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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와 목숨을 바꾸는 어리석음 (막8:31-38)

본문

16세기 초기에 독일의 한 괴짜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파 우스트(Faust), 또는 파우스투스(Faustus)였는데 그 뜻은 "행운아" (lucky one)였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이 학자는 여러지방 을 떠돌아 다니면서 그 자신이 마술을 부린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 들을 끌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행한 모든 기적을 얼마든지, 그리고 그가 원하기만 하면 아주 손쉽게 행할수 있다고 자랑하였습니다. 또 그는 아주 지혜가 충만하고 머리가 좋아서 희랍의 푸라톤이나 아리스 토텔레스 같은 철학자의 모든 저술들이 없어진다 해도 그것들을 다시 복원해 낼수 있다고 떠벌렸습니다. 사실은 그는 본래것 보다 오히려 더 잘 쓸수 있다고 까지 자랑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가 지고 있는 놀라운 힘과 온갖 기적을 일으킬수 있는 재주들은 바로 악 마로 부터 받았다고 말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또 호기심을 불러일 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실상 악마와 처남 매부 관계라고 했 습니다. 그는 실제 인물로서 1540년에 브리이스카우의 스타우펜 (Staufen im Breisgau)에서 죽었습니다.
파우스트가 죽은후에 사람들은 그의 마술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 고 또 더러는 그 이야기들을 사실로 믿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파우스트란 이름과 그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되 면서 차차 전설적인 인물로 되었습니다. 이 파우스트 박사와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사실은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서 그 댓가로 보통인간이 할수 없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파 우스트박사란 이름을 대표하는 말로 되었습니다. 파우스트 박사의 이야기는 독일의 국경선을 넘어서 영국으로 덴마크 로, 마침내 전 구라파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16세기의 영국시인이고 극작가로 명성이 높았던 크리스토퍼 말로우(Christopher Marlowe, 1564-9
3)라는 작가가 본래의 파우스트 이야기에 새롭게 그럴듯한 줄거 리를 첨가햐여 "파우스트 박사의 비극적 역사"(The Tragical History of Dr, Faustus)라는 작품을 출판해냈습니다. 그것이 1594년 이었습니다. 이것이 연극으로 공연이 되어 인기를 모았는데 그 줄거리는 이러 합니다. 파우스트는 당대의 모든 예술과 과학의 지식을 통달하고 갖춘 석학 이고 대스승이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그의 서재에서 마술의 비법을 써 놓은 책을 펴놓고 마술을 행사할지 여부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선한 천사와 나쁜 천사가 교대로 나타납니다. 선한 천사는 파우스트에게 이상한 마술을 행하게 되면 그의 영혼 을 잃게 된다고 그 마술책을 던저 버리라고 조언합니다. 그가 떠나자 다음순간 나쁜 천사가 나타나는데 그는 정반대의 조언을 합니다. 나쁜 천사는 마술의 힘을 이용한면 파우스트는 지상의 신이 될수 있다고 그 럴듯하게 말하면서 그를 부추깁니다. 파우스트는 결국 나쁜 천사의 권 유를 받아들여 마술을 행사하기로 작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란 악마와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메피토펠레스는 파우스트의 종이되어 그를 섬기고 그를 지구위에 서 최고 강자로 만들어 준다는 것과 그 대신 파우스트는 24년 후에 그 의 영혼을 악마에갼선 내용이었습니다. 악마와 파우스트는 이 내용에 서로 동의하여 마침내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이 계약대로 파우스트는 악마의 도움으로 이 세상에서 온갖 쾌 락을 즐기게 됩니다.
