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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에너지를 공급하라(II) (막10:13-16)

본문

이 시간에도 지난 시간에 위하여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고갈되어 가는 우리의 삶에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살 펴 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4. 어린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라. 어린아이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에너지와 삶의 의욕과 용기를 줍니다. 기름이 다 떨어져 가던 우리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종 어린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종반으로 가면 갈 수록 더욱더 힘이 들었습니다. 당 시 기득권을 잡았던 종교지도자들인 대제사장, 장로들, 바리새인들, 사두개 인들,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없이하려고 끈질기게 괴롭혔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괴로움을 당할 때, 하루는 어린 아이들이 찾아 왔읍니다.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시험으로 인하여 몹씨 지쳐있 고, 신경이 예민해 있는데,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오자, 제자들은 그 부모들을 꾸짖고, 어린아이들을 돌려 보내려고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분히" 여기셨습니다. 몹씨 화가 나셨읍니다.
그러면서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10:14)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피곤하고, 지친신 예수님이 쉬어서 새힘을 얻게 하려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꾸짖고 금했는데, 왜 예수님은 화를 내셨을까요 전전으로 예수님을 생각하고 한 행동인데 왜 예수님이 심히 화를 내셨 을까요 예수님이 화를 내신 것을 볼 때,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뜻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화를 여간해서 내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화를 내신 것을 볼 때, 거기에는 매우 중요한 뜻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어린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예수님께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지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지치게 한 자들은 다름 아 닌 바로 어른들입니다. 어른들은 예수님을 지치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나이가 먹어가면 갈 수록 하나님 나라 사람의 모습에서 점점 더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어른들을 만나면 예수님이 피곤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목이 곧은 어른들과 생활을 하니, 말도 안듣고, 반항하고, 따지고, 정말로 예수님을 피곤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치고 피곤할 때 이 어린이들을 만나게 되면, 힘이 생 깁니다.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 생깁니다. 어린아이들은 지친 예수님께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라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에너지의 근원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모르고 그 어린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제자들이 막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몹씨 화가 나셨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오지 못하게 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몹씨 화가 나셨 던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지친 어른들에게, 기름이 다 떨어져 가는 공장과 같은 어 른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해 줍니다. 새로움 힘과 용기와 사명감을 줍니다. 지쳐서 만사가 다 귀찮고, 죽고 싶다가도, 어린 자식을 보면, "저들을 생각해서라도 살아야지"하고 살아야 하겠다는 애착이 생깁니다. 한번은 어떤 집사님 심방을 갔더니 그 집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남편이 너무 속을 썩이고, 살기가 너무 힘이 들어서 남편과 싸움을 하는데, 남편이 칼을 2개 가지고 와서는 목에다 대면서 "너죽고 나죽자"하더랍니다.
그런데 너무나 힘들고 지쳐서 "그래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났겠 다" 생각을 하고는 "죽여라"할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들 얼굴이 순간적으로 눈 앞에 나타 나더랍니다. 그래서 이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래서는 안되 지 하고 칼을 손으로 밀어 치웠다고 합니다. 자식은 이렇게 자포자기하고, 힘들어 지쳐 쓰러질 때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주고,용기를 주고, 삶의 의욕과 삶의 오기를 공급해 줍니다.
