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 바디매오 (막10:46-52)
본문
구원도리를 가르친 말씀 성경에 기록된 이런 이적은 어떤 역사에 한번 있었던 그 사실을 우리에 게 소개하는 것 아닙니다. 이것은 다 우리에게 생명구원 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경은 다 기록해서 둘려고 하면 온 세상에 두어도 다 둘 수 없는 많은 양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간추려서 66권에 기록해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밤에 봉독한 소경 눈뜬 이 사실도 온 세상에 둘 만한 그런 필요 있는 모든 기록을 다 제하고 그것보다 더 우리에게 필요해서 기록해 주신 구원 도리의 말씀인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여기서 뭐 소경이 눈 떴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교는 소경이 눈뜨는 예수교라 하는 것을 알리는 그런 것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 도리를 가르치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 구원 도리를 어떻게 가르치고 계시는가 하는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 말씀이 자기에게는 복음이 되지 를 못합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
그런데 여기 바디매오라는 이 소경은 그 지방에서 불쌍하고 가련한 자로 유명하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해석은 아무나따나 붙이면 되고 이상하게만 꾸며대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마디를 잘못하면 심판 받습니다. 없는 걸 있다 하면 하나님의 성경에 기록한 그 벌을 더 받습니다. 있는 걸 없다 하면 구원에서 제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나따나 성경 은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쌍하기로 유명하다는 것은, 그 사람은 디매오의 아들 거지 바디매오 라 이렇게 그 부모의 이름까지 다 여기에 기록한 것을 보면 그 지방에서 그만큼 비참하고 가련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도 알게 되고 아들도 알게 될 정도로 그렇게 그 당시에 그는 비참하고 가련한 자로 유명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도시에서도 유명하게 비참하고 가련하면 그 사람은 소문이 많이 나 고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와같이 이 소경은 아주 불쌍하고 가련한 것으로써 유명한 그런 참 가장 천한 사람입니다. 그랬는데 그가 길가에 있을 때에 나사렛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그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럴 때에 거기 따라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소경에게 잠잠하라고 꾸 짖었다 이랬습니다. 아마 별별 뭐 책망을 하고 야단을 쳤을 것입니다.
이 놈 고약한 놈 선생님이 지나가시는데 그런다고 뭐 별별 말을 했을 것입니다. 꾸짖었다 하고, 또 잠잠하라 했다고 기록된 것 보면 그런 분위 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소경은 그럴수록 더 심히 부르짖고 더 크게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습니다. 더욱 심히 소리질러 예수님에게 불쌍히 여겨 달라고 호 소했습니다. 그러니까 옆에 사람들은 또 잠잠하라는 소리도 아마 더 많이 떠들었을 것입니다. 이놈 잠잠하라 하고 뭐 꾸짖고 야단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바디매오는 환경에서 그렇게 야단치는 데에 눌려지지 않고 꺾어지지 않 고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심히 부르짖었습니다. 그것은 왜 그랬는가 자기가 예수님 만나서 예수님이 자기의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 주시면 자기 문제는 그만 다 해결이 되어서 금생도 해결이 요 내세도 해결이요, 모든 불행이 다 해결되는데, 예수님 만나면 다 되는데, 거기에 지금 생사화복이, 죽고 사는 것이, 모든 화복이 거기에 달렸는데, 거 기 달려 있는 것을, 예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을 확실히 아는데 옆에 사람들 이 자꾸 방해를 하고 고함을 지르니까, 어실므실하게 알았다면 옆에서 말하 면 이 말 안 해야 되는가보다 그만 중단했을 것인데, 자기는 이분 만난 이것이 아니면 영원히 참 가련한 신세가 되는 것을 확실히 아니까, 주님 만 나서 주님에게 해결 못 받으면 죽고 받으면 살고 하니까 옆에 사람들은 방 해하지만 생명을 내놓고 결사적으로 부르짖었던 그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 기소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모든 사람들은 방해하고 잠잠하라 고 말하고 그는 고함지르고 한참 이렇게 좀 떠들었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께서 척 머물러 서셔서 그를 부르라 말씀했습니다.
부르짖는 소경을 이리 오라고 부르라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이 그 소경을 불쌍히 여겨서 돌보시니까, 부르라 하시니까 벌써 그 한마디에서 거 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다 변해졌습니다. 좀 전에는 천대 멸시하고 이렇게 마구잡이로 억누르고 이렇게 했지만 예수님이 그를 불러 오라 하시니까 그만 그때에 모든 사람들의 인심이 변해졌습니다. 그만 천하게 봤던 사람이 야, 주님이 부르신다. 이러면서 모두 그 소경에게 말하기를 안심하라 안심하라, 너 부른다 부른다 이러면서 모두 다 그만 아주 소 경 대우가 달라졌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좀 깊이 느껴야 됩니다. 안심하라, 너를 부르신다. 이러니까, 소경이 주님이 부르신다는 그 말을 듣고는, 거기 나타내기를 겉옷을 내어버리고 소경이 겉옷을 내어 버리고 뛰어 주님에게로 갔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 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소경으로 말하면 오랫동안 거지로서 길가에 자고 이렇게 하니까 겉옷이 라면 자기 이불도 되고 침구도 되고 자기 집도 되고 그만 그 겉옷 하나면 다입니다. 그거 하나뿐이오. 그것은 제 재산 다라.
그런데, 겉옷을 버리고 주님이 부르신다 하니까, 병 나으면 다 해결 될 터이니까 그까짓 거 뭐, 병 낫는 그것이 자기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겉옷, 겉옷이 자기 모든 재산이지만 그 모든 재산보다 병 낫는 그것이 더 크기 때문에 그걸 버려 두고 주님에게 갔습니다. 옆에 사람들이 말했을 것이오. 네가 이거 버리고 가면 오늘 저녁이라 도 어떻게 하려고 이걸 버리고 가느냐 이거 가지고 가지. 뭐 옆에 사람 이 그랬을 거라. 네 신세가 지금 이런데 이거, 오늘 저녁이라도 그만 겨 울이면 얼어서 절단날 것이고 이러니까 가지고 가야 되지 않느냐 고 말하 지만 그는 그만 버려 버리고 달려갔습니다. 고거 주님이 보시고.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일러 가 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래 물으니까, 이제까지 거지로 지냈으니까 재산도 필요할 것이고, 의복도 필요할 것이고, 장가도 가고 싶을 것이고 뭐 소원 많을 것입니다. 소원 많아요. 그 거지도 사람인데, 부자도 소원이 많은데 더군다나 거지는 소원이 더 많을 것 아닙니까 모든 것 하나도 가져보지 못했으니 소원이 많을 거라 말이오. 이런데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내가 다른 소원 아무 것도 없고 보기를 원하나이 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들이 가서 깊이 새기고 해서 여기서 참 영감, 성신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1. 바디매오는 바로 나 그러면 이 말씀에서 나나 여러분들이나 첫째로 깨달을 것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자신이 이 소경 바디매오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첫째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디매오의 이 일을 다른 사람의 일로 듣고 자기는 구경하는 것 으로 보고 바로 자신이 이 바디매오가 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이요 이 말씀이 저에게 구원을 주는 복음이 되지 못하고 이 말씀이 자기 를 언젠가 정죄해서 자기는 멸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바디매오는 그 지방에서 아주 불쌍하고 가련한 것으로써 유명한 사람 입니다. 소문이 난 사람입니다. 먼저 우리가 이 사람이 되는 것이 복이 있습니다. 세상은 멸망시키는 세상이기 때문에 어쨌든지 자기 잘난 재미로 삽니다. 또 자기를 힘껏 잘났다고 자랑해서 다른 사람에게 아주 복되고 잘나고 유력 한 사람으로 과장해서 소개하기를 힘쓰고 있는 정신 없는 세상입니다. 완 전히 미치광이가 되어 가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 성경을 주신 것은 그 지방에서 불쌍하기로 소문난 소경 바디매오가 바 로 너 자신이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어떤 큰 재벌가가 되어 있어도 나는 큰 재벌을 가졌기 때문에 바디매 오가 아니라, 나는 정권을 가졌기 때문에 바디매오가 아니라, 나는 큰 종교 창설자요 도덕가요 과학자로 유명한 사람이니까 나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자신이 벌써 멸망 가운데 빠져 가지고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우리가 여기서 이 교훈을 받을 것은 자기가 복된 사람이라, 영광된 사람이라, 참 그는 성공하고 위대한 사람이라 그렇게 지금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공의가, 정의가, 하나님의 심 판이 자기를 그렇게 복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조만간에 심판 앞에 서야 할 터이니까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은, 복되다 인정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자기의 비참하고 불행한 점을 깨닫고 그 점을 평생 부끄러워하고 그 점을 벗어나 보려고 애쓰는 그런 사람들이 다 심판에 무사히 통과하고 심판 너머 영원한 세계에 영광 있는 그 구원을 얻 었지, 자기 잘난 재미로 사는 사람, 자기 장점 보고 사는 사람, 죽을 때까지 자기 장점 자랑하고 소개하고 만족하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심판 너머 비참 하고 가련치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2. 길에서 예수님 기다림
