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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비결 (막2:1-12)

본문

I.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는 사랑을 받는 자들입니다. 반대로 세상에 서 가장 불행한 자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에 과부와 고 아를 불쌍히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는 자들 보다 더 행복한 자는 없읍니다. 사랑 받지 못하는 자 보다 더 불행한 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자 입니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아내는 지혜로운 아내입니다. 선생님께 사랑을 받 을 줄 아는 학생은 지혜로운 학생입니다. 목사에게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성도는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운 사람은 사랑을 받을 주 모르는 자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사랑을 받을 줄 모르는 자는 불쌍하고 딱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가장 행복한 자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은 복있는 자들이요, 행복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의 하는 일이 잘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에게 주시는 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복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을 깨닫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저는 이 시간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비결을, 아니 하나님이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되는 비결을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II. 본 론 제가 지지난 겨울에 광림 수도원에 기도하러 갔다가 오다가, 물만 주면 잘 자라는 스킨다부스를 조금 잘라 왔습니다. 그것이 물을 많이 주어도 잘 자라기에, 화분에 심지 않고, 그냥 물속에서 키워보고 싶어서 그냥 물에 담궈두었습니다. 그러자 생각했던 대로, 물속에서 뿌리가 내리고, 자라 기 시작을 했습니다. 물에 담궈둔지가 오래 되어도 뿌리가 썩지 않고 잘 자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유리 어항에 키우기로 하고, 조그만한 유리 어항을 사다가 거기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항에 작은 물고기를 두 마리를 사다가 두었습니다. 물고기들이 잘 자라기에 처음에는 매일 한번씩 그 물고기들을 들여다 보 고 먹이를 주고,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자 시들해 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물고기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 한 마리가 있는 것이 외로워 보여서, 물고기를 한 마리 더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가계 주인에 게 물어 보니, 이 물고기들도 새끼를 낳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에는 암놈으로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암놈은 예쁘지 않다고 했습니다.
예쁘지 않아도 새끼를 낳게 할려고 하니, 달라고 했습니다. 암놈을 사다가 놓고는 한동안 잃어 버렸습니다. 그 물고기에 대한 관 심이 점점 더 식어만 갔습니다. 사랑이 식어만 갔습니다. 권태기에 접 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우리 현주가 어항을 보더니, 조그만한 물고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 보니, 조그만한 물고기 두마리가 있었읍니다. 어미가 두 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두마리의 새끼를 보자 우리는 크게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그 물고기에 대한 관심이 달라졌습니다. 제 생각에는 큰 물고기들이 그 새끼 물고기를 잡아 먹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틈만나며 들여다보고 살핍니다. 때를 따라 먹이를 줍니다. 새끼 잡아 먹지 말라 고 먹이도 정확한 시간에 더 많이 줍니다. 물도 자주 갈아 줍니다. 저는 그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비결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를 낳으면, 하나님이 매일 매 순간 마다 우리를 살피실 것이다. 혹시 우리가 잘 못 되지는 않을까하고,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살피실 것입니다. 그 낳은 하나님의 자녀를 잡아 먹을까바 전 보다 더 많은 은 혜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비결은 바로 전도하여 영적인 자녀를 낳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자녀를 낳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하나님이 저절로 우리에게 관심을 같고, 달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영적인 자녀를 낳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영적인 자녀를 낳을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본 문 말씀을 통하여 살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건은 (마9:1-8)과 (눅5:17-20)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의 사건은 공관복음(公觀福音)에 모두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며, 중요한 사건이며, 당 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사건은 가버나움에서 일어났습니다. (마9:1) 말씀 을 보면 가버나움을 예수님의 "본 동네"(own town)라고 했습니다. 가버나 움이 예수님이 살고 계셨던 동네였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가버나움 예수님의 생활의 중심지요, 예수님의 목회와 선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가버나움에서 (마8:5-13) 말씀을 보면, 중풍병 걸린 백 부장의 하인을 고치셨습니다. (요4:46-54) 말씀을 보면 왕의 신하의 죽은 아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를 고 치셨습니다. 가버나움은 이렇게 예수님의 생활과 선교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가버나움을 떠나 다른 동리에 가셨던 예수님이 몇일 후에 가버나움에 다시 돌아 오셨서, 어떤 집에 들어가서 말씀을 전파 하셔읍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몇일 동안 안계시다가 돌아 오셨기 때문에 사람들 이 많이 몰려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문 앞에 마당까지 가득 찼습니다. 