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보십시오 (눅8:26-40)
본문
예수께서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오셨습니다. 바다에서 바람 을 잠잠케 하신 자연계의 통치 주께서 인생의 본래를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한 사람을 보셨습니다.
I. 귀신들린 자, 곧 타락인을 봅니다(눅 8:26-30). 본문 누가복음 8장 27절에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라 고 하였습니다. 그는 부분적인 수리만으로는 전혀 회복이 불가능해져 버린 자였습니다. 완전 폐인(광인)이었습니다. 그는 귀신에게 붙잡혀 자기 본래의 인 생을 절취당하고 말았습니다. 귀신은 이 사람을,
1. 벌거벗겨 놓고 말았습니다.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눅 8:27)라고 하였습니다. 벌거벗은 수치를 나타내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부끄러운 줄을 몰 랐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주도하는 오늘 나체 문명의 한 모습을 보여 주 고 있습니다. '오래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함으로 상습적인 나체 문명의 생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집에 거하지 못하게 해 버렸습니다. 본문에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눅 8:27)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가정과 사회에서 고립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오늘 사탄 이 주도하는 탕자 문명의 일면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집 밖에서의 자유를 갈구하려고 하는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를 가리켜 '탕자'라고 하였습니다(눅 15:13). 하나님의 집에서 먼 나라로 떠나 버린 자식이라고 하였습니다.
3. 무덤 사이에 거하게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눅 8:27)고 하였습니다. 무덤은 죽음과 썩음의 장소입니다. 산 사람이 살지 못하고, 죽은 시체 들이 썩고 있는 장소입니다. 사탄이 주도하는 모험과 공포와 스릴 (thrill) 문명의 장면을 보여 줍니다.
4. 큰 소리로 떠들어대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눅 8:28)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를
1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보았습니다.
2 그리고 예수 앞에엎드리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3 그러나 그 큰 소리의 내 용은 자신과 예수는 상관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자기를 괴 롭히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이른바 오늘 사탄이 주도하는 방가(放歌) 문명의 내용을 보여 줍니다. 현대인은 예수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엎드 리는, 즉 종교적 자세도 취합니다. 그럼에도 그 속에는
2,000년 전의 예수 당신과 현대를 살아가는 나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예수는 자기를 괴롭히는 자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자율주의 이방 종교는 인생을 괴롭혀도, 타율주의인 계시 종교는 인생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해 줍니다. 그것은 구원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5. 그는 귀신에게 꽉 붙잡혀 버렸습니다. 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눅 8:29)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가끔'은 새로 번역하면 '오랜 시간 동안'이란 말입니다. 그는 귀신에게 오랜 시간 동안 꽉 붙잡혀 버렸습니다. 상습적인 노예 상태로 도무지 벗어날 자력이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사탄이 주도하는 상습적 인 죄악의 노예 근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탄 문명은 여러 종류의 사슬들로 사람들을 포로로 만들고 있습니다. 6. 난폭한 사람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눅 8:29)고 하였습니다. 제어할 수 없는 그의 난폭성, 광폭성, 무법성, 무질서성, 파괴성을 보 여 줍니다. 결코 자신의 도덕적 양심의 힘이 아닌 사탄의 힘이었습니다. 바로 사탄이 주도하는 불법과 무법과 패괴와 혼란의 시대상을 보여 주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탄은 가정의 윤리나 사회나 국가의 질서를 파괴하도록 사람들을 광 인 되게 선동합니다. 성경의 신조나 교리나 교회의 규칙을 끊어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도록 방종적 자유주의 사상들을 고취하고 있습니다. 7. 다수의식(多數意識)의 종이 되게 해 버렸습니다.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가로되 군대라 하니 (눅 8:30)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군대'라는 말 '레기온'은 6,000명에 해당되는 규모의 그 당시 부대를 칭합니다. 자기를 지원하는 사탄의 수와 세력이 많고 크 다는 답변입니다. 그는 불행스럽게 자신의 고유명사인 이름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많 은 귀신의 압제 아래 살고 있는 자신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주도 하는 현대 문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다수의식입니다. 자의식의 상실 입니다. 민주주의의 힘이 바로 이 다수의식입니다만 그럼에도 다수가 부 패할 때 역사는 그 운명적인 종말을 맞이함을 보았습니다. 참된 역사의 가치척도는 인본주의적 다수가 아니라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자신입니다. 8. 자학자가 되게 해 버렸습니다. 마가복음 5장 5절에 …돌로 제 몸을 상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사탄이 주도하는 현대 문명의 모습 중에 하나가 자학과 자살입니다. 정말 죽음에 이르는 병을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귀신(사탄)으로 말미 암아 인생의 본래를 잃어버린 완전 타락인의 모습입니다. 한 사람 아담 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만난 사망의 실존입니다(창 3:1-9). 그는 '귀신들린 자' 곧 타락한 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린 탕자의 모습입니다.
