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라! 이스라엘아! (신6:5-13)
본문
들으라! 이스라엘아!/신명기6:5-13, 엡6:4
할렐루야!!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아이들과 함께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과 평강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5월5일은 어린이 날로 국가적으로 지킵니다. 이날은 또한 공휴일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는 5월을「가정의 달」로 정하고 첫 주일은「어린이 주일」로 지키고, 둘째 주일은「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린이 주일로 지킵니다. 전에는 어린이는 꽃과 같이 아름답다고 하여서 꽃주일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5월에는 여러 가지 기념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5.1일은 근로자의 날, 5.11일은 입양의 날, 5.12일은 불교의 석탄일, 5.15일은 스승의 날, 5.19일은 성년의 날, 발명의 날, 5.20일은 세계인의 날, 5.21일은 부부의 날, 5.25일은 방재의 날, 5.31일은 바다의 날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린이를 나라의 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을 꽃에다 비유를 하여서, 어린 유아 시절은 꽃망울에 비유하고, 유. 초등 시절의 어린이들은 꽃이 피기 직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청, 소년기를 꽃이 활짝 핀 시기라고 하며,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는 시기를 청. 장년기라고 하고, 열매가 익어서 거둘 때를 노년기라고 합니다.
더욱이 요즘처럼 신록이 우거지는 초여름의 5월에 어린이날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마치 새싹과도 같이 여리디 여리지만 그 새싹들은 날마다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라서 온 산야를 녹색으로 물들여 놓았습니다. 바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진달래꽃들이 산자락을 붉게 물들였는데 이제는 신록으로 새 옷을 입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도 같습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들으라! 이스라엘아!」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미래의 주인공이 될 어린이를 우리는 진정 귀히 여기며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어린이를 귀중히 보고 어린이를 사랑해야 한다는 사상은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누가 말하기를 18세기는 민중을 발견한 시대요, 19세기는 여자를 발견한 시대요,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한 시대라고 했습니다만, 벌써 2천 년 전에 예수님은 당시 천대와 멸시를 받고 사람 수에 들지도 못하던 어린이를 존귀히 여기고 사랑해줘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8: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천국에서 누가 가장 큽니까?' 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이가 큰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돌이켜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적은 아이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 가운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얼마나 귀중히 보셨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로마 제국만 해도 부모는 자식을 죽일 수도 있고, 마음대로 버릴 수도 있고, 노예로 팔아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B.C. 1세기에 힐라리온이란 사람은 그 아내에게 편지하기를 '만일 당신이 낳을 아이가 사내아이라면 기르고, 계집아이라면 버리시오' 라고 했고 세네카는'약하거나, 못생긴 아이들을 우리는 버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여자와 아이는 인구조사를 하는데 수에 넣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가지고 기적을 일으켰을 때에도 떡을 배불리 먹은 사람의 수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라고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출애굽 하였을 때 '장정만 육십만 명'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잘못된 사상을 말씀으로, 행동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 번은 많은 부모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축복기도를 받으려고 몰려들자 제자들이 꾸짖으며 아이들을 데려오지 못하게 했으나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고 용납하여라"(눅8:16)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님과 같이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어린이들을 무시하는 가정은 축복을 받지 못하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업신여기는 국가와 민족은 번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린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1. 우리들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을 반드시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다른 데 가기 전에 교회에 데리고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도 드리며 축복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은지 8일 만에 성전에 데리고 가서 제물을 드리며 결례예식을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나은지 8일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비둘기 한 쌍을 제물로 드리면서 결례 예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무엇보다도 먼저 반드시 교회에 출석할 것을 가르쳐 주고 규칙적인 신앙생활을 확실하게 가르쳐야만 됩니다.
