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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병자의 치유 (막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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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병자의 치유 /마가복음 2:1~12



예수님은 신적인 권위가 있으십니다.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예수님의 권위를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신분입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둘째 성령의 충만입니다. 마가복음 1장 10절에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에게 임하십니다. 셋째, 경건의 훈련입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에 예수님은 아무리 피곤하고 고단해도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께 깊이 기도하십니다.


신적인 권위가 있으신 예수님!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사역을 어떻게 묘사할까요? 권위 있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권위 있게 귀신을 쫓아내시며, 권위 있게 각종 병 특히 나병을 고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중풍병도 고치십니다. 심지어 중풍병 뿐 아니라, 죄까지도 사하십니다. <본문 10절>“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오늘 설교의 제목은 ‘중풍병자의 치유’입니다. 세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첫째, 예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몰려옵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는데, 갑자기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네 사람이 지붕의 기와를 뜯고, 한 중풍병자를 침상 채 달아 내립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십니다. <본문 5절>“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여기서 ‘그들의 믿음’은 침상을 메고 온 네 사람과 중풍병자의 믿음을 가리킵니다. 아마도 네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신다. 심지어 나병까지도 고치신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찾아가서 설득합니다. 처음에 중풍병자는 완강히 거절했을 것입니다. 스스로 걸어서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네 사람은 끈질기게 설득합니다. ‘우리가 침상 채 메고 가면 된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갈 수가 없습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지붕을 뜯고 침상을 달아 내립니다.


예수님이 보신 그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네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중풍병자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믿음, 중풍병자는 처음에 완강하게 거절했지만 결단하고 예수님 앞에 나오는 믿음, 네 사람이 협력하여 침상을 메는 믿음, 네 사람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붕을 뜯어 침상을 달아 내리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산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9장에 두 가지 산 믿음의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고침을 받은 사건입니다. 그녀는 사람을 헤집고 예수님에게 다가갑니다.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겉옷을 몰래 만집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찾으십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그녀를 축복하십니다. <마 9:22>“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다른 하나는 두 맹인이 고침을 받은 사건입니다. 두 맹인이 소리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질문하십니다. <마 9:28>“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로 믿느냐?” 그들은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오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선포하십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믿음이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가난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 비유’가 나옵니다. 가난한 과부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끈질기게 호소하여 결국 원한 맺힌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반문하십니다. <눅 18:8>“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예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앞에 나오실 때, 믿음으로 나오십니까? 믿음으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헌금하고, 믿음으로 전도하고, 믿음으로 직분을 감당하고, 믿음으로 봉사하고, 믿음으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믿음으로 천국에 갑니다. 신앙생활을 믿음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롬 1:17>“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죄를 사하십니다.


본문 5~10절입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서기관들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성모독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다 아시고 그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여러분,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 중에 어느 말이 쉬울까요?


인간적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이 쉬운 말입니다. 죄 사함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겉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거짓으로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은 중풍병자에게 역사가 나타나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마가복음 1장 31절에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34절에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42절에 심지어 나병까지도 고치십니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중풍병도 고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서기관들에게 질문하신 의도는 무엇일까요? <본문 10절>“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십니다. 달리 표현하면 예수님은 신적 권세가 있으십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죄를 사하는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서기관들은 왜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는 알고 하나는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알았던 것은 ‘오직 하나님이 죄를 사하신다.’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몰랐던 것은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시다.’는 진리입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단지 말씀을 잘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병을 고치시는 분 정도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소문을 듣고 예수님 앞에 몰려오는데, 그들의 관심은 오직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복을 받고, 안식과 평안을 얻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시고,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요 67:35>“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53>“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그런데 사람들은 빵에만 관심이 있고, 예수님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결국 예수님 곁을 떠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요 6:68~69>“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십니다. 죄와 죽음에서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땅에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온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 사함과 구원을 주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셋째, 예수님은 신유를 베푸십니다.


본문 11~12절입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주시고, 이어서 중풍병도 고쳐주십니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그는 일어나서 침상을 들고 걸어 나갑니다. 놀라운 역사입니다. “곧”이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역사가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다 놀라워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난생 처음 보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질병의 치유에는 자연적인 치유와 의학적인 치유, 초자연적인 치유가 있습니다. 자연적인 치유는 일반적으로 민간요법입니다. 의학적인 치유는 의사가 의약과 의술로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초자연적인 치유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을 신유라고 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신유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고 말씀하십니다(출 15:26). 선지자 말라기를 통하여 ‘내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라.’(말 4:2)고 약속하십니다. 야고보는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고 설교합니다(약 5:15). 성자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신유 사역을 많이 행하십니다(마 4:23, 9:35). 마태복음 8~9장에는 예수님의 9가지 신유 사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밖에도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질병을 고치시는 장면이 많습니다. 복음서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야의 신유 사역을 예언합니다. <사 53: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성령 하나님도 신유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 가운데 ‘병 고치는 은사’ 즉 신유의 은사를 말씀합니다. 성령은 지금도 신유의 은사를 베푸시고, 신유의 능력을 주십니다.


지난 시간에 나병환자의 치유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나병환자에게는 소원이 있고, 그는 부르짖어 기도하여 신유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소원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소원을 품고 기도하여 신유의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중풍병자에게는 믿음이 있고, 믿음의 동료가 있습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중보하여 신유의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요삼 1: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교회는 믿음으로 병마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믿음으로 환자를 위하여 끊임없이 중보해야 합니다. <약 5:16>“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은 지금도 신유의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죄 사함을 주시는데 하물며 신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을까요? 소원을 품고 믿음으로 신유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신적인 권위를 갖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각종 병을 고치십니다. 나병도 고치시며, 중풍병도 고치십니다. 특히 중풍병을 고치실 때, 예수님은 먼저 믿음을 보시고 죄를 사하시며 신유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대단합니다.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십니다.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믿음으로 신유를 체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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