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영접 (막10:13-16)
본문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1년 365일 중에서 가정과 관계된 날은 2일밖에 없습니다. 그 날은 어버이 날과 어린이 날입니다. 노인의 날도 있을 법한데 없고 청년의 날도 있을 법한데 없습니다. 유독 어린이 날과 어버니 날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두 대상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와 어버이, 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어린이는 관심의 대상이고 어버이는 노고를 치하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가끔 집에 들어가서 있어야 할 아이들이 없을 때 느껴지는 쓸쓸함은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아이가 없는 집안은 천금을 다 가지고 있어도 쓸쓸한 법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어머니들은 그 아픔을 마다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또 어버이의 존재가 얼마나 큽니까 세상에 어린 아이가 귀하다고 하지만 어버이 없는 어린이를 생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어버이 없는 어린이는 있을 수도 없지만 있다 해도 그 존재는 천덕꾸러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므로 우리는 어린이에 대해서 새로운 마음을 가져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마음을 지나가실 때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안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만져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마도 서로 먼저 앞에 서려고 몰려 왔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꾸짖었다는 것입니다. 질서를 위해서 저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라.” 마태복음에서는 “너희들이 이 어린 아이들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품에 안고 안수해 주셨습니다. 예로부터 위인이 되려면 어린 아이들을 좋아하는 품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을 싫어하는 권세자들은 폭군이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영접하시고 안으시고 안수해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어린이들을 위한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성서가 말하는 어린이에 대한 생각은 이런 것입니다.
첫째, 어린 아이는 보호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보호의 천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하였습니다. 독립 의지가 없고 스스로 서지 못하며 판단력도, 결단력도 없는 아이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서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어린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을 보면 “세상의 어머니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어린 아이들의 수호 천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세상의 어린이들을 돌보실 수가 없어서 어머니들을 보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양육권을 위임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는 내 자식이지만 동시에 내 자식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임해 주신 양육자일 뿐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학대하거나 무시하거나 유기하거나 동반 자살을 하는 것은 세상의 법에서도 용서를 하지 않지만 하나님도 용서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는 세상의 법으로도 보호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보호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어린 아이는 천국의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은 순결입니다. 정신과 영과 육신의 순결입니다. 어린이는 천국의 시민입니다. 이 말씀은 어린이들의 순결을 찬양한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질문하기를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하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어린 아이의 겸손과 순결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이 같은 어린 아이를 실족하게 만드는 사람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메고 바다에 가서 빠져 죽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같이 강한 어조로 극단적인 표현을 써서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어린이를 실족하게 하는 사람에 한해서만은 강하셨던 것입니다. 그만큼 어린이에 대한 주님의 관심은 컸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어린이들을 학대하였을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헤롯 왕조가 망한 것은 예수님 탄생을 전후하여 태어난 두 살 아이들을 자신의 왕위 존속을 위하여 무자비하게 죽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그때 “하나님도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셨습니다. 폭군에 있어서는 권세 유지를 위해서 어린 아이들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 같은 악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용서하셨겠습니까 결국 헤롯 왕조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그래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조선 왕조가 망한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등 사색 당파에 의한 권세 다툼으로 정적을 제거하게 될 때는 정적만 제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자손,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까지도 죽였습니다. 그들이 자라나서 또 다시 원수를 갚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망한 것입니다. 나찌 독일도 그래서 망했습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지독한 혐오감을 가졌던 히틀러는 등에 엎고 있는 어린 아이까지 가스실에 쳐넣어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로 기름을 짜서 비누를 만들고 전장에서는 불을 피우는 기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어찌 그 권세가 영원 무궁할 수가 있습니까 일본 군국주의도 그래서 망했습니다. 전장에 나가서 싸울 만한 젊은 이들이 부족하게 되면서 미성년 아이들까지 죽총을 메게 해서 전장에 내보내었고 이들로 하여금 자살 특공대를 조직하여 경비행기에 태워 적의 군함에 뛰어 들게 함으로써 자폭하고 죽도록 훈련시켰던 것입니다. 이름하여 가미가제 특공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예리합니다. 그 눈은 인간의 숨겨진 폐부까지 꿰뚫어 보신다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망하고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져 내려도 예수님의 관심은 여전히 어린 아이들에게 쏠렸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어린 아이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심이 그들과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어린 아이는 세상의 양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확실히 어린 아이는 세상의 양심이고 고발자입니다. 어떤 때는 어른들을 부끄럽게 할 때도 많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불량 식품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몸에 해로우니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철없는 아이가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헤로운데 왜 만들어 파느냐”고, 그래야 돈을 벌 것 아니냐는 말에 어린 아이는 묘한 질문을 또 했습니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무엇하시려구요” 아버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아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이의 머리를 쥐어 박으면서 궁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놈아, 모두 너희들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 이 아이가 학교에 가서 작문 시간에 글을 지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물량 식품을 만들어 팔면서 우리 보고는 먹지 말래요.” 이 글이 단서가 되어서 그 아버지는 고발되어 구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는 세상의 양심이자 고발자인 것입니다. 누가 이 아이들을 탓할 수가 있습니까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필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될 때 담임 선생님이 한 사람 한 사람 불러서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너는 이 다음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 모든 아이들의 대답은 화려하였습니다. 자기 차례가 왔을 때 가필드는 정중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나도 장군이 되고 싶고 돈 많은 사장도 되고 싶고 대통령도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소원입니다.” 