그런데 이 소경은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가에 앉아서 예수님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길가와 같은 이 세상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가고 있는 이 세상은 곧 길거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바디매오는 예수님 지나가시기만 고대하고 기다렸습니다. 자기의 비참하고 가련한 그 실상을 알고, 알고난 다음에는, 인생을 비참 과 가련에서 구출하실 이는 예수님뿐이십니다.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구출 하실 이가 없습니다. 예수님뿐이기 때문에 그는 길가에서 예수님을 기다리 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비참한 걸 깨닫고 주님밖에는 나를 여기에서 구원할 이가 아무도 없으니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는 그 구원의 기회를, 구원의 주님 을 만나는 그것을 노리고 그것을 기다리고 그 기회를 찾고, 자기의 전부는 이 세상 걸음에서 다른 무엇 보고 가지 않고 자기의 모든 비참을 구원해 주 실 주님 만날 이것만을 자기는 전 소망으로 전력을 기울여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 되는 것이 복이 있습니다. 참 이런 사람이야말로 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저 사람은 세상에 제일 모든 복이 구비한 사람이 라 그렇게 할 수 있는 그 가운데서 자기의 비참과 가련을 발견해 가지고 그 점을 자기는 해결해야 된다는 그 면에 눈을 뜬 사람은 참 산 사람이요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모든 문제는 예수님 한 분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지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해결해 주실 이가 없기 때문에 이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길가에서 기 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만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으니 예수님의 구원 을 항상 기다리고 그 기회를 기다리고 거기다가 소망을 두고 있는 이 사람 이 되는 것이 이 복음을 바로 받는 사람입니다.
3. 소경됨이 불행의 원인 바디매오는 이렇게 비참하게 된 그것이 자기가 보지 못한 까닭이라는 것 을 바로 알았습니다. 보지 못한 까닭이라는 것을 이 소경은 알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불행의 원인이 되어 있는 보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의 모든 금생과 내세 영육의 불행은
첫째로 하나님을 바로 보지 못하는 데에서 불행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대해서 자기의 보지 못하는 그 점을 발견해 가지고 보는 자 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좀 더 보 고, 하나님을 보는 가운데서, 모세와 같은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실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다고 하지만 지금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 것을 보는 눈이 자꾸 밝아져 가야 되겠고, 또 지금 나와 상대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지 이것을 또 우리가 자꾸 찾아서 바로 봐야 되겠습니다. 그분의 크심을 아는 것은 좋은데 그 크신 하나님이 지금 나와 어떤 관계 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우리가 바로 보는 그 심령이 있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또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지, 무엇을 명령하고 계시는지, 이 현실은 분명히 주님이 나에게 주신 현실인데 이 현실에 하나님께서 나에 게 명령하는 것이 무엇이며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나에게 지금 경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도 우리가 바로 봐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 서 바로 볼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또 우리가 지난 모든 세월을 생각해 보면 자기에게 대해서 바로 보지 못 해서 이거는 내가 할 일인지 안 할 일인지, 또 이것은 내가 계속해야 될는지 끊어야 될는지, 이 사람은 사귀어야 될는지 이 사람은 삼가 조심해서 멀리 해야 될 사람인지, 내가 이 일은 해야 될 일인지 안 해야 될 일인지, 내가 소원하고 있는 이것이 망할 소원인지 흥할 소원인지, 내가 지금 잔뜩 취미를 누리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이 취미는 나를 망치는 취미인지 나를 복되게 하는 취미인지 우리는 참, 레위기에 쪽발로 걸어가라고 말씀하 신 대로 우리가 가는 것은 둘입니다. 나 한 사람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다 자기 잘난 재미로 살고 자기는 의인인 줄 알고 사는데 자기에게 참 주님이 노하시는 요소가 무엇이 있는지 이것을 발견해 가지고 그것을 회개한다면 복 있는 사람이 되겠고, 주님께서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그것을 발견하고 그 사람이 되면 그만 행복될 터인데 자기에게 대해서 얼마나 우리가 무지한지 모릅니다.
자기를 바로 보지 못하는 데에서 인생이 망하고, 하나님을 바로 보지 못 하는 데에서 인생이 망하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현재 관계되어 있는 것을 바로 보지 못하는 데에서 인생이 망하고, 자기와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를 가져야 된다는 것을 바로 알지 못하는 데에서 망합니다. 이 바디매오가 보지 못하는 데 철천지 포원이 된 이와 마찬가지로, 이 바디매오를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내가 우리도 바디매오와 같이 뭐이든지 바로 보지 못하는 요기서 나는 멸망한다 요것을 뼈저리 마음 아피 느끼고 깨닫고 포원이 져서 바로 보기를 원하는 이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또 천국에 대해서 우리는 보지 못합니다. 천국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엉뚱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서 바로 보셨기 때문에 그는 후회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성령님의 충만한 사람들은 하늘나라를 바로 봤습니다. 하 늘나라가 어떠냐 내가 하늘나라 가면 어찌 되느냐 하늘나라는 어떤 조 직이 되어 있으며, 어떤 법규로 되어 있으며, 어떻게 모두 다 시설이 되어 있으며, 하늘나라의 그 법도는 무엇이며, 거기 있는 모든 조직은 어찌 되었 으며, 거기 있는 영광과 존귀는 어떤가 하늘나라를 바로 봤으면 땅의 것 을 배설물로 삼지 않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 보는 데 얼마나 소경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도 그저 나쁜 게 아니라 바로 보면 참 한없는 복된 길도 있고 망하는 길도 있는데 우리가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 우리가 세상에서 바로 보지 못함으로 망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것을 찾아서 깨달은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 멸망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사람을 바로 보지 못해서 멸망했다. 무엇 때문에 부 도 나 가지고 뭐 감옥에 들어가고, 부도가 나 자살도 하고, 부도가 나 가지 고 도망도 치고 숨기도 하느냐! 사람을 보지 못해 그런 거 아니냐! 우리가 사람을 바로 보는 데에는 얼마나 축복이 거기 달렸는데, 사업하는 데는 사람을 바로 보는 데에서 사업 성공과 실패가 있는 것인데 사람을 바 로 보지 못하는 것, 다음으로 우리가 물질에 대해서 보는 눈이 어둡습니다. 바로 보지 못합니다. 어찌 됐든가 돈은 들어오면 좋아합니다. 사람은 내 사람이 되면 좋 아합니다. 아니오. 일생 동안 안 만나야 될 사람도 있습니다. 자꾸 내 사람만 되면 좋은 게 아니라. 일은 성사만 되면 좋아합니다. 아니오. 성사만 되면 좋아하는 것은 일방적 지식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망하고 맙니다. 성사가 되는 것이 좋을 때도 있고 실패가 되는 것이 좋을 때도 있는 것을 양면을 보지 못하면 그는 원만 한 지식이 아닌 것입니다. 물질을 바로 보지 못해서 우리가 소경이라.
