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한 성도의 모습 (막11:1-12:12)
본문
우리는 나단과 데고아 여인이 다윗 왕에게 비유를 말함으로써 왕의 잘못을 깨닫게 한 것을 배웠고 또한 선지자들이 비유를 이스라 엘 사람들에게 말함으로써 그들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한 것 도 배웠습니다. 이사야 5장 1-4절을 보면 한 여인이 사랑하는 자 의 포도원을 위하여 노래하였는데 들포도가 열렸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판단해 달라고 주인이 호소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장 5-7절에는 포도원 주인이 어떠한 판결을 내렸으며 그 판결이 하나님 백성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말한 것을 알게 됩니다. 마가복음 11장에 나오는 비유는 이사야 5장에서 읽은 여인의 노래 와 같은 것으로 예수님 서 말씀하시는 포도원의 비유를 이해하려면 세 단계로 고려해 봐야 될 것입니다. 즉
첫째로 포도원의 비유가 마가복음에서 어떻게 쓰여졌는지 알아야 되고,
둘째로 말씀하신 후 위선자들에게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시려고 말씀하셨고 또 그것이 어 떻게 해석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비유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관련이 있으며 그 비유를 통하여 우리가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비유의 뜻 11장 1절에서 12장 12절까지에는 예수님 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 및 예수님의 권세에 대하여 질문을 당 하신 일 등 매우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단번에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마치 왕의 대관식 이나 결승전에서 승리한 경기팀을 환영하듯 대대적으로 환영한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생나무를 길에 펴는 것은 왕을 영접하는 예식이 었으며 다윗 왕 같이 훌륭한 왕이 생겨서 그 당시의 불의를 정복시킬 것을 기대하고 환영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다윗 왕의 잘못은 기억 하지 않고 그가 회개하고 훌륭한 왕이 된 것 만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12절에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며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셨는데 이것은 기적으로 저주하신 유일한 경우입니다. 이 무화과 나무는 열매가 열릴 때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주를 받았는데 예수님 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베다니에 가신 후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예수님 서 첫 번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으나 노하신 것이 나타나며 무화과 나무가 저주 받은 것은 예수님의 분노의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예수님 서는 다시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셔서 매매하는 자를 내쫓고 돈 바꾸는 자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의 의자를 둘러 엎 으시며 성전 안에서 물건을 가지고 다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다음 날 무화과 나무가 뿌리부터 마른 것을 보셨으니 이 무화과 나무는 하나의 상징인지 또는 열매없는 하나님 성전에 대한 비유인 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제자들에게 믿음이 있으면 산을 바다에 던질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제사장들이 예수님의 권위에 대하여 질문하였는데 도대체 무슨 권위를 가지고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고 성전 안을 직접 깨끗 케 하시고 산같은 성전도 믿기만 하면 바다에 던져버릴 수 있다고 하셨는지를 집어 물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 때 예수님 서는 세례 요한이 무슨 권세로 세례를 주었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제 4 공과에서 공부한 바와 같이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권세로 세례를 주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므로 제사장들은 그것을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인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예수님 서도 해명하실 필요가 없게 된 것 입니다. 즉 제사장들이 예수님의 반문에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대화를 중지시키는 결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예수님 서는 비유를 들어 대답하셨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 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40년 후 에 쓰여진 것으로 로마 군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태워버린 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게 된 유다인들은 로마 제국이 예루 살렘에서 추방되고 메시아가 재림하시기를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그 희망이 깨졌으므로 마가는 그들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즉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수님 서 예언하셨을 뿐 아니라(13:2) 예수님 서 성전을 저주하셨을 때 그 성전이 파 괴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파괴되게끔 되었 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이사야에 나오는 포도원의 비유를 인용하여 비유 를 말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즙 짜는 구유자리를 파고 망대를 짓고(12:1)라 하였습니다. 크리스챤이 된 유대인들은 하나님 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하시는 노래임을 알 것입니다. 포도원 소출을 받으려고 보낸 종 들은 세례 요한까지 포함한(12:5) 선지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며 최 후로 보내어 죽게된 아들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고 전멸된 농부들은 주후 70년에 멸망된 성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후 포도원을 상속받는 자들은 유대인으로써 크리스챤이 된 사람들과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예수님 서 바로 성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 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 입니다. 