그런데 24년은 빨리 지나갔습니다. 악마는 마침 내 파우스트에게 그의 영혼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파우스트는 악마와 계약한 것을 후회하고 그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고 후회하지만 별 수 없이 영혼을 악마에게 양도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악마는 파우스 트 박사를 마침내 지옥으로 데려가서 거기 쳐넣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의 현대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것을 시 사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인류사상 일찌기 본일이 없는 찬란 한 물질문명을 꽃피우고 인간이 상상할수 있는 것이면 그의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드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인간의 삶은 거의 모든것이 기계화 되어 생은 아주 편리 해지고 편안해 졌습니다. 아직 이 지구 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지역이 있는것이 사실이지만, 한 편의 지역에서는 온갖 물질적 풍요와 문명의 이기를 만끽하고 온갖 오 락과 쾌락을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매일같이 더 편리하고 더 아름답고 더 놀라운 문명의 이기들이 나와서 우리의 눈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문명은 물질문명의 발달의 속도와 정도에 비례하지 못하고 엄청나게 뒤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이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현대 세계에서 물질문명이 발달 하는데, 도덕, 인도주의, 인정과 사랑등은 이에 반비례하고 있어서 도덕이 퇴폐되고 인도주의, 인정, 사랑 등이 메말라 가고 마비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좋은 것을 회득하기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습니다. 인면수심 (인면수심)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마음 은 짐승과 같다는 말입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기독교윤리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젊잖케 생긴 신사가 중년의 한 숙녀를 보고 자기와 동침을 하지 않겠느냐고 불쑥 말했습니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뭐라고 요!"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을 했음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이 신사는 느긋한 얼굴표정을 보이면서 "한 만불 드리면 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때 이 현숙하게 생긴 숙녀는 좀 당황하는 표정이지만 기어들 어가는 말로 "예, 그렇게 할까요"라고 대답 했습니다. 그 때 이신사는 "그럼 한 오천불 정도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능글맞게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기분이 좀 나빴지만 그 신사는 그렇게 밉게 생긴것도 아 니고 성적매력도 있는데다가 5천불이란 돈이 엄청난 돈이고 그래서 재 미도 보고 수입도 생기니 과히 나쁘지 않다고 신속하게 속으로 계산한 이 숙녀는 뚜렸한 말로 "그렇게 합시다"고 대답 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 신사는 태연하게 웃으면서 "사실 지금 제게 돈이 그리 많지를 않습니다. 천불만 합시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 서야 정신이 번쩍난 이 숙녀는 그 남자를 쏘아보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이 저를 어떻게 보고 모욕하는 겁니까 제가 어디 물건 입니 까 흥정을 하게!" 라고 소리를 버럭질렀습니다. 그 남자는 이렇게 능 글맛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누구기는 누굽니까. 당신이란 상품은 이미 결정 되었으니까, 이제 상품의 값을 흥정하고 있는것 아 닙니까" 저는 이 이야기로 숙녀들의 인격에 손상을 끼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라기 보다 만들어 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남.녀를 불문하고 현대인이 돈을 위하여 못할 짓이 없다는 실상의 단면을 나타내주는 이야기라 할수 있습니다. 남자들의 이야기는 이보다 더하다는것을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위하여, 부와 권력에 대한 탐욕 등을 위하여, 입 신양면(입신양명)을 위하여, 성공과 출세를 위하여 도덕도, 인도주의 도, 최소한도의 인간의 도리도, 양심도 내 팽개치는 것은 물론 마침내 인간이기를 그치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땅의 남자들의 이 야기가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우리 사회에서 지난 일주일간의 신문을 훔어보아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문보도를 통하여 엄청난 불의와 불법현상을 보고 정말 의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모 재벌회사의 부회장이 불법호화별장을 지었다하여 검찰에 적발되었는데 그 보도를 보고 분노하지 않은 사람 들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용인군애 20만평의 땅을 사들여 호화별장 을 짓고 산림을 훼손하고 무단으로 증축하는것은 물론 탈세까지 하고 온갖 불법을 다 저질렀던 사실이 보도 되었습니다. 그집은 얼마나 호 화로운지 정원에 인공폭포, 연못등도 있었는데, 불법호화별장임이 드 러나자 굴삭기를 동원하여 연못을 메꾸는 장면이 신문에 나왔습니다.(8/28한겨레). 