하죠.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죠. 그러니까 사오정이의식하고 있는 것은 "나는 사오정이다" 라는 것 밖에 없어요. 다른 것은 아무 관심없어요. 이 사오정 시리즈의 공통점이 뭐냐면요 서로 다른 얘기를 해요. 대화가 없어요. 마음들이 통하지 않아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사오정 1과 2가 목욕탕 앞에서 만납니다. 사오정1이 2를 보고 "아 목욕탕에 오십니까" 그랬더니 사오정2가 말하기를 "아니요. 목욕탕에 갑니까"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러니까 사오정1이 "미안합니다. 나는 목욕탕에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말도 안돼는 소리죠. 도무지.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서로 각자 얘기가 달라요. 통하지가 않아요. 대화가 없어요.
그런데 사랑하시는 여러분. 똑같은 비극이 우리교회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비극이예요. 주일날 교회와서 예배드리고 가요. 그러나 통하지 않습니다. 만남이 없습니다.
만남의 접촉점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배드리고 또 흩어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주님이 의도하는 교회는 진정한 공동체예요.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그리고 삶의 역경과 삶의 환희를 함께 나누면서 그리고 실패의 상처도 함께 나누면서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일어나는 공동체. 교회안에 깊이 들어가다 보면 마음에 안드는 사람도 만나요. 그들을 용납하고 그들을 용서하는 것을 배웁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하는 공동체가 되고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면서 우리는 사랑과 용서를 모르는 세상을 향해서 이렇게 외칩니다. 당신에게도 이런 사랑이 필요치 않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이 공동체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시길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교회생활을 하세요 특별히 지식인 일수록 교회생활 에 이런 경향이 많습니다. 교회생활 젤 잘 알수 있는 방법은 축도가 끝나자 마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교회에 깊이 들어가면 골치아파. 이것이 오늘 교회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어요. 교회에 나오면서 등록도 안하고 나와요. 등록도 안하고. 그것이 편하거든요. 무척 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두가지. 주님에 의해서 효율적으로 쓰임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또 하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관계속에서 인간관계의 다이믹스안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서로 위로하고 또 용서해주고 이러한 경험이 일어 다시 말하면 성숙이 일어나지 않아요. 성숙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도자가 된다. 굉장한 걸 생각하지 마시고 훌륭한 전도자 첫번째 스탭은 교회전체가 선교공동체예요. 전도하기 위해서 묶여진 교인이 먼저 되는 거예요. 그것이 전도자가 되는 첫번째 스탭이예요. 그러니까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등록하고선도 뺀질뺀질. 등록 해놓고도 아무데도 참가를 안해요. 마을목장예배에도 참여를 안해요. 동네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내 인생의 좌절과 슬픔을 말하세요. 끌어안고 교회안의 소그룹 안에도 소속하고 위원회에도 소속하고 여러분이 성경공부 그룹의 소속. 나이별로 형제와 자매들을 만나요.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인생의 애환을 나누고 그 안에서 우리를 치료하시는 그리스도, 우리를 성숙시켜 주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하며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이렇게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이 그리스도가 소망이십니다. 그리스도가 구원이십니다. 이 복음을 증거하는 강력한 공동체.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선교의 위대한 사명은 이 공동체의 비전과 전략을 내가 따라 그러니까 뭐 나혼자서 전도한다. 세상을 바꾼다. 어마어마하고 안되는 일이지만 여러분 교회안의 좋은 교인이 되어서 정말 제자리를 찾고 성도들과 교제하면서 교회가 전도합시다. 하면 같이 전도하고 훈련받읍시다 하면 훈련하고 함께 이번에 특별히 전도하십시다 하면 우리가운데 작지만 영향을 미쳐요.세상은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열두제자를 부르시고 공동체로 세우신 것입니다. 전도자가 되는 첫번째 스탭입니다.
