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눅9:57-62)

본문

우리들은 먼저 예수님을 믿는 것 부터 시작을 합니다. 나의 구주로, 주인으로, 나의 왕으로 믿어야 합니다. 믿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다음 믿는 단계가 섬기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예수를 쫓는 삶이라 합니다. 예수를 쫓으면 예수님이 주시는 것을 누리며 살게 된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데, (요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 가 되리라 영광을 보게되고, 누리게 된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영광을 누리기전에 제자들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말씀하고 있다.
1.머리 둘 곳이 없는 삶을 각오해야 합니다.(57,58) 57절을 보십시오.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쫓으리이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소원이 간절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큰 은혜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디든지 예수님을 따라가며, 예수님을 쫓으며 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수천 수만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제자가 되면 자기도 예수님과 같은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 제자의 삶이 아주 고상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또, 메시아 왕국이 건설되면 한 자리 할 뿐만 아니라 장래가 보장 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쫓을 것이라고, 제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무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산에 사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새도 집이 있습니다. 굴은 여우에게 피난처가 됩니다. 새의 집은 새의 보금자리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으셨습니다. 비가와도 피할 피난처도 없고 아무리 피곤해도 쉴 만한 그늘진 곳도 없습니다.
연속되는 일과 속에서 매일매일 피곤하시고 지친 삶을 사셨습니다. 너무 피곤하고 잠이 부족하여 풍랑 속에서도 주무셨습니다. 밤늦도록 양 때들을 섬기시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새벽 기도회를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사생활이 없으셨습니다. 24시간 긴장을 풀고 살 수 없습니다. 양들이 병들거나, 아프거나 위험에 처하면 자다가도, 기도하다가도 가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더러 바다를 건너가라 하시고 기도하시다 바람이 부니까 제자들이 걱정되어서 바다 위로 걸어오셔서 풍랑 이는 바다를 잔잔케 해 주셨습니다.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힘듭니까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식사할 겨를도 없이 일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잃은 양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목자의 심정 때문에 밤이 되어도 편히 쉴 수 없었습니다. 이 양 떼를 어떻게 도우며, 어떻게 방향을 잡아 줄까 하는 것으로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예수님과 같은 고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그런데 이 사람은 막연한 꿈과 이상만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 이상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아픔이 따르는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고달픈 삶인가를 깨우쳐 주심으로 분명한 각오를 하고 따르도록 일러 주셨습니다. 우리 중에도 막연한 꿈과 이상만으로 제자가 되고자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영광의 길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라 온다는 사실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고난다음에는 반드시 영광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에 고난이 있음을 알고 쫓아갑시다. 고난을 당할 때에 주어질 영광을 생각하며 능히 감당해 나갑시다.
2.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복음 전파의 사명을 최우선적으로 감당해야 합니다.(59,60) 5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제자로 부르시고 복음 역사에 쓰시고자 하셨습니다. 이 부르심은 참으로 큰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소서” 그리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부친 장사하는 일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윤리적으로 볼 때, 부친을 장사하는 일보다 더 우선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60절을 보십시오. “가라사대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셨습니다. 여기 이 사람, 십중팔구 그 부친이 죽지도 않았거니와 거의 죽어 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핑계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부친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자들에게 맡기고 최우선 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1 대게 주께서 명령하시는데 핑계를 대는 사람은 참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내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핑계 대지 말고 주의 명령을 우선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2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이미 죽은 아버지가 계시고, 그 앞에 한 젊은 형제가 죽어 가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죽어 가는 형제를 내버려두고 장사를 먼저 지내겠습니까 아닙니다. 