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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려고 오신 예수 (막10:43-45)

본문

크리스마스가 되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마이라와 요셉입니다. 이 두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성탄절만 되면 언제나 주인공처럼 나타나는 사람들입니다. 당시 마리아는 일설에 의하면 16살 난 처녀였다고 합니다. 철없는 여인이 느닷없이 아이를 낳아 놓고는 얼마나 당황했겠는지, 또 요셉이라는 젊은이는 졸지에 마음에도 없는 아버지가 되어 가지고는 해산하는 아내의 뒷바라지를 어떻게 했는지, 탯줄은 어떻게 잘 잘라 냈는지, 또 목욕은 잘 시켰는지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이 요셉이라는 젊은이는 주변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오죽 주변이 없으면 마구간에서 해산을 하게 했겠습니까 방이 없으면 어디고 비집고 들어가서 사람들을 몰아 내고서라도 그 곳에서 아이를 낳게 해야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탄절만 되면 이 두 사람이 늘 생각이 납니다. 두 번째로 생각나는 사람은 동방 박사들과 목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뜻있게 성탄절을 맞이한 사람들입니다. 이미 700년 전부터 이사야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탄생하리라고 예언을 했고, 사람들은 모두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는데 결국 기다리던 그 예수님을 맨먼저 만나 본 사람들이 이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메시아의 도래를 간절하게 준비하고 기다렸는데 결국 천사가 와서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람들입니까 그래서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이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시므온과 안나라는 두 노인도 생각이 납니다. 이 두 사람은 아주 경건하게 그 시대를 살았던 노인들입니다. 메시아 탄생을 대망하면서, 예수님의 탄생을 보고서야 죽겠다고 각오를하고 기도하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마침내 기도한 대로 메시아를 품에 안아 보고 죽었습니다. 얼마나 영광된 사람들입니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뜻이 있는 신앙을 품고 있으니까 하나님은 그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모두 계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통해서 계시를 받았고, 목자들은 천사를 통해서 계시를 받았고, 두 노인은 성령님을 통해서 계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이 땅에 태어나는데, 그것도 마구간에서 태어나는데 거기에 징조도 없고, 계시도 없이 태어나셨겠습니까 그래서 그 계시를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성탄절만 되면 또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주 불행한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그 첫째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율법을 훤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성경에 대해서는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그들은 종교가였지 신앙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계시가 없었습니다. 종교가에게는 계시가 없습니다. 계사가 없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볼 것을 보지 못하고, 들을 것을 듣지 못합니다. 이것이 불행입니다. 동방 박사들과 목자들은 그 멀리에서도 베들레헴까지 와서 경배를 하고 갔는데 이 사람들은 베들레헴 가까이 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같은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수치입니까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생명 없는 신앙은 이렇습니다. 이 다음 주님 오실 때도 이 같은 모습은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절만 되면 이 불행한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또 생각나는 사람은 여관 집 주인입니다. 나는 이 사람 참 한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집에서 예수가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자기가 살고 있는 울 안에서 태어나셨는데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고대하던 메시아가 자기 집 안에서 태어나는 영광이 주어졌는데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얼마나 한심한 사람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계시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계시가 없는 사람에게는 보화를 손에 갖다 쥐어 줘도 모릅니다. 보십시오. 자기 집 헛간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는데도 몰랐습니다. 얼마나 한심한 사람입니까 헤롯도 한심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통치를 하고 있는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셨는데도 몰랐습니다. 자기 백성 가운데서 메시아가 탄생하셨으니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백성 가운데서 노벨상만 받아도 야단인데, 올림픽에서 금메달만 따내도 야단인데, 메시아가 자기 백성 가운데서 탄생했는데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더 무지한 것은 이 사실을 나중에 가서 알기는 알았는데 그러면 죄송해서라도 빨리 가서 경배를 해야 할텐데 오히려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무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계식다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불행한 일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한다는 것, 이것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바리새인들, 제사장들,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이들은 모두 700년 전부터 예수께서 오시리라고 이사야가 예언한 예언서를 손에 들고, 읽고, 외우고,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밥만 먹으면 성경을 연구했던 사람들입니다. 메시야가 탄생하리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는 그것을 연구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신앙으로 믿고 연구한 것이 아니라 종교가로서, 머리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정작 그가 오실 때는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계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멀리서 살고 있던 동방 박사들은 별의 계시를 받고서는 그 멀리서 산 넘고 물 건너서 거기까지 찾아왔습니다. 목자들은 천사들로부터 계시를 받고 찾아왔습니다. 시므온이나 안나라는 노인은 성령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서 알았습니다. 여러분, 성탄은 계시가 없는 사람에게는 한낱 무의미한 날입니다. 있다면 그냥 술이나 마시는 날이고, 밤새워 화투나 하는 날이고, 몰려 다니며 환락에 취하는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탄절에는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죄송스러운 뜻이 들어 있는 날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뜻을 알게 되면 이 성탄의 날은 우리들이 마냥 즐거워만 할 수 없는 죄송한 날이고, 송구스러운 날입니다. 성탄에는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뜻이 들어 있습니다.
