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져라 (막15:21-32)
본문
여러분 살아가는 동안에 남모르게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기꺼히 진다면 축복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무조건 평안과 물질의 축복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순절 기간동안에 주님을 위 해서 어떤 십자가를 나는 져야 하는가를 많이 생까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라면 누구나가 십자가는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안 답게 만드는 것이 십자가라면 성도는 기꺼 히 십자가를 질 수가 있어야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예수님 곁에는 많은 군중들이 따라 다니는데 각각 목적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병고 치기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떡을 얻어먹기 위해서 진리를 배우기 위해서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3년동안 게실 때는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고 따르면서 환호를 했습니다. 그 가운데 나라를 잃어버린 망국의 설움을 안고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기대 하고 따르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시게 될 때는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도 흩어지고 예수님에게 은혜를 받은 많은 사람들도 흩 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끝까지 따른 소수의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울었던 소수의 여인들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의 머리에 옥합을 깨트려 부었던 마리아 예수님의 어머니 그의 이모 살로메 등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서 울지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하셨습니다. 울면서 따르 고 구경하는 무리들 곁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기 위하여 따르는 로마 군병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유일하게 한 사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구레 네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 그리고 부활주일을 맞이해서 많은 설교가 쏟아지지만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사람 시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은 성경구절에 짧은 한절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는 분명이 주님을 위하여 희생과 봉사 그리고 거룩함을 나타내는 사람 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으로 구 레네 시몬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번 성경통독을 하면서 성경을 읽을 때에 무릎을 꿇고 읽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감동이 되는 말씀을 기록하고 설교를 만듭니다.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아름답게 묘사된 위 대한 그리스도인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예수님 의 수난에서 많은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아픔을 나누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얼굴을 들고 있 었으나 그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뒤에서 예수님이 지고가는 십자가를 대신 지고간 한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아픔을 직접 나누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은혜를 받은 사람도 아니고, 평소에 예수님과 잘 아는 관계도 아닙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멀리 유대인의 명절을 지키려 고 예루살렘에 올라왔던 한 청년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8백마일이나 떨어진 북아프리카 지중해 남단에 있는 아프 리카의 항구도시에서 지금 말하면 리비아 지역입니다. 오랫동안 유대인 의 정착촌에서 살다가 유대인의 명절에 참석하려고 목적을 가지고 예루 살렘에 온 사람입니다. 그는 시골에서 갓 올라온 청년입니다.
그는 예루 살렘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 침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시고 가는 것을 보려고 몰려있 을 때 이 시골청년도 예수님이 지고가는 십자가를 구경하려고 그옆을 지 나갈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지우고 인도해가는 로마병정이 '청년아 거기 섰거라 네가 이 십자가를 대신지라'고 해서 예수님의 등에 있던 십자가 를 그 청년이 대신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실 십자가 처형에서는 죄수는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등에메고 처형장 소 까지 나아가야만 했는데 채칙질로 인해 많은 상처가 난 몸으로 그 무 거운 십자가를 지는 것은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십자가를 메고 가는 도중에 사람들과 군병들에게 매질을 당하는 것이 죄수의 운명 인데 주님은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쓰러지셨고 군병들은 시 몬을 붙잡아 억지로 십자가를 메고 가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를 지고 가시다가 멈추시고 쓰러지신 곳을 저는 성지순례를 하면서 가 본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청년을 보고서 시골에서 올라와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목사라는 십자가를 지게 된 것을 생각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울었다는 것은 바로 제가 충청도 아주 두메산골에서 돈을 벌어보겠다고 출세하면 고향에 가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주님은 나에게 억지로 예수를 믿게 하는 동기가 생각이 나서 울었습니다. 처음 서울에 올라가서 여러 직장을 옮겼는데 한 직장에서는 예수를 믿어야 직장을 다닐 수 있다라고 해서 나도 예수를 믿겠다고 해서 다닌 직장입니다. 거기서 월요일 아침되면 예배를 드리고 퇴근 무렵시간에는 모여서 지금 생각하면 율동을 배우고 교회학교를 가르치는 것을 그 직장에서 배운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은혜 받고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고 돈벌어 출세 하겠다는 마음은 사 라지고 주님을 위해서 일해야 되겠다는 결심 이때가 19살이 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겠으니 목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고 모든 행위도 목사가 되는 것처럼 행동을 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는데 6년동안 기도하고 공부에 대한 관심을 가 지고 있다가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예비고사를 보게되었고 협성신학대학 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26살이었습니다. 결혼도 한 상태였습니다. 결혼생활 하며 신학공부를 시작했고 아이를 낳고 어려운 일은 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셔서 순조롭게 목회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으니 너무 감사해서 울었던 것입니다.
