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것도 아름다워라 (막4:30-32)
본문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하고 경외심, 혹은 존경심을 갖습니다. 열거하면 큰집, 큰 차, 대기업, 대국, 거인, 큰 인물, 큰 땅, 큰 교회, 슈퍼마켙, 큰 냉장고, 큰 텔레비젼, 큰 방, 큰 나무, 큰 새, 큰 물고기, 등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땅을 많이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돈을 많이 갖고 싶어 합니다. 세간도 많이 갖고 싶어 합니다. 옷도 많이 갖고 싶어 합니다. 양식도 많이 쌓아 놓고 살고 싶어 합니다. 큰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작은것도 아름답습니다. 몇 년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표어가 세계를 뒤덮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무렵에 이어령교수가 “축소지향적인 일본인”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적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일본 사람들은 작은 것을 잘 만들어 내는 민족이라 작은 것에 관심을 두고 성실하였을때는 번영하였지만 큰 것에 욕심을 낼때는 망했다는 것입니다. 공룡은 입의 길이가 180㎝입니다. 이빨 하나가 15㎝입니다. 몸무게가 80t이나 됩니다. 지금까지 지구에 있었던 동물중에 가장 큰 동물입니다. 그 화석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물은 지금 멸종되어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천국을 비유하시는 중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4:30)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막4: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막4: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그렇습니다. 작은것도 아름답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심방을 받은후 새사람이 되었고 가난한자에게 자기 재산 절반을 내어 놓고 구제 하였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아가서를 쓴 솔로몬은 소녀를 보고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아8:8)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작은 것이 어째서 아름답다는 것일까요 작은 것은 언제 아름다워지는 것일까요 생각해보면서 큰 교훈을 받기를 원합니다.
1. 심기워질 때 작은것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겨자씨 같으니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씨중에 가장 작은 씨입니다. 파씨보다도 담배씨보다도 더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심기워져서 썩어서 싹이 나고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새가 깃들일 때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작은 것은 작은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작지만 쓰임받도록 심기워졌을 때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은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지자 사무엘의 말을 순종하였을때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고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하였을때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마지막에는 귀신이 들리고 점쟁이를 찾아가고 길보아 전투에서 비참하게 패전하여 그의 아들 요나단도 전사하고, 사울은 활복 자살하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을 찾아가서 하나님이 사울을 떠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삼상15:17)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크게 여기는 교만한 사람 사울을 버리고 자신을 작게 여기는 겸손한 사람 다윗을 들어 위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 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의 나이 17세때 블레셋 군대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습니다. 특히 불레셋 장수 가드 사람 골리앗은 키가 2m70㎝나 되는 거인이었습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왕과 백성들을 경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골리앗을 맛대결 할만한 장수가 없었습니다. 골리앗은 세계적인 장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이때 이새의 심부름으로 형님들에게 먹을 것을 전달하기 위하여 전쟁터에 나온 다윗은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감을 파악하고 급기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의 무례함에 의분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 사울에게 가서 자신이 골리앗을 상대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도 물리쳤다고 말하면서 골리앗을 때려 눕히겠다고 용기 있게 말하였습니다. 한편 맞은편에서 이스라엘 장수의 출전을 기다리고 있던 골리앗은 의외로 작은 소년이 나아 오는 것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을 향하여 말하기를 “(삼상17:44)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다윗은 유명한 신앙고백을 하면서 세기적인 맞대결을 하였습니다.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시냇가에서 작고 매끄러운 돌 5개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를 물매에 달아 골리앗을 향하여 강속구를 던졌습니다. 그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아 골리앗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다윗은 신속히 달려가서 골리앗의 칼을 빼서 골리앗의 목을 베었습니다. 작은 돌 하나에 한 민족의 승리와 다른 한 민족의 패배가 결정지어졌습니다. 누구도 돌 하나가 그런 위대한 역사를 일으킬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이와같이 작은것이라도 잘 이용되면 크게 쓰임 받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벳새다 뜰에서 오병이어로 장정 남자만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그 큰 기적도 작은 아이가 예수님께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바쳤을 때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후 그 많은 무리를 다 먹이시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소년의 적은 희생이 없었더라면 그 큰 기적과 기쁨은 없었을 것입니다. 