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얻는 길 (막10:17-22)
본문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영생의 진리와 성경 적인 물질 관을 가르 쳐주신 사건입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영생의 도리를 알고자 예수님께 찾 아 왔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인간의 조건을 다 갖 춘 유능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 앞에 서 무릎을 꿇고 심각한 질문을 이렇게 했습니다. "선하신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질문 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 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버렸습니다. 눅18:18에서는 그를 관원이라고 했 고, 마19:22절에서는 청년이라고 했습니다. 이 청년은 젊은 나이에 벌써 지방의회 관원이 되었습니다. 당시 관원이 되려면 가문도 좋고, 인물도 좋아야 했습니다. 또한 덕망이 있고, 지식도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모든 것을 갖추었 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참으로 그는 젊은 나이에 모든 사람들이 부러 워할 만한 인간의 조건을 다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행복하 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외적인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추었지만, 영혼의 만족 즉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생을 얻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 때문에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선한 선생님이여,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의 질문에 예수님게서는 "어찌하여 나를 선하 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라고 대답하셨 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선하시고, 하나님 외에는 선한 존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탁락한 인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이여"라는 칭호를 붙인 것은 노력하면 누구든지 인간은 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게서는 청년에게 인간은 선할 수 없으며,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시다는 절대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악함을 이렇게 증거 했습니다. 창 6:5-6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 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 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 한 인간의 악함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막7:21-23에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음란과 도적질, 살인과 간음, 탐욕과 악독과 광패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합니다.
그런데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단순한 인간으로 보시고 "선한 선생님 이여,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 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은 예수님을 단순한 인간으로 보는 이 부자 청년에게 내가 곧 하나님이 시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계속하여, 부자 청년의 신앙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19절을 보세요.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 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 하라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이러 한 계명들을 말씀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이 청년에게 계명을 행하는 삶을 통해서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미리 깨우쳐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이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선생님이여, 이 모든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진실한 마음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어느 정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영생을 얻지 못하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재물에 애착"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재물이 많은 부자였습니다. 이 청년은 부모로부터 많은 재물 을 상속을 받았는지, 아니면 빌게이츠와 같이 최신 정보 통신 사업을 시 작하여 떼돈을 벌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청년의 인생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인 정을 받고, 출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돈을 벌고, 명예를 얻기 위해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성실하게 노력했습니다. 어쨌든 이 청년은 세상적인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 달음박질해 왔습니다.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남에게 폐를 안 끼치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죄를 안 짓는 것으 로 만족하며, 살아왔습니다. 이것도 사실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계명을 주신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의 삶은 너무나 이기적인 삶 에 불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근본 정신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마 19:19).
그러므로 그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하지만 소극적인 선을 행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 았고, 전심으로 이웃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사는 것도 자 기를 위해서 살고, 신앙생활도 자기를 위해서 했습니다. 남에게 폐를 안 끼치면 된다는 사고방식, 즉 "네 떡 먹고, 내 떡 내 먹 겠다"는 사고방식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큰 죄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께서는 그에게 가서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명하셨 습니다. 주님은 이 청년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 영생을 얻도록 방향을 잡아 주셨습니다. 즉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더 이상 자기를 위해 서 살지 말고 자기를 희생해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삶을 살아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이 부자 청년의 문제는 하늘에 보화를 쌓지 않고, 이 땅에 보화를 쌓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금은 보화를 많이 소유했어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동전 한 닢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자 청년은 하나님 앞에서 가난뱅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 청년에게 이 땅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 들에게 나누어줌으로서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즉 주님 께서 이 부자 청년에게 하늘에 보화를 쌓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리고 이 청년이 이 세상에 재물을 쌓는 그 열심으로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늘에 보화를 쌓고자 한다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 청년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두고, 하나님 앞에서 부자가 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세요 돈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마6:21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에 재물을 쌓아 두면 마음이 땅에 붙어 있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재물 을 쌓아두면 마음이 땅에 있기 때문에 이런 분들은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재물을 쌓아 두면 마음이 항상 하늘에 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부자 청년에게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법을 가루쳐 주셨는데 그 방법은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를 좇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이 부자 청년은 돈을 버는 일에 전념해 왔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만을 좇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최고의 가치를 두고, 예수님을 좇는 삶을 살 것을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영생은 우리의 행 위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나서 "나를 좇으라" 라고 명하셨습니다. 영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요일 5:11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 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자 청 년이 진정으로 영생을 얻고자 한다면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부자 청년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2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는 많은 재물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결단의 순간에 하나님보다 재물 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였 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의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원숭이를 잡을 때, 상자 속에 바나나를 넣어 두고, 원숭 이 손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어 놓습니다. 그러면 원숭이 가 억지로 손을 집어넣어 바나나를 잡숩니다.