즉 사람에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해 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식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혼자서 살기도 힘이 든데, 왜 자식들이란 혹까지 우리들에게 붙여 주셨을가요 좋으신 하나님이 주신 자식인데,우리에게 나쁜 것을 주셨을까요 우리에게 짐이 되라고 주셨을까요 우리 나라 사람은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지만, 성경 그 어디에도 자 식을 짐이라고 말씀하신 곳은 없습니다. 성경은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시127:3) 하나님이 어린 자식들을 우리게 주신 것은 그 자식들을 통하여 지치고, 삶의 에너지가 다 떨어진 우리가 새로움 힘을 얻고,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 받으라고 주셨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에게 새로운 힘과 새로운 에너지 를 공급해 줍니다. 그래서 영국의 위대한 시인이였던 윌리암 워스워드(William Wordsworth)는 "어리이들은 "길에 나부끼는 영광의 구름"(trailing clouds of glory)이다. 그리고 방에 어린아이가 있는한 우리는 오랬도안 계속해서 의기소침 한 상태(depressed)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너무 힘들고, 너무 슬프고, 너무 억울하고, 너무 절망적이여서 모든 힘 이 다 빠지고, 그래서 당장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다가도, 어린자식들을 보면, '이래서는 안되지. 그래도 살아야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서 그 어린 자식들로 인하여 새로운 힘이 생기고, 오기도 생깁니다. 이렇게 어린아이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해 줍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들과 자주 어울려야 합니다. 한참 일할 나이인 56세의 남자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 사람 장례식을 마친 후에 목사님이 그 집에 심방을 갑니다. 그러나 목사 님의 마음은 찹찹합니다. 그 미망인에게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줘야 할지 를 알지 못했습니다. 목사님은 내내 어떻게 설교를 하고, 어떻게 저들을 위로해야 할까하고 몹씨 걱정을 하며 갔습니다.
그런데 현관을 들어서는데, 그 집안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모 두들 슬픔에 깊이 빠져 있는데, 철 없는 손주 손녀들이 재미있게 뛰어 놀면 서 재롱을 부리는 바람에, 그만 그 모습을 보고는 할머니가 큰 슬픔에 빠져 있다가 웃고 말았습니다. 어린 손주 손녀들의 재롱이 큰 슬픔에 빠져서 한숨만 쉬고 있는 할머니 에게 웃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슬픔과는 정반대의 감정을 가져다 주었 습니다.
어린이들은 이렇게 슬픔과 절망속에 빠져 있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힘과 소망과 에너지를 공급해 줍니다. 오늘날 살기가 좋아지면서 생기는 병폐 중에 하나가 바로 양로원입니다. 노년에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돌본다는것은 참으로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저는 분명하게 말씀들입니다. 절대로 늙어서 양로원 가지 마세요. 거기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입니다. 거기는 희망이 끈어진 절망의 지옥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곳에 때가 되면 낙엽이 지고 한 세대가 가게 됩니다. 그래도 이 땅에 희망이 있는 것은 낙엽이 지지만 또 새로운 움이 돋아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새싹이 돋아 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낙엽은 지는데 새싹이 없다면 그곳은 영원한 죽음의 장소가 되고 맙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나이를 먹어 늙으면 쓸쓸해 집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집니다. 그 때에 새로 자라나는 어린 손주 소녀들의 새싹을 볼때, 새로운 희망이 생깁니다. 새로운 삶의 에너지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노인이 되어서는 손주 손녀들과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래 야 끝까지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고 열심히 살 수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없는 가정 보다는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이 훨씬 더 기쁘 고, 훨씬 더 안아프고, 아프다가도 속히 건강이 회복 됩니다. 그리고 어 린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노인들이 더 오래 삽니다. 베트남의 유명한 수도승 "티크 나트 한"(Thich Nhat Hanh)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루는 그가 어린아이들을 모아 놓고 말을 하는데, 팀(Tim)이라는 소년 이 아름답게 웃었습니다. 그래서 티크 나트 한 수도승이 "팀 너 참으로 아름다운 미소를 가지고 있구나"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팀이 "감사 합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티크 나트 한 수도승이 "너는 내게 감사합니다 하고 말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내가 너에게 '감사합니다'하고 말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너의 미소가 나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감사합니다'(thank you)라는 말 대신에' 천만에'하고 대답을 해야 한다" (your welcome)라고 말을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해 줍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들과 자주 시간을 보내어 새로운 에너지들을 공급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5. 안식일을 지켜라.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7일에는 쉬셨습니다. 하나님이 우 주만물을 만드시느나라고 얼마나 힘이 드셨겠습니까 이 엄청난 우주, 그 속에 있는 삼라만상들을 우리 하나님이 다 만드셨으니, 얼마나 힘이 드 셨겠습니까 그렇게 많은 것을 창조하시다가 보면, 힘이 드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만드신 후에 제 7 일에 안식하 셨습니다.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셔야 할 모든 일에서 손을 놓 고 쉬셨다"는 뜻입니다. (rested from all his work) 하셔야할 일이 없어 서 쉬신 것이 아니라, 하셔야 할 일이 많이 있지만, 일부러 쉬셨다는 말씀 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6일간 열심히 일을 하시고는 할일이 많이 있지 만 하루를 쉬셨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감사하게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쉬시는 날에 쉬라고 하셨습니다. (출20:8-11) 말씀을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라. 엿세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7 일에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 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육축까지도),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세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 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 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에 쉬게 하시는 은혜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날에 복 까지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안식일을 주셨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만약 하나님이 하나님은 쉬시는데, 우리 인간은 못쉬고 계속 일을 하게 하신다면 얼마나 우리가 불행하겠습니까