둘째는 주님의 능력을 철저하게 신뢰할줄 알아야 합니다. 자, 본문의 8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외에는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뭐만 가지라고 했어요 지팡이 하나. 신발은 아직 안나왔어요. 그다음에 나와요. 9절에. 자, 9절 다같이 읽어요 '신만 신고 두벌 옷도 입지말라 하시고'.두가지만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뭡니까 지팡이와 신발. 이것은 팔레스타인의 지형을 이해하면 여러분 성지순례를 해보시면 예루살렘-언덕위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해발 750m나 되는 고지대에 건설된 예루살렘에서 버스타고 30분만 내려가면 사해바다에 도착해요. 근데 이 사해바다는 어떻습니까 소위 sealevel 바다의 표면에서 밑창까지 398m나 내려가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형.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 그 사이에는 사막이 펼쳐집니다. 이런 데를 왔다갔다 아주 작은 나라이지만 지형이 험해요. 다닐려면. 뭐가 제일 필요하겠어요 지팡이가 필요하고 신발이 필요해요. 나이키. 네. 신발이 필요해요. 그건 최소한의 준비예요. 그러나 나머지를 걱정하지 말아라. 나머지는 어떻게 해요 나머지는. 나를 믿어라. 나를 나를 의지해라 여러분 전도자에게 너무 많은 것이 소유되어 있으면 거추장스럽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삶이예요. Simple life예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다 보면 사건이 일어나요. 그러나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의 명령에 순종해서 전도를 시작하게 되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대상이 있습니다. 뭔줄 아세요 귀신을 만나요. 여러분 귀신 만나보셨습니까 귀신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 아직 전도해 보지 못한 사람이예요. 전도하면 귀신을 만납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자, 그러면 전도는 누가 제일 싫어할까요 귀신이 제일 싫어하는 일이예요.
그래서 전도를 시작하면 누가 먼저 공격할까요 귀신의 공격이 시작되요.
그런데 주님은 걱정하지 말아라. 7절에 보세요. 제자를 보내시기 전에 먼저 뭘 주셨습니까 열두제자를 부르시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다. 귀신을 만날것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아라. 귀신을 제압하는 권세를 주셨다. 믿습니까 여러분. 전도하면 귀신을 만납니다. 그러나 귀신은 패배할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귀신을 패배시키는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종종 선교지에서 선교사님의 선교보고를 듣게 됩니다. 기적이 일어났다는 기적의 리포트를 듣게 됩니다. 그때 어떤 소감이 드세요 아니,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기적이 왜 우리 교회에서는 왜 우리 주변에서는 일어나지 않을까 저는 여기서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어요. 다만 선교사들처럼 전적인 순종을 통해서 복음전선의 최전선에 살 때 하나님은 거기에서 전능하신 당신의 능력을 부여하시는 것처럼 전도의 명령앞에 순종하여 이자리에 선다면 기적은 여기에서도 일어날 줄 믿습니다. 저는 인생이 바뀌는 체험을 한번 해볼려면 선교사가 안돼도 좋으니까 단기선교 떠나십시요. 목회하면서 늘 이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젊은 청년뿐 아니라 장년들도 단기선교를 한 번 가보세요.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권에 가서 우리보다 더 가난한 곳. 더 어려운 곳 영적인 어둠이 있는 곳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해보십시요. 인생이 바뀌어서 돌아와요. 한번 워싱톤교회에서 젊은이들을 맥시코에 보낸 적이 있습니다. 매해 단기선교가 축복이지만 그해 단기선교는 특별한 축복이 있어요. 갔다온 사람이 다 인생이 바뀌었어요. 어느 빈민 지역에 가서 실제로 약품가지고 가서 치료도 해주고 또 기도도 해주고. 어떤 젊은이가 기도를 하다가 소경이 눈을 떴어요. 소경이. 누가 제일 놀랬을까요 기도한 사람이.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거든요. 이게 진짠가 아닌가 자꾸 만져봤대요. 이 친구가 희한한 사건이 일어나니까 진짜 떴나 안떴나 만져보고 진짜 떴어요. 이사람 변하겠어요 안변하겠어요 이사람 미치도록 변해요. 신학교 갔어요. 여러분. 지금도 우리가 정말 주님의 명령앞에 순종하면 거기서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 아니, 그러면 나는 직장있는데 직장 때려치울까요 어떤 사람은 직업을 버리고 전적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향해서 주님이 부르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사와 전도사 선교사 이런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겠죠. 그러나 생활속에 있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생업이나 직업을 포기하지 않고 직업의 장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십니다. 이런 부르심의 문제를 공부하고 싶으시면 고린도전서 7장을 읽어보시면 독신의 부르심. 결혼의 부르심이 나옵니다. 독신자도 부르시고 기혼자도 부르십니다. 독신자는 독신자로 쓰시고 결혼한 사람은 결혼한 사람대로 쓰십니다. 여러분 독신자와 기혼자 가운데 누가 더 주님 열심히 섬길 수가 있을까요 독신자가 더 편하죠. 기혼자가 되면 마누라걱정,남편걱정, 자식걱정, 걱정이 많잖아요.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7장에서 각자 부르심을 받은 대로 주님을 섬겨라. 부르심이 다르단 말이예요. 목사나 전도사처럼 풀타임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하고 직업의 장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사람하고 어떤 것이 더 힘들까요 저는 평신도의 부르심이 더 힘들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이 더 힘든거예요. 직장에서 전도하는 것. 직장에서 전도할려면 직장생활 그 자체를 잘 해야 됩니다. 직장생활은 적당히 하고 예수믿으십시요. 하면 누가 그소릴 듣겠어요 무슨 설득력이 있겠어요 안믿는 사람보다 직장생활 배로 충성스러워야 합니다. 야근도 더 하고 더 일 열심히 하고 생활의 모본이 되고 예수님은 구원이십니다. 그때 그 메시지가 설득력을 갖지 않겠어요 그럼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되고 그리고 거기서 복음을 전한다. 쉬워요 어려워요 어렵죠.