제사장이나 유대인으로써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은 예수님 서 자기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고 예수님을 잡으려는 마음이 있었으나(12:12) 예수님을 쫓는 무리들을 두려워하여 그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나단의 비유를 듣 고 회개한 다윗 같이 회개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 한 것입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비유의 참 뜻은 하나님 서 속죄하여 주신 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게서는 성전의 모퉁이 머릿 돌이 되시므로써 최후의 승리를 하시는 것이며 좋은 열매는 포도 원 같이 올바른 이스라엘을 이루시는 것을 하나님 서 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서는 포도원을 맡은 자들이 게 으를 수 없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모퉁이의 머릿돌로 굳게 세 워진 하나님 나라에는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마가복음은 그 당시나 현재나 희망과 동시에 경고를 주고 있으 며 좋은 소시과 나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즉 죽음과 멸망 이 우세한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예수님 서 스스로 하나님 백성의 머릿돌이 되어 계시다는 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그와 반면에 교회가 정의보다 안전한 것이나 좋아하고 크리스챤 들도 믿을 수 없는 제자들이나 가치없는 농부들 같이 행하면서도 자기자신을 거울에 들여다 보려하지 않는 위험한 실상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교회들은 회개하거나 옳은 일을 하려하지 않을 것이므로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울을 들여다 보지 않음으로써 그렇게 무서운 결과가 생길 것을 알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바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통하여 배울 점 예수님 서 말씀하신 포도원 비유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게서는 단순히 주인과 농부에 대 하여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예수님 서는 희랍어 를 사용하시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마가가 희랍어로 된 이사 야의 시를 인용한 것을 보아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주후 2세기에 활약하든 신비주의적 크리스챤들이 예수님의 비유 들을 자기들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하여 많이 이용하였는데 그들 의 설명도 별로 복잡하지 않습니다. Gospel According to Tomas 라는 책을 보면 다음 같이 적혀 있읍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어떤 좋은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포도 원을 가구게 하고 자기는 그들의 소출을 받으려고 하였다. 하루는 자기의 일꾼을 포도원에 보내어 소작을 받아 오게 하였는데 농부들이 그 종을 붙잡고 많이 구타한 뒤 돌려보냈다. 이 사실을 안 포도원 주인은 다른 일꾼을 보냈으나 첫 일꾼과 마찬가지로 매를 맞고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자기 아들을 보내면 후대할 줄 알고 보냈더니 그가 포도원을 상속할 사람이므로 도리어 죽여 버렸다. 그러나 귀있는 자여, 들을지어다. 결국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뇨" 라는 질문은 즉 농부들이 그렇게 기가 막힌 짓을 하였으니 기가 막히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있겠느냐"는 이야기에 불과한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비근한 예를 들자면:어떤 학교에 불이 나서 건물이 타 버렸으므로 선생들이 한 달이나 월급을 받지 못하였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런데 학교당국에서는 아 무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니 일반 시민들은 어찌할 도리가 있느냐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중책을 맡은 자들이 책임을 완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책을 빼앗기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공금을 횡령하거나 일을 잘 하지 않으면 파면 당한다는 것인데 예수님 서는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즉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가에 의하면 하나님은 포도원 주인이시고 예수님은 주인의 아들이며, 주인의 위탁을 받은 농부들은 종교인들인데 그들이 하나님 서 하라시는 일을 하지 않고 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울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변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비유를 하나님 서 예수님을 이스라엘에 특별한 이유로 보 내셨다는 마가의 해석과 다르게 해석한다면 이 비유의 중요성을 소홀 히 하는 것 같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예수님 서 자기의 죽음을 옛 니자들의 죽음이나 세례 요한의 죽음과 관련시켜 비교하셨 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비유는 듣는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 결과 완전히 이해하여 자기의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있게 해야 하므로 완전히 듣기전에 되진 것 같이 느끼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어떻게 하겠느 뇨"라고 질문은 즉 이런 경우에 무슨 다른 도리가 있느냐는 단순한 표현에 불과하다고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비유 중에서 아마 이 포도원 주인의 비유가 제일 적절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유는 항상 책임있는 자들 이 예수님의 옳은 대답을 듣기 원하여 질문함으로써 시작된 것으로써 예수님 서는 질문했을 때 꾸짖거나 애매한 대답을 하시지 않고 그들 에게 반문하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귀있는 자라면 듣고 깨달아서 자 기들의 모습을 거울에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나단이 다윗 왕에게 비유를 말하였을 때, 다윗이 스스로 깨닫는 것 과는 달리 예수님 서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는 듣는 사람들마다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고 때로는 자기에게 해당하다는 것을 깨닫게도 되었읍니다. 