폭풍우가 요란스럽게 지나간 후에 산에 올라가 보면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큰 나무와 고목들이 많이 쓰러져 있는 반면 작은 나무들은 풋풋하고 강하게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작게 여기며 겸손할 때 크게 들어 쓰십니다. 작은것도 하나님을 위하여 심기워질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2. 작은것도 자랄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본문 “(막4: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작은 씨가 자라면 키가 3-4㎝, 심지어 7㎝까지 자라는 경우도 있고 그보다 더 자랄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 줄기가 팔뚝 만큼 자라므로 가히 ‘나무라 봄직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시초에는 매우 미미하지만 나중에는 폭발적으로 확장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이 작은 것으로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자랄 때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작은 것이 자랄 때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함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시초성은 작아도 결과는 성장된 모습이 될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현재성은 미약하여도 마지막 웃음이 아름다운 것이 보람입니다. 바울의 본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에게 묻다, 의문으로 여기다, 문제시하다. 탐구하다. 연구하다. 묻다, 질문하다. 조사하다, 차용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한 “희망”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한 “떨어지다, 내리다, 넘어지다, 쓰러지다, 딩굴다, 엎드러지다, 병으로 쓰러지다, 실패하다, 항복시키다.”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자기 스스로를 작은 자로 여겼습니다. “(엡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때는 “(고전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고전15: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라고 스스로를 작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바울을 하나님은 당시 제일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행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가 바울을 통하여 나타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작은자라고 여겼던 겸손한 바울을 통하여 세계 선교의 틀을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3. 작은것도 유익될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본문 “(막4: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공중의 새란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가리키기보다 오히려 자라난 겨자나무의 크기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줄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존재들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또 어떤이는 ‘공중의 새’는 하나님 나라에 참예하는 이방인들로 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겨자씨는 교회를 의미하고 새들은 안식처를 찾는 영혼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겨자씨가 겨자씨일때는 새들의 먹이도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새들 눈에 조차 보이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심겨져서 나무가 되어 새들이 둥지를 만들어 쉬는 안식처가 될 때 겨자씨는 아름답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깃들인다’라는 말은 단순히 비나 바람을 피해 잠깐 쉬어 간다는 의미이기보다 거주지로 정하고 장막을 새우듯이 보금자리를 마련한다는 의미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 도처에 있는 수많은 영혼들이 평안히 그리고 영원히 깃들일수 있는 보금자리인 것입니다. 어떻튼 교회는 자라나야 합니다. 겨자씨만한 교회들이 수많은 영혼들이 와서 안식을 얻는곳이 되도록 양적으로도 자라나야 합니다. 지금은 몇만명 모이는 충현장로교회나 세계적인 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도 처음 개척할때는 몇가정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세계적인 제일의 교회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쉼을 얻고 구원을 받는 민족적인 교회, 세계적인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작게 시작한 사업이 장차 창대하게 자라나게 될줄 믿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영혼들이 그 사업으로 인하여 안식과 축복을 누려야 될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꿈도 겨자씨처럼 성장되어야 될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그 꿈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적인 기도와 노력을 해야 될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꿈과 목표는 반드시 주 안에서 때가 되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3년 6개월의 가뭄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갈멜산에 올라가 기도하였습니다. 성령님은 엘리야의 귀에 비의 소리를 들려 주었습니다. 사환에게 구름이 떠 오르는가 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구름은 한 조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일곱 번째 올라갔을 때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3년 6개월만에 보는 아름다운 작은 구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구름은 삽시간에 큰 구름이 되어 이스라엘 전역을 뒤덮었습니다. 이제 큰 구름이 되어 이스라엘 전역에 장대같은 단비를 시원하게 뿌려 주었습니다. 작은 것이 자라나 유익이 될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겨자씨가 심기워져 자라나 새들이 깃들일 때 그 때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스코틀렌드에 한 성실한 목사가 꾸준히 목회를 하는데 어느 해에는 한 명을 구원하였을 뿐이었습니다. 한 집사가 오더니 “목사님! 금년도 목사님의 목회는 실패하였습니다. 겨우 한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것도 작은 소년 한명이었습니다.”라고 모욕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때 목사님도 그 집사의 말에 그렇다고 긍정하며 실망속에 지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무능을 붙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 소년은 아프리카를 복음화 시키는 유명한 선교사가 되었으니 그가 바로 로버트 모펫 선교사입니다. 