인간의 2대 비극이 있습니다. 하나는 남이 일을 하는데 일을 하지 못 하는 것이 제 1 대 비극입니다. 제 2 대 비극은 남은 쉬는데 나는 쉬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것이 비극입니다. 그래서 나머지 공부하는 것이 비극 이고, 나머지 공부하는 것 보다 더 큰 비극은 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치지 않 겠다고 퇴학을 시키는 것이 더 큰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쉬시는데, 우리 인간은 쉬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한다 면 우리 인간은 말할 수 없이 불행히 지며, 불평 불만이 가득차게 됩니다. 일년 365일 내내 쉬는 날이 없고, 그래서 일평생 내내 쉬는 날이 없다고 상 상을 해 보십시요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기가 막힐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달력에 6일이 지나면 빨간 글씨로 하루를 쉬게 하 셨습니다. 그리고 또 군대 군대 빨간 글씨로 보너스로 쉬는 날을 주셨읍니다. 쉬는 날이 빨간 글씨로 된 것은, 죄악의 종이 되어 쉴 수 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셔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셨 다는 뜻에서 빨간 글씨로 씁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이 제정한 것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흘려돌아가심으로 보증하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참으로 감사한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이 안식일을 제정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식일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하여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위하여 제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안식일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중에는 하나도 생각없이 하신 것이 없습니다. 그 속 에는 다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상상도 못하는 것 까지도 하나님은 다 생각을 하시고 모든 일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하여 정하신 계명 중에 제일 중요하고 가장 핵심적인 계명이 십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에는 더욱더 깊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제도에도 깊은 뜻이 있읍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제 7일에 안식을 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우리 인간 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계명을 주셨을까요 (사40:28)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는데 왜 하나님이 쉬셨을까요 하나님이 힘이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힘이 빠져서 새 힘을 공급 받으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을 위해서 그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드 실 때 6일을 일하고 제 7 일에는 쉬어야 고장이 나지 않고 잘 돌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제 7일에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쉬지 않고 일을 하시면 우리 인간이 어떻게 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일을 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3년 안에 하나님이 맡겨주신 모든 일을 다 이 루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병 낫기 를 38년 동안 기다리던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다고 예수님을 대적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내 아버지가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5:17)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일을 하시는데, 어떻게 아들이 놀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일을 하시면 우리 인간이 어떻게 쉴 수가 있겠습니까 비록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6일간은 일을 하고 제 7 일에는 쉬어야만 하게 마드 셔서, 제 7 일에는 우리 인간보고 쉬라고 하셔도, 만약 하나님이 일을 하시 면 우리가 어떻게 쉴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제 7 일에 안식을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마음 편 하게 쉬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제 7 일에 쉬지 않으셔서도 되고, 또 할 일도 많이 있지만 쉬셨습니다. 이렇게 안식일을 철저하게 우리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지켜서 하나님이 정하신 법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계를 고장이 나지 않고, 오래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계를 만든 자의 지시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엔진 오일을 4,000 km 마다 갈아주라고 하면 4,000 km 마다 갈아 주어야 합니다. 베아링이 있는 부분에 1년에 한번씩 윤활류를 주입하라고 하면 1년에 한번씩 윤활류를 주입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기계를 고장이 나지 않게 오래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인간의 몸의 공장을 고장이 나지 않고, 오래 잘 사용하 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의 몸을 만드신 하나님의 지시대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대로 안식일의 제도를 지키는것이 중요합니다. 물로 기계를 그 기계를 만든 사람이 시키는 대로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 기계가 쉽게 고장이 나고, 수명이 단축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난처한 일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있었던 프로야구 올스타전에 매직리그 투수 부분 올스타 였던 한화의 정민철 선수가 올스타전에 참석하기 위하여 승용차를 몰고 수 원 구장을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가 갑자가 경부고속도록 조치원 근처에서 고장이 나서 서 버렸습니다. 그로 인하여 정민철 선수 뿐만 아니라, 올스타전 관계자들을 몹씨 긴장하게 만들고,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우리도 안식일을 안 지켜도 됩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안지키면, 우리 의 몸이 쉽게 고장이 납니다. 쉽게 폐차장에 가게 됩니다. 늘 지쳐서 삽니다.