즉 자기들이 변화하려는 의도가 없는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해 당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예수님 서 상대 로 하여 말씀하시던 위선자들의 태도와 같은 것으로써 당연한 인간적 반응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옳은 해석에 귀를 기울여 듣고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 백성이 되기에 합당한 변화 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비유를 통하여 자기자신의 모습을 거울에서 보게 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오묘한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비유는 자기가 볼 수 없는 것을 가르치는 하나의 교 육방법이라 합니다. 그것은 사실이나 우리가 배운 것을 오직 아는데 서 끝나지 않고 실제로 행할 수 있기 되고 우리의 위선적 행동을 거울 에서 뚜렷이 보고 깨달을 때에 비로서 우리는 배웠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서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남을 가리켜야 할 사람들 대부분은 깨닫지도 못하고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 서 이러한 말씀을 하심으로써 도리어 죽음을 초래하시게 되었 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서 잘못 가르치셨는지요. 예수님 서는 가르치시는 것 보다는 진리를 말씀하셨고 듣는 사람들에게 변할 시간 의 여유를 주셨습니다. 비유를 통하여 진리를 말씀하심으로써 이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동시에 믿지 않는 사람들 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길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비유를 통하여 배울 점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유를 통하여 크리스챤으로써의 일상생활에 도움을 받으려 하거나 전도하여 교회를 크게 하려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이 미 예수를 믿고 그들도 의미를 알아 듣는다고 자청하는 것이므로 옳은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치 총알이 헛맞 아 튀어 돌아오는 것과 같이 말한 것이 귀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 서는 믿지 않는 자들과 깉이 지니고 같이 먹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시며 마귀를 쫓아내 주심으로써 그들에게 행 동으로 보여주신 결과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가까워지게 만드신 것 입니다. 그는 항상 위선자들을 대상으로 말씀하셨는데 그들이 하나님 백성이 되기에 합당한 행동을 하도록 생각해 보게 핫려는 것이었 습니다. 만일 우리가 비유를 통하여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전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우리 자신의 생활 이라도 충만하게 해야 될 것입니다. 비유의 대부분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독교인 생활과는 관계없는 일상 생활의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비유에는 우리와 같은 입장, 즉 하나님과 가까운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못한 사람들도 나 와 있습니다. 들에 나가서 일하겠다고 약속한 아들인데 나가지 않는다든지 일꾼이 하루종일 일을 하고서 같은 품삯을 받았다고 불평한 다든지, 큰 형인데 돌아온 탕자 동생이 후대 받는다고 질투한다든지, 또는 하나님의 제사장인데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지나간다 든지, 율법주의자로써 영생을 얻는 비결을 알려야 한다든지, 혹은 신임을 받아 포도원을 위임받은 일꾼이 주인의 아들을 죽여 버리는 일을 저지른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이러한 좋지 못한 예들이 어떻 게 우리 믿음의 생활을 충만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생활을 충만하게 하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즉 비유를 읽거나 들은 후, 자기자신을 거울에 들여다 보고 회개하여 우리 생활에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그렇 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흔히 우리는 힘이 없어서 세상 옳게 고칠 힘이 없다고 핑계를 하고 국회위원들이나 목사님들, 또는 남편에게 책임을 미뤄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가족, 한 나라가 혼자서 큰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을지 모르나 누구든지 이웃이나 남을 동원하여 변화를 가져오게 자극시킬 힘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유는 동원시킬 힘을 주는 역 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피라밋 위에 선 입장에서 내려다 보려고 합니다. 옛 선지자들은 절대적 세력을 가진 다윗왕엑 말한 것과 같이 세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으나 이사야 시대에는 이미 그것이 변하였고 특히 예수님 서는 종교에 대하여 가치관을 가진 일반사람들 을 상대로 말씀하셨습니다. 현 사회는 실권이 널리 분산되어 있으므 로 투표권을 통하여서, 똔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일을 성취하려고 노력 하므로써 비유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력있는 사람들은 아 니자만 해야될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킴으로써 세상의 죄악을 장려 시키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는 반면에 좋은 일을 성취하도록 공헌할 힘도 있는 것입니다. 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비유를 들어서 죄악을 폭로하고 선을 장려한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비유를 듣고 거울을 들여다 보고서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또 하난의 이유는 즉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의인을 받았으 므로 다시는 심판받지 않는다는 핑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서 지상에 계실 때나 마찬가지로 비유를 듣고 남은 비평하면서도 자기를 판단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심지어 죄를 짓 더라도 예수님 서 구속하여 주실 것이 보장이나 되어 있는 듯이 생각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말하기를 "그러므로 회개에 해당한 열 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 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마태복음 3:8-10) 라고 하였다.