이 대답을 곁에서 듣고 있던 선생님들은 저마다 생각하기를 “장차 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꼬” 했는데 그가 커서 미국의 제 20대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인간의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군인에게 총과 칼을 맡기면 쿠테타나 일으킵니다. 인간의 조건이 미약한 사람에게 권력을 주면 부정 부패, 권력 남용을 일삼고 인간의 조건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에게 물질을 많이 안겨 주면 그는 폐인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 하고 물었을 때 “어린 아이와 같은 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은 어린 아이는 세상의 양심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교육하고 훈계하고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아이는 그만큼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어린 자녀들에게 새로운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잘 양육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어린 아이는 보호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보호의 천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하였습니다. 독립 의지가 없고 스스로 서지 못하며 판단력도, 결단력도 없는 아이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서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어린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을 보면 “세상의 어머니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어린 아이들의 수호 천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세상의 어린이들을 돌보실 수가 없어서 어머니들을 보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양육권을 위임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는 내 자식이지만 동시에 내 자식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임해 주신 양육자일 뿐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학대하거나 무시하거나 유기하거나 동반 자살을 하는 것은 세상의 법에서도 용서를 하지 않지만 하나님도 용서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는 세상의 법으로도 보호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보호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어린 아이는 천국의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은 순결입니다. 정신과 영과 육신의 순결입니다. 어린이는 천국의 시민입니다. 이 말씀은 어린이들의 순결을 찬양한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질문하기를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하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어린 아이의 겸손과 순결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이 같은 어린 아이를 실족하게 만드는 사람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메고 바다에 가서 빠져 죽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같이 강한 어조로 극단적인 표현을 써서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어린이를 실족하게 하는 사람에 한해서만은 강하셨던 것입니다. 그만큼 어린이에 대한 주님의 관심은 컸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어린이들을 학대하였을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헤롯 왕조가 망한 것은 예수님 탄생을 전후하여 태어난 두 살 아이들을 자신의 왕위 존속을 위하여 무자비하게 죽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그때 “하나님도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셨습니다. 폭군에 있어서는 권세 유지를 위해서 어린 아이들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 같은 악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용서하셨겠습니까 결국 헤롯 왕조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그래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조선 왕조가 망한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등 사색 당파에 의한 권세 다툼으로 정적을 제거하게 될 때는 정적만 제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자손,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까지도 죽였습니다. 그들이 자라나서 또 다시 원수를 갚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망한 것입니다. 나찌 독일도 그래서 망했습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지독한 혐오감을 가졌던 히틀러는 등에 엎고 있는 어린 아이까지 가스실에 쳐넣어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로 기름을 짜서 비누를 만들고 전장에서는 불을 피우는 기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어찌 그 권세가 영원 무궁할 수가 있습니까 일본 군국주의도 그래서 망했습니다. 전장에 나가서 싸울 만한 젊은 이들이 부족하게 되면서 미성년 아이들까지 죽총을 메게 해서 전장에 내보내었고 이들로 하여금 자살 특공대를 조직하여 경비행기에 태워 적의 군함에 뛰어 들게 함으로써 자폭하고 죽도록 훈련시켰던 것입니다. 이름하여 가미가제 특공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예리합니다. 그 눈은 인간의 숨겨진 폐부까지 꿰뚫어 보신다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망하고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져 내려도 예수님의 관심은 여전히 어린 아이들에게 쏠렸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어린 아이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심이 그들과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어린 아이는 세상의 양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확실히 어린 아이는 세상의 양심이고 고발자입니다. 어떤 때는 어른들을 부끄럽게 할 때도 많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불량 식품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몸에 해로우니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철없는 아이가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헤로운데 왜 만들어 파느냐”고, 그래야 돈을 벌 것 아니냐는 말에 어린 아이는 묘한 질문을 또 했습니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무엇하시려구요” 아버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아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이의 머리를 쥐어 박으면서 궁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놈아, 모두 너희들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 이 아이가 학교에 가서 작문 시간에 글을 지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물량 식품을 만들어 팔면서 우리 보고는 먹지 말래요.” 이 글이 단서가 되어서 그 아버지는 고발되어 구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는 세상의 양심이자 고발자인 것입니다. 누가 이 아이들을 탓할 수가 있습니까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필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될 때 담임 선생님이 한 사람 한 사람 불러서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너는 이 다음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 모든 아이들의 대답은 화려하였습니다. 자기 차례가 왔을 때 가필드는 정중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나도 장군이 되고 싶고 돈 많은 사장도 되고 싶고 대통령도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소원입니다.” 이 대답을 곁에서 듣고 있던 선생님들은 저마다 생각하기를 “장차 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꼬” 했는데 그가 커서 미국의 제 20대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인간의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군인에게 총과 칼을 맡기면 쿠테타나 일으킵니다. 인간의 조건이 미약한 사람에게 권력을 주면 부정 부패, 권력 남용을 일삼고 인간의 조건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에게 물질을 많이 안겨 주면 그는 폐인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 하고 물었을 때 “어린 아이와 같은 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은 어린 아이는 세상의 양심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교육하고 훈계하고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아이는 그만큼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어린 자녀들에게 새로운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잘 양육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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