우리는 공직자들의 재산공개와 등록, 그리고 이번에 실시한 금융실명제등을 통해서 이 사회의 공직자들과 지도인사들이 얼 마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치부를 해 왔는가 하는 사실에 아연질색하지 않을수 없었지만, 이와같이 수단방법을 가리지않고 치부를 하는 재벌 기업체의 부자들을 보면 그야말로 과연 양심이 있느냐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심적으로 열심히 일한 대가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야 우리 사회가 존경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일부 상류층의 사람들의 이재 방법을 보면 정말 한심한 마음을 금할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온통 썩었다는것은 우리가 평소에 맏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이런 정도 였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되어 충격을 금치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에 우리의 충격을 더합니다. 또 지난 주간에 전직 두 대통령의 재임시의 평화의 땜과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에 대하여 온 국민들은 관심을 집중하게 했습니다. 감사원의 질의에 대한 회신이 있었는데, 이 문제와 관련한 정치적 법적 시비를 떠나서 이 두사람의 뻔뻔스런 태도에 대하여 우리는 충격을 금치 못합니다. 도둑과 강도의 수준을 넘어서는 초특급의 사기와 도둑질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들의 태도는 국민들의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었습니다. 어떤 이는 이들의 소행을 국가 사기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이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다는데에 그들의 도덕적 수준은 물론 인격에 대하여 실망을 금치 못하 고 있습니다.(8/27한겨레) 이것이 모두 권력의 유지와 돈을 위하여 저 지른 더러운 일들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돈 을 위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최소한도의 법적 도덕적 의무는 말할것도 없지만 최소한도의 인간으로서의 양심이나 인격, 연혼도 포기한채 그 것을 쟁취를 한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가지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하필 이 두 전직 대통령들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 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합니다. 어느 사회도 그 사회인들의 수준을 넘는 지도자를 가질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들의 모습을 대표하는 것 뿐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가치관, 우리 들의 심보를 대표 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돈과 재물과 그것들이 주는 사치호화로움에 대한 욕심은 이 사회의 고위층에게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이 땅의 민중들도, 배운것 없고 가진것 없는 서민들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 충격적인 사건 을 신문에서 읽고 모두 전율하였습니다. 돈 때문에 부모와 형제와 조 카들등 이가족 5명을 쇠망치로 살해하고 정원에 암매장한 끔직한 범행 을 범한 젊은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8/25한겨레). 경찰조사에 의하면 이러한 반인륜적인 끔직한 범행을 저지런 아들의 범행동기는 재산문제 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의 어느 계층이나 일각에서만 있는 현상이 아 니고 사회가 온통 병들었다는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지조를 지키지 못하는 정치인들에 대하여는 우리는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전혀 놀라지 안을 만큼 우리의 감각이 무디어졌습니다. 권력을 위하여, 정치적 이해 관계를 위하여는 필요하다면 하루 아침에 야당이 여 당으로 되는 것은 약과이고, 자신의 정당과 공약이나 소신을 얼마든지 바꾸는일이 비일비재 하지만 그런 행위들에 대하여는 우리는 관대하게 보아넘길 만큼 되었기 때문이라 할수 있습니다. 신성한 학문을 추구하는 학자들 사회에도 별로 다를바가 없습니다. 지조를 지키지 못하는 이땅의 학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학자들이 돈 맛을 알고 권력과 부 귀의 영화를 탐할때 그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가 종교인들은 괜찮습니까 역시 지난 한 주간동안 신문보도에서 우리는 서울의 어느 현직목사에 대한 믿을수 없는 신문보도를 보았습니다. 그 목사는 교회종탑에다 무허가 비밀 '총포공장'을 차랴놓고 가스총을 제조하여 판매한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주의 일에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같이 서로 격려하고 협조하자"고 설교하여 교인들 의 노동으로 가스총을 8천여개를 제작하여 자신이 경영하는 한국호신 장비개발공사를 통해 판매하여 13억9천여만의 부당이득을 취득하였다 하여 당국에 구속되었습니다.(8/27한겨레) 교인들에게 노임도 주지 않 았음은 물론 입니다. 온갖 법을 어기고 불법으로 총포생산, 영업을 해 온 목사의 이야기는 결코 예외적이라거나 돌출적인 일로 보아 넘길 수 없습니다. 전에도 어떤 목사가 교회의 건축등과 관련하여 총으로 사람 을 쏜 불상사로 물의를 일으킨 바가 있음을 우리가 기억하지 않습니 까 이번 총포제작, 판매해온 이 목사의 사건은 한국교회가 얼마나 병 들었는가 하는 것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는 이러니다른 직업의 사람들에게서야 무엇을 기대할수 있겠습니까 이런 행위들을 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파우스트 박사와 같이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파는 행위가 아닙니가 오늘 자본주의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사실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재물을 위하여, 온갖 좋은 것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영혼을 파는것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지 않 습니까 미국에 이민가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모습에서 제가 느낀바 가 많았습니다.