우리는 예수님 서 불쌍한 자와 죄진 자들을 고쳐주시고 잘사는 자들에게는 비유의 거울을 보여 주심으로써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모 두 불러서 들어가게 해주시는 메시아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에 귀를 열어 듣고 자기의 모습을 살펴볼 책임이 있습니다. 비유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다 개하면 기쁨으로 능히 하나님 뜻대로 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실행하고 있는 여성들의 실예를 들겠으나 그 외의 여러분 서 아시는 예들을 추가하시기 바랍니다. 볼리비아 정부에서 철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임금을 반으로 줄였을 때, 광부부인들이 금식함으로써 전 세계에 그 실정이 보도된 실화. 남 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을 항의하기 위하여 독일 여성들이 남 아프리카에서 수출한 과일을 보이코트 한 일. 장기간 세계적 기아문제를 없애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 미국 장로교 총회로 하여금 공식적으로 세계적 기아대책을 세우도록 자극을 준 미국 남.북 장로교 여신도회의 성공 실례. 보스톤 근처에서 핵무기 반대운동을 여성들이 시작한 일. 신.구교 여신도들이 단결하여 자기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반대하여 평화촉진운동을 조직한 북 애란의 여신도들. 인도에서 봉사하던 데레사 성모, 또는 알려져 있지 않은 많은 여성 들이 병든 자들을 고쳐주고 굶주린 자를 먹이고 있다는 사실. 알젠틴에서 납치자들의 어머니 단체가 주일날 마다 오후 4에 부에 이노스 아리레스 광장에 모여 무언중 시위함으로써 세계에 모범을 보인 사실. 여러분 서 중요한 근본문제를 해결하거나 도울려고 노력하고 계 신 분을 아십니까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그 분이 거울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실 수 있습니까 그리하여 그 일이 성취될 때 까지 도와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포도원의 비유가 마가복음에서 어떻게 쓰여졌는지 알아야 되고,
둘째로 말씀하신 후 위선자들에게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시려고 말씀하셨고 또 그것이 어 떻게 해석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비유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관련이 있으며 그 비유를 통하여 우리가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비유의 뜻 11장 1절에서 12장 12절까지에는 예수님 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 및 예수님의 권세에 대하여 질문을 당 하신 일 등 매우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단번에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마치 왕의 대관식 이나 결승전에서 승리한 경기팀을 환영하듯 대대적으로 환영한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생나무를 길에 펴는 것은 왕을 영접하는 예식이 었으며 다윗 왕 같이 훌륭한 왕이 생겨서 그 당시의 불의를 정복시킬 것을 기대하고 환영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다윗 왕의 잘못은 기억 하지 않고 그가 회개하고 훌륭한 왕이 된 것 만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12절에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며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셨는데 이것은 기적으로 저주하신 유일한 경우입니다. 이 무화과 나무는 열매가 열릴 때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주를 받았는데 예수님 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베다니에 가신 후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예수님 서 첫 번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으나 노하신 것이 나타나며 무화과 나무가 저주 받은 것은 예수님의 분노의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예수님 서는 다시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셔서 매매하는 자를 내쫓고 돈 바꾸는 자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의 의자를 둘러 엎 으시며 성전 안에서 물건을 가지고 다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다음 날 무화과 나무가 뿌리부터 마른 것을 보셨으니 이 무화과 나무는 하나의 상징인지 또는 열매없는 하나님 성전에 대한 비유인 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제자들에게 믿음이 있으면 산을 바다에 던질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제사장들이 예수님의 권위에 대하여 질문하였는데 도대체 무슨 권위를 가지고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고 성전 안을 직접 깨끗 케 하시고 산같은 성전도 믿기만 하면 바다에 던져버릴 수 있다고 하셨는지를 집어 물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 때 예수님 서는 세례 요한이 무슨 권세로 세례를 주었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제 4 공과에서 공부한 바와 같이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권세로 세례를 주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므로 제사장들은 그것을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인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예수님 서도 해명하실 필요가 없게 된 것 입니다. 