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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이하의 사람들 (막4:33-41)

본문

'성장할 것이냐 퇴보할 것이냐'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성장허가 나 아니면 쇠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문명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찬가 지로 우리의 신앙도"성장 아니면 퇴보"둘 중의 하나입니다. 모태적 신앙을 갖고 있지만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신앙은 아무리 오랜 신앙의 가문과 연륜 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신앙은 퇴보하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들은 밥을 먹지 않으면 7일을 살 수 있고, 사람은 12일,개는 20일, 거북 이는 500일, 뱀은 800일, 벌레는
1,200일을 살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 국 사람들은 "자네의 신앙은 거북이 신앙이야"라는 농담을 종종합니다. 거 북이가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것처럼 영적인 양식을 오 래동안 공급받지 못하면서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의 확신이 없습니다. 로버트 부리우닝은 '인간은 성장할 수 있도록 지음을 받았지 퇴보하도록 지음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성장하며 살아야지 퇴보하 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성장 속에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성장해야 합니다. 사도베드로는 "오직 주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랄찌라"고 말씀하고있습니다.
고린도전서13장 11절에서는 "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아 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 의 일을 버렸노라"고 말합니다. 신앙뿐만 아니라 인격도 성장해야 합니다. 신앙과 인격이 성장해야 유치한 삶의 단계를 빨리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신앙이 성장해야 열매를 맺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시던 초창기에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 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예수께서 아침부터 저녁가지 바닷가 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캄캄한 밤이 되기 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다를 건너가자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던 중 큰 풍랑을 만났는데 제자들은 "선생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면서 원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무시다가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향해 "잔잔하라 고요하라"고 꾸짖으시면서 제자들을 보시고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본문 40절의 "너희에게 어찌 믿음이 없느냐"는 이 말씀은 우리의 삶에 중 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마가복음 4장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과 누가복음에도 나옵니다. 마태복음 8장 26절에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로 기록되었고, 누가복음 8장 25절에는 "너희 믿음이 어디에 이느냐"라고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십니다. 사실상 표현만 다를 뿐이지 그 문맥이 나타내는 중심 내용은 동일하기 때문에 마가복음을 통해서 살펴 보기로 하 겠습니다. 신학자들은 이 말씀을 강한 어조의 혹독한 책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시내사본이나 베자사본이나 바티칸 사본 같은 다른 성경의 사본을 보게 되 면 "후토"라는 헬라말을 "너희에게 어찌 믿음이 없느냐'는 문맥 속에 집어 넣고 있습니다. 이 '후토'라는 말은 '아직까지도'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라는 주님의 말씀은 "너희가 어찌하여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이렇게 주께서 책망하시고 힐난하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우리에게 적용시켜보면 그동안 많은 교육을 받고, 많은 체험을 했는데도 아직까지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링디음 이 양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문제를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생활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의 믿음이며
둘째는 생활의 믿음 입니다.
구원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복음과 주님이 사역을 받아들여서 주님을 구주로 시인할 때 구원의 백성이 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강하거나 약 하거나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생활의 믿음은 구원받은 성도가 날마다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얼마나 강하게 의지하느냐에 해당하는 믿음입니다. 환난을 당할 때 자기 자신의 방식대로 반응하는 믿음은 구원의 믿음은 있 지만 생활의 믿음은 없는 것입니다. 본문의 예수께서 "너희가 어찌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는 말씀은 구원의 믿음이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 환란을 이기는 생활의 믿음이 없다는 책망인 것 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구주로 따르기 위해서 배와 집과 그물과 가정을 다 버리 고 예수를 따랐으며,"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 앙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큰 풍랑이 올 때에 그들은 그 풍 랑을 이기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안타까와 하셨습니다. 구원의 신앙 외에 환란과 고통과 병마 중에 죄악을 이기고, 모든 세상의 시련을 이기는 생활의 믿음이 적으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고 말했으며, 스펄죤 은 "작은 믿음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지만 큰 믿음은 천국을 우리의 영 혼 속에 인도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이적의 은혜를 체험 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들에게 성경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런 체험을 했는데도 시련의 풍랑을 견디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의지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에는 세가지의 속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지적인 요소이며,
둘째는 정적인 요소이며,
셋째는 의지적인 요서 입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지려면 지적인 요소와 정적인 요소만으로는 충분 하지 않습니다. 의지적인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어찌 아 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신 것은 지식적 믿음과 감정적인 믿음은 있는 데 환란에 부딪쳐 이겨나가는 의지적인 믿음이 없다고 책망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가지 바닷가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시중드 느라고 힘들고 피곤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다를 건너가 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에 순종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모시 고 갔습니다.그것은 자기의 인생의 배를 의미합니다. 이 제자들의 순종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리 가정과 사회와 우리가 활동 하는 모든 분야에 언제나 예수를 모시고 살아야 함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믿음이 적으냐고 책망을 하 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과 가정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지라 도 환란을 이기는 믿음과, 시련과 싸워 이기는 믿음이 약한 부분에 대해서 책망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구원받는 초보적인 믿음에서 더 깊이 들어가서 험악한 세상에 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생명력과 의지적인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환란과 시련이 때로는 엄청난 바위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별것이 아닙니다. 두려워 하지 마시고 담대히 환란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생활의 믿음으로 시험을 이깁시다. 생활 가운데 믿음이 없으면 두가지 시험이 찾아 옵니다.
첫째는 원망과 불평과 비난을 자주 하게 됩니다. 38절 말씀에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습니까"라는 말씀은 "날카로운 비난의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곤해 지쳐 있는 예수님을 향해서 날카로운 원망과 비난의 말을 한 것입니다.
둘째는 공포가 찾아 옵니다. 본문 40절 말씀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는 말씀과 41절에 "심히 두려워하여"라는 말씀을 통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에 모시고 가는 중이 었지만 큰 풍랑을 보고 심히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도 시련은 옵니다. 물질의 풍랑, 질병의 풍랑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믿음이 없으면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시편 112편 7절을 보면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 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마음을 하나님께 의지하여 굳게 정할 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풍랑은 예정된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시험과 환란은 다 올 것 이 오는 것입니다. 큰풍랑을 뛰어 넘는 믿음이 없는 이유는 예수를 바로 알 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알고 하나님이심을 믿게 될 때에는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라을 믿음의 대상으로 할 수 없습니다.마태복음 8장에서 "뉘기에 바다와 바람도 순종하는고"라는 말씀과 본문 38절의 제자들이 예수를 선생 으로 안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스도가 구주요 나의 하나님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만 믿음은 자라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의 신앙을 뛰어 넘어 생활의 신앙을 소유해서 어떤 환란 과 시련에도 쓰러지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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