2.십자가를 대신 져 줄 수는 없습니까 여러분 십자가를 대신 져 줄 수는 없습니까 그 청년은 그 자리를 지나 갈 뿐입니다. 그 청년은 의식적으로 아무 생각도 없이 그 현장에 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등에 졌던 그 무거운 십자가를 그에게 강제 로 지워졌습니다. 아마 구레네 시몬은 그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잘못 걸렸구나, 어쩌다가 내가 걸려가지고 저 예수의 형틀에 매여 대신 죽는 것은 아닌가'하며 십자가를 지고 언덕위를 올라가며 그의 심정은 착잡했 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강제성을 띤 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들을 맡겼습니다. 재수없어서 맡은 것 아닙니다. 어쩌다가 맡은 것 아닙니다. 예수를 믿기에 맡겼습니다. 그러 면 십자가를 제대로 져야 합니다. 자기십자가를 억지로라도 져야 복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다가 보면 주님이 나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려주신 것이 보일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자기 가 지고간 그 십자가에 예수님이 매달려 손에 못이 박히고 발에 못이 박 히고 머리에는 가시관이 쒸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물과 피를 다 흘리시는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아마도 '아, 내가 십자가에 못밖혀 죽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대해서 내가 십자가를 조금이라도 져주었으니-'하면서 동정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러러 보는 순간에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입에서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 옵소서. 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하나이다"하는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고 욕하고 원수를 맺는 무리들을 끝가지 용서하시는 하나님 의 아들 그분에 대해서 경외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지고 간 십자가에 매달린 하나님이 아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새롭게 보기를 시작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고 갔던 십자가에 매달려 하나님을 향하여 용 서를 비는 그 기도가 시몬의 가슴을 울렸고 그는 거기에서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임의 뒤를 따랐던 많은 무리들 가운데 유일하게 십자가를 대신 져준 시몬을 예수님은 오늘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이 병을 고침받고 기적을 보고 환호하면서 뒤를 따르지만 정작 주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져줄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건 을 통해서 신앙의 큰 은총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보고 은혜 받은 사람은 너무 많이 있습니다. 동정 녀 탄생할 때에도, 예수님의 사역할 동안에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 떡을 얻어먹은 사람들 등등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보고 믿는 사람만이 진정한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병을 고치는 예수 를 보았더라도 십자가를 바라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그 믿음은 헛것이 되고는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져야 합니다.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상에서 매달린 주님을 바라보면 서 구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자기 가문 전체를 예수께로 인 도했으니 막15:21"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했는데 알렉산더와 루포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지만 이 들이 그 아버지의 신앙을 따라서 위대한 그리스도의 가문이 되어 로마교회가 빛나게 되었습니다. 롬16:13"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말은 사도바울이 로마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이 구레네 시몬의 가문을 잊지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알렉산더와 루포는 형제입니다. 구레네 시몬의 아들입니다. 루포의 어머니는 구레네 시몬의 부인입니다. 사도바울은 구 레네 시몬의 부인을 자기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말은 구레네 시몬이 예수를 믿으므로 그 가문 전체가 다 훌륭한 그리스도를 믿는 신 앙의 가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져도 자신에게도 복이 되고 후세에 알려지고 그로 인하여 집안과 후손도 축복 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고통이지만 돌아 오는 것은 축복이요 영광이기에 지라는 것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에 주어 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는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의미 합니다. 이것을 보면 큰 은혜가 넘칩니다. 예수를 믿을 때에 억지로라도 믿으시 기 바랍니다. 억지로라도 믿으면 큰 축복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뒤를 따른다는 것은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진다는 말이 아 닙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주님이 지십니다. 주님만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몸으로 일백번 고 쳐먹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자기의 십자가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자기가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주님을 따르다가 진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우리 의 십자가인데 이것은 주님의 고난을 분담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아픔이 나의 아픔입니다. 