4. 눈 띄워 주실 이는 예수님 뿐 우리가 모든 일을 바로 보지 못하는 나는 일을 바로 보지 못한다, 나는 사건 처리를 바로 하지 못한다. 여기에 대해서 마음 아피 느낀 사람, 그래 날뛰다가 바로 보게 해 주는 이가 이 세상 모든 과학이나 학문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선생에게 가 가지고 하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선 생은 하나뿐이다 말씀했습니다. 예수님뿐으로 아는 이 사람이 얼마나 복 이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말로만 하지 실상은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 고 있습니다. 비참한 점을 우리가 모르지, 비참한 점을 찾지 못하지, 비참하게 된 그것 이 원인이 무엇이라는 것을 찾지 못하지, 원인을 찾았다 할지라도 예수님 외에는 해결해 줄 이가 없다는 것을 바로 잡지 못하고 엉뚱한 일을 자꾸 하 고 있지. 인생이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대하고 있는 것이나 내 자신이 어떤 인간이라는 것을 보는 데에나 하늘나라에 대해서 바로 보는 것이나 세상에 대해서 바로 보는 것이나 인생에 대해서 인간들을 바로 보는 것이나 사건들을 바로 보는 것이나, 물건을 바로 보는 것은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바로 보게 해 주실 수 있지 다른 것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바로 보는 이 심령의 지혜를 줄 이는 예수님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세계에 있는 학문을 다 통달해도 그것은 자기의 행불행 생사화복을 보는 눈이 하나도 없습니다. 깜배기입니다. 소경이오. 소경이면 좋지만 꺼꾸로 봅니다. 망할 것은 흥한다, 죽는 것은 산다, 사는 것은 죽는다 해 가지고 전멸되는 것이 인생 아닙니까 내가 보지 못함으로 모든 불행이 내게 와 가지고 영원히 비참하게 되는데 이 비참의 원인되는 보지 못하는 이것은 예수님 한 분만이 보게 해 주 실 수 있다 하는 요 믿음을 가진 것을 주님이 칭찬합니다. 요 믿음 가르 칠려고 이 바디매오를 여기 기록한 것이오. 바디매오 소경 눈뜬 걸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요기서 우리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오. 금생과 내세 영과 육 전부 멸망하는 것은 보지 못하는 그것이 원인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바로 치료해 주실 이는 예수님 외에는 천상 천하에 아무 도 없습니다. 요거 믿습니까!
5. 방해 받지 않고 부르짖은 믿음 또 바디매오는 자기 현실 수많은 사람들의 방해에 눌리지 않고 더욱 심 히 호소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자기는 확실히 믿기 때문에, 이 예수님만 잡 고 예수님이면 자기 전체는 해결이 되는데, 해결과 행복이 되는데 옆에서 방해하니까 자기는 그 방해받는 것이 생명 뺏기는 것보다 더하기 때문에 마 구 결사적으로 달려듭니다. 왜 자기 영원한 비참이 지금 보지 못하는 것이 원인인데 그 영원한 멸 망의 원인을 해결해 주실 이는 주님밖에 없는데, 영원한 멸망의 원인을 해 결하고 행복을 줄 수 있는 이는 예수님밖에 없는데 예수님을 만날려고 애를 쓰는 데 방해하니까 그 방해로 인하여 조금 지체되면 안 될 것이라 말이오. 방해 때문에 그만 지체해서 지나가도 안 되니까 아예 시간도 급하지, 또 그 방해하는 그때에 방해를 받으면 제가 살아봤자 소용없다 말이오. 방해를 받으면 살아 있어 봤자 비참 뿐이지 소용이 없으니까, 자기가 예수님 아니면 눈 뜰 수 없는 그것을 믿었고, 그때에 눈 뜨지 못 하면 살아 있어 봤자 죽는 것만도 못한 그것을 느꼈기 때문에, 생명보다 눈 뜨는 게 중하기 때문에 생명을 죽인다 해도 상관이 없이 마구 부르짖었다 말이오. 요게 믿음이오. 우리가 참 주님이 우리의 어떤 문제든지 모든 비참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이 사실을 믿을 때에, 자기의 어떤 비참이든지 예수님이 해결해 주시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면 예수님께 부르짖는 소리를 옆에 사람들이 방해 한다고, 때린다고, 끌어낸다고, 뭐 발길로 찬다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해결 못 받으면 저는 일생 참 멸망이고, 그 해결 받으면, 지금 주님에 게 눈 띄워 주심을 받으면 자기도 온전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생사화 복이 지금 거기 매달린 그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이 소경은 옆에서 고함 질러도 거기 제재받지 않고 그럴수록, 요 기회만 놓치면 나는 절단난다 자꾸 방해를 할수록 기회 놓쳐진다 하니까 더 부르짖고 고함을 질렀던 것입니다. 요게 신앙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소망을 가진다고 해도 그 소망 가 진 것이 자기에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기는 비참해지고, 그 소망이 이루어 지면 자기는 만사 해결이 되는 요 사실을 믿는 믿음만큼, 믿는 믿음이 있는 것만큼 방해에 방해받지 않고 방해할 수록 더 부르짖게 됩니다. 왜 방해 하니까, 못 받게 방해하니까, 못 받으면 절단 나는데 못 받게 되니 사생결단 으로 달려들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이 핍박받는 것이 그 핍박을 당할 때에 그가 속 에 참 믿나 안 믿나, 예수님으로만 해결 된다 안 된다 하는 것을 그가 믿나 안 믿나, 또 예수님의 긍휼이 안 오면 어찌 되며 긍휼이 자기에게 오면 어 찌 된다는 거기에 대해서, 생사화복이 거기 달렸다는 것을 믿는 것만큼 그는 방해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열심히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을 영원히 해결해 주실 구주가 되는 것을 믿는 것만큼 부르짖기를 심히 부르짖고, 방해를 할수록 방해에 받치지 않고 방해 할수록 이거 놓치면 안 된다 하고 더 부르짖는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을 가르칩니다. 네가 세상에 이런 것 저런 것 신앙에 방해되는 그 모든 방해에 방해를 받는 것은 네가 예수님께 대해서 하는 소망이 빈약하기 때문에 방해받는 것 이지, 예수님으로서만 자기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이 사실을 믿는 것만큼, 그것이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을 믿는 자는 죽어도 그것 놓지 않습니다. 그 소망 놓지 않아요. 순교자들이 다 어디서 순교합니까 예수님으로 말 미암아 자기 구원 이룰 생명보다 귀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죽으면 죽었 지 그것 놓지 않습니다. 이 믿음이 있습니까! 이 믿음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부르시는 주님 음성 이랬는데, 모두 야단을 치고, 그때 뭐 그랬을 것입니다. 이놈 못된놈 잠잠해, 이 거지, 천한 거지 이놈이 뭐 지금 야단지기느냐고 야단을 쳤을 것입니다.
