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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 일일이 고하라! (눅8:26-39)

본문

오늘 본문에 보면, 거라사 지방에 귀신이 들려, 무덤 사이에서 살던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병이 들었다는 이유로 집에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집에서 버림을 받았으니 동네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 줄리가 없습니다. 마침내, 그는 동네에서 쫓겨나 오랜 기간동안 옷도 입지 않은채, 벌거벗은 몸으로 지내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묘지에 가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나 불쌍한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나면서 부터 소경이 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선생님, 이 사람이 소경 된것이 누구의 죄 때문 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아니면 이 사람의 죄입니까”하고 묻는 장면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사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어떠한 경우 의문 투성이 일때가 많습니다. 오늘, 이 사람은
1왜 귀신이 들렸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사람은
2왜 남이 앓지 않는 병을 그만이 유독 앓아야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또한
3남이 만나지 못한 주님을, 그가 만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수가 없습니다. 그가 주님을 찾아 나선것이 아닙니다. 그냥 무덤에서 살고 있는데, 주님이 그를 찾아 가신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언제나 인간보다 먼저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범죄한 아담을 주님이 먼저 찾으셨습니다. “가인아 네가 어디 있느냐”.범죄한 가인을 주님이 찾으셨습니다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은 노아를 부르셨고, 아브라함을 부르셨으며, 다윗을 부르셨습니다. 위대한 용사 기드온을 부르셨고, 예레미야를 불러 나라를 구원하셨습니다. 12년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 주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시고, 주님이 직접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주님이 그 가정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 가시고 오빠와 두 자매만 살고 있었는데, 그만 오빠가 죽게된 슬픔의 사정을 주님이 아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가정에 주님이 가셔서 친히 죽은 그의 오라비 나사로를 살려 주셨습니다. 오늘, 내가 주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마음의 깊은 소원을 주님은 아십니다. 우리 가정에 그 무엇보다도 주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주님은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우리 교회에, 우리 민족과 국가에 주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주님은 잘 아십니다. 오늘 본문의 이 사람은 그가 주님을 찾아 나선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먼저 그를 찾아 가신것 입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그 속에 거하는 악한 귀신을 향하여, “이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옵소서!”하고 애원합니다.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물으시니, 그는 “군대”라고 대답 하였습니다. 이는 많은 귀신이 이 사람의 몸에 거하면서, 정신을 온전치 못하게 하며, 그의 몸을 제어하여 광야로 나아가 온갖 추한 모습으로 살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놓아도 어찌나 힘이 센지 그것을 끊고, 사람을 해치며 광야로 나아가, 사람이 살 수 없는 무덤에서 거하게 한 것입니다. 귀신에게 이끌려 다니는 이 사람,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군대 귀신은 예수님께 간절히 구하기를 “무저갱에 들어가라”고 명하지 말것을 소원합니다. 마침 거기, 많은 돼지떼들이 있어서 군대 귀신은 그 돼지떼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고, 주님이 허락하시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 들어가니, 그 많은 돼지 떼들이 비탈로 내리 달아 호수에 빠져 모두 몰사 하였습니다.