보통 가득찬 것이 아니라, 입추(立錐)의 여지 없이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때에 쓰러진지 얼마 안되어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예수님 앞에는 도저 히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네 사람은 집 뒤로 돌아가서, 지붕위로 올라가서는 지붕을 뜯고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예수님이 이 모습을 보고는, 저들에게 믿음이 있은 것을 아시고는 "소자 야, 네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하고 선포를 하셨습니다. 캠벧 모건(G. Campbell Morgan) 박사는 이것이 예수님이 인간의 죄가 사 함을 받았다고 최초로 선언한 기록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죄 사람을 선언하자, 거기에 참석했던 서기관들이 즉시 마음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는데, 어떻게 예수가 죄를 사했다고 할 수 있는가 " 이것은 참람한 행 동이라고 수군수군 거렸습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속으로 수군수군 거리는 것을 아시고는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내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 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그렇게 했다" 하시고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올 때에는 네 사람의 들것에 들여서 온 중풍병자가 벌떡 일어나 서는 자기가 실려온 들것을 들고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거기에 모인 사람 들이 다 하나님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병만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영적인 병도 고쳐 주셨읍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오전한 의사가 되십니다. 우리의 모든 병 을 다 고쳐주시는 우리의 온전한 의사가 되십니다. 인생에 어떤 병에 걸 렸든지 예수님 앞으로 나오기만 하면 다 고침을 받습니다. 이 만병의 의사가 되시는 예수님께 병든자들을 데리고 오는 거이 바로 전도입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전도에 관한 귀한 영적인 교훈은 무엇 입니까
1. 죄인은 스스로 예수님 앞에 나오지 못합니다. 오늘 사건에 나오는 병자는 중풍병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람 을 보자마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시면서, 먼저 그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 사람은 죄인이란 뜻입니다. 이 죄인은 중풍병자였습니다. 죄인은 중풍병자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중풍병자는 어떤 환자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그는 걷 지를 못하는 사람이였습니다.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자가 중풍병자입니다.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자가 죄입니다. 스스로 걸어서 예수님 앞에 나 올 수 없는 자가 죄인입니다. 자기는 죄인이라 불행을 당하고,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모든 죄를 다 씻음받고, 고침을 받고,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다 알면서도,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자가 바로 죄인입니다.
마치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된 병자가 물이 동할 때 물속에 들어가 면, 자기 병을 고침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이, 죄인들은 예수님 앞에 나가면 구원받는 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수님 앞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의 비극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요3:19-20)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 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 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빛이 어둠 보다 더 좋다는 것을 다 압니다. 그리고 빛에 나아가야, 생 명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어둠 속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어둠속에 있는 생명은 다 부정적인 생명들 뿐입니다. 질병, 남을 해하는 것들 뿐입니다. 오직 빛으로 나아가야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빛으로 나아 가는 자들마다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빛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앞에 나오는 것이 살 길인데도, 죄인들에게는 죽음의 길로 생각이 됩니다. 살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그 길을 죽음의 길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죄인들은 예수님 앞에 나아오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가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 앞에 나아가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정착 주일날이 되어서 기다리면 나아오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죄인은 스스로 예수 앞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자녀를 낳기 위해서는, 우리가 전도하기 위해서는 죄인들 은 절대로 스스로 예수님 앞에 나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2. 죄인에게는 그를 예수님에게 데려올 사람들이 필요하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렇게 예수님께로 스스로 올 수 없는 자가 예수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중풍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복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주님 앞에 나아 갈 수 없는 중풍병자가 예수님 앞에 나아갔읍니 까 그것은 4 사람이 그를 메어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4 사람이 그를 메어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자가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죄인들은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먼저 믿는 자들이 4명이 힘을 합하면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 오는데는 4 사람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는 죄인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오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에 걸음을 걷지도 못하는 친구를 들러메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서 그의 중풍병을 고쳐 주니, 얼마나 고맙습니다. 