Ⅱ. 귀신 나간 사람, 곧 구원인을 봅니다(눅 8:31-37).
1.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자리잡은 귀신을 명하사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 셨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많은 군대 귀신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 들어감으 로 돼지떼가 호수가 몰사하고 말았습니다(눅 8:33).
2. 결과, 성경은 그를 귀신 나간 사람 (눅 8:35)이라고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귀신 나간 자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 옷을 입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눅 8:35). 이는 인성(人性)의 회복을 가리킵니다. 도덕성 회복입니다. 곧 원상회 복, 원상복구를 뜻합니다. 벌거벗은 수치의 상태가 가리움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벌거벗은 아담을 위하여 대신 동물을 죽여서 그 가 죽으로 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창 3:21). 이는 하나님께서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입혀 주신
1 칭의의 옷(슥 3:3-5)
2 회개의 흰옷(계 7:14, 22:14)
3 빛나 고 깨끗한 세마포 옷(계 19:8)
4 왕의 잔치에 참여하는 예복(마 22:12) 5 돌아온 아들에게 입혀 주신 제일 좋은 옷(눅 15:22) 6 빛의 갑옷(롬 13:12)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옷입은 자가 된 것입니다.
둘째,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눅 8:35). 이는 영성(靈性) 회복을 가리킵니다.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옴을 뜻 합니다. 말하자면 자의식 회복입니다. 인간의 구심력이 바로 잡혔다는 뜻입니다. 지구가 지축(地軸)을 중심하고 회전하듯이, 이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고 그 인생이 정립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셋째, 예수의 발아래 앉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눅 8:35). 이는 예배성 회복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창조 본연의 위치로 되돌아왔 음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원래 인간이 하나님 앞에 받은 축복의 자리입니다. 부모 앞에 자식을 앉게 했습니다. 스승 앞에 제자를 앉게 했습니다. 주인 앞에 종을 앉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인생을 앉게 했습니다.
넷째, 예수와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했다 (눅 8:38)고 하였습니다. 이는 창조성 회복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인간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있 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행복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구원인'이라고 합니다. 거라사의 모든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보았다고 하였습니다(눅 8:36). 바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임을 보여 줍니다.
Ⅲ. 귀신 나간 사람, 곧 사명인을 봅니다. 본문 누가복음 8장 38절에 보면 예수님은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 를 구했으나 저를 보내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라(눅 8:39)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고 하였습니다(눅 8:39).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로 말미암아 자기를 사탄(귀신)의 압 제에서 건져내신 것(구원)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의 말대로 지체없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했다 (눅 8:39)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구원 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새 사명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 지 않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장터나 무덤 가에 놀고 있는 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자 기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불가불 예수께서 자기에게 행한 '큰 구원의 사건'을 모든 사람에게 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예수께서 보신 한 거라사 사람을 함께 보았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을 보았습니다. 곧 그리스도 밖에 있던 사람, B.C.의 인생을 보았습니다. 그는 타락한 죄인의 상징이었습니다. 어둠의 표본이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구원인을 보았습니다. 귀신 나간 사람, 곧 A.D.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자기에게 행한 큰 일 을 증거하는 사명인을 보았습니다. 현대가 만난 본질적 위기는 인간성 상실입니다. 그것은 사탄의 침노를 받은 결과 야기된 탕자 문명의 시대입니다. 현대인들은 여러 종류의 정신적 착란으로 정기(正氣)를 잃고 있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 종류의 불안, 공포, 불만족, 혼란, 스트레스 등으로 오는 불면증, 현기 증이 극심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제, 수면제, 나아가 환각제가 판을 칩니다. 현대가 만난 본질적 위기는 사탄(귀신) 문화의 맹성입니다. 사람이 사 탄에게 붙잡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어 가 고 있습니다. 거꾸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비정상이 정상의 궤도를 달리 고 있습니다. 결과는 무의미의 반복, 허무와 허탈, 공포와 불안, 초조입니다. 그 결과 많은 군대 귀신들의 노예가 되어 버린 일입니다. 결코 현대가 만난 인간성의 위기는 생태적 심리학이나, 기계적 과학주 의나,이상적 정치철학이나, 교육철학이나, 정서적 예술이나 문학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인생이 만난 문제들의 부분적 수리에 불과합니다. 예수께서 인생 중에 오셔야 합니다. 예수께서 인생들을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인생을 붙잡고 있는 사탄(귀신)을 향하여 나가라고 명령해야 됩니다. 그때만이 옷을 입은 나를 볼 수 있습니다. 정신이 온 전한 나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무릎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아닌 예수와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 나를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사람인 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행하신 큰 구원의 은총을 많은 사람에 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이 큰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I. 귀신들린 자, 곧 타락인을 봅니다(눅 8:26-30). 본문 누가복음 8장 27절에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라 고 하였습니다. 그는 부분적인 수리만으로는 전혀 회복이 불가능해져 버린 자였습니다. 완전 폐인(광인)이었습니다. 그는 귀신에게 붙잡혀 자기 본래의 인 생을 절취당하고 말았습니다. 귀신은 이 사람을,
1. 벌거벗겨 놓고 말았습니다.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눅 8:27)라고 하였습니다. 벌거벗은 수치를 나타내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부끄러운 줄을 몰 랐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주도하는 오늘 나체 문명의 한 모습을 보여 주 고 있습니다. '오래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함으로 상습적인 나체 문명의 생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집에 거하지 못하게 해 버렸습니다. 본문에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눅 8:27)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가정과 사회에서 고립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오늘 사탄 이 주도하는 탕자 문명의 일면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집 밖에서의 자유를 갈구하려고 하는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를 가리켜 '탕자'라고 하였습니다(눅 15:13). 하나님의 집에서 먼 나라로 떠나 버린 자식이라고 하였습니다.