즉 제사장들이 예수님의 반문에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대화를 중지시키는 결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예수님 서는 비유를 들어 대답하셨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 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40년 후 에 쓰여진 것으로 로마 군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태워버린 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게 된 유다인들은 로마 제국이 예루 살렘에서 추방되고 메시아가 재림하시기를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그 희망이 깨졌으므로 마가는 그들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즉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수님 서 예언하셨을 뿐 아니라(13:2) 예수님 서 성전을 저주하셨을 때 그 성전이 파 괴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파괴되게끔 되었 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이사야에 나오는 포도원의 비유를 인용하여 비유 를 말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즙 짜는 구유자리를 파고 망대를 짓고(12:1)라 하였습니다. 크리스챤이 된 유대인들은 하나님 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하시는 노래임을 알 것입니다. 포도원 소출을 받으려고 보낸 종 들은 세례 요한까지 포함한(12:5) 선지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며 최 후로 보내어 죽게된 아들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고 전멸된 농부들은 주후 70년에 멸망된 성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후 포도원을 상속받는 자들은 유대인으로써 크리스챤이 된 사람들과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예수님 서 바로 성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 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 입니다. 제사장이나 유대인으로써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은 예수님 서 자기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고 예수님을 잡으려는 마음이 있었으나(12:12) 예수님을 쫓는 무리들을 두려워하여 그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나단의 비유를 듣 고 회개한 다윗 같이 회개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 한 것입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비유의 참 뜻은 하나님 서 속죄하여 주신 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게서는 성전의 모퉁이 머릿 돌이 되시므로써 최후의 승리를 하시는 것이며 좋은 열매는 포도 원 같이 올바른 이스라엘을 이루시는 것을 하나님 서 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서는 포도원을 맡은 자들이 게 으를 수 없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모퉁이의 머릿돌로 굳게 세 워진 하나님 나라에는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마가복음은 그 당시나 현재나 희망과 동시에 경고를 주고 있으 며 좋은 소시과 나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즉 죽음과 멸망 이 우세한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예수님 서 스스로 하나님 백성의 머릿돌이 되어 계시다는 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그와 반면에 교회가 정의보다 안전한 것이나 좋아하고 크리스챤 들도 믿을 수 없는 제자들이나 가치없는 농부들 같이 행하면서도 자기자신을 거울에 들여다 보려하지 않는 위험한 실상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교회들은 회개하거나 옳은 일을 하려하지 않을 것이므로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울을 들여다 보지 않음으로써 그렇게 무서운 결과가 생길 것을 알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바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통하여 배울 점 예수님 서 말씀하신 포도원 비유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게서는 단순히 주인과 농부에 대 하여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예수님 서는 희랍어 를 사용하시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마가가 희랍어로 된 이사 야의 시를 인용한 것을 보아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주후 2세기에 활약하든 신비주의적 크리스챤들이 예수님의 비유 들을 자기들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하여 많이 이용하였는데 그들 의 설명도 별로 복잡하지 않습니다. Gospel According to Tomas 라는 책을 보면 다음 같이 적혀 있읍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어떤 좋은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포도 원을 가구게 하고 자기는 그들의 소출을 받으려고 하였다. 하루는 자기의 일꾼을 포도원에 보내어 소작을 받아 오게 하였는데 농부들이 그 종을 붙잡고 많이 구타한 뒤 돌려보냈다. 이 사실을 안 포도원 주인은 다른 일꾼을 보냈으나 첫 일꾼과 마찬가지로 매를 맞고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자기 아들을 보내면 후대할 줄 알고 보냈더니 그가 포도원을 상속할 사람이므로 도리어 죽여 버렸다. 그러나 귀있는 자여, 들을지어다. 