이래도 고함을 지릅니다. 고함을 지르는데 예수님께서 척 머물러 서시면 서 그를 내게로 오라 하라 예수님이 한번 척 돌보시고 말씀 한 마디 딱 떨어지니까 모든 인심은 확 변해져 버립니다. 변해져 가지고 그만 그렇게 천하게 멸시하던 사람들이 있다가 야, 안심하라. 너 오라 한다. 야, 너 오 라 한다. 안심하라. 너 오라 한다. 그만 모두 다 야단입니다. 신앙 생활이 이런 것입니다. 반드시 그런 역경을 넘고 보면 그다음부터는 막 환영이요 존대입니다. 그가 호소할 때에 예수님이 서셔서 그를 내게로 오라 하라 하는 예수님의 긍휼의 말이 한 마디 딱 떨어지니까 그때부터는 그 소경에 대해서 이놈이 하는 사람도 없고, 이 거지야 잠잠하라 소리 하는 사람도 없고 막 우대입니다. 그만 그때부터 안심하라. 지금 주님이 너를 부르신다. 요것이 예수 믿는 재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시대가, 나라가, 사회가, 가정이, 어떤 큰 환난의 박 해가 와도 주님이 딱 우리를 한번 권고하시면 환경은 백팔십도로 그만 확 변해지고 바꿔지는 것입니다. 그런 걸 여러분들이 체험했습니까 확 바꿔 집니다. 6. 겉옷을 버리고 뛰어 일어나 부르시는 주님 음성 듣고 모든 것 다 버리고 주님께 달려갔습니다. 자 기로서는 재산으로는 겉옷이 제일 귀한 것인데, 주님의 뜻인 것을, 주님의 뜻이 주님이 부르시는 것인데, 주님의 뜻이 바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인데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주님의 뜻을 깨닫고 나서는 그 뜻을 행하는 데에는 소유도 몸도 생명도 관계없어요. 그런 것 다 돌보지 않아요. 그거 다 집어 던지고 주님의 뜻, 내게 명령한 주님의 뜻 하나 복종하여 이루기 위해서 다 기울입니다. 이거 기울이는 사람 적지 않습니다. 많습니다. 예수 바로 믿는 사람은 다 이래 믿습니다. 주님의 뜻인 것을 찾고 바로 찾고난 다음에는 뭐 생명이 걸린다고 지체 합니까 재산이 걸린다고 지체합니까 그까짓 거 다 돌보지 않아요. 죽는다 해도 주님의 뜻이라면 단행합니다. 사람이 가다가 실수해 가지고 가끔 삐뚤어짐이 있지만 자기의 전체 생활 로서는 주님의 뜻이라면 생명 바쳐서 단행 안 하는 사람 없습니다. 이것이 다 신앙입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다 그렇습니다. 7.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네 소원이 뭐이냐 내가 네 소원 이 뭐이든지 다 이루어 줄 터이니 네 소원이 뭐이냐 이럴 때에 그는 뭐 이것 저것 말하지 않고 선생님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보기를 원하나이 다! 망하고 흥할 것을 바로 보기를 원하나이다! 나 망칠 거 나를 구원할 거, 내게 해로울 거 유익될 거 이거 보는 것을 내가 원하나이다! 요것만을 주님 앞에서 소원하는 그에게 주님이 보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고 알고, 내가 오늘도 산에서 어떤 청년 만나 가지고 네가 자꾸 이렇게 벌로 힘쓰면 안 되니까 성경을 열심히 봐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것을 네가 성경을 봐서 네가 깨달아라. 하나님이 무엇 을 제일 원하시며 제일 미워하시는가 그걸 찾아라.
그러고난 다음에는 사람은 무엇이며 너는 어떤 것인가 너를 찾아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 하시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노하실까 그것 찾고 사물에 대해서도 그것 찾 고 그러면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고 그렇 지 않으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는 말을 했습니다. 뭣을 내가 너에게 해 주기를 원하느냐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 이다! 아무 것도 없고 보기를 원하나이다! 자기 비참의 원인이 보지 못하는 것임을 아는 그것을 가지고 마디가 또 생기고 마디가 또 생기고 해서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럴 때에 주님이 그걸 보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 니 즉시 그의 모든 만물관은 달라졌습니다. 과거에 만물을 볼 때는 손으로 만지면 오돌돌한 이것밖에는, 손으로 만지는 이것밖에 못 봤는데 눈을 뜨고 보니까 먼 것 가까운 것 환하게 다 보인다 그말이오. 우리 심령이 열리고 보면 인간의 죽음도 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죽음이 라 하는 거, 죽음을 놀라지만 죽음이 별 것이 아니라 말이오. 죽음 그것은 내나 이 방에 있다가 저리 옮겨지는 것이고, 또 헌옷 때묻었으면 벗어 내 버리고 새 옷 입는 것이니까 우리 믿는 사람은 헌옷 벗고 새 옷 입는 것, 썩어지고 낡아질 시간과 공간에 제한된 것 혈육의 옷 벗고 신령한 옷 입는 것, 이러니까 뭐 그게 더 좋은 것이지, 헌옷 벗고 새 옷 입는 게 좋지 않습 니까 눈이 어두우니까 자꾸 마귀의 미혹에 제한 받아 가지고 우리의 시야 가 좁기 때문에 해석을 해 가지고 자꾸 좁아지고 이러는데 조금 넓게 보니 그게 아닙니다.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할 때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 시니 눈이 환하게 보여서, 이제 참 죽음 후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 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세상을 뒤로 돌아볼 때와 같 이 보여질 수 있는, 우리는 지금 보는 세상이 그때 가면 영 다릅니다. 그때 어리석게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고거나 고거나 문턱 넘으면 고건데 왜 그랬을까 왜 뻘뻘 떨까 전능자가 모든 걸 주권하고 계시는데 뭐 공산주의가 와서 죽이려 한다고, 신사참배 안 하면 죽이려 한다고 뻘뻘 떨고 그랬을까 그때에 보는 그 시야로 지금도 볼 수 있는, 그때에 모든 것을 바로 정견 한 것과 같이 바로 보는 것을 지금 가질 수 있는 이것이 요 일곱 가지 마디 있는 이 믿음에서 생겨지기 때문에 안 놓으면 됩니다. 변함이 없어요.
천지는 변해도 변함 없어요. 안 놓으면 돼요. 안 놓으면 다 돼요. 되는데, 사람들이 요것을 어떤 사람은 지식으로 아는 사람, 지식으로 알고도 요대로 나가지 않고 중간에 요런 조런 애로가 많이 있으니까 그런데 다 걸 려 가지고 그만 낭파당하고 만다 그말이오. 결론 이러니까, 꼭 우리가 오늘 내가 이 소경 바디매오가 되어야 된다는 요것 을 기억하고 꼭 바디매오가 됩시다. 되어야 살지 안 되면 못 삽니다. 사람들은 다 제 지혜의 눈으로 보고, 제 마음으로 보고, 제 생각으로 보 고, 제 지식으로 보고, 이성 판단으로 보고, 자기 견해로 봐서 자기 딴에는 제일 좋은 대로 택해서 갔다는 것이 다 멸망 받고 말았어요. 인간이 자기 좋은 대로 안 해서 멸망 받은 자 있습니까 제일 자기 좋 은 것 택했지. 하고 싶은 것 택하고 그게 제일 좋다 싶은 것 택했는데 그 길에서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배우면 다 좋은 줄 알지만, 공부하는 것이 망하는 것도 있고 사는 것도 있으니까 그걸 알아야지요. 학교 가서 공부를 해도 망할 공부 있고 살 공부 있어요. 어떤 자는 망할 것만 해. 망할 것만 해. 제 딴에는 지혜 있게 하지 만 망할 것만 해. 가 봐요, 안 망하는가! 뒤 에 돌이키면 안 망해도 그 동안에는 손해 다 봤지, 뭐. 별수 없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사람이나 물건이나 일이나 사건이나 지식이나 사업이 나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행락이나 쾌락이나 행복이나 그 모든 것을 바로 보지 못하는 데에서 망합니다. 사람들이 왜 망해 일방적 지식뿐이오. 한쪽 뿐입니다.
