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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될 수 없는 배 (눅8: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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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사고는 인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배를 만들 때는 좌초해도 침몰하지 않도록 될 수 있는 한 튼튼하게, 웬만한 풍랑을 만나도 전복되지 않도록 될 수 있는 한 안전하게 설계하여 건조합니다. 얼마 전 남해안에서 거대한 유조선 씨 프린스 호가 좌초되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태풍을 피하지 못해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는 자신만만한 구호를 내걸고 처녀 출항한 영국의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도 침몰했습니다.
그런데 거센 풍랑을 만나서 침몰할 수밖에 없었는데도 침몰하지 않았던 자그마한 고깃배 한 척을 본문이 소개하고 있어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제자들이 탄 배가 광풍을 만났습니다(23절). 하루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실 목적으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는 순조롭게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피곤한 나머지 배 뒤편에서 주무셨을 정도라면 적어도 30-40분 정도 지났을 것입니다. 갑자기 날씨가 돌변하여 거센 바람이 호수 위로 불기 시작했습니다. 뒤이어 큰 파도가 일면서 순식간에 배 안에 물이 차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1:2-3에 의하면 제자들 가운데 적어도 7명이 어부 출신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오랜 경험도 사태를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다급해졌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깨우면서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둘째로, 예수님은 침몰 직전의 배를 구하셨습니다(24절). 인생항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배는 물만 있으면 아무 데나 다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배가 다닐 수 있는 뱃길(해로)이 따로 있습니다. 물밑의 암초 가 없어 좌초할 염려 없이 안전하게 지날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람이 주의하며 이런 길을 찾아 다닌다면 그의 인생은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안전한 인생항로를 제시해 줍니다. 그러나 귀찮게 여겨서 그것을 좇지 않는다면 졸지에 우리의 인생은 좌초되고 침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배가 항로를 곧바로 따라 간다고 해서 안전한 항해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항해에 중요한 또한 가지 요소는 바람입니다. 항상 항해에 도움이 되는 순풍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예기치 못한 광풍이 닥쳐올지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도 언제 어떤 고난과 위기가 광풍처럼 닥칠지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겪었던 경험이 그 좋은 예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적지 않게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고난과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탄 배는 침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배는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그 배에 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노도광풍을 꾸짖어 잠잠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목적지에 도달하셨습니다.당신은 그와 같은 능력의 주님을 삶 속에 모시고 있습니까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 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저희가 이 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 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 케 하시는도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 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백성의 회에서 저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저를 찬송할지로다” (시107:23-32)
셋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25절). 예수님께서는 사태를 수습하신 후에 두려워하던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25절)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데 왜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진작 말하지 않고 하다 하다 안되니까 뒤늦게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책망은 우리들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똑같이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서 어떤 믿음을 기대하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분은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그분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기를 바라십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꾀 많은 토끼는 백수의 왕 사자가 자기 뒤에 있는 한 어떤 짐승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영접했다고 하는 그리스도인이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곤히 주무시는 것에 대해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으로 계실 때는 인간적인 한계를 스스로 취하셨기 때문에 과도한 사역에 피곤한 나머지 잠시 주무시는 것이 필요했지만 부활의 몸을 입으신 이후에는 결코 주무실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 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121:3-4)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거듭 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분은 믿음이 부족하다고 책망하십니다. 하물며 전혀 믿음을 가지지 않는 불신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 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벧전4: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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