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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극복하는 비결 (막4:35-41)

본문

위기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풍파가 다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시말해서 살아 있다는 자체는 문제의 연속입니다. 지금 우리는 경제위기(국제통화기금) 강풍에 전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예견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우리의 심장 깊숙이 불어닥칠 줄이야 미쳐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식이 결여된 니므롯 같은 무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억 짜리가 넘는 코트를 자연스럽게 사고 파는 자들이나, 국가가 부도 처리되는 외환위기를 맞이했는데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수백억되는 달러를 장롱속에 묻어 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사고뭉치입니다. 이제 정말 교회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에 등불을 밝히지 못하면 우리의 조국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이제 아침에 신분을 펴고 TV을 켜기가 두려워집니다. 이 위기를 무엇으로만이 극복할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기도할 때입니다. 시편 기자는 “환란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편 50:15)고 했습니다. 당신은 참된 평안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바울은 말하기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고 했습니다. 주님도 위기극복을 기도로서 감당했습니다. 구원사역을 시작할 때 광야에서 사십일 금식하면서 기도했고, 구원사역을 마치면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지혜가 아니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위기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갈릴리 바다는 게네사렛 호수 일명 디베랴 호수라고 부릅니다. 크기는 남북 길이가 20.8km이고, 동서의 길이가 12.8km로서 일반 해안보다 210km정도 낮으며, 가장 깊은 곳은 60m정도 됩니다. 이곳에 갑작스러운 돌풍이 불어서 풍랑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이 사건을 계시사적으로 기록한 것은 이것이 이천년 전에 한 번 일어난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속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임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갈릴리 바다는 오늘 우리가 처한 삶의 현장이며, 배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 일 수 있으며, 풍랑은 얘기치 못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읽을말씀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가더니”(35-36)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갑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원하십니다. 인생은 항해하는 자들입니다. 출항을 해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가 어디인가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우리는 이편인 땅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저편인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립보서 3:20)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출항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출항합시다. 본문에 갈릴리 바다를 출항하는 여러 배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삶의 수단으로 고기를 잡으려는 자들도 있고, 쾌락을 위하여 즐기는 자들도 있을 것이고, 여행을 위하여 출항하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배에 지금 누가 동승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마가는 그 많은 배들을 두가지 유형으로 구별해 놓았습니다. 주님을 모신 제자들의 배와 주님이 없는 세인들의 배입니다. 인생 최후에 우리를 심판하실 분도 이 두가지로 구분해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만이 당신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잔잔한 호수를 항해할 때는 선장의 지혜로 운행이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선장의 기술로도 감당할 수 없는 풍랑이 일어날 때입니다. 당신에게 사망이라는 폭풍이 몰아닥칠 때에 담대하게 대처할 수 있는 준비된 믿음이 있는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6),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 14:18)고 했습니다. 당신이 속한 공동체에 주님이 계십니까 그렇지 못하면 지금 이 순간이라도 주님을 모십시오, 그리고 출항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둘째: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워야 합니다. 읽을말씀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37-38)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갈릴리 동쪽 사막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과 지중해 연안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합쳐서 일어나는 돌풍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도 전혀 예기치 못한 강풍이 몰아칠 때도 있습니다. 개인의 심령속에 근심과 걱정과 염려를 주기도 합니다. 평온한 가정을 순식간에 파괴하기도 합니다. 사회를 혼란케 하고 민족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풍랑이 언제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무실 때입니다. 주님이 주무실 때 풍랑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왜 주님이 주무셨는가 피곤하셔서 그럴까 물론 주님이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피곤을 모르고 노를 저어서 가는데 주님이 피곤해서 주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마태복음 26:43). 그러면 왜 주무셨는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자만심과 교만입니다. 그들의 중심에 이러한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 육지에서는 몰라도 바다에서는 저들이 전문가입니다. 이제 주님은 참견하지 마시고, 고물에 가셔서 주무세요, 우리가 편히 모셔다 들이겠습니다 고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주님을 모시고 가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지각과 기술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돌풍이었습니다. 비로소 주님을 깨우게 된 것입니다. 풍랑이 사라지고난 다음에 야 그들이 주님을 모시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들을 인도해 가시는 사실을 깨닫았습니다. 이제 주님을 깨웁시다. 당신이 배운 것이나 가진 것 얼마로 스스로 교만하고 자만하실 때 주님은 배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사단의 역사는 이 때 우리의 공동체를 어지럽힙니다. 당신의 지각으로서는 사단권세를 정복할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주님만이 사단권세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셋째:예수님의 이름으로 풍랑을 꾸짖어야 합니다. 읽을말씀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39) 주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십니다. 바다와 바람은 무인격입니다. 자연질서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에게 인격적으로 책망합니다. 꾸짖으시고 잠잠하고 고요하게 하십니다. 왜 그렇게 책망하셨는가 그곳에 역사하는 악한 영들을 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배에 몰아닥친 풍랑을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보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거라사 귀신들린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마가복음 5:1-20). 당신에게 영적인 안목이 열리지 않으면 주님의 책망이 이상하게 들려질 것입니다. 바다는 아주 잔잔해 졌습니다. 여기서 당신이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가 이 순간에 바람이 일어날 시간이 아니었으며, 또한 일어난 바람이 그칠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왜 일으켰는가 제자들의 항해를 방해하기 위한 사단권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바람을 누가 잔잔케 하셨는가 주님이십니다. 이것은 주님이 창조주이심을 보여준 증거입니다. 주님은 당신에게 참된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에 주님을 선장으로 모시지 않고는 잔잔한 항해를 할 수 없습니다. 죄악의 세상을 정복할 자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안에서 편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고 했습니다.
넷째: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읽을말씀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40-41) 역사하는 믿음을 가집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고 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일서 5:4)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만이 역사를 일으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자입니다. 마가복음 4-5장에는 중요한 4가지 사건이 나옵니다. 자연정복의 사건입니다(4:35-41) 영계를 다스리는 사건입니다(5:1-20). 질병을 치유하는 사건입니다(5:21-43). 부활을 위한 생명 사건입니다(5:35-43). 하나님의 뜻은 창조질서 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질서는 하나님 뜻 앞에서 항상 굴복되게 되어 있습니다. 풍랑은 자연질서이나 멈추게 하신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당신에게 이러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로마서 12:3)고 합니다. 당신은 이제 믿음의 분량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이 참보배입니다. 반석같은 믿음이 있어야 환란의 바람을 이깁니다. 태산같은 믿음을 가져야 역사를 일으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기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당신의 배에 주님이 계십니까 혹시 주무시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사단권세를 멸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으면 오늘도 역사가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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