그러므로 삶에 의욕이 없고 매사에 짜증이 납니다. 그뿐 아니라 복을 못 받습니다. 이 세상에 주일 지키지 않고 복을 받는 나라가 없읍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공장이 고장 없이 오래 오래 동안 잘 돌 아가도록 하시기 위하여 정하신 제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안식일 제도를 잘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 제도를 지켜야 우리 인생의 몸의 공장에 새로운 에너지가 공급됩니다. 새로운 힘이 공급됩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킬 때 하나님은 거기에다 덤으로 복까지 주십니다. 죤 스쿨리(John Sculley)는 유명한 성공적인 사업가였습니다. 그는 애 플 컴퓨터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되었습니다. 그가 최고경영자가 된 후에 애플 컴퓨터 회사의 수입이 4배가 넘었습니다. 그래서 1년에 미국 달라로 40억불, 우리나라 돈으로 4조가 넘는 수입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컴퓨터 회사 중에 이커티(equity) 즉 담보, 과세등을 다 뺀 재 산 물건의 순가(純價)가 가장 높은 회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큰 회사의 최고경영자였지만 그는 언제나 신선했습니다. 언제 나 새힘을 얻어 살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는 그렇게 신선하게 새힘을 얻어 살 수 있었을까요
죤 스쿨리는 1년에 9 주를 휴가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휴가라고 하지 않고, 안식일 같은 것(sabbathical)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와 그의 부인은 미국 동북부의 최고 북단에 있는 메인(Maine) 주로 갔읍니다. 그는 거기에 헛간 같은 별장을 만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사진을 찍으며 재중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터로 돌아 왔을 때에는 그가 거기서 찍은 작품을 미국의 유명한 잡시 포춘(Fortune)에 실었습니다. 그는 메인에 일년에 9주를 가서 안식일 간은 시간을 보내면서 쉬는 동안 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왔습니다.
그러므로 일터로 돌아 올 때에는 그의 머리속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가득찼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더 욱더 잘 일끌어 가게 되었습니다. 안식일은 우리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급해주고, 새로운 힘을 공급해 줍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혹사를 당하고 있습니다. 쉼이 없습니다. 이것이 큰 위기입니다. 잠시 잠간은 이렇게 버틸 수 있 지만, 얼마 못가서 모든 에너지가 고갈이 나고, 모든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고갈이 나고 맙니다. 그래서 올해는 휴가가기가 힘이 드니, 우리 교회에서 가는 전교인 수련 회에 다 참석하시기를 바랍니다. 새벽과 저녁에는 저의 많은 것을 생각하 게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공븍해 주는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 침과 저녁에는 모두 자유시간입니다. 이 귀한 수련회에 다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안식에는 두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일은 최소로 하고, 하나님의 일은 최대로 하는 날입니다. 이 안식일 관 한 말씀은 (사58)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온 가족이 모이는 날입니다. 흩어져 살던 온 가족이 모이는 날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가족을 하나 로묶는 몰타르(Mortar)와 같은 역활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가정에 생일이나, 돐이나, 추도식의 날이 있으면, 그 주간 에 교회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점심을 준비하는데, 그 가정이 조금 더 협조를 하고, 식구들을 주일날 교회에 다 모이게 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온 교인이 있는 가운데 목사가 그 가정을 위하여 예배를 드 리고, 축복기도를 하고 온 가족과 교우들이 함께 애찬을 나누는 시간을 갖 겠습니다. 이렇게 안식일을 잘 지켜서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아 복된 삶을 사시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 더 좋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라.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주실 때 주로 사람을 통하여 주 신 것을 보게 됩니다. 때로는 자연을 통해서, 어떤 때는 직접 우리에게 주실 때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주실 때에도, 예언자들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율법의 말씀을 주실 때에도 모세라는 사람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절망 중에 있는 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실 때에도 사람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우리에게사랑을 주실 때에도 사람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여리고로 내 려 가다가 강도만난 자를 도와주고, 그에게 은혜를 주실 때에도 사마리아 사람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실 때에도 사람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릴 때에, 엘리야 선지자 를 통해서 살리셨습니다. 