부모는 어떻든지 자녀들을 책임지고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수준에 맞도록 가정예배도 드리고, 헌금하는 법도 가르쳐 주고, 기도하고 성경 읽는 습관도 갖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는 하나님께 회개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는 가정의 자녀들이 교회에 안 나오는 것을 가만 내버려두는 것은 얼마나 통탄할 일인지 모릅니다. 반드시 책임지고 예수님께 데려와야 합니다. 예수님께만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금식기도를 해서라도 자기 자식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인정받고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성자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 아들의 방탕함을 마음 아파하며 그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도하기를 10년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돌아오지 앉자 목사님을 찾아가서 “이제는 포기하고 기도를 중단해야 할 것 갔습니다.” 고 할 때 그 목사님은 모니카 여사에게 말하기를 “기도하는 어머니를 둔 자식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 기도하십시오. 지금 기도를 중단한다면 그 동안 10년 동안 해온 기도가 모두 수포로 돌아갑니다.” 라고 하자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다시 기도하기를 시작하여 끝내 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반면에 성경 삼상에 나오는 엘리라는 사람은 자식들이 패역한 일을 행하며 죄악을 범하는 것을 보고도 방관하다가 결국 자신은 목이 부러져 죽고 패역한 아들들은 전쟁에 나가 모두 전사를 하였습니다. 그의 가정이 滅門之禍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2. 우리들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을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신명기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한 자녀교육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녀 교육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를 보면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에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오늘의 부모들이나 소위 어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녀 교육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치고 교육한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어떤 교회 장로님의 아들이 교회를 잘 다녔는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는 교회에 나오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물어봤더니 입시 공부를 하느라고 못나오는데 입학시험에 합격하면 나오겠다고 하더랍니다. 몹시 불쾌했지만 참고 있었는데, 이듬해 그 아이가 입학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장로님 가정의 온 가족이 슬퍼하고 우울해 하면서 교회에 나왔기에 '장로님, 대학에 못 들어간 것이 그렇게 섭섭하고 안타깝습니까? 그러면 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안타까워하지 않고 감각이 없습니까?' 하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그 장로님 하는 말이 교회는 1년간 쉬었다가 나오면 되지 않습니까? 하고 대답하드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교회는 1년이고 2년이고 쉬면서 공부할 것 다 한 다음에 나와도 됩니까?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고 하였습니다.
내 자식이 옆집 아이보다 성적이 떨어지면 그의 부모들은 안달을 합니다. 그래서 학원도 더 보내고 야단법석을 떱니다. 내 자식이 다른 아이들에게 얻어 터져서 울며 들어오면 그의 부모는 아이를 닦달하면서 ‘왜 병신 마냥 맞고 다니느냐 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고 하면서 때린 아이의 부모를 찾아가 한바탕 소란을 떨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내 자식이 다른 아이들보다 신앙이 뒤떨어지고 믿음이 뒤떨어지고 교회 안 다니는 것은 왜 태평합니까? 내 자식이 귀엽고 사랑스럽거든 구원받아 천국가게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자식 구원시키지 못한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아십니까?
3. 우리의 자녀들을 세심한 관심과 사랑으로 보살펴야 합니다
<예>아일랜드의 역사가 나피엘(William F. p. rapier, 1785-1860)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어린 소녀가 울면서 유리 조각을 줍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왜 줍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주인집의 유리병을 잘못하여 깨뜨렸는데 그 주인은 얼마나 사납고 난폭한지 이 아이가 유리병을 깨뜨린 것을 알면 죽일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울면서 걱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나피엘은 자기가 그 깨어진 그릇을 사주겠다고 했지만 마침 자기 수중에는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음날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이튿날 마침 자기의 연구비를 도와주는 사람이 바로 그 시간에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때 나피엘은 어느 쪽을 택해야 좋을지 망설이다가 많은 연구비를 못 받는 한이 있어도 그 어린 소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그 소녀를 만나서 깨어진 그릇을 사주고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스폰서가 그 다음날 더 많은 연구비를 가져다주었다는 것입니다. 나피엘은 어린 소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자기의 중요한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돌봐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얼마나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무관심한 가운데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모릅니다.