돈은 많으면 좋은 줄만 알지 돈이 적어야 좋은 줄 몰라요. 건강은 얼마든지 있으면 좋은 줄 알지 건강보다 그 몸이 약해야 좋을 때도 있어요. 약한 게 좋은 줄 몰라. 일방적 지식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 일방적 지식으로, 있 으면 망할 때에 있기를 원하니까 망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있어 망할 때에는 있는 걸 물리치고 피해야 되겠고, 없어 망할 때에는 있도록 해야 되 겠고 … 이러니까 모든 영육 금생 내세의 생사화복 흥망성쇠는 바로 보는 데에 있고 망하는 것은 다 보지 못하는 데에 있다는 요것을 알고, 요 문제 해결 은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해결해 주실 이가 없습니다. 요 문제 해결하는 길을 갈려고 하면 세상은 방해합니다. 방해하는 자에 게 다 방해를 받는데 바로 보지 못하면 살아 봤자 필요 없는 줄 알고 바로 보는 것은 자기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그 가치성을 아는 사람은 방해받지 않 고 자기가 보는 자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세상 방해에 제재 받지 않습니다. 방해에 제재 받는 사람은 그 보는 것의 가치가 자기의 생명이나 세상 무 엇만 못하다고 그렇게 평가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바로 보는 지혜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과연 내가 가고 있는 것은 바로 보고 가고 있는지! 바로 보고 못 보는 데에 우리 금생과 내세 영육의 모든 흥망성쇠는 다 달렸다는 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요 주님 앞에 용납을 받을 사람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 도리를 가르치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 구원 도리를 어떻게 가르치고 계시는가 하는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 말씀이 자기에게는 복음이 되지 를 못합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
그런데 여기 바디매오라는 이 소경은 그 지방에서 불쌍하고 가련한 자로 유명하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해석은 아무나따나 붙이면 되고 이상하게만 꾸며대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마디를 잘못하면 심판 받습니다. 없는 걸 있다 하면 하나님의 성경에 기록한 그 벌을 더 받습니다. 있는 걸 없다 하면 구원에서 제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나따나 성경 은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쌍하기로 유명하다는 것은, 그 사람은 디매오의 아들 거지 바디매오 라 이렇게 그 부모의 이름까지 다 여기에 기록한 것을 보면 그 지방에서 그만큼 비참하고 가련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도 알게 되고 아들도 알게 될 정도로 그렇게 그 당시에 그는 비참하고 가련한 자로 유명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도시에서도 유명하게 비참하고 가련하면 그 사람은 소문이 많이 나 고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와같이 이 소경은 아주 불쌍하고 가련한 것으로써 유명한 그런 참 가장 천한 사람입니다. 그랬는데 그가 길가에 있을 때에 나사렛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그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럴 때에 거기 따라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소경에게 잠잠하라고 꾸 짖었다 이랬습니다. 아마 별별 뭐 책망을 하고 야단을 쳤을 것입니다.
이 놈 고약한 놈 선생님이 지나가시는데 그런다고 뭐 별별 말을 했을 것입니다. 꾸짖었다 하고, 또 잠잠하라 했다고 기록된 것 보면 그런 분위 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소경은 그럴수록 더 심히 부르짖고 더 크게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습니다. 더욱 심히 소리질러 예수님에게 불쌍히 여겨 달라고 호 소했습니다. 그러니까 옆에 사람들은 또 잠잠하라는 소리도 아마 더 많이 떠들었을 것입니다. 이놈 잠잠하라 하고 뭐 꾸짖고 야단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바디매오는 환경에서 그렇게 야단치는 데에 눌려지지 않고 꺾어지지 않 고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심히 부르짖었습니다. 그것은 왜 그랬는가 자기가 예수님 만나서 예수님이 자기의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 주시면 자기 문제는 그만 다 해결이 되어서 금생도 해결이 요 내세도 해결이요, 모든 불행이 다 해결되는데, 예수님 만나면 다 되는데, 거기에 지금 생사화복이, 죽고 사는 것이, 모든 화복이 거기에 달렸는데, 거 기 달려 있는 것을, 예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을 확실히 아는데 옆에 사람들 이 자꾸 방해를 하고 고함을 지르니까, 어실므실하게 알았다면 옆에서 말하 면 이 말 안 해야 되는가보다 그만 중단했을 것인데, 자기는 이분 만난 이것이 아니면 영원히 참 가련한 신세가 되는 것을 확실히 아니까, 주님 만 나서 주님에게 해결 못 받으면 죽고 받으면 살고 하니까 옆에 사람들은 방 해하지만 생명을 내놓고 결사적으로 부르짖었던 그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 기소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모든 사람들은 방해하고 잠잠하라 고 말하고 그는 고함지르고 한참 이렇게 좀 떠들었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께서 척 머물러 서셔서 그를 부르라 말씀했습니다.
부르짖는 소경을 이리 오라고 부르라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이 그 소경을 불쌍히 여겨서 돌보시니까, 부르라 하시니까 벌써 그 한마디에서 거 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다 변해졌습니다. 좀 전에는 천대 멸시하고 이렇게 마구잡이로 억누르고 이렇게 했지만 예수님이 그를 불러 오라 하시니까 그만 그때에 모든 사람들의 인심이 변해졌습니다. 그만 천하게 봤던 사람이 야, 주님이 부르신다. 이러면서 모두 그 소경에게 말하기를 안심하라 안심하라, 너 부른다 부른다 이러면서 모두 다 그만 아주 소 경 대우가 달라졌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좀 깊이 느껴야 됩니다. 안심하라, 너를 부르신다. 이러니까, 소경이 주님이 부르신다는 그 말을 듣고는, 거기 나타내기를 겉옷을 내어버리고 소경이 겉옷을 내어 버리고 뛰어 주님에게로 갔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 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소경으로 말하면 오랫동안 거지로서 길가에 자고 이렇게 하니까 겉옷이 라면 자기 이불도 되고 침구도 되고 자기 집도 되고 그만 그 겉옷 하나면 다입니다. 그거 하나뿐이오. 그것은 제 재산 다라.
그런데, 겉옷을 버리고 주님이 부르신다 하니까, 병 나으면 다 해결 될 터이니까 그까짓 거 뭐, 병 낫는 그것이 자기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겉옷, 겉옷이 자기 모든 재산이지만 그 모든 재산보다 병 낫는 그것이 더 크기 때문에 그걸 버려 두고 주님에게 갔습니다. 옆에 사람들이 말했을 것이오. 네가 이거 버리고 가면 오늘 저녁이라 도 어떻게 하려고 이걸 버리고 가느냐 이거 가지고 가지. 뭐 옆에 사람 이 그랬을 거라. 네 신세가 지금 이런데 이거, 오늘 저녁이라도 그만 겨 울이면 얼어서 절단날 것이고 이러니까 가지고 가야 되지 않느냐 고 말하 지만 그는 그만 버려 버리고 달려갔습니다. 고거 주님이 보시고.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일러 가 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래 물으니까, 이제까지 거지로 지냈으니까 재산도 필요할 것이고, 의복도 필요할 것이고, 장가도 가고 싶을 것이고 뭐 소원 많을 것입니다. 소원 많아요. 그 거지도 사람인데, 부자도 소원이 많은데 더군다나 거지는 소원이 더 많을 것 아닙니까 모든 것 하나도 가져보지 못했으니 소원이 많을 거라 말이오. 이런데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내가 다른 소원 아무 것도 없고 보기를 원하나이 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들이 가서 깊이 새기고 해서 여기서 참 영감, 성신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1. 바디매오는 바로 나 그러면 이 말씀에서 나나 여러분들이나 첫째로 깨달을 것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자신이 이 소경 바디매오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첫째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디매오의 이 일을 다른 사람의 일로 듣고 자기는 구경하는 것 으로 보고 바로 자신이 이 바디매오가 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이요 이 말씀이 저에게 구원을 주는 복음이 되지 못하고 이 말씀이 자기 를 언젠가 정죄해서 자기는 멸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바디매오는 그 지방에서 아주 불쌍하고 가련한 것으로써 유명한 사람 입니다. 소문이 난 사람입니다. 먼저 우리가 이 사람이 되는 것이 복이 있습니다. 세상은 멸망시키는 세상이기 때문에 어쨌든지 자기 잘난 재미로 삽니다. 또 자기를 힘껏 잘났다고 자랑해서 다른 사람에게 아주 복되고 잘나고 유력 한 사람으로 과장해서 소개하기를 힘쓰고 있는 정신 없는 세상입니다. 완 전히 미치광이가 되어 가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 성경을 주신 것은 그 지방에서 불쌍하기로 소문난 소경 바디매오가 바 로 너 자신이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어떤 큰 재벌가가 되어 있어도 나는 큰 재벌을 가졌기 때문에 바디매 오가 아니라, 나는 정권을 가졌기 때문에 바디매오가 아니라, 나는 큰 종교 창설자요 도덕가요 과학자로 유명한 사람이니까 나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자신이 벌써 멸망 가운데 빠져 가지고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우리가 여기서 이 교훈을 받을 것은 자기가 복된 사람이라, 영광된 사람이라, 참 그는 성공하고 위대한 사람이라 그렇게 지금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공의가, 정의가, 하나님의 심 판이 자기를 그렇게 복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조만간에 심판 앞에 서야 할 터이니까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은, 복되다 인정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자기의 비참하고 불행한 점을 깨닫고 그 점을 평생 부끄러워하고 그 점을 벗어나 보려고 애쓰는 그런 사람들이 다 심판에 무사히 통과하고 심판 너머 영원한 세계에 영광 있는 그 구원을 얻 었지, 자기 잘난 재미로 사는 사람, 자기 장점 보고 사는 사람, 죽을 때까지 자기 장점 자랑하고 소개하고 만족하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심판 너머 비참 하고 가련치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2. 길에서 예수님 기다림
그런데 이 소경은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가에 앉아서 예수님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길가와 같은 이 세상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가고 있는 이 세상은 곧 길거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바디매오는 예수님 지나가시기만 고대하고 기다렸습니다. 자기의 비참하고 가련한 그 실상을 알고, 알고난 다음에는, 인생을 비참 과 가련에서 구출하실 이는 예수님뿐이십니다.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구출 하실 이가 없습니다. 예수님뿐이기 때문에 그는 길가에서 예수님을 기다리 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비참한 걸 깨닫고 주님밖에는 나를 여기에서 구원할 이가 아무도 없으니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는 그 구원의 기회를, 구원의 주님 을 만나는 그것을 노리고 그것을 기다리고 그 기회를 찾고, 자기의 전부는 이 세상 걸음에서 다른 무엇 보고 가지 않고 자기의 모든 비참을 구원해 주 실 주님 만날 이것만을 자기는 전 소망으로 전력을 기울여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 되는 것이 복이 있습니다. 참 이런 사람이야말로 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저 사람은 세상에 제일 모든 복이 구비한 사람이 라 그렇게 할 수 있는 그 가운데서 자기의 비참과 가련을 발견해 가지고 그 점을 자기는 해결해야 된다는 그 면에 눈을 뜬 사람은 참 산 사람이요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모든 문제는 예수님 한 분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지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해결해 주실 이가 없기 때문에 이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길가에서 기 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만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으니 예수님의 구원 을 항상 기다리고 그 기회를 기다리고 거기다가 소망을 두고 있는 이 사람 이 되는 것이 이 복음을 바로 받는 사람입니다.
