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강력하신 개입 (막4:35-41)
본문
오늘 본문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오늘 우리 삶의 현장 즉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외면하시고 무관심하시는 분이 아니라, 어려움 가운데 있는 당신 백성들의 삶의 현장 가운데 개입하시는 분이심을 강력하게 선포해 주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카오스(천지창조 이전의 혼돈)와 같이 혼돈과 혼란으로 뒤덮인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치관의 혼동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고 방황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그리고 회중들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 사방으로 공격받고 갈등과 아픔을 겪으며 문제 상황 가운데 놓여 있음을 감안할 때, 하나님의 임재와 개입을 확신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갈릴리 바다를 항해해 가는 제자들 하루의 사역을 마치고 황혼이 깃들 무렵,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제안하신다. 내일의 일정을 살펴볼 때, 이곳에서 유하여야 하고 내일의 사역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인데, 주님은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자고 재촉하신다 바쁜 선교 일정을 벗어나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인 갈릴리 바다를 한 번 노 저어 가는 것도 운치가 있을 것 같아 그들은 작은 배에 몸을 싣는다. 해지는 석양 무렵 노 저어 가는 제자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거기 주님이 계신다. 거기 주님을 위해 일생을 바친 아름다운 헌신자들이 있다. 그들은 절로 “참 아름다워라” 찬송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인생은 낭만이 있다. 멋을 찾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은 참으로 멋진 것이다. 제자들에게는 주님에게 거는 핑크빛 꿈도 있었다. 지금 모든 것을 포기해도 괜찮을 그런 장래가 있는 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갈릴리 바다에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발생하는 돌풍이 있는 곳이다. 잔잔한 갈릴리는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으나 돌풍이 일면 성난 바다,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폭군으로 변한다. 우리 인생은 갈릴리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주님은 오늘 그 갈릴리를 노 저어 가자고 제안하셨고, 제자들이 그 갈릴리를 경험하기를 원하셨다.
2. 풍랑 만나 헤메이는 제자들 한참을 노 저어 바다 한가운데에 나왔을 때, 제자들이 탄 배는 아주 거센 돌풍을 만나게 된다. 찬란한 일몰 시간에 오직 잔잔한 물결만이 수면을 요동시키는 배를 타고 제자들은 바다의 저편으로 건너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편, 구름이 눈에 뜨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필요한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미처 준비하기 전에 폭풍이 거세게 일고 배가 뒤집힐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낭만의 갈릴리가 고통과 두려움의 갈릴리가 되었다. 노련한 뱃사람들이었던 사람들도 제자들 가운데에는 몇 사람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일찍이 경험했던 돌풍과는 달리 이번에는 완전히 A급 태풍이었다. 어부 출신 제자들은 다 노에 매달리고 나머지 제자들도 파도쳐 들어온 바닷물을 정신없이 퍼내고 있지만 풍랑은 갈수록 거세진다. 베드로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린다. 야고보의 얼굴에도 절망의 빛이 스쳐 지나간다. 제자들은 후회하기 시작한다. 오늘밤에는 쉬자고 할 걸, 그곳에서 쉬고 내일 아침에 이동하자고 할 걸, 그들 중에 몇 사람은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잘 나서는 베들로가 왜 이번에는 내일 가자고 안 나섰지 그랬으면 이 고생을 안했을 텐데, 그리고 주님도 원망하기 시작한다. 예기치 않은 풍랑, 우리 가정을 위협하고 자녀와 건강과 사업을 위협하는 예기치 못한 풍랑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고, 통곡하게 만들며, 한숨으로 잠 못 이루게 만드는 풍랑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후회하며 땅을 치는 아픔들이 얼마나 우리 인생에는 많이 있는가 그 풍랑 이는 바다를 제자들은 일엽편주와 같은 작은 배에 몸을 싣고 허덕이고 있었다. 우리의 인생의 바다는 항상 조용하고 즐거운 나날로 점철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평안과 환난····, 때때로 돌연히 다가온 인생의 폭풍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찾지 아니한 때에 유혹이 오고, 재난이 닥쳐옵니다.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경고도 없이 재난이 닥쳐옵니다. 