어느 학교에서 연극을 하고 나서 조그마한 역을 담당했던 소년이 부모가 어디 있나하고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자기 아빠를 발견하고 칭찬 받으리라 기대하며 달려와서는 '아빠, 아빠'하고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손님과 말을 하고 있던 아빠는 짜증을 내면서 ‘야야 귀찮게 하지 마, 지금 이 분과 이야기하고 있지 않니?' 하며 무뚝뚝하고 차갑게 대답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아이에게 참으로 큰 상처를 준 것입니다.
<예>어느 26세의 젊은이가 자신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고민하는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 올라갔더니 그의 부모는 자기가 어려서 공부를 잘해도, 운동에 우승을 해도, 무엇을 만들어도, 일을 해도 언제나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씀과 흠잡는 일만 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청년은 장성해서도 만사에 자신이 없는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열등감 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할 때에 교회에서는 목사님께, 학교에서는 선생님께, 회사에서는 사장에게, 반항적이고 불평 적인 사람이 되고 말아서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는 사실 칭찬해주면 앞으로 발전이 없을까봐 자녀들이 잘했어도 다소 만족하지 못하다는 듯이 말할 때가 있으나 자녀들에게 적절한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는 자녀들을 마음으로만 사랑하지 말고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어야 합니다. 눈짓이나 몸짓으로도 할 수 있고 또는 안아주거나 하는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고, 또는 어깨를 툭툭 치며 어루만지는 것으로도 나타낼 수 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도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성적(性的)으로 아주 문란하고 정조 없는 어느 젊은 여자가 상담을 하러 왔는데 자랄 때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랐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고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본 일이 없었더랍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는 대개 사춘기 때부터 문란해지기 시작하고 정조와 지조가 없는 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대함에 있어 항상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그들을 보살피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4. 우리는 자녀들에게 사랑의 채찍으로 훈계를 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잘할 때에는 잊지 말고 칭찬해 주어야 하지만, 사회의 법을 어기거나 하나님의 규율을 어기면 고통이 있음을 깨닫도록 채찍을 가하기도 해야 합니다.
존 웨슬레(John Wesley)의 어머니 수산나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불순종하거나 반항하는 고집을 즉시 꺾어 버리라, 이것을 빨리 꺾을수록 더욱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타파되어야 할 악습을 자녀들에게 기르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또 '자녀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의 규율이나 사회의 규율을 어겼을 때 채찍을 가해서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우쳐 주고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불순종하거나 반항할 때는 반드시 그 고집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불복종하는 사람이 됩니다. 또한 거짓말하거나 속이는 버릇은 어려서부터 고치도록 빨리 징계해야 합니다. 출처 모를 물건을 가져왔을 때 묵인하지 말고 반드시 그 근거를 캐내어 징계할 때 징계해야 합니다.
징계를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벌을 줄 때는 반드시 기억해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부모의 화풀이로 때려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야지 화가 나니까 때렸구나 하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의 권위도 땅에 떨어지고 돌아서서 비웃습니다. 어떤 부모는 험악한 물건을 가지고 죽일 듯이 덤벼드는 이가 있습니다. 또 골라서 때리지 않고 머리나 얼굴 할 것 없이 아무데나 닥치는 대로 때리는 이가 있는데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둘째, 공평하게 징계해야합니다. 어느 아이는 덜 사랑하고, 어느 아이는 더 사랑하는 것 같은 불공평이 있어선 안 됩니다.
셋째, 징계 받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이유 없이 고통을 주면 무의미하고 반항심만 길러주는 것입니다.
넷째, 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의논해서 벌을 주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때리는데 어머니가 역성을 든 다든지 어머니는 때리는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나무라는 것은 다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
다섯째, 매를 들 때 욕구불만을 털어놓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됩니다. 존 웨슬레는 '필요 없이 때리기만 하지 말라. 매를 들 때는 하나님께 그것을 축복하시도록 기도하라, 그렇지 않으면 부모 자신의 심령이 해를 입고 자녀에게 유익도 없다'고 했습니다.
