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겨울 준비 (눅8:22-25)
본문
가을이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겨울이 시작되려고 합니다. 매년 이맘 때가 되면 사람들은 겨울 준비를 하게 됩니다. 김장도 하고난로도 준비하고 겨울 옷도 손질을 하고 집안도 정리해서 겨울 지낼 준비를 하게 됩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옵니다. 사람은 이렇게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준비해 가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은 사람뿐 아니라 자연도 그렇고, 생물도 그렇고,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들도 겨울이 되면 잎이 다 떨어지고 나무의 표리를 두텁게 하여 겨울 날 준비를 합니다. 생물들도 곤충들도 겨울을 나기 위해서 둥지를 틀고 들어가 잠을 잡니다. 뱀들도 개구리들도 모두 땅 속에 들어가서 긴 겨울 잠을 잡니다. 이렇게 자연도, 생물도, 동물도 인간도 겨울은 살아가기가 어려운 계절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들은 겨울 준비가 없으면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 계절적인 겨울 말고 인생의 겨울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봄날 같은 때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아주 소망적이고 희망이 있고 꿈이 있는 때는 마치 그 인생이 봄날 같은 때입니다. 이때는 사람이 사는 것 같습니다. 살 맛이 나는 때입니다. 그런가 하면 여름과 같은 때를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 때는 마치 나무들이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성장하듯이 일도 잘되고 승진도 하고 그래서 살아가기가 아주 재미있는 그런 때입니다. 인생은 그런 맛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그런 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겨울과 같은 때도 옵니다. 이때는 마치 인생이 겨울과 같이 추운 때입니다. 갑자기 낭패를 당하고 곤란을 당하고 실연을 당하고 아픔을 당해서 놀라고 당황하고 눈앞이 캄캄한 경우를 당하는 때, 그때가 바로 인생의 겨울입니다. 그때는 그 인생이 굉장히 추울 때고 암담할 때고 고뇌스러운 때입니다. 그래서 이때를 가리켜 “인생의 겨울”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찾아오는 인생의 겨울은 대개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실직했을 때”입니다. 오늘날은 이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잘 나가던 직장에서 갑자기 실직을 당합니다. 그러면 온 가정에 갑자기 추운 겨울이 닥쳐 옵니다. 한파가 물아치고 풍파가 일어나고 그래서 당황하고 불안해 합니다. 여러분, 가장이 어느 날 갑자기 실직을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TV에서도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유능한 직장인이 직장에서 승승 장구합니다. 말하자면 잘 나가는 샐러리맨입니다. 이 사람은 직장에서 감원 돌풍이 불어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왜냐하면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감원 대상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실직한 친구들이 찾아와서 처량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면 연민의 눈으로 친구들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에게도 감원 통보가 왔습니다. 그날이 온 것입니다. 눈앞이 캄캄합니다. 갑자기 이 집안에 한파가 휘몰아쳤습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겨울입니다.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추운 겨울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황당하고 자신이 처량하겠습니까 그래서 요즘 갑자기 명예 퇴직을 당하고 나서 그 허망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술로 소일하다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정신적인 질환까지 발생해서 병원을 찾고 고생하는 분들까지 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인생의 겨울입니다. 그런가 하면 “건강 상실”도 인생에게 찾아오는 겨울일 수 있습니다.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생전 병원이라는 곳을 모르고 일만 하던 사람인데 몸이 이상해서 진찰을 해보니까 중병입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 꼼짝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그 결과 꿈도 잃어버리고 일터도 잃어버리고 미래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얼마나 심각한 문제입니까 그래서 인생은 장담할 일이 아니고 자만할 일이 아닙니다. 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실패”도 아주 추운 겨울일 수 있습니다. 잘 나가던 사업이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부도가 나 버립니다. 남들만 부도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나도 부도를 냈습니다. 사업이 잘 될 때는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들더니 부도가 나니까 사람들이 하나 둘 주변에서 멀어져 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초라해지고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입니다. 남들만 실패하는 줄 알았는데 나도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니 이 겨울이 얼마나 추운 겨울입니까 가장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견디기 힘든 그런 겨울입니다. 어떤 중소기업 사업을 건실하게 잘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실패를 해서 부도가 났습니다. 너무나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사면초가입니다. 사람들 보기가 민망했습니다. 가족들 보기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 겨울이 얼마나 추우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습니까 계적적인 겨울은 3개월이면 끝나 버리지만 이 인생의 겨울은 끝이 없습니다. 언제까지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인생의 겨울은 더 추운 것입니다. 여러분, “나에게는 실패란 없다” 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 있습니까 그럴 수만 있다면야 그 인생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망망대해를 항해해도 무사히 돌아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그 항해가 얼마나 낭만 있고 스릴 있고 기분 좋은 여행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으니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주변에는 언제나 탄식이 있고 고뇌가 있고 몸부림이 있고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겸손해야 합니다.