그런데 일단 바나나를 잡 으면손이 빠져 나오지 않습니다. 원숭이는 바나나를 잡은 채로 손을 빼 려고 낑낑거립니다. 이때 사냥꾼이 원숭이를 잡으려고 옵니다. 원숭이는 사냥꾼이 오는 것을 보고도 바나나를 놓지 않고, 손만 빼려고 애를 씁니다. 바나나만 놓으면 손을 빼고 달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숭이는 절대 로 바나나를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잡히게 됩니다. 이처럼 이 부자 청년도 재물만 놓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슬픈 기색으로 돌아 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님을 좇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물에 대한 미련을 버 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 하면 예수님을 좇는 제자의 삶을 결단할 수 없습니다. 부자 청년이 돌아 간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재물의 위험성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25절을 보세요.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심히 놀랐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유대인들은 재물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재물이 많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자들은 천국에 제일 먼저 들어갈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면서 부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시니 심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재물이 많은 자는 천국에 가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그러면 재물이 많은 자는 왜 천국에 들 어가기가 심히 어렵습니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재물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유익을 많이 줍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불신자들은 돈의 능력을 의지하 여 살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재물이라는 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필수적인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모든 구조가 돈을 중심으로 얽히고 ㅅ 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왜 직장에서 상사들의 책망을 들으면서 일을 합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사장의 말이 권위가 있는 것은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는 돈 있는 사람은 존경받고, 돈 없는 사람은 무시를 당하는 사회입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현대의 국력은 곧 경제 력입니다. 그리고현대 전쟁은 곧 무역 전쟁인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재물보다 하나님을 중히 여기며, 물질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고 영적인 가치관을 따라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 만 성경은 재물의 위험성에 대해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딤전6:9-10절을 보십시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 라고 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오늘날 신문지 상을 메우는 모든 악의 뿌리가 무엇입니까 돈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살인, 강도, 유괴, 횡령,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하여 좀 도둑에 이르기까지 모두 돈을 사랑하는 데서 다 일어나는 악입니다. 이 처럼 부하려 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시험과 올무에 빠집니다. 그리고 어 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에 미혹을 받아 믿음을 떨어먹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불 신자와 결혼하여 믿음에서 떠난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호주머니에 돈이 없을 때는 생각이 단순하여집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신앙만을 생각하고, 기도 생활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좀 생 기면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는 쇼핑할 생각을 합니다. 또 기도에 힘을 쓰기보다 돈 쓸 궁리를 합니다. 이만큼 재물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재물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되고, 그로 인해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재물의 위험성을 깊이 인정하고, 재물의 유혹을 과감히 물리쳐야 합니다. 그럼 다시 26절을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수 있는가" 라고 제자들은 서로 수근거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수근거리는 말을 듣고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이란, 율법을 지키고, 도 덕적으로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그 대가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자기 노력과 성실로서 영생을 얻고자 하는 자는, 마치 나귀를 타고 바늘 귀로 들어가려고 하는 자와 같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 자기의 죄악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때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 여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그렇게 어렵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제자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에 예수님은 그들의 희생과 아픔을 깊이 아시고 제자들이 받을 상급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비나 자식 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마씀하셨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한 사람들은 금생에 백 배의 축복을 받 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배와 그물을 버렸습니다. 장모와 아내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도 부친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레위는 세리 장부와 돈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 땅에서 백 배로 갚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집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이 땅에서 백 배로 갚 아 주십니다.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 을 믿고 제자의 삶을 살면, 부모 형제로부터 완전히 버림을 받고, 고아가 되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친구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따돌림을 받고 시아버지로부터 구박을 받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조금도 염려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믿음으로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전보다 우리의 가 정을 화목하게 하시고 우한과 질고를 좇아내시며,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물질적으로도 넘치게 축복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살면 일시적으로 볼 때 손해만 보는 것 같고 내 인생이 망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 하여 버린 것은 반드시 땅에서 백 배로 갚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끝까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물론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는 삶을 살 때, 핍박은 자연히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럼 주와 복음 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삶 살 때 내세에는 어떤 축복을 누립니까 주 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내세에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다고 하더라도, 영생을 얻지 못 하고 영원한 불구덩이에 던져진다면 얼마나 비참합니까 누가복음 16장 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나사로는 부잣집 대문 에 누워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어서 아브 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죽어서 음부의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는 천국에 있는 나사로에게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자기의 혀를 서늘 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처럼 이 땅에서 부자로 살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살고, 핍박을 겸하여 받고,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재물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재물과 영생은 상관이 없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재물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앙의 표현이고 고 백입니다. 물론 재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재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재물은 사랑과 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만 최고의 가치를 두고, 예수님을 좇는 자들이 되 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삶을 살때, 주님께서 이 땅에서 백 배로 갚아 주시고, 내세에 영생을 주실 것을 믿 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 앞에 서 무릎을 꿇고 심각한 질문을 이렇게 했습니다. "선하신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질문 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 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버렸습니다. 눅18:18에서는 그를 관원이라고 했 고, 마19:22절에서는 청년이라고 했습니다. 이 청년은 젊은 나이에 벌써 지방의회 관원이 되었습니다. 당시 관원이 되려면 가문도 좋고, 인물도 좋아야 했습니다. 또한 덕망이 있고, 지식도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모든 것을 갖추었 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참으로 그는 젊은 나이에 모든 사람들이 부러 워할 만한 인간의 조건을 다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행복하 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외적인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추었지만, 영혼의 만족 즉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생을 얻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 때문에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선한 선생님이여,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의 질문에 예수님게서는 "어찌하여 나를 선하 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라고 대답하셨 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선하시고, 하나님 외에는 선한 존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탁락한 인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이여"라는 칭호를 붙인 것은 노력하면 누구든지 인간은 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게서는 청년에게 인간은 선할 수 없으며,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시다는 절대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악함을 이렇게 증거 했습니다. 창 6:5-6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 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 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 한 인간의 악함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막7:21-23에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음란과 도적질, 살인과 간음, 탐욕과 악독과 광패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합니다.