여섯째,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합니다. 한번 벌을 주면 그것으로 용서해 주고 끝이 나야지, 한번 지난 일을 두고두고 말하든지 되풀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회개하면“빽빽한 구름이 사라짐같이, 아침 안개가 사라짐같이 우리의 죄를 도말 하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사44:22)고 했습니다.
일곱째, 그 아이에게 맞도록 벌을 주고 그 아이만 있는 데서 벌을 주어야지 많은 사람이 있는 데서 벌을 주면 반발합니다.
잠언 22:6에 보면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고, 잠언13:24에서는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했으며, 잠언29:15에서도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자식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히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격노하셔서 그 자식들은 한 날에 다 전사하고 이 소식을 들은 엘리는 쓰러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는 비참함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아이를 대함에 있어 필요할 때에는 적절한 사랑의 매를 들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5. 우리는 자녀들에게 생활로 본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가 백 마디의 좋은 말을 해주는 것보다 생활 속에서 한번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아이들에게 깊은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생활 속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진실함과 거룩한 생활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은 속일지 모르나 어린아이의 눈은 못 속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가식을 너무도 잘 봅니다. 그러므로 자식들 앞에서 높은 영적 수준과 도덕적 수준의 생활로 본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헛된 약속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아무렇게나 해놓고 지키지 않으면 자녀들에게 거짓말쟁이나, 성실치 못한 부모가 되고 맙니다. 무엇을 사주겠다는 작은 약속이라도 잘 생각해서 지킬 수 있으면 약속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됩니다. 자녀들 앞에 절대 진실해야 합니다.
또한 아이들로 하여금 부모의 명령은 끝까지 시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에는 반드시 시행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해 보고 명령대로 안 했으면 끝까지 시행되도록 해야 합니다. 실천되지 못할 것은 아예 명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의 말씀은 적당히 기회만 넘기면 된다는 인상을 주고 권위도 없어집니다. 그런즉 일단 부모가 내어놓은 모든 말은 반드시 유지되고 시행되도록 살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어린아이를 실로 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주님을 본받아 우리 또한 어린아이를 귀히 여기고, 신앙과 사랑으로 보살피고 훈계하며, 생활로 본을 보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자녀들은 신앙적으로 또는 성경적으로 얼마나 균형 있게 잘 자라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점검을 해 보고 어느 한 면에서도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함이 없이 잘 성장하도록 양육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부모님들은 나의 자녀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속에 믿음의 영양소를 골고루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일 먼저 부모님을 보면서 자랍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신앙생활을 잘하면 자녀들도 신앙생활을 잘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하면 자녀들도 그것을 보고 배우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습니까? 만약에 잘못하고 있다면 회개하여야 합니다.
구약 성경의 요게벳은 아들 모세를 안고 젖먹이면서 너는 비록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었지만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이 민족을 반드시 해방시켜라 고 항상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구출해 내지 않았습니까?
신약성경에 기록된 디모데는 그의 어머니 로이스와 외할머니 유니게가 믿음으로 잘 가르쳤기에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리교를 창설한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목사님은 그의 아버지 사무엘과 어머니 수산나의 엄격한 신앙교육에 의하여 훌륭한 목사가 되어서 감리교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앞날은 부모들의 신앙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자녀 교육에 있어서 먼저 신앙적으로 모범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저는 여러분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자식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의 속담에 고슴도치도 제 새끼를 귀여워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자식들이 손자들이 사랑스럽고 귀엽지 않습니까? 그 귀엽고 사랑스럽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자식들이 복되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부모로서 무엇을 하여 주었습니까? 돈 많이 벌어서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남겨주겠습니까? 아니면 돈 많이 들여서 공부를 많이 시키겠습니까? 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은 바로 신앙의 유산입니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신앙교육 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값진 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차원 높여서 구원의 문제입니다. 자녀들이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느냐 아니면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명심하여야 합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교회의 성도 여러분들은 자녀들에게 믿음으로 본을 보이므로 그 자녀들이 신앙 안에서 균형 있게 성장되어 예수님과 같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구원을 이룰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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