죽은 자는 이미 죽었으니까 장사를 미루더라도 생명이 붙어 있는 형제를 먼저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은 자를 장사하는 일보다 죽어 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입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죄로 죽어 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당연히 장례를 지내는 일보다 우선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죽어 가는 생명을 살리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최우선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언제나 주의 주신 사명을 언제나 핑계되지 말고 최우선으로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먼저 핑계되어 죽은 자를 장례 지내고 산 자까지 죽이는 오류를 범하지 맙시다. 주의 주신 사명을 뒤로 미루거나 차선으로 두어 “다음에 하지요”라고 하지 맙시다. 이것도 잃고 산 자까지 잃는 것처럼 주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또 참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3.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정과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61절을 보십시오. 또,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주여 내가 주를 쫓겠나이다만은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이 사람은 예수님을 따를 마음의 각오가 된 사람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고달픈 삶과 복음 전파의 중요성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주를 쫓겠다고 결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구약 열왕기상 19;19-21절 엘리야는 엘리사를 자기 제자로 불렀습니다. 그랬을 때, 엘리사가 집에 돌아가 부모와 작별 인사를 하고 따르겠다고 했을 때, 엘리야는 그것을 허락하였으나, 예수님은 허락하시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집에 돌아가 가족과 작별하고 따르겠다는 이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셨습니다.(62) 예수님께서 보실 때 이 사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 마음속에 남은 한 가닥의 정과 인연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 자가 뒤를 돌아보면 밭을 똑바로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쟁기가 넘어져 부러지거나 쟁기가 넘어져 몸을 다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손에 쟁기를 잡았으면 앞만 보고 열심히 밭을 갈아야 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마음속에 남은 한 가닥의 미련과 끈끈한 정을 부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은 사랑이 없고 인정이 메마른 분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쫓기로 결단한 사람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사명의 길을 가야 합니다. 롯의 처는 뒤로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분부를 거역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은 부르심을 받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을 때, 아브람은 순종하여 인연, 지연, 혈연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인연, 지연은 떠났으나 하나 있는 조카 롯을 두고 떠나야 했는데 혈연을 끊지 못하고 데리고 다니다가 아브람은 숱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제가 아주 잘 아는 분중에서 예수 믿는 장립집사님인데 제가 볼 때, 이 사람이 머리가 좋고 똑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분을 그 마을에 예수님을 믿는 이가 없고, 초창기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까 믿음의 조상으로 키우시고자 하는가 생각을 했는데, 이 분이 인정이 많아서 그 인정을 끊지 못하여 신앙이 자라질 못하고 늘 채찍을 맞는 것을 봅니다. 교회서는 재정 부장을 맡아서 열심히 하고, 교회 살림을 잘 삽니다만, 집안에 돌아오면 제사를 지내는데 참석을 합니다. 물론 절은 하지 않습니다만, 집안 사람들이 욕을 한다며 참석하여 뒷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또, 제사를 지내고 나서 마을에 결혼식이 있으면 참석을 하고 곁에서 술을 한잔 권하면 권하는 그 사람 체면을 봐서 한잔씩 합니다. 상대방 생각을 늘 하다가 술도 먹고, 제사를 지내는데 참석을 합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과 몇몇 집안 사람들이 그 사람 신앙을 본받아 또 그렇게 합니다. 교인들도 그렇게 닮습니다. 이렇게 정에 매여 놓으니 신앙생활을 바로하지 못합니다. 쟁기를 붙잡고 뒤를 돌아보면 밭이랑이 바르질 못합니다. 꾸불꾸불합니다. 이 분 신앙도 꾸불꾸불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이런 이는 합당치 않다고 하십니다. 이처럼 부름 받은 성도는 마음속에 남은 한 가닥의 미련과 정을 부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잔인하고 무자비 한 것 같습니다. 또 어떻게 보면 인정이 손톱만큼도 없는 냉혈 인간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또 사단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고 가족과 마지막 인사하는 것이 뭐가 나쁜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여 언제나 메어 두고자 함으로 확실한 신앙을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정리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주님의 올바른 성도가 되려면, 이 끈끈한 정도, 혈연도, 지연도 떠나고 주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살아야겠습니다. 신앙을 위해 떠나야 할 것은 떠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끊어야 할 것은 끊어야 신앙이 자랍니다. 이런 자가 제자에 합당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신자는 인간적으로 높고자 교만함도 아니라, 사람의 종이 되어 겸손히 섬기는 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내 마음의 의와 교만을 버리고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고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머리 둘 곳 없이 사신 예수님을 본받아 구체적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89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