그런데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단순한 인간으로 보시고 "선한 선생님 이여,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 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은 예수님을 단순한 인간으로 보는 이 부자 청년에게 내가 곧 하나님이 시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계속하여, 부자 청년의 신앙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19절을 보세요.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 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 하라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이러 한 계명들을 말씀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이 청년에게 계명을 행하는 삶을 통해서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미리 깨우쳐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이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선생님이여, 이 모든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진실한 마음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어느 정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영생을 얻지 못하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재물에 애착"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재물이 많은 부자였습니다. 이 청년은 부모로부터 많은 재물 을 상속을 받았는지, 아니면 빌게이츠와 같이 최신 정보 통신 사업을 시 작하여 떼돈을 벌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청년의 인생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인 정을 받고, 출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돈을 벌고, 명예를 얻기 위해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성실하게 노력했습니다. 어쨌든 이 청년은 세상적인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 달음박질해 왔습니다.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남에게 폐를 안 끼치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죄를 안 짓는 것으 로 만족하며, 살아왔습니다. 이것도 사실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계명을 주신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의 삶은 너무나 이기적인 삶 에 불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근본 정신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마 19:19).
그러므로 그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하지만 소극적인 선을 행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 았고, 전심으로 이웃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사는 것도 자 기를 위해서 살고, 신앙생활도 자기를 위해서 했습니다. 남에게 폐를 안 끼치면 된다는 사고방식, 즉 "네 떡 먹고, 내 떡 내 먹 겠다"는 사고방식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큰 죄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께서는 그에게 가서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명하셨 습니다. 주님은 이 청년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 영생을 얻도록 방향을 잡아 주셨습니다. 즉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더 이상 자기를 위해 서 살지 말고 자기를 희생해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삶을 살아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이 부자 청년의 문제는 하늘에 보화를 쌓지 않고, 이 땅에 보화를 쌓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금은 보화를 많이 소유했어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동전 한 닢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자 청년은 하나님 앞에서 가난뱅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 청년에게 이 땅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 들에게 나누어줌으로서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즉 주님 께서 이 부자 청년에게 하늘에 보화를 쌓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리고 이 청년이 이 세상에 재물을 쌓는 그 열심으로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늘에 보화를 쌓고자 한다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 청년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두고, 하나님 앞에서 부자가 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세요 돈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마6:21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에 재물을 쌓아 두면 마음이 땅에 붙어 있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재물 을 쌓아두면 마음이 땅에 있기 때문에 이런 분들은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재물을 쌓아 두면 마음이 항상 하늘에 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부자 청년에게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법을 가루쳐 주셨는데 그 방법은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를 좇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이 부자 청년은 돈을 버는 일에 전념해 왔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만을 좇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최고의 가치를 두고, 예수님을 좇는 삶을 살 것을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영생은 우리의 행 위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나서 "나를 좇으라" 라고 명하셨습니다. 영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요일 5:11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 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자 청 년이 진정으로 영생을 얻고자 한다면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부자 청년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2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는 많은 재물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결단의 순간에 하나님보다 재물 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였 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의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원숭이를 잡을 때, 상자 속에 바나나를 넣어 두고, 원숭 이 손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어 놓습니다. 그러면 원숭이 가 억지로 손을 집어넣어 바나나를 잡숩니다.