열왕기하에 보면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이었던 나아만이 어느날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문둥병을 고칠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에게는 지난번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로 잡혀온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식모로 두고 있었습니다. 이 작은 계집아이 하나가 말하기를 “(왕하5:3)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라고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를 찾게 되었고 고침받게 되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작은 계집아이가 전한 복음을 듣고 엘리사를 만나고 처음에는 엘리사의 행동에 불쾌했지만 그 말씀에 순종한 결과 난치병 문둥병이 깨끗하게 치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작게 여기는 것도 유익되게 쓰임받게 될 때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장소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에는 정말 작은촌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 떨어진 석회석이 많은 고원지대로 누구하나 거들떠 보지 않는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을을 향하여 예언이 계속되었습니다.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라고 예언되었습니다. 지금부터 2000년전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후 베들레헴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동네에서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유익을 주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을입니까 교회를 위한 작은 기도, 교회를 위한 작은 봉사와 헌신,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전도가 교회를 크게 성장 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끼리의 작은 사랑과 교제, 성도들의 작은 구제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웨슬레는 말하기를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돕는 동안에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4. 작게 시작한 천국 복음은 양적 질적으로 성장되고 확장된다는 사실입니다. 작은 겨자씨는 큰 나무로 자라듯 복음의 역사는 한 사람, 한 가정, 한 나라와 민족에 들어간후 온 세계를 복음화 시키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이면서 명령입니다. 복음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역사하고 변화시킵니다. 주님께서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입술에 입술로 전파되어지는 복음은 문화를 뛰어넘고 사회장벽을 뛰어넘고 모든 종족을 뛰어넘어 북한까지도 넘게 될것입니다. 모든 종교를 뛰어넘습니다. 복음은 언어와 지식과 과학과 이성과 사상과 예술을 뛰어넘어 전파되고 퍼져나갈 것입니다. 외치십시오.
5. 작은씨라도 생명을 내포하고 있기에 소중하고 아릅답습니다. 작은 겨자씨는 천국 복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작은 겨자씨라도 생명력이 있기에 아름답고 귀한것처럼 천국복음은 생명력이 있기에 매우 아름답습니다.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3:36) 아들을 믿는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겨자씨라도 생명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듯이 예수를 믿는 사람속에 영생의 씨앗이 있고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귀하고 아름다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의 작은 믿음, 작은 헌신, 작은 봉사, 작은 물질, 작은 육체, 작은 교회가 사명을 잘 감당하고,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작은것이라도 경시하지 말고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하도록 드려질 때 주님께서는 그것을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주님께 쓰임받는 귀한 도구가 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을 소유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심령에 심어 아름다운 나무와 가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심기워질 때 작은것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겨자씨 같으니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씨중에 가장 작은 씨입니다. 파씨보다도 담배씨보다도 더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심기워져서 썩어서 싹이 나고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새가 깃들일 때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작은 것은 작은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작지만 쓰임받도록 심기워졌을 때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은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지자 사무엘의 말을 순종하였을때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고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하였을때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마지막에는 귀신이 들리고 점쟁이를 찾아가고 길보아 전투에서 비참하게 패전하여 그의 아들 요나단도 전사하고, 사울은 활복 자살하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을 찾아가서 하나님이 사울을 떠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삼상15:17)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크게 여기는 교만한 사람 사울을 버리고 자신을 작게 여기는 겸손한 사람 다윗을 들어 위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 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의 나이 17세때 블레셋 군대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습니다. 특히 불레셋 장수 가드 사람 골리앗은 키가 2m70㎝나 되는 거인이었습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왕과 백성들을 경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골리앗을 맛대결 할만한 장수가 없었습니다. 