그토록 귀여워하던 아이를 잃게 되고, 평화롭던 가정이 파괴되고, 잘 다니던 직장을 잃게 되고, 믿었던 친구들이 떠나가고 거의 잘망 상태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3. 주님을 때우는 제자들 오랫 동안 풍랑과 싸우던 제자들은 한 가지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풍랑 만나 죽게 된 그들의 배에 주님이 함께 타고 계시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 심각한 절망감에 주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주님인들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주님이 함께 계심을 잊고 있었다. 풍랑 만나 제자들은 아우성치며 사력을 다해 노를 젓고 있는데 그 와중에서 주님이 계속해서 주무시고 계셨다는 것은 뭔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주님은 기다리고 계셨다.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어려움 앞에서, 혼자서는 넘지 못할 험산준령 앞에서 능력의 주님을 찾고 의지하고 신뢰하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기도하기를 기다리고,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믿음의 사람 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 그것은 또한 우리 삶의 이야기가 아닌가 뒤늦게라도 주님을 흔들어 깨우고, 내 능력 의지하기보다는 주님 의지하며, 주께 고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외칩니다. “주님, 도와 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 나중에 그들이 가졌던 한 가지 후회는 아마도 “우리가 왜 더 빨리 주님께 아뢰지 못했을까”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세상에 속한 것들에 대한 불안함, 즉 내난관 환난으로 인한 죽음의 위협이 닥쳐올 때, 인간적인 두려움으로 절망하거나 자기 포기를 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안인에게는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구원을 요청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간절한 기도가 있을 때에 불완전한 믿음의 외침일지라도 응답하시며, 우리의 불완전함을 완전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4. 풍랑을 잔잔케 하시며, 믿음을 요구하시는 예수님. 주님은 성난 바다를 바라보신다.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릴 듯 포악한 세력으로 다가오는 바다, 흑암에 덮여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차 있는 바다를 바라보시며 명하신다. “바다야 잔잔하라 고요하라!” 고 말씀하시자 즉시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께서는 세상 임금, 곧 사단을 이기셨습니다. 모든 인류 위에 왕노릇하던 사망의 권세도 폐하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 돌연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평안만이 인생의 바다를 순조로이 건너게 해 줍니다. “(딤후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 내신지라 ”하였습니다. “바다야 잔잔하라 고요하라.” 그 한마디 말씀으로 혼돈은 질서의 세계로 바뀐다. 흑암은 광명으로 바뀌고, 절망은 희망으로, 원망은 찬송으로, 불평은 감격으로, 바뀐다. 제자들이 서 있는 그곳에 주님은 임마누엘하셨고, 제자들의 생명을 앗아갈 듯한 고통 가운데 주님은 개입해 들어오셨다. 그리고 역사하셨다. 바꾸어 주셨다. 그리고 믿음 없음을 나무라셨다. 아니 험한 세상은 믿음으로만 살아 갈 수 없음을 가르쳐 주셨다. 기도와 주님과의 부단한 영적 교제를 통해서만 아름다운 갈릴리를 항해할 수 있고 신명나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계신다. 성도 여러분!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우리 인생의 항로는 예수님과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안한 때나 어려움이 있을 때나 우리 주님은 나와 같이 한 배를 타고 동행하십니다.
둘째로, 여러울 때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은 보았으나 오병이어로 오천 무리를 먹이시며 이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에 앞서서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 앞에 큰 파도만 보았지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에 부딪치면 예수님을 바라보기보다 어려운 문제만 생각하고 당황하므로 더욱 용기를 잃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단의 세력에 패배하게 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어려움을 알고 계십니다. 주무시는 것 같지만 다 알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파도와 싸우는 모습도 알고 계셨습니다. 다만 제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믿음을 키우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은 지금도 나의 고독한 싸움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나의 믿음을 키우시기 위해 홀로 싸우게 하시는 것이므로 우리는 용기를 내어 싸워야 합니다.
