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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류의 지원자 (눅9:5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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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저녁에도 은혜를 사모하여 나온신 성도 여러분에게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은 사순절 넷째주일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전도를 마 치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 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지원한 세 종류의 사람에게 예수님은 냉정하고도 엄 격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윤 리와 도덕까지 모두 무시한것과 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의 말씀을 똑 바로 읽는다면 예수님의 깊은 뜻이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8:18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두 종류의 사람만 등장을 합니다.
한 사람이 와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할 때에 예수님은 대답하기를 자신이 가는 길 이 얼마나 험하고 어려운 가시밭 길인가를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단념을 권하는 듯한 부정적인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예수님이 부 르시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먼저 가서 부친을 장사지내고 와서 따르겠다고 하자 주님께서는 이를 허락지 않으시고 "죽은 자들로 죽은자를 장사지내게 하 고 너는 나를 따르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사람을 부르시니 그 사람 은 대답하기를 내가 주님을 따르긴 따르겠습니다만 그보다 먼저 나의 가족들과 작별을 한 후에 따르게 해 달라고 대답을 하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으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여기에 나타난 주님의 말씀은 가혹한 느낌까지 줍니다. 주님의 말씀은 당시 유대 사회의 윤리를 완전히 파괴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유대인의 풍습에 의하면 당시 아버지를 장사지내는 것은 그들의 가장 신성한 의무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을 따라가면 언제 가족들을 만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가족 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오겠다는 말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같이 말씀하신 것은 부모에 대한 신성한 의무를 부정한 것도 아니 고 인정과 도리를 무시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은 그보다 더욱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세상의 인정과 윤리와 도덕적인 것보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구원받는 일에 부름받았을 때 이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 로 하나님의 부르심이 세상의 그 어떤것보다 앞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자원한 사람과 또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던, 세 종류의 사람들에게서 우리들은 오늘의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주님께 나왔다가도 주님을 따르는 길이 어려움을 알고 포기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님의 부름을 받고서도 이핑계 저핑계로 게을리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병이나 고쳐볼려고 예수앞에 나오고, 가정문제와 사 업문제로 등으로 교회에 나왔다가는 쉽게 실족하여 주님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주님앞에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어떤 형편인가를 돌이켜 보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서기관의 형편을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57절에는 누구라고 기록이 되지 않았는데 마8:19절 말씀에 보면 서기관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마8: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이 서기관의 말에는 주님을 따르는 길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인가를 알지 못하고 예수님이 기사와 이적을 행하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도 받고 인기도 높아지고 또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예수님이 예루살엠에 올라가시면 혁명을 일으켜 당시 부패한 헤롯 정권을 몰아내고 또 로마의 군대로 몰아내고서 왕이 될것이라는 소문도 있음으로 예수를 따르면 장차 자신이 출세를 할 것이라고 나름대로 판단을 하였기에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지원을 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남의 일을 너무 쉽게 보거나 과소평가 함으로 과오를 범하는 사람 이 있는가 하면 남의 일에 대하여 잘 알아보지도 않고 외형적인 것만 보고서 감격하여 찬성하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 성경의 서기관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서기관에게 대답하시기를 (눅9: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 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직역하면 여우 도 잠자고 살아가는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깃들여 사는 둥지가 있으나 주님 은 하룻밤 편히 쉴만한 곳이 없으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는 속이고 빼앗고 사기치고 탈세하는 악한 무리들은 호화주택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외제 가구에다가 상아침대에서 외제 승용차 타고 다니고 있고 요즘같이 경제위기시대라고 온 국민들이 고통과 아픔을 함게 나누면서 허리띄를 졸 라매는 때에 자기 혼자서만 잘 살겠다고 호화 사치품을 사들이고 또 흥청대는 사람들이 있는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나라는 로마의 지배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에 붙어서 사는 관료들이나 친 로마파들은 더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여기 서기 관도 그런 부류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이 지금까지의 호화롭고 사 치스러운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를 쫏는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곧 예수와 함께 가는 길은 안락과 부귀의 길이 아니요, 희생과 봉사의 길이요, 멸시 와 천대와 ㄱ주림의 길이요, 십자가의 고난의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일시적인 흥분으로 해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서기관의 성의는 반갑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좀더 멀리 내다보게 하시고 또 생각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일시적인 흥분이나 즉흥적인 감상으로 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쉽게 낙심하게 되고 오히려 주님 의 천국 사업에 방해만 될 뿐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잔을 마시는 길이요 그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함께 고통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마16: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 둘째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먼저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대답하기를 먼저 가서 자기의 부친을 장사하게 해 달라고 하였는데 주님은 의외로 이를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가 누 구인지 기록이 되지 않았는데 마8:21절 말씀에는 제자중의 하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바로 마태라고 주장하는 주석과 기록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 말하기를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 옵소서" 라고 한 것은 지금 그의 부친이 죽었다는 통지를 받고서 하는 말이 아 닙니다. 