골리앗은 세계적인 장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이때 이새의 심부름으로 형님들에게 먹을 것을 전달하기 위하여 전쟁터에 나온 다윗은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감을 파악하고 급기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의 무례함에 의분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 사울에게 가서 자신이 골리앗을 상대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도 물리쳤다고 말하면서 골리앗을 때려 눕히겠다고 용기 있게 말하였습니다. 한편 맞은편에서 이스라엘 장수의 출전을 기다리고 있던 골리앗은 의외로 작은 소년이 나아 오는 것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을 향하여 말하기를 “(삼상17:44)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다윗은 유명한 신앙고백을 하면서 세기적인 맞대결을 하였습니다.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시냇가에서 작고 매끄러운 돌 5개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를 물매에 달아 골리앗을 향하여 강속구를 던졌습니다. 그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아 골리앗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다윗은 신속히 달려가서 골리앗의 칼을 빼서 골리앗의 목을 베었습니다. 작은 돌 하나에 한 민족의 승리와 다른 한 민족의 패배가 결정지어졌습니다. 누구도 돌 하나가 그런 위대한 역사를 일으킬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이와같이 작은것이라도 잘 이용되면 크게 쓰임 받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벳새다 뜰에서 오병이어로 장정 남자만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그 큰 기적도 작은 아이가 예수님께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바쳤을 때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후 그 많은 무리를 다 먹이시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소년의 적은 희생이 없었더라면 그 큰 기적과 기쁨은 없었을 것입니다. 폭풍우가 요란스럽게 지나간 후에 산에 올라가 보면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큰 나무와 고목들이 많이 쓰러져 있는 반면 작은 나무들은 풋풋하고 강하게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작게 여기며 겸손할 때 크게 들어 쓰십니다. 작은것도 하나님을 위하여 심기워질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2. 작은것도 자랄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본문 “(막4: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작은 씨가 자라면 키가 3-4㎝, 심지어 7㎝까지 자라는 경우도 있고 그보다 더 자랄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 줄기가 팔뚝 만큼 자라므로 가히 ‘나무라 봄직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시초에는 매우 미미하지만 나중에는 폭발적으로 확장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이 작은 것으로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자랄 때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작은 것이 자랄 때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함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시초성은 작아도 결과는 성장된 모습이 될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현재성은 미약하여도 마지막 웃음이 아름다운 것이 보람입니다. 바울의 본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에게 묻다, 의문으로 여기다, 문제시하다. 탐구하다. 연구하다. 묻다, 질문하다. 조사하다, 차용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한 “희망”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한 “떨어지다, 내리다, 넘어지다, 쓰러지다, 딩굴다, 엎드러지다, 병으로 쓰러지다, 실패하다, 항복시키다.”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자기 스스로를 작은 자로 여겼습니다. “(엡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때는 “(고전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고전15: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라고 스스로를 작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바울을 하나님은 당시 제일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행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가 바울을 통하여 나타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작은자라고 여겼던 겸손한 바울을 통하여 세계 선교의 틀을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3. 작은것도 유익될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본문 “(막4: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공중의 새란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가리키기보다 오히려 자라난 겨자나무의 크기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줄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존재들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또 어떤이는 ‘공중의 새’는 하나님 나라에 참예하는 이방인들로 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겨자씨는 교회를 의미하고 새들은 안식처를 찾는 영혼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겨자씨가 겨자씨일때는 새들의 먹이도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새들 눈에 조차 보이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심겨져서 나무가 되어 새들이 둥지를 만들어 쉬는 안식처가 될 때 겨자씨는 아름답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깃들인다’라는 말은 단순히 비나 바람을 피해 잠깐 쉬어 간다는 의미이기보다 거주지로 정하고 장막을 새우듯이 보금자리를 마련한다는 의미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 도처에 있는 수많은 영혼들이 평안히 그리고 영원히 깃들일수 있는 보금자리인 것입니다. 어떻튼 교회는 자라나야 합니다. 겨자씨만한 교회들이 수많은 영혼들이 와서 안식을 얻는곳이 되도록 양적으로도 자라나야 합니다. 