넷째로,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자연 현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은 강력하게 개입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분께 매달려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 갈릴리 바다를 항해해 가는 제자들 하루의 사역을 마치고 황혼이 깃들 무렵,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제안하신다. 내일의 일정을 살펴볼 때, 이곳에서 유하여야 하고 내일의 사역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인데, 주님은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자고 재촉하신다 바쁜 선교 일정을 벗어나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인 갈릴리 바다를 한 번 노 저어 가는 것도 운치가 있을 것 같아 그들은 작은 배에 몸을 싣는다. 해지는 석양 무렵 노 저어 가는 제자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거기 주님이 계신다. 거기 주님을 위해 일생을 바친 아름다운 헌신자들이 있다. 그들은 절로 “참 아름다워라” 찬송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인생은 낭만이 있다. 멋을 찾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은 참으로 멋진 것이다. 제자들에게는 주님에게 거는 핑크빛 꿈도 있었다. 지금 모든 것을 포기해도 괜찮을 그런 장래가 있는 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갈릴리 바다에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발생하는 돌풍이 있는 곳이다. 잔잔한 갈릴리는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으나 돌풍이 일면 성난 바다,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폭군으로 변한다. 우리 인생은 갈릴리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주님은 오늘 그 갈릴리를 노 저어 가자고 제안하셨고, 제자들이 그 갈릴리를 경험하기를 원하셨다.
2. 풍랑 만나 헤메이는 제자들 한참을 노 저어 바다 한가운데에 나왔을 때, 제자들이 탄 배는 아주 거센 돌풍을 만나게 된다. 찬란한 일몰 시간에 오직 잔잔한 물결만이 수면을 요동시키는 배를 타고 제자들은 바다의 저편으로 건너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편, 구름이 눈에 뜨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필요한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미처 준비하기 전에 폭풍이 거세게 일고 배가 뒤집힐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낭만의 갈릴리가 고통과 두려움의 갈릴리가 되었다. 노련한 뱃사람들이었던 사람들도 제자들 가운데에는 몇 사람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일찍이 경험했던 돌풍과는 달리 이번에는 완전히 A급 태풍이었다. 어부 출신 제자들은 다 노에 매달리고 나머지 제자들도 파도쳐 들어온 바닷물을 정신없이 퍼내고 있지만 풍랑은 갈수록 거세진다. 베드로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린다. 야고보의 얼굴에도 절망의 빛이 스쳐 지나간다. 제자들은 후회하기 시작한다. 오늘밤에는 쉬자고 할 걸, 그곳에서 쉬고 내일 아침에 이동하자고 할 걸, 그들 중에 몇 사람은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잘 나서는 베들로가 왜 이번에는 내일 가자고 안 나섰지 그랬으면 이 고생을 안했을 텐데, 그리고 주님도 원망하기 시작한다. 예기치 않은 풍랑, 우리 가정을 위협하고 자녀와 건강과 사업을 위협하는 예기치 못한 풍랑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고, 통곡하게 만들며, 한숨으로 잠 못 이루게 만드는 풍랑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후회하며 땅을 치는 아픔들이 얼마나 우리 인생에는 많이 있는가 그 풍랑 이는 바다를 제자들은 일엽편주와 같은 작은 배에 몸을 싣고 허덕이고 있었다. 우리의 인생의 바다는 항상 조용하고 즐거운 나날로 점철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평안과 환난····, 때때로 돌연히 다가온 인생의 폭풍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찾지 아니한 때에 유혹이 오고, 재난이 닥쳐옵니다.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경고도 없이 재난이 닥쳐옵니다. 그토록 귀여워하던 아이를 잃게 되고, 평화롭던 가정이 파괴되고, 잘 다니던 직장을 잃게 되고, 믿었던 친구들이 떠나가고 거의 잘망 상태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3. 주님을 때우는 제자들 오랫 동안 풍랑과 싸우던 제자들은 한 가지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풍랑 만나 죽게 된 그들의 배에 주님이 함께 타고 계시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 심각한 절망감에 주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주님인들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주님이 함께 계심을 잊고 있었다. 