돼지를 치던 자들이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무서워 도망을 치면서 이 사실을 성내와 촌에 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고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된것을 보고,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 하면서 예수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 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귀신을 내어 쫓아 온전하게 된 그 사람보다는 돼지가 더 중요 했던 것 입니다. 그들에게는, 인간의 생명 보다는 돼지의 생명이, 한 사람의 영혼 보다는 물질이 더 소중 했던 것 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온 천하 보다도 인간의 한 생명을 더욱 귀중히 여기시는 분 이심을 우리는 밝히 알 수 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주님을 만나게 되니까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분명한 사실 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이처럼 문제가 해결됩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치고 그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모시면 샘솟는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 입니다. 오늘 본문의 귀신들렸던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났기에 그의 인생에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새로운 광명이 찾아 온 것입니다. 마치, 캄캄한 밤에 길을 잃었던 배가 한줄기 찬란한 빛을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 이제는 옷도 입고 정신이 온전하게 돌아 왔습니다. 그는 주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어가던 인생,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이 불쌍한 인생이 새로운 삶을 찾았으니 얼마나 기뻣겠습니까 남은 일생동안 주님의 수종을 들어도 못갚을 은혜 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과 함께 살며, 주님을 따르겠노라고 주님께 고백 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의 대답은 전혀 뜻 밖이였습니다. 그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를 내어 쫓은, 그 집으로 돌아 가라는 것 입니다. 자기를 돌보지 않고, 내어 쫓은 그 집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은, 우리에게 많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를 내어 쫓은 그 집으로 어떻게 돌아가란 말인가!, 건강 하기만 하다면 이제 주님만 따라 다니면서 한 평생을 지내도 여한이 없는데, 왜 가기도 싫은 집으로 가라고 하시는가!”. 어떻게 생각하면, 주님이 야속합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었습니다. 창12: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하셨습니다. 아브람에게는 분명, 집을 떠나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부르실 때에도 집과 고향과 식구와 직장을 버리고서라도, 따라 오라고하셨습니다. 마8:21F에 보면, 심지어 부친이 죽어 장례식을 마치고 주님을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장례식마져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즉시 따라 오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장례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던 분이 이번에는 따라가겠다고 나선 사람에게, 오히려 집으로 돌아가라고 돌려 보냅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주님 이십니다. 왜., 주님이 이사람을 집으로 가라고 하셨을까 우리는 여기서 주님이 왜 그를, 집으로 돌려 보냈는지를 살펴보기 원 합니다.
첫째로, 주님이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이유는 경험을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그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 해 주셨습니다. 돌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하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일일이 사람들에게 고하라는 것 입니다. 고쳐주신, 그 일에 대해서 증거 하라는 것 입니다 복음은 이처럼, 증거 되어야만 합니다. 특별히 주님께서는, 사랑의 주님이 인간에게 하신 구속의 사건에 대하여 경험한 그대로를 우리가 증거하기 원 하십니다. 오늘, 이 사람은 집에서 떠나 병자로 지내면서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고생을 했을 것 입니다. 집에 가게 된다면 푹 쉬면서 요양 할 만도 합니다. 잠도 실컷 자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도 싶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할일이 있어서 돌아 가라는 것 입니다. 신앙의 경험을 함께 나누라는 것 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집으로 가서 증거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보실 때, 그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것 입니다. 그가 집에서 나올 때는 병자의 몸으로 쫓겨 났지만, 돌아갈 때에는 건강한 사람으로 증인의 역할을 가지고 가는 것 입니다. 우리는 일주일에도 몇번씩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교회에 모였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목적은 의식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목적을 깜빡 잊을 때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마음속에 생각하기를, “예배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달려가서 밀린 공부를 해야지.”하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생각하기를 “오늘은 식구들과 모처럼 쇼핑을 가든지 야외로 나가 봐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이는 “예배가 끝나면, 얼른 가게 문을 열어야지”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집으로 가는 목적은 먹고 살기위한 의식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가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주님을 만난 성도는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오늘 받은 은혜를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 오늘 만난 주님을 안 믿는 내 가족들에게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 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부모는 그 자녀에게, 자녀는 그 부모에게 전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에 대해서 얼마나 강조하고 계신지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증인’이라는 말씀은 73번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증거’라는 말씀은 무려 137번 기록되고 있으며, ‘전도’라는 말씀은 25번, ‘전파’라는 말씀은 93번이나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증인이 될것에 대해서 성경은 328번이나 말씀하고 있는 셈 입니다. 시편 96:3절에 보면, “그 영광을 열방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중에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16:15절에도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집으로 가되, 주님을 만나고 나서, 받은 바 은혜에 대한 많은 것들을 가지고 가서 일일이 고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집으로 돌아가면 주님이 내게 어떻게 하셨는가를 일일이 증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집으로 돌아가라는 주님의 말씀은 복음화의 가장 첫번째 순서는 가정 이라는 사실 입니다. 귀신 들렸던 이 사람의 집에는 자기를 공동묘지로 쫓아낸 슬픔의 식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잘 돌보아 주지 않고, 학대하고 내어 쫓았는데, 아무리 식구라 해도, 이제 그들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주님이 이러한 사정을 모르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 하신것 입니다. 주님은 마16:24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말씀 했습니다. 최소한, 우리 가정은 내게 맡겨주신 십자가 인줄로 믿습니다. 바로 이들에게 예수를 소개하라고 주님은 말씀 하신 것 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증거 해야할 가장 첫번째 대상은 바로, 우리의 가정이며 우리의 식구들 입니다. 만일, 집에 가서 증거 하지 않으면 집으로 가는 의미 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밝히 말씀 하시기를,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V.39)”고 하신 것 입니다. 똑같은 말씀이, 마가복음 5장에도 나오는데, 막5:19절 에서는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친속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가족, 친지, 가까운 이웃에게 이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행1:8절에서도 보면,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습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예배 하는 곳이요, 현재 내가 있는 장소를 말합니다.