지금은 몇만명 모이는 충현장로교회나 세계적인 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도 처음 개척할때는 몇가정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세계적인 제일의 교회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쉼을 얻고 구원을 받는 민족적인 교회, 세계적인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작게 시작한 사업이 장차 창대하게 자라나게 될줄 믿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영혼들이 그 사업으로 인하여 안식과 축복을 누려야 될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꿈도 겨자씨처럼 성장되어야 될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그 꿈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적인 기도와 노력을 해야 될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꿈과 목표는 반드시 주 안에서 때가 되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3년 6개월의 가뭄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갈멜산에 올라가 기도하였습니다. 성령님은 엘리야의 귀에 비의 소리를 들려 주었습니다. 사환에게 구름이 떠 오르는가 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구름은 한 조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일곱 번째 올라갔을 때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3년 6개월만에 보는 아름다운 작은 구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구름은 삽시간에 큰 구름이 되어 이스라엘 전역을 뒤덮었습니다. 이제 큰 구름이 되어 이스라엘 전역에 장대같은 단비를 시원하게 뿌려 주었습니다. 작은 것이 자라나 유익이 될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겨자씨가 심기워져 자라나 새들이 깃들일 때 그 때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스코틀렌드에 한 성실한 목사가 꾸준히 목회를 하는데 어느 해에는 한 명을 구원하였을 뿐이었습니다. 한 집사가 오더니 “목사님! 금년도 목사님의 목회는 실패하였습니다. 겨우 한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것도 작은 소년 한명이었습니다.”라고 모욕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때 목사님도 그 집사의 말에 그렇다고 긍정하며 실망속에 지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무능을 붙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 소년은 아프리카를 복음화 시키는 유명한 선교사가 되었으니 그가 바로 로버트 모펫 선교사입니다. 열왕기하에 보면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이었던 나아만이 어느날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문둥병을 고칠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에게는 지난번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로 잡혀온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식모로 두고 있었습니다. 이 작은 계집아이 하나가 말하기를 “(왕하5:3)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라고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를 찾게 되었고 고침받게 되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작은 계집아이가 전한 복음을 듣고 엘리사를 만나고 처음에는 엘리사의 행동에 불쾌했지만 그 말씀에 순종한 결과 난치병 문둥병이 깨끗하게 치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작게 여기는 것도 유익되게 쓰임받게 될 때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장소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에는 정말 작은촌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 떨어진 석회석이 많은 고원지대로 누구하나 거들떠 보지 않는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을을 향하여 예언이 계속되었습니다.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라고 예언되었습니다. 지금부터 2000년전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후 베들레헴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동네에서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유익을 주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을입니까 교회를 위한 작은 기도, 교회를 위한 작은 봉사와 헌신,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전도가 교회를 크게 성장 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끼리의 작은 사랑과 교제, 성도들의 작은 구제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웨슬레는 말하기를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돕는 동안에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4. 작게 시작한 천국 복음은 양적 질적으로 성장되고 확장된다는 사실입니다. 작은 겨자씨는 큰 나무로 자라듯 복음의 역사는 한 사람, 한 가정, 한 나라와 민족에 들어간후 온 세계를 복음화 시키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이면서 명령입니다. 복음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역사하고 변화시킵니다. 주님께서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입술에 입술로 전파되어지는 복음은 문화를 뛰어넘고 사회장벽을 뛰어넘고 모든 종족을 뛰어넘어 북한까지도 넘게 될것입니다. 모든 종교를 뛰어넘습니다. 복음은 언어와 지식과 과학과 이성과 사상과 예술을 뛰어넘어 전파되고 퍼져나갈 것입니다. 외치십시오.
5. 작은씨라도 생명을 내포하고 있기에 소중하고 아릅답습니다. 작은 겨자씨는 천국 복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작은 겨자씨라도 생명력이 있기에 아름답고 귀한것처럼 천국복음은 생명력이 있기에 매우 아름답습니다.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3:36) 아들을 믿는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겨자씨라도 생명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듯이 예수를 믿는 사람속에 영생의 씨앗이 있고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귀하고 아름다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의 작은 믿음, 작은 헌신, 작은 봉사, 작은 물질, 작은 육체, 작은 교회가 사명을 잘 감당하고,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작은것이라도 경시하지 말고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하도록 드려질 때 주님께서는 그것을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주님께 쓰임받는 귀한 도구가 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을 소유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심령에 심어 아름다운 나무와 가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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