병든자들을 고칠 때에도 사도들을 통해서 고치 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실 때 사람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로운 인생의 에너지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만나야합니다. 사람들을 사귀어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는 새로 운 에너지를 얻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능력들이 인간을 통하여 우리에게 올 때, 능력의 동 맥경화증에 걸리게 됩니다. 피가 흐르는 혈관에 이물질이 끼어서 혈관이 점점 작아지듯이, 하나님의 에너지를 전달해 주는 혈관이 되는 사람을 자꾸 만나다 보면 이물질이 끼어서 그 에너지가 우리에게 잘 전달 되지 않게 됩니다. 어떤 사람을 통하여 우리가 받게 되는 영향력들이 시간이 가면서 점점 줄어들게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 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들 을 계속해서 만나야 합니다. 지금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록 더 좋습니다. 인간관계의 궤도가 점점 더 넓어 지면 질 수록 우리에게 더 많은 에너지들이 공급이 됩니다. 이것은 사귀는 사람들을 자꾸만 바꾸라는 뜻이 아닙니다.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사귀라는 말씀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됩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사업하는 사람을 만나면, 전혀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세계의 사람을 사귀는 것도 좋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새로운 기쁨을 얻게 됩니다. 감사하게 됩니다.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면서도, 늘 짜증을 내고, 삶에 의욕이 없 던 사람이, 너무나도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자를 만나게 되 면, 생활에 감사가 넘치고, 삶의 태도가 완전히 새로워집니다. 그 무엇으 로도 채울 수 없는 마음이 충만게 되고, 힘이 솟게 됩니다. 삶에 의욕이 생기게 됩니다. 전에는 살림하기가 너무 너무 힘들었는 데, 어려운가운데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자를 만나면, 알지 못한 힘이 솟아 나게 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됩니다. 붉게만 보이던 세상이 노랗게 보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인생에 새로 운 관점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줍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줍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을 줍니다. 지난 목요일에 엠마누엘 목사님과 영어성경공부를 마치고 목사님 내외를 모시다 드리면서, 오늘 저녁 예배 때 누가 설교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랬더니, 엠마누엘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설교 내 용을 이야기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엠마누엘 목사님이 설교한 내 용을 간단하게 다시 설교를 합니다. 성경 본문은 (사41:8-16)을 가지고 설교를 했는데 (41:14)에 나오는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에 촛점을 마추어 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렁이는 입이 없습니다. 눈이 없습니다. 귀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의 입이 되어주시고, 눈이 되어주시고, 귀가 되어 주 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어디로 가야할까를 결정할 때에는 그 의 눈이 되시는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때에도 그의 입이 되시는 하나님에 물어야 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도록 자기는 기다려 야 합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전혀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읍니다. 성경에 대한 새로운 눈이 뜨였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삶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집에 새로운 며느리가 들어 오면 집안 분위가가 전혀 달라질 때가 있습니다. 집에 부 모님이 오시면 집안 분위기가 전혀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을 통하여 새로운 에너지가 우리에게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더 좋은 많은 사람들과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54:2)말씀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더좋은 더 많은 더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더 새로운 힘을 얻으 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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