지금 연로해 있는 부친을 두고 왔는데 부친이 별세 할 때까지 함꼐 있 으면서 부친을 위해 함꼐 있다가 그 뒤에 주님을 따르겠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은 앞서서 서기관과의 하신 말씀을 통하여 예수를 따르고 예수님과 함꼐 한다는 생활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분위기와 상황이 도저히 주님을 떠날 수가 없어서 이와 같은 핑계를 댄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람은 옳은줄 알면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람의 모형입니다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하는 것이 좋은줄 알면서도 그것이 당장 내게 어렵고 고통스러우니까 포기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시간적으로 하나님꼐 예배드리는 것을 주저하고, 물질적으로는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을 주저하고, 가정과 농사일 때문에 아니면 이웃이나 집안의 어떤 일들 때문에 주님께 충성하는 것을 주저 하는 심령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 를 좇으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죽은자란 영적으로 죽은자를 말합니다. 죽은자를 장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 네가 얻은 구원과 영생은 지금 잃어버리면 다시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은 실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육신의 생명도 중요하거니와 우리가 얻은 영생과 구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고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으로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아멘'3. 세 번째 사람은 자진하여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였으나 조건을 제 시하였습니다. (눅9:61)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라고 하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르시되 손 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두 번째 사람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그 사람은 가족들에게 작별인사 를 하는 것은 주님을 쫏는 일에 큰 지장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의 경우는 부친을 장사지내려면 유대인의 풍습에 따라 몇 주가 걸릴 지 모르나 이 사람의 경우는 잠시면 다녀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주 님께서도 허락하실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허락지 않으시고 오히려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을 하려면 우리의 몸은 하나이고 또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곳이 많을 때에 참으로 우리들은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우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매일 매 일 우리들의 신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에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기면 믿음 이 깨져버리고 맙니다. 신앙이 분산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하셨습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알아야 합니다. 눅17:11절 이하의 말씀에는 예수님이 갈릴리와 사마리아 중간에서 열명의 문 둥이를 만났습니다. 그 열명의 문둥이들은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달려가다가 자신들의 몸이 깨끗이 낳은 것을 알았을 때에 예수님께 다시 돌아와 감사를 한 문둥이는 사마리아 출신 한명 뿐이었습니다. 나머 지 아홉명은 아마도 급한일 때문에 예수님께 감사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었는 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사람대접 받지 못하고 가족들과도 생이별을 하고 살았는데 가족을 만나는 일이 급하기도 하였고 또 다른 일이 급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급한 일 다 보고 예수님을 찾아왔으나 이미 예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오늘의 우리들도 세상일 때문에 주님을 만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일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하지 못할 때도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급한일 먼저 하고 다음 주일에 교회가면 되지 하였는데 또 다른 급한 일이 생깁니다. 한가 지 일이 지나가면 또 다른 급한일이 생겨서 급한 일은 그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아무쪼록 우리 창정교회의 성도들은 주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고 따르는 축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결론: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을 따르려는 세 사람의 경우를 살펴보았습니다. 맹목적 으로 일시적인 흥분에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한 사람과 또는 이핑계 저핑계로 주님을 따르는 것을 미루는 사람의 경우입니다. (마4:19)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 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이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실 때의 상황입니다. (마4:21-22)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 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이 말씀은 요한과 야고보 형제를 부르실 때의 상황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을 때에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앞 에 나왔다가도 그냥 돌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19:16절 이하의 말씀에는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의 길을 물었 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니 그 청년은 대답하기를 계 명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시기를 (마19:21-22)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 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고 하였습니다. 또 요3장에는 니고데모라고 하는 한 사람이 밤중에 예수님께 찾아왔다가 "네 가 물과 성령님으로 가듭나야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듣고 돌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어느 쪽에 속해 있습니까 베드로와 요한과 같이 즉시 응답하고 따르는 편에 속해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청년과 같이 핑계대고 주저하는 편에 속해 있습니까 어느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선택은 마음대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대신 져 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져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영생과 구원의 길을 택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지금 즉시 따라서 하늘 나라의 기업을 얻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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