3. 소경됨이 불행의 원인 바디매오는 이렇게 비참하게 된 그것이 자기가 보지 못한 까닭이라는 것 을 바로 알았습니다. 보지 못한 까닭이라는 것을 이 소경은 알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불행의 원인이 되어 있는 보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의 모든 금생과 내세 영육의 불행은
첫째로 하나님을 바로 보지 못하는 데에서 불행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대해서 자기의 보지 못하는 그 점을 발견해 가지고 보는 자 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좀 더 보 고, 하나님을 보는 가운데서, 모세와 같은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실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다고 하지만 지금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 것을 보는 눈이 자꾸 밝아져 가야 되겠고, 또 지금 나와 상대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지 이것을 또 우리가 자꾸 찾아서 바로 봐야 되겠습니다. 그분의 크심을 아는 것은 좋은데 그 크신 하나님이 지금 나와 어떤 관계 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우리가 바로 보는 그 심령이 있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또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지, 무엇을 명령하고 계시는지, 이 현실은 분명히 주님이 나에게 주신 현실인데 이 현실에 하나님께서 나에 게 명령하는 것이 무엇이며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나에게 지금 경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도 우리가 바로 봐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 서 바로 볼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또 우리가 지난 모든 세월을 생각해 보면 자기에게 대해서 바로 보지 못 해서 이거는 내가 할 일인지 안 할 일인지, 또 이것은 내가 계속해야 될는지 끊어야 될는지, 이 사람은 사귀어야 될는지 이 사람은 삼가 조심해서 멀리 해야 될 사람인지, 내가 이 일은 해야 될 일인지 안 해야 될 일인지, 내가 소원하고 있는 이것이 망할 소원인지 흥할 소원인지, 내가 지금 잔뜩 취미를 누리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이 취미는 나를 망치는 취미인지 나를 복되게 하는 취미인지 우리는 참, 레위기에 쪽발로 걸어가라고 말씀하 신 대로 우리가 가는 것은 둘입니다. 나 한 사람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다 자기 잘난 재미로 살고 자기는 의인인 줄 알고 사는데 자기에게 참 주님이 노하시는 요소가 무엇이 있는지 이것을 발견해 가지고 그것을 회개한다면 복 있는 사람이 되겠고, 주님께서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그것을 발견하고 그 사람이 되면 그만 행복될 터인데 자기에게 대해서 얼마나 우리가 무지한지 모릅니다.
자기를 바로 보지 못하는 데에서 인생이 망하고, 하나님을 바로 보지 못 하는 데에서 인생이 망하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현재 관계되어 있는 것을 바로 보지 못하는 데에서 인생이 망하고, 자기와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를 가져야 된다는 것을 바로 알지 못하는 데에서 망합니다. 이 바디매오가 보지 못하는 데 철천지 포원이 된 이와 마찬가지로, 이 바디매오를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내가 우리도 바디매오와 같이 뭐이든지 바로 보지 못하는 요기서 나는 멸망한다 요것을 뼈저리 마음 아피 느끼고 깨닫고 포원이 져서 바로 보기를 원하는 이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또 천국에 대해서 우리는 보지 못합니다. 천국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엉뚱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서 바로 보셨기 때문에 그는 후회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성령님의 충만한 사람들은 하늘나라를 바로 봤습니다. 하 늘나라가 어떠냐 내가 하늘나라 가면 어찌 되느냐 하늘나라는 어떤 조 직이 되어 있으며, 어떤 법규로 되어 있으며, 어떻게 모두 다 시설이 되어 있으며, 하늘나라의 그 법도는 무엇이며, 거기 있는 모든 조직은 어찌 되었 으며, 거기 있는 영광과 존귀는 어떤가 하늘나라를 바로 봤으면 땅의 것 을 배설물로 삼지 않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 보는 데 얼마나 소경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도 그저 나쁜 게 아니라 바로 보면 참 한없는 복된 길도 있고 망하는 길도 있는데 우리가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 우리가 세상에서 바로 보지 못함으로 망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것을 찾아서 깨달은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 멸망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사람을 바로 보지 못해서 멸망했다. 무엇 때문에 부 도 나 가지고 뭐 감옥에 들어가고, 부도가 나 자살도 하고, 부도가 나 가지 고 도망도 치고 숨기도 하느냐! 사람을 보지 못해 그런 거 아니냐! 우리가 사람을 바로 보는 데에는 얼마나 축복이 거기 달렸는데, 사업하는 데는 사람을 바로 보는 데에서 사업 성공과 실패가 있는 것인데 사람을 바 로 보지 못하는 것, 다음으로 우리가 물질에 대해서 보는 눈이 어둡습니다. 바로 보지 못합니다. 어찌 됐든가 돈은 들어오면 좋아합니다. 사람은 내 사람이 되면 좋 아합니다. 아니오. 일생 동안 안 만나야 될 사람도 있습니다. 자꾸 내 사람만 되면 좋은 게 아니라. 일은 성사만 되면 좋아합니다. 아니오. 성사만 되면 좋아하는 것은 일방적 지식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망하고 맙니다. 성사가 되는 것이 좋을 때도 있고 실패가 되는 것이 좋을 때도 있는 것을 양면을 보지 못하면 그는 원만 한 지식이 아닌 것입니다. 물질을 바로 보지 못해서 우리가 소경이라.