그런데 제가 아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직장생활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물어보면 "힘들지 않으세요힘들죠. 그러나 즐거워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의 능력이 지금도 부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주의 능력은 지금도 복음의 명령을 순종하는 사람. 어떤 형태의 부르심이든 부르심을 받은 삶의 장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드리며 그 명령에 순종하여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런 사람에게 주의 능력 나타날 줄 믿습니다. 문제는 그 능력을 신뢰하십니까 주님이 내 삶을 책임져 주신다. 그리고 이 삶을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이 능력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준비예요. 그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 그리고 세번째로 환영과 핍박을 함께 받을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전도자는 환영과 핍박을 함께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10절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것은 환영입니다. 전도하면서 내가 환영 받고 대접받을 수가 있어요. '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어떤 집에 가면 '아, 수고하십니다. 저의 집에 머물러 가시지요.' 너무너무 대접을 받고 환영을 받아요. 자, 전도하다가 우리가 인정을 받고 환영을 받으면 얼마나 용기 백배합니까 그럴 수가 있습니다. 전도자들을 하나님은 격려하기 위해서 그런 상황을 펼쳐주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도하는 사람의 삶의 전부가 아니예요. 어떤 때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냉담한 거절과 핍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그 다음 절입니다.
11절 우리 다 같이 읽겠습니다. 11절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휘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어떤 분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나머지 어느 집에가 전도하다가 안받아 들이면나오면서 문닫아 놓고 발에 신발은 떨구고 먼지를 털고 떠난다는 분이 있어요. 이것이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것을 잘 알아들으셔야해요 제대로, 먼지라는 것은 세속성 죄악의 상징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은 영접하지 않고 복음을 거절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사람들이 말은 하지 않지만 숨겨진 가장 중요한 동기 하나는 죄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안 받아 들이는 거예요. 그래서 발에 있는 먼지를 떤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죄악에 나는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제가 전도했던 사람 가운데서 솔직하게 나는 죄 짓는것이 좋아서 예수 믿지 않습니다. 말하는 사람 꼭 한사람 만나 봤어요. 꼭 한사람. 제가 이 사람 이름 얘기하면 모를 사람 한사람도 없을거예요. 한국의 유명한 가수예요. 미국에서 6개월 동안 저하고 비슷한 지역에 살면서 거의 매주 만났습니다. 그 집에 가서 자기도하고 우리 기숙사에 와서 자기도하고 그랬어요. 많은 얘기를 나누었어요. 사람들은 그가 성가를 잘 부르기 때문에 그가 크리스챤이라고 착각을 했습니다. 아니올시다예요. 나한테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말하니까 솔직히 예수님 영접하면 죄 지을 수가 없지 않느냐 맞다고 그랬습니다. 자기는 죄 짖는 것이 너무 좋대요. 그래서 열심히 죄를 짖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 사람은 솔직해요.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죄 짖는 것이 좋아서 그래요. 자, 우리는 그들에게 나는 당신의 죄에 동참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심판날에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 표시예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버리라는 얘기가 아니예요.
