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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막2:1-5)

본문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에 부딪히는데, 이 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진정 믿고 의뢰하면 응답받아 해결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라는 제목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와 치료받은 중풍병자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로운 사람과 믿음의 행함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의인과 악인에 대한 반응 시대의 의인으로서 참으로 아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슬퍼합니다. 반면에 악인이 죽게 되면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기는 커녕 '참 잘 되었다' 하면서 오히려 속시원하게 생각하는 경우들을 봅니다. 역사상 이러한 예로는 이순신 장군과 도요또미 히데요시를 들 수 있습니다. 조선선조 31년에 노량 앞바다에서는 조선 수군과 명나라 수군이 연합하여 왜군이 돌아갈 길을 막고 총공격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재침략해 올 가능성을 아예 없애 버리기 위함이었지요. 우리 수군이 적선 수백 척을 격침시키고 있을 즈음 명나라 제독 진린의 배가 적선에 에워싸여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이순신 장군의 배가 돌진하여 이를 구해 내는 순간 날아오는 적의 유탄이 이순신장군의 가슴을 꿰뚫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못하게 했고 조카 완이 대신 수기를 받아들고 싸움을 독려했습니다. 싸움이 적의 대패로 끝난 뒤 진린의 이순신 장군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그의 배에 올랐는데, 그제서야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알고 슬픔을 억제하지 못해 통곡하였습니다. 이 소식이 군중에 알려지자 조선 수군은 물론 명나라 수군들까지도 호곡하였는데 그 소리가 바다를 뒤엎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량인 고기를 모두 바다에 던져버리고 단식을 하면서까지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인품이 봄바람같이 따뜻하면서도 명령은 산같이 무서워 인심이 모두 따르고 병사들이 어버이처럼 섬기며 그의 명령하에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오직 나라를 위하는 그의 지극한 충성과 숭고한 인격, 위대한 통솔력, 신묘한 전략 등은 모두 세계 해전 사상 그 유례가 드물 정도입니다. 반면에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에는 조선 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에 나와 있던 명나라 군사와 심지어 왜군들까지 도 춤을 추며 기뻐했습니다. 먼 바다를 건너와 밤낮으로 긴장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들은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이제 지긋지긋한 전쟁에서 해방되었으니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극악무도한 살인범들이 사형을 당하면 시민들은 안도의 숨을 쉬며 조금이나마 안심을 하게 되는 경우와 같지요. 성경에도 보면 위대한 사람이 죽었을 때 사람들이 슬퍼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신명기 34:8에 보면 모세가 죽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한이 맞도록 모세를 위해 30일을 애곡했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실 때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곡하였습니까 누가복음 23:46이하를 보면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변에서 일가 친척이나 자기에게 은혜를 끼쳤던 사람이 죽었을때,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갈 때에얼마나 마음이 안타깝습니까. 이처럼 사람이 평소에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가 죽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슬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히려 '잘 죽었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2. 네 친구의 도움을 받은 중풍병자 본문을 보면 가버나움에 살고 있던 한 중풍병자에 대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병이 심히 중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일 수조차 없는 불쌍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병낫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살았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귀신을 쫓아낼 뿐만 아니라 각색 병든 사람을 치료해 준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는 귀가 솔깃해 졌고, 예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심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그러한 소문을 그대로 믿어 마음에 새기고 '예수님께서 계신 곳을 알면 꼭 가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던 중, 중풍병자는 자신이 그렇게 사모하던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중풍병자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뜨거웠겠습니까. 그는 자기를 도와 줄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그의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예수님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 앞으로 자기를 인도해 달라는 간곡한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왔는데 정작 와서 보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 였습니다. 그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계신 집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들것에 실린 중풍병자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리기에 이르렀고 결국 그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 가까이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들의 믿음과 정성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을 깨끗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간절한 중심으로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사모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행함을 보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께서 계신 집까지 도착은 했으나 도저히 용신할 수 없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으니 거기에서 포기할수도 있는데, 지붕까지 뜯어내고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를 내려 놓았으니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들입니까 그들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요, 이 중풍병자를 어떻게 하든 예수님 앞에 데려가야 되겠다고 하는 깊은 우정과 사랑이 있었던 것입니다. 친구가 어떤 문제를 당했을 때에 그를 살리려고 애쓰는 아름다운 중심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 중에는 그 행함에 따라 '잘 죽었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음을 슬퍼하는 그런 사람도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이렇게 까지 해서라도 살리려 했던 것은 그 만큼 이 중풍병자가 그들에게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될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의인 성경을 보면 사람이 죽었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난 경우들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 살려 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 때에 장례 행렬이 성에서 나왔는데 한 과부의 외아들이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 하염없이 통곡하는 과부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그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과부는 어려움을 이기며 양육한 독자를 잃어 버렸으니 그 답답함과 곤고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으며 살 소망마저 끊어진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여인에게는 그 아들을 다시 살려주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인 것이며, 만약에 그렇게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생명도 아끼지 않고 그 앞에 충성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과부가 엄청난 은혜를 입었을 때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예수님을 좇을 중심임을 아셨기에 그가 원하는 축복을 내려 주셨던 것입니다. 욥바에 사는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죽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살려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는데, 그것은 바로 그 여인의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아 그의 삶이 참으로 은혜로웠기 때문이요 하나님 앞에 다시 살림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나 다니엘, 요셉, 룻 같은 이들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 에게 은혜와 덕을 끼쳤습니까 욥도 많은 친구가 있었는데 욥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일부러 욥에게 찾아와서 같이 염려하고 걱정하며 함께 지적과 권면을 해 주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만큼 욥에게 입은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요, 욥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욥 2:12-13). 이렇게 의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입고 존귀를 입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깨우칠 수 있습니까
첫째로, 의인들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는 후덕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의인이라면 여러 사람들이 존경하고 사랑하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니 교회에서는 믿음의 형제들이, 가정에서는 온 가족들이, 일가친척과 이웃들이 우리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의인이 되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당연히 그 사람을 인정하시니 축복해 주시며 우리가 하나님께로 부터 어떤 문제든지 다 해결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의인들은 정직하고 깨끗하여 모든 사람들의 빛이 되므로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믿음의 행함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들, 빛 가운데 행하는 의인들은 자신의 친구가 죽어가거나 어떤 어려움에 처할지라도 믿음으로 구제하고, 믿음으로 뒷받침해 주며, 자기 혼자 피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돕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인들은 어떤 문제가 닥쳤을때 믿음으로 해결방법을 찾아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며 결단코 생각이나 어떤것에 막혀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처럼 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 보임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문제라도 해결해 주시는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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