4. 눈 띄워 주실 이는 예수님 뿐 우리가 모든 일을 바로 보지 못하는 나는 일을 바로 보지 못한다, 나는 사건 처리를 바로 하지 못한다. 여기에 대해서 마음 아피 느낀 사람, 그래 날뛰다가 바로 보게 해 주는 이가 이 세상 모든 과학이나 학문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선생에게 가 가지고 하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선 생은 하나뿐이다 말씀했습니다. 예수님뿐으로 아는 이 사람이 얼마나 복 이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말로만 하지 실상은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 고 있습니다. 비참한 점을 우리가 모르지, 비참한 점을 찾지 못하지, 비참하게 된 그것 이 원인이 무엇이라는 것을 찾지 못하지, 원인을 찾았다 할지라도 예수님 외에는 해결해 줄 이가 없다는 것을 바로 잡지 못하고 엉뚱한 일을 자꾸 하 고 있지. 인생이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대하고 있는 것이나 내 자신이 어떤 인간이라는 것을 보는 데에나 하늘나라에 대해서 바로 보는 것이나 세상에 대해서 바로 보는 것이나 인생에 대해서 인간들을 바로 보는 것이나 사건들을 바로 보는 것이나, 물건을 바로 보는 것은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바로 보게 해 주실 수 있지 다른 것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바로 보는 이 심령의 지혜를 줄 이는 예수님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세계에 있는 학문을 다 통달해도 그것은 자기의 행불행 생사화복을 보는 눈이 하나도 없습니다. 깜배기입니다. 소경이오. 소경이면 좋지만 꺼꾸로 봅니다. 망할 것은 흥한다, 죽는 것은 산다, 사는 것은 죽는다 해 가지고 전멸되는 것이 인생 아닙니까 내가 보지 못함으로 모든 불행이 내게 와 가지고 영원히 비참하게 되는데 이 비참의 원인되는 보지 못하는 이것은 예수님 한 분만이 보게 해 주 실 수 있다 하는 요 믿음을 가진 것을 주님이 칭찬합니다. 요 믿음 가르 칠려고 이 바디매오를 여기 기록한 것이오. 바디매오 소경 눈뜬 걸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요기서 우리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오. 금생과 내세 영과 육 전부 멸망하는 것은 보지 못하는 그것이 원인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바로 치료해 주실 이는 예수님 외에는 천상 천하에 아무 도 없습니다. 요거 믿습니까!
5. 방해 받지 않고 부르짖은 믿음 또 바디매오는 자기 현실 수많은 사람들의 방해에 눌리지 않고 더욱 심 히 호소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자기는 확실히 믿기 때문에, 이 예수님만 잡 고 예수님이면 자기 전체는 해결이 되는데, 해결과 행복이 되는데 옆에서 방해하니까 자기는 그 방해받는 것이 생명 뺏기는 것보다 더하기 때문에 마 구 결사적으로 달려듭니다. 왜 자기 영원한 비참이 지금 보지 못하는 것이 원인인데 그 영원한 멸 망의 원인을 해결해 주실 이는 주님밖에 없는데, 영원한 멸망의 원인을 해 결하고 행복을 줄 수 있는 이는 예수님밖에 없는데 예수님을 만날려고 애를 쓰는 데 방해하니까 그 방해로 인하여 조금 지체되면 안 될 것이라 말이오. 방해 때문에 그만 지체해서 지나가도 안 되니까 아예 시간도 급하지, 또 그 방해하는 그때에 방해를 받으면 제가 살아봤자 소용없다 말이오. 방해를 받으면 살아 있어 봤자 비참 뿐이지 소용이 없으니까, 자기가 예수님 아니면 눈 뜰 수 없는 그것을 믿었고, 그때에 눈 뜨지 못 하면 살아 있어 봤자 죽는 것만도 못한 그것을 느꼈기 때문에, 생명보다 눈 뜨는 게 중하기 때문에 생명을 죽인다 해도 상관이 없이 마구 부르짖었다 말이오. 요게 믿음이오. 우리가 참 주님이 우리의 어떤 문제든지 모든 비참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이 사실을 믿을 때에, 자기의 어떤 비참이든지 예수님이 해결해 주시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면 예수님께 부르짖는 소리를 옆에 사람들이 방해 한다고, 때린다고, 끌어낸다고, 뭐 발길로 찬다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해결 못 받으면 저는 일생 참 멸망이고, 그 해결 받으면, 지금 주님에 게 눈 띄워 주심을 받으면 자기도 온전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생사화 복이 지금 거기 매달린 그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이 소경은 옆에서 고함 질러도 거기 제재받지 않고 그럴수록, 요 기회만 놓치면 나는 절단난다 자꾸 방해를 할수록 기회 놓쳐진다 하니까 더 부르짖고 고함을 질렀던 것입니다. 요게 신앙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소망을 가진다고 해도 그 소망 가 진 것이 자기에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기는 비참해지고, 그 소망이 이루어 지면 자기는 만사 해결이 되는 요 사실을 믿는 믿음만큼, 믿는 믿음이 있는 것만큼 방해에 방해받지 않고 방해할 수록 더 부르짖게 됩니다. 왜 방해 하니까, 못 받게 방해하니까, 못 받으면 절단 나는데 못 받게 되니 사생결단 으로 달려들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이 핍박받는 것이 그 핍박을 당할 때에 그가 속 에 참 믿나 안 믿나, 예수님으로만 해결 된다 안 된다 하는 것을 그가 믿나 안 믿나, 또 예수님의 긍휼이 안 오면 어찌 되며 긍휼이 자기에게 오면 어 찌 된다는 거기에 대해서, 생사화복이 거기 달렸다는 것을 믿는 것만큼 그는 방해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열심히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을 영원히 해결해 주실 구주가 되는 것을 믿는 것만큼 부르짖기를 심히 부르짖고, 방해를 할수록 방해에 받치지 않고 방해 할수록 이거 놓치면 안 된다 하고 더 부르짖는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을 가르칩니다. 네가 세상에 이런 것 저런 것 신앙에 방해되는 그 모든 방해에 방해를 받는 것은 네가 예수님께 대해서 하는 소망이 빈약하기 때문에 방해받는 것 이지, 예수님으로서만 자기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이 사실을 믿는 것만큼, 그것이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을 믿는 자는 죽어도 그것 놓지 않습니다. 그 소망 놓지 않아요. 순교자들이 다 어디서 순교합니까 예수님으로 말 미암아 자기 구원 이룰 생명보다 귀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죽으면 죽었 지 그것 놓지 않습니다. 이 믿음이 있습니까! 이 믿음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부르시는 주님 음성 이랬는데, 모두 야단을 치고, 그때 뭐 그랬을 것입니다. 이놈 못된놈 잠잠해, 이 거지, 천한 거지 이놈이 뭐 지금 야단지기느냐고 야단을 쳤을 것입니다.