이민 초기에 많은 한국 사람들이 70년대에 미국에 이 민을 갔습니다. 한국에서 일자리도 별로 얻지 못하고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을 경험한 한국인들이 미국에 가보니가 일하는 대로 돈을 벌수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입니까 일하는대로 노다지를 벌수 있는 사회를 만났으니 몸이 상하는지, 건강을 헤치는 것인지 개의치 않고 몸을 혹사하여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두 가지 직장을 가지고 일하면서 돈을 모으고, 어떤 이는 아파트에 살면 매월 월세를 내야 하니가 아예 자동차에서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돈을 악착같이 벌어서 집도사고 좋은 자동차도 사고 또 더좋은 큰집과 자동차를 사는것입니다. 이렇게 오로지 돈만 벌기 위해 사는것처럼 보이는 한국이민들을 볼때 정말 부정이나 불법을 행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러한 모양으로 생을 살아 가는데에 문제가 있 지 않습니까 그렇게 죽자 사자 재산을 모은 사람이 그렇게 하다가 건 강을 잃고 목숨을 잃으면, 예수님의 어리석은 부자농부의 관한 비유 끝에 말씀하신데로, 오늘밤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불러 가시면, 그 재 물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는 질문을 연상하지 않을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대인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은 도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사람이 온 세계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 하겠느 냐 사람이 무었을 주고 자기 목숨을 바꾸겠느냐" 여기서 목숨이라는 말은 우리성서에서 "영혼"이라고 번역 되기도 했 습니다. 희랍어 원어로 프시케(Psukee)란 말인데 이 말은 육체적 생명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도 포함되는 말로서 인간의 존재 전체 를 의미합니다. 음식보다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마태 6장에서)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을때, 또 오늘 본문에서 "자기 목숨을 구원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잃는 사람은 구원할 것이다"(막 8:35)라 고 한 말에서 목숨이라는 말로 이 말을 썼습니다. 오늘 우리는 편의상 목숨이라고 말하기로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말씀 이외에 또 다른 예수님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특히 세가지 말씀이 우리에게 어렵게 여겨집니다.
첫째 말씀은 누구든 지 예수를 따라 가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 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말씀은 누구든지 예수를 따려려는 사람은 예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일도 불사하여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셌째 말씀은 누구든지 예수를 따르려는 사람은 이 세대에서 예수와 그의 말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의 요구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드리고 실천 할수 있느냐는 의문과 함께 무거운 마음이 앞서는 것을 부인 할수 없 을것 입니다. 그룝구는 무었입니까 예수님의 이러한 파우스트 와 계약을 체결했던 악마의 요구와 어떻게 다릅니까 사람의 목숨이 천하 보다도 귀중하다고 하시는 말씀과 정면으로 모순이 되는 듯한 말씀이 아닙니까 누구든지 예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랴 한다는 것, 또 누구든지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 면 잃을 것이고, 잃는 사람은 구원할 것이다 라고 하여 목숨을 버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은 천하 보다 더 귀한 목숨이란 예수님의 말씀과 상충되는 말씀으로 생각 할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 사실은 파우스트 박사의 이야기와 정 반대 입니다. 24년이란 짧은 기간동안의 이 지구 상에서의 인간의 부귀영화를 위하여 자신의 영혼 을 팔아 넘기는 것도 불사하려는 인간들에게,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의 24년간의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그 대신 진정한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택하라고 하시는것 입니다. 파우스트를 꽤었던 악마는 우리 에게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쾌락을 일시적으로 누릴수 있도록 해주는 댓가로 우리의 영혼을 양도하라는 요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요구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하여 일시 적인 세상의 부귀영화와 쾌락을 포기하라는 말씀으로 볼수 있지 않습 니까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 명을얻고 누리게 하기 위하여 천하보다 더 귀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 신다는 것이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역시 같은 길을 선택 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렇게 필요하면 자신을 부인하고 목숨을 버릴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24년간의 쾌락을 위하여 모든것을 팔아 넘길 것이냐, 아니면 그 반대를 위하여 24년간의 쾌락, 부귀영화, 성공출세를 버릴수 있는가 라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목숨을 팔아 넘 기겠다는 인간에게 진정한 생, 풍성한 생, 영원한 생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다는것 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본문 에서 하신 두가지 말씀, 누구든지 나를 따려려는 사람은 자신을 부인 하고 나를 따라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나보다 더 중히 여기면 내게 합당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씀은 결코 생명의 가치를 부인하신 것 이거나 평가절하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죽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일시적 부귀영화나 쾌락을 약속하시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은 우리 영혼을 병들게하고 영원한 파멸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약속은 오히려 생명이고 더욱 충만한 생, 풍성한 생, 그리고 영원한 생 입니다. "기독교의 궁극적인 이상(ideal)은 생 명, 더욱 충만한 생명, 즉 영생을(life, ever fuller life-eternal) 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은 우리 자신을 실현하고 우리 자신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일시적으로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것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파우스트를 꾀었던 악마의 제안과는 반대인것을 우리는 주목하여 야 합니다. 