그런데 일단 바나나를 잡 으면손이 빠져 나오지 않습니다. 원숭이는 바나나를 잡은 채로 손을 빼 려고 낑낑거립니다. 이때 사냥꾼이 원숭이를 잡으려고 옵니다. 원숭이는 사냥꾼이 오는 것을 보고도 바나나를 놓지 않고, 손만 빼려고 애를 씁니다. 바나나만 놓으면 손을 빼고 달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숭이는 절대 로 바나나를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잡히게 됩니다. 이처럼 이 부자 청년도 재물만 놓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슬픈 기색으로 돌아 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님을 좇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물에 대한 미련을 버 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 하면 예수님을 좇는 제자의 삶을 결단할 수 없습니다. 부자 청년이 돌아 간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재물의 위험성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25절을 보세요.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심히 놀랐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유대인들은 재물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재물이 많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자들은 천국에 제일 먼저 들어갈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면서 부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시니 심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재물이 많은 자는 천국에 가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그러면 재물이 많은 자는 왜 천국에 들 어가기가 심히 어렵습니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재물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유익을 많이 줍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불신자들은 돈의 능력을 의지하 여 살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재물이라는 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필수적인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모든 구조가 돈을 중심으로 얽히고 ㅅ 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왜 직장에서 상사들의 책망을 들으면서 일을 합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사장의 말이 권위가 있는 것은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는 돈 있는 사람은 존경받고, 돈 없는 사람은 무시를 당하는 사회입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현대의 국력은 곧 경제 력입니다. 그리고현대 전쟁은 곧 무역 전쟁인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재물보다 하나님을 중히 여기며, 물질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고 영적인 가치관을 따라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 만 성경은 재물의 위험성에 대해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딤전6:9-10절을 보십시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 라고 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오늘날 신문지 상을 메우는 모든 악의 뿌리가 무엇입니까 돈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살인, 강도, 유괴, 횡령,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하여 좀 도둑에 이르기까지 모두 돈을 사랑하는 데서 다 일어나는 악입니다. 이 처럼 부하려 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시험과 올무에 빠집니다. 그리고 어 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에 미혹을 받아 믿음을 떨어먹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불 신자와 결혼하여 믿음에서 떠난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호주머니에 돈이 없을 때는 생각이 단순하여집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신앙만을 생각하고, 기도 생활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좀 생 기면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는 쇼핑할 생각을 합니다. 또 기도에 힘을 쓰기보다 돈 쓸 궁리를 합니다. 이만큼 재물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재물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되고, 그로 인해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재물의 위험성을 깊이 인정하고, 재물의 유혹을 과감히 물리쳐야 합니다. 그럼 다시 26절을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수 있는가" 라고 제자들은 서로 수근거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수근거리는 말을 듣고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이란, 율법을 지키고, 도 덕적으로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그 대가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자기 노력과 성실로서 영생을 얻고자 하는 자는, 마치 나귀를 타고 바늘 귀로 들어가려고 하는 자와 같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 자기의 죄악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때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 여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그렇게 어렵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제자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에 예수님은 그들의 희생과 아픔을 깊이 아시고 제자들이 받을 상급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비나 자식 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마씀하셨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한 사람들은 금생에 백 배의 축복을 받 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배와 그물을 버렸습니다. 장모와 아내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도 부친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레위는 세리 장부와 돈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 땅에서 백 배로 갚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집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이 땅에서 백 배로 갚 아 주십니다.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 을 믿고 제자의 삶을 살면, 부모 형제로부터 완전히 버림을 받고, 고아가 되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친구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따돌림을 받고 시아버지로부터 구박을 받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조금도 염려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믿음으로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전보다 우리의 가 정을 화목하게 하시고 우한과 질고를 좇아내시며,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물질적으로도 넘치게 축복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살면 일시적으로 볼 때 손해만 보는 것 같고 내 인생이 망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 하여 버린 것은 반드시 땅에서 백 배로 갚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끝까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물론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는 삶을 살 때, 핍박은 자연히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럼 주와 복음 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삶 살 때 내세에는 어떤 축복을 누립니까 주 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내세에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다고 하더라도, 영생을 얻지 못 하고 영원한 불구덩이에 던져진다면 얼마나 비참합니까 누가복음 16장 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나사로는 부잣집 대문 에 누워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어서 아브 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죽어서 음부의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는 천국에 있는 나사로에게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자기의 혀를 서늘 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처럼 이 땅에서 부자로 살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살고, 핍박을 겸하여 받고,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재물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재물과 영생은 상관이 없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재물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앙의 표현이고 고 백입니다. 물론 재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재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재물은 사랑과 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만 최고의 가치를 두고, 예수님을 좇는 자들이 되 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삶을 살때, 주님께서 이 땅에서 백 배로 갚아 주시고, 내세에 영생을 주실 것을 믿 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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