이래도 고함을 지릅니다. 고함을 지르는데 예수님께서 척 머물러 서시면 서 그를 내게로 오라 하라 예수님이 한번 척 돌보시고 말씀 한 마디 딱 떨어지니까 모든 인심은 확 변해져 버립니다. 변해져 가지고 그만 그렇게 천하게 멸시하던 사람들이 있다가 야, 안심하라. 너 오라 한다. 야, 너 오 라 한다. 안심하라. 너 오라 한다. 그만 모두 다 야단입니다. 신앙 생활이 이런 것입니다. 반드시 그런 역경을 넘고 보면 그다음부터는 막 환영이요 존대입니다. 그가 호소할 때에 예수님이 서셔서 그를 내게로 오라 하라 하는 예수님의 긍휼의 말이 한 마디 딱 떨어지니까 그때부터는 그 소경에 대해서 이놈이 하는 사람도 없고, 이 거지야 잠잠하라 소리 하는 사람도 없고 막 우대입니다. 그만 그때부터 안심하라. 지금 주님이 너를 부르신다. 요것이 예수 믿는 재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시대가, 나라가, 사회가, 가정이, 어떤 큰 환난의 박 해가 와도 주님이 딱 우리를 한번 권고하시면 환경은 백팔십도로 그만 확 변해지고 바꿔지는 것입니다. 그런 걸 여러분들이 체험했습니까 확 바꿔 집니다. 6. 겉옷을 버리고 뛰어 일어나 부르시는 주님 음성 듣고 모든 것 다 버리고 주님께 달려갔습니다. 자 기로서는 재산으로는 겉옷이 제일 귀한 것인데, 주님의 뜻인 것을, 주님의 뜻이 주님이 부르시는 것인데, 주님의 뜻이 바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인데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주님의 뜻을 깨닫고 나서는 그 뜻을 행하는 데에는 소유도 몸도 생명도 관계없어요. 그런 것 다 돌보지 않아요. 그거 다 집어 던지고 주님의 뜻, 내게 명령한 주님의 뜻 하나 복종하여 이루기 위해서 다 기울입니다. 이거 기울이는 사람 적지 않습니다. 많습니다. 예수 바로 믿는 사람은 다 이래 믿습니다. 주님의 뜻인 것을 찾고 바로 찾고난 다음에는 뭐 생명이 걸린다고 지체 합니까 재산이 걸린다고 지체합니까 그까짓 거 다 돌보지 않아요. 죽는다 해도 주님의 뜻이라면 단행합니다. 사람이 가다가 실수해 가지고 가끔 삐뚤어짐이 있지만 자기의 전체 생활 로서는 주님의 뜻이라면 생명 바쳐서 단행 안 하는 사람 없습니다. 이것이 다 신앙입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다 그렇습니다. 7.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네 소원이 뭐이냐 내가 네 소원 이 뭐이든지 다 이루어 줄 터이니 네 소원이 뭐이냐 이럴 때에 그는 뭐 이것 저것 말하지 않고 선생님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보기를 원하나이 다! 망하고 흥할 것을 바로 보기를 원하나이다! 나 망칠 거 나를 구원할 거, 내게 해로울 거 유익될 거 이거 보는 것을 내가 원하나이다! 요것만을 주님 앞에서 소원하는 그에게 주님이 보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고 알고, 내가 오늘도 산에서 어떤 청년 만나 가지고 네가 자꾸 이렇게 벌로 힘쓰면 안 되니까 성경을 열심히 봐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것을 네가 성경을 봐서 네가 깨달아라. 하나님이 무엇 을 제일 원하시며 제일 미워하시는가 그걸 찾아라.
그러고난 다음에는 사람은 무엇이며 너는 어떤 것인가 너를 찾아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 하시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노하실까 그것 찾고 사물에 대해서도 그것 찾 고 그러면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고 그렇 지 않으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는 말을 했습니다. 뭣을 내가 너에게 해 주기를 원하느냐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 이다! 아무 것도 없고 보기를 원하나이다! 자기 비참의 원인이 보지 못하는 것임을 아는 그것을 가지고 마디가 또 생기고 마디가 또 생기고 해서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럴 때에 주님이 그걸 보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 니 즉시 그의 모든 만물관은 달라졌습니다. 과거에 만물을 볼 때는 손으로 만지면 오돌돌한 이것밖에는, 손으로 만지는 이것밖에 못 봤는데 눈을 뜨고 보니까 먼 것 가까운 것 환하게 다 보인다 그말이오. 우리 심령이 열리고 보면 인간의 죽음도 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죽음이 라 하는 거, 죽음을 놀라지만 죽음이 별 것이 아니라 말이오. 죽음 그것은 내나 이 방에 있다가 저리 옮겨지는 것이고, 또 헌옷 때묻었으면 벗어 내 버리고 새 옷 입는 것이니까 우리 믿는 사람은 헌옷 벗고 새 옷 입는 것, 썩어지고 낡아질 시간과 공간에 제한된 것 혈육의 옷 벗고 신령한 옷 입는 것, 이러니까 뭐 그게 더 좋은 것이지, 헌옷 벗고 새 옷 입는 게 좋지 않습 니까 눈이 어두우니까 자꾸 마귀의 미혹에 제한 받아 가지고 우리의 시야 가 좁기 때문에 해석을 해 가지고 자꾸 좁아지고 이러는데 조금 넓게 보니 그게 아닙니다.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할 때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 시니 눈이 환하게 보여서, 이제 참 죽음 후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 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세상을 뒤로 돌아볼 때와 같 이 보여질 수 있는, 우리는 지금 보는 세상이 그때 가면 영 다릅니다. 그때 어리석게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고거나 고거나 문턱 넘으면 고건데 왜 그랬을까 왜 뻘뻘 떨까 전능자가 모든 걸 주권하고 계시는데 뭐 공산주의가 와서 죽이려 한다고, 신사참배 안 하면 죽이려 한다고 뻘뻘 떨고 그랬을까 그때에 보는 그 시야로 지금도 볼 수 있는, 그때에 모든 것을 바로 정견 한 것과 같이 바로 보는 것을 지금 가질 수 있는 이것이 요 일곱 가지 마디 있는 이 믿음에서 생겨지기 때문에 안 놓으면 됩니다. 변함이 없어요.
천지는 변해도 변함 없어요. 안 놓으면 돼요. 안 놓으면 다 돼요. 되는데, 사람들이 요것을 어떤 사람은 지식으로 아는 사람, 지식으로 알고도 요대로 나가지 않고 중간에 요런 조런 애로가 많이 있으니까 그런데 다 걸 려 가지고 그만 낭파당하고 만다 그말이오. 결론 이러니까, 꼭 우리가 오늘 내가 이 소경 바디매오가 되어야 된다는 요것 을 기억하고 꼭 바디매오가 됩시다. 되어야 살지 안 되면 못 삽니다. 사람들은 다 제 지혜의 눈으로 보고, 제 마음으로 보고, 제 생각으로 보 고, 제 지식으로 보고, 이성 판단으로 보고, 자기 견해로 봐서 자기 딴에는 제일 좋은 대로 택해서 갔다는 것이 다 멸망 받고 말았어요. 인간이 자기 좋은 대로 안 해서 멸망 받은 자 있습니까 제일 자기 좋 은 것 택했지. 하고 싶은 것 택하고 그게 제일 좋다 싶은 것 택했는데 그 길에서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배우면 다 좋은 줄 알지만, 공부하는 것이 망하는 것도 있고 사는 것도 있으니까 그걸 알아야지요. 학교 가서 공부를 해도 망할 공부 있고 살 공부 있어요. 어떤 자는 망할 것만 해. 망할 것만 해. 제 딴에는 지혜 있게 하지 만 망할 것만 해. 가 봐요, 안 망하는가! 뒤 에 돌이키면 안 망해도 그 동안에는 손해 다 봤지, 뭐. 별수 없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사람이나 물건이나 일이나 사건이나 지식이나 사업이 나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행락이나 쾌락이나 행복이나 그 모든 것을 바로 보지 못하는 데에서 망합니다. 사람들이 왜 망해 일방적 지식뿐이오. 한쪽 뿐입니다.
돈은 많으면 좋은 줄만 알지 돈이 적어야 좋은 줄 몰라요. 건강은 얼마든지 있으면 좋은 줄 알지 건강보다 그 몸이 약해야 좋을 때도 있어요. 약한 게 좋은 줄 몰라. 일방적 지식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 일방적 지식으로, 있 으면 망할 때에 있기를 원하니까 망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있어 망할 때에는 있는 걸 물리치고 피해야 되겠고, 없어 망할 때에는 있도록 해야 되 겠고 … 이러니까 모든 영육 금생 내세의 생사화복 흥망성쇠는 바로 보는 데에 있고 망하는 것은 다 보지 못하는 데에 있다는 요것을 알고, 요 문제 해결 은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해결해 주실 이가 없습니다. 요 문제 해결하는 길을 갈려고 하면 세상은 방해합니다. 방해하는 자에 게 다 방해를 받는데 바로 보지 못하면 살아 봤자 필요 없는 줄 알고 바로 보는 것은 자기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그 가치성을 아는 사람은 방해받지 않 고 자기가 보는 자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세상 방해에 제재 받지 않습니다. 방해에 제재 받는 사람은 그 보는 것의 가치가 자기의 생명이나 세상 무 엇만 못하다고 그렇게 평가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바로 보는 지혜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과연 내가 가고 있는 것은 바로 보고 가고 있는지! 바로 보고 못 보는 데에 우리 금생과 내세 영육의 모든 흥망성쇠는 다 달렸다는 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요 주님 앞에 용납을 받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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