악마는 이 세상에서의 일시적인 부귀영화나 쾌락을 누리기 위하여 영혼을 양도하고 포기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반하여 예수님 은 영혼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이 세상의 덧없는 부귀 영화나 쾌락을 일시적으로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실은 우리에게 생명을 그냥 내버리고 포기하라는것이 아 닙니다. 그가 우리의 생명을 앗아가고 뺏어가기 위한 말씀을 하신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생, 풍요한 생, 영원 한 생을 얻는 길에 대해서 예수님은 제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초개같이 버리신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한 생을 얻을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힘입어서, 영원한 생을 얻 을수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나는 하늘 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이떡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것이다. 내 가 줄 떡은 곧 나의 살이다"(요한 복음 6:51)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몸을 주시는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생명, 풍 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는 "나는 길 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리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 한 11:26)라고 선언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입을 통하여 고백이 되었습니다만,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말씀을 가지고 계시는"(요한 6:68) 분으로서 우리에게 생명을 약속 하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목마른 사람은 다 네게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이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받게 될 성령님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7:39). 예수님이 유월절의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씀 하셨다"고 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요 6:37)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한 것이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요한 3:15)-누구든 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한 것이다"고 하였고 하나님이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 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복음중의 복음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톼아여 생명을 대수롭지 않은 것이거 나, 부정적으로 말씀하신것 아닙니다. 생명 보다 더 가치잇는 것, 더 치나 목적이 있을 수 없다는 것, 이 세상에는 목숨 과 바꿀수 있는 것이란 없다는 것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 듭 거듭 생명을 긍정하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생명을 부정하는 종교는 있을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목숨을 주기 위하여 필요하면 우리 자신의 목숨을 잃을 용의가 있습니까 사실 이런 목적을 위해 목 숨을 잃는다는 것은 정말 잃는것이 아니고 영원한 목숨을 얻는 길이라 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그의 약속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고 그 말씀에 따라서 그렇게 살 용의가 있습니까 자신 을 부인하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었을 의미합니까 자신의 긍지, 주 장, 의지를 버리는 것,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형적이고 물질적이 재산 은 물론, 명예, 사회적 지위, 소원, 꿈, 이기심과 보이지 않고 물질적 이 아닌것까지, 심지어는 자기의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자신의 생명 등을 포함 한다고 할수 있을것 입니다. 우리는 이런것들 중에서 더러는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을 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라고 한다고 하더라 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우리자신의 생명 까지를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내놓아야 한다고 할때 우리는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반응합니 까 그렇게 결단 할수 있습니까 우리가 만일 파우스트 박사 같은 선 택을 앞에 두고 선택하라고 할때 우리는 정말 바른 선택을 할수 있을 까요 파우스트와 다른 선택을 할수 있을까요 그 반대가 얼마나 많습 니까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 볼때 이러한 선택을 한 적은 없었습니까 우리는 24년간의 쾌락과 영화를 포기하라는 요구에 대하여, 그렇게 했다고 할수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했던 경우에도 생각 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인색하게 했느냐,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에게 선심쓰는것 같은 태도로, 또는 불평으로 했느냐는 것을 반 성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역설적으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목숨을 살리려 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죽이고 파멸시키는 것임 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진정으로 살게 하는 것이 아 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파우스트의 악마의 권유를 받아드릴 것입니까 예수님의 권유를 받 아드릴 것입니까 여러분 영혼을 팔아서 천하를 살려고 합니까 아니 면 그 반대로 온 천하를 팔아서 영혼을 살려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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