온 유대는,-이스라엘, 즉 우리나라를 말하며, 사마리아는-이방나라, 즉 다른 국가, 다른 민족,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 개인으로 보면, 예루살렘은 우리의 가정인 것 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부터 복음이 전해 져야 하며, 그리고 나서 우리 동네, 우리 나라, 그리고 다른 나라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 입니다. . 성광교회, 주보를 보니까 한 사람이 한 사람씩 꼭 전도하자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할 것 입니까 아직도 구원 받지 못한 식구들이 있다면, 바로, 여러분의 식구에게 가장 먼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교회에도, 여러 층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어떤 가정은 부모는 나오는데, 자녀들이 안 나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가정은 자녀들은 나오는데, 부모가 안 나오는 가정이 있습니다. 어떤이는 남편이나 자식들이 다 안나오고, 혼자만 나오는 성도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가정 전체가 예수를 믿는 가정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그분들은 교회 봉사를 해도 마음 놓고, 열심히 합니다. 헌금도 많이 드립니다. 직분도 많이 맡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힘이 넘쳐 보입니다. 그러나, 남편도 자녀도 안나오는 여집사님은, 예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가야만 합니다. 직분을 감당하기 조차 어렵고, 식구들의 눈치가 보이는 것 입니다. 심방을 가도 안 믿는 식구들 때문에 눈치가 보입니다. 예배가 은혜롭게 진행 될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내 가정, 내 식구들을 먼저 전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행16:31절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 갇혔을때, 찬송과 기도로 인하여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갑자기 지진이 일어 나며 옥터가 움직이고 감옥문이 열리며, 바울과 실라를 꽁꽁 묶었던 쇠사슬이 다 풀렸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이 열린것을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간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문책이 두려워, 자기 검을 빼어들고 자결을 하려 합니다. 그때, 감옥 안에 있던 바울과 실라는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당신의 몸을 상하지 마시오!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외쳤습니다. 간수는 놀라운 사건들을 보고 벌벌 떨면서 “선생님들,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였습니다. 예수의 복음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예수를 믿을때에 만이, 우리 가정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에 이 구원의 기쁜소식을 전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나 한사람으로 인하여 복음이 우리 가정에 전하여 지고, 온 식구가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 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집으로 돌아 가라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 갈 수 없는 때가 온다는 사실을 암시 합니다. 눅16장에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사람이 다같이 죽어,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고, 부자는 음부에 내려가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음부에 가서야 부자는 비로소 크게 깨닫고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생각하기를 자기 집에 형제 다섯이 있는데, 그들만은 절대로 음부에 오지 않도록 해야 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집에 잠깐만 이라도 돌려 보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의 세계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때가 온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요, 기장 좋은 때 인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까지 집으로 돌아갈 조금의 여유는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 하실 때 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때가 악하므로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누가복음 24:13절 이하에 보면, 두 제자는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 인줄로만 알았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에, 큰 실의에 빠져 예루살렘을 벗어나 이제 엠마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가까이 오셔서 저희들과 함께 동행을 하시지만, 그들은 그 분이 예수님이신지 알아 보지 못 했습니다. 주님은,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가는 이유를 물어 보았고, 그들은 근일에 되어진 일들을 말하면서 어찌하여 당신만이 이 사건을 모르냐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을 자세히 풀어 주시면서, 예수님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어찌나 은혜로운지, 날이 이미 저물어 한 촌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들은 예수님께 강권하여 집에 머물러 함께 유하자고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유하면서, 음식을 잡수시면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제서야 그분이 예수님 이신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예수님은 이미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 하셨습니다.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길에서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의 가슴이 뜨겁지 아니 하더냐!” 하면서 부활의 주님을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이 놀랍고도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엠마오에서 예루살렘까지, 이십오리나 되는 먼 길을 단숨에 뛰어가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하나님의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이와같이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되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을 만났습니까 이주님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집으로 돌아가라!.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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