그보 다 더 좋은 친구가 어디 있겠습니까 반대로 가장 나쁜 친구는, 가장 나쁜 사람은 병을 고칠 수 있는 곳을 알 면서도, 힘이 든다고, 귀찮다고 그를 그곳에 데리고 가지 않아서 그 병을 고침 받지 못하고, 그 병에 걸려서 죽게 하는 자입니다. 남편이 중풍병에 걸려서 집에 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병원에 가 면 그의 병을 고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귀찮다고, 힘들다고 그 남 편을 그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아, 남편이 평생 중풍병 환자로 살다가 죽었 다면그 아내는 얼마나 나쁜 사람입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무슨 죄를 졌다고 하더라도 다 용 서함을 받고, 구원 받고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데, 우리가 귀찮다고, 힘들 다고, 조금 손해 본다고 그를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지 않으면, 우리는 그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정죄를 면할 길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은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오는 자요, 가장 나쁜 사람은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오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분문의 4 사람이 중풍병환자를 데리고 나오기 위해서는
1)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고, 그의 죄를 사하 여 주고, 그의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앞에만 나가면, 그의 병이 고침받는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읍니다. 그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을 수가 있었읍니다. 중풍병환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오는데는 믿음이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가면 병을 고침받는다"하는 말을 듣고는 비록 그 말을 믿을 수는 없어도, 혹시나하고, 그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붕을 뜯고, 환자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는데는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면 반드시 고침을 받는다는 믿음이 없이는 지붕에 올라가지붕을 뜯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났는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그 지붕을 뜯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오기 위해서는 예수님 앞에 나 오기만 하면 모든 죄가 다 용서를 받고, 구원받는 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죄인들을 주님 앞으로 데리고 나올 수가 없읍니다. 우리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모든 죄가 다 사함을 받고, 어떤 문제 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 해결 되는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모든 죄인들을 다 주님 앞으로 데리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들은 중풍병환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가기 전에 그에게 예수님에 대하 여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병자들을 고치고 있으면,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모든 병이 다 고침을 받는다고 선전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풍병환자가 그들의 하는 일에 동의를 했습니다. 만약 그 4 명의 친구들이 그 중풍병환자에게 "예수님 앞에 가도, 병이 날지 안날 지 잘 모르겠다"고 말을 했다면, 그 중풍병환자가 예수님 앞에 나가겠다고 했겠습니까 그들이 그 중풍병환자에게 예수님 앞에 나가면 모든 죄 사함을 받고, 모 든 질병을 다 고침받는다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에 그가 따라 나섰습니다. 우리가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들에게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모든 죄가 다 용서함을 받고, 반드시 구원을 받고, 반드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자랑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듣고 확신이 있어야 예수님 앞에 따라 나옵니다.
그러므로 분명하게,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전파해 야 합니다. 한 때 몬타나 주의 수도 였던 반녹(Bannock)에 사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서 길을 떠났다. 그들이 가는 길에는 많은 어려움 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가는 길에 죽었다. 이제 몇 명 안 남았다.
그런데 그들도 인디언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인디언들은 그들의 좋 은 말을 다 빼앗고는 절뚝거리는 늙은 당나귀 몇 마리만 주고는 다시 반녹 으로 돌아 가라고 했다. 인디언들은 그러면서 만약 다시 이곳에 오다가 잡히면 그 때에는 다 죽이겠다고 위협을 했다. 그들은 절망감과 패배감과 낙심된 마음으로 반녹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중에 내갓에서 쉬게 되었다. 그때 절뚝거리는 늙은 나귀 를 냇가에 매던 사람이 그 냇가에서 작은 돌을 하나 주워들었다.
그런데 그 돌이 이상해 보여서 친구에게 망치를 달라고 해서 그 돌을 깨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돌이 바로 금이 들어 있는 광석이였다. 그래서 무리 중에 두 사람이 그날 오후에 그 냇가에서 냄비로 사금을 했다. 그들은 12 달러 정도의 금을 모았다. 다음날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같 이 사금을 했다. 그랬더니 50달러어치의 금을 모았다.
그들은 서로 얼싸않고, "노다지를 발견했다."(We have struck it !)하고 소리치며 기뻐했다. 그들은 그 사실을 비밀로 하기로 하고 반녹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그들은 비밀리에 금을 모우기 위한 채비를 했다. 모든 채비가 다 된 후 에 그들은 금을 모우러 출발을 했다.
그런데 무려 300명의 동네 사람들이 따라 나섰다. 그들은 누가 이 비 밀을 누설했느냐고 서로 의심하며 화를 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사실을 누설한 자가 없었다. 단지 그들의 얼굴 빛이 그 비밀을 누설을 했다. 말하지 않아도 그들 얼굴 빛에 써있었다.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다면, 우리도 우리가 이 보화를 발견해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얼굴이 그것을 증거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 앞에 나오기를 꺼려하던 자들도 우리의 얼굴을 빛을 보고는 따라 나설 것입니다.