주님의 고통이 나의 고통입니다. 주님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지고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민족을 향하여 주님이 우실 때 내가 우는 것은 십자가의 길이요 주님이 걸어야 할 의로운 길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아픔을 당한다면 그것이 내가 져야 할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유명한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글 을 쓴 토머스 아켐피스는 '주님의 하늘의 왕국을 사모하는 사람은 많거 니와 그의 십자가를 사모하는 사람은 심히 적다. 주님의 위로를 원하는 사람은 많으나 고난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매우적다. 그와함께 잔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고난의 잔을 마시려는 사람은 적다. 떡 을 나누는 일에는 큰 군중이 따랐으나 고난의 잔을 나누는 일에 같이한 자는 심히 적었다. 그의 기적을 보며 경탄한 사람은 많으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겸손을 따르는 사람은 심히적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순교하라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고난의 행렬에 나란히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구레네 시몬을 통하여 크게 회개한 한 사도가 바로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전날밤에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했던 장본인 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부인했고 주님을 버렸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갈 때 베드로는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구레네 시몬이 서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평소에는 주님의 뒤를 바짝 따르던 제자였습니다.
언제나 주님을 따랐던 베드로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십자가 뒤에서는 베드로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구레네시몬이 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평소에 주님을 사모하고 주 님을 따르고 있다면 어떤 고난이 와도 주님이 있는 그 자리에 내가 있어 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알의 밀알처럼 떨어진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고난당하는 그 자리에는 내가 있어야 하고 주님이 아파하는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다시한번 잘 생각해보시고 주님의 그 자리에 내가 과연 서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님을 받고 그의 길을 돌이킵니다. '내가 주님의 뒤를 따라야지'그는 주님의 길을 따르기 위해서 복음을 들고 소 아시아와 사마리아로 드디어 로마에 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로마에서는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성을 불지르고 모 든 죄목을 씌워서 기독교인들을 처형하고자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제자들은 '선생님 로마성을 피하시죠, 선생님은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 두려워서 로마성을 피하여 이른 아침 언덕 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퀘바디스 도미네' 즉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네가 피하여 도망가는 로마 성을 향하여 간다'라는 말씀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베드로는 벌걸음을 돌이켜서 '이제 내가 주님과 함께 그 고난의 길에서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로마성을 향하여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를 처형하는 원형극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나를 거꾸로 매달으시오. 나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제자, 나는 예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한 제자니 예수님처럼 매달릴 자 격이 없습니다. 나를 거꾸로 매다시요'했습니다. 베드로는 드디어 발이 위로 그 머리가 밑으로 향해서 십자가에 못이 박혔습니다. 그의 입과 코 에서는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베드로는 하늘가는 밝은 길을 알았기에 끝 까지 그 믿음위에 서서 지켰습니다. 그가 처음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뒤를 따르지 못했으나 성령님을 받고서는 로마성에 들어가서 주 님의 뒤를 따라서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고난의 길을 걸어간 수많은 종들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목사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순교자의 제물로 주님의 뒤를 따른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와같은 고난의 길은 우리에게 지금 없습니다. 누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핍박 을 합니까 누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죽일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지금 당하는 고난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뒤를 따라서 주 님의 의와 사랑을 이루기 위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의 뒤를 따라서 십자가의 형틀에 자기를 매어서 자기를 매장하고 자 기를 처형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리스도를 우 러러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되 순교할 수 있다는 각오를 가지고 십자가를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십자가가 없이는 부활 하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축복을 받으시기 위하여 누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겠느냐는 주님의 물 음에 여러분이 내가 지겠습니다 응답하여 여러분에게 복이 되고 후손들 에게 복이 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끝까지 따른 소수의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울었던 소수의 여인들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의 머리에 옥합을 깨트려 부었던 마리아 예수님의 어머니 그의 이모 살로메 등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서 울지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하셨습니다. 