풍랑 만나 제자들은 아우성치며 사력을 다해 노를 젓고 있는데 그 와중에서 주님이 계속해서 주무시고 계셨다는 것은 뭔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주님은 기다리고 계셨다.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어려움 앞에서, 혼자서는 넘지 못할 험산준령 앞에서 능력의 주님을 찾고 의지하고 신뢰하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기도하기를 기다리고,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믿음의 사람 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 그것은 또한 우리 삶의 이야기가 아닌가 뒤늦게라도 주님을 흔들어 깨우고, 내 능력 의지하기보다는 주님 의지하며, 주께 고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외칩니다. “주님, 도와 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 나중에 그들이 가졌던 한 가지 후회는 아마도 “우리가 왜 더 빨리 주님께 아뢰지 못했을까”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세상에 속한 것들에 대한 불안함, 즉 내난관 환난으로 인한 죽음의 위협이 닥쳐올 때, 인간적인 두려움으로 절망하거나 자기 포기를 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안인에게는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구원을 요청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간절한 기도가 있을 때에 불완전한 믿음의 외침일지라도 응답하시며, 우리의 불완전함을 완전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4. 풍랑을 잔잔케 하시며, 믿음을 요구하시는 예수님. 주님은 성난 바다를 바라보신다.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릴 듯 포악한 세력으로 다가오는 바다, 흑암에 덮여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차 있는 바다를 바라보시며 명하신다. “바다야 잔잔하라 고요하라!” 고 말씀하시자 즉시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께서는 세상 임금, 곧 사단을 이기셨습니다. 모든 인류 위에 왕노릇하던 사망의 권세도 폐하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 돌연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평안만이 인생의 바다를 순조로이 건너게 해 줍니다. “(딤후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 내신지라 ”하였습니다. “바다야 잔잔하라 고요하라.” 그 한마디 말씀으로 혼돈은 질서의 세계로 바뀐다. 흑암은 광명으로 바뀌고, 절망은 희망으로, 원망은 찬송으로, 불평은 감격으로, 바뀐다. 제자들이 서 있는 그곳에 주님은 임마누엘하셨고, 제자들의 생명을 앗아갈 듯한 고통 가운데 주님은 개입해 들어오셨다. 그리고 역사하셨다. 바꾸어 주셨다. 그리고 믿음 없음을 나무라셨다. 아니 험한 세상은 믿음으로만 살아 갈 수 없음을 가르쳐 주셨다. 기도와 주님과의 부단한 영적 교제를 통해서만 아름다운 갈릴리를 항해할 수 있고 신명나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계신다. 성도 여러분!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우리 인생의 항로는 예수님과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안한 때나 어려움이 있을 때나 우리 주님은 나와 같이 한 배를 타고 동행하십니다.
둘째로, 여러울 때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은 보았으나 오병이어로 오천 무리를 먹이시며 이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에 앞서서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 앞에 큰 파도만 보았지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에 부딪치면 예수님을 바라보기보다 어려운 문제만 생각하고 당황하므로 더욱 용기를 잃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단의 세력에 패배하게 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어려움을 알고 계십니다. 주무시는 것 같지만 다 알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파도와 싸우는 모습도 알고 계셨습니다. 다만 제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믿음을 키우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은 지금도 나의 고독한 싸움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나의 믿음을 키우시기 위해 홀로 싸우게 하시는 것이므로 우리는 용기를 내어 싸워야 합니다.
넷째로,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자연 현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은 강력하게 개입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분께 매달려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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