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장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은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만하고 교만할 존재가 못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제자들에게도 갑자기 겨울이 닥쳐 왔습니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난을 당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배타고 건너 갑니다. 그때 바다는 조용하고 한산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그야말로 잔잔한 바다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여유를 가지고 한가롭게 강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항해를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다가 그렇게 조용하면 어부들이 고기를 잡는 데 얼마나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광풍이 불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광풍은 “미친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돌풍입니다. 회리바람입니다. 그러니까 조용하던 바다는 순식간에 거센 파도로 소용돌리를 쳐댔고 배는 물에 잠겨 뒤집힐 지경이 되었고 겁에 질린 제자들은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순식간에 겨울 한파가 밀려온 것입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배가 침몰할 수도 있습니다. 속수무책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때가 있습니다. 인생살이가 그냥 살아가기가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고 생사를 가름하는 위기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이 황당하고 그 마음이 춥겠습니까 그래서 그때를 인생의 겨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와 같은 겨울 몇 번만 만나게 되면 반드시 발견하게 되는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신비의 눈을 뜨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이 갑자기 광풍이 불어와 순식간에 배가 뒤집힐 지경이 되니까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일어나시더니 바다를 꾸짖으십니다. “바다여 잠잠하라.:” 그러니까 순식간에 바다가 잠잠했다고 했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어디 있느냐”하고 나무라십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마8:26)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고 나무라십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눈 뒀다 뭐하느냐“는 말입니다. 이 말을 우리들이 유념해서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드은 배를 타기 전에 문둥병자가 고침받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백부장의 종 중풍병자가 고쳐지는 모습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베들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죽어 가는 것을 고침받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풍랑을 만나고 나서는 그런 일들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지금도 그런 기적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떨고만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무라십니다. “왜 무서워하느냐, 너희는 눈 뒀다 뭐하느냐” 그러십니다. 이 말은 병자들이 고침받는 것을 너희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서도 왜 나를 믿지 못하느냐 그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생활은 “눈 뜨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보는 생활”입니다. 누구를 보느갸 하면 “예수를 보고 발견하는 생활”입니다. 자연을 보고 그 속에서 섭리하시는 예수를 보는 생활입니다. 이웃을 보면서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보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깊이는 평상시에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 10년을 했어도 밋밋한 신앙으로 살아왔으면 이렇게 속에 감추어진 신비한 부분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수많은 기적을 보았고 병자들이 고침받는 것을 보아 왔지만 그것은 그냥 남의 일로 본 것이지 자기 일처럼 실감 있게 체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풍랑을 만나서 자신들이 직접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이고 보니까 비로소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당하는 위기는 사람들에게 신비의 눈을 뜨게 해줍니다. 그런가 하면 위기 시에는 “진정한 예수를 발견하게”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예수는 두 종류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윤리적인 예수입니다. 사람이 평안하게 살아갈 때는 윤리적인 예수로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고상한 예수로 나타나고 도덕적인 예수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때의 예수는 그리 위력이 없습니다. 믿어도 그만이고 안 믿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예수로 나타납니다. 그런가 하면 진정한 예수는 고난의 때에 나타납니다. 이 고난의 때에 나타나는 예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을 훨씬 넘는 지금, 여기서, 나에게 나타나셔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예수로 나타나십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이 고난은 이런 예수를 만나게 해줍니다. 이 예수를 만나야 비로소 사람이 신앙이 뭔지를 논하게 되고 신앙의 맛을 알게 됩니다. 어느 대학생이 세상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늘 불만이 많았습니다. 못마땅한 것이 많았습니다. 늘 마음이 불화하고 어둡고 그늘진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를 알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부터인가 소화가 잘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찰을 해보니 위암이라는 판정이 났습니다. 앞으로 6개월 정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대학생이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그만 너무나 놀라서 병원을 뛰쳐 나가다가 길바닥에 엎드려 무릎을 꿇고 생전 처음으로 기도라는 것을 했습니다. “하나님 내 생명을 1년만 연장해 주십시오.” 얼마나 다급한 기도입니까 히브리 격언에 보면 사탄도 병들면 천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위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 다른 눈을 뜨게 해줍니다. 그 눈은 적어도 신비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에게 예수가 있다는 사실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우리들이 위급할 대 예수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행복한 일입니다. 