우리는 그들의 냉대, 그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와서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의 날에 주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계속 촉구해야 합니다. 핍박은 더해질 수가 있습니다. 더 큰 핍박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전도하다가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끊임없는 사랑으로 다가서는 것. 이것이 진정한 용기 아니예요 과거에 기독교 신앙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던 사람들이 신앙을 갖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어디있느냐 이것은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위로 받을려고 종교를 갖는것이다. 약자의 지팡이다. 철학자 니체 같은 사람이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전도할때 이것은 진정한 크리스챤의 용기를 나타내는 장면입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 목숨도 버릴 수 있습니다.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사람.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순교자들, 복음 때문에 목숨을 버렸습니다. 이것이 약자예요 하나 밖에 없는 목숨,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어요 그러나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수가 있다. 진정한 용기 , 이 위대한 용기, 저는 크리스챤이어야말로 정말 용기 있는사람이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만이 세상을 바꾸게 될것입니다. 천국의 스타. 누구까요 계시록 20장에 보면 사도 요한이 '내가 보니 보좌에 앉아있는 주와 함께 앉아서 세상을 마지막에 영원토록 다스리는 사람들. 그들은 주의 말씀과 복음의 증거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영혼들이 주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 그들은 천국의 스타가 될 것입니다. 진정한 영웅,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때로는사람들에게 냉대와 거절을 받으며 목숨까지 버리는 사람들, 진정한 영웅들. 세상은 이런 영웅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타이타닉 이 영화가 전세계에 하나의 선풍적인 인기를 가져왔습니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이 비극 속에 나타난 영웅들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영웅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마지막 목숨을 내어놓고 그리고 그 여인을 살리는 그 재프라는 주인공. 영웅이죠. 일종의 영웅입니다. 또 침몰하는 배를 끌어 안고 마지막까지 침착하게 그 키를 붙들고 배와 함께 침몰하는 틴 스미스, 그 함장도 일종의 영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라이프 보트에 사람들을 실어주고 살리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하는 선원들, 그들도 영웅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감동을 많이 받은 장면은 마지막 순간까지 악기를 붙들고 음악을 연주를하고 있었던 악사들의 모습이예요. 이 밴드팀의 단장의 이름이 월레스 하틀리라는 사람입니다. 다른 것은 영화이기 때문에 각색 된 부분이 많습니다. 주인공의 얘기는 특별히 가짜입니다. 픽션입니다. 그것은. 그러나 밴드를 플레이하고 있었던, 끝까지 침착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며 그리고 찬양의 가사 속에서 메시지를 통해서 하늘의 거룩한 소망을 바라보도록 촉구하고 있었던 이 밴드 플레이의 틴은 월레스라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전도하기 위해서 이 화려한 무너질 수 없는 배, 이 배에 타고 이 바다를 횡단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는 자진해서 그 배에 탄 악장이었어요. 그는 이 혼란한 판국,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버리고 있는 이 판국, 무너질 수 없는 배라고 착각하고, 이 배에 소망을 두고 탔던 사람들이 그들의 생명이 잃어져가는 마지막 장면까지 침착하게 자기의 팀 맴버들을 격려하면서 그는 마지막 이 장엄한 음악을 연주하면서 그는 계속 소리쳤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의지하십시요. 그를 가까이 하십시요. 그가 소망이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지막 침몰해가는 배 속에서 이 찬양을 통해서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더 나가기 원합니다.' 월레스 이 형제는 이 음악을 들려주면서 끝까지 외쳤다고 합니다.
'예수,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그가 소망이십니다.' 진정한 영웅들, 이 무너지는 세상이라는 배 안에 타고 살면서 소망의 근거를 잘못 착각했던 사람들, 그래서 이 세상이 무너지자 아무것도 기댈수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소망이십니다. 이 메시지를 토할 수 있는 영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크리스챤들은 이런 영웅이어야합니다. 전도자들 그들은 이 시대의 빛나는 영웅일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약속하기를 많은 사람들을 옳은데로 돌아오게한 사람들, 그들은 나중에 별처럼 영원토록 빛나리라. 우리 시대는 이런 영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그런 복음에 대한 소망을 던지는 영웅적 전도자가 되시겠습니까
기도하십시다.
. 조용히 기도하시면서 '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이 가사의 뜻을 생각하면서 한번 찬송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인간이 만든배. 무너질 수 없는 배라고 착각했던 사람들, 우리는 우리의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는 비극들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든 것은 무너집니다. 무너지는 세상에서 무너질 수 없는 소망이신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를 붙들고, 그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도록 이 소망을 나누는 삶, 이 삶보다 더 고귀한 삶이 어디에 있을까요 주님 가까이하며 살겠습니다. 한평생 주님 의지하고 살겠습니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주님 가까이 하라고 증거하면서 살겠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함께해 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앞에 나옵니다. 주님을 가까이하게 도와주시옵소서 . 덫없는 세상 , 무너지는 세상. 하나님, 그러나 무너질 수 없는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 하나님, 이 예수 그리스도를 높여드리며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이 삶 속에 우리의 삶이 드려지고 바쳐지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주님 함께해 주시옵소서. 성령님으로 역사하시고 오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존귀하고 움직일 수 없는 우리의 소망이 되어 주시옵소서. 주님, 의지합니다. 주님 붙들고 살겠습니다. 도와 주시옵소서. 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내 삶 속에 가장 존귀한 분이 되어주시옵소서. 당신은 우리의 소망, 당신은 우리의 반석, 당신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주님 의지하겠사오니, 주여, 우리의 소망 흔들리지 아니하고 주님 때문에 우리의 삶이 비로소 소망의 인생인것을 선포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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