울면서 따르 고 구경하는 무리들 곁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기 위하여 따르는 로마 군병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유일하게 한 사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구레 네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 그리고 부활주일을 맞이해서 많은 설교가 쏟아지지만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사람 시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은 성경구절에 짧은 한절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는 분명이 주님을 위하여 희생과 봉사 그리고 거룩함을 나타내는 사람 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으로 구 레네 시몬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번 성경통독을 하면서 성경을 읽을 때에 무릎을 꿇고 읽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감동이 되는 말씀을 기록하고 설교를 만듭니다.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아름답게 묘사된 위 대한 그리스도인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예수님 의 수난에서 많은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아픔을 나누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얼굴을 들고 있 었으나 그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뒤에서 예수님이 지고가는 십자가를 대신 지고간 한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아픔을 직접 나누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은혜를 받은 사람도 아니고, 평소에 예수님과 잘 아는 관계도 아닙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멀리 유대인의 명절을 지키려 고 예루살렘에 올라왔던 한 청년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8백마일이나 떨어진 북아프리카 지중해 남단에 있는 아프 리카의 항구도시에서 지금 말하면 리비아 지역입니다. 오랫동안 유대인 의 정착촌에서 살다가 유대인의 명절에 참석하려고 목적을 가지고 예루 살렘에 온 사람입니다. 그는 시골에서 갓 올라온 청년입니다.
그는 예루 살렘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 침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시고 가는 것을 보려고 몰려있 을 때 이 시골청년도 예수님이 지고가는 십자가를 구경하려고 그옆을 지 나갈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지우고 인도해가는 로마병정이 '청년아 거기 섰거라 네가 이 십자가를 대신지라'고 해서 예수님의 등에 있던 십자가 를 그 청년이 대신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실 십자가 처형에서는 죄수는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등에메고 처형장 소 까지 나아가야만 했는데 채칙질로 인해 많은 상처가 난 몸으로 그 무 거운 십자가를 지는 것은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십자가를 메고 가는 도중에 사람들과 군병들에게 매질을 당하는 것이 죄수의 운명 인데 주님은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쓰러지셨고 군병들은 시 몬을 붙잡아 억지로 십자가를 메고 가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를 지고 가시다가 멈추시고 쓰러지신 곳을 저는 성지순례를 하면서 가 본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청년을 보고서 시골에서 올라와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목사라는 십자가를 지게 된 것을 생각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울었다는 것은 바로 제가 충청도 아주 두메산골에서 돈을 벌어보겠다고 출세하면 고향에 가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주님은 나에게 억지로 예수를 믿게 하는 동기가 생각이 나서 울었습니다. 처음 서울에 올라가서 여러 직장을 옮겼는데 한 직장에서는 예수를 믿어야 직장을 다닐 수 있다라고 해서 나도 예수를 믿겠다고 해서 다닌 직장입니다. 거기서 월요일 아침되면 예배를 드리고 퇴근 무렵시간에는 모여서 지금 생각하면 율동을 배우고 교회학교를 가르치는 것을 그 직장에서 배운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은혜 받고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고 돈벌어 출세 하겠다는 마음은 사 라지고 주님을 위해서 일해야 되겠다는 결심 이때가 19살이 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겠으니 목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고 모든 행위도 목사가 되는 것처럼 행동을 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는데 6년동안 기도하고 공부에 대한 관심을 가 지고 있다가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예비고사를 보게되었고 협성신학대학 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26살이었습니다. 결혼도 한 상태였습니다. 결혼생활 하며 신학공부를 시작했고 아이를 낳고 어려운 일은 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셔서 순조롭게 목회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으니 너무 감사해서 울었던 것입니다.