제자들이 배가 뒤집힐 만큼 위급한 상태가 되니가 다급하게 예수를 깨웁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다급할 때 깨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축복입니다. 그래서 빽이 좋은 것입니다. 다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든든한 빽이 내게 있다면 세상 살기가 얼마나 수월하겠습니까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사람들이 위급할게 될 때는 예수를 찾아가고 예수를 깨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이같은 깊은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 세상에 예기치 않았던 환난도 주시고 고난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다가 당하는 인생의 추운 겨울은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깨닥게 해줍니다. 이것이 또 중요한 진리입니다.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쓴 빅토르 프랭클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 정신과 의사입니다. 이 사람이 그 악명 높은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가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살아서 나옵니다. 그 수용소에서 경험한 삶과 죽음의 경험들을 토대로 해서 책을 썼습니다. 그는 그 책 속에서 인간의 존재와 의미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는 거기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사람이 죽음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면 몸부림을 치게 되는데 그때는 무엇에 근거해서 발버둥칠 용기가 생기는가”하고 묻고는 스스로 대답하기를 “그것은 의미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는 나치 독일의 죽음의 수용소에 갇혀 있었으면서도 어떻게 그곳에서 이겨냈는가 하면 눈물과 한숨으로 이겨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굉장한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여려분, 사람들이 가끔씩 눈물과 한숨과 비명을 지르게 되는데 왜 그런 비명을 지르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살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죽을 사람에게는 비명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면 비명을 지르면서 주는 소리를 합니다.
왜냐하면 주사를 맞으면 아플 것 같으니까 비명을 지르는 것입니다. 주사 맞지 않는 아이는 비명 지를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왜 불신이 있고 갈등이 있습니까 그것은 더 확실한 신앙을 갖고자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신이고 갈등이고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무슨 갈등이 있고 불신이 있고 회의가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이치는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나고 목이 마른 것도 알고 보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려니까 고민이 있고 갈등이 있고 배가 고픈 것입니다. 시체는 배고픔도 없고 갈증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이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이 추운 인생의 겨울을 겪다 보면 이렇게 뭔가 새로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는 언제나 예수가 내 속에 내주해 있어야 합니다. 예수가 내 인생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지 아니하면 갑자기 겨울이 닥쳐올 대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갑자기 풍랑이 일면 깨울 사람이 없습니다. 찾아갈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때 우리는 속수무책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가 필요합니다. 그 예수는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우리의 지팡이이십니다. 그 예수가 여러분의 인생을 주관하시도록 함께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 계절적인 겨울 말고 인생의 겨울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봄날 같은 때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아주 소망적이고 희망이 있고 꿈이 있는 때는 마치 그 인생이 봄날 같은 때입니다. 이때는 사람이 사는 것 같습니다. 살 맛이 나는 때입니다. 그런가 하면 여름과 같은 때를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 때는 마치 나무들이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성장하듯이 일도 잘되고 승진도 하고 그래서 살아가기가 아주 재미있는 그런 때입니다. 인생은 그런 맛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그런 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겨울과 같은 때도 옵니다. 이때는 마치 인생이 겨울과 같이 추운 때입니다. 갑자기 낭패를 당하고 곤란을 당하고 실연을 당하고 아픔을 당해서 놀라고 당황하고 눈앞이 캄캄한 경우를 당하는 때, 그때가 바로 인생의 겨울입니다. 그때는 그 인생이 굉장히 추울 때고 암담할 때고 고뇌스러운 때입니다. 그래서 이때를 가리켜 “인생의 겨울”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찾아오는 인생의 겨울은 대개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실직했을 때”입니다. 오늘날은 이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잘 나가던 직장에서 갑자기 실직을 당합니다. 그러면 온 가정에 갑자기 추운 겨울이 닥쳐 옵니다. 한파가 물아치고 풍파가 일어나고 그래서 당황하고 불안해 합니다. 여러분, 가장이 어느 날 갑자기 실직을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TV에서도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유능한 직장인이 직장에서 승승 장구합니다. 말하자면 잘 나가는 샐러리맨입니다. 이 사람은 직장에서 감원 돌풍이 불어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왜냐하면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감원 대상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실직한 친구들이 찾아와서 처량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면 연민의 눈으로 친구들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에게도 감원 통보가 왔습니다. 그날이 온 것입니다. 눈앞이 캄캄합니다. 갑자기 이 집안에 한파가 휘몰아쳤습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겨울입니다.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추운 겨울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황당하고 자신이 처량하겠습니까 그래서 요즘 갑자기 명예 퇴직을 당하고 나서 그 허망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술로 소일하다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정신적인 질환까지 발생해서 병원을 찾고 고생하는 분들까지 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인생의 겨울입니다. 그런가 하면 “건강 상실”도 인생에게 찾아오는 겨울일 수 있습니다.