결국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뇨" 라는 질문은 즉 농부들이 그렇게 기가 막힌 짓을 하였으니 기가 막히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있겠느냐"는 이야기에 불과한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비근한 예를 들자면:어떤 학교에 불이 나서 건물이 타 버렸으므로 선생들이 한 달이나 월급을 받지 못하였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런데 학교당국에서는 아 무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니 일반 시민들은 어찌할 도리가 있느냐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중책을 맡은 자들이 책임을 완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책을 빼앗기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공금을 횡령하거나 일을 잘 하지 않으면 파면 당한다는 것인데 예수님 서는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즉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가에 의하면 하나님은 포도원 주인이시고 예수님은 주인의 아들이며, 주인의 위탁을 받은 농부들은 종교인들인데 그들이 하나님 서 하라시는 일을 하지 않고 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울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변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비유를 하나님 서 예수님을 이스라엘에 특별한 이유로 보 내셨다는 마가의 해석과 다르게 해석한다면 이 비유의 중요성을 소홀 히 하는 것 같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예수님 서 자기의 죽음을 옛 니자들의 죽음이나 세례 요한의 죽음과 관련시켜 비교하셨 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비유는 듣는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 결과 완전히 이해하여 자기의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있게 해야 하므로 완전히 듣기전에 되진 것 같이 느끼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어떻게 하겠느 뇨"라고 질문은 즉 이런 경우에 무슨 다른 도리가 있느냐는 단순한 표현에 불과하다고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비유 중에서 아마 이 포도원 주인의 비유가 제일 적절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유는 항상 책임있는 자들 이 예수님의 옳은 대답을 듣기 원하여 질문함으로써 시작된 것으로써 예수님 서는 질문했을 때 꾸짖거나 애매한 대답을 하시지 않고 그들 에게 반문하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귀있는 자라면 듣고 깨달아서 자 기들의 모습을 거울에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나단이 다윗 왕에게 비유를 말하였을 때, 다윗이 스스로 깨닫는 것 과는 달리 예수님 서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는 듣는 사람들마다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고 때로는 자기에게 해당하다는 것을 깨닫게도 되었읍니다. 즉 자기들이 변화하려는 의도가 없는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해 당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예수님 서 상대 로 하여 말씀하시던 위선자들의 태도와 같은 것으로써 당연한 인간적 반응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옳은 해석에 귀를 기울여 듣고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 백성이 되기에 합당한 변화 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비유를 통하여 자기자신의 모습을 거울에서 보게 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오묘한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비유는 자기가 볼 수 없는 것을 가르치는 하나의 교 육방법이라 합니다. 그것은 사실이나 우리가 배운 것을 오직 아는데 서 끝나지 않고 실제로 행할 수 있기 되고 우리의 위선적 행동을 거울 에서 뚜렷이 보고 깨달을 때에 비로서 우리는 배웠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서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남을 가리켜야 할 사람들 대부분은 깨닫지도 못하고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 서 이러한 말씀을 하심으로써 도리어 죽음을 초래하시게 되었 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서 잘못 가르치셨는지요. 예수님 서는 가르치시는 것 보다는 진리를 말씀하셨고 듣는 사람들에게 변할 시간 의 여유를 주셨습니다. 비유를 통하여 진리를 말씀하심으로써 이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동시에 믿지 않는 사람들 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길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비유를 통하여 배울 점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유를 통하여 크리스챤으로써의 일상생활에 도움을 받으려 하거나 전도하여 교회를 크게 하려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이 미 예수를 믿고 그들도 의미를 알아 듣는다고 자청하는 것이므로 옳은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치 총알이 헛맞 아 튀어 돌아오는 것과 같이 말한 것이 귀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 서는 믿지 않는 자들과 깉이 지니고 같이 먹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시며 마귀를 쫓아내 주심으로써 그들에게 행 동으로 보여주신 결과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가까워지게 만드신 것 입니다. 그는 항상 위선자들을 대상으로 말씀하셨는데 그들이 하나님 백성이 되기에 합당한 행동을 하도록 생각해 보게 핫려는 것이었 습니다. 만일 우리가 비유를 통하여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전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우리 자신의 생활 이라도 충만하게 해야 될 것입니다. 