2.십자가를 대신 져 줄 수는 없습니까 여러분 십자가를 대신 져 줄 수는 없습니까 그 청년은 그 자리를 지나 갈 뿐입니다. 그 청년은 의식적으로 아무 생각도 없이 그 현장에 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등에 졌던 그 무거운 십자가를 그에게 강제 로 지워졌습니다. 아마 구레네 시몬은 그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잘못 걸렸구나, 어쩌다가 내가 걸려가지고 저 예수의 형틀에 매여 대신 죽는 것은 아닌가'하며 십자가를 지고 언덕위를 올라가며 그의 심정은 착잡했 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강제성을 띤 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들을 맡겼습니다. 재수없어서 맡은 것 아닙니다. 어쩌다가 맡은 것 아닙니다. 예수를 믿기에 맡겼습니다. 그러 면 십자가를 제대로 져야 합니다. 자기십자가를 억지로라도 져야 복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다가 보면 주님이 나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려주신 것이 보일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자기 가 지고간 그 십자가에 예수님이 매달려 손에 못이 박히고 발에 못이 박 히고 머리에는 가시관이 쒸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물과 피를 다 흘리시는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아마도 '아, 내가 십자가에 못밖혀 죽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대해서 내가 십자가를 조금이라도 져주었으니-'하면서 동정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러러 보는 순간에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입에서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 옵소서. 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하나이다"하는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고 욕하고 원수를 맺는 무리들을 끝가지 용서하시는 하나님 의 아들 그분에 대해서 경외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지고 간 십자가에 매달린 하나님이 아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새롭게 보기를 시작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고 갔던 십자가에 매달려 하나님을 향하여 용 서를 비는 그 기도가 시몬의 가슴을 울렸고 그는 거기에서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임의 뒤를 따랐던 많은 무리들 가운데 유일하게 십자가를 대신 져준 시몬을 예수님은 오늘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이 병을 고침받고 기적을 보고 환호하면서 뒤를 따르지만 정작 주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져줄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건 을 통해서 신앙의 큰 은총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보고 은혜 받은 사람은 너무 많이 있습니다. 동정 녀 탄생할 때에도, 예수님의 사역할 동안에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 떡을 얻어먹은 사람들 등등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보고 믿는 사람만이 진정한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병을 고치는 예수 를 보았더라도 십자가를 바라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그 믿음은 헛것이 되고는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져야 합니다.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상에서 매달린 주님을 바라보면 서 구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자기 가문 전체를 예수께로 인 도했으니 막15:21"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했는데 알렉산더와 루포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지만 이 들이 그 아버지의 신앙을 따라서 위대한 그리스도의 가문이 되어 로마교회가 빛나게 되었습니다. 롬16:13"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말은 사도바울이 로마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이 구레네 시몬의 가문을 잊지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알렉산더와 루포는 형제입니다. 구레네 시몬의 아들입니다. 루포의 어머니는 구레네 시몬의 부인입니다. 사도바울은 구 레네 시몬의 부인을 자기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말은 구레네 시몬이 예수를 믿으므로 그 가문 전체가 다 훌륭한 그리스도를 믿는 신 앙의 가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져도 자신에게도 복이 되고 후세에 알려지고 그로 인하여 집안과 후손도 축복 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고통이지만 돌아 오는 것은 축복이요 영광이기에 지라는 것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에 주어 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는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의미 합니다. 이것을 보면 큰 은혜가 넘칩니다. 예수를 믿을 때에 억지로라도 믿으시 기 바랍니다. 억지로라도 믿으면 큰 축복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뒤를 따른다는 것은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진다는 말이 아 닙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주님이 지십니다. 주님만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몸으로 일백번 고 쳐먹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자기의 십자가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자기가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주님을 따르다가 진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우리 의 십자가인데 이것은 주님의 고난을 분담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아픔이 나의 아픔입니다. 주님의 고통이 나의 고통입니다. 