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생전 병원이라는 곳을 모르고 일만 하던 사람인데 몸이 이상해서 진찰을 해보니까 중병입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 꼼짝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그 결과 꿈도 잃어버리고 일터도 잃어버리고 미래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얼마나 심각한 문제입니까 그래서 인생은 장담할 일이 아니고 자만할 일이 아닙니다. 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실패”도 아주 추운 겨울일 수 있습니다. 잘 나가던 사업이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부도가 나 버립니다. 남들만 부도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나도 부도를 냈습니다. 사업이 잘 될 때는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들더니 부도가 나니까 사람들이 하나 둘 주변에서 멀어져 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초라해지고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입니다. 남들만 실패하는 줄 알았는데 나도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니 이 겨울이 얼마나 추운 겨울입니까 가장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견디기 힘든 그런 겨울입니다. 어떤 중소기업 사업을 건실하게 잘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실패를 해서 부도가 났습니다. 너무나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사면초가입니다. 사람들 보기가 민망했습니다. 가족들 보기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 겨울이 얼마나 추우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습니까 계적적인 겨울은 3개월이면 끝나 버리지만 이 인생의 겨울은 끝이 없습니다. 언제까지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인생의 겨울은 더 추운 것입니다. 여러분, “나에게는 실패란 없다” 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 있습니까 그럴 수만 있다면야 그 인생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망망대해를 항해해도 무사히 돌아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그 항해가 얼마나 낭만 있고 스릴 있고 기분 좋은 여행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으니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주변에는 언제나 탄식이 있고 고뇌가 있고 몸부림이 있고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겸손해야 합니다.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장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은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만하고 교만할 존재가 못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제자들에게도 갑자기 겨울이 닥쳐 왔습니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난을 당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배타고 건너 갑니다. 그때 바다는 조용하고 한산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그야말로 잔잔한 바다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여유를 가지고 한가롭게 강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항해를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다가 그렇게 조용하면 어부들이 고기를 잡는 데 얼마나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광풍이 불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광풍은 “미친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돌풍입니다. 회리바람입니다. 그러니까 조용하던 바다는 순식간에 거센 파도로 소용돌리를 쳐댔고 배는 물에 잠겨 뒤집힐 지경이 되었고 겁에 질린 제자들은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순식간에 겨울 한파가 밀려온 것입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배가 침몰할 수도 있습니다. 속수무책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때가 있습니다. 인생살이가 그냥 살아가기가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고 생사를 가름하는 위기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이 황당하고 그 마음이 춥겠습니까 그래서 그때를 인생의 겨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와 같은 겨울 몇 번만 만나게 되면 반드시 발견하게 되는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신비의 눈을 뜨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이 갑자기 광풍이 불어와 순식간에 배가 뒤집힐 지경이 되니까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일어나시더니 바다를 꾸짖으십니다. “바다여 잠잠하라.:” 그러니까 순식간에 바다가 잠잠했다고 했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어디 있느냐”하고 나무라십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마8:26)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고 나무라십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눈 뒀다 뭐하느냐“는 말입니다. 이 말을 우리들이 유념해서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드은 배를 타기 전에 문둥병자가 고침받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백부장의 종 중풍병자가 고쳐지는 모습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베들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죽어 가는 것을 고침받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풍랑을 만나고 나서는 그런 일들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지금도 그런 기적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떨고만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무라십니다. “왜 무서워하느냐, 너희는 눈 뒀다 뭐하느냐” 그러십니다. 이 말은 병자들이 고침받는 것을 너희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서도 왜 나를 믿지 못하느냐 그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생활은 “눈 뜨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보는 생활”입니다. 누구를 보느갸 하면 “예수를 보고 발견하는 생활”입니다. 자연을 보고 그 속에서 섭리하시는 예수를 보는 생활입니다. 