3. 무덤 사이에 거하게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눅 8:27)고 하였습니다. 무덤은 죽음과 썩음의 장소입니다. 산 사람이 살지 못하고, 죽은 시체 들이 썩고 있는 장소입니다. 사탄이 주도하는 모험과 공포와 스릴 (thrill) 문명의 장면을 보여 줍니다.
4. 큰 소리로 떠들어대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눅 8:28)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를
1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보았습니다.
2 그리고 예수 앞에엎드리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3 그러나 그 큰 소리의 내 용은 자신과 예수는 상관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자기를 괴 롭히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이른바 오늘 사탄이 주도하는 방가(放歌) 문명의 내용을 보여 줍니다. 현대인은 예수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엎드 리는, 즉 종교적 자세도 취합니다. 그럼에도 그 속에는
2,000년 전의 예수 당신과 현대를 살아가는 나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예수는 자기를 괴롭히는 자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자율주의 이방 종교는 인생을 괴롭혀도, 타율주의인 계시 종교는 인생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해 줍니다. 그것은 구원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5. 그는 귀신에게 꽉 붙잡혀 버렸습니다. 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눅 8:29)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가끔'은 새로 번역하면 '오랜 시간 동안'이란 말입니다. 그는 귀신에게 오랜 시간 동안 꽉 붙잡혀 버렸습니다. 상습적인 노예 상태로 도무지 벗어날 자력이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사탄이 주도하는 상습적 인 죄악의 노예 근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탄 문명은 여러 종류의 사슬들로 사람들을 포로로 만들고 있습니다. 6. 난폭한 사람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눅 8:29)고 하였습니다. 제어할 수 없는 그의 난폭성, 광폭성, 무법성, 무질서성, 파괴성을 보 여 줍니다. 결코 자신의 도덕적 양심의 힘이 아닌 사탄의 힘이었습니다. 바로 사탄이 주도하는 불법과 무법과 패괴와 혼란의 시대상을 보여 주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탄은 가정의 윤리나 사회나 국가의 질서를 파괴하도록 사람들을 광 인 되게 선동합니다. 성경의 신조나 교리나 교회의 규칙을 끊어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도록 방종적 자유주의 사상들을 고취하고 있습니다. 7. 다수의식(多數意識)의 종이 되게 해 버렸습니다.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가로되 군대라 하니 (눅 8:30)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군대'라는 말 '레기온'은 6,000명에 해당되는 규모의 그 당시 부대를 칭합니다. 자기를 지원하는 사탄의 수와 세력이 많고 크 다는 답변입니다. 그는 불행스럽게 자신의 고유명사인 이름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많 은 귀신의 압제 아래 살고 있는 자신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주도 하는 현대 문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다수의식입니다. 자의식의 상실 입니다. 민주주의의 힘이 바로 이 다수의식입니다만 그럼에도 다수가 부 패할 때 역사는 그 운명적인 종말을 맞이함을 보았습니다. 참된 역사의 가치척도는 인본주의적 다수가 아니라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자신입니다. 8. 자학자가 되게 해 버렸습니다. 마가복음 5장 5절에 …돌로 제 몸을 상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사탄이 주도하는 현대 문명의 모습 중에 하나가 자학과 자살입니다. 정말 죽음에 이르는 병을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귀신(사탄)으로 말미 암아 인생의 본래를 잃어버린 완전 타락인의 모습입니다. 한 사람 아담 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만난 사망의 실존입니다(창 3:1-9). 그는 '귀신들린 자' 곧 타락한 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린 탕자의 모습입니다.