주님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지고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민족을 향하여 주님이 우실 때 내가 우는 것은 십자가의 길이요 주님이 걸어야 할 의로운 길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아픔을 당한다면 그것이 내가 져야 할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유명한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글 을 쓴 토머스 아켐피스는 '주님의 하늘의 왕국을 사모하는 사람은 많거 니와 그의 십자가를 사모하는 사람은 심히 적다. 주님의 위로를 원하는 사람은 많으나 고난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매우적다. 그와함께 잔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고난의 잔을 마시려는 사람은 적다. 떡 을 나누는 일에는 큰 군중이 따랐으나 고난의 잔을 나누는 일에 같이한 자는 심히 적었다. 그의 기적을 보며 경탄한 사람은 많으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겸손을 따르는 사람은 심히적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순교하라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고난의 행렬에 나란히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구레네 시몬을 통하여 크게 회개한 한 사도가 바로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전날밤에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했던 장본인 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부인했고 주님을 버렸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갈 때 베드로는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구레네 시몬이 서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평소에는 주님의 뒤를 바짝 따르던 제자였습니다.
언제나 주님을 따랐던 베드로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십자가 뒤에서는 베드로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구레네시몬이 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평소에 주님을 사모하고 주 님을 따르고 있다면 어떤 고난이 와도 주님이 있는 그 자리에 내가 있어 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알의 밀알처럼 떨어진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고난당하는 그 자리에는 내가 있어야 하고 주님이 아파하는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다시한번 잘 생각해보시고 주님의 그 자리에 내가 과연 서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님을 받고 그의 길을 돌이킵니다. '내가 주님의 뒤를 따라야지'그는 주님의 길을 따르기 위해서 복음을 들고 소 아시아와 사마리아로 드디어 로마에 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로마에서는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성을 불지르고 모 든 죄목을 씌워서 기독교인들을 처형하고자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제자들은 '선생님 로마성을 피하시죠, 선생님은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 두려워서 로마성을 피하여 이른 아침 언덕 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퀘바디스 도미네' 즉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네가 피하여 도망가는 로마 성을 향하여 간다'라는 말씀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베드로는 벌걸음을 돌이켜서 '이제 내가 주님과 함께 그 고난의 길에서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로마성을 향하여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를 처형하는 원형극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나를 거꾸로 매달으시오. 나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제자, 나는 예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한 제자니 예수님처럼 매달릴 자 격이 없습니다. 나를 거꾸로 매다시요'했습니다. 베드로는 드디어 발이 위로 그 머리가 밑으로 향해서 십자가에 못이 박혔습니다. 그의 입과 코 에서는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베드로는 하늘가는 밝은 길을 알았기에 끝 까지 그 믿음위에 서서 지켰습니다. 그가 처음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뒤를 따르지 못했으나 성령님을 받고서는 로마성에 들어가서 주 님의 뒤를 따라서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고난의 길을 걸어간 수많은 종들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목사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순교자의 제물로 주님의 뒤를 따른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와같은 고난의 길은 우리에게 지금 없습니다. 누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핍박 을 합니까 누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죽일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지금 당하는 고난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뒤를 따라서 주 님의 의와 사랑을 이루기 위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의 뒤를 따라서 십자가의 형틀에 자기를 매어서 자기를 매장하고 자 기를 처형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리스도를 우 러러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되 순교할 수 있다는 각오를 가지고 십자가를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십자가가 없이는 부활 하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축복을 받으시기 위하여 누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겠느냐는 주님의 물 음에 여러분이 내가 지겠습니다 응답하여 여러분에게 복이 되고 후손들 에게 복이 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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