이웃을 보면서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보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깊이는 평상시에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 10년을 했어도 밋밋한 신앙으로 살아왔으면 이렇게 속에 감추어진 신비한 부분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수많은 기적을 보았고 병자들이 고침받는 것을 보아 왔지만 그것은 그냥 남의 일로 본 것이지 자기 일처럼 실감 있게 체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풍랑을 만나서 자신들이 직접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이고 보니까 비로소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당하는 위기는 사람들에게 신비의 눈을 뜨게 해줍니다. 그런가 하면 위기 시에는 “진정한 예수를 발견하게”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예수는 두 종류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윤리적인 예수입니다. 사람이 평안하게 살아갈 때는 윤리적인 예수로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고상한 예수로 나타나고 도덕적인 예수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때의 예수는 그리 위력이 없습니다. 믿어도 그만이고 안 믿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예수로 나타납니다. 그런가 하면 진정한 예수는 고난의 때에 나타납니다. 이 고난의 때에 나타나는 예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을 훨씬 넘는 지금, 여기서, 나에게 나타나셔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예수로 나타나십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이 고난은 이런 예수를 만나게 해줍니다. 이 예수를 만나야 비로소 사람이 신앙이 뭔지를 논하게 되고 신앙의 맛을 알게 됩니다. 어느 대학생이 세상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늘 불만이 많았습니다. 못마땅한 것이 많았습니다. 늘 마음이 불화하고 어둡고 그늘진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를 알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부터인가 소화가 잘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찰을 해보니 위암이라는 판정이 났습니다. 앞으로 6개월 정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대학생이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그만 너무나 놀라서 병원을 뛰쳐 나가다가 길바닥에 엎드려 무릎을 꿇고 생전 처음으로 기도라는 것을 했습니다. “하나님 내 생명을 1년만 연장해 주십시오.” 얼마나 다급한 기도입니까 히브리 격언에 보면 사탄도 병들면 천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위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 다른 눈을 뜨게 해줍니다. 그 눈은 적어도 신비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에게 예수가 있다는 사실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우리들이 위급할 대 예수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행복한 일입니다. 제자들이 배가 뒤집힐 만큼 위급한 상태가 되니가 다급하게 예수를 깨웁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다급할 때 깨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축복입니다. 그래서 빽이 좋은 것입니다. 다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든든한 빽이 내게 있다면 세상 살기가 얼마나 수월하겠습니까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사람들이 위급할게 될 때는 예수를 찾아가고 예수를 깨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이같은 깊은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 세상에 예기치 않았던 환난도 주시고 고난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다가 당하는 인생의 추운 겨울은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깨닥게 해줍니다. 이것이 또 중요한 진리입니다.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쓴 빅토르 프랭클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 정신과 의사입니다. 이 사람이 그 악명 높은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가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살아서 나옵니다. 그 수용소에서 경험한 삶과 죽음의 경험들을 토대로 해서 책을 썼습니다. 그는 그 책 속에서 인간의 존재와 의미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는 거기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사람이 죽음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면 몸부림을 치게 되는데 그때는 무엇에 근거해서 발버둥칠 용기가 생기는가”하고 묻고는 스스로 대답하기를 “그것은 의미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는 나치 독일의 죽음의 수용소에 갇혀 있었으면서도 어떻게 그곳에서 이겨냈는가 하면 눈물과 한숨으로 이겨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굉장한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여려분, 사람들이 가끔씩 눈물과 한숨과 비명을 지르게 되는데 왜 그런 비명을 지르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살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죽을 사람에게는 비명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면 비명을 지르면서 주는 소리를 합니다.
왜냐하면 주사를 맞으면 아플 것 같으니까 비명을 지르는 것입니다. 주사 맞지 않는 아이는 비명 지를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왜 불신이 있고 갈등이 있습니까 그것은 더 확실한 신앙을 갖고자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신이고 갈등이고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무슨 갈등이 있고 불신이 있고 회의가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이치는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나고 목이 마른 것도 알고 보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려니까 고민이 있고 갈등이 있고 배가 고픈 것입니다. 시체는 배고픔도 없고 갈증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이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이 추운 인생의 겨울을 겪다 보면 이렇게 뭔가 새로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는 언제나 예수가 내 속에 내주해 있어야 합니다. 예수가 내 인생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지 아니하면 갑자기 겨울이 닥쳐올 대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갑자기 풍랑이 일면 깨울 사람이 없습니다. 찾아갈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때 우리는 속수무책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가 필요합니다. 그 예수는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우리의 지팡이이십니다. 그 예수가 여러분의 인생을 주관하시도록 함께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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