1. 섬김의 정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이렇게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인자(人子)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아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인간이 신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신이 인간이 되어서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그것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신의 자리에 올라 앉은 것이 아니고 신이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이 지니고 있는 신비한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누추한 이 세상에 오셨으면 사람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하고, 영접하고, 뜨겁게 맞이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배척하고, 욕하고, 죽여서 땅에 묻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섬기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을 보면 “나는 섬기려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평생을 섬기는 생활로 일관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일생은 영광보다 종으로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강조하셨습니다. “(마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성탄의 의미 속에는 이 같은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음미해야 합니다.
2. 대속의 정신입니다. 여러분, 대속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남의 죄를 위해 대신 죽음으로써 그의 죄를 없애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죽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탄에는 대속의 정신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성탄절만 되면 모두 재미있어 하고, 술 마시고, 밤샘을 하면서 좋아들 하는데 사실은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고 숙연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이 영광을 받으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죽으시려고 오셨기에 더 숙연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성탄절 전 4주간을 대강절이라고 합니다. 이 4주 동안은 숙연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오실 주님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이 때 예전 색깔이 보라색입니다. 보라색은 참회와 애도를 의미하는 색입니다. 그래서 연중 보라색은 두 번 사용합니다. 한번은 대강절 때이고, 또한 번은 부활절 전 6주간 사순절 때입니다. 고난당하시고, 죽음당하시고, 땅에 묻히는주님의 수난을 생각하면서 보내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이 때 보라색을 사용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섬김으로 그냥 끝나 버리고, 죽음당하시는 것으로 그냥 끝나 버리고 말았다면, 예수님은 간디나 소크라테스 이상의 사람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세상을 위한 인도주의자는 될 수 있었을지는 모르나 “구세주”라든가 “대속주”는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탄이 뜻이 있는 날인 것은 주님께서 이 땅에 인간을 위해서 제물이 되기 위해서 오셨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만도 황송한 일인데 거기다 인간의 종이 되시고, 인간을 위해서 스스로 제물이 되셨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인간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을 도리라고 해서 심지어 아들도 바치고, 딸도 바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성탄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이 지니는 뜻입니다.
3. 희생 정신입니다. 또 예수님의 성탄 속에는 “희생 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만도 대단한 희생입니다.
그런데 그가 오신 자리가 마구간입니다. 그 곳은 인간이 내려갈 수 있는 최하의 자리입니다. 거기다 태어나자마자 피난 생활부터 했습니다.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는데 그 사람들에게 쫓겨 피신을 다니십니다. 이것은 굉장한 희생이고 낮아짐입니다. 희생도 이런 희생이 없습니다. 철저한 희생이고, 철두 철미한 낮아짐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에는 선물을 주고받는 것으로 다할 수가 없는 날이고, 술에 취해 방황하는 것은 모두 모독입니다. 적어도 성탄 속에는 이 같은 정신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섬김의 정신과 대속의 정신과 희생의 정신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성탄입니다. 그 예수님이 오늘 아침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섬기는 자가 되라. 너희도 이렇게 희생하고 녹아지는 소금과 빛이 되라.”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부탁입니다. “(막10: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막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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