비유의 대부분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독교인 생활과는 관계없는 일상 생활의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비유에는 우리와 같은 입장, 즉 하나님과 가까운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못한 사람들도 나 와 있습니다. 들에 나가서 일하겠다고 약속한 아들인데 나가지 않는다든지 일꾼이 하루종일 일을 하고서 같은 품삯을 받았다고 불평한 다든지, 큰 형인데 돌아온 탕자 동생이 후대 받는다고 질투한다든지, 또는 하나님의 제사장인데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지나간다 든지, 율법주의자로써 영생을 얻는 비결을 알려야 한다든지, 혹은 신임을 받아 포도원을 위임받은 일꾼이 주인의 아들을 죽여 버리는 일을 저지른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이러한 좋지 못한 예들이 어떻 게 우리 믿음의 생활을 충만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생활을 충만하게 하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즉 비유를 읽거나 들은 후, 자기자신을 거울에 들여다 보고 회개하여 우리 생활에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그렇 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흔히 우리는 힘이 없어서 세상 옳게 고칠 힘이 없다고 핑계를 하고 국회위원들이나 목사님들, 또는 남편에게 책임을 미뤄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가족, 한 나라가 혼자서 큰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을지 모르나 누구든지 이웃이나 남을 동원하여 변화를 가져오게 자극시킬 힘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유는 동원시킬 힘을 주는 역 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피라밋 위에 선 입장에서 내려다 보려고 합니다. 옛 선지자들은 절대적 세력을 가진 다윗왕엑 말한 것과 같이 세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으나 이사야 시대에는 이미 그것이 변하였고 특히 예수님 서는 종교에 대하여 가치관을 가진 일반사람들 을 상대로 말씀하셨습니다. 현 사회는 실권이 널리 분산되어 있으므 로 투표권을 통하여서, 똔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일을 성취하려고 노력 하므로써 비유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력있는 사람들은 아 니자만 해야될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킴으로써 세상의 죄악을 장려 시키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는 반면에 좋은 일을 성취하도록 공헌할 힘도 있는 것입니다. 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비유를 들어서 죄악을 폭로하고 선을 장려한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비유를 듣고 거울을 들여다 보고서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또 하난의 이유는 즉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의인을 받았으 므로 다시는 심판받지 않는다는 핑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서 지상에 계실 때나 마찬가지로 비유를 듣고 남은 비평하면서도 자기를 판단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심지어 죄를 짓 더라도 예수님 서 구속하여 주실 것이 보장이나 되어 있는 듯이 생각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말하기를 "그러므로 회개에 해당한 열 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 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마태복음 3:8-10) 라고 하였다.
우리는 예수님 서 불쌍한 자와 죄진 자들을 고쳐주시고 잘사는 자들에게는 비유의 거울을 보여 주심으로써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모 두 불러서 들어가게 해주시는 메시아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에 귀를 열어 듣고 자기의 모습을 살펴볼 책임이 있습니다. 비유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다 개하면 기쁨으로 능히 하나님 뜻대로 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실행하고 있는 여성들의 실예를 들겠으나 그 외의 여러분 서 아시는 예들을 추가하시기 바랍니다. 볼리비아 정부에서 철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임금을 반으로 줄였을 때, 광부부인들이 금식함으로써 전 세계에 그 실정이 보도된 실화. 남 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을 항의하기 위하여 독일 여성들이 남 아프리카에서 수출한 과일을 보이코트 한 일. 장기간 세계적 기아문제를 없애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 미국 장로교 총회로 하여금 공식적으로 세계적 기아대책을 세우도록 자극을 준 미국 남.북 장로교 여신도회의 성공 실례. 보스톤 근처에서 핵무기 반대운동을 여성들이 시작한 일. 신.구교 여신도들이 단결하여 자기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반대하여 평화촉진운동을 조직한 북 애란의 여신도들. 인도에서 봉사하던 데레사 성모, 또는 알려져 있지 않은 많은 여성 들이 병든 자들을 고쳐주고 굶주린 자를 먹이고 있다는 사실. 알젠틴에서 납치자들의 어머니 단체가 주일날 마다 오후 4에 부에 이노스 아리레스 광장에 모여 무언중 시위함으로써 세계에 모범을 보인 사실. 여러분 서 중요한 근본문제를 해결하거나 도울려고 노력하고 계 신 분을 아십니까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그 분이 거울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실 수 있습니까 그리하여 그 일이 성취될 때 까지 도와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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