3) 수고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친구들은 중풍병환자를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메고오고, 그리고 그를 다시 지붕으로 들고 올라가고, 그리고 지붕을 뜯고, 달아 내리는 수고를 했 습니다. 이런 수고의 노력이 있어야만,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올 수가 있습니다. 수고의 노력이 없이는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올 수 없 습니다. 한 사람의 죄인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와서, 구원을 받게하기 위해 서는 수 많은 노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수고의 땀이 있어야만 전도할 수 있습니다. 수고하지 않고는 전도할 수 없습니다.
4) 희생의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친구들은 지붕을 뜯었습니다. 학자들은 그 집이 시몬 베드로의 집 이였을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이 친구들은 중풍병환자를 예수님 앞에 데리고 가기 위하여 지붕을 뜻었 습니다. 이들은 중풍병에 걸려 고통 당하는 친구를 볼 때, 그의 병이 고침 받을 수만 있다면, 지붕 하나 정도의 희생은 얼마든 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데, 지붕하나가 문제입니까 영혼 하나가 천하보다도 귀한데, 지붕하나 값이 문제입니까 이런 희생의 각오가 있어야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갈 수가 있습니다. 지옥가서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할 친구가, 구원 받고 천국에 들 어갈 수 있다는데, 남의 지붕해 주는 것이 문제이겠습니까 오직 희생을 각오하는 자들만이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런 희생을 치루더라도,죽을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바로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3.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는데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모든 장애물들을 다 뛰어 넘었 습니다. 어떤 장애물이 그들의 가는 길을 가로막는다고 하더라도, 그 장 애물들을 다 뛰어 넘었습니다.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는데에도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그 장애물들을 극복해야만 죄인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갈 수가 있습니다.
1) 사람들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보면 그 중풍병환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는 데 장애물이 되었던 것은 바로 사람들이였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중풍병환자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중풍병 환자를 메고 오면, 사람들이 다 비켜서서, 그를 예수님 앞에 나아가도록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지 않 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예수님 앞으로 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는데에도 수 많은 사람의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죄인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면, 모든 사람들이 다 힘을 합 하여 그를 도와서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방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하다가, 사람들의 장애물에 걸려 서 넘어지고 되돌아 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죄인들을 예수님 앞 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사람의 장애물들, 교회 안에 있는 장 애물들과 교회 문 밖에 있는 장애물들을 다 극복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의 장애물, 교회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의 장애물을 다 극복해 야 합니다. 이 사람의 장애물을 극복해야 예수님 앞에 나올 수가 있읍니다.
2) 타당성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일을 할때는 타당성을 따져보고 일을 해야 합니다. 타당성이 없는 일 을 하는 자들은 어리석운 자들입니다.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는데, 이 타당성의 장애물이 있읍니다. 오늘 본문의 4 친구들이 하는 일이 타당성이 있는 일인가 고칠 수 없는 중풍병환자를 고치겠다고 데리고 가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 중풍병환자를 의사도 아닌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타당성이 있는 일이가 인간적인 판단으로 볼때, 이들이 중풍병환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가고, 그를 고치겠다고 지붕을 뜯는 것은 타당성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이 타당성의 장애물을 극복했습니다. 이런 믿음 이 있어야만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는데에는 많은 타당성의 장애 물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렇게 많은 것을 투자 하는 것이 타당한가 이런 못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렇게 많은 것을 투자하는 것이 타당한가 이런 사람이 교회에 유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타당성에 대한 생각이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데 많은 장 애물들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이 타당성 의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3) 종교적인 지도자들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는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람이 고침받고 구원받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의 친구라기 보다는 예수님의 적들이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예수님의 친구라고 생각을 하지만, 실상은 그들은 예수님 의 적들이였습니다. 사람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데는 이런 종교적 지도자들의 장애물들 이 많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인정을 받고, 공부를 많이해서 많은 것 을 알고 있는 자들 중에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자 들이 있습니다. 이런 서기관들과 같은 장애물들 때문에,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배운 것이 없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도 없는 우리 보다는 배운 것이 많고,사회적으로 크게 인정 받는 사람들의 말을 더 잘 듣기 때문입니다. 이런 장애물들이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는데 장애물이 됩니다. 우리는 이런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데리고 가기만 하면 모든 병이 다 고침을 받고,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어떤 장애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믿음으로 극복하 며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들이 되시를 주 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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