Ⅱ. 귀신 나간 사람, 곧 구원인을 봅니다(눅 8:31-37).
1.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자리잡은 귀신을 명하사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 셨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많은 군대 귀신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 들어감으 로 돼지떼가 호수가 몰사하고 말았습니다(눅 8:33).
2. 결과, 성경은 그를 귀신 나간 사람 (눅 8:35)이라고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귀신 나간 자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 옷을 입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눅 8:35). 이는 인성(人性)의 회복을 가리킵니다. 도덕성 회복입니다. 곧 원상회 복, 원상복구를 뜻합니다. 벌거벗은 수치의 상태가 가리움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벌거벗은 아담을 위하여 대신 동물을 죽여서 그 가 죽으로 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창 3:21). 이는 하나님께서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입혀 주신
1 칭의의 옷(슥 3:3-5)
2 회개의 흰옷(계 7:14, 22:14)
3 빛나 고 깨끗한 세마포 옷(계 19:8)
4 왕의 잔치에 참여하는 예복(마 22:12) 5 돌아온 아들에게 입혀 주신 제일 좋은 옷(눅 15:22) 6 빛의 갑옷(롬 13:12)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옷입은 자가 된 것입니다.
둘째,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눅 8:35). 이는 영성(靈性) 회복을 가리킵니다.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옴을 뜻 합니다. 말하자면 자의식 회복입니다. 인간의 구심력이 바로 잡혔다는 뜻입니다. 지구가 지축(地軸)을 중심하고 회전하듯이, 이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고 그 인생이 정립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셋째, 예수의 발아래 앉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눅 8:35). 이는 예배성 회복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창조 본연의 위치로 되돌아왔 음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원래 인간이 하나님 앞에 받은 축복의 자리입니다. 부모 앞에 자식을 앉게 했습니다. 스승 앞에 제자를 앉게 했습니다. 주인 앞에 종을 앉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인생을 앉게 했습니다.
넷째, 예수와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했다 (눅 8:38)고 하였습니다. 이는 창조성 회복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인간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있 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행복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구원인'이라고 합니다. 거라사의 모든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보았다고 하였습니다(눅 8:36). 바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임을 보여 줍니다.
Ⅲ. 귀신 나간 사람, 곧 사명인을 봅니다. 본문 누가복음 8장 38절에 보면 예수님은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 를 구했으나 저를 보내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라(눅 8:39)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고 하였습니다(눅 8:39).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로 말미암아 자기를 사탄(귀신)의 압 제에서 건져내신 것(구원)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의 말대로 지체없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했다 (눅 8:39)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구원 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새 사명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 지 않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장터나 무덤 가에 놀고 있는 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자 기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불가불 예수께서 자기에게 행한 '큰 구원의 사건'을 모든 사람에게 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예수께서 보신 한 거라사 사람을 함께 보았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을 보았습니다. 곧 그리스도 밖에 있던 사람, B.C.의 인생을 보았습니다. 그는 타락한 죄인의 상징이었습니다. 어둠의 표본이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구원인을 보았습니다. 귀신 나간 사람, 곧 A.D.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자기에게 행한 큰 일 을 증거하는 사명인을 보았습니다. 현대가 만난 본질적 위기는 인간성 상실입니다. 그것은 사탄의 침노를 받은 결과 야기된 탕자 문명의 시대입니다. 현대인들은 여러 종류의 정신적 착란으로 정기(正氣)를 잃고 있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 종류의 불안, 공포, 불만족, 혼란, 스트레스 등으로 오는 불면증, 현기 증이 극심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제, 수면제, 나아가 환각제가 판을 칩니다. 현대가 만난 본질적 위기는 사탄(귀신) 문화의 맹성입니다. 사람이 사 탄에게 붙잡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어 가 고 있습니다. 거꾸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비정상이 정상의 궤도를 달리 고 있습니다. 결과는 무의미의 반복, 허무와 허탈, 공포와 불안, 초조입니다. 그 결과 많은 군대 귀신들의 노예가 되어 버린 일입니다. 결코 현대가 만난 인간성의 위기는 생태적 심리학이나, 기계적 과학주 의나,이상적 정치철학이나, 교육철학이나, 정서적 예술이나 문학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인생이 만난 문제들의 부분적 수리에 불과합니다. 예수께서 인생 중에 오셔야 합니다. 예수께서 인생들을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인생을 붙잡고 있는 사탄(귀신)을 향하여 나가라고 명령해야 됩니다. 그때만이 옷을 입은 나를 볼 수 있습니다. 정신이 온 전한 나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무릎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아닌 예